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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사람들과 화목한 관계를 이루기를 힘쓰라 - 2011년 11월 20일 주일 장년성경연구 - 9, 10, 11월 학기 제 12과 (로마서 공부)

글쓴이 : 최고관리자 날짜 : 2013-09-13 (금) 06:20 조회 : 1376
2011년 11월 20일 주일
 
다른 사람들과 화목한 관계를 이루기를 힘쓰라
 
배경구절: 로마서 14장 13 -23절
학습구절: 로마서 14장 13 -23절
 
금 주의 성경진리
 
그리스도인들은 다른 그리스도인들과 화목한 관계를 가지기를 힘써야 한다.
 
시작하는 글
 
근래에 발표된 한 연구결과에 의하면
미국에 있는 대부분의 교회들은 이년에 한번 정도로 어떤 형태로든 내부 갈등을 겪고 있다고 하였다 (Explore The Bible, Reader Guide, p127).
갈등이 일어나는 대부분의 요인은 겉으로 나타나지 않는 사적인 문제들이 되고 있다고 하였다.
갈등이 깊어지면, 교인들은 편을 만들어 상대방을 적으로 생각하고 공격하며 비난의 화살을 쏘아 댄다고 하였다.
그같은 갈등이 극에 달하면, 서로 갈라서는 아픔과 고통을 겪게 된다.
교회가 그같은 내적 갈등을 겪게되면, 교인들은 큰 상처를 받게 되고, 교회의 사역은 큰 타격을 입게 된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경고하기를 “만일 서로 물고 먹으면 피차 멸망할까 조심하라”고 교회에게 경고하였다 (갈 5: 15).
교회의 갈등과 싸움은 교인들과 교회에만 국한 되는 일이 아니다.
그것은 믿지 않는 세상에 전도의 길을 막는 일이 되며 그들의 마음에 교회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를 심는 일이 된다.
예수님은 자기를 믿고 따르는 제자들을 “세상의 빛”으로 부르시고
 “너희 빛을 사람들 앞에 비취게 하여 저희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고 하셨다 (마 5: 16).
바울은 그리스도인들에게
“어그러지고 거스리는 세대 가운데서 하나님의 흠 없는 자녀로 세상에서 그들 가운데 빛들로 나타내(라)”고 하였다 (빌 2: 15).
그리고 교회 지도자들은 “외인들에게서도 선한 증거를 얻은 자”가 되어야 한다고 하였다 (딤전 3: 7).
그래서 교회는 세상에서 좋은 영향력을 끼칠 책임이 있다.
교회가 갈등과 반목 그리고 싸움이 그치지 않고 있는 세상에서 좋은 영향력을 끼칠 수 있는  방법의 하나가 화목을 이루는 일이다.
하나님은 그리스도를 통하여 자기와 화목케된 그리스도인들에게 “화목케 하는 직책(사역)”을 주시고 “화목케 하는 말씀”을 맡기셨다 (고후 5: 18 -19).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화평케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이라고 하셨다 (마 5: 9).
그런데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오늘날 그 책임을 잘 하지 못하고 있다.
도리어 비난의 대상이 될 때가 많다.
오늘날은 인터넷 시대라 교회에 어떤 일이 일어나면 그 소식이 얼마나 빨리 전해지는지 모른다.
우리는 또한 사람들이 사물을 부정적인 안목으로 바라보려고 하며 좋은 소문보다는 나쁜 소문이 더 빨리 퍼지고
잘한 아홉가지 일보다는 잘못한 한 가지 일이 더 크게 부각되며 오래 기억되는 문화권에 살고 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들은 말과 행동에 더욱 조심해야 한다.
 
학습구절 연구
 
비난하지 말자 (로마서 14장 13 -15절)
 
14: 13    그런즉 우리가 다시는 서로 판단하지 말고 도리어 부딪힐 것이나 거칠 것으로 형제 앞에 두지 아니할 것을 주의하라
14: 14    내가 주 예수 안에서 알고 확신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스스로 속된 것이 없으되 다만 속되게 여기는 그 사람에게는 속되니라
14: 15    만일 식물을 인하여 네 형제가 근심하게 되면 이는 네가 사랑으로 행치 아니함이라 그리스도께서 대신하여 죽으신 형제를
            네 식물로 망케 하지 말라
 
“그런즉”이라는 말은 바울이 14장 1절부터 12절에서 언급한 내용과 이제 말하려고 하는 14장 13절부터 23절까지를 연결시켜 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
바울은 14장 10절에서 “우리가 다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서리라”고 하고
12절에서는 “우리 각인이 자기 일을 하나님께 직고(直告)하리라”고 하였다.
하나님은 한 사람의 잘. 잘못을 다른 사람들의 말을 들으시고 판단하는 분이 아니시다.
우리는 믿음생활을 하면서 자신이 말하거나 행하는 것은 생각하거나 따지지 않고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하고 있느냐에 더 관심을 가지고 판단하며 비난할 때가 많다.
오죽하면 주님께서 “어찌하여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고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고 하셨을까!
그래서 바울은 말하기를, “그런즉 우리가 다시는 서로 판단하지 말(자)”고 하였다.
그리고 계속해서 말하기를, “도리어 부딪힐 것이나 거칠 것으로 형제 앞에 두지 않을 것을 주의하라”고 하였다.
그것은 믿음이 성숙한 그리스도인들에게 하는 말이다.
믿음이 성숙한 그리스도인들의 삶에는 두 가지 중요한 특성이 나타나고 있다.
하나는 그리스도 안에서 누리는 “자유”이고 다른 하나는 “사랑의 법”이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그리스도 안에서 엄청난 자유를 얻어서 그 자유를 누리며 사는 사람들이다.
그렇긴 하지만, 우리는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배풀어 주신 놀라운 은혜와 크신 사랑이 감사해서
사랑의 법에 따라 살며 사랑의 법을 이루기를 힘쓰는 사람들이다.
바울이 갈라디아서 5: 13 -15절에서 한 말은 그뜻을 분명하게 밝혀주고 있다.
“형제들아 너희가 자유를 위하여 부르심을 입었으나 그러나 그 자유를 육체의 기회로 삼지 말고 오직 사랑으로 서로 종노릇하라
온 율법은 네 이웃 사랑하기를 네 몸과 같이 하라 하신 한 말씀에 이루었나니 만일 서로 물고 먹으면 피차 멸망할까 조심하라” (갈 5: 13 -15).
우리는 “부딪힐 것이나 거칠 것으로 형제 앞에 두지 않을 것을 주의하라”는 말을 사랑의 법에 비추어 해석할 필요가 있다.
내게는 신앙적으로 아무 거리낌 없이 행할 수 있고 확신하는 일이지만, 믿음이 약한 성도에게 거리끼는 일이 된다면,
나는 내 자유를 주장하지 않고 그사람의 신앙양심을 인하여 그 일을 하지 않겠다는 사랑의 법이다.
바울은 “내가 주 안에서 알고 확신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스스로 속된 것이 없으되”라는 말로
성도들 각자가 자신의 신앙 양심으로 다르게 판단하고 믿을 수 있는 것들이 있음을 인정하였다.
그렇다고 그리스도인들 각자는 무엇이나 자신이 옳다고 판단하고 믿는 대로 할 수 있다는 뜻은 아니다.
성경은 무엇이 죄이고 어떻게 하는 것이 잘못인지를 분명하게 밝혀주고 있다.
바울이 여기서 말하고 있는 것은 성도들 각자가 자신의 신앙 양심에 따라 다르게 생각할 수 있는 영역이 되고 있다.
자기는 옳다고 믿고 행하는 것이 다른 사람에게는 거리끼는 것으로 여겨질 수 있다는 것이다.
바울은 이때 밈음이 더 성숙하고 강한 성도에게 사랑의 법을 요구하였다.
“우리 강한 자가 마땅히 연약한 자의 약점을 담당하고 자기를 기쁘게 하지 아니할 것이니라” (롬 15: 1).
바울은 성도들이 사랑의 법을 따라 그같이 행하는 신앙 양심을 “너희의 것”이 아니라 “남의 것”이라고 하였다 (고전 10: 28 -29).
사랑은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않고 다른 사람의 유익을 구하기 때문이다.
바울은 14장 15절에서는 “만일 식물을 인하여 네 형제가 근심하게 되면 이는 네가 사랑으로 행치 아니함이라”고 하며서 사랑의 법을 강조하였다.
“그리스도께서 대신하여 죽으신 형제를 네 식물로 망케 하지 말라”고 하였다.
믿음이 약한 성도들은 믿음이 강한 성도들이 자신들처럼 행하지 않는다고 불평하며 비난하는 것을 금하고,
믿음이 성숙한 성도들은 마음대로 행할 수 있는 자유가 있지만 믿음이 약한 성도들을 위해 사랑의 법을 실천하기를 힘쓸 때,
성도들은 서로 화목한 관계를 누리게 되고 교회는 화평할 수 있다.
 
더 중요한 일을 먼저 행하자 (로마서 14장 16 -18절)
 
14: 16    그러므로 너희의 선한 것이 비방을 받지 않게 하라
14: 17    하나님의 나라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 안에서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
14: 18    이로써 그리스도를 섬기는 자는 하나님께 기뻐하심을 받으며 사람에게도 칭찬을 받느니라
 
바울은 오늘 본문에서 “너희 선한 것이 비방을 받지 않게 하라”고 하였다.
‘비방하다’는 말은 ‘나쁘게’ 혹은 ‘악하게 말하다’는 뜻으로 번역될 수 있다.
잘하는 일이 사람들에게 비방거리가 된다면 화가 나고 속이 크게 상하게 마련이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신앙 때문에 세상 사람들에게 핍박을 받는 것과는 다른 일이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믿지 않는 사람들이 “나를 인하여 너희를 욕하고 핍박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스려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기뻐하고 즐거워 하라”고 하셨다 (마 5: 11 -12).
 바울이 여기서 말한 ‘선한 일’은 신앙이나 교리적인 문제가 아니라, 어떤 행동이나 생활방식을 가리키고 있다.
우리는 ‘선한 일”이라는 말을 아무 음식이나 먹을 수 있는 자유에다 적용시켜 생각해 볼 수 있다.
그런데 그같이 행하는 자유가 다른 성도의 판단과 비난의 대상이 되어 교회에 문제가 일어나게 되고 그로 인해 다른 사람들의 비방거리가 된다면,
그같은 자유를 고집하지 말라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다.
그러면서 바울은 말하기를, “하나님의 나라”에서는 무엇을 먹고 마시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오직 성령 안에서 (누리는) 의와 평강과 희락”이 중요하다고 하였다.
그러면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자신의 신앙 생활 속에서 어느 것을 더 중요하게 여기며 추구해야 할까?
바로 그것이 사도 바울이 성도들에게 일깨워 주려는 요점이 되고 있다.
그리스도인들은, 예수님의 말씀처럼(마 15: 17 -18),
입으로 들어가 배에서 소화되어 뒤로 내어 버려지는 음식을 가지고 다툴 것이 아니라 더 중요한 것을 찾고 구하는 것이 마땅하다.
전에 이런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어느 한 시골교회가 하나님의 축복으로 크게 부흥하게 되자, 더 큰 교회건물을 짓게 되었다고 한다.
그런데 교회건물울 완공하고 교인들 간에(실제로는 세력다툼을 일삼던 지도자 중심으로) 피아노를 강대상 어느 쪽에 놓느냐는 문제로
의견이 갈라지고 다툼이 일어났다고 한다.
감정 대립으로 치솟다가 급기야는 교회가 갈라지게 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그 교회는 인근지역에서 싸움난 교회로 소문이 났다고 하였다.
그같은 일을 지켜보신 주님의 마음은 어떠하셨을까?
그것은 마치 어린 아이들이 장난감을 가지고 싸우는 것과 같다.
그런데 문제는 많은 교회가 그같이 사소한 일을 가지고 싸우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리스도인의 삶은 주님을 주인으로 모시고 섬기며 주님의 뜻을 따라 행함으로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이다.
바울은 그같이 사는 삶을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는 것)”으로 표현하였다 (고전 10: 31).
바울은 그같이 주님을 섬기는 삶을 사는 사람은 “하나님께 기뻐하심을 받으며 사람에게도 칭찬을 받느니라”고 하였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사소한 일을 가지고 서로 비난하며 싸우는 대신에 주님의 뜻을 먼저 생각할 필요가 있다.
 
다른 성도들이 성장하도록 도와 주자 (로마서 14장 19 -21절)
 
14: 19    이러므로 우리가 화평의 일과 서로 덕을 세우는 일을 힘쓰나니
14: 20    식물을 인하여 하나님의 사업을 무너지게 말라 만물이 다 정하되 거리낌으로 먹는 사람에게는 악하니라
14; 21    고기도 먹지 아니하고 포도주도 마시지 아니하고 무엇이든지 네 형제로 거리끼게 하는 일을 아니함이 아름다우니라
 
“이러므로”라는 문구는 바울이 14장 1절에서 밝힌 “의심하는 바들”, 즉 ‘의견을 달리할 수 있는 문제들’을 가리키고 있다.
바울은 구체적인 예로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을 예로 들었다.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은 인간 생존에 필수적인 요소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것들을 얻기 위해 열심히 일한다.
그런데 바울은 말하기를 그리스도인들은 육체의 필요물 보다 성령 안에서 누리는 “의와 평강과 희락”을 더 중요하게 여기며
그것들을 머저 구한다고 하였다.
예수님께서도 제자들에게 마태복음 6장 33절에서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하나님께서) 이 모든 것(먹을 것과 입을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고 말씀하셨다.
이제 바울은 말하기를 그같이 바른 가치관을 가지고 사는 성도들은 “화평을 이루는 일과 서로 덕을 세우는 일을 힘쓴다’고 하였다.
본문은 바울이 계속해서 믿음이 강하고 성숙한 성도들에게 하는 말이다.
“힘쓰다”는 말은 어떤 것을 얻거나 이루기 위해 달려가거나 노력하는 것을 뜻한다.
바울이 빌립보서 3장 14절에서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좇아가노라”고 했을 때,
‘좇아 간다’는 말은 그같은 뜻을 나타내고 있다.
 화평한 관계는 우연히 혹은 자동적으로 이루어 지는 것이 아니다.
노력과 도움과 기도가 필요하다.
 화목을 이루는 일에는 서로 조심하며 미리 예방하는 일이 필요하다.
어떤 말이나 행동으로 크게 화가 났거나 깊은 상처가 생겼을 경우, 화목을 이루는 일은 쉽지 않다.
그래서 잠언은 “노엽게 한 형제와 화목하기가 견고한 성을 취하기보다 어려운즉 이러한 다툼은 산성 문빗장 같으니라”고 하였다 (잠 18: 19).
그러므로 성도들이 ‘화평을 이루는 일’을 힘쓰는 적극적인 방법은 ‘서로 덕을 세우는 일’을 힘쓰는 것이 되고있다.
헬라어로 ‘세우다’라는 말은 본래 집을 짓는다는 뜻으로 사용되었는데, 바울은 이 용어를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에다 적용하였다.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를 자신의 구세주로 믿고 새 생명으로 태어난 사람들이 서로 지체가 되어 그리스도의 몸을 이루고 있는 신앙공동체이다.
그러므로, 바울이 말한 ‘서로 덕을 세우는 일’은 믿음이 성숙한 성도들이 믿음이 약하고 성숙지 못한 성도들을 자라나게 도와주며
아름다운 신앙공동체로 세워지도록 돕는 일이 되고 있다.
그리스도인들은 “성령 안에서 하나님의 거하실 처소가 되기 위하여 예수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가(는)” 신앙공동체이다(엡 2: 22).
그리고 우리는 그리스도의 몸을 세워가는 사역자들이다.
만일 건물을 짓는 사람들이 자기가 맡은 사명을 잊고 건물을 파괴하는 일을 한다면, 이보다 비극적인 일은 없을 것이다.
사도 바울은 로마교회 교인들에게 중요하지 않은 “식물을 인하여 하나님의 사업을 무너지게 말라”고 하였다.
 
하나님과 자신 사이의 일로 삼자 (로마서 14장 22 -23절)
 
14: 22    네게 있는 믿음을 하나님 앞에서 스스로 가지고 있으라 자기의 옳다 하는 바로 자기를 책하지 아니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14: 23    의심하고 먹는 자는 정죄되었나니 이는 믿음으로 좇아 하지 아니한 연고라 믿음으로 좇아 하지 아니하는 모든 것이 죄니라
 
바울이 본 단원에서 밝히려는 뜻을 바르게 이해하려면, 먼저 “네게 있는 믿음”이 무엇을 가리키고 있는지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네게 있는 믿음”이라는 말은 성도들 각자가 자신의 신앙양심으로 하나님 앞에서 옳다고 확신하는 믿음을 가리키고 있다.
믿음이 강한 성도들은 그리스도 안에서 누리고 있는 자유로 인해 아무 음식이나 거리낌 없이 먹을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었다.
유대교에서 개종한 믿음이 약한 성도들은 그리스도인들이라 하더라도 구약의 음식규례를 지켜야 한다고 믿었다.
그같은 문제에 대해 바울은 어떻게 조언하고 있는가?
그같은 믿음을 “하나님 앞에서 스스로 가지고 있으라”고 하였다.
다시 말하면, 다른 사람들에게 자기처럼 하라고 강요하거나 자기처럼 하지 않는다고 불평할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 자신 사이의 일로 삼으라는 말이다.
만일 자기의 믿음을 다른 사람것 보다 우월한 것으로 생각하여 신앙적으로 교만해 지거나 다른 사람을 공격하는 무기로 삼을 경우,
그것은 신앙공동체를 파괴하는 일이 될 뿐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를 막는 일이 된다.
세리와 함께 성전에 올라가 기도한 바리새인의 경우가 그같았다 (눅 18: 10 -14).
그리스도인의 삶은 하나님과 동행하는 믿음의 여정(旅程)이다.
그리스도인으로서 우리가 행하는 것들은 무엇이든지 하나님께서 인정하시고 기뻐하신다는 확신은 매우 중요하다.
참된 믿음은 사람들의 판단으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인정하시고 기뻐하시는 것이다.
그래서 바울은 말하기를 하나님 앞에서 “믿음으로 좇아 하지 아니하는 모든 것”이 죄라고 하였다.
 
마치는 글
 
다른 그리스도인들을 비판하지 않는 일은 그들과 화목을 이루는 일이 된다.
하나님의 왕국과 왕국의 가치를 우선으로 삼는 일은 다른 그리스도인들과 화목을 이루는 일이 된다.
그리스도인들이 다른 그리스도인들의 영적 성장을 돕는 목적으로 행할 때, 그것은 그들과 화평을 이루기를 힘쓰는 일이 된다.
서로 의견을 달리할 수 있는 신앙문제를 하나님께 아뢰고 하나님과 자신의 문제로 삼을 때,
그것은 자기와 다르게 생각하는 사람들과 화평을 이루기를 힘쓰는 일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