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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울의 고별설교 - 제 10과 -2018년 2월 4일 장년성경공부 - 사도행전 20장 22 -35절

글쓴이 : 강호길 날짜 : 2018-01-30 (화) 12:12 조회 : 198

장년성경연구 교사용 교재

201824일 주일

 

10

 

바울의 고별설교

 

학습구절: 사도행전 20 22 -35


성경진리: 

복음을 전하는 것은 희생과 노력을 할만한 가치가 있는 일이다.


주요교리: 전도와 선교

한 사람이 하나님의 성령으로 영적으로 새로 탄생하는 것은 다른 사람들을 위한 사랑으로 탄생되는 것을 의미한다.


암송구절: 사도행전 20 35

범사에 여러분에게 모본을 보여준 바와 같이 수고하여 약한 사람을 돕고 또 예수께서

친히 말씀하신 바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이 있다 하심을 기억하여야 할지니라 

In everything I did, I showed you that by this kind of hard work

we must help the weak, remembering the words the Lord Jesus himself said:

‘It is more blessed to give than to receive.’ 



시작하는 글:

작별 인사는 하기 힘들다.

더욱이 서로 다시 볼 수 없을지 모를 때는, 작별인사가 더 힘들다.

대학이나 직장 혹은 다른 이유로 떠날 때, 당신은 결국 이사 할 것이고 사람들은 뒤에 남게 될 것이다.

그것으로 인해 관계가 끊어지는 것은 아니지만, 관계에 변화가 생기는 것은 사실이다.

그들은 더 이상 이웃이나 직장 동료 또는 급우가 아니다.  

친구와 작별을 하게 될 때, 믿는 자로서 당신이 친구에게 작별 인사를 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무엇일까?  헤어진 후, 친구가 당신을 어떻게 기억하기를 원하는가?  바울은 어떻게 하였는가?

바울이 밀레도에서 사람을 에베소로 보내어 교회 장로들을 불렀을 때, 그는, 아마도 마지막으로, 그들에게 작별인사를 하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바울은 예루살렘으로 올라가기로 한 결정의 결과로 거기서 투옥을 당하게 될 것이라는 경고를 성령님으로부터 받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자신의 부름에 충실하겠다는 바울의 결단과 이를 기쁘게 여기는 모습을 감지하게 된다.

 

본문배경설명


사도행전 198- 2126

지난 주에 우리는 바울이 에베소에 와서 침례 요한의 제자들을 만나 그들에게 복음을 설명해 주고 주 예수의 이름으로침례를 베푼 것을 학습하였다 (19: 5).  

그들에게 침례를 베푼 후에, 바울은 회당에 들어가서 석 달 동안하나님 나라의 일을 강론하며 복음을 담대하게 전하였다 (19: 8).

일부 사람들이 복음을 적대하며 온 회중 앞에서 이 도를 비방하기 시작하자, 바울은 그들을 떠나 제자들을 따로 세우고 두란노 서원에서 날마다 강론하기 시작하였는데 (19: 9), 두 해 동안이나 그같이 하였다.

에베소에서의 바울의 사역에는 놀라운 이적들이 따랐다.

당시 에베소에는 마술과 귀신을 쫓아내는 일들이 많이 행해지고 있었다.

그러므로 에베소에 사는 사람들은 희한하고도 특이한 일에 익숙해져 있었다.

그 같은 영적 풍토에서, 하나님은 그리스도의 복음과 바울의 사역이 초자연적인 방법으로 행해지도록 도와 주셨던 것이다.

마술과 미신은 복음 앞에서 굴복을 당하고, “주의 말씀이 힘이 있어 흥왕하여 세력을 얻(었다)” (19: 20).

마술을 행하다가 복음을 믿게 된 많은 사람들은 자기들이 행한 일을 자백하고 공개하였다.

또한 마술을 행하던 많은 사람들은 자기들이 사용하던 책들을 모아 가지고 와서 모든 사람들 앞에서 불살라버리기까지 하였다.  

그 같은 일이 있은 후에, 바울은 마게도냐와 아가야를 거쳐 예루살렘으로 갔다가 로마에까지 가기로 마음의 작정을 하고 계획을 세웠다.

그래서 바울은 자기를 돕는 사람들 중에서 디모데와 에라스도두 사람을 마게도냐로 먼저 보내고 자기는 아시아 지방에 얼마 동안 더 머물러 있었다 (19: 21 -22). 

그 동안에 에베소에서 바울이 전하는 ()”, 즉 복음(福音)으로 말미암아 큰 소동이 일어나게 되었다.

에베소를 위시하여 아시아 지역에서는 많은 은장이들이 아데미 여신을 경배하는 사람들을 위해 은으로 아데미 신전 모형을 만들어 파는 사업이 성행하였다.

그것은 돈 벌이가 잘 되는 사업이었는데, 바울이 와서 복음을 전하면서 위협을 받게 되었다.  

그러자, “데메드리오라는 은장이가 은으로 아데미의 신전 모형을 만드는 직공들과 그 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을 모아놓고 선동하였다.

그는 바울이 복음을 전하며 사람의 손으로 만든 것들은 신이 아니라고 가르치는 것으로 인해, 큰 여신 아데미의 신전이 무시를 당하고 자신들의 생업이 위협을 받고 있다고 하면서 사람들을 선동하며 소동을 벌렸고, 온 시내는 큰 혼란에 빠지게 되었다.  

마침내 큰 무리의 군중들은 그 도시의 연극장으로 모여들었는데, 대부분은 어찌하여 모였는지 조차 알지 못하였다.

그러나 주동자들은 바울과 그와 관련된 사람이면 누구든지 해할 작정이었다.

서기장이 나서서 무리를 설득하며 진정시켰다.

서기장은 그들에게 고발할 것이 있으면 재판 날도 있고 총독들도 있으니합법적인 방법으로 문제를 해결하라고 하였다.

만일 그들이 불법적인 행동을 계속한다면, 폭동 혐의를 받게 될 것이라고 경고하였다.  

에베소에서의 소요가 그친 뒤, 바울은 신자들을 불러 모은 다음 작별을 고하였다.

그는 먼저 마게도냐 지방으로 갔는데, 그때 빌립보와 데살로니가를 방문했을 것으로 보인다.

사도 바울은 에베소에 있을 동안에 고린도전서를 써 보냈고, 고린도후서는 마게도냐에 있을 때 써 보냈다.  

바울은 마게도냐 지방을 다니며 여러 말로 제자들을 격려한 다음 아가야 지방인 그리스에 이르렀다.

바울은 그곳에서 3개월 동안을 지난 뒤 배를 타고 수리아로 직접 건너가려고 하였으나, 자기를 해하려는 유대인들의 음모가 있는 것을 알고 마게도냐를 거쳐 돌아가기로 작정하였다.

바울은 빌립보에서 배를 타고 드로아로 향하였다.

드로아는 바울이 마게도냐로 건너와서 우리를 도우라고 하는 마게도냐 사람의 환상을 보고 마게도냐로 건너가 선교를 시작했던 연고가 깊은 곳이 되고 있다.

그곳에는 동행자 몇 사람이 바울보다 먼저 도착하여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바울은 드로아에서 그들을 만나 칠일간을 머물렀다 (20: 1 -6).

드로아에서 바울은 주일날 밤에 늦게까지 설교말씀을 전하였다.

이는 그가 그 이튿날 드로아를 떠날 계획이었기 때문이었다.

유두고라 하는 청년이 창문에 걸터앉아 바울의 설교를 듣다가 졸음을 이기지 못하여 깜빡 잠에 빠지고 말았다.

그는 3층 창문에서 떨어져 죽고 말았다.

바울은 유두고를 안고 그가 다시 살아날 테니 걱정하지 말라고 하였다.

그래서 예배는 계속되었고 사람들은 날이 새기까지 떡을 떼며 바울과 교제를 나누었다.

바울은 두로아에서 도보로 앗소로 갔다가 거기서 배를 타고 밀레도까지 항해하였다.

오순절 안에 예루살렘에 도착할 계획으로 급히 가는 바람에, 바울은 에베소에 들리지 못하였다.

그러나, 바울은 에베소로 사람을 보내어 교회 장로들을 밀레도로 불렀다.

바울이 그들에게 전한 고별설교의 후반부는 이번 주의 학습구절이 되고 있다.

고별설교의 전반부에서, 바울은 장로들에게 그가 그들 가운데 있는 동안 열정과 성실함을 가지고 행했던 사실을 일깨워주었다.

그는 유대인들에 의한 음모와 간계 가운데서도 겸손과 눈물로 주님을 섬긴 것을 말하였다.

반대와 적대에도 불구하고, 바울은 공적으로나 개인적으로 진리를 가르치는 일을 결코 멈추는 일이 없었다.

전 사역을 통해, 그는 유대인들과 이방인들 모두에게 복음을 전하여 죄를 회개하고 믿음을 갖게 하였다.

 

학습구절 연구:

사명에 대한 바울의 헌신 (사도행전 2022 -24)

20: 22 보라 이제 나는 성령에 매여 예루살렘으로 가는데 거기서 무슨 일을 당할는지

          알지 못하노라

20: 23 오직 성령이 각 성에서 내게 증언하여 결박과 환난이 나를 기다린다 하시나

20: 24  내가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언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조차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

 

바울은 자신이 만나는 모든 사람들에게 그리스도를 전하는 하나님의 선교 사명을 완수하기를

열망하는 자신의 헌신과 소망을 선언하였다.

20 22 -23 - 바울은 장로들에게 예루살렘에 가면 거기서 직면하게 될 위험에도 불구하고 예루살렘으로 갈 계획을 설명하였다.

바울이 그 같은 결정을 한 것은 에베소에 있을 때였다.

사도행전 1921절은 기술하기를, “이 일이 있은 후에 바울이 마게도냐와 아가야를 거쳐 예루살렘에 가기로 작정하여 이르되 내가 거기 갔다가 후에 로마도 보아야 하리라고 하였다.

사도 바울은 예루살렘으로 가는 것을 성령에 매여라는 말로 표현하였다.

매임을 받다라는 말은 문자적으로는 밧줄이나 쇠사슬로 묶이는 것을 뜻하지만, 여기서는 상징적으로 사용되어 강한 의무감이나 이끄는 힘을 나타내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령에 매여 예루살렘으로 간다고 한 바울의 말을 성령에 이끌려 사명감을 가지고 예루살렘으로 가고 있다고 바꾸어 쓸 수 있다.     

바울은 고난 이외에 어떤 대우를 받게 될지 알지 못하고, 하나님의 사명에 충성하겠다는 마음으로 가득 차 있었다.

20 24 경고들에도 불구하고, 바울은 갈 준비가 되어 있었다.

그는 예루살렘에서 위험에 직면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도리어 그는 내가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언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조차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고 하였다

바울이 이 구절에서 한 말은 그가 다른 서신들에서 증언한 말들을 생각하게 한다.

갈라디아서 2 20절에서, 그는 자신에 대해 이미 죽었다고 하였다.

그는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으며, 이제 그가 살고 있는 삶은 그리스도께서 그 안에 거하시는 결과였다.

죽은 사람을 겁주거나 두렵게 할 수 없다.

빌립보서 2 17절에서, 바울은 성도들의 믿음의 제물과 섬김 위에 자신의 피를 기꺼이 전제로 드릴 마음이 있다고 하였다.

바울의 동기는 자기 보존이 아니었다.

그의 열망과 열정은 왕국의 임무를 완수하고 은혜의 복음을 증거하는 것이었다.

바리새인으로 자신의 업적과 공로를 자랑으로 삼았던 바울은 행함으로 의를 이루려고 했던 것을 기꺼이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로 바꾸었던 것이다.

내가 달려갈 길마치려 함에는이란 말은 사도 바울의 일생의 열정을 잘 묘사해 주고 있다.

고린도전서 9 24 -25절에서, 바울은 자신의 사역을 달리기 경주에서 경쟁하는 것에다 비겼다

그는 독자들에게 썩지 아니할 면류관을 얻기 위하여 믿음의 경주를 그같이 하라고 하였다.

바울은 자신의 사역에서 실격되지 않도록 자신을 훈련시켰다.

빌립보서 2 16절에서는, 바울은 나의 달음질이 헛되지 아니하고 수고도 헛되지 아니함으로 그리스도의 날에 내가 자랑할 것이 있게되기를 바란다고 하였다.    

사역이 끝날 무렵에 쓴 디모데후서4 7 절에서는, 바울은 기록하기를, “나는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고 하였다.

우리들 각자는 주 예수께서 우리에게 맡겨주신 과업과 임무를 완수하겠다는 단 하나의 목표를 가지고 사역해야 한다.


우리들 각자는 주 예수께서 우리에게 맡겨주신 과업과 임무를 완수하겠다는 단 하나의 목표를 가지고 사역해야 한다.

 

바울의 염려 (사도행전20 25 -31)

20: 25  보라 내가 여러분 중에 왕래하며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였으나 이제는 다 내 얼굴을 보지 못할 줄 아노라

20: 26 그러므로 오늘 여러분에게 증언하거니와 모든 사람의 피에 대하여 깨끗하니

20: 27 이는 내가 꺼리지 않고 하나님의 뜻을 다 여러분에게 전하였음이라

20: 28 여러분은 자기를 위하여 또는 온 양 떼를 위하여 삼가라 성령이 그들 가운데           여러분을 감독자로 삼고 하나님이 자기 피로 사신 교회를 보살피게 하셨느니라

20: 29  내가 떠난 후에 사나운 이리가 여러분들에게 들어 와서 그 양떼를 아끼지          아니하며

20: 30  또한 여러분 중에서도 제자들을 끌어 자기를 따르게 하려고 어그러진 말을 사람들이 일어날 줄을 내가 아노라

20: 31  그러므로 여러분이 일깨어 내가 삼 년이나 밤낮 쉬지 않고 눈물로 각 사람을 훈계하던 것을 기억하라

 

바울은 계속해서 에베소사람들에게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일에 충성하였음을 보여주었다.

그는 또한 거짓 교사들이 일어나서 복음 사역에 많은 해를 끼치려고 하는 것을 경고하였다.

20 25 바울은 이들 에베소 장로들과 그가 섬기던 다른 사람들이 그를 다시 만날 수 있는 가능성이 없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첫째 이유로는, 바울은 로마를 새로운 선교기지로 삼아 그의 선교 사역을 로마제국의 서쪽 지역으로 옮길 계획을 이미 세우고 있었다 ( 19: 21 참조).

로마교회에 보낸 그의 편지에서, 바울은 로마 제국의 동쪽에서의 선교사역은 완료된 것으로 생각하고 로마에 있는 신자들이 그가 서바나(스페인)로 가도록 도와주기를 바라는 뜻에 대해 언급하였다.

이제는 이 지방에 일할 곳이 없고 또 여러 해 전부터 언제든지 서바나로 갈 때에 너희에게 가기를 바라고 있었으니 이는 지나가는 길에 너희를 보고 너희와 사귐으로 얼마간 기쁨을 가진 후에 너희가 (나를) 그리로 보내주기를 바람이라” ( 15: 23 -24).

둘째 이유로는, 바울은 예루살렘에서의 그의 사역이 죽음으로 끝날 수도 있다는 것을 이해하고 있었던 것이 분명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하나님의 부르심에 순종하기로 결심하였다.

20 26 -27 바울은 에베소 교회 장로들에게 권면의 말을 하기 전에먼저 오늘 여러분에게 증언하거니와라는 말로 자기가 그들 가운데서 행한 일을 상기시키며 본으로 제시하였다.

그는 꺼리지 않고 하나님의 뜻(복음)에베소에 사는 모든 사람들에게 신실하게 그리고 온전하게 전하였음을 밝혔다.  

그래서 그는 심지어 자기는 모든 사람의 피에 대하여 내가 깨끗하()고 떳떳이 말할 수 있었다.

그것은 여러분 가운데서 누가 구원을 받지 못하는 일이 있더라도, 내게는 아무런 책임이 없습니다라는 뜻의 말이다 (표준 새 번역 개정판).

바울은 그 말을 에스겔서 33 1 -6 절에 있는 파숫군의 비유에서 이끌어낸 것으로 보인다.

파수꾼은 나팔을 불어 경고를 하는 책임이 있었다.

그러나 그는 경고를 받은 사람들의 반응에 대해서는 책임이 없었다.

바울은 온전한 복음을 전파하며 가르쳤고, 사람들에게 죄를 회개하고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라고 하였다.

이제 책임은 복음을 듣고 구원으로 초청을 받은 사람들에게 달려있었다.

바울의 이 말은 그 자신의 사역에 대한 변명으로 이해되어서는 안되며, 도리어 에베소 교회 장로들이 곧 일어날 이단들을 대할 때 그들이 취할 한 예로 이해되어야 한다.

  20 28 바울은 장로들에게 여러분은 자기를 위하여 그리고 온 양떼를 위하여

삼가라고 하였다.

그것은 자신을 잘 살피고 양떼를 잘 보살피라는 말이다.

 바울은 교회가 안팎으로 위협당하는 것을 보았다.

그러므로, 교회의 지도자들인 장로들은 자신들과 교회를 위해 경계를 게을리 하지 말아야 하였다.

바른 교리에 대한 관심과 이단으로부터 교회를 지키는 일은 바울이 사역이 끝날 무렵에 쓴 목회 서신의 끊임없는 주제가 되고 있다 (딤전 1 : 3 ~ 4;  6 : 3 ~ 4; 딤후 1: 13;  2 : 15; 4 : 3 -4;   2 : 1 참조).

이 구절에서 교회의 지도자로 일하는 사람들의 사역을 묘사하기 위해 몇 가지 중요한 용어들이 사용되고 있다.

우리가 먼저 기억해야 될 것은 바울이 만나고 있는 지도자들은 장로들”(presbuterio)로 불려지고 있는 점이다 (20: 17).

그런데 바울은 그들에게 말하기를, “성령이 그들 가운데 여러분을 감독자로 삼고 하나님이 자기 피로 사신 교회를 보살피게 하셨()”고 하였다.    

분명한 것은 이 구절이 감독자와 장로를 교회 생활에서 목회적 기능을 가지고 있던 동일한 그룹으로 가리키고 있다는 사실이다.

여러 교회를 감독하는 교구의 감독에 대한 어떤 암시도 없다.

그 같은 교구적인 감독제도는 2세기까지 발달되지 않았다.

이 시점에서, 장로들과 감독자들이란 용어는 사실상 서로 바꾸어 쓸 수 있으며 목자 역할을 하는 지도자들에게 사용되고 있다.

주목해야 할 중요한 사항은 성령이그들을 지도자로 삼으셨다는 사실이다.

사도행전을 읽을 때, 우리는 바울이 그가 개척한 교회들에서 장로들을 택하여세운 것을 발견하게 된다 (14: 23).

나중에, 이 책임은 지역교회들이 맡아 하였다.

집사들처럼 (6: 3), 감독자들은 그들이 부름 받은 일을 위해 성령의 충만함과 은사를 받았다.

이들 감독자들이 부름을 받은 사역의 중요한 본질은 바울이 언급한 하나님이 자기 피로 사신 교회라는 말에서 분명하게 나타나고 있다.

교회라는 용어는, 고린도전서 1 2절에서 고린도에 있는 하나님의 교회라고 한 것처럼, 자주 한 지역의 회중을 가리키는 용도로 쓰이고 있다.

그렇지만, 그 말은 또한 그리스도안에 있는 모든 신자들로 구성된 전 세계적인 교회를 지칭할 때 사용될 수 있다.

핵심이 되는 점은 교회는 하나님이 자기 피로 사신 ()”이기 때문에, 하나님께 속해 있다는 것이다.

그 피는 하나님의 아들이 십자가 위에서 흘리신 것이다.

하나님께서 구원받은 신앙 공동체를 위해 가장 비싼 값을 치르신 것을 생각할 때, 장로들은 자신들을 잘 지키며 양떼를 잘 보살펴야 하였다.

2029 -30 - 바울은 자기가 떠난 후 교회의 건강에 두 가지 잠재적인 위험을 보았다.

첫 번째 것은 교회 밖에 있는 사람들이 사나운 이리와 같이 그들 가운데로 들어와 공격하는 일이 되고 있다.

두 번째의 것은 교인들(“여러분”) 중에서 그릇된 교리(“어그러진 말”)를 가지고 자기를 따르게 유혹하며 진리에서 떠나가게 하는 사람들이 일어날 일이 되고 있다.

사나운 이리혹은 늑대라는 말은 장로들에게도 잘 알려졌던 생생한 묘사법이 되고 있다.

유대인의 묵시 문학과 초기 기독교 문서에서, “이리라는 말은 종종 거짓 교사들을 묘사하는 방법으로 사용되었다.

초기 기독교에서 이 용어를 사용하게 된 데에는 예수님께서 마태복음 715절에서 거짓 선지자들을 삼가라 양의 옷을 입고 너희에게 나아오나 속에는 노략질 하는 이리라고 경고하신 말씀의 영향이 컸던 것으로 보인다.

사도 바울이 장로들에게 경고해 준 다른 한 가지는 교회 안에서 생기는 거짓 교사들이 되고 있다.

이들은 오랫동안 신앙생활을 같이 해오고 있는 관계와 신뢰심 때문에 더 위험 할 수 있다.

자신의 이익을 추수하는 이들 거짓 교사들은 진리를 진리를 왜곡시켜 신자들을 유혹하여 자신들을 따르게 만들고 있다.

믿음이 약하거나 핍박을 당하는 신자들은 그들의 유혹에 이끌리기 쉽니다.

20 31 그러므로, 바울은 그들 장로들에게 깨어있으라고 하였다.

그러면서 그는 내가 삼 년이나 밤낮 쉬지 않고 눈물로 각 사람을 훈계하던 것을 기억하라고 하면서 자신이 그들 중에서 사역한 것을 예를 들었다.

바울은 그같이 말함으로, 그들도 자기가 본을 보인 것처럼 사역하기를 원해야 한다고 말한 것이 분명하다.


바울의 권면 (사도행전 20 32 -35)

20: 32  지금 내가 여러분을 주와 및 그 은혜의 말씀에 부탁 하노니 그 말씀이 여러분을 능히 든든히 세우사 거룩하게 하심을 입은 모든 자 가운데 기업이 있게 하시리라

20: 33  내가 아무의 은이나 금이나 의복을 탐하지 아니하였고

20: 34  여러분이 아는 바와 같이 이 손으로 나와 내 동행들이 쓰는 것을 충당하여

20: 35  범사에 여러분에게 모본을 보여준 바와 같이 수고하여 약한 삶들을 돕고 또 주 예수께서 친히 말씀하신 바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이 있다 하심을 기억하여야 할지니라

바울은 에베소 장로들을 하나님께 맡기면서, 그들에게 하나님의 은혜와 그들이 기다리고 있는 기업을 상기시켜 주었다.

그는 또한 교회 지도자들에게 자신의 본을 따르라고 도전하면서, 교회가 다른 사람들의 필요를 채워주도록 인도할 때에 하나님께서 그들의 필요를 채워주시는 것을 믿으라고 하였다.

20 32 바울이 떠나감에 따라, 직접 혹은 간접적으로 바울의 영향을 받으며 의존했던 교회 지도자들은 다른 어느 때보다 그들을 튼튼히 세워줄 하나님과 그의 은혜의 메시지를 의존하는 일이 더 절실히 요구되었다.

바울은 여러 면에서 미성숙한 그들 지도자들이 하나님의 양떼를 치는 중요한 일을 자신들의 힘이나 방법으로 하려고 한다면, 실패하게 될 것을 염려하였다.   

그래서 바울은 지금 내가 여러분을 주와 및 그 은혜의 말씀에 부탁(한다)”고 하였다

여기서 부탁한다는 말은 어떤 사람을 다른 사람에게 맡겨 돌봄과 보호를 받게 하는 것을 뜻한다.

그들 지도자들이 그같이 할 때에만, 양떼를 치는 목자의 임무를 잘 수행할 수 있었다.

하나님의 은혜의 말씀은 믿음으로 그들을 세워주고 거룩하게 하심을 입은 모든 자가운데서기업이 있게하실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의 힘을 절대로 과소평가해서는 안 된다.


우리는 결코 하나님의 말씀의 능력을 과소 평가하지 말아야 한다.

20 33 -34 바울은 자신의 고별설교를 마칠 때도 시작할 때와 마찬가지로, 자신이 본으로 보인 일을 언급하는 것으로 하였다.

이 경우에, 그는 육체의 필요를 충당하기 위하여 자신의 손으로 일한 관행을 언급하였다.

그는 장로들에게 하나님께서 그들의 필요를 채워주시고 또한 그들로 하여금 다른 사람들의 필요를 충족시킬 수 있게 해 주실 것이라는 사실을 확신시켜 주기를 원하였다.

바울은 자신의 사역이 결코 재정적인 문제가 동기가 되지 않은 것을 확언하였다.

그 같은 사실은 다른 서신에 잘 기록되어 있다 (살전 2: 5; 고전 4: 12; 고전 9: 12, 15).

사실, 바울은 자신의 사역에 대한 생활비를 받을 자신의 권리를 주장하거나 행사하지 않았다. 그것은 고린도 교회의 신자들처럼 미성숙한 신자들에게 한 일이었다(고전 9: 7 -18).

바울은 다른 교회들로부터 도움을 받았다.

예를 들어, 마케도니아에 있는 형제들은 바울이 고린도교회 교인들에게 짐이 되지 않도록 재정적인 필요를 충분히 공급해 주었다 (고후 11: 7 -9).

바울은 고린도 교회에게 말하기를, 내가 모든 일에 너희에게 폐를 끼치지 않기 위하여 스스로 조심하였고 또 조심하리라고 하였다 (고후11: 9 ).

그의 최종 편지 중 하나에서, 바울은 잘 다스리며 말씀을 가르치고 전파하는 일에 수고하는 장로들은 배나 존경을 받을 만하다고 하였다 (딤전 5: 17 -18).

18절의 소의 입에 망을 씌우지 말라고 한 말과 일꾼이 그 삯을 받는 것이 마땅하다고 한 말은 재정적 보상을 가리키는 것이 분명하다.

20 35 바울은 그의 고별설교를 주 예수께서 친히 말씀하신 바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이 있다하심을 기억할지니라는 말로 끝내고 있다.

어느 복음서에서도 정확한 말을 찾을 수 없을지라도, 그 말씀의 진위(眞僞)에 대해 의심할 이유가 없다.

주님께서 행하시고 말씀하신 것들 증에 복음서에 기록되지 않은 것들이 많이 있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21: 25).

탐욕은 세계적인 문제이며 유일한 해독제는 관대함이다.

 

말씀을 나의 상황에 적용하기

·     신자들은 삶 속에서 하나님의 목적을 충실히 성취할 때 삶의 만족을 얻는다.

·       신자들은 다양하고 그릇된 교리들을 인지하고 대결하기 위해 계속 노력해야 한다.

·       신자들은 탐욕에 빠지지 않도록 주의하고,  다른 사람들의 필요에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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