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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으로 드리는 헌금 - 제 12과 - 2018년 5월 20일 주일 장년성경연구 - 고린도후서 9장 1 – 15절

글쓴이 : 강호길 날짜 : 2018-05-14 (월) 12:13 조회 : 154

장년성경연구 교사용 교재


2018년 5월20일 주일


 제 12과


 믿음으로 드리는 헌금


학습구절고린도후서 9장 1 – 15절


성경진리:

신자들은 자신들의 자원을 사용하여 다른 사람들의 필요를 채워줌으로 하나님에 대한 신뢰심을 나타낸다.  


주요교리:  청지기 직분  

그리스도인들은 지상에서 구속자의 목적을 성취(成就) 하기 위해 자신들의 재물을 기쁜 마음으로, 정기적으로, 체계적으로, 비례 적으로, 그리고 아낌없는 마음으로 드리기를 힘써야 한다.


암송구절: 고린도후서 9장 7절

각각 그 마음에 정한 대로 할 것이요 인색함으로나 억지로 하지 말지니 하나님은 즐겨 내는 자를 사랑하시느니라

Each of you should give what you have decided in your heart to give, not reluctantly or under compulsion, for God loves a cheerful giver.



시작하는 글:


카페에 자주 나오는 그 남자는 항상 명품이 아닌 수수한 일상복을 입었다.

그에게선 부자의 티라곤 조금도 찾아볼 수 없었다.

그는 그 카페에 앉아있는 다른 고객들과 다른 데가 없었다.

음식을 먹고 난 후, 그는 웨이트리스에게 감사하다는 말을 꼭 하고, 또한 팁을 지나치리만큼 후하게 주곤 하였다.  

식탁에 함께 앉아있던 다른 한 사람이 그같이 매번 팁을 후하게 주는 것을 보니 부자임에 틀림 없다고 하였다.  

그러자 그 남자는 그 사람에게 말하기를, 꼭 부자가 되어야 물질에 대해 관대해 질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너그러운 마음이 있어야 한다고 하였다.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의 물질에 대한 관대함에 놀라워한 이유는 무엇인가?

사람들이 다른 사람들을 물질적으로 관대하게 대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하나님은 종종 돈을 사용하여 우리의 마음 상태를 드러내주신다.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을 들어보면 쉽게 알 수 있다.

네 보물이 있는 그 곳에는 네 마음도 있느니라” (마 6: 21).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 (마 6: 24).

사도 바울은 디모데전서 6장 10절에서,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된다)”고 하면서 돈을 탐내는 사람들은 “미혹을 받아 믿음에서 떠나 많은 근심으로 자기를 찔렀도다”고 하였다.

그리스도인들은 믿지 않는 사람들과 다른 안목을 가지고 돈을 대해야 한다.

그리스도인들은 돈의 탐욕에 사로잡히거나, 가질 수 있는 모든 것을 움켜 쥐려고 하기보다는, 너그러운 마음을 가지고 다른 사람들에게 베풀며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을 도와주기를 힘써야 한다.



본문배경설명


고린도후서 8장 1절부터 9장 15절까지

금주의 학습구절들을 좀더 잘 이해하기 위해서는, 당시의 역사적인 배경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당시 예루살렘 교회는 가난한 교인들, 특별히 과부나 고아들을 돕는 사역에 필요한 재정적인 부담을 포함하여 심각한 문제들에 직면하고 있었다.

예루살렘 교회의 신자들은 자신들이 해야 할 일들을 하여, 서로 도와주며 어떤 사람들은 심지어 재산과 소유물을 팔아 나눠주기도 하였지만 (행 2: 44 -45), 아직 더 많은 재원이 필요했다.

더구나 유대 지역에 큰 흉년이 들어 상황이 더 어렵게 되었다.

사도행전 11장 30절에 의하면, 안디옥 교회는 예루살렘 교회 성도들을 위하여 구제금을 모금하여 바나바와 사울(바울)의 편으로 보내기도 하였다.

바울이 바나바와 함께 디도를 데리고 예루살렘에 올라가서 예루살렘 교회의 지도자들이었던 야고보와 베드로와 요한을 만났을 때, 그들은 바울 일행에게 “가난한 자들을 기억하도록 부탁하였(다)” (갈 2: 10).

갈라디아서를 기록할 때 바울은 그 같은 말을 회상하면서 “이것은 나도 본래부터 힘써 행하여 왔노라”고 확언하였다 (갈 2: 10).

바울은, 어디를 가든지, 예루살렘에 있는 가난한 성도들을 돕기 위해 사도로서의 영향력을 행사하여 모금하는 일에 힘썼다.

이방인들의 사도로 부름을 받아 특별히 복음을 이방인들에게 전파하는 일에 힘썼던 바울은 그같이 하는 신학적인 이유가 있었다.  

이방인 신자들은 복음이 세계로 퍼져나간 진원지인 예루살렘 교회에 영적으로 빚진 자들이었다.

그래서 바울은 “만일 이방인들이 그들의 영적인 것을 나눠 가졌으면 육적인 것으로 그들을 섬기는 것이 마땅하니라”는 말로, 이방지역의 교회들이 예루살렘 교회의 어려운 성도들을 돕는 일에 열심을 내도록 도전하였던 것이다 (롬 15: 27).

바울은 예루살렘 교회의 어려운 성도들을 위해 헌금을 거두는 문제에 대해 고린도 교회에 말한 적이 있었다 (고전 16: 1 -3).

이에 고린도 교회는 헌금을 하기로 약속을 하였다.

그것은 약 일년 전의 일이었다.

그때 바울은 고린도교회 성도들에게 “매주 첫날에 너희 각 사람이 수입에 따라 모아 두어서 내가 갈 때에 연보를 하지 않게 하라”고 당부하였다 (고전 16: 2).

사도 바울은 고린도 교회 성도들의 그 같은 열심을 마게도냐 성도들에게 자랑하였다.

이를 들은 마게도냐의 많은 성도들은 모금하는 일에 더욱 분발하게 되었다.

바울은 고린도 교회 성도들에게 작정한 일을 끝마치도록 촉구하였다.


학습구절 연구: 


헌금에 대한 확신감의 표현  (고린도후서9장 1 -5절)

9: 1   성도를 섬기는 일에 대하여는 내가 너희에게 쓸 필요가 없나니

9: 2    이는 내가 너희의 원함을 앎이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마게도냐인들에게 아가야에서는 

일 년 전부터 준비하였다는 것을 자랑하였는데 과연 너희의 열심이 퍽 많은 사람들을 분발하게 하였느니라 

9: 3   그런데 이 형제들을 보낸 것은 이 일에 너희를 위한 우리의 자랑이 헛되지 않고 내가 말한 것 같이 준비하게 하려 함이라 

9: 4   혹 마게도냐인들이 나와 함께 가서 너희가 준비하지 아니한 것을 보면 너희는 고사하고 우리가 이 믿던 것에 부끄러움을 당할까 두려워하노라 

9: 5    그러므로 내가 이 형제들로 먼저 너희에게 가서 너희가 전에 약속한 연보를 미리 준비하게 하도록 권면하는 것이 필요한 줄 생각하였노니 이렇게 준비하여야 참 연보답고 억지가 아니니라


9장 1절  -  성도를 섬기는 일에 대하여는 내가 너희에게 쓸 필요가 없나니”라는 사도 바울의 말은 그가 고린도 교회 신자들이 “성도를 섬기는 일”에 열심히 참여할 것을 확신하고 있음을 나타내고 있다.

성도를 섬기는 일”이라는 말은 마게도냐 지역의 교회들이 형편이 어려운 예루살렘 교회의 성도들을 도와주기를 간절히 원하고 있는 것을 설명할 때, 바울이 사용했던 것을 반복하고 있는 것이다 (고후 8: 4).

섬기는 일”로 번역된 헬라어는 ‘디아코니아’(diakonia)로, 문자적으로는 ‘식탁에서 시중드는 것’을 가리키고 있다.

그 말에서 집사를 뜻하는 영어의 “deacon”이라는 말이 파생되었다.

초대 그리스도인들은 이 용어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다른 사람들을 섬기는 기독교 사역의 본질을 묘사하는 용도로 사용하게 되었다 (행 6: 1; 딤전 1: 12).

누가는 이 용어를 하나님께서 사도들에게 주신 말씀을 전파하고 가르치는 일에다 적용하여 “말씀사역”으로 표현하였다 (행 6: 4).

이 서신의 앞부분에서, 바울은 같은 용어를 사용하여 하나님께서 “화목하게 하는 직분”을 주셨다고 하였다 (고후 5: 18).

그러므로, 바울에게 있어서 “사역” 혹은 “섬기는 일”은 비천하거나 하찮은 일이 아니었다.

그 같은 기회를 위임 받은 것은 특권이었고, 특별히 그것은 주님을 위해 “성도(들)”을 섬기는 것으로 자랑스러운 일이었다.

바울이 사용한 “성도”라는 말은 “하나님을 위해 구별된 사람들”을 뜻하는 것으로, 그 말은 자주 믿는 자 모두를 가리키고 있다 (고전 1: 2: 고후 1: 1).   

고린도 교회의 성도들은 성도를 섬기는 이 헌금을 아낌없이 해야 하는 것에 대해 그들이 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를 알고 있었다.

바울은 이전에 그들에게 이 헌금에 대해 편지로 알려준 적이 있었다 (고전 16: 1 -4).

그는 또한 고린도 교회가, 적어도 처음 시작은, 그 일에 열심을 내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어떻게 보면, 성도를 섬기는 일을 위한 헌금에 대해 바울이 고린도 교회 신자들에게 다시 쓰는 것이 필요가 없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확실하게 하기 위한 후속조치일환으로, 바울은 이 과에서 그 문제에 대해 설명하며 지시하였다.    

9장 2절  실제로, 바울은 “내가 너희의 원함을 앎이라”는 말로 고린도 교회 교인들이 시작한 그 일을 마치기를 간절히 원하고 있는 것을 칭찬하였다.

더 나아가서, 바울은 “아가야에서는 일 년 전부터 준비하였다”고 하면서, 그 헌금에 대한 고린도 교회 성도들의 열심을 “마게도냐인들에게” 자랑하기 까지 하였다.   

“아가야”는 당시 고린도 교회가 있던 지방의 이름이었다.

마게도냐”는 빌립보와 데살로니가 및 베뢰아가 있던 지방이 되고 있다.   

바울은 아가야 지방으로 가기 직전에 이들 도시에서 복음을 전파하였다 (행 16 -7장 참조).

바울이 “성도를 섬기는 일”을 위한 헌금에 대해 고린도교회를 칭찬한 것은 그의 편지를 가지고 고린도에 간 디도가 오기를 기다리며 “마게도냐”로 갔었을 때 했던 것으로 보인다 (고후 2: 12 -13).

고린도 교회에 대한 바울의 말을 들은 마게도냐 성도들은 감동과 격려를 받아 모금 운동에 더 열심을 내었다.

바울은 고린도 교회 교인들에게 그 같은 사실을 “과연 너희의 열심이 퍽 많은 사람들을 분발하게 하였느니라”는 말로 전하였다.  

오늘날 교회 지도자들은 청지기 직분의 영적 원리를 포함하여, 어떻게 하면 교인들이 하나님의 일에 자원하는 마음으로 헌금하도록 동기를 부여할 수 있을까 생각할 때가 많다.

그리고 어떤 때에는 세상적인 방법에 의존할 때도 있다.

본문의 경우, 바울이 한 일은 강한 간증이 되고 있다.

9장 3 -5절  바울은 자신이 그 헌금을 가지러 고린도 교회로 갈 때에, 그 헌금이 준비되어 있기를 원하였다.

그것은 거대한 사역의 필요가 걸린 문제였고, 바울은 그 헌금에 대한 고린도 교인들의 강한 헌신을 자랑하였기 때문에 사람들은 그것을 믿고 기다리고 있었다.

만일 그 헌금이 실제로 준비되어 있지 않다면, 바울과 고린도 교회는 똑같이 “부끄러움을 당할(것)”이 분명하였다 (5절).

그래서, 바울은 미리 “형제들”을 고린도 교회로 보내면서, “너희를 위한 우리의 자랑이 헛되지 않고 내가 말한 것 같이 준비하게 하려 함이라”는 말로 그 목적을 밝혔다.

여기에서 바울이 언급한 “형제들”은 그가 앞에서 밝힌 “디도”와 그를 동행한 “형제”가 되고 있다 (고후 8: 16 -18; 12: 18).

바울은 그들을 신실하고 “복음으로써 모든 교회에서 칭찬을 받는 자”로 높이 추천하였다.

4절에서 바울은 “혹시 마게도냐인들이 나와 함께 가서”라는 말로, 모금한 헌금을 가지고 예루살렘으로 갈 때 마게도냐 지방의 성도들을 데리고 갈 의향을 비쳤다.

실제로 그 같은 일은 일어났다.

바울이 모금한 헌금을 가지고 예루살렘으로 갈 때 많은 사람들이 그를 따라갔는데, 그들 가운데는 베뢰아 사람 “소바더”와 데살로니가 사람 “아리스다고”와 “세군도”가 있었던 것을 보아서도 알 수 있다.

고린도 교회에 다른 사람들과 함께 갈 경우, 바울은 교회가 헌금을 준비해 놓지 않은 것으로 인해 난처한 입장에 처하게 되는 것을 원치 않았다.

만일 그 같은 일이 생길 경우, 바울은 말하기를 “너희는 고사하고 우리가 이 믿던 것에 부끄러움을 당할까 두려워하노라”고 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울은 고린도 교회 성도들이 “성도를 섬기는 일”을 위한 헌금을 할 것을 확신하고 있었다.

그렇지만, 그가 갔을 때 교인들이 헌금을 급하게 모금하는 하는 것을 원치 않았다.

그는 고린도 교회의 성도들이 전에 약속한 대로 미리 준비해 놓는 방법으로 하기를 원하였다.

그같이 하는 것이 “참 연보답고 억지가 아니니라”고 하였다.

그것은 헌금을 할 때의 동기가 중요함을 일깨워주며 강조하는 말이 되고 있다.

바울은 고린도 교인들이 헌금을 의무감이나 강요에 의해서 하는 것이 아니라, 자원하는 마음과 감사한 마음에서 하기를 원하였다.


혜택(惠澤)을 얻게 되는 헌금 (고린도후서 9장 6 -11절)

9: 6   이것이 곧 적게 심는 자는 적게 거두고 많이 심는 자는 많이 거둔다 하는 말이로다

9: 7   각각 그 마음에 정한 대로 할 것이요 인색함으로 나 억지로 하지 말지니 하나님은

즐겨 내는 자를 사랑하시느니라 

9: 8    하나님이 능히 모든 은혜를 너희에게 넘치게 하시나니 이는 너희로 모든 일에 항상 모든 것이 넉넉하여 모든 착한 일을 넘치게 하려 하심이니라 

9: 9   기록된 바 그가 흩어 가난한 자들에게 주었으니 그의 의가 영원토록 있느니라 함과 같으니라 

9: 10  심는 자에게 씨와 먹을 양식을 주시는 이가 너희 심을 것을 주사 풍성하게 하시고 너희 의의 열매를 더하게 하시리니 

9: 11  너희가 모든 일에 넉넉하여 너그럽게 연보를 함은 그들이 우리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하게 하는 것이라


9장 6-7절 – 선물은 받는 사람에게만 축복이 되는 것이 아니다.

주는 사람도 똑같이 이득을 얻게 된다.

바울은 헌금을 드리는 일을 농부가 씨앗을 뿌려 곡식을 거두어 들이는 농사 일에다 비유함으로, 헌금이 하나님의 경제원리에 투자하는 일이 됨을 밝혔다.  

그것은 “심는 대로 거둔다”는 원리가 되고 있다 (잠 22: 8; 갈 6: 7).

사도 바울은 “적게 심는 자는 적게 거두고 많이 심는 자는 많이 거둔다”는 말로, 하나님의 왕국에 풍성하게 투자하면 더 풍성한 수확을 거두어 들이게 되는 것을 강조하였다.

그것은 꼭 물질적인 것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고, 영적인 면에서도 광범위하게 적용되는 원리가 되고 있다.

그러나, 헌금에 대한 바울의 동기는 받는 것이나 거두어 들이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주는 것 자체인 축복된 행위가 되었다.

바울이 인용한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이 있다”는 주님의 가르침은(행 20: 35) 그 같은 동기를 뒷받침해주는 말이 되고 있다.

주는 것은 또한 진정한 사랑을 나타내는 방법이 된다 (고린도 후서 8 : 8, 24).

실제로, 하나님께서 그의 아들을 주신 것도 사랑이 동기가 되고 있다(요 3 : 16).

바울은 고린도 교회 교인들에게 그들이 헌금을 할 때 두 가지 원리에 따라 드리도록 권하였다.

하나는 “있는 대로”, 즉 형편에 따라 드리라고 하고 (고후 8: 11 -12), 다른 하나는 “그 마음에 정한 대로” 하라고 하였다.

정한 대로”라는 말로 번역된 헬라어는 “계획하다” 혹은 “사전에 준비하다”는 뜻을 담고 있다.

바울은 고린도 교회 교인들에게 성도를 섬기는 일을 위한 헌금을 “인색함으로나 억지로 하지 말(라)”고 하면서 “하나님은 즐겨 내는 자를 사랑하시느니라”고 하였다.  

9장 8 -9절 – 그리스도인들이 너그러운 연보 혹은 후한 연보를 해야 되는 또 다른 이유는 하나님께서 그같이 하는 자들에게 “모든 은혜”를 넘치게 베풀어 주시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믿는 자들에게 은혜를 넘치게 베풀어 주시는 이유는 개인적인 부나 안락을 누리게 하려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그같이 은혜를 넘치게 받은 믿는 자들로 하여금 “모든 착한 일을 넘치게 하게 하려(는 것)”이 되고 있다.  

하나님의 백성들은 아낌 없는 헌금으로 다른 사람들을 축복해야 한다는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바울은 시 112편 9절을 인용하였다.

이 시편은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와 “의인”으로 불리고 있는 사람의 특성을 칭찬하고 있다.

바울은 의인이 너그럽게 행한 일들을 묘사하고 있는 구절을 인용하였다.

“그가 흩어 가난한 자들에게 주었으니 그의 의가 영원토록 있느니라.”

“그의 의가 영원토록 있느니라”는 말은 하나님의 영원한 은혜가 그 같은 사람에게 미치고 있는 것을 밝혀주고 있다.

하나님은 너그러운 연보를 포함하여 그의 백성들의 선행을 결코 잊지 않으신다.   

9장 10 -11절  - 바울은 또한 다른 성경말씀들을 마음에 떠 올렸다.  

이사야 55장 10절은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들을 위해 “파종하는 자에게 종자”와  “먹는 자에게 양식”을 주시는 것에 대해 말하였다.

호세아 선지자는 하나님의 백성이 “공의를 심(는 것)” 의 중요한 것에 대해 말하였다 (호 10: 12). .

다시 말하면, 너그러운 연보룰 포함하여 선행을 함으로 “여호와께서 오사 공의를 비처럼 너희에게 내리시(는 것)”을 포함한 “인애를 거두(게)” 되는 것에 대해 말하였다.  

바울 사도는 그 같은 말씀들을 사용하여 고린도 교인들에게 그들의 헌금이 그들의 “의의 열매를 더하게” 하는 것을 확신시켜 주었다.

다른 말로 하면, 하나님께서는 의를 심는 그들의 선행에 대해 상급(수확)을 주셨다.

고린도 교회 교인들이 “너그럽게 연보”를 할 때, 그들은 “모든 일에 넉넉하여” 질 것이다.

너그럽게 연보할 때의 또 다른 결과는 “하나님께 감사하게” 되는 것이다.


하나님께 영광이 되는 헌금 (고린도후서 9장 12 -15절) 

9: 12  이 봉사의 직무가 성도들의 부족한 것을 보충할 뿐 아니라 사람들이 하나님께 드리는 많은 감사로 말미암아 넘쳤느니라 

9: 13  이 직무로 증거를 삼아 너희가 그리스도의 복음을 진실히 믿고 복종하는 것과 그들과 모든 사람을 섬기는 너희의 후한 연보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9: 14  또 그들이 너희를 위하여 간구하며 하나님이 너희에게 주신 지극한 은혜로 말미암아 너희를 사모하느니라 

9: 15  말할 수 없는 그의 은사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하노라


9장 12 -13절  - 바울은 “너그럽게 연보를 (하는 일)”은 “하나님께 감사하게 하는 것”이라는 주제를 더 발전시켰다.

그는 헌금을 드리는 일을 “봉사의 직무”로 표현하면서, 헌금의 두 가지 결과를 강조하였다.

첫째로, 그것은 예루살렘 교회 “성도들의 부족한 것을 보충(해 주는 일)”이 될 것이다.

둘째로, 그것은 많은 사람들로 하여금 하나님께 감사를 넘치게 드리게 할 것이다.

하나님에게 감사하는 것은, 그의 최고의 가치를 인정하는 것으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일이 되고 있다.

고린도 교회 성도들이 드리는 헌금의 두 가지 요소는 다른 사람들이 볼 수 있는 한 가지 방법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나타낼 것이다.

첫째로, 그들이 가난한 신자들과 나누는 일에 관대한 것은 믿음의 진실성을 입증하는 방법이 될 것이다 (고후 8 : 8).

외적으로 주는 것은 내적 삶의 변화의 증거가 되고 있다.

둘째로, 그들이 후한 헌금을 드리는 일은 그리스도 안에서 그들의 믿음이 계속 자라나고 있는 표시, 즉 “그리스도의 복음을 진실히 믿고 복종하는” 표가 될 것이다.

바꾸어 말하면,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에는 지속적인 순종의 행위가 따라야 하는데, 후한 연보는 그 한 예가 되고 있다.

고린도 교회 성도들이 헌금을 관대한 마음으로 하면, 그들은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에 필연적으로 따르는 순종의 시험을 통과하게 될 것이다.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에는 지속적인 순종의 행위가 따라야 하는데, 후한 연보는 그 한 예가 되고 있다.


9장 14 -15절  사도 바울은 말하기를, 하나님께서 고린도 교회 교인들에게 베풀어 주신 “지극한 은혜”로 말미암아 예루살렘 교회의 성도들은 고린도 교회를 위하여 기도하며 그들을 사모할 것이라고 하였다.

사도 바울의 마음은 이제 하나님의 보내심을 받아 세상에 오셔서 모든 사람의 가장 큰 선물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에게로 옮겨졌다.

바울은 “말할 수 없는 그의 은사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하노라”는 말로 그 같은 선물을 주신 하나님을 찬양하였다.


말씀을 나의 상황에 적용하기

   * 신자들은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을 도와 줄 책임이 있다.

   * 신자들은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의 필요를 채워줌으로 하나님께서 자신들의 필요를 공급해 주신 것에 대한 신뢰심을 나타낸다.
   * 신자들이 하나님께 드리는 예물은 드리는 사람과 받는 사람 모두에게 하나님을 공경하는 수단과 방법이 될 수 있다.
   * 신자들은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의 필요를 채워줌으로 하나님께서 자신들의 필요를 공급해 주신 것에 대한 신뢰심을 나타낸다.
   * 신자들이 하나님께 드리는 예물은 드리는 사람과 받는 사람 모두에게 하나님을 공경하는 수단과 방법이 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