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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에 대한 확신 - 제 5과 - 2018년 4월 1일 장년성경연구 - 요한복음 20장 3 -9절; 고린도전서 15장 20 -28절

글쓴이 : 강호길 날짜 : 2018-03-25 (일) 03:21 조회 : 203

장년성경연구 교사용 교재

201841일 주일

  

5

 

부활에 대한 확신          

 

학습구절:

요한복음 203 -9; 고린도전서 1520 -28


성경진리:

믿는 자들은 부활하신 주님을 통해 이 세상에서의 삶은 물론 다가 올 저 세상에서의 삶에 대해 확신을 가질 수 있다.   


주요교리:천국

천국이 완전히 임하는 시기는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과 이 시대의 종말의 때가 된다.  


암송구절: 고린도전서 1520

그러나 이제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사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도다.

But Christ has indeed been raised from the dead, the first fruits of those who have fallen asleep.

 

시작하는 글:       

21세기의 삶은 안전한 것이 아무 것도 없다는 것이 입증되고 있다.

오늘 세계 전역에서 일어나고 있는 극단주의자들의 공격, 점점 악해지며 치열해지고 있는 폭력사태들 인종간의 갈등 등은 많은 사람들을 불안과 위험에 빠뜨리고 있다.

많은 사람들은 역사의 다른 어느 때보다 발전한 시대에 살고 있는 것으로 인식하고 있지만, 그런데도 우리는 또한 그같이 발전된 것들을 파괴적인 목적으로 사용하는 방법을 찾는데 주력하는 것처럼 보인다.

당신은 10 전에 보다 지금이 안전하다고 혹은 안전하다고 느끼고 있는가?  

사람의 안전감은 사람의 신뢰 심과 어떤 관계가 있다고 보는가?

 

어떤 면에서, 1 세기 당시의 삶은, 첨단 기술을 가지고 있지 않다 뿐이지, 오늘날 우리 자신의 것과 같았다.

사회의 다양한 여러 집단들은 서로를 신뢰하지 않았다.

로마 군대는 종종 백성들을 잔인하게 굴었다.

공의는 부패하고 부정한 황제와 총독들에 의해 시행되었다.  

1 세기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안전하고도 확실한 삶이 보장되어 있지 않았다.

누구든지 정말로 확신 있는 것은 별로 없었다.

바꾸어 말하면, 다른 사람들을 이용하며 착취하는 인간성은 놀랍게도 변치 않고 있는 것이다.

바울은 삶은 불공평하다는 것과 세상의 어떤 것도 확실하게 보장할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바울이 자신의 모든 확신과 신뢰를 예수님의 재림 사건에다 것은 같은 이유 때문이었다.

그리스도의 부활 사건에서, 바울은 다가 세상에서의 삶은 물론 세상에서의 삶을 위한 확실한 기초를 발견하였다.

바울은 바로 소망을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이 장차 부활할 것이라는 말로 표현하였다.

특히 그는 고린도에 있는 신자들이 예수님의 부활과 그를 믿는 모든 신자들이 얻게 부활 사이에 중요한 연관성이 있는 것을 이해하기를 바랬다.

 

본문배경설명


요한복음 19 -20; 고린도전서 151 -58절까지

부활사건에 대한 요한의 기록은(20: 1 -10) 같은 사건에 대한 사복음서의 기록들 중의 하나이다 (28: 1 -10; 16: 1 -8; 24: 1 -12).

이들 네 복음서들은 많은 공통점들을 갖고 있으면서도, 그들 사이에는 흥미 있는 차이점들이 있다.

이는 복음서 저자들이 각각 자신들이 대상으로 삼고 있는 독자들을 위해 어떤 특별한 내용이나 사건들을 포함시키거나 제외 시킴으로, 특정한 면들을 강조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복음서 저자들은 모두 예수님의 생애와 죽음과 부활에 대한 기록들을 포함시킴으로, 복음의 증거를 강화시키고 있다.

빈 무덤과 부활하신 예수님은 우리의 믿음이 세워지는 기초이다.

단언컨대, 고린도전서 15장은 신약성경에서 부활에 대한 가장 중요한 신학적 해석이  되고 있는데, 그것은 신자들에게 예수님의 부활의 진실과 그리스도께 속한 사람들을 위한 혜택들을 상기시켜 주고 있다.

예수님의 부활은 우리 신앙의 근거가 되고, 우리 사명의 견고한 토대가 되며, 장차 누리게 될 삶의 소망의 기초가 된다.

 

학습구절 연구:     


부활을 믿다  (요한복음 20 3 -9)

20: 3  베드로와 다른 제자가 나가서 무덤으로 갈새

20: 4     둘이 같이 달음질하더니 다른 제자가 베드로보다 빨리 달려가서 먼저 무덤에 이르러

20: 5    구부려 세마포 놓인 것을 보았으나 들어가지는 아니하였더니

20: 6    시몬 베드로는 따라와서 무덤에 들어가보니 세마포가 놓였고

20: 7    머리를 쌓던 수건은 세마포와 함께 놓이지 않고 곳에 쌌던 그대로 놓여 있더라

20: 8    때에야 무덤에 먼저 갔던 다른 제자도 들어가 보고 믿더라

20: 9    (그들은 성경에 그가 죽은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야 하리라 하신 말씀을 아직 알지 못하더라)

 203 -4우리가 본문에서 금방 읽는 이야기는 그 다른 제자로 불려지고 있는 요한과  베드로가 예수님의 무덤으로 가고 있는 모습이 되고 있다.   

4 복음서의 저자인 요한은, 그의 복음서 전체를 통해 보통 자신을 3인칭으로 불렀다.

여기서 그는 자신을 다른 제자 불렀다.

제자는 있는 무덤에 빨리 도착하기 위하여 같이달음질하였고, “다른 제자가 베드로보다 빨리 달려가서 먼저 무덤에이르렀다.

막달라 마리아 그들에게 달려와서 사람들이 주님을 무덤에서 가져다가 어디 두었는지 우리가 알지 못하겠다 소식을 전해 주었다 ( 20: 2).

그것은 그냥 넘길 없는 놀랍고도 불길한 것이었다.

안식일이 지난 , 막달라 마리아와 다른 여인들 명이 예수님의 시체에 향품을 바르려고 무덤을 찾아갔다가, 무덤 입구를 막고 있던 돌이 옮겨진 것을 발견하였다.

처음에, 여인들은 누가 자기들을 위하여 무덤문에서 돌을 굴려내준 것으로 생각하였다 (16: 3 -4).

그러나, 무덤이 비어있는 것을 알게 되었을 , 마리아는 사람들이 예수님의 시체를 가져갔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당황해 하며 혼란에 빠졌다.

그러면서도 이를 즉시 제자들에게 알려야 한다는 생각을 하였다.

다른 복음서들은 천사가 나타나 일어난 일에 관해, 예수님이 말씀하셨던 대로 다시 살아나셨다는 사실을 마리아와 다른 여인들에게 알려준 것을 기록하고 있다 ( 28: 5 -7; 16: 6 -7; 24: 5 -8).

그러나, 소식을 전해 들은 제자들에게 여인들의 말은 허탄한듯이들렸다 ( 24: 11).

베드로와 요한을 제외하고는, 사도들도 말을 믿지 않았다.

205 -7 - 마리아의 말을 들은 요한과 베드로는 너무나 놀란 나머지 자신들이 직접 확인해 보기 위해 즉시 무덤으로 달려간 것이 분명하다.

먼저 도착한 요한은 몸을 굽혀서 입구가 낮은 돌 무덤 안을 들여다 보았으나 들어가지는 않았다.

그는 세마포가 놓여있는 것을 보았는데, 그때는 무덤 안에 있는 세마포가 보일 만큼 아침 햇살이 밝았다.

하지만, 요한을 뒤쫓아 조금 늦게 달려 온 베드로는 무덤에 다다르자, 곧장 안으로 들어갔다.

그는 예수님의 시체가 놓여있던 곳으로 보이는 위치에 세마포가 놓여있는 것을 보았다.

여기서 세마포는 중요한 물적 증거가 되고 있다.  

그런데, 그 세마포에는 무엇인가 독특하면서도 특이한 데가 있었다.

세마포가 놓여 있는데, “머리를 쌌던 수건세마포와 함께놓여있지 않고딴 곳에 쌌던 대로가지런히 접혀 있었다.  

요한이 시체에 입혔던 수의(壽衣)세마포를 중요하게 취급하여 자세하게 기록한 이유의 하나는 시체가 도적 맞았거나 다른 곳으로 옮겨지지 않은 것을 입증하려는 목적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만일 시체가 도적 맞았거나 다른 곳으로 옮겨졌다면, 수의는 시체와 함께 없어졌거나 바닥에 마구 널려져 있었을 것이 분명했다.

가능하게 보이는 것은 부활하신 예수님이 세마포를 몸에서 벗어서 가지런히 접어 놓으신 후 그 자리를 떠나셨다는 것이다.

208 -9  - 그제서야 무덤에 먼저 도착했던 다른 제자도 베드로를 따라 무덤에 들어갔다.

개의 단계적인 동사로, 요한은 변화시키는 복음의 본질을 밝혀주었다.

그는  들어가보고 믿(었다.)

요한이 무덤만을 근거로 예수님의 부활을 믿었다는 사실은 중요하다.

복음서의 기록에서 예수님의 부활을 확신하게 대부분의 사람들은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직접 후에야 그같이 하였다.

제자인 도마는 부활하신 예수님을 직접 보고 그의 몸의 상처를 만져보지 않고는 그의 부활을 믿지 않겠다고 했었다.

부활하신 주님이 후에 제자들에게 다시 찾아오셨을 , 그는 특별히 도마에게 손을 내밀어 옆구리에 넣어보라 그리하여 믿음 없는 자가 되지 말고 믿는 자가 되라 하셨다 ( 20: 27).

그리고 이어서 말씀하시기를, “너를나를 본고로 믿느냐 보지 못하고 믿는 자들은 복되도다 하셨다 ( 20: 29).

이것이 바로 오늘 사람들이 나타내야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이 되고 있다.

흥미로운 것은 9절에 기록된 대로, “그들은 성경에 그가(예수님이) 죽은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야 하리라 하신 말씀을 아직 알지 못하더라 요한의 해석이 되고 있다.

확실히, 베드로와 요한 그리고 다른 제자들은, 복음서들이 분명하게 밝히고 있듯이,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고 부활하실 것이라고 예언하시는 것을 들었다.

그러나 성경에 기록된 말씀을 이해하는 문제에 있어서는, 그것은 그리스도에 대해 기록되어 있고, 안에서 말씀들이 성취된 것을 제자들이 이해하도록 나중에 부활하신 주님이 그들의 눈과 마음을 열어 주셔서 성경말씀을 깨닫게 주셨을 일어난 일이 되고 있다 (24: 25-27, 44-48).

후에 사도 바울은 성경대로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장사 지낸 되셨다가 성경대로 사흘 만에 다시 살아 ( 사실)” 강조하였다 (고린도 전서15 : 3 ~ 4).

제자들은 구약성경에 가리워져 있는 메시아에 대한 예언의 말씀에 부합되도록 부활 장면을 꾸미려고 하지 않았다.

오히려, 부활의 사건은 일어 났고, 무덤이 비어있는 것을 제자들은 믿었으며, 단지 나중에 그가죽은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야 하리라하신 성경말씀을 이해하였다.

 

보는 것과 믿는 사이의 관계는 무엇인가? 

어떻게 사람이 완전하게 이해하지 못하고도 예수님을 믿을 있는가?

 

부활사건을통해 얻는 (고린도전서1520 -22)

15: 20    그러나 이제 그리스도께서 죽은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사 잠자는 자들의 열매가 되셨도다

15: 21   사망이 사람으로 말미암았으니 죽은 자의 부활도 사람으로 말미암는 도다

15: 22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은 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삶을 얻으리라

1520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 사건에는 엄청난 사실들이 함축되어 있다.

그러나 그같이 함축되어있는 사실들은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셨다는 사실과 현실에 근거되고 있다.

바울은 같은 사실을 강조하기 위하여, 15 12 -19절에서  그리스도의 부활이 실제로 일어나지 않았을 경우에 생길 끔찍한 결과를 먼저 언급하였다.

그리스도께서 만일 다시 살아나지 못하셨으면,” 우리의 전파하는것도 헛것이요 우리의 믿음도헛것이며 (15: 14), 우리는 여전히 가운데 있을 이며 (15: 17), “그리스도안에서 잠자는 망할 것이다 (15: 18).

그러니까, 믿음으로 죽은 자들에게는 아무 소망이 있을 없다.

그런데, “이제그리스도께서 죽은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 )이다.

바울은 예수님의 부활을 어떻게 그같이 확신 있었을까?

바울이 확신할 있었던 것은 부활사건이 성경에 예언되어 있고, 그는 또한 부활하신 주님을 목격자들의 말을 들었으며, 자신도 부활하신 주님을 환상 중에 만났기 때문이었다 ( 9: 3 -5).

예수님의 부활에 함축되어있는 한가지 중요한 사실은 예수님께 속한 사람들은 언젠가는 부활하게 것이라는 것이다.

예수님의 부활은 우리의 부활에 대한 보증이 되고 있다.

바울은 예수님의 부활을 잠자는 자들의 열매 표현하였다.

  열매라는 용어는 유대 민족의 역사에서 유래된 것으로, 그것은 추수할 전체 수확물의 본질을 나타내는 농산물을 표본(標本)으로 먼저 거두어 들인 것을 가리켰다.

 율법에서 요구되는 제물들 중에는 곡물의 열매가 들어있었다 ( 23: 19; 23: 10).

열매는 수확의 나머지 부분에 대한 증거가 되었을 아니라, 전체 수확이 여호와께 봉헌된 것을 상징하는 일이 되었다.

잠자는 라는 말은 죽음을 가리키는 성경의 은유적인 표현법으로, 믿는 자들에게 죽음은 일시적인 현상이 되고 있음을 암시하고 있다 (살후 4: 13).

구절에서 우리는 그리스도의 부활은, 열매의 제물과 같이, 죽음의 반대인 영원한 생명을 받는 믿음의 열매인 전체 신자들을 가리키고 있는 것을 있다.

1521 -22 - 이 두 구절은 서로 보충해주는 성격의 내용이 되고 있다.

먼저, 바울은 사망이 사람으로 말미암았으니 죽은 자의 부활도 사람으로 말미암는 도다라는 원리를 제시하였다.

육체로 아담 안에 있는 모든 사람들은 육체적으로 그리고 영적으로 죽는다.

이는 죽음이 그를 통해 왔기 때문이다.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께 지은 죄의 슬픈 결과는 사람뿐만 아니라, 그의 후손인 모든 사람들에게도 죽음의 영향을 미치고 있다.

 아담의 죄로 말미암아 심판과 정죄가 오게 되었다 ( 5: 16).

 기쁜 소식은 그리스도안에서 모든 사람이, 믿음으로 영적 자손이 모든 사람들은, 영생을 얻게 되는 것이다.

그것은 장차 있을 부활을 가리키는 말이다.

아담이 행한 일은 생물학적으로 그에게 속한 모든 자손들에게 죽음을 가져다 반면에, 그리스도의 부활은 믿음으로 하나님의 영적 자녀가 모든 사람들은 영생을 받게 된다. 

                                

장차 부활 사건으로 일어날 일들 (고린도전서 15 23 -28)  

15: 23    그러나각각 자기 차례대로 되리니 먼저는 열매인 그리스도요 다음에는 그가 강림하실 때에 그리스도께 속한 자요

15: 24   후에는 마지막이니 그가 모든 통치와 모든 권세와 능력을 멸하시고 나라를 아버지 하나님께 바칠 때라

15: 25    그가 모든 원수를 아래에 때까지 반드시 노릇 하시리니

15: 26   나중에 멸망 받을 원수는 사망이니라

15: 27   만물을 그의 아래에 두셨다 하셨으니 만물을 아래에 둔다 말씀하실 때에 만물을 그의 아래에 두신 이가 중에 들지 아니한 것이 분명하도다

15: 28  만물을           그에게복종하게 하실 때에는 아들 자신도 때에 만물을 자기에게 복종하게 하신 이에게 복종하게 되리니 이는 하나님이 만유의 주로서 만유 안에 계시려 하심이라

1523 바울은 말하기를 부활각각 차례대로될 것이라고 하였다. 

먼저는 첫 열매인 그리스도의 부활이다.

세상에서 죽었다가 다시 살아난 사람들이 있지만, 예수님은 다시 살아나셔서 결코 다시 죽지 않는 최초의 사람이 되고 있다.

그 다음은 그리스도께서 강림하실 때에 그리스도께 속한 자들의 부활이다.

그들은 부활의 첫 열매이신 그리스도께서 강림하실 때에부활하게 될 것이다.

그러니까, 그리스도의 부활은 마지막 때에 부활할 사람들의 첫 열매가 되고 있다.

예수님은 자기를 믿고 따르는 신자들에게 그들을 위해 거처를 예비하신 후에 다시 와서 그들을 자기에게로 영접하여 자기 있는 곳에 있게 하겠다고 약속하셨다( 14: 1-6).

예수님이 재림하실 때, 그리스도께 속한 신자들은 예수님처럼 영광스러운 부활을 하게 될 것이다 (로마 6: 5; 살전 4 : 14).

1524  - 바울은 또한그 후에는 마지막이니라는 말로, 그리스도의 재림 후에는 마지막이 올 것이라고 하였다.

바울은 종종 종말론적 사건들을 기술할 때 그들 사이에 얼마나 많은 시간이 경과하는지를 밝히지 않았다.

예를 들어, 우리는 예수님의 부활 이후 약 2 천년 여 년이 지난 것을 알고 있다.

주님의 재림과 신자들의 몸의 부활은 여전히 미래의 사건이 되고 있다.

거기다가, 일부 성경 학자들은 최소한 천 년이라는 시간적 간격이, 말하자면 계시록 20 4 ~ 5 절에 묘사 되고 있는 그리스도의 천년 왕국이라는 기간이, 신자들의 부활과 고린도전서 15 24 절에 기술 된 사건 사이에 있게 될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가 명심해야 될 것은 바울은 종말의 정확한 연대기를 만들고 있지 않다는 사실이다.

도리어, 바울은 부활하신 주님이 세상의 모든 통치와 모든 권세와 능력을 멸하시고차례대로 그의 나라를 확립하시는 것을 강조하고 있었다.

나라를 아버지 하나님께 바(친다)”는 말은 그리스도께서 통치하지 않으실 것이라는 뜻으로 해석되지 말아야 한다.

바울은 단순히 왕국이 하나님께 속해있다는 사실을 묘사하고 있었다.

1525  - 이 구절에서 바울은 앞에서 한 말을 뒷받침하기 위하여 구약의 말씀을 인용하였다.

1101절에서, 하나님은 예언적으로 미래의 메시야-왕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네 원수들로 네 발판이 되게 하기까지 너는 내 오른 쪽에 앉아 있으라.”

그것은 군대의 비유적 표현으로, 그 말은 한 왕이 원수들을 짓밟고 행진해 갈 수 있을 때까지 그들을 패배시키는 것을 묘사해 주고 있다.

여기서 바울은 부활하신 메시야가 모든 원수를 그 발 아래 둘 때까지 반드시 왕 노릇 하시리니라고 하였다.  

 부활에 대한 바울의 메시지는 신자들에게 미래에 대한 소망을 주었을 뿐만 아니라 바로 지금 이곳에서 충실하게 살아야 한다는 격려의 말이 되고 있다.

그리스도는 이미 그의 원수들을 다스리기 시작하셨다.

바울은 에베소서 1 20 절에서 예수님이 부활하셨을 때 통치하기 시작하셨다고 기록하였다

1526  - 바울은 맨 나중에 멸망 받을 원수는 사망이라고 하였다.

신약의 가르침에서 사망은 적이 되고 있다.

그것은, 실제로, 그리스도가 패배시키고 멸망시키실 마지막 적이다.

바울은 1521절에서 사망이 한 사람으로 말미암았으니라는 말로, 아담이 에덴 동산에서 죄를 지었을 때 사망이 모든 인간의 육체에 임하게 된 사실을 밝혔다.

비극적인 결과는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은 것이다 (15: 22).

더욱이 예수님은 결코 죄를 지은 적이 없으셨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우리 죄를 대속하기 위하여 십자가 위에서 자기 목숨을 버리셨다.

예수님이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신 것은 사망이 그를 더 이상 붙들어 놓을 수 없다는 사실을 보여준 일이 되었다 (로마6: 9, 딤후 1: 10 참조).

히브리서 저자는 죽음의 권세를 이기신 예수님의 승리를 죽음의권세를 잡은 마귀 대한 승리로 보았다 (2: 14).

사망을 이기신 그리스도의 승리는 그를 구세주와 주님으로 믿는 모든 사람에게 승리를 준다.

나중에 고린도전서 15장에서, 바울은 그리스도 안에서 얻는 신자들의 승리를 율법의 정죄의 끝으로 언급하였다 (15: 56-57 참조).

아담의 유산은 하나님의 법을 어김으로 사망을 전래시킨 것이다.

예수님은 율법을 온전히 순종 하셨으며, 십자가 위에서 대속의 죽음을 죽으심으로 믿는 자들을 율법의 정죄로부터 해방시켜 주셨다.

1527 - 바울은 모든 권세와 능력이 그리스도께 복종케 된다는 주제로 돌아갔다.

하나님은 인간을 그의 형상대로 창조하시고 땅의 모든 생명을 다스리는 권세를 주셨다 (1: 26 -30).

아담은 죄를 범함으로 그 권세를 상실하게 되었다.

그러므로 아버지는, 때가 되자, 그의 정당한 통치권을 회복하기 위해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셨다.

예수님의 부활을 통해, 사망 자체를 포함하여 만물이다시 하나님의 권세에 복종하게 되었다.

그렇지만, 바울은 만물을 그의 아래에 두신 이가 그 중에 들지 아니한 것이 분명하도다는 말로, “만물이라는 용어에는 하나님 아버지가 포함되지 않은 사실을 분명하게 밝혔다.

1527 1528절에서, 바울은 하나님의 구속 계획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완전하게 그리고 최종적으로 완성된 것을 묘사하였다.

하나님의 아들은, 죽으셨다가 다시 살아나심으로, 죄와 죽음과 무덤의 권세를 이기고 승리를 성취하셨다.

그는 아버지 하나님을 적대하는 모든 권세를 파멸시키셨다.

같은 사실을 알고 확신하고 있던 바울은 사망아너의 승리가 어디 있느냐 사망아 너의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 하면서 (15: 55), “우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승리를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한다)” 하였다 (15: 57).

그같이 하시는 중에, 그는 또한 죄인들을 위하여 구원의 길을 열어 주셨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은 모두 사함과 영생을 받을 것이다.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실 때에, 만물이 그에게 복종하고 있는 것을 알게 것이다.

또한 그때에는 아들은 만물을자기에게 복종하게 하신 이에게 복종하게 것이다.

바울은 여기서, 어떤 방법으로든지, 아들이 아버지보다 열등하다는 뜻으로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삼위일체하나님의아버지와아들과성신의삼위는본질과영광에있어서평등하다.

바울이말한복종이라는말은역할이나기능의뜻이되고있다.

하나님이 만유의 주로서 만유 안에 계시() 말은 새로운 창조의 최종 완성에 대한 묘사가 되고 있다.

오늘날 우리는 선과 악으로 갈라진 세계에 살고 있다.

악의 세력들은 인간의 관심과 충성심을 끌기 위해 갖가지 방법을 동원하며경쟁하고 있다.

승리가 쟁취되고, 모든 권세가 아버지께 복종하게 , 만물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일에 초점을 맞출 것이다.

 


말씀을 나의 상황에 적용하기
  • 구원은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통해 얻는다
  • 신자들은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통해 참된 삶을 발견한다.
  • 신자들은 부활과 그리스도의 영원한 통치를 확신하고 사람아갈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