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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백성을 섬기자 - 제 7 과 - 2018년 4월 15일 장년성경연구 - 고린도전서 12장 4 -12, 21 -26절

글쓴이 : 강호길 날짜 : 2018-04-10 (화) 03:54 조회 : 222

장년성경연구 교사용 교재


2018년 4월 15일 주일

                          


제 7과


하나님의 백성을 섬기자


학습구절:

고린도전서 12장 4 -12, 21 -26절


성경진리:

믿는 자들은 하나님과 그의 백성을 섬기도록 하나님으로부터 특별한 은사들을 받았다.      


주요교리: 성령  

성령님은 신자들의 품격을 키워주고, 신자들을 위로해 주며, 성도들이 교회를 통해 하나님을 섬기도록 영적 은사를 주신다.


암송구절: 고린도전서 12장 26절

만일 한 지체가 고통을 받으면 모든 지체가 함께 고통을 받고 한 지체가 영광을 얻으면 모든 지체가 함께 즐거워하느니라

If one part suffers, every part suffers with it; if one part is honored, every part rejoices with it.



시작하는 글:      


운동을 잘하는 사람을 생각해 보자.

그 다음으로 음악에 뛰어난 사람을 생각해 보자.

그 사람들은 어떻게 그같이 할 수 있을까?  

그들이 오랜 시간 동안 참고 견디어내며 열심히 연습하는 것에 초점을 맞춘다면, 그들을 차별화 시키는 것은 연습이라고 대답하기가 쉽다.

반면에, 그들이 갖고 태어난 천부적 재능에 초점을 맞춘다면, 우리는 아무리 노력을 하고 연습을 해도 그 같은 수준에 도달할 수 없다고 변명하기가 쉽다.



자기 분야에서 크게 성공한 사람들을 생각할 당신은  같은 성공의 요소들로 어떤 것들을 꼽을  있는가?  어떤 요인이 가장  역할을 한다고 생각하는가설명해 보라.


하나님께서는 그의 백성들에게 영적 은사를 주신다.

그리고 이들 영적 은사들은 여러 면에서 천부적 재능과 유사하다.

그러나 이들 영적 선물들은 몸으로 태어날 때 받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우리가 영적으로 다시 태어날 때 신자로서 받는 것이다.

사람들이 천부적 재능을 발견하여 개발하고 발달시켜야 하는 것처럼, 우리가 받는 영적 은사들도 그같이 해야 한다.

바울은, 고린도전서 12장에서, 고린도교회 성도들에게 그들 각자가 하나님으로부터 특별한 선물, 즉 영적 은사를 받은 사실을 상기시켜 주었다.

이들 선물들은 하나님과 그의 백성들을 섬기는 것이 목적이다.

여기서 바울이 가르친 원리들은 오늘날 신자들에게 지속적인 중요성을 지닌다.


본문배경설명


고린도전서 12장 1 -31절까지

주의 만찬에 대한 지난 주의 공과는 고린도 교인들이 편지로 질문한 것들에 대해 바울이 답변한 것들 중의 하나였다.

고린도전서 7장 1절의 “너희가 쓴 문제에 대해여 말하면”라는 말과 7장 25절의 “처녀에 대하여는” 이라는 말 그리고 8장 1절의 “우상의 제물에 대하여는”이란 말 등은 그 같은 사실을 밝혀주는 뜻이 되고 있다.

이제 12장은 “형제들아 신령한 것(성령의 선물들)에 대하여는”이란 말로 시작하고 있다.  고린도 전서 12장부터 14 장까지에 나오는 바울 사도의 가르침은 그가 11장에서 시작한 공중 예배의 일반적인 주제들을 계속 다루고 있다.

이들 세 장(12장과 13장 그리고 14장)을 간략하게 살펴만 보아도, 바울의 핵심 관심사는 이들 영적 은사들을 적절하고도 바르게 사용하는 것이 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12장은 영적 은사의 다양성에 초점을 맞추고 있고, 다음 주에 학습하게 될 13장은 영적 은사들을 사용할 때의 사랑의 역할을 강조하고 있으며, 14장은 방언과 예언의 특별한 은사를 중점적으로 다루고 있다.

12장 1절부터 11절까지에서, 바울은 은사의 다양성을 주장하였다.

그러면서 그는 아홉 가지의 은사들을 열거하였다.

그런 다음, 12절부터 31절까지에서, 바울은 그들 은사들이 한 지역 교회 내에서 그리스도의 한 몸을 이루고 있음을 주장하며, 그것들을 인체의 여러 가지 다른 기관들과 지체들에다 비교 하였다.

이 가르침을 통한 바울의 주요 관심사는 고린도교회 신자들이 그들의 교회에서 하나님이 시작하신 사역들을 완수하기 위해 은사들을 받은 사실과 그들이 왕국 사역을 위해 하나님께서 주신 은사들을 사용해야 되는 것을 깨닫게 되는 것이다.


학습구절 연구: 


다양한 성령의 은사들  (고린도전서 12 4 -6)

12: 4    은사는 여러 가지나 성령은 같고       

12: 5  직분은 여러 가지나 주는 같으며

12: 6  또 사역은 여러 가지나 모든 것을 모든 사람 가운데서 이루시는 하나님은 같으니


고린도 신자들은 바울에게 영적 은사의 중요성과 기능에 관해 질문했을 수 있다 (12: 1).

어떻든지, 바울은 교회가 성령의 은사들에 대해 더 많은 가르침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12장 4-6절 - 12장에서 바울의 주요 문제점은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는 다양한 은사들을 받은 지체들로 구성된 한 몸이라는 사실이다.

교회가 다양한 지체들로 구성된 한 몸이라는 이 주제는 이 장의 후반부에서 좀더 자세히 설명되고 있기는 하지만, 바울은 서론인 4 ~ 6 절에서 자신의 주장을 강화하기 위해 먼저 넓고도 뜻 깊은 신학 적 토대를 놓고 있다.

고린도 교회 성도들이 영적으로 하나가 되고 있는 사실은 "예수는 주님이시다”는 공통된 고백에 근거를 두고 있다"(12: 13).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여러 가지 은사’와 ‘여러 가지 직분’과 ‘여러 가지 사역’을 통하여 다양성을 나타낸다.

성령님은 믿는 자들에게 다양한 은사를 주시며, 그들 은사들은 교회의 다양한 사역을 통해 그리고 하나님의 백성을 준비시키고 세우는 광범위한 활동을 통해 나타난다.

성령님은 영적 은사를 믿는 자들 모두에게 주시지만, 믿는 자들 모두가 똑 같은 은사를 받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믿는 자들은 모두 ‘같은 성령님’과 ‘같은 주님’ 그리고 ‘같은 하나님’을 갖고 있다.

다양성 속에서의 하나’라는 바울의 개념은 ‘삼위일체 하나님’이라는 더 깊은 신학적 실재를 반영하는 일이 되고 있다.

바울은 이들 구절들에서 삼위일체 하나님을 확실하게 설명하려고 하는 것이 아니고, 고린도 교회 성도들이 자신들의 영적 정체성을 이해하도록 돕는 방법과 필수적인 요소로 삼위일체 하나님을 밝혀주고 확언하였다.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님이 본질적으로 하나인 것처럼, 믿는 자들도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가 된다.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님이 삼위일체 하나님 안에서 독특한 역할을 가진 서로 다르면서도 보완적인 위격(位格)들이 되고 있는 것처럼, 믿는 자들도 그리스도의 한 몸 안에서 다양한 역할을 가진 다양하면서도 보완적인 지체들이 되고 있다.    

후에 사도 바울은 말하기를, “이 모든 일은 한 성령이 행하사 그의 뜻대로 각 사람에게 나누어 주시는 것이니라”고 하였다 (12: 11).   

그러니까, 영적 은사가 어떻게 구성되어 있든지 간에, 그 모든 은사들을 주시는 분은 같은 성령님이시다.

그 같은 이유로 인해, 우리는 이들 은사들을 “성령의 은사”로 부르고 있다.



성령의 은사는 영적으로 선택 받은 특별한 계층의 지도자들에게만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성령님은 믿는 자들 모두에게 성령의 은사를 주시되, 그의 뜻에 따라 각기 다른 은사를 주신다. 

그리고 믿는 자들은 그 은사들을 여러 가지 다른 직분과 사역에 사용해야 한다.


바울은 “이제 하나님이 그 원하시는 대로 지체를 각각 몸에 두셨으니”라는 말로 (12: 18), 하나님께서 적합하다고 생각하시는 대로 그의 계획과 목적에 따라 이들 다양한 영적 은사들을 신자들에게 나누어 주신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밝혔다.   

은사”로 번역된 헬라어 단어는 카리스마(charisma)로, 그것은 일반적으로 "은혜"로 번역된 ‘카리스’(charis)라는 신약 성경 용어와 밀접하게 관계되고 있다.

바꾸어 말하면, 성령의 은사는 하나님의 은혜의 결과가 되고 있다.


구체적인 성령의 은사들  (고린도전서 12 7 -10)

12: 7  각 사람에게 성령을 나타내심은 유익하게 하려 하심이라

12: 8  어떤 사람에게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지혜의 말씀을, 어떤 사람에게는 같은 성령을  따라 지식의 말씀을,

12: 9    다른 사람에게는 같은 성령으로 믿음을, 어떤 사람에게는 한 성령으로 병 고치는 은사를,

12: 10 어떤 사람에게는 능력 행함을, 어떤 사람에게는 예언함을, 어떤 사람들에게는 영들 분별함을, 다른 사람들에게는 각종 방언 말함을, 어떤 사람에게는 방언들 통역함을 주시나니


영적 은사의 근원과 목적을 밝힌 후, 바울은 성령께서 신자들에게 나누어 주시는 9 가지의 다른 은사들을 열거하였다.

이 목록은 완전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대표적인 예로 들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바울은 영적인 은사의 다양성과 한 분이신 참 하나님께서 그 모든 은사를 주신다는 사실, 그리고 영적 은사 뒤에 담겨있는 통일 된 목적을 강조하고 싶었다.

12장 7절  -실제로는 성령님 자신이 하나님께서 신자들 각자에게 주신 귀중한 선물이다.

우리 속에 거하시는 성령님은 우리가 거듭 태어났다는 증거이다 (롬 8: 9).

여기서 바울은 “각 사람에게 성령을 나타내심은”이라는 말로, 성령님의 나타나심에 대해 말하고 있는데, 그것은 성령님께서 지금 우리 안에서 그리고 우리를 위해 행하시고 있는 것을 가리키는 말이다.

성령님이 그같이 행하시는 목적은 “유익하게 하려 하심”이 되고 있다.

 12장 8 -10절  - 바울이 이들 구절에서 열거한 9 가지 영적 은사의 목록은 영적 은사들을 모두 포함시킨 것이 아니라, 대표적인 것들을 예로 든 것으로 생각해야 한다.

이 목록은 로마서 12장 6절부터 8절까지에 나오는 일곱 가지 은사 목록과 비교하며 대조해 볼 수 있다.

또한 에베소서 4장 11절과 베드로전서 4장 9 -11절에 열거된 은사들과도 비교해 보면 도움이 될 수 있다.

바울은 이들 아홉 가지 은사들을 정의하거나 자세히 설명하지 않았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들 아홉 가지 은사들에 대한 적절한 이해와 결론을 내리기 위해서는 다른 성경구절들에 의존할 수 밖에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경학자들은 이들 은사들 중에 일부는 정확하게 무엇을 뜻하고 있는지에 대해 의견을 달리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들 모두가 동의하는 것은 신자들 모두가 한 가지 혹은 그 이상의 은사를 받았다는 사실이다.



바울이 이들 구절에서 열거한 9 가지 영적 은사의 목록은 영적 은사들을 모두 포함시킨 것이 아니라, 대표적인 것들을 예로 든 것으로 생각해야 한다.


지혜의 말씀:  바울은 이 서신의 앞부분에서 (1: 18 -31), 세상의 지혜를 강하게 비난하였다.

그러면서 그는 말하기를, 참된 지혜, 즉 “하나님의 지혜”는 십자가에 달리 신 그리스도에 관한 메시지에서 찾을 수 있다고 하였다.

따라서 지혜의 말씀은 복음을 특정한 상황에 어떻게 적용해야 되는지에 대한 말씀, 즉 지혜로운 결정을 내리거나 올바른 행동 방침을 선택하는 것과 관계되고 있다.

잠언은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혜의 근본이요 거룩한 자를 아는 것이 명철이니라”고 정의하고 있다 (잠 9: 10).  

어떤 성경학자들은 지혜의 말씀을 초자연적인 계시에 의해 받는 것으로 보고 있는데 반해, 다른 성경학자들은 성경말씀의 묵상과 기도생활 그리고 신앙생활을 통하여 자연적으로 얻는 것으로 보고 있다.

지식의 말씀: 성경전체를 통하여, 지식은 지혜와 함께 쓰이는 동반관계의 용어가 되고 있다.

성경 학자들은 지식의 말씀의 은사와 지혜의 말씀의 은사가 어떻게 다른지에 대해 모두 동의하지 않고 있다.

그러나, 우리가 유의할 점은 바울이 8장에서 자신의 지식을 자랑하는 것과 지식이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에 장애물이 되게 하는 것을 경고한 것이다 (8: 1 -2, 7, 10-11).

그는 말하기를, “지식은 교만하게 하며 사랑은 덕을 세우나니”라고 하였다.

그는, 13 장에서는, 신자들이 지식을 사랑으로 사용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13: 2, 8).

그러므로, 지식의 말씀의 은사는 하나님의 계시와 지혜를 다른 사람들에게 그리고 일상 생활에 겸손하게 전하며 적용하는 것을 가리킬 수 있다.

믿음의 은사: 바울은 9절에서, “다른 사람에게는 믿음을, 어떤 사람에게는 한 성령으로 병 고치는 은사를”이라는 말로, 두 가지 영적 은사를 추가로 밝혔다.

여기에서 언급되고 있는 “믿음”은 신자들 모두가 죄를 회개하고 예수님을 구세주로 고백했을 때 나타낸 “구원의 믿음”과 다른 것으로, 그 이상의 것이 되고 있다.

이 믿음은 신자들이 특별한 목적을 이루도록 성령님께서 주시는 특별한 은사이다.

예수님께서 한번은 제자들에게 가르치시기를, “만일 너희가 믿음이 있고 의심하지 않으면,” 그리고 그 믿음으로 “이 산더러 들려 바다에 던져지라” 하여도 그렇게 될 것이라고 하셨다 (마 21: 21).

그것은 “믿음의 은사”를 가리키는 말씀이다. 

야고보는 신자들이 하나님께 기도할 때, “오직 믿음으로 구하고 조금도 의심하지 말라”고 하였다 (약 1: 5 -6).

영국의 유명한 침례교 선교사로 인도에 가서 선교했던 윌리엄 캐리는 이런 말을 하였다. 

“하나님으로부터 큰 일들을 기대하십시오 그리고 하나님을 위해 큰 일들을 행하기를 힘쓰십시오.”

우리는 그의 말에 믿음의 은사가 내포되어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치유의 은사: 예수님은 복음을 전파하는 사역뿐 아니라, 여러 병자들을 고치신 치유의 사역도 많이 행하셨다 (막 5: 1 -17; 요 9: 1 -7; 눅 17: 11 -19; 요 11: 38 -44 참조).

예수님은 또한 제자들에게도 병을 고치는 권세와 능력도 주셔서 행하게 하셨다 (행 3: 6; 14: 8 -10; 19: 11 -12; 28: 7 -9).

그러나 제자들 모두가 기적적인 치유의 은사를 받아 행한 것은 아니었다.

그 같은 기적적인 치유에는 두 가지 주요 목적이 있었다.

하나는 치유 받는 사람의 고통을 덜어주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복음을 전하는 자가 하나님의 인정을 받는 자가 됨을 증명하는 방법이 되었다.

능력 행함의 은사: 여기서 말하는 능력은 초자연적인 힘을 나타내는 것을 가리키고 있다.

그러므로, 치유의 은사도 능력 행함의 은사에 포함될 수 있다.

복음서에서 예수님은 자신이 메시야이신 것을 나타내시기 위해 놀라운 기적들을 행하셨다.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오 천명을 먹이신 일과 (요 6: 9 -11) 갈릴리 바다 위로 걸으신 일(마 14: 24 -27) 등은 좋은 예이다.

사도들은 사도 행전에 기록 된 대로 능력 행함의 은사를 계속하였다 (8: 13, 14: 8 -10, 28: 1 -6).

성경학자들은 기독교 역사를 통틀어서 오늘 날까지 기적을 행하는 사역이 계속 되고 있는지에 대해 의견을 달라하고 있다.

예언의 은사: 바울은 “예언”을 또 다른 은사로 밝혔다.  

바울은 예언의 은사를 가장 귀중하게 여겼다 (고전 14: 1 -5).

예언“이라는 말에는 장차 일어날 일에 대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것(foretelling)과 교리적인 문제에 대한 하나님의 가르침을 전하는 것(forth-telling)의 두 가지가 포함되고 있다.

오늘날 예언자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바르게 해석하여 믿지 않는 사람들과 믿는 사람들에게 가르치며 전하기를 힘쓰고 있다.

바울은 예언의 은사에 대해 말하기를, “예언하는 자는 사람에게 말하여 덕을 세우며 권면하며 위로하는 것이요”라고 하였다 (고전 14: 3).

영들 분별하는 은사: 성경역사를 통해 거짓 선지자들은 심각한 문제가 되어오고 있다.

예수님은 “거짓 선지자들을 삼가라”고 하셨다 (마 7: 15).

사도 요한은 성도들을 “사랑하는 자”들로 부르며, “많은 거짓 선지자가” 세상에 나왔으므로 “영을 다 믿지 말고 오직 영들이 하나님께 속하였나 분별하라”고 하였다 (요일 4: 1).

모세는 참 선지자들을 분별하는 문제에 대해 지시해 주었다 (신 18 : 20 22).

방언의 은사(들):  방언의 은사는 바울 시대와 마찬가지로 오늘날 우리 시대에도 논란의 대상이 되어 오고 있다.

그가 고린도전서 14장의 대부분을 방언에 대해 언급하고 있는 것을 보면 바울 당시에 그것이 얼마나 심각한 문제가 되었던 지를 알 수 있다.

바울은 오순절 날에 있었던 것처럼 (행 2: 1 -8),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언어를 염두에 두고 있었는가?

아니면, “천사의 말”처럼(고전 13: 1), 황홀경에 빠져서 하는 말인가?

바울이 나중에 주장한 두 가지 점에 유의하는 것이 중요하다.

다 방언을 말하는 자”가 아니다 (고전 12: 30).

방언의 은사를 받은 자들이 방언을 말할 때는 언제 그리고 어떻게 말해야 하는지에 대해 자제력과 질서를 나타내야 한다 (고전 14: 27 -28).   

방언 통역의 은사: 고린도 교회의 어떤 사람들은 방언으로 한 말을 통역할 수 있는 하나님께서 주신 능력을 갖고 있었음이 분명하다.

방언으로 표현된 그 말은 모든 사람들이 이해하지 못하였다.

그들 방언들은 방언 통역의 은사를 받은 사람들만이 이해할 수 있었다.


목적이 있는 성령의 은사들  (고린도전서 12 11 -12, 21 -26)

12: 11 이 모든 일은 같은 한 성령이 행하사 그의 뜻대로 각 사람에게 나누어 주시는 것이니라

12: 12  몸은 하나인데 많은 지체가 있고 몸의 지체가 많으나 한 몸임과 같이 그리스도도 그러하니라

12: 21  눈이 손더러 내가 너를 쓸 데가 없다 하거나 또한 머리가 발더러 내가 너를 쓸 데가 없다 하지 못하리라

12: 22  그뿐 아니라 더 약하게 보이는 몸의 지체가 도리어 요긴하고

12: 23  우리가 몸의 덜 귀히 여기는 그것들을 더욱 귀한 것들로 입혀 주며 우리의 아름답지 못한 지체는 더욱 아름다운 것을 얻느니라 그런즉

12: 24  우리의 아름다운 지체는 그럴 필요가 없느니라 오직 하나님이 몸을 고르게 하여 부족한 지체에게 귀중함을 더하사

12: 25  몸 가운데서 분쟁이 없고 오직 여러 지체가 서로 같이 돌보게 하셨느니라

12: 26  만일 한 지체가 고통을 받으면 모든 지체가 함께 고통을 받고 한 지체가 영광을 얻으면 모든 지체가 함께 즐거워하느니라


바울은 영적 은사를 받아 교회에서 섬기는 신자들의 중요성을 강조하기 위해 몸의 비유를 들어 설명하였다.

성령님은 각 개 교회에서 은사들을 그의 목적과 계획에 따라 전략적으로 나누어 주심으로 교회를 튼튼하고 강하게 해 주시고 사역을 효과적으로 하게해 주신다.

12장 11 -12절  - 바울은 다양하게 나타나고 있는 성령의 은사들을 간단한 목록으로 열거한 후에, 그가 일반적으로 관찰한 세 가지 요소를 본 학습구절에서 강조하고 있다.

  • 첫째로, 그는 “모든 일은 같은 한 성령이 행하사”라는 말로, 모든 영적 은사들이 “같은 한 성령님으로부터 오는 사실”을 강조하였다.

성령님께서 영적 은사들을 주셨다면, 그것들은 모두 중요하다.

이는 성령님은 항상 모든 일을 목적과 계획을 가지고 행하시기 때문이다.

  • 둘째로, 사도 바울은 “각 사람에게”라는 말로 교회의 신자들은 모두가 한 가지 혹은 그 이상의 은사들을 받은 사실을 강조하였다.  
  • , 각 신자는 교회 생활에서 맡아 할 사역이 있다.
  • 셋째로, “그의 뜻대로”라는 말에서 나타나고 있듯이, 성령님은 자기가 원하시는 대로 주권적으로 은사들을 나누어 주신다.

우리가 천부적 재능을 선택하지 않는 것과 똑 마찬가지로, 우리는 자신의 영적 은사를 선택하지 않는다.


  • , 성령의 어떤 특별한 은사(들)를 받았거나 받지 않았다고 해서, 신자들이 우월감이나 열등감을 느끼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

사도 바울은 교회를 인간의 몸에다 비겼다.

그는 두 가지 유사점을 주장함으로 시작하였다.

  • , “하나”가 되고 있다는 점이다.  

인간의 몸은 많은 지체를 가지고 있지만, “하나”로 “한 몸”이다.

바울은 주장하기를, 인간의 몸이 하나인 것처럼, “그리스도도 그러하니라”고 하였다.

  • , ‘여러 지체로 되어 있는 점’이다.  

인간의 몸이 한 몸과 많은 지체로 되어 있는 것처럼,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도 항상 일치와 다양성이 있다.


우리가 천부적 재능을 선택하지 않는 것과 똑같이, 신자들도 자신들의 영적 은사를 선택하지 않는다.

  1.  - 15절부터 17절에서, 바울은 발과 손 그리고 귀와 눈의 역할과 기능을 특별히 언급하였다.

예를 들어, “눈”이 “손”을 보고 손이 없어도 아주 잘 작동 할 수 있다고 말하는 것은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눈과 손은 하는 일이 서로 다르다.

건강한 몸으로는, 그들은 함께 일한다.

  • , “머리가 발더러” ‘너는 내게 팔요 없다’고 말할 수 없다.

우리는 현대판 만화가가 웃기게 할 목적으로 발이 없이도 잘 나가는 머리를 그리고 있는 모습을 상상할 수 있다.

  • , 몸의 지체들이 서로 협동하지 않으면 끔찍한 비극이 되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그것은 비극적인 일이다.

  1. – 바울은 “더 약하게” 보이며 종종 생각하지 않고 있는 지체들에게 초점을 맞춤으로써 토론의 범의를 넓혔다.

그는 몸의 어떤 지체들을 염두에 두고 있었는지를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았다.

그것이 어떤 것이든 간에, 인간의 인체구조를 이해하면, 그것은 꼭 필요한 것이다.

그것은 교회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약하거나 중요하지 않게 보이는 교인들은 교회에서 꼭 필요한 존재들이다.

그래서 바울은 “더 약하게 보이는 몸의 지체가 도리어 요긴하(다)”고 하였다.

그러므로 교회내의 어느 누구도 다른 교인을 무시하거나 하대할 권리가 없다.

바울은 또한 몸의 어느 지체들이 “덜 귀히 여기는 (것들)”이며 “아름답지 못한 지체”들인지를 명시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는 곧장 말하기를, 우리는 덜 명예스러운 것으로 여겨지는 지체들에게는 더욱 풍성한 명예를 덧입히고 볼품 없는 지체들은 더욱더 아름답게 꾸며준다고 하였다.

  • , 그는 우리가 손가락에 반지를 끼거나 멋진 옷으로 몸에 걸치는 것을 생각했을 수 있다.

그 목적은 더 아름답게 만드는 것이 되고 있다.

  1.  - 바울은 “몸의 덜 귀히 여기는 (지체)”와 “아름답지 못한 지체”들에 대한 이야기로부터 “아름다운 지체”에 대한 이야기로 초점을 바꾸어 그들을 대조시켰다.

아름다운 지체들은 옷을 입히거나 아름답게 꾸며줄 필요가 없다.

바울은 여기에서도 명시하지 않고 있을지라도, 우리는 그 같은 지체들로 얼굴이나 손을 생각할 수 있다.

하나님은 덜 귀히 여기거나 아름답지 못한 지체들을 의복이나 장식으로 더욱 귀하고 아름답게 보이도록 만들어 주셨다.

바울은 말하기를, 하나님은 그같이 몸을 골고루 짜 맞추셔서 모자라는 지체에게 귀중함을 더해 주셨다고 하였다.

하나님께서 그같이 하신 것은 고린도 교회가 “몸 가운데 분쟁이 없고, 오직 여러 지체가 서로 같이 돌보게” 하기 위한 것이다.

하나님은 교회가 삼위일체 하나님처럼 하나가 되기를 원하시며 바라신다 (요 17: 20 -23 참조).

그런데 고린도 교회 신자들은 교회 내에서 갖가지 방법으로 분쟁을 일으키는 죄를 지었다.

교회가 진정으로 하나가 되려면, 그리스도께서 하신 것처럼, 신자들이 서로 사랑하며 같이 돌보아야 한다.

그리스도인 각자는, 전반적으로는 그리스도께 그리고 개별적으로는 다른 자들에게, 연결되어 있다.

망치로 엄지 손가락을 치면, 어떻게 느껴지는지 생각해 본 적이 있는가?

엄지 손가락만 망치에 맞았다고 해서 엄지 손만 아픈 것이 아니다.

그 통증은 온 몸에 퍼진다.

그래서 우리는 아프면 보통 몸이 병들었다고 한다.

또 다른 예를 들어보자.

샴푸를 사용하여 머리를 감으면, 온 몸이 가뿐해 지며 기분이 상쾌해 진다.  

몸의 모든 지체들은 서로 의존되어 있다.

바울은 그 같은 현상을 “만일 한 지체가 고통을 받으면 모든 지체가 고통을 받고 한 지체가 영광을 얻으면 모든 지체가 함께 즐거워하느니라”고 표현하였다.

교회도 마찬가지이다.

그리스도인 각자는, 전반적으로는 그리스도께 그리고 개별적으로는 다른 신자들에게, 연결되어 있다.


말씀을 나의 상황에 적용하기

·  모든 신자들은 교회의 사역으로 하나님께서 맡겨주신 역할을 성취하도록 은사를 받는다.   
· 신자들은 성령님께서 그의 뜻에 따라 나누어 주시는 특정한 은사들을 받는다.
· 신자들이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사들을 하나님의 왕국의 일에다 사용할 때 교회는 더 건강하고 튼튼해 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