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ntle_05_01.gif
총 게시물 460건, 최근 1 건

알지 못하는 하나님을 알게 함 - 제 7과 - 2018년 1월14일 장년성경공부 - 사도행전 17장 22 – 34절

글쓴이 : 강호길 날짜 : 2018-01-07 (일) 13:20 조회 : 346

장년성경연구 교사용 교재


2018 114일 주일

 

 

7

 

 

알지 못하는 하나님을 알게 함

 

학습구절사도행전 17 22 – 34


성경진리:

죄인인 인간은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통해 한 분이신 참 하나님을 알 수 있다.


주요교리: 회개(悔改)

회개란 진정한 마음으로 죄에서 돌이켜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것이다.


암송구절: 사도행전17 30

알지 못하던 시대에는 하나님이 간과하셨거니와 이제는 어디든지 사람에게 다 명하사

회개하라 하셨으니

In the past God overlooked such ignorance, but now he commands all people everywhere to repent.

 

시작하는 글:

     우리는 알지 못하는 것이 있으면, 알고 싶어하며 알려고 한다.

대답을 찾으려고 인터넷을 검색하기도 하고, 친구에게 전화를 하거나 그 주제에 대한 책을 살 수도 있다.

우리는 알지 못하는 것을 알고 싶어하고, 이해하려고 하며, 다방면으로 깊이 생각하는 존재로 지음을 받았다.

우리는 알지 못하는 것을 알려고 노력한다.

     아덴을 방문했을 때, 바울은 그가 목격한 많은 수의 우상들로인해 마음이 슬프고 아팠다.

그는 한 때는 알지 못하는 신에게 라고 새긴 단도 보았다 ( 17: 23).

아테네 사람들은 철학적 호기심으로 유명했다.

그러므로, 바울은 그들이 간단히 거절할 수 없는 한 가지 제안을 하였다.

바울은 그들이 섬기는 우상의 다양성이 종교적 관심을 나타내고 있음을 인정하였다.

그런 다음 바울은 그들이 알지 못하고 숭배하는 신이 누구인지를 알려줄 수 있다고 하였다.

간단히 말하면, 그는 알지 못하는 하나님을 알게 해 줄 것이다.


본문배경설명:


사도행전 1716– 18 23

     빌립보를 떠난 후 ( 16: 40), 바울은 데실로니가로 갔는데, 거기서 짧지만 성공적인 사역을 하였다.

바울은 자기 관례대로 세 안식일에 걸쳐 회당에 들어가 성경을 가지고 강론하며 뜻을 풀어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였다

몇몇 유대인들과 다수의 경건한 헬라인들과 귀부인들이 복음을 믿고 따르자, 유대인들은 시기하여 시내에서 소동을 일으키며 읍장들에게 끌고 가려고 하였다.

선교사들이 거처하는 집을 습격하였으나, 그들을 발견하지 못하자, 주인인 야손을 읍장들에게 끌고가 고소하였다.

그들이 고소한 죄목은 천하를 어지럽게하며 황제의 명령을 거슬러 다른 임금 곧 예수라 하는 다른 이가 있다고 한다는 것이었다 (17: 1 -9).

신도들은 그 날밤 바울과 실라를 베뢰아로 보냈다.

     두 사람은 베뢰아에서도 유대인의 회당에 들어가 복음을 증거하였다.

베뢰아에 사는 유댜인들은 데살로니가에 사는 유대인들보다 더 고상한 사람들이어서 간절한 마음으로 말씀을 받고그것이 사실인가 하여 날마다 성경을 상고하였다.       

따라서 그들 가운데서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이 많이 생겼다.

그 같은 소식을 들은 데살로니가에 있는 유대인들이 베뢰아까지 와서 군중을 선동하여 소동을 벌였다.

베뢰아의 신자들은 실라와 디모데는 남겨둔 채 바울을 바닷가로 데리고 갔다가 그를 데리고 아덴까지 이르렀다.

바울은 그들에게 실라와 디모데를 자기에게로 속히 오게 하라고 지시하였다 ( 17: 1 -15).   

     아덴은 고대 그리스에서 최고 수준의 문화를 대표했으며 아름다운 조각물들을 자랑하였다.

아덴은 계획된 선교지가 아니었지만, 어디서나 항상 선교사였던 바울은 아덴에서 휴가를 보내는 하나의 관광객이 아니었다.

시내를 걸어 다니다가, 그는 신을 표상한 많은 조각물들을 보았는데, 바울에게 그것들은 단지 이방 우상들이었다.

그들 우상들을 보고, 바울은 이 주요 도시의 영적 상태에 대해 슬퍼하며 격분하였다.

바울은 안식일에는 회당에 나가 유대인들과 이방인 예배자들을 만나 복음을 전하며 토론을 벌였고 광장에 나가서는 매일 만나는 사람들과 변론을 하였다 (17: 16 -17).

     아덴 사람들은 광장에 모여서 윤리와 철학에 대해 토론하기를 즐겼기 때문에, 바울에게는 이미 청중이 준비되어 있었다.

아덴은 소크라테스와 플라톤의 본거지였으며, 아리스토텔레스와 에피쿠로스 학파의 창시자인 에피크로스와 스토아 학파의 창시자로 알려진 제논이 활동무대로 삼았던 곳이다.

에피쿠로스 학파는 쾌락 혹은 향락을 인생의 주요 목적으로 삼았다.

향락의 가장 높은 형태는 고통과 분노 그리고 미신적인 두려움이 없는 평온한 삶이 되었다.

그들은 신의 존재를 부인하지는 않았지만, 그 신들은 인간의 삶에 관심이 없는 것으로 보았다.

제논을 시조(始祖)로 주장하고 있는 스토아 학파 철학자들은 자연에 순응하는 삶을 살기를 원했으며, 인간의 자력과 합리적인 기능에 초점을 맞추었다.

그들은 본질적으로 범신론 자들이었다.

에피쿠로스와 스도아 철학자들이 바울과 쟁론을 할 때 (17: 18), 어떤 사람들은 바울을 말쟁이로 부르며, 바울의 가르침에 호기심을 갖고, 그를 이방 신들을 전하는 사람으로 생각하였다.

바울은 단순히 예수와 부활을 전파하였다.

그들이 바울을 이방 신들을 전하는 사람으로 언급한 것을 보면, 그들은 부활 (아나스타시스)이라는 헬라어를 잘못 이해하여, 바울이 두 개의 외국 신 (), 예수아나스타시스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고 생각한 것이 분명하다.

그들은 바울을 붙들고, “아레오 바고” (Areopagus)로 끌고 갔다.

당시 아레오바고 법정은 청문회 성격의 것으로, 바울 시대에도 여전히 종교와 윤리의 문제에 대한 영향력과 권한을 행사하고 있었다.

바울은 자신의 가르침에 대해 좀더 자세히 설명 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되었다.

누가는 모든 아덴 사람과 거기서 나그네 된 외국인들이 가장 새로운 것을 말하고 듣는 것 외에는 달리 시간을 쓰지 않음이더라는 말로, 아덴 사람들의 철학적 관심과 호기심을 들여다  보게 해주고 있다 (17: 21).

 

학습구절연구


알지 못하는 신 (사도행전 1722 -23)

17: 22  바울이 아레오바고 가운데 서서 말하되 아덴 사람들아 너희를 보니 범사에 종교심이 많도다

17: 23  내가 두루 다니며 너희가 위하는 것들을 보다가 알지 못하는 신에게라고 새긴 단도 보았으니 그런즉 너희가 알지 못하고 위하는 그것을 내가 너희에게 알게 하리라

17 22 바울은 아레오바고 법정가운데 서서 먼저 아덴 사람들아라고 부르고 너희를 보니 범사에 종교심이 많도다라고 하였다.

아덴 사람들아라는 말은 에피쿠로스 철학자들과 스토아 철학자들 그리고 바울의 말을 들으려고 아레오바고에 모인 그 밖의 아덴 사람들을 가리키고 있다.

바울은 자기를 재판하려는 사람들 앞에서 심문을 받는 자로 말하는 것이 아니라, 발언의 기회를 얻어 그들에게 자기가 믿는 하나님을 소개하려는 것이다.

바울이 아덴 사람들을 가리켜 종교심이 많도다고 한 말은, 원어인 헬라어로, 두 가지 뜻으로 번역될 수 있다.

하나는 칭찬의 뜻으로, “독실(篤實)하다는 말이고, 다른 하나는 책망의 뜻으로 미신적이다는 말이 될 수 있다.

성경학자들은 여기서 바울이 아덴 사람들의 종교성이 강한 것을 칭찬해 주는 뜻으로 그 말을 사용한 것으로 보고 있다.

그같이 생각하는 이유의 하나는 그 말이 바울과 아덴 사람들 사이에 공감대를 형성하는 긍정적인 방법이 되기 때문이다.

반면에, 어떤 성경학자들은 바울이 그 용어를 책망하는 뜻으로 사용한 것으로 보고 있는데, 그럴 경우 바울은 그가 목격한 우상들의 수에 대해 경멸감을 나타내고 있었던 것이다.

어느 경우가 되었건, 우상 숭배가 문제의 초점이 되었던 것이다

17 23 - 바울은 너희가 위하는 것들이라는 말로, 아테네에서의 예배의 대상이 물건들이 되고 있음을 강조하였다.

실제로 사원들과 사당들 그리고 제단들이 도시를 점유하고 있었다.

위하는 것들이라는 말은 예배의 행위보다는 그 제단들을 가리키는 것이었다.

바울은 두루 다니다가 알지 못하는 신에게라고 새긴 단도 보았다.

아덴 사람들은 모든 신들을 포함시키기를 원했던 것이다.

아덴 사람들은 어떤 한 신을 숭배한 것이 아니라, 그들은 알지 못하는 신까지 포함하여, 어느 신이든지 혹은 모든 신들을 숭배했던 것이다.

알지 못하는 신에 대한 제단의 존재는 바울이 그들을 예수님께 소개할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다시 말하면, 바울은 아덴 사람들이 이해하고 있던 바를 복음증거의 출발점으로 삼았던 것이다.

그래서 바울은 너희가 알지 못하고 위하는 그것을 내가 너희에게 알게 하리라고 하였다.

실제로, 그들은 한 덩어리의 돌을 예배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이제 바울은 한 분이신 참 하나님을 그들에게 소개하려고 하였다.

 

알려진 창조주 (사도행전 17 24 -29)

17: 24  우주와 그 가운데 있는 만물을 지으신 하나님께서는 천지의 주재시니 손으로 지은 전에 계시지 아니하시고

17: 25  또 무엇이 부족한 것처럼 사람의 손으로 섬김을 받으시는 것이 아니니 이는 만민에게 생명과 호흡과 만물을 친히 주시는 이심이니라

17: 26  인류의 모든 족속을 한 혈통으로 만드사 온 땅에 살게 하시고 그들의 연대를 정하시며 거주의 경계를 한정하셨으니

17: 27  이는 사람으로 혹 하나님을 찾아 발견하게 하려 하심이로되 그는 각 사람에게서 멀리 계시지 아니하도다

17: 28  우리가 그를 힘입어 살며 기동하며 존재하느니라 너희 시인 중 어떤 사람들의 말과 같이 우리가 그의 소생이라 하니

17: 29  이와 같이 하나님의 소생이 되었은즉 하나님을 금이나 은이나 돌에다 사람의 기술과 고안으로 새긴 것들과 같이 여길 것이 아니니라  

17 24- 바울이 그의 말을 창조주이신 하나님으로부터 시작한 것은 교육적인 측면이 되고 있다.

이방인 청중에게 말하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하나님에 대한 그의 설명은 구약성경의 것과 완전히 일치되고 있다.

그는 우주 (코스모스)와 그 가운데 있는 만물을 지으신 하나님이시다

코스모스라는 용어는 핼라인들 모두가 익히 알고 있는 것이었다.

헬라인들에게 신은 하늘과 인간 사회 속에서 발견되는 존재였다.

성경적인 견해는 하나님이 하늘과 땅과 그 가운데 있는 모든 것을 창조하셨기 때문에 그는 지의 주재가 되신다는 것이다.

하나님이 창조주가 되신다는 진리로부터 두 가지의 논리적 결론이 나오게 된다.  

그는 손으로 지은 전에 계시지 아니하시고또한 무엇이 부족한 것처럼 사람의 손으로 섬김을 받으()” 필요가 없다 (17: 25).

바울의 첫 번째 주장은 솔로몬이 자기가 건축한 성전을 봉헌하면서 고백한 말과 같다:

하나님이 참으로 땅에 거하시리이까 하늘과 하늘의 하늘이라도 주를 용납하지 못하겠거늘 하물며 내가 건축한 이 성전이오리이까” (왕상 8: 27).

17 25– “사람의 손이란 말은 이교도들이 인간의 손으로 만들고 그런 다음 예배하는 우상들을 가리킬 수도 있다.   

주된 요점은 하나님은 자기 충족적인 존재이시며, 자기의 부족한 것을 충족하시기 위하여 자기가 지으신 피조물로부터 어떤 것이 필요한 분이 아니라는 것이다.

헬라인들은 하나님에 대한 바울의 묘사에 어떤 점에는 동의하였다.

그들은 신을 전적으로 자기 충족적인 존재로 보았을 것이며, 신은 생명과 호흡을 주는 존재라는 점에 동의했을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에 대한 범신론(汎神論)적인 견해는 바울의 유일신적(唯一神)적인 견해와 전적으로 달랐다.

범신론은 우주 만물이 하나님이라고 믿는 사상이다.

범신론은 세상이 하나님에 의존되어 있다고 믿지만, 세상의 존재와 하나님의 존재는 별개라는 사실을 믿지 않는다.

바울이 선언한 것은 하나님은 창조주가 되시며 창조물을 초월해 계시고, 창조물에게 생명과 의미를 부여해 주신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모든 피조물은 오직 한 분이신 참 하나님을 의존하며 그에게 책임을 지게 된다.

하나님은 피조물들이 자기를 도우며 섬기도록 의존하는 대신에, 그들의 필요물들을 공급해 주신다.

  17 26 -27이들 두 구절은 헬라어 성경에서는 한 문장으로 되어 있는 것으로 바울의 메시지의 핵심이 되고 있다.

하나님은 인류의 모든 족속을 한 혈통으로만드셨다.    

한 혈통이라는 말은 아담을 가리키는 말이 분명하다.

많은 족속이 있지만, 그들은 조상이 같으며 따라서 그들의 한 창조주에게 똑 같이 책임을 지고 있다.

이 말에는 여러 의미가 담겨 있다.

첫째로, 바울이 말한 하나님은 유대인들만이 믿는 하나님이 아니다.

하나님은 한 지역의 유대인들이 믿는 하나님 이상의 것이 되었다.

그는 모든 민족과 족속의 하나님이시다.  

더 나아가서, 어느 한 족속이 인종적인 우월주의를 주장할 수 없다.

그런데 당시 헬라인들은 자신들이 야만족인 다른 모든 족속들보다 우월하다고 믿고 있었다.

바울은 그들의 연대를 정하시며 거주의 경계를 한정하셨으니라는 말로 바로 그 하나님이 모든 민족과 족속의 절대적인 주권자가 되심을 밝혔다.

하나님은 인간의 역사와 한 나라의 흥망성쇠(興亡盛衰)를 주관하시며 경계를 정하시는 분이시다.

바울의 청중들은 나라들의 흥망성쇠를, 특히 그들 자신의 쇠퇴를 알고 있었다.

그런데 어떤 국가도 하나님의 절대적인 통치권과 무관하게 자신의 길을 결정하지 못한다는 사실이다.

27절에서 바울은 피조물과 창조주 사이의 관계를 언급하였다.

하나님께서 인간을 전적으로 보살펴주시는 것은 모든 인간이 그를 찾게 하는데 목적이 있다.

스토아 철학자들은 인간이 이성(理性)을 통해 하나님을 찾을 수 있다고 믿었다.

바울에게 그 같은 방법은 어둠 속에서 더듬어 찾는 것과 같았다.

하나님을 찾는 것은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자신을 계시하신 것을 믿음으로 받아들이는 일이다.

바울은 그는 우리 각 사람에게서 멀리 계시지 아니하도다고 하였다.

  17 28 -29 스토아 철학자들은 인간의 생명과 활동 그리고 존재를 범신론적인

의미로 생각하였다.

그러나 바울은 헬라의 격언을 사용하여 우리가 그를 힘 입어 살며 기동하며 존재하느니라고 함으로, 인간 존재의 모든 것을 만물을 창조하신 한 분이신 하나님께다 고정(固定)시켰다.

28절 후반 절에서, 바울은 헬라의 한 시인이 말한 우리가 그의 소생이라는 말을 인용하였다.

일반적으로 그 말은 스토아 학파의 시인인 아라터스(Aratus)가 한 말로 받아 들여지고 있는데, “그의라는 말은 제우스 신을 가리킨 것으로 보인다.

바울은 인간이 신의 속성을 지니고 있다는 사실에는 동의했지만, 그것은 자연계 전체를 신으로 보는 범신론적인 관점이나 제우스 신의 것이 아니라,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았기 때문에 하나님의 속성을 가진 존재가 된다는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이며 그의 손으로 지음을 받는 존재이기 때문에, 인간의 손으로 만든 우상이 한 분이신 참 하나님을 대표할 수 없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자녀인 우리는 하나님을, 사람의 기술과 고안으로 금이나 은이나 돌에다가 새겨서 만든 우상과 같이 생각해서는 안 된다

도리어, 하나님의 자녀들인 인간은 한 분이신 참 하나님께 그가 받으실 영광과 예배를 드려야 한다.


아들에 의한 심판(사도행전 17 30 -31)

17: 30  알지 못하던 시대에는 하나님이 간과하셨거니와 이제는 어디든지 사람에게 다 명하사 회개하라 하셨으니

17: 31  이는 정하신 사람으로 하여금 천하를 공의로 심판할 날을 작정하시고 이에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신 것으로 모든 사람에게 믿을 만한 증거를 주셨음이니라

1730  - 바울은 알지 못하던 시대에는 하나님이 간과하셨거니와 이제는 어디든지 사람에게 다 명하사 회개하라 하셨으니라는 말로 그가 메시지를 시작할 때 사용했던 무지의 주제로 돌아왔다(17: 23 참조).

아덴 사람들은 거짓 신을 대표하는 우상 숭배에 의해 입증 된 무지의 죄를 범했다.

무지했던 시대에는 하나님은 간과하셨다는 것이다.  

우리는 로마서 3: 25에서 같은 사상을 찾아볼 수 있는데, 거기서 바울은 하나님이 길이 참으시는 중에 전에 지은 죄를 간과하셨다고 하였다.

바울은 루스드라에서 전도할 때는 하나님이 지나간 세대에는 모든 민족으로 자기들의 길들을 가게 방임하셨()”고 하였다 ( 14: 16).

이 구절들 중 어느 것도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은 하나님께 책임이 없다는 것을 암시하지 않고 있다.

로마서 1: 20에서 바울은 도리어 하나님의 계시는 충분하며, “그러므로모든 사람은 핑계하지 못할지니라고 하였다.  

바울이 전한 것은, 그리스도의 오심과 함께, 새로운 복음의 시대가 시작되었으며, 사람들의 무지의 시대가 끝났기 때문에 하나님의 간과의 때도 끝났다는 것이다.

하나님은 그리스도 안에서 자신을 완전하게 계시해 주셨다.

히브리서 기자는 그 같은 사실을 이해하기 쉽게 표현하기를, “옛적에 선지자들을 통하여 여러 부분과 여러 모양으로 우리 조상에게 말씀하신 하나님이 이 모든 날 마지막 날에는 아들을 통하여 우리에게 말씀하셨다고 하고, 그는 하나님의 영광의 광채시요 그 본체의 형상이시라고 하였다 (1: 1 -3).

아덴 사람들에게, 하나님은 더 이상 알지 못하는 하나님이 아니었다.

그러므로 그들이 계속해서 거짓 것들을 예배한다면, 그들은 핑계치 못할 것이다.   

그리스도를 통해 얻을 수 있는 완전한 계시의 맥락에서, 하나님은 이제는 어디든지 사람에게 다 명하사 회개하라고 하셨다.

아덴 사람들에게 진정한 회개는 그들이 무지와 우상숭배에서 돌이켜 그리스도의 오심으로 분명해진 하나님을 나는 지식에 순종하는 것이다.

1731만물의 창조주는 또한 만물의 심판자가 되신다

하나님께서는 세상을 사람들이 하나님을 알고 찾도록 지으셨고 그리스도를 세상에 보내셔서 자기를 완전히 계시하셨으므로, 하나님이 천하를 공의로 심판할 날이 오면 사람들은 모두 그 앞에 서게 될 것이다.

하나님은 의로운 분이시기 때문에, 그의 심판은 완전히 공의로울 것이다.

사람들은 하나님과의 관계와 행한 것에 대해 심판을 받을 것이다.

바울은 하나님이 정하신 사람으로 하여금 천하를 공의로 심판할 날을 작정하(셨다)”고 하였다.  

여기서 사람이라는 말은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키는 것으로, 그는 인자로 심판자의 역할을 수행하실 것이다 ( 7: 13; 고후 5: 10).

하나님은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신 것으로그가 구세주와 재판자가 되는 자격에 대해 논증의 여지가 없는 증거를 주셨다.

하나님께서 제한된 계시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을 어떻게 심판하실지를 아는 것은 우리의 제한된 지식을 넘어선 것이긴 하지만, 우리가 확신할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은 공의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그것은 바르고도 공정한 심판이 될 것이라는 사실이다.

 

일치하지 않은 결정 (사도행전 17 32 -34)

17: 32 그들이 죽은 자의 부활을 듣고 어떤 사람은 조롱도 하고 어떤 사람은 이 일에 대하여

          네 말을 다시 듣겠다 하니

17: 33 이에 바울이 그들 가운데서 떠나매

17: 34  몇 사람이 그를 가까이하여 믿으니 그 중에는 아레오바고 관리 디오누시오와 다마리라하는 여자와 또 다른 사람들도 있었더라

17 32-33 -  에피쿠로스 철학자들은 인간의 존재는 죽음으로 끝난다고 믿었다.

반면에 스토아 철학자들은 영혼 불멸설만 믿었다.

그러므로, 헬라인들에게 몸의 부활은 불합리한 것으로 생각되었다.

문제는 바울이 그들에게 예수님과 그의 부활을 전한 것으로, 죽은 자의 부활이었다.

바울이 그같이 몸의 부활을 전하자, 관중들 중에 어떤 사람들은 바울을 조롱하기 시작하였다.

그렇지만, 바울이 가르치는 것을 더 듣고 싶어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들은 네 말을 다시 듣겠다고 하였다.

그들은 바울의 말에 설득되지는 않았을지라도, 적어도 후에 그 것에 대해 들으려는 마음이 열려있었다.

바울은 아레오바고 법정을 떠났고 얼마 후에 아덴을 떠났다.

17 34누가는 바울이 떠날 때 몇 사람이 그를 가까이 하며 복음을 믿은 사실에 주목하였다.

누가가 개종자들 중 두 명을 이름으로 언급 한 것은 흥미 있는 일이다.

하나는 아레오바고 관리인 디오누시오라는 남자와 다른 하나는 다마리라는 여자이다.  

교회 역사가 유세비우스에 의하면, 디오누시오는 아덴 교회의 첫 번째 감독으로 섬겼다.

다마리의 경우, 여자가 아레오바고 법정 모임에 참석한 것은 특이한 일이 되었을 수 있지만, 그녀는 바울이 회당에서 가르치는 것을 들었던 유대인 개종자였던 것으로 보인다.

성경 해석자들 중에는 바울의 전도가 지식인들에 대한 조건부 항복이자 실패라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본문을 자세히 살펴보면 그렇지 않다.

바울은 그들의 종교적 호기심을 언급하고, 그들의 한 시인의 말을 인용하며, 그리고 효과적으로 의사 소통을 할 수 있는 언어를 사용함으로 헬라인 관객들을 위한 다리를 놓는 반면에, 복음을 충실하게 전하였다.

그는 복음의 씨앗을 뿌렸고 어떤 사람들은 구원을 받았다.


말씀을 나의 상황에 적용하기

·        사람들은 진리를 추구하며, 삶의 의미를 찾고 있다.

·        하나님은 인간에게 자신을 계시해 주시기 때문에 우리는 그를 알고 예배할 수 있다.

·        아무도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수 없다.

·        사람들은 다양한 방법으로 응답 할 수 있지만, 신자들은 복음의 진리를 계속 전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