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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위로를 받는 삶 - 제 9과 - 2018년 4월 29일 장년성경연구 - 고린도후서 1장 1 -14절

글쓴이 : 강호길 날짜 : 2018-04-23 (월) 07:58 조회 : 102

장년성경연구 교사용 교재


2018년 4월 29일 주일

                       

                       

제 9과


하나님의 위로를 받는  


학습구절:

고린도후서 1장 1 -14절


성경진리:

신자들은 자신들이 겪는 시련이 다른 사람들에게 유익을 끼칠 수 있으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일이 된다는 사실을 알 때 힘과 위로를 얻는다.       


주요교리: 하나님 아버지  

아버지가 되시는 하나님은 그의 은혜의 목적에 따라 그가 지으신 우주와 모든 창조물과 인류 역사의 흐름을  다스리시며 관리하신다.


암송구절: 고린도후서 1장 4절

우리의 모든 환난 중에서 우리를 위로하사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 받은 위로로써 모든 환난 중에 있는 자들을 능히 위로하게 하시는 이시로다

Who comforts us in all our troubles, so that we can comfort those in any trouble with the comfort we ourselves receive from God.



시작하는 글:      


영어로 “comfort zone”이라는 용어가 있다.

그 말을 우리나라 말로 번역한다면, “안락하고 안전한 지대”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그 용어가 사용되고 있는 여러 가지 방식에 대해 생각해 보는 것은 흥미 있고 의미 있는 일이다.  먼저 그 용어는 사람들이 마음으로 친숙하고 편안하게 느끼며, 상황을 자신이 통제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상태를 가리킬 수 있다.

그리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삶의 “안락하고 안전한 지대”를 구축하는 일에 모든 노력을 경주하고 있다.

그런데, “comfort zone”이라는 말은 부정적인 측면도 가지고 있다.

예를 들어, 우리는 자신의 ‘안락하고 안전한 지대’에서 벗어나, 위험들을 무릅쓰고, 전에 한 번도 해보지 않은 새로운 것들을 시도해보려는 도전을 받을 수 있다.


당신은 어떤 상황에 있으면 “안락하고 안전한 지대”에 있다고 생각하는가?  당신은 최근에 "안락하고 안전한 지대”에서 벗어나는 일들을 시도한 것이 있다면 무엇인가?  ‘안락하고 안전한 지대”에 머물러 있는 것과 벗어나는 것의 이점이나 장점들은 어떤 것들이라고 생각하는가? 


바울이 선교사와 순회 교회 개척자가 되어 갖가지 역경과 위험을 무릅쓰며 “comfort zone”을 벗어난 삶을 살았던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바울은 복음이 전해지지 않은 곳에 복음을 전파하라는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다.

하나님의 성령님의 도움을 받아, 그는 기꺼이 믿겨지지 않는 위험들을 감수하였다.

이 주의 학습구절들을 공부하면서, 우리는 그가 “살 소망까지 끊어(졌다”고 생각할 정도로 역경과 위험을 겪었던 것을 보게 된다 (고후 1: 8).

바울은, 그러나, 그 같은 시련 가운데서 위로가 필요하지 않았던 것이 아니었다.

그는 하나님과 다른 사람들로부터 위로를 받을 수 있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는 고린도후서를 자기가 받은 위로에 대해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으로 시작하였다.

그는 하나님을 “자비의 아버지”와 “모든 위로의 하나님”으로 불렀다.

더 나아가서, 바울은 성도들에게 하나님의 위로가 자기로부터 그들에게 그리고 그들로부터 자기에게 미친 것을 설명하였다.

신자들은 자신들이 겪는 시련이 다른 사람들에게 유익을 끼치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일이 된다는 사실을 알 때 위로를 얻는다.       



본문배경설명


고린도후서 1장 1절부터 2장 13절까지

우리는 지난 주까지 고린도전서 공부를 마치고 앞으로 다섯 주에 걸쳐 “고린도후서”를 공부하게 된다.

이 서신의 처음 몇 장은 바울과 고린도교회와의 관계 그리고 고린도전서를 써보낸 이후에 진행되고 있던 몇 가지 문제점들을 보여주고 있다.

성경학자들은 사도 바울이 고린도후서를 시작하면서 자신을 “하나님의 뜻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로 밝힌 것은 자신의 사도 직을 옹호하려는데 목적이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고후 1: 1).  

이는 거짓 교사들이 교회 안에 들어와 바울의 권위에 도전하며 바울의 가르침에 의혹을 품게 하고 분쟁을 일으키게 하였기 때문이었다.

에베소에 있었을 때에, 고린도교회가 심각한 문제에 빠져있다는 소식을 전해들은 바울은 그 같은 문제들을 해결하고 그들이 편지로 질문한 몇 가지 교리적인 문제들에 대해 대답하기 위하여 써 보낸 편지가 고린도전서이다.

바울이 고린도전서 5장 9절에서 “내가 너희에게 쓴 편지에”라고 밝힌 것을 보면, 바울은 고린도전서 이전에도 편지를 써 보내었는데, 보전되어 있지 않고 있다.   

고린도전서로 남아있는 편지를 써 보낸 후에도, 고린도교회의 문제는 바울이 에베소에서 하던 사역을 중단하고 고린도 교회를 급히 서둘러 방문해야 할 정도로 심각하였다.

바울은 “내가 다시는 너희에게 근심 중에 나아가지 아니하기로 스스로 결심하였노니”라는 말로 그 방문을 평가하였다 (고후 2: 1).

근심과 걱정하는 마음으로 찾아갔던 방문은 의도했던 대로 좋은 성과를 거두지 못하였다.

도리어 어떤 성도는 바울에게 직접 도전하고 나설 정도로 관계가 나빠진 것으로 보인다.

에베소로 돌아온 바울은 고린도 교회로 보내는 신랄한 내용의 또 다른 편지를 썼다.

바울은 그 편지를, “마음에 큰 눌림과 걱정이 있어 많은 눈물로” 쓴 편지로 묘사하였다 (2: 4).

그것은 또한 문제를 일으키고 있는 성도를 교회가 징계할 것을 권하는 내용의 편지였다 (2: 6).

바울은 디도의 편에 그 편지를 고린도 교회로 보냈다.

디도가 편지를 전하고 돌아오기를 기다리는 바울의 마음은 편치 않았다.

마음의 걱정과 근심을 떨쳐버릴 수 없었다.

그래서 그는 디도를 기다리면서 아가야 지역과 더 가까운 마게도냐 지역으로 갔다 (행 20: 1).

바울이 “우리가 마게도냐에 이르렀을 때에도 우리 육체가 편하지 못하였고 사방으로 환난을 당하여 밖으로는 다툼이요 안으로는 두려움이었노라”고 술회한 것을 보면, 당시의 그의 심정을 이해할 수 있다 (고후 7: 5).

그런데, 디도가 마침내 기쁜 소식을 가지고 돌아왔던 것이다 (고후 7: 6 -13). 

고린도 교회가 죄를 회개하고 바울에 대해 가지고 있던 그릇된 태도를 고쳤다는 기쁜 소식이었다.

바울은 또한 그 일로 인해 자기와 고린도 교회 성도들이 걱정하고 근심한 것을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으로 표현하였다.

그 같은 기쁜 소식을 듣고 기쁨과 감사에 가득 차서 써 보낸 편지가 고린도후서이다.  



학습구절 연구: 


하나님의 위로를 받다  (고린도후서 ( 1장 3 -7절)

1: 3   찬송하리로다 그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이시요 자비의 아버지시요 모든 위로의 하나님이시며 

1: 4   우리의 모든 환난 중에서 우리를 위로하사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 받은 위로로써 모든 환난 중에 있는 자들을 능히 위로하게 하시는 이시로다 

1: 5   그리스도의 고난이 우리에게 넘친 것 같이 우리가 받는 위로도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넘치는 도다 

1: 6   우리가 환난 당하는 것도 너희가 위로와 구원을 받게 하려는 것이요 우리가 위로를 받는 것도 너희가 위로를 받게 하려는 것이니 이 위로가 너희 속에 역사하느니라 우리가 받는 것 같은 고난을 너희도 견디게 하느니라

1: 7   너희를 위한 우리의 소망이 견고함은 너희가 고난에 참여하는 자가 된 것 같이 위로에도 그러한 줄을 앎이라   


바울은 그리스도를 믿고 그의 일을 하는 것으로 인해 고난을 받을 때에 자비와 위로를 베풀어주시는 하나님을 찬양하였다.

그는 또한 고린도의 신자들도 그 같은 일을 행하는 것으로 어려움을 겪을 때도 하나님께서 위로와 자비를 베풀어 주시는 것을 상기시켜 주었다.

1장 3-4절  - “찬송하리로다”로 번역된 헬라어는 자신이 ‘찬송한다’라는 뜻과 다른 사람들에게 ‘찬송하자’고 요청하는 두 가지 뜻을 담고 있다.

그것은 찬양 인도자가 예배자들에게 함께 여호와를 찬양하자고 촉구하는 구약의 시편들을 연상케 하는 구성형태가 되고 있다 (시 66: 20, 68: 35).

사도 바울도 그처럼 고린도의 신자들에게 자기와 함께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을 찬송하자고 하였던 것이다.

원문에서는 바울이 하나님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로도 불렀는데, 그 호칭은 그 찬송이 기독교 특유의 것이 되게 하며 약속된 메시야이신 그의 아들 예수를 세상에 보내신 유일하신 참 하나님께만 초점을 맞추게 만드는 것이 되고 있다.

일세기 당시의 유대 예배자들은 하나님을 종종 “자비의 아버지”로 불렀다.

그 말은 언약의 백성들을 대하실 때 “자비롭고 은혜롭고 노하기를 더디 하(시는)” 여호와 하나님을 가리켰다 (출 34: 6).

그리스도인들에게는, 하나님께서는 궁극적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죄인들의 구세주로 보내주셨을 때 그의 자비와 은혜를 나타내 주셨다.

죄인들인 우리는 결코 하나님의 자비를 받거나 얻을 자격이 없다.

우리는 은혜로 하나님의 자비를 얻는다 (딛 3: 5 -7).

바울은 하나님이 자비의 아버지가 되실 뿐 아니라, “모든 위로의 하나님”이 되신다고 하였다.

그 고백은 하나님께서 “모든 환난 중에서 우리를 위로하(신다)”고한 바울의 주장의 기초가 되고 있다.

바울은 많은 고난과 역경을 겪었으며, 그때마다 하나님의 위로를 받았다.

그 같은 경우와 상황 속에서 하나님은 어떻게 믿는 자들을 위로해 주시는가?

하나님은 그의 말씀을 통해 믿는 자들을 격려해 주신다.

성경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어려움을 겪을 때에 하나님께서 그들을 어떻게 도와 주셨는지에 대한 많은 예들을 보여주고 있다.

하나님께서는 또한 성령님을 통해 신자들을 도와주시며 강하게 해 주신다.

성령님은 신자들의 연약함을 도와주시며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그들을 위해 간구해 주신다 (롬 8: 26).

“위로”라는 용어는 성령님에 대한 예수님의 묘사에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십자가를 지시기 전날 밤 다락방에서 제자들을 가르치셨을 때, 예수님은 그들에게 말씀하시기를, 하나님이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리라”고 약속하였다 (요 14: 16).

"보혜사”로 번역된 헬라어는 고린도전서 1 장 3 ~ 7 절에서 바울이 여러 번에 걸쳐 사용하고 있는 “위로”라는 말과 같은 어근(語根)이 되고 있다.  

따라서 예수님은 메시아–보혜사에 대한 그의 약속을 성취하셨으며, 성령님은 오순절 날에 믿는 자들에게 임하셔서 위로의 사역을 계속하시고 있다.

하나님은 또한 신앙공동체 안에 있는 다른 신자들을 통해 일하심으로 그들을 통해 우리를 위로하신다 (고린도 후서 7: 6 ~7, 13 참조).

하나님께서 믿는 자들에게 주시는 위로로 말미암아, 신자들은 더 강하고 더 지혜롭게 된다.

결과는 그같이 위로를 받은 신자들이 하나님의 쓰임을 받아 “모든 환난 중에 있는 자들을 능히 위로하게” 되는 것이다.  

1장 5 -7절 – 바울은 “그리스도의 고난이 우리에게 넘(친다)”고 하였다.

“그리스도의 고난”은 모든 사람들이 겪는 것이 아니다.

사도 베드로는 성도들에게 “너희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는 것으로 즐거워하라”고 하면서 (벧전 4: 13) “너희 중에 누구든지 살인이나 도둑질이나 악행이나 남의 일 간섭하는 자로 고난을 받지 말려니와 만일 그리스도인으로 고난을 받으면 부끄러워하지 말고 도리어 그 이름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고 하였다 (벧전 4: 15 -16).

그리스도의 고난은 자기가 잘못 행한 일 때문에 겪는 것이 아니고, 그리스도를 믿고 따르며 복음을 증거하는 일로인하여 겪는 것이며, 그리스도께 대한 신실한 믿음과 헌신의 증거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고난이 우리에게 넘친다”고 한 바울의 고백에서, 우리는 그의 믿음과 헌신을 엿볼 수 있다.     

세상이 예수님을 미워하였기 때문에, 우리는 세상이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 우리를 미워하는 것에 놀라지 말아야 한다.

그런데, 바울은 곧 이어서 “우리가 받는 위로도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넘치는 도다”고 하였다.

예수님은 곧 다가올 십자가의 처형을 내다보시면서, 제자들에게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리(라)”고 약속하셨다 (요 14: 16).

여기서 “보혜사”는 성령님을 가리키는 말로, ‘위로자’ 혹은 ‘대변자’라는 말로도 번역될 수 있다.

바울이 본 학습구절에서 사용한 “위로”라는 말은 성령님의 사역의 하나로, ‘격려하다’ ‘옹호하다’ 혹은 ‘열심히 권하다’는 뜻을 담고 있다.

성령님의 위로는 성도들이 겪는 그리스도의 고난 중에서 더 강한 힘과 더 큰 은혜를 나타낼 수 있다.

먼저, 바울이 복음을 위해 겪은 고난과 역경은 고린도의 교인들이 구원을 얻은 기회가 되었다.

만일 바울이 복음을 전파하는 일을 하지 않았다면 그것으로 인한 박해와 고통은 받지 않았겠지만, 고린도 교인들을 포함하여 많은 이방인들은 복음을 듣지 못했을 것이고 구원을 받지 못했을 곳이다.  

그래서 바울은 “여러 사람이 육신을 따라 자랑하니 나도 자랑하겠노라”고 하면서 자기가 겪은 고난을 도리어 자랑으로 삼았다 (고후 11: 18).


바울의 참된 자랑 (고후 11: 24 -27)

  • 사십에서 하나 감한 매를 다섯 번 맞음
  • 세 번 태장으로 맞음
  • 한 번 돌로 맞음
  • 세 번 파선을 당함
  • 강도의 위험을 포함하여 갖가지 위험을 겪음
  • 수고하고 애씀
  • 여러 번 자지 못함
  • 주리고 목마름
  • 여러 번 굶고 춥고 헐벗음


6절에서 바울은 “우리가 환난 당하는 것도 너희가 위로와 구원을 받게 하려는 것이요”라는 말로 신자들이 고난을 참고 견딜 때 얻을 수 있는 위로의 긍정적이고도 적극적인 영향력과 결과를 밝혔다.

1장 4절에서 바울은 하나님을 “우리의 모든 환난 중에서 우리를 위로하사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 받는 위로로써 모든 환난 중에 있는 자들을 능히 위로하게 하시는 이”로 묘사하였다.

바울은 하나님의 위로로 인하여 믿음 때문에 고난을 받고 환난을 당할 때 이를 기뻐하며 그것을 도리어 자랑으로 삼았다. 

그는 “무릇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경건하게 살고자 하는 자는 박해를 받으리라”고 고백할 수 있었다 (딤후 3: 12).  

그는, 로마서 5장 3 -4절엘에서는,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고 하였다.

바울은 자신이 겪은 모든 일들이, 그것이 시련이었거나 위로였거나 간에, 고린도 교회에 유익을 끼칠 것을 믿었다.

그리고 그것들이 그로 하여금 다른 사람들의 필요를 좀더 잘 보살펴 주며 채워주는 사역자로 준비시켜 주는 일이 되는 것을 알았다.

바울은 자기가 고난과 역경 중에서도 하나님의 위로를 받아 고난을 이기고 믿음이 더 강하고 튼튼해 진 것같이, 고린도교회 성도들도 똑 같은 위로를 받아 승리하게 될 것을 바라며 굳게 믿고 있었다.

바울은 “너희를 위한 우리의 소망이 견고(하다)”고 하였다.


믿음의 연단을 받다  (고린도후서 ( 1장 8 -11절)

1: 8   형제들아 우리가 아세아에서 당한 환난을 너희가 모르기를 원하지 아니하노니 힘에 겹도록 심한 고난을 당하여 살 소망까지 끊어지고 

1: 9   우리는 우리 자신이 사형 선고를 받은 줄 알았으니 이는 우리로 자기를 의지하지 말고 오직 죽은 자를 다시 살리시는 하나님만 의지하게 하심이라

1: 10  그가 이같이 큰 사망에서 우리를 건지셨고 또 건지실 것이며 이 후에도 건지시기를 그에게 바라노라 

1: 11  너희도 우리를 위하여 간구함으로 도우라 이는 우리가 많은 사람의 기도로 얻는 은사로 말미암아 많은 사람이 우리를 위하여 감사하게 하려 함이라


 1장 8 -9절  - 사도 바울은 복음을 위해 다른 어느 누구보다도 심한 고난과 핍박을 받았으므로, 그는 하나님께서 자신을 고난 가운데서 건져내 주시고 위로해 주신 일에 대해 말할 수 있었다.

그는 “형제들아 우리가 아시아에서 당한 환난을 너희가 모르기를 원하지 아니하노니”라는 말로 고린도 교회 성도들에게 자기가 겪을 일을 말하기 시작하였다.

본문에서 아시아라는 지명은 1세기 당시의 로마 영토로, 지금의 터키 지역을 가리키고 있으며 에베소가 있던 곳이 되고 있다.

바울이 고린도전서를 쓸 당시에는 아시아 지역의 주요 도시었던 에베소에 있었다.

바울은 자신이 어떤 고난을 겪었는지를 자세하게 밝히지 않았다.

어떤 성경학자들은 바울이 사도 행전 19: 23 ~ 41에 묘사 된 사건을 언급하고 있다고 제안한다.

그 구절들에서, 누가는 바울이 에베소에 있었을 때에 “이 도로 말미암아 적지 않은 소동”이 일어났던 일에 대해 기록하였다.

다른 학자들은 바울이 그가 앓았던 심각한 병이나 유대인 적대자들이 그를 죽이려 한 많은 위험한 일들 중의 하나를 언급했을 수도 있다고 보고 있다.

그것이 어떤 일이었든지 간에, 그는 “힘에 겹도록 심한 고난을 당하여 살 소망까지 끊어지고”라는 말로 고난의 강도와 심각성을 묘사하였다.

그가 겪은 고난이 얼마나 심각하고 상황이 절망적이었든지, 바울은 “우리는 우리 자신이 사형선고를 받은 줄 알았(다)”다고 하였다.

사형선고를 받은 줄 알았다”는 바울의 말은 순교를 포함하여 삶을 끝내는 것이 하나님의 뜻인 줄 알았다는 의미가 되고 있다.

그 같은 절박한 상황 속에서 바울이 깨달은 영적 진리는 “자기를 의지하지 말고 오직 죽은 자를 다시 살리시는 하나님만 의지(해야 된다)”는 사실이었다.

그의 삶이 죽음으로 끝난다 할지라도, 바울은 나중에 부활하게 될 것을 확신하고 있었다.


인간의 힘과 방법으로 전혀 해결할 수 없는 상황에 부딪힐 때, 우리는 진정으로 하나님을 의지해야 됨을 배우게 된다.  


1장 10 - 11절 – 그런데 하나님은 바울을 “큰 사망에서” 건져주셨다.

하나님은 바울을 살려주셨고 하나님에 대한 믿음과 신뢰심을 더 강하게 해 주셨다.

실제로, 사도 바울은 복음 전파사역을 계속하면서 그 같은 상황에 다시 빠지게 될지라도, 하나님께서 “또 건지실 것”을 믿고 있었다.

 “이 후에도 건지시기를 그에게 바라노라”는 말에서는 마지막 죽음에서도 건져내 주시기를 바란다는 뜻이 나타나고 있다.

바울은 그 같은 뜻으로 디모데후서 4장 18절에서 “주께서 나를 모든 악한 일에서 건져내시고 또 그의 천국에 들어가도록 구원하시리니”라고 하였다.

사도 바울은, 살아서도 죽어서도, 하나님이 구원자가 되시는 것을 알고 믿었다.

역경과 고난의 때에 바울이 소망과 확신을 가지게 되었던 또 다른 면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자기를 위해 기도하고 있는 것을 알고 있은 것이다.

그래서 바울은 고린도 교회 성도들에게 “너희도 우리를 위하여 간구함으로 도우라”고 하였다.

바울은 중보기도의 중요성과 본질을 강조하였다.

중보기도는 하나님께 도움이 필요한 다른 사람들을 도와주기를 간구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그 기도를 들으시고 도와 주신다.

기도는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에게 베풀어주시는 놀라운 영적 자원이다.

그러면서, 하나님은 그의 백성들이 자기에게 기도하고 다른 사람들을 위하여 간구하기를 원하신다.

야고보는 그의 서신에서 기록하기를, “의인의 간구는 역사하는 힘이 (크다)”고 하였다 (약 5: 16).

많은 신자들의 중보 기도를 통해 바울이 건짐을 받게 되는 궁극적인 목적은 많은 사람이 감사하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일이 되었다.

“간구함으로 도우라”는 말에는 또한 협동의 뜻이 나타나고 있다.  


인정하고 받아들이라 (고린도후서 1장 12 -14절) 

1: 12  우리가 세상에서 특별히 너희에 대하여 하나님의 거룩함과 진심함으로 행하되 육체의 지혜로 아니하고 하나님의 은혜로 행함은 우리 양심이 증거하는 바니 이것이 우리의 자랑이라

1: 13  오직 너희가 읽고 아는 것 외에 우리가 다른 것을 쓰지 아니하노니 너희가 완전히 알기를 내가 바라는 것은 

1: 14  너희가 우리를 부분적으로 알았으나 우리 주 예수의 날에는 너희가 우리의 자랑이 되고 우리가 너희의 자랑이 되는 그것이라


바울은 고린도 신자들에게 그의 방문이 말했던 것처럼 실행되지 않고 지연되었더라도, 믿을 수 있고 입증 된 사도로 받아 들일 것을 요구하였다.  

1장 12 - 14절  - 바울은 자신을 “하나님의 뜻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 된 바울”로 밝히는 말로 이 서신을 시작하였다 (고후 1: 1).

교회 내에서의 거짓 교사들의 악영향으로 인해, 바울은 독자들이 자신을 믿을 수 있고 입증된 사람으로 받아들이기를 원하였다.

그는 자신의 사도직에 대한 그들의 검증에 관심이 있었던 것이 아니라, 도리어 그가 복음을 전할 때 그들이 자신을 자랑과 기쁨의 원천으로 받아 들여주기를 바랬다.

바울은 세상에서 처신할 때에, 특별히 고린도 성도들을 상대로 처신할 때에, 하나님께서 주신 순박함과 신실함으로 행하고, 세상의 지혜로 행하지 않고 하나님의 은혜를 행한 것을 양심이 증거할 수 있다고 하면서, “이것이 우리의 자랑이라”고 하였다.

바울은 거짓 교사들이 그의 인격에 대해 중상 모략하는 것에도 불구하고, 흠 없는 삶을 살았다.

그의 삶과 행동은 거룩한 동기를 반영했으며, 그의 행동은 신실하고 진지하였다.  

그는 자세히 살펴보라고 하였다.

본문의 내용을 보면, 바울의 정직성과 신실성이 문제가 되었던 같이 보인다.

그리고 고린도 교회 성도들에 대한 그의 사랑도 의심을 받았던 것으로 보인다 (고후 2: 4; 고전 16: 24).

바울은 그 교회에 자신을 다 바쳐 섬기며 믿음의 아버지로서 그들을 사랑 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거짓 교사들의 말을 듣고 자기를 확실하게 믿지 못하며 그들 중에서 하는 그의 사역을 부분적으로만 이해하고 있는 것에 놀라움을 금치 못하였다.

그 동안 그들의 관계는 오르락 내리락 하였지만, 디도 편에 보낸 편지로 인하여 교회와 바울의 관계는 회복되었던 것이다.

고린도 교회는 바울의 진실함과 거짓 없는 사랑을 깨닫게 되었다.

바울은 자신과 고린도 교회의 관계가 “주 예수의 날에는 너희가 우리의 자랑이 되고 우리가 너희의 자랑이 되는 것”이라고 하였다.


말씀을 나의 상황에 적용하기

  • 신자들은 고난을 겪을 때, 하나님께서 함께해 주셔서 위로해 주시며 또한 그들이 겪는 일을 사용하셔서 고난을 당하는 다른 사람들을 위로해 주시는 것으로 인해 위로를 받을 수 있다.

  • 신자들은 믿음의 시련을 겪을 때, 그것이 자신의 믿음을 연단시켜 주며 하나님께서 그의 능력을 나타내 주시는 기회가 되는 것을 알고 찬양할 수 있다.

  • 신자들은 하나님께서 다른 사람들 안에서 그리고 그들을 통하여 일하시는 것을 깨닫고, 그들을 동역자로 받아들일 수 있다.


김소다 2018-06-22 (금) 0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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