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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사랑을 의존하라 - 2011년 8월 28일 주일 장년성경연구 - 6, 7, 8월 학기 제 13과 (예레미야 애가서 공부)

글쓴이 : 최고관리자 날짜 : 2013-09-13 (금) 06:09 조회 : 1485
2011년 8월 28일
 
하나님의 사랑을 의존하라
 
배경구절: 예레미야애가 1장 1절 – 5장 22절
학습구절: 예레미야애가 3장 19 -33, 37 -39절
 
이 과의 성경진리
 
여호와 하나님은 그의 백성들을 신실하게 사랑하시기 때문에
그들이 고난과 역경에 처할 때에도 그들을 붙들어주시며 사랑을 베풀어 주신다.
 
시작하는 글
 
장년들은 자신들의 삶 속에서
피할 수 없는 고난과 역경 그리고 고통의 실체를 어떻게 하면 이해하고 극복할 수 있을지를 고민하며 괴로워할 때가 있다.
어떤 사람들은 자신들이 겪는 고난을 하나님의 탓으로 돌린다. 그래서 하나님께 아예 등을 돌려버리고 만다.
자신이 겪는 고난을 하나님의 탓으로 돌리지는 않을지라도,
왜 내게 이런 일이 임하게 내버려 두시느냐?고 하나님께 따지며 원망하는 사람들도 있다.
다른 사람들이 고난당하는 것은 이해할 수 있지만,
자기가 당하는 것은 이해할 수도 없고 그렇게 고난당할 만큼 잘못한 것이 없다고 생각한다.
물론 어떤 고난은 자신의 잘못된 선택의 결과로 생기기도 하지만, 다 그런 것은 아니다.
사람들은 죄로 인해 저주 받은 세상에 살고 있기 때문에 어느 누구도 고난과 역경을 피할 수 없다.
하나님은 인간에게 고난이나 역경을 허용하시기는 하지만, 직접 시험하시지는 않는다(야고보서 1: 13).
하나님은 도리어 마음 아파하시며 불쌍하게 여기신다.
예수님이 이 세상에서 복음을 전하실 때 “무리를 보시고 민망히 여기(셨다)”는 말이 곧 하나님의 마음을 표현한 것이다 (마 9: 36).
유다 백성들이 고난을 당하게 될 때 혹시라도 여호와 하나님을 원망할까봐 하나님은 미리 자신의 뜻을 백성들에게 밝혀주셨다.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은 내가 아나니 재앙이 아니라 곧 평안이요 너희 장래에 소망을 주려 하는 생각이라”고 하셨다.
그리고 계속해서 말씀하시기를 “너희는 내게 부르짖으며 와서 내게 기도하면 내가 너희를 들을 것이요
너희가 전심으로 찾고 찾으면 나를 만나리라”고 하셨다 (예레미야 29: 11 -13).
하나님의 백성이 이 세상에서 고난과 역경을 당하면,
그것이 비록 자신의 죄로 인한 것일지라도, 하나님과 그의 신실한 사랑을 의지하며 그의 도우심을 구해야 한다.
 
학습구절 연구
 
고통스러운 기억들은 밖으로 표현하자 (예레미야애가 3장 19 -20절)
 
3: 19    내 고초와 재난 곧 쑥과 담즙(膽汁)을 기억하소서
3: 20    내 심령이 그것을 기억하고 낙심이 되오나
 
예레미야애가는 예레미야가 주전 587년에 예루살렘성이 함락되고 거민들이 포로로 잡혀 끌려간 것을 애통해 하며 쓴 시이다.
예레미야애가는 모두 다 섯개로 구성되어 있는데 오늘의 학습구절은 그 세 번째가 되고 있다.
예레미야는 유다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이 확실히 임할 것과 그 심판은 극심할 것이라는 경고의 메시지를 여러 해 동안 직접 전했지만,
유다가 멸망당하는 실제의 상황이 벌어지자 그 현실은 너무도 참혹하고 충격적인 것이었다.
예루살렘 도성은 완전히 파괴되었다.
성벽들은 무너져 버리고 궁전과 건물들은 물론 솔로몬 왕이 건축한 장엄한 성전도 불타버리고 말았다.
신앙과 삶의 중심이었던 성전이 파괴된 것은 유다백성들에게 큰 충격이었다.
인명피해도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컸다.
더우기 살아남은 자들 중에 많은 수는 포로로 잡혀 바벨론으로 끌려갔다.
소수의 남은 백성들의 삶은 비참하기 짝이 없었다.
예레미야는 “고초와 고난” 그리고 “쑥과 담즙”이라는 용어를 사용하여 자신과 백성들이 겪은 고난과 고통을 묘사하였다.
히브리어로 이들 단어들이 나타내고 있는 뜻은 낮아질 대로 낮아지고 가난해 질대로 가난해진 현실과 잔인하고도 쓰디쓴 삶의 상태이다.
‘죽는 것이 사는 것보다 낫다’고 한 말이 (애가 4: 9) 당시의 상황을 잘 묘사해 주고 있다.
예레미야는 여호와 하나님께 자신과 백성이 처한 상황과 상태를 기억해 주시기를 간구하였다.
그 말에는 도움을 구하는 간절한 마음이 담겨 있다.
반면에 자신은 그것을 기억할 때 심령이 낙심된다고 하였다.
사람들은 종종 슬픈감정이나 고통에 찬 기억들로 인하여 힘들 때 이를 겉으로 표현해 버리지 않고 속에다 억눌러 두고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행동할 때가 있다.
심리학자들에 의하면 그같이 표출되지 못한 감정이나 고통에 찬 기억들은 후에 더 심각한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고 한다.
그리스도인들은 삶 속에서 견딜 수 없는 슬픈 일이나 고통을 겪게 될 때 이를 하나님 앞에 아뢰며 그의 도움과 능력을 구한다.
그래서 성경은 성도들에게 “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겨 버리라”고 가르친다.  이는 그가 우리를 돌보시기 때문이다 (벧전 5: 7).
오늘 우리가 공부하게 되는 예레미야가 그랬다.
 
여호와의 인자하심을 기억하자 (예레미야애가 3장 21 -26절)
 
3: 21    중심에 회상한즉 오히려 소망이 있사옴은 3: 22 여호와의 자비와 긍휼이 무궁하시므로 우리가 진멸되지 아니함이니이다
3: 23    이것이 아침마다 새로우니 주의 성실이 크도소이다
3: 24    내 심령에 이르기를 여호와는 나의 기업이시니 그러므로 내가 저를 바라리라 하도다
3: 25    무릇 기다리는 자에게나 구하는 영혼에게 여호와께서 선을 베푸시는도다
3: 26    사람이 여호와의 구원을 바라고 잠잠히 기다림이 좋도다
 
예레미야는 여호와 하나님께서 “자비롭고 은혜롭고 노하기를 더디 하고 인자와 진실이 많(으신 분)"임을 잘 알고 있었다(출애굽기 34: 6).
자신과 백성이 겪은 일을 생각하면 낙심이 되지만, 여호와의 자비와 긍휼을 생각하면 고난과 역경 중에서도 소망이 생겼다.
‘소망이 있다’라로 번역된 히브리어에는, 노아가 홍수로 인한 물이 가라앉을 때를 기다리듯이, ‘기다린다’라는 뜻이 들어있다.
‘소망이 있다’라는 말에는 또한 '확신에 찬 기대감'의 뜻이 담겨있다.
그러므로, 그 말은 신뢰하다는 말에 가깝다.
인간은 주위의 상황과 전적으로 동떨어진 삶을 결코 살 수 없다.
그렇지만, 하나님은 세상의 어떤 상황보다도 크신 분이시다.
예루살렘은 폐허가 되었고, 하나님이 세상에서 자신의 임재를 나타내 보이는 장소였던 성전도 없어져 버렸다.
언약의 백성들 대부분은 생명을 잃었거나 포로로 끌려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호와는 여전히 하나님이시다.
그의 백성들은 장래를 위해 그를 신뢰할 수 있다.
예레미야는 백성들이 살아남은 것을 하나님의 자비와 긍휼에다 돌렸다.
계속 거역하며 죄를 범하였는데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자비로 인하여 진멸되지 않고 살아 있는 것이다.
“자비”라는 말은 불쌍히 여기다는 말로도 번역될 수 있다.
그 말은 윗 사람이 아랫 사람에 대해 갖고 있는 깊은 사랑을 나타내 주고 있다.
히브리어로 긍휼이라는 용어는 어린 생명체가 보호를 받고 영양분을 공급받는 곳인 모태를 가리키는 말로도 사용되고 있다.
그의 백성을 위한 하나님의 자비와 긍휼하심은 무궁할 뿐 아니라 아침마다 새로운 것을 회상 할 때,
“주의 성실이 크도소이다”는 고백을 하게 되었다.
3장 24절에서 예레미야는 “여호와는 나의 기업”이 되시기 때문에 “내가 저를 바라리라”고 하였다.
이스라엘 지파들이 약속의 땅에 들어와서 땅을 기업으로 분배받았을 때,
레위지파는 여호와 하나님께서 그들의 “기업”이 되셨기 때문에 땅을 분배받지 않았다 (여호수아 13: 33).
예레미야 당시에 바벨론으로 끌려간 백성들은 더 이상 약속의 땅에서 살지 못했다.
그렇지만, 여호와 하나님의 택하신 백성으로서의 위치는 잃지 않았다.
이제 그들은 여호와를 자신들의 기업으로 삼게 되었던 것이다.
그리고 예레미야는 세상의 것들보다 하나님만을 소망으로 삼겠다고 하였다.
베드로는 여호와를 기업으로 삼는 것을 “썩지 않고 더럽지 않고 쇠하지 아니하는 기업을 잇게”되는 것으로 표현하였다 (벧전 1: 4).
 
여호와의 목적을 깨닫자 (예레미야애가 3장 27 -33절)
 
3: 27    사람이 젊었을 때에 멍에를 메는 것이 좋으니
3: 28    혼자 앉아서 잠잠할 것은 주께서 그것을 메우셨음이라
3: 29    입을 티끌에 댈지어다 혹시 소망이 있을지어다
3: 30    때리는 자에게 뺨을 향하여 수욕(羞辱)으로 배불릴지어다
3: 31    이는 주께서 영원토록 버리지 않을 것임이며
3: 32    저가 비록 근심케 하시나 그 풍부한 자비대로 긍휼히 여기실 것임이라
3: 33    주께서 인생으로 고생하며 근심하게 하심이 본심이 아니시로다
 
예레미야는 한 속담을 들어서 유다 백성들로 하여금 그들이 겪고 있는 고통 뒤에 담겨있는 하나님의 징계의 목적을 상기시켰다.
옛날에 농부들은 쟁기로 밭을 갈거나 구루마에 짐을 나르려면 소에 멍에를 메웠다.
소가 그같이 멍에를 메는 데는 목적이 있었다.
사람이 젊었을 때 멍에를 멘다는 말은 어려움을 견딘다는 비유적인 표현이다.
여호와 하나님이 목적이 있어서 멍에를 메우셨기 때문에 불평하거나 원망하지 말고 잠잠히 받아들이는 것이 마땅하다고 하였다.
하나님의 징계의 목적을 깨닫고 받아 들이면 멍에를 메는 것은 좋은 일이다.
하나님의 징계가 아닌 다른 이유로 고난을 겪게 되더라도 이를 잘 참고 견디며 하나님께 맡기면,
하나님께서는 이를 통해 우리의 믿음을 키워주시며 좋은 결과가 나타나도록 도와 주신다.
그래서 바울은 이같이 말하였다;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롬 8: 28).
“입을 티끝에 댈지어다”는 말은 우리나라 말로 두 손을 번쩍 들고 완전히 항복하는 것을 가리킨다.
백성들은 여호와 하나님의 계획에 전적으로 순복하며 그의 긍휼하심을 바라야 마땅했다.
예레미야는 또한 “때리는 자에게 뺨을 향하여 수욕으로 배불릴지어다”는 말로 심한 신체적 고통과 수모를 겪을 지라도 잘 참고 견디라고 하였다.
이 구절을 읽으면 예수님이 우리의 죄를 사해 주시기 위해 말없이 겪으신 고난과 치욕을 생각케 된다.
예레미야는 “주께서 영원토록 버리지 않으실 것”이라는 말로 여호와 하나님의 징계가 영구적인 것이 되지 않을 것을 밝혀주었다.
하나님은 백성들이 회개하고 돌아오게 하려고 부득이 잠시동안 고난을 당케 하셨을지라도 그는 자비와 긍휼이 풍성하신 분이시다.
“주께서 인생으로 고생하며 근심하게 하심이 본심이 아니시로다”는 말로 하나님의 본성을 재차 밝혀 주었다.
 
여호와의 능력을 깨닫자 (예레미야애가 3장 37 -39절)
 
3: 37    주의 명령이 아니면 누가 능히 말하여 이루게 하랴
3: 38    화, 복이 지극히 높으신 자의 입으로 나오지 아니하느냐
3: 39    살아 있는 사람은 자기 죄로 벌을 받나니 어찌 원망하랴
 
고난과 역경의 끝은 보이지 않고 오랫 동안 계속되자 여호와 하나님의 권세와 주권에 대해 의혹을 품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같이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예레미야는 말하기를 하나님께서 허락지 않으시면 어떤 일도 일어날 수 없다고 하였다.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권세와 주권을 강조해 주는 말씀이다.
인간이 당하는 죽음이나 화(禍)등은 죄의 결과이기는 하지만, 그 모든 것들은 궁극적인 면에서 하나님의 권세에 굴복하는 존재들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인간의 생사화복을 주장하시는 분이시다.
 예레미야는 그같은 하나님의 주권과 권세를 ‘화, 복이 지극히 높으신 자의 입에서 나오는 것’으로 표현하였다.
 하나님은 죄를 심판하시는 권세도 있으시다.
 하나님께서 죄를 심판하실 때 어느 누구도 원망하지 말아야 한다. 
 
마치는 글
 
삶 속에서 고난을 당할 때에라도 하나님의 변함 없는 사랑을 기억하면 소망을 가질 수 있다.
죄로 인해 고난을 당하며 고통을 겪게 될 때 그 뒤에 담겨있는 하나님의 목적을 깨달으면, 하나님을 더 가까이 하며 순종하게 된다.
죄로 인해 고난을 당하게 될 때 하나님의 능력을 깨달으면 하나님을 더욱 의지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