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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울의 간증 - 제 11과 -2018년 2월 11일 장년성경공부 - 사도행전 22장 3 -8, 15 -22절

글쓴이 : 강호길 날짜 : 2018-02-10 (토) 02:46 조회 : 236

장년성경연구 교사용 교재

2018211일 주일

 

11

 

바울의 간증

 

학습구절: 사도행전 223 -8, 15 -22


성경진리: 

복음은 사람들을 죄인에서 하나님의 도구로 변화시킨다.   


주요교리: 구원

구원은 영과 혼 및 육체를 포함하는 한 인간의 모든 구성요소를 대상으로 삼고 있으며, 예수 그리스도를 주님과 구세주로 영접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값 없이 주어지고 있다.


암송구절: 사도행전 20 35

범사에 여러분에게 모본을 보여준 바와 같이 수고하여 약한 사람을 돕고 또 예수께서

친히 말씀하신 바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이 있다 하심을 기억하여야 할지니라 

In everything I did, I showed you that by this kind of hard work

we must help the weak, remembering the words the Lord Jesus himself said:

‘It is more blessed to give than to receive.’ 


시작하는 글:


우리의 삶의 이야기는 중요하다.

우리가 선택해서 말하는 이야기는 다른 사람들에게 우리가 삶 속에서 중요하게 여기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보여주며 우리가 왜 그같이 생각하며 행하는지를 이해하도록 도와준다.

어떤 삶의 이야기들은 반복해서 하고 또 할지라도, 결코 지치거나 싫증나는 법이 없는 것 같이 보인다.

도리어, 그 같은 삶의 이야기를 말할 때마다 그것들에 대한 우리의 열정은 더 커진다.

당신이 다른 사람들에게 자주 들려주는 자신의 삶의 이야기로 어떤 것들이 있는가

그리고 그 이야기들은 듣는 사람들에게 어떤 영향을 끼치고 있다고 생각하는가?

사도행전21 17절에서, 바울은 예루살렘에 도착하였다.

예루살렘 교회의 지도자들은 야고보를 위시하여 바울을 기꺼이 영접하였고, 그가 하나님께서 자기의 사역으로 말미암아 이방 가운데서 행하신 일을 낱낱이 말하자 그들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다.

그러면서도, 그들은 바울에게 그가 모세의 율법을 무시하고, 유대인들에게 할례를 행하지 말고 또 관습을 지키지 말라고 가르친다는 소문에 대해 말해 주었다.

실제로, 아시아로부터 온 유대인들이 성전에서 바울을 보고 군중을 충동하여 큰 소란을 일으키며 그를 죽이려 하였다.

이로 인하여 로마 군대에게 붙잡히는 사건이 벌어지게 되었으며 바울은 천부장의 허락을 받아 백성들에게 자신의 삶과 신앙에 대해 간증을 하게 되었다.

 

본문배경설명


사도행전 211– 23 22

지난 주의 학과에서, 우리는 바울이 에베소 교회의 장로들에게 한 고별설교를 학습하였다.

그는 장로들과 눈물로 작별을 한 후, 배를 타고 예루살렘으로 떠났다

배가 짐을 풀기 위해 두로에 상륙했을 때, 바울은 거기서 제자들을 찾아 이례동안 그들과 함께 지냈다.

그들 신자들은 성령의 감동을 받아 바울에게 예루살렘에 올라가지 말라고 하였다(21: 4).

조금도 흔들리지 않자, 그들은 바울 일행을 그 처자와 함께 성문 밖까지 전송하여 모두 함께 바닷가에서 무릎을 끓고 기도하였다.

두로의 성도들과 작별을 한 후, 바울 일행은 다시 출발하여 항해를 다 마치고 돌레미아에 도착하여 하루를 체류하고 가이사랴에 이르렀다.

가이사랴에서 여러 날을 체류하는 동안, 바울은 일곱 집사 중 하나인 전도자 빌립의 집에 머물렀다.

바울이 전에 바나바와 함께 에베소에서 사역하고 있었을 때 천하에 큰 흉년이 들리라고 예언했던 (11: 28) “아가보라고 하는 선지자는 다시 유대로부터 가이사랴에 내려와 있다가 예루살렘에서 바울에게 일어날 일을 전시(展示)적인 방법으로 예언하였다.

아가보는 바울의 허리띠를 가져다가 자기 손과 발을 묶고 말하기를, “성령이 말씀하시되 예루살렘에서 유대인들이 이같이 이 띠 임자를 결박하여 이방인의 손에 넘겨주리라고 하였다.

그렇지 않아도 바울이 예루살렘에 올라가는 것에 대해 걱정하던 동행자들과 그 곳 사람들은 바울에게 예루살렘에 올라가지 말라고 간청하였다.

바울은 그들에게 여러분이 어찌하여 울어 내 마음을 상하게 하느냐나는 주 예수의 이름을 위하여 결박 당할 뿐 아니라 예루살렘에서 죽을 것도 각오하였노라고 하였다(21: 13).

예루살렘에 도착하자, 바울은 야고보와 지도자들과 만났는데, 그들은 하나님이 바울을 통해 이방인들 가운데서 이루신 것을 기뻐하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다 (21: 19-20).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예루살렘에 있는 많은 사람들은 바울이 이방 사람들 가운데 사는 유대인들에게 그들의 자녀들에게 할례도 주지 말고 유대사람의 관습도 지키지 말라고 하면서 모세를 배척하라고 가르치고 있다는 소문을 들었다고 경고하였다 21: 21).

장로들은 다른 사람들에게 바울이 여전히 율법을 존중하고 있다는 것을 확인시켜 줄 수 있는 한 가지 계획을 고안해 내었다.

예루살렘 교회 지도자들은 바울에게 제안하기를, 하나님 앞에서 서원한 네 사람이 있는데 그들과 함께 정결의식을 행하고 그 네 사람의 머리를 깎는 비용도 지불해 주리고 하였다.

그같이 하면, 바울이 아직도 모세의 율법을 잘 지키고 있으며 그에 대한 말은 헛소문이었다는 것을 그들 유대인들에게 확실하게 밝혀줄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으로 예루살렘 교회 지도자들은 믿었던 것이다.

이들 교회지도자들은 그러면서 이방인 신자들은 이전에 명세한 대로( 15), 유대인의 전통과 관습을 지키지 않아도 된다는 점을 재차 단언하였다 ( 21: 25).

바울은 교회 지도자들의 제안을 받아들여 네 사람들과 함께 결례를 행하고성전으로 들어갔다.

결례의 기간인 이례가 거의 끝나갈 무렵에, 아시아로부터 온 유대인들이 성전에서바울을 보고 사람들을 충동하여 바울을 핍박하게 하였다.

그들은 큰 소리로 외쳐 말하기를, 바울이 모세의 율법을 지키지 말라고 가르쳤을 뿐 아니라, “헬라인을 데리고 성전에 들어가서 이 거룩한 곳을 더럽혔다고 하였다.

그러나 그것은 실제로 그들이 이전에 에베소 사람 드로비모가 바울과 함께 시내에 있는 것을 보았는데, 성급하게 잘못 내린 결론이었다 ( 21: 26-29).

그들 유대인들은 군중들을 선동하였고, 군중들은 달려와 바울을 잡아 성전 밖으로 끌고 나가 죽이려고 하였다.

그 소문을 들은 로마군대의 천부장은 군사들을 끌고 와서 바울을 잡아 쇠사슬로 결박하여 명하고 그가 누구이며 어떤 일을 했는지 진상을 파악하려고 하였다.

사람들이 저마다 다른 소리를 함으로, 사태를 제대로 파악할 수 없었다.

그래서 천부장은 바울을 영내로 끌고 가라고 명령하였다.

영내로 끌려 들어가려고 할 때에, 바울은 천부장에게 자신이 길리기아 다소 시의 시민임을 밝히고 청컨대 백성에게 말하()” 허락해 달라고 하였다.

천부장이 허락하자, 바울은 층대 위에 서서 군중들에게 손을 흔들어 조용하게 하였다.

군중이 잠잠해 지자, 바울은 히브리말로 말하기 시작하였고, 군중은 더 조용해 졌다 ( 21: 30 -40).      

그런 다음 바울은 부형들아 내가 지금 여러분 앞에서 변명하는 말을 들으라는 말로 간증을 시작하였다.

 

그리스도를 믿기 이전의 삶(사도행전 223 -5)

22: 3  나는 유대인으로 길리기아 다소에서 났고 이 성에서 자라 가말리엘의 문하에서

우리 조상들의 율법의 엄한 교훈을 받았고 오늘 너희 모든 사람처럼 하나님께 대하여 열심이 있는 자라 

22: 4    내가 이 도를 박해하여 사람을 죽이기까지 하고 남녀를 결박하여 옥에 넘겼노니

22: 5    이에 대제사장과 모든 장로들이 내 증인이라 또 내가 그들에게서 다메섹 형제들에게 가는 공문을 받아 가지고 거기 있는 자들도 결박하여 예루살렘으로 끌어다가 형벌 받게 하려고 가더니

바울은 회심 이전에 유대교의 열광 자로서의 자신의 자격을 요약한 연설을 하였다.

그의 연설은 자서전적이며 변증론적(辨證論)적인 성격을 취하고 있는 것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

바울의 연설은 그의 전통과 유산 그리고 정통적인 유대인으로 엄격한 교육을 받은 사실로 시작되고 있다(3 ~ 4 ).

그런 다음 그의 연설은 바울이 다메섹으로 가는 길에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 그를 믿고 침례를 받아 개종하게 된 일로 옮겨지고 있고 (5 -16), 그 후에 부활하신 주님으로부터 사명을 받은 것으로 끝나고 있다 (17 -21).  

 22 3 - 바울이 성전을 모독한 혐의에 대해 언급하지 않고 오히려 그가 유대교에 충성했던 일에 초점을 두었다.

이번에 바울이 전한 간증은 후에 그가 아그립바 왕앞에서 전한 것(26 : 2 -29)과 비슷한 것이 되고 있다.

한가지 주목할 만한 차이점은 여기에서는 바울이 자신이 유대인임에 초점을 맞춘 일이다.

그는 예루살렘과 가말리엘, 그리고 아나니아와의 관계를 강조하였다.

그는 또한 자신도 그들처럼 하나님에 대하여 열심이 있는 자임을 강조하였다.

그러니까, 바울은 유대인으로서 동료 유대인들에게 말하고 있었던 것이다.

바울은 길리기아 다소에서 났지만, 예루살렘에서 자라났고, “가말리엘의 문하에서조상들의 율법의 엄한 교훈을 받았다.

다소는 지중해로부터 약 10마일 떨어져 있는 동서로 이어지는 무역로에 위치했던 도시로, 로마의 영토였던 길리기아 지방의 수도였으며 학문으로 유명하였다.

따라서, 바울은 태생으로 로마시민이었으며, 혈통으로는 유대인이었다.

어떤 성경학자들은 바울이 가말리엘에게서 교육을 받기 시작했을 때인 열두 살이나 열세 살이었을 때 예루살렘으로 온 것으로 믿고 있다.

반면에, 다른 성경학자들은 이 성에서 자라라는 말이 어린 시절부터 예루살렘에서 자라난 것을 가리키고 있는 것으로 믿고 있다.

어느 경우가 되었건 간에, 바울은 이 거룩한 성읍과 자신의 관계를 아주 분명하게 하기를 원하였다.

우리는 가말리엘을 사도행전 533 -42절에서 처음 만났다.

거기에서 가말리엘은 바리새인이자 율법 교사모든 백성에게 존경을 받는 자로 소개되고 있다.

그때 가말리엘은 공회가 사도들을 죽이려고 했을 때 온건한 입장을 취하였다.

당시 유대에는 학문적으로 엄격한 입장을 취한 샴마이와 온건한 입장을 취한 힐렐이 두 학파의 주축을 이루고 있었는데, 가말리엘은 힐렐의 제자였다.

바울은 가말리엘의 문하에서 바리새인들의 율법의 엄격한 교훈을 받았다

바울은 실제로 예루살렘과 깊은 관계를 가지고 있고, 당시의 위대한 교사 중 한 사람에 의해 훈련 받았을 뿐 아니라, 율법에 대해 열심이 있는 자였다

그는 자신의 열심을 군중들로 하여금 자기를 성전에서 끌고 나오게 한 열심에다 비교하였다.

 224바울이 이 도를박해하게 된 것은 하나님에 대한 열심이었다.

그러므로, 개종 이전에 바울(당시에는 사울)은 스데반이 순교를 당할 때 증인이 되었으며(8: 1), “교회를 잔멸할새 각 집에 들어가 남녀를 끌어다가 옥에 넘기()” (8: 3)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을 박해하였다.

”()라는 용어가 처음으로 사용된 곳은 사도행전 92절이다.

거기에 보면, 사울(바울)은 다메섹에서 그 도를 따르는 사람을 만나면 잡아오기 위한 공문을 회당에 청하였다.   

그리고 이 용어는 사도 행전에 기록 된 바울의 연설에서 계속 반복되고 있다.

그것은 초기 그리스도인들이 자신들을 지칭하는 말로 사용되었던 것같이 보인다.

그 것은 또한 예수님이 제자들과 함께 유월절 식사를 마친 후에 그들에게 하신 말씀에서 시작된 것일 수 있다.

도마가 예수님에게 그가 믿는 자들을 위해 준비하시고 계신 곳으로 가는 길을 어떻게 알 수 있었는지 물었을 때, 예수님께서 대답하셨다.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6).  

다메섹으로 가는 길에, 바울은 이 도를 박해하는 것이 곧 그리스도를 박해하고 있는 것임을 알았다 (9: 5). 

우리는 어떻게 하면, 바울처럼, 선행이나 종교적 업적이 아무리 크고 많다 할지라도 그것으로 구원을 얻을 수 없다는 사실을 다른 사람들이 이해하도록 도와 줄 수 있는가?

 225바울은 예루살렘에 있는 대제사장과 산헤드린으로 부터 공문을 받았기 때문에, 대제사장과 장로들은 그의 간증을 증명할 수 있었다.

그래서 바울은 이에 대제사장과 모든 장로들이 내 증인이라고 하였다.

그들은 바울에게 다메섹에 피신해 있는 그리스도인들을 붙잡아 끌고 올 수 있는 것을 인정하는 공문을 주어 다메섹으로 보냈기 때문에, 유대교에 대한 바울의 열성에 대해 이야기 할 수 있었다.

그에게 부여된 임무는 그 도를 따르는 사람들을 예루살렘으로 데려 와서 그들이 받아야 될 처벌을 받게 하는 것이었다.

유대인으로서의 자신의 자격과 업적에 대한 바울의 말은 그가"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한 것)”에 비추어 모든 것을 해로 여긴 그의 목록을 상기시켜 준다 ( 3 : 8, 5 ~ 6 절 참조).

우리는 어떻게 하면, 바울처럼, 선행이나 종교적 업적이 아무리 크고 많다 할지라도 그것으로 구원을 얻을 수 없다는 사실을 다른 사람들이 이해하도록 도와 줄 수 있는가?

자신의 삶의 이야기를 할 때, 그리스도를 믿기 이전과 이후의 삶을 분명하게 대조하는 것이 왜 중요한가? 


삶을 변화시킨 예수님과의 만남
(사도행전 22 6 -8, 15 -16)

22: 6  가는 중 다메섹에 가까이 갔을 때에 오정쯤 되어 홀연히 하늘로부터

         큰 빛이 나를 둘러 비치매

22: 7    내가 땅에 엎드러져 들으니 소리 있어 이르되 사울아 사울아 네가 왜 나를 핍박하느냐 하시거늘

22: 8    내가 대답하되 주님 누구시니이까 하니 이르시되 나는 네가 박해하는 나사렛 예수라 하시더라

22:15   네가 그를 위하여 모든 사람 앞에서 네가 보고 들은 것에 증인이 되리라

22:16   이제는 왜 주저하느냐 일어나 주의 이름을 불러 침례를 받고 너의 죄를 씻으라 하더라

바울은 예수님을 자기가 적대하였고 다메섹으로 가던 길에서 만난 분으로 묘사하였다.

아나니아는 바울이 예수 그리스도의 증인이 될 것이라고 하고 주의 이름으로 침례를 받고 너의 죄를 씻으라고 하였다.

226 -7박해자로서의 이전의 삶을 설정한 후에, 자신의 삶을 근본적으로 바꾼 사건을 이야기하였다.  

일부 군중들은 바울이 무엇 때문에 다메섹으로 가고 있었던 지를 알고 있었지만 나머지 이야기는 듣지 못했었다.

그는 말하기를, 다메섹 가까이 갔을 때, “오정쯤 되어 홀연히 하늘로부터 큰 빛이 (그를) 둘러 비치()” 그는 땅에 엎드려지고 말았다고 하였다.

정오는 하루에 가장 밝은 시간대가 되고 있다.

그런데 정오의 햇빛을 압도한 또 다른 빛은 극도의 강한 빛이 되었다.

11절에서 바울은 그 빛의 광채로 말미암아 볼 수 없게 되었()”고 하였다.

그는 강렬한 빛으로 인하여 시력을 잃었던 것이다.

유대인들에게 강렬한 빛은 하나님의 임재와 관계 되었다.

애굽에서 나온 그들의 조상들이 낮에 따랐던 구름기둥은 밤에 불기둥이 되었다 (13: 21 -22).

모세가 시내 산에서 하나님과 함께 지낸 후 얼굴에 광채가 났으므로, 모세는 자기 얼굴을 수건으로 가리었다 (29 -35).

바울은 땅에 엎드러진 것과 사울아 사울아라고 그의 이름을 부르며 네가 왜 나를 박해하느냐고 묻는 음성을 들은 일을 이야기 하였다.

그 질문은 바울(당시에는 사울)을 혼란스럽게 했을 것이 분명하다.

그는 자신을 하나님의 옹호자로 생각하고 있었는데, 하나님은 그에게 왜 나를 박해하느냐고 물으시는 것이었다.

그리스도께서는 그의 교회를 핍박하는 것을 자기를 핍박하는 것과 동일하게 여기셨던 것이다.  

228그 음성이 하늘로부터 들려오는 것임을 깨달은 바울은 자기에게 말하는 분을 주님으로 불렀다.

그러나, 그가 누구인지를 확실하게 알지 못하였으므로, “주님 누구시니이까라고 물었다.

주님은 대답하시기를, “나는 네가 박해하는 나사렛 예수라고 하였다

흥미로운 점은 바울이 나사렛이라는 지명을 사용한 것은 유일하게 다메섹 노상에서 일어난 사건을 기록한 이 구절이 되고 있는 것이다.

예수님의 정체성에 관한 바울의 질문에 대한 예수님의 대답은 바울로 하여금 그가 이전에 확신하고 있던 여러 가지를 다시 생각하도록 요구하였다.

첫째로, 예수님은 살아계시며 어떤 형태로든 아버지 하나님과 관계되고 있는 것이 분명하였다.

그것은 바울이 예수님의 삶과 그의 가르침에 대해 이해하고 있던 것을 수정해야 되는 것을 뜻했다.

둘째로, 그것은 바울로 하여금 기독교인들을 박해하게 한 그의 열심이 하나님의 꾸중을 받고 있는 것을 의미하였다.

그것은 유대교를 믿은 이전의 자신의 삶을 다시 생각해야 하는 계기가 되었다.

셋째로, 바울은 또한 하나님의 왕국에 대한 이해를 다시 생각해야 되었다.

그는 더 이상 왕국을 미래의 기대치로만 볼 수 없었고, 이미 임한 현재의 실재로 보아야 하였다.

마지막으로, 바울이 그리스도를 박해하고 있다는 단언은 그리스도와 그를 믿는 사람들 사이에 분명한 관계가 있는 것을 이해하게 해 주었다.

2215 -16부활하신 주님이 자신의 정체를 밝혀주신 후에, 바울이 한 두 번째의 질문은 실제로 적절한 응답이 되었다.

주님 무엇을 하리이까?” (10)

이것은 이사야가 성전에서 하나님을 본 후에 나타낸 반응을 상기시켜준다( 6 : 8).

하나님이 내가 누구를 보내며 누가 우리를 위하여 갈꼬라고 말씀하셨을 때, 이사야는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라고 대답하였다.

여기서 부활하신 주님은 사울(바울)에게 일어나 다메섹으로 들어가라 네가 해야 할 모든 것을 거기서 누가 이르리라고 말씀하셨다 (22: 10).

다메섹에 들어가 사울(바울)이 만난 아나니아율법에 따라 경건한 사람으로 모든 유대인들에게 칭찬을 듣는믿는 사람이었다.

아나니아가 바울을 찾아와 형제 사울아 다시 보라고 하였다.

그 순간 바울은 시력을 회복하여 다시 보게 되었다.

아나니아는 또한 바울이 성취하도록 하나님께서 그에게 주신 특별한 사명을 말해 주었다.

그것은 주님을 위하여 모든 사람들 앞에서 (그가) 보고 들은 것에 증인이 되는 것이었다.

바울은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만났고 그의 음성을 들었다.

그러므로, 그는 모든 사람(들에게)그리스도를 증거하는 것이 자신의 책임인 것을 알았다.

그런 다음 아나니아는 바울에게 이제는 왜 주저하느냐일어나 주의 이름을 불러 침례를 받고 너의 죄를 씻으라고 하였다.

이 침례는 바울이 죄를 회개하여 죄를 사함 받고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믿음으로 구원을 얻은 것을 겉으로 표현한 방법이 되었다.

 

삶의 새로운 목표(사도행전 22 17 -21)

22:17   후에 내가 예루살렘으로 돌아와서 성전에서 기도할 때에 황홀한 중에

22:18   보매 주께서 내게 말씀하시되 속히 예루살렘에서 나가라 그들은 네가 내게 대하여 증언하는 말을 듣지 아니하리라 하시거늘

22:19   내가 또 말하기를 주님 내가 주를 믿는 사람들을 가두고 또 각 회당에서 때리고

22:20   또 주의 증인 스데반이 피를 흘릴 때에 내가 곁에 서서 찬성하고 그 죽이는 사람들의 옷을 지킨 줄 그들도 아나이다

22:21   나더러 또 이르시되 떠나가라 내가 너를 멀리 이방인에게로 보내리라 하셨느니라

바울은 개종 이후 자신의 삶의 목적이 어떻게 바뀌었는지를 설명하고, 이제는 이방인을 포함한 모든 사람들에게 복음의 진리를 전하는 데 집중하고 있음을 밝혔다.

바울은 또한 하나님께서 자기를 이방인들에게로 보내신 이유의 하나는 대부분의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메시야로 받아들이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설명하였다.

 2217 -18본 단원의 학습구절인 2217절부터 21절까지에서 묘사되고 있는 것은 바울이 개종을 하고 삼 년이 지난 후 예루살렘을 처음 방문했을 때 일어난 일이다 (9: 26 -29; 1: 18 -19).

바울이 두 번째로 환상적인 경험을 한 것은 그가 성전에서 예배를 드리는 동안 잠시 황홀경에 빠져 있을 때였다.

바울이 이 일을 사도행전 9장에서는 말하지 안았는데, 여기에서 말하고 있는 것은 그것이 바울이 성전을 중요하게 여기고 있는 것을 보여주는데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그 때에, 주님은 바울에게 속히 예루살렘에서 나가라고 경고하셨다.

주님은 설명하시기를, 예루살렘 사람들이 네가 내게 대하여 증언하는 말을 듣지않을 것이기 때문이라고 하셨다

우리가 다시 유의할 것은 바울이 받은 부름과 이사야가 받은 부름 사이의 유사점이다.

두 사람은 모두 그들이 전하는 메시지를 사람들이 듣지 않고 거절할 것이라는 경고를 받았다 (6: 9 -13).

바울이 이 상황에서 그 이야기를 포함시킨 데는 몇 가지 뚜렷한 이유가 있었다.

첫째로,그 일은 성전에서 일어난 것으로, 그것은 바울이 성전과 유대 유산을 귀중하게 여기며 높이 평가하고 있다는 것을 나타내 주었다.

둘째로, 그것은 또한 유대인들이 모세의 율법을 무시하도록 격려함으로 바울이 유대인들을 변화시키려고 하고 있다는 비난을 잠재울 수 있었다.

셋째로, 그것은 바울에게 사명을 주신 분은 유대인들이 예배하는 하나님 이시라는 것을 예증(例證)하는 일이 되었다.

끝으로, 그것은 또한 바울이 전하는 메시지가 거절을 당할 것을 주님께서 미리 알려주신 것을 설명해 주었다.

 2219 -20우리는 바울이 예루살렘을 떠나라는 주님의 명령을 즉각 순종하지 않고 자기 의견(意見)을 제기한 것을 읽을 때 놀랄 수 있다.

그러나 그 같이 자기의 주장을 내세우거나 변명을 하는 일은 성경에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사람들이 나타내고 있는 공통된 주제가 되고 있다.

모세가 불타는 떨기나무에서 하나님을 만나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을 때, 그는 이의를 제기하였다.

모세는 자신의 부적한 점들을 열거했을 뿐 아니라, 그 일을 위하여 형까지 끌어들이게 하였다.

우리도 하나님의 부르심에 그 같은 방법으로 응답했을 수 있다.

바울이 예루살렘을 떠나기를 원하지 않는 이유는 그 자신의 간증과 관련이 있었다.

그는 주장하기를, 예루살렘에 있는 사람들은 교회의 박해자로서 자기가 이전에 행한 일들을 너무나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자기가 전하는 메시지를 분명히 들을 것이라고 하였다.

바울은 심지어 스데반을 돌로 쳐서 죽이는 일을 찬성한 것과 그 죽이는 자들의 옷을 지킨 일도 이야기 하였다.

바울은 근본적으로 바뀐 삶에 관한 자신의 간증은 사람들로 하여금 자신의 메시지를 경청하게 만드는 요인이 될 것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사람들은 들으려 하지 않았다.

도리어 사람들이 바울을 죽이려고 함으로, 교회지도자들이 알고 가이사랴로 데리고 내려가서 다소로보냈다 (9: 29 -30).

 2221바울이 받은 지시는 단순히 예루살렘을 떠나는 것뿐 아니라, “멀리 이방인에게로 가는 것이었다.

이방인들에 대한 바울의 사역은 예수님을 메시야로 증거하는 바울의 메시지를 유대인들이 받아들이지 않은 것과 직접적인 관련이 있다.

멀리라는 말은 단순히 거리적으로 예루살렘으로부터 멀리 떨어진 목적지에 대한 언급이 아니라, 인종적으로 유대인에 속하지 않은 사람들을 가리키는 말도 되고 있다.

우리는 그 같은 표현을 사도행전 2장에 기록된 베드로의 설교에서 찾아볼 수 있다.

사람들에게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침례를 받고 죄 사함을 받으라고 한 다음, 베드로는 이 약속은 너희와 너희 자녀와 먼데 사람곧 주 우리 하나님이 얼마든지 부르시는 자들에게 하신 것이라고 하였다 (2: 38 -39).

에베소서 217절에서,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에 대해 기록하기를 또 오셔서 먼 데 있는 너희에게 평안을 전하시고 가까운 데 있는 자들에게 평안을 전하셨으니라고 하였다.  

 

거절과 위협을 당한 바울 (사도행전 2222)

22:22   이 말하는 것까지 그들이 듣다가 소리 질러 이르되 이러한 자는 세상에서 없애 버리자 살려 둘 자가 아니라 하여

바울이 이방인들을 하나님의 구속 계획에 이방인들을 포함 시킨 것으로 인해, 유대 지도자들은 바울을 거절하고 박해하였다.

군중들은 소리를 지르며 바울을 살려둘 수 없다고 하였다.

 2222이방인들에 대한 언급을 하기까지, 군중들은 바울의 설득력 있는 간증을 열심히 듣고 있었다.

이방인들에 대한 언급과 함께, 분노의 불길은 뜨겁게 타올랐으며, 군중들은 그를 죽이기를 원하였다.

누가는 떠들며 옷을 던져 버리고 티끌을 공중에 날리니라는 말로(22: 23) 군중들의 강한 분노심을 분명하게 나타내었다.

그 같은 행동들은 극단적인 반감과 반대를 표현하는 문화적인 방법이었다.

군중들이 큰 소리로 이러한 자는 세상에서 없애버리자 살려둘 자가 아니라고 한 것을 보면, 당시의 상태를 짐작할 수 있다.

 

말씀을 나의 상황에 적용하기


ㆍ신자들은 믿지 않는 사람들이 선행으로 구원을 얻을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도와주어야 한다
.  
예수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믿는 사람들은 누구나, 심지어 그를 공개적으로 비난하는 사람들까지도, 구원을 받을 수 있다.       
예수님은 신자들에게 새로운 삶을 주시며 선교를 그 삶의 목적으로 삼게 해 주신다.
신자들은 복음의 진리를 전하는 것으로 인해 사람들에게 거절과 박해를 받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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