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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을 이해하자 - 제 8과 - 2018년 4월 22일 장년성경연구 - 고린도전서 13장 1-13절

글쓴이 : 강호길 날짜 : 2018-04-16 (월) 06:13 조회 : 252

장년성경연구 교사용 교재

2018년 4월 22일 주일

                                              


제 8과


사랑을 이해하자 


학습구절:

고린도전서 13장 1 -13절


성경진리:

신자들은 사랑의 동기로 다른 사람들을 섬겨야 한다.       


주요교리: 천국   

천국의 완전한 완성은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과 세상의 종말이 임하는 때에 이루어 진다.


암송구절: 고린도전서 13장 4절

사랑은 오래 참고 사랑은 온유하며 시기하지 아니하며 사랑은 자랑하지 아니하며 교만하지 아니하며

Love is patient, love is kind. It does not envy, it does not boast, it is not proud. .



시작하는 글:      


음악, 문학, 및 영화 등에서 발견되는 가장 흔한 주제들 중의 하나를 들라면 사랑이다.  

단언하건대, 거의 모든 이야기에는, 그것이 사랑을 추구하는 것이건, 사랑을 상실한 것이건, 아니면 복잡하게 얽힌 것이든 간에, 사랑의 천사가 등장한다.

사랑은 인간 모두의 공통된 경험이다.

우리는 가족과 친구들을 사랑하며, 삶을 함께 나눌 수 있는 참 사랑을 찾는다.


사랑의 주제를 생각할 때, 어떤 노래나 영화, 혹은 책이 당신의 마음에 떠오르는가?

인상 깊게 느껴지는 시구(詩句)나 장면이 있다면 어떤 것들인가? 그 같은 노래나 이야기에서 사랑은 어떻게 묘사되고 있는가?


그런데, 이 사랑은 복음의 메시지의 중심이 되고 있다 (요 3: 16).

성경에서 하나님에 대한 가장 간단한 소개의 말은 “사랑”으로, 요한은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라”는 말로(요일 4: 8) 하나님을 사랑으로 소개하였다.  

사랑은 또한 그리스도인의 정체성과 기독교 신학 및 신앙 생활의 기반이 되고 있다.

예수님은 십자가를 내다보면서 제자들에게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리라”고 하셨다 (요 13: 34 -35).  

사랑 장으로 불려지고 있는 고린도전서 13장은 바울의 모든 서신에서 가장 영향력 있고 사랑 받는 말씀의 하나가 되고 있다.

이 말씀은 수 많은 설교의 주제가 되어오고 있다.

이 말씀은 또한 무수한 결혼식에서 낭송되고 있다.

 이번 주 공과에서, 우리는 바울이 ‘사랑의 필요성’과 ‘사랑의 본성,’ 그리고 ‘사랑의 영원성’에 대하여 고린도 교회 성도들에게 설명한 것을 배우면서, 사랑에 대한 바울의 가르침을 좀더 확실하고도 분명하게 이해하게 될 것이다.    


본문배경설명


고린도전서 13장 1절부터 -14장 40절까지; 16장 1절부터 -24절까지

이과의 본문 배경설명에서 빠진 15장 1절부터 58절까지는 4월 1일 주일인 부활절 주일에 배운 제 4과의 내용이 되고 있다.

유감스러운 것은, 많은 경우 13장의 말씀이 그같이 기록된 배경이나 상황과 관계없이 하나의 고립된 글로 읽혀지고 이해되고 있는 점이다.

13장의 내용은 그 자체만으로도 훌륭하고도 뛰어난 가치가 있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러나, 바울이 12장부터 14장까지에서 가장 중요한 주제로 삼고 있는 것은 교회의 삶 속에서 영적 은사들과 그들의 사역들 그리고 활동에 관한 것들이 되고 있다.

어떤 은사들은, 분열과 분쟁 그리고 자기중심적인 행동들로 인하여, 고린도 교회에서 유익이 되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문제들을 일으키고 있었다.

바울은 사랑에 대한 가르침인 13장을 영적 은사를 다루고 있는 12장과 14장 사이에다 삽입하여 고린도 교회 교인들에게 "가장 좋은 길”을 보여주기를 원하였다 (고전 12 : 31).


그는 고린도교회 성도들에게 영적 은사들인 “신령한 것들을 사모하되 특별히 예언을 하려고 하라”고 하였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영적인 은사들이 아니라, 사랑이다.

이는 아무리 놀라운 은사들을 가지고 있고 그들을 사용한다 할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그것들은 아무 가치가 없으며 교회를 세우는데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13: 1 -3).

바울은 그의 편지를 끝내면서 사랑의 중요성을 다시 강조하였다.

간략하면서도 심오한 말로, 그는 “너희 모든 일을 사랑으로 행하라”고 하였다 (고전 16: 14).  

그의 편지가 명령과 질책과 권면의 말들로 가득 차 있을지라도, 바울은 고린도 교회의 성도들이 그들에 대한 자신의 사랑을 알기를 원하였다.

그래서 바울의 서신은 “나의 사랑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무리와 함께 할지어다”라는 말로 끝맺고 있다,  


학습구절 연구: 


사랑의 필요성  (고린도전서 13 1  -3)

13: 1  내가 사람의 방언과 천사의 말을 할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소리 나는 구리와 울리는 꽹과리가 되고         

13: 2  내가 예언하는 능력이 있어 모든 비밀과 모든 지식을 알고 또 산을 옮길 만한 모든 믿음이 있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가 아무 것도 아니요  

13: 3  내가 내게 있는 모든 것으로 구제하고 또 내 몸을 불사르게 내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게 아무 유익이 없느니라


12 장에서 영적 은사에 관한 그의 가르침을 마칠 때, 바울은 “내가 또한 가장 좋은 길을 너희에게 보이리라”는 흥미 있는 연결고리 문장을 덧붙였다.  

그런 다음, 그는 아가페 사랑에 대한 놀라운 설명을 시작하였다.

아가페 사랑은 독특한 속성으로, 예수님은 그것이 그의 제자들을 구별시키는 표라고 하셨다 (요 13: 35).

13장 1절 – 바울이 고린도 교회 성도들에게 보여주기를 원한 “가장 좋은 길”은 (고전 12: 31) ‘사랑의 길’이 되고 있다.

길” 혹은 길을 뜻하는 “도”(道)라는 말을 들을 때면, 우리는 먼저 그 말이 당시에 복음을 가리키는 말로 사용되고 있던 것을 생각하게 된다 (행 9: 2; 19: 23; 22: 4; 24: 14).

예수님은 또한 “내가 곧 길이요”라는 말씀으로 자신을 “”로 부르셨다 (요 14: 6).

바울이 12장부터 14장까지 방언의 문제에 대해 많은 관심을 갖고 길게 설명을 한 것을 보면, 고린도 교회는 방언의 은사를 매우 중요하게 생각하고 방언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것을 자랑스럽게 여겼던 것이 분명하다.

그런데 바울은 “내가”라는 자기를 지칭하는 형태로 말하기를, 만일 어떤 사람이 인간의 각종 언어를 말할 수 있고 천사의 말을 할 수 있다 할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소리 나는 구리와 울리는 꽹과리”가 된다고 하였다.

바울이 이 구절에서 밝히려는 요점은 분명하고도 간단하다.

사랑이 없으면, 방언의 은사와 그 은사를 받아 행하는 사람은 공허하고 무의미한 소음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몸이 하나님께서 설계하신 대로 기능을 발휘하려면, “사랑”이 필요할 뿐 아니라 필수적이다.

고린도전서 13장에 나오는 “사랑”이란 단어는 “아가페”라는 헬라어가 번역된 것이다.

아가페의 사랑은 자기 희생적이고 의도적인 행동으로, 다른 사람의 최상의 결과를 추구하는 것이다.

그것은 자신의 유익보다는 다른 사람의 유익을 먼저 두기를 원하는 마음이다.

아가페의 사랑은 아무 조건이 붙지 않는 종류의 사랑이다.

“만일 당신이 이렇게 이렇게 하면 사랑하겠다” 혹은 “당신이 이렇게 하기 때문에 사랑한다”는 식의 사랑이 아니다.

하나님께서 세상을 행해 가지고 계시며 나타내신 사랑이 바로 아가페 사랑이다.

헬라어에는 사랑을 표시하는 다른 단어들이 있다.

신약성경에서 자주 사용되고 있는 또 다른 용어는 “필레오”이다.

필레오는 형제 사랑을 뜻하는 말로, 그 단어에서 “형제 사랑”을 뜻하는 장소인 “빌라델비아”가 생겨났다 (계 3: 7).

요한복음 21장 16절에서 부활하신 예수님이 베드로에게 아가페라는 말을 사용하셔서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고 물으셨을 때, 베드로는 필레오라는 말로 대답하였다.

신약성경 기자들은 아가페라는 용어를 사용하여 하나님께서 가지고 계신, 그리고 그리스도인들이 가져야 될 특별한 종류의 사랑을 묘사하였다.

하나님의 사랑은 모든 사랑의 모범이 되고 있다.

13장 2 -3절 – 바울은 12: 31에서 “더욱 큰 은사를 사모하라”고 하였는데, 14장에서 “특별히 예언하기를 원하노라”고 하며 (14: 5) 또 “지혜에는 장성한 사람이 되라”고(14: 20) 강조한 것을 보면, 그는 “예언의 은사”와 “지혜” 혹은 “지식의 은사”를 더 큰 은사로 여긴 것이 분명하다.

이제 바울은 그 두 가지 은사를 예로 들어 말하기를, “내가 예언하는 능력이 있어 모든 비밀과 모든 지식을 알고 또 산을 옮길만한 모든 믿음이 있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가 아무 것도 아니요”라고 하였다.

예언의 은사가 있어서 “많은 비밀과 많은 지식을” 알게 된다 할지라도, 사랑이 빠지면 본질적으로 아무 가치가 없다고 하였다.

마태복음 21장 21절에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만일 너희가 믿음이 있고 의심하지 아니하면,” “이 산더러 들려 바다에 던져지라 하여도 될 것이요”라고 말씀하신 적이 있다.

얼마나 놀라운 말씀인가!

바울이 12장에서 성령의 은사로 ‘믿음의 은사’와 ‘능력 행함의 은사”에 대해 말했을 때 마음에 그 같은 종류의 믿음을 생각하고 있었을 것이 분명하다 (고전 12: 9).

그런데, 사랑이 없는 그 같은 믿음에 대해 바울이 하는 말을 들어보자:

“또 산을 옮길 만한 모든 믿음이 있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가 아무 것도 아니요.”

믿음이 중요하지 않다는 말이 아니다.

그것은 바울이 무엇보다도 중요하게 여겼던 사심 없는 그리고 다른 사람의 유익을 구하는 사랑에다 견줄 때 빛을 잃게 된다는 말이다.

바울은 또한 3절에서 “내가 내게 있는 모든 것으로 구제하고 또 내 몸을 불사르게 내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게 아무 유익이 없느니라”고 하였다.

지금도 마찬가지이지만, 당시 유대사회에서는 어려운 사람들을 도와주며 가난한 사람들을 구제하는 일은 큰 선행과 존경 받는 일이 되었다.

예수님도 가난하고 어려운 사람들을 도와주며 구제하라고 하셨다 (마 19: 21; 눅 12: 33).

그러나 그 같은 구제나 선행도 사랑으로 베풀어지지 않으면, 칭찬이나 상급을 받을 만한 일이 될 수 없다.

예수님은 구제를 은밀하게 하라고 하시면서, “사람에게 보이려고 그들 앞에서 너희 의를 행하지 않도록 주의하라”고 하셨다.

그리고 “그리하지 아니하면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상을 받지 못하느니라”고 하셨다.     

바울은 그 같은 희생적인 구제와 선행도 사랑의 동기에서 행해지지 않으면 “아무 유익이 없느니라”고 한다.

인간의 삶 속에서 가장 큰 희생은 다른 사람을 위해서 혹은 대의(大義)를 지키기 위해 목숨을 버리는 일이 될 것이다 (요 15: 13).

바울이 “내 몸을 불사르게 내어 줄지라도”라고 했을 때, 그 같은 뜻으로 했을 수 있다.

그런데 바울은 말하기를, 그 같은 희생적인 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게 아무 유익이 없느니라”고    

하였다.


사랑의 본질  (고린도전서 13 4 -7절)

13: 4  사랑은 오래 참고 사랑은 온유하며 시기하지 아니하며 사랑은 자랑하지 아니하며 교만하지 아니하며 

13: 5  무례히 행하지 아니하며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아니하며 성내지 아니하며 악한 것을 생각하지 아니하며   

13: 6  불의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진리와 함께 기뻐하고 

13: 7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디느니라


그리스도인의 삶 가운데서의 사랑의 우월성을 밝힌 후에, 바울은 다음으로 아가페 사랑의 본질적인 특성들을 묘사하였다.

사랑의 그 같은 특성들은 모든 인간관계에 적용될 수 있지만, 바울이 주로 염두에 둔 것은 신자들 상호간의 관계가 되고 있다.

13: 4 -5 - 사랑의 특성들을 묘사할 때, 바울은 사랑의 적극적인 측면과 부정적인 측면을 대조시키는 방법을 사용하여, 무엇이 사랑인지 그리고 사랑이 아닌 것은 무엇인지를 밝혔다..

진정한 사랑은 단지 감정과 말로만 표현되는 것이 아니다.  

아가페 사랑에는 태도와 행동이 따라야 한다.  

아가페 사랑의 원천은 하나님 자신이시다.

아가페 사랑은 하나님의 속성으로, 그 사랑은 하나님께서 “말씀”이신 그리스도를 통하여 행하신 일에서 가장 잘 나타나고 있다:

그래서 성경은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고 한다 (롬 5: 8).  

사랑은 오래 참는다(4절) – 사랑은 하나님의 속성이 되고 있으므로, 우리는 사랑의 속성을 말할 때 “사랑”이라는 말 대신에 하나님의 이름을 사용하여 ‘하나님은 오래 참고”라고 할 수 있다.

오래 참는다’는 말에서 강조되고 있는 것은 어려운 형편이나 상황 보다는 힘들고 어려운 사람들을 참고 견딘다는 뜻이 되고 있다.

구약은 하나님을 그의 백성들에게 “노하기를 더디하시(는 분)”으로 밝히고 있다 (출 34: 6; 민 14: 18).

하나님의 오래 참으시는 본성과는 달리, 고린도 교회의 어떤 신자들은 참지 못하고 다른 사람에게 쉽게 화를 내거나 오만함을 보였다.

오래 참음”은 성령의 9가지 열매 중의 하나가 되고 있다 (갈 5: 22).

사랑은 온유(친절)하다(4절) – “온유하다” 혹은 “친절하다”는 말은 오래 참음과 밀접하게 관계되고 있다 (갈 5: 23).

그리스도인의 사랑은 대가를 기대하지 않고 친절을 베푸는 것을 의미한다.

친절은 오래 참는 미덕을 보완하는 능동적 미덕이다.

친절함 혹은 온유함은 다른 사람들을 친절하게 대하는 행동과 태도로 나타난다.

친절은 다른 사람들에게 사랑을 표현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 될 수 있다.

사랑은 시기하지 아니한다(4절) – 시기심 혹은 질투심은 다른 사람이 잘 되거나 좋은 것을 가지고 있는 것을 기뻐하며 축하해 주는 대신에 그것을 탐하며 싫어하고 미워하는 것을 가리킨다.

시기심은 교회를 분열시키며 파괴시키는 요인이 되고 있다.

지혜의 말씀인 잠언은 “분은 잔인하고 노는 창수 같거니와 투기 앞에서야 누가 서리요”라는 말로 시기심을 경고하고 있다 (잠 27: 4).

고린도 교회는 “시기와 분쟁”으로 서로 갈라져 있었다 (고전 3: 3).

바울은 고린도 교회 성도들이 시기하고 질투하는 대신에 사랑으로 하나가 되기를 바랬다.

사랑은 자랑하지 아니한다(4절)  - 이 말은 특별히 자기 자신의 업적에 대해 자랑하는 것을 가리키고 있다.

고린도 교회의 일부 신자들의 대화는 그들의 지식과 영적 능력을 자랑하는 ‘자랑시합’같이 보였다. 

고린도 교회에서 그 같은 자랑들은 영적으로 심각한 문제가 되었다.

그래서 바울은 고린도 교회 성도들에게 “네게 있는 것 중에 받지 아니한 것이 무엇이냐 네가 받았은즉 어찌하여 받지 않은 것 같이 자랑하느냐”고 질책하면서(4: 7), 예레미야 9장 24절을 인용하여 “자랑하는 자는 주 안에서 자랑하라”고 하였다 (1: 29, 31).  

사랑은 교만하지 아니한다(4절) – 바울은 8장 1절에서 “지식은 교만하게 하며 사랑은 덕을 세우나니”라는 말로 사랑이 없는 지식은 쉽게 교만의 죄가 될 수 있음을 경고하였다.

잠언은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요 거만은 넘어짐의 앞잡이니라”는 말로 교만의 죄와 그 파괴성에 대해 경고하고 있다 (잠 16: 18).

그 같은 경고를 받을 때, 그리스도인들은 모두 자신의 사역의 동기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사랑은 무례히 행하지 아니한다 (5절)  - 이 말은 버릇없이 행동하는 것을 가리키고 있지만, 원어인 헬라어로 이 말은 비도덕적이거나 음란한 행동을 나타내고 있다.

바울은 로마서 1장 27절에서 이 용어를 사용하여 동성애를 “부끄러운 일”로 표시하였다.  

바울은 이 말을 하면서 그가 고린도전서 6: 9 -10에서 열거한 부도덕한 행동의 목록을 염두에 두었을 수도 있다.

사랑은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아니한다 (5절) - 자기의 유익을 구한다는 말은 이기심에 차서 혹은 자기 멋대로 하는 것을 가리킨다.

바울은 신자들에게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말고 교회를 세우며 성도들의 유익을 구하는 일을 힘쓰라고 하였다 (고전 10: 23 -24).

신자들이 사랑의 원칙에 따라 생활 할 때, 그들의 삶은 자기 중심이 되지 않는다.

사랑은 성내지 아니한다 – ‘사랑은 성내지 아니한다’는 말은 사랑의 속성으로 “사랑은 오래 참고”라고 한 말과 같다.

사랑하는 사람들은 까다롭게 굴거나 쉽게 상처를 입지 않는다.

그러나 다른 사람들이 불의를 당하거나 학대나 억압을 받을 때, 의분(義憤)을 나타낼 때가 있다. 

사랑은 악한 것을 생각지 아니한다  ‘악한 것을 생각한다’는 말은, 원어로, 다른 사람의 잘못을 기록해 둔다는 의미이다.

그러므로, “사랑은 악한 것을 생각지 아니한다’는 말은 “사랑은 다른 사람의 잘못을 기록해 놓지 않는다’는 뜻이 되고 있다.

한번은 베드로가 주님께 나아와 물었다 (마 18: 21).

주여 형제가 내게 죄를 범하면 몇 번이나 용서하여 주리이까 일곱 번까지 하오리이까.”

베드로는 다른 사람의 잘못을 일곱 번까지는 기록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던 것 같다.

그런데 예수님은 이렇게 대답하셨다 (마 18: 22). 

일곱 번뿐 아니라 일곱 번을 일흔 번까지라도 할지니라.” 

사랑은 불평이나 불만 혹은 원한을 품어두지 않는다.

13: 6 -7 - 바울이 언급한 사랑의 적극적인 특성들은 하나님 자신의 속성들이다.

이는 “하나님은 사랑”이시기 때문이다 (요일 4: 8).

지상에서의 삶과 십자가의 죽음으로, 예수님은 온전한 사랑을 나타내셨다.

다른 한편으로, 일부 고린도 교회 신자들은 우리가 지금까지 목격했듯이 사랑이 아닌 것을 보여주었다.

바울은 고린도 교회 성도들이 사랑 안에서 자라나서, 하나님을 더 많이 닮아가기를 간절히 원하였다.

사랑은 불의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 사랑의 그리스도인들은 남의 불행을 기뻐하지 않는다.

인간은 종종 다른 사람의 실패를 이용하여 자신을 높이려고 한다.

사랑은 다른 사람을 깎아 내리고 올라서려고 하지 않는다.  

진정으로 사랑하는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이 실패하거나 부도덕에 빠질 때 결코 기뻐하지 않는다.

사랑은 진리와 함께 기뻐한다 – 불의의 정반대가 되는 것이 진리이다.

그래서 6절은 사랑이 불의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진리와 함께 기뻐한다고 하고 있다.

여기서 ‘진리와 함께 기뻐한다’는 말은 ‘하나님의 진리에 따라 사는 것을 기뻐한다”는 뜻이 되고 있다.

사랑의 그리스도인들은 진리가 승리할 때 기뻐한다.

사랑은 모든 것을 참는다 -  “참는다”는 동사는 ‘견디다’와 ‘덮다’ 혹은 ‘보호하다’의 두 가지 의미로 사용될 수 있다.

만일 바울이 그 말을 ‘견디다’라는 뜻으로 사용했다면, 사랑은 악행을 참고 견딘다는 뜻이 된다.

만일 바울이 ‘덮다’라는 의미로 사용했다면, 사랑은 모든 허물과 죄를 덮어준다는 뜻이 될 수 있다.

사랑은 다른 사람들이 굴욕이나 창피를 당하는 것을 원치 않는다.

사랑은 모든 것을 믿는다 - 그리스도인들은 다른 사람에게 쉽게 이용당하거나 속아 넘어가지 말아야 하겠지만, 일반적으로 말씀과 지혜로 다른 사람들을 먼저 의심하기 보다는 다른 사람들의 좋은 점을 믿으려고 한다.  

그리스도인들은 또한 말과 행동으로 다른 사람들이 믿을 수 있는 사람이 되려고 노력한다.

이는 사랑은 모든 것을 믿는 속성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부모와 자녀, 남편과 아내, 고용주와 고용원들, 그리고 교회 관계 속에서, 아가페의 사랑은 신자들로 하여금 다른 사람들을 넘어뜨리는 것이 아니라, 세우는 일을 하도록 이끌어 준다.  

사랑은 모든 것을 바란다 – ‘믿다’와 ‘바라다’라는 두 동사는 하나님의 사랑의 속성과 결합되어, 그리스도를 믿고 따르는 신자들에게 “믿음, 소망, 사랑”이라는 명사 형태로 없어지지 않고 계속 남는 세 가지 덕목이 되고 있다.

믿음과 소망은 불가분의 관계를 갖고 있다.

사랑은 모든 것을 견딘다 -  사랑은 다른 사람들의 반대나 실패로 인해 식어지지 않는다.

견디다”는 말로 번역 된 헬라어 단어는 어떤 무거운 짐 아래에서도 안정된 상태를 유지할 수 있는 것을 의미한다.

진정한 사랑은 참을성 있게 사람들을 대할 때 나타난다.


사랑의 영원성  (고린도전서 13장 8 -13)

13:  8 사랑은 언제까지나 떨어지지 아니하되 예언도 폐하고 방언도 그치고 지식도 폐하리라 

13:  9 우리는 부분적으로 알고 부분적으로 예언하니    

13: 10  온전한 것이 올 때에는 부분적으로 하던 것이 폐하리라  

13: 11  내가 어렸을 때에는 말하는 것이 어린 아이와 같고 깨닫는 것이 어린 아이와 같고 생각하는 것이 어린 아이와 같다가 장성한 사람이 되어서는 어린 아이의 일을 버렸노라

13: 12 우리가 지금은 거울로 보는 것같이 희미하나 그 때에는 얼굴과 얼굴을 대하여 볼것이요 지금은 내가 부분적으로 아나 그 때에는 주께서 나를 아신 것같이 내가 온전히 알리라  

13: 13  그런즉 믿음, 소망, 사랑 이 세 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 중의 제일은 사랑이니라


아가페 사랑에 대한 설명을 끝내면서, 사도 바울은 다시 영적 은사의 주제로 돌아왔다.

그는, 13장 1 -3절에서, 영적 은사들은 사랑이 동기가 되어 사랑의 지시를 받아야 된다고 하였다.

이제 바울은 여기서 영적 은사의 일시적인 성격과 대조되는 사랑의 영속성을 강조하였다.

13장 8절  - 아가페 사랑은 그 근원이 영원한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바울은 말하기를 “사랑은 언제까지나 떨어지지 아니하되”라는 말로 사랑의 영원성을 강조하였다.  

따라서 우리가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사랑을 실천할 때, 우리는 영원한 일을 하고 있다.

더욱이, 우리가 이 세상에서 경험하며 실천하는 하나님의 사랑은, 완성되는 단계를 거치기는 하겠지만, 영원한 상태로 지속될 것이다.

사도 바울은 “예언도 폐하고 방언도 그치고 지식도 폐하리라”는 말로, 그들 세가지 일시적인 영적 은사들을 영원한 하나님의 사랑과 대조하였다.

하나님께서 자신을 계시하시는 일은 이 세상에서는 필수적인 것이지만,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면 필요 없게 될 것이다.

방언도 이 세상에서만 사용되는 영적 은사이다.

그것도 다가올 세상에서는 필요 없게 될 것이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지식의 은사도 하나님의 완전한 지식이 임할 때에는 필요 없게 될 것이다.  

13장 9 -10절 – 바울은 또한 “우리는 부분적으로 알고 부분적으로 예언하니 온전한 것이 올 때에는 부분적으로 하던 것이 폐하리라”는 말로, 예언의 은사와 지식의 은사에 따르는 또 다른 문제점을 지적하였다.

인간은 제한적인 존재이다.

그 같은 제한성으로 인하여, 하나님과 그가 행하시는 일들에 대한 인간의 지식과 인간이 전하며 가르치는 예언도 제한적이고 부분적일 수 밖에 없다.

온전한 것이 올 때에는” 제한적이고 부분적인 예언과 지식은 필요 없게 될 것이다.  

어떤 성경학자들은 “온전한 것이 올 때”라는 말이 영감을 받아 가록된 하나님의 말씀이 성경책으로 완성된 때를 가리키는 것으로 보고 있다.

그래서 특별한 지식과 예언의 은사가 더 이상 필요치 않게 되었다는 것이다.

성경은 하나님 자신에 대한 완전한 계시의 기록으로 볼 수 있기는 하지만 (히 1: 1 3), 고린도전서 13장 전체의 내용에 비추어볼 때 “온전한 것”이라는 말은 우리 모두가 하나님을 직접 대면할 때를 가리키는 것으로 생각된다.   

13장 11 -12절 – 바울은 추가로 두 가지의 비유를 들어 자신의 요점을 더욱 강조하였다.

먼저, 그는 영적 은사들의 부분적인 특성을 육체의 성장 과정에다 비유하였다.

아이는 항상 아이로 남아 있는 것이 아니라, 어른으로 성장하는 것이 일반적인 기대이다. 

여기서 “어린 아이와 같다”라는 말은 부정적인 뜻이 아니라, 미완성 혹은 미성숙을 의미하는 말이다.  

그래서 바울은 “장성한 사람이 되어서는 어린 아이의 일을 버렸노라”고 하였다.   

다음으로, 바울은 고린도 교회 성도들의 부분적으로 알고 있고 부분적으로 예언하고 있는 것을 거울에다 자신의 얼굴을 보는 것에다 비유하였다.

당시 고린도는 거울제조업으로 유명하였다.

당시의 거울은 또한 구리 같은 금속 판에다 광을 내서 만든 것으로, 오늘날의 거울처럼 투명하지 않아 얼굴이 밝고 선명하게 반사되지 않았다.   

이 세상에서 우리가 영적 은사들로 아는 것이 거울로 얼굴을 보는 같아서, 그리스도와 영적인 것들을 희미하게 보고 부분적으로만 알 고 있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시면, 우리는 그를 “얼굴과 얼굴을 대하여 볼 것”이다.  

또한 지금 우리는 그리스도를 “부분적으로 아나” 그 때에는 주께서 우리를 아시는 것같이 우리가 그를 “온전히” 알 것이다.

13장 13절  -모든 영적 은사들과 삶의 특성들을 살핀 후에, 바울은 말하기를 “믿음, 소망, 사랑, 이 세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 중의 제일은 사랑이라”고 하였다.

성경학자들은 “이 세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라는 말이 어떻게 해석되어야 하느냐에 대해 의견을 달리하고 있다.

기본적인 질문은 믿음과 소망이 사랑처럼 영원히 남아 있게 될 것이냐 이다. 

초대 교회 교부들 중 일부는 믿음과 소망도, 다른 영적 은사들과 마찬가지로, 하늘 나라에서는 더 이상 요구되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최근의 학자들은 믿음과 소망은 천국에서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완성된다고 한다.

그들은 아가페 사랑과 합하여 그리스도인의 온전한 세 가지 덕성이 될 것이다.

바울은 “그 중의 제일로” 사랑을 선발하였다.

이는 다른 두 가지는 사랑에 의존되고 있기 때문이다.

사랑은 덕성 이상의 것이 되고 있다.

믿음과 소망은 하나님께 대한 인간의 관계인데 반해, 사랑은 하나님 자신이시다.

우리가 아가페 사랑으로 하나님과 다른 사람들을 사랑할 때, 우리는 하나님의 속성에 참여하고 있는 것이다.


말씀을 나의 상황에 적용하기

  • 신자들이 영적 은사들을 사랑의 동기로 사용할 때 가장 큰 영향이 나타나게 된다. 
  • 신자들이 행하는 일에서는 다른 사람들을 위한 하나님의 사랑이 특징으로 나타나야 한다.
  • 신자들은, 아가페의 사랑처럼, 영원한 것들을 삶의 기반으로 삼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