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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원받은 가족 - 제 6과 - 2018년 1월 7일 주일 장년성경연구 - 사도행전 16장 22 -34절

글쓴이 : 강호길 날짜 : 2017-12-31 (일) 12:45 조회 : 211

장년성경연구 교사용 교재


2018 1 7일 주일

 

 

6

 

 

구원받은 가족

 

학습구절사도행전 1622 -34


성경진리:

하나님은 우리의 영향력을 사용하여 다른 사람들을 그에게로 인도하신다.


주요교리: 가족

남편은 가족을 부양하며, 보호하고 인도할 하나님께서 맡겨주신 책임이 있다


암송구절: 사도행전16 31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받으리라.

“Believe in the Lord Jesus, and you will be saved – you and your household.”


시작하는 글:  


어떤 일이나 소식은 다른 사람들에게 알릴만한 것이 못되어 알리지 않고 자신만 알고 있는 것들이 있다.

반면에, 어떤 일이나 소식은 자랑하고 싶어서 알리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것들이 있다.

직장에서의 승진, 결혼, 혹은 아기의 출산등은 알리지 않고는 기다릴 수 없는 일들이다.

특별히 사랑하는 사람들이나 가까운 친척들에게는 더욱 그렇다.

우리는 사람들이 그 같은 소식을 듣고 함께 기뻐하며 축하해 주기를 바란다.

성경에는 우리가 전해 줄 수 있는 가족에 관한 갖가지 이야기들이 담겨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이 나이가 많이 들었을 때 아들을 약속해 주셨다.

그의 아내 사라는 그 소식을 듣고 속으로 웃었고 금방 웃은 것을 부인하기 까지 하였다 (18: 12 -15).

요셉은 자기 아버지와 형제들이 자기에게 절을 하는 꿈을 꾸었는데, 그것을 말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었다 ( 37: 5 -10).

마리아는 한 천사로부터 이 세상에 태어나게 할 아이에 관한 소식을 받았다.

마리아가 들은 소식은 요셉으로 하여금 그들의 관계를 재고하게 만들었다.

사도행전에서 우리는 복음의 진리를 발견 한 간수를 만나게 된다.

그의 가족은 복음의 메시지를 들었을 뿐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구원을 받았다.


본문배경설명:

사도행전 16 16절부터 17 15절까지

지난 주에 우리는 두 개의 선교 팀이 조직된 것에 대해 읽었다.

바울과 바나바는 서로 갈라서게 되었고, 실라와 디모데는 바울에 합류하여 팀을 이루었다.

바울의 새 팀은 유럽 복음화로 이어지는 선교 여행을 시작하였다.

그들은 먼저 브루기아와 갈라디아 지역을 지나서 비두니아 지역으로 가려고 하였다.

그런데, 그 선교 여행은 성령의 인도를 받고 있은 것이 분명하다.

예를 들어, 16: 6은 성령님이 아시아 지역에서 복음을 전하지 못하게 하신 것으로 밝히고 있다. 그래서 그들은 무시아를 지나 드로아로 내려갔는데, 드로아에 있는 동안에 바울은 한 사람이 마게도냐로 건너와서 우리를 도우라고 청하는 환상을 보았다(16: 7 -10).

바울은 그 환상이 마게도냐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라는 주님의 부르심인 것을 깨달았다.

선교 팀은 배로 드로아를 떠나 네압볼리에 들렸다가 빌립보에 도착하였다.

16 10절의 우리라는 인칭대명사가 나타내고 있듯이, 사도 행전의 저자인 누가는 드로아 에서 바울 선교 팀에 합류한 것으로 보인다.  

누가는 빌립보를 마게도냐 지방의 첫째 가는 성로마의 식민지로 소개하고 있다 (16: 11 -12).

빌립보는 주전 168년에 마게도냐의 나머지 지역과 함께 로마의 지배를 받게 되었다.

빌립보는 누가가 로마의 식민지로 묘사한 유일한 도시가 되고 있는데, 로마의 식민지는 로마법을 따랐다.

바울은 어느 성읍을 방문하게 되면, 먼저 하는 것이 안식일이 되면 유대인 회당에 참석하는 것이었다.

빌립보에는 10명의 성인 남자를 필요로 하는 회당을 세울 만한 수의 유대인들이 살았던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

그렇지만, 성문 밖 강가에서 기도하기 위해 모이는 유대인 여인들이 있었다.

바울은 안식일이 되자 기도할 곳을 찾다가 여인들이 모여있는 곳에 가서 그들에게 복음을 전할 수 있게 되었다.

그들 중에 루디아라는 여인이 있었는데, 바울이 전하는 복음을 듣고 주님을 믿게 되었고 온 가족과 함께 침례를 받았다.

그 지역 사람들은 자주색 염료를 제조하고 사용하는 기술로 유명했다.

루디아는 그 업에 종사하였다.

개종 한 후, 루디아는 선교 팀에게 자기 집에 들어와 유하면서 자기 집을 선교 본부로 사용하도록 강청하였다.

빌립보에 머물고 있는 동안, 선교사들이 기도하는 곳으로 가고 있을 때 귀신 들린 여종 하나가 그들을 따라다니면서 큰 소리로 지극히 높은 하나님의 종이라고 하였다 (16: 17).

여러 날을 그같이 하므로, 바울은 그 귀신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내가 명하노니 그에게서 나오라고 하였다.

그러자 귀신이 즉시 나왔다.

점쟁이의 주인들은 여종이 귀신에게서 벗어난 것을 기뻐하지 않았다.

그들은 단지 자기들의 돈벌이의 희망이 끊어진 것에만 관심이 있었다.

그들은 바울과 실라를 광장에 있는 치안 판사들에게 끌고 갔다(16: 19).

그들이 고발한 죄목은 이들은 유대인들인데, “성을 심히 요란하게 하여 로마 사람인 우리가 받지도 못하고 행하지도 못할 풍속을 전한다는 것이었다 (`16: 20 -21).

치안 판사들의 가장 큰 관심사는 사회 질서와 평온을 유지하는 것이었다.

당시 로마 시민 중에서 외국 종교를 전파하는 것을 금하는 법이 있었고, 그리고 광장에 모여있던 군중들은 바울과 그의 동료들이 그 같은 일을 하고 있는 것으로 분명하게 나타내고 있었다.

 

학습구절연구

선교사들이 직면한 상황 (사도행전 16 22 -24)

16: 22 무리가 일제히 일어나 고발하니 상관들이 옷을 찢어 벗기고 매로 치라 하여

16: 23 많이 친 후에 옥에 가두고     간수에게 명하여 든든히 지키라 하니

16: 24 그가 이러한 명령을 받아 그들을 깊은 옥에 가두고 그 발을 차꼬에 든든히 채웠더니

16 22 - 치안 판사들의 과잉 반응은 놀라운 일이 되고 있다.

도덕적 스캔들이나 커다란 교란이 없는 한 새로운 종교는 그 사회에서 용인되었다.

그러므로, 우리는 치안 판사들이 군중들의 욕구와 요구에 응했다고 추측할 수 밖에 없다.

35 ~ 40 절에 기록된 내용을 보면, 치안 판사들이 혐의의 타당성을 조사하려는 시도가 없었던 것을 알 수 있다.

대신 치안 판사들은 선교사들의 옷을 찢어 벗기고 매로 치()” 하였다.

로마 시민이 그러한 형벌을 받는 것은 로마법으로 허용되지 않았지만, 바울은 매를 맞고 옥에 갇힐 때까지 자신들이 로마 시민인 것을 그들에게 알리지 않았다 (16: 17).

16 23 -24 - 선교사들에게 매를 많이 친 후에, 치안판사들은 간수에게 그들을 옥에 가두고” “든든히 지키라라고 명령하였다.

간수는 그 명령을 철저하게 받아들였다.

그는 선교사들을 깊은 옥에 가두고 그 발을 차꼬에 든든히 채웠().”

 차꼬에는 다리가 들어가도록 두 개 이상의 구멍이 나 있었고, 다리를 벌리면 더 심한 고통을 주었다.

깊은 옥과 차꼬는 죄수들이 탈출할 수 없도록 설계된 것이었다.

 

찾아온 기회 (사도행전 16 25 -28)

16: 25 한밤중에 바울과 실라가 기도하고 하나님을 찬송하매 죄수들이 듣더라

16: 26  이에 갑자기 큰 지진이 나서 옥터가 움직이고 문이 다 열리며 모든 사람의 매인 것이 다 벗어 진지라

16: 27  간수가 자다가 깨어 옥문들이 열린 것을 보고 죄수들이 도망한 줄 생각하고 칼을 빼어 자결하려 하거늘

16: 28  바울이 크게 소리 질러 이르되 네 몸을 상하지 말라 우리가 다 여기 있노라 하니

16 25- 한밤중에 죄수들이 갇혀있는 감방(監房)에서 흘러나오는 소리는 보통 고통에 찬 부르짖음이나 저주에 찬 욕이 되기 쉽다.

선교사들은 자신들이 처한 비참한 상태를 탄식하거나 부당한 대우에 대해 불평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들은 기도하고 하나님을 찬송함으로 하나님께 대한 자신들의 믿음과 확신을 나타냈다.

죄수들이 듣더라는 누가의 언급은 중요한 의미를 담고 있다.

간수는 물론 다른 죄수들도 선교사들의 행동을 목격하였고 그들이 찬송하며 서로 주고 받는 말을 경청했던 것이다.

짐작하건대, 다른 죄수들은 선교사들의 영향을 받아, 탈출할 수 있는 기회가 왔는데도 도망가지 않고 남아있었던 것이다.

우리의 행동이나 증거가 다른 사람들에게 어떤 영향력을 끼치게 될지를 결코 알지 못한다.

16 26 -28 감옥에 갇혀있는 선교사들이 가장 위협적이고도 최악의 상황에 처해 있으면서도 하나님을 신뢰하고 찬송하였을 때, 하나님은 그 같은 상황을 바꾸어 놓는 놀라운 일을 행하셨다.

갑자기 큰 지진이 나서 옥터가 움직이고옥문이 다 열리며 죄수들을 채웠던 쇠사슬도 풀어져 나가 버렸다.

지진으로 인해 자다가 깨어난 간수는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아보려고 감옥으로 급히 달려갔다.

그는 최악의 악몽이 되고 있음이 틀림없는 일을 목격하였다.

그는 옥문들이 열린 것을 보고 죄수들이 도망한 줄 생각하였다.

우리는 이 사건을 간수의 입장에서 이해할 필요가 있다.

그는 로마 군인으로 의무감과 책임감이 강한 사람이었다.

그는 자신이 맡은 죄수들을 생명까지도 내걸고 지킬 책임이 있었다.

죄수들이 탈주할 경우, 간수들은 탈주한 죄수들이 받을 벌을 대신 받는 것이 보통이었다. 거기에는 극형인 사형까지도 포함되었다.

우리가 알아야 될 또 한가지 사실은 헬라인들과 로마인들에게 있어서 피할 수 없는 중대한 문제에 직면할 경우 많은 사람들이 명예를 지키기 위해 자살을 해결방법으로 삼았다는 사실이다.

간수는 자신이 책임지고 있는 죄수들이 없어진 것을 보고해야 한다면 자신의 목숨이 위태롭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래서 간수는 검을 빼어서 자결하려고 하였다.

바울은 큰 소리로 그를 부르며, “네 몸을 상하지 말라 우리가 다 여기 있노라고 하였다

그것은 어쩌면 그가 그때까지 들었던 가장 기쁜 말이 되었을 수 있다.


실라의 프로필

·       실라와 실루아노는 같은 이름을 헬라어와 라틴어로 표현한 것이다.

·       예루살렘 초대 교회의 지도자 ( 15: 22).

·       이방인 신자들의 구원문제에 대한 예루살렘 공회의 결정을 안디옥에 있는 신자들에게 전해 줌 ( 15: 22)

·       바울을 따라 그의 두 번째 선교 여행에 동행함 ( 15: 40 -41)

·       빌립보에서 바울과 함께 투옥됨 ( 16: 19 -24)

·       베드로의 필경사 및 / 또는 편지 전달자로 봉사 함 (벧전5: 12)


주 예수를 믿고 구원을 받음 (사도행전 16 29 -32)

16: 29 간수가 등불을 달라하며 뛰어 들어가 무서워 떨며 바울과 실라 앞에 엎드리고

16: 30 그들을 데리고 나가 이르되 선생들이여 내가 어떻게 하여야 구원을 받으리이까 하거늘

16: 31 이르되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받으리라 하고

16: 32 주의 말씀을 그 사람과 그 집에 있는 모든 사람에게 전하더라

16 29-30 간수는 등불” (어쩌면 횃불)을 가져오게 한 다음 곧 깜깜한 감옥 안으로 뛰어 들어갔다.

바울과 실라를 발견한 간수는 무서워 떨면서 그들 앞에 엎드렸다.

그는 놀랍고도 엄청난 일에 압도되었던 것이다.

간수는 또한 바울과 실라가 감방에 갇혀 있으면서 행한 일을 직접 목격하였고 그들이 하는 말을 들었으므로, 그들이 전하는 하나님과 복음에 대해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선교사들을 밖으로 데리고 나온 후에, 간수는 그들에게 매우 중요한 질문을 하였다.

선생들이여 내가 어떻게 하여야 구원을 받으리이까?”

1631 간수의 질문은 진지하고 단순한 것이었으며 바울의 대답은 간단 명료하고 핵심을 찌르는 것이었다.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받으리라.”

선교사들은 간수에게 예수님을 믿는 믿음만이 그 자신과 그의 온 집이 구원을 받는 길이 됨을 말해 주었던 것이다.

그 말은, 다음 구절에서 확실하게 밝히고 있듯이, 결코 간수의 결정에 의해 그의 집이 구원을 받게 될 것이라는 뜻이 아니다.

성경이 분명하게 밝히고 있는 것은 그리스도를 믿는 결정은 개인 각자가 한다는 것이다.

16 32 바울이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는 말로 가족의 구원 문제를 언급한 것으로 인해, 간수가 그의 온 가족에게 복음을 전해야겠다는 생각을 한 것이 분명하다.

간수가 그의 가족에게 어떻게 알렸는지를 누가는 설명하지 않았기 때문에, 우리는 약간의 추측을 할 수 밖에 없다.

한 가지 추측은 간수의 집이 감옥 가까이에 있었다는 것이다.

그 같은 추측은 지진이 난 후 간수가 빨리 옥에 도착할 수 있었던 것과 후에 바울과 실라를 자기 집으로 데려다가 간호해 주며 접대해 준 것에 대한 설명이 되고 있다 (16: 34-3 -34).    

분명한 것은 바울과 실라가 주의 말씀을 그 사람 (간수)과 그 집에 있는 모든 사람에게 전하(였다)”는 사실이다 (16: 32).  

그 말은 선교사들이 구원의 길에 대해 31절에서 말한 것 보다 더 자세하게 설명해 준 것을 나타내고 있다.

우리는, 바울과 실라가 한 것처럼, 언제든지 그리고 어느 누구에게나 복음을 설명 할 준비를 하고 있어야 한다.

간수는 구원의 문제를 그의 가족들을 대신해서 결정할 수 없었다.

믿음의 문제는 가족들 각자가 자신을 위해 결정해야 되었다.

그러나 간수는 가족들 각자가 복음의 메시지를 듣고 믿음의 결정을 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있게 하였다.

간수가 그의 가족에게 영적 영향력을 적절하게 발휘한 것이 분명하다.

우리는 간수가 가족이 복음을 듣고 구원을 받도록 행한 중요한 역할을 간과하지 말아야 한다.

우리는 가끔 선의의 그리스도인 부모들이 자기는 자녀들에게 결정을 강요하고 싶지 않기 때문에 자녀들에게 예수님을 믿으라고 하거나 교회에 나가라고 하지 않는다는 뜻으로 말하는 것을 들을 때가 있다.

그러나 우리가 기억해야 될 것은 우리 자녀들이 세상으로부터 그리스도를 위해 결정하지 못하도록 엄청난 강요를 받고 있다는 사실이다.

우리는 가족에게 우리의 삶을 변화시켜 주는 분에 대해 말해 주어야 한다.

변화의 삶(사도행전 16 33 -34)

16: 33  그 밤 그 시각에 간수가 그들을 데려다가 그 맞은 자리를 씻어 주고 자기와 그 온 가족이 다 침례를 받은 후

16: 34  그들을 데리고 자기 집에 올라가서 음식을 차려 주고 그와 온 집안이 하나님을 믿으므로 크게 기뻐하니라

16 33 일단 복음을 듣고 믿게 되자, 간수가 바울과 실라의 필요를 얼마나 빨리 깨달았는지에 주목하는 것은 흥미롭고도 교훈이 되는 일이다.

그리스도께로 우리의 영적 눈이 열리게 되면, 다른 사람들의 필요를 보는 마음의 눈도 곧 열리게 된다.

선교사들의 고통을 보게 된 간수는 그 밤 그 시각에그들을 데려다가 그 맞은 자리를 씻어 주(었다).

간수가 복음을 믿고 구원을 받은 일에는 즉각적인 반응과 결과가 따랐다.

사도 행전의 기록 전체를 통해, 누가는 구원의 체험에 따르는 증거에 초점을 맞추었다.

그것들은 넘치는 기쁨이나, 찬양, 혹은 구체적인 선행 등이 되고 있다

진정한 구원의 체험에는 지속적인 삶의 변화가 따르며 관찰 가능한 믿음의 증거가 나타난다.

그리스도께로 우리의 영적 눈이 열리게 되면, 다른 사람들의 필요를 보는 마음의 눈도 곧 열리게 된다.

간수는 선교사들의 맞은 자리를 씻어주()” 친절을 베풀었지만, 실제로는 자기와 그 온 가족이 다 침례를 받(음으로)” 상처보다 훨씬 더 중요한 죄를 씻음 받는 은혜를 받았다.

믿음은 침례에 선행되는 것으로, 즉 침례는 믿음과 구원의 증거로 받는 것이며 진정한 믿음의 자연스러운 결과가 되고 있다는 사실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

16 34 - 이제 간수는 예기치 못한 일을 하였다.

그것은 간수가 선교사들을 데리고 자기 집에 올라가서 음식을 대접하며 그와 온 집안이 하나님을 믿게 된 것을 축하하며 기뻐한 것이다.

먼저, 간수는 선교사들이 탈출을 시도할 것을 염려하지 않아도 되었다.  

이는 지진이 나서 탈출할 충분한 기회가 있었는데도, 그들이 도망치지 않고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로마 시민인 그가 유대인들이자 죄수인 선교사들을 집으로 데리고 와서 음식을 함께 나눈 것은 엄청난 일이 되고 있다.

간수가 그들을 더 이상 죄수로 보지 않고 그리스도안에서 형제들로 본 것을 나타내고 있다.

복음은 인종, 계급, 언어, 사회적 지위와 같은 장벽을 허물어뜨린다.

복음은 인종, 계급, 언어, 사회적 지위와 같은 장벽을 허물어뜨린다.

죄수들은 간수의 집에서 음식을 함께 나눈 후 감옥으로 돌아왔음이 분명하다.

또한 치안관(“상관”)들이 간수에게 부하를 보내어 이 사람들을 놓으라고 명령한 것을 보면, 바울과 실라에 대한 고발은 꾸며낸 것임을 알았음이 분명하다(16: 35 -36).

바울은 자기와 실라가 로마 시민임을 주장하며, 치안관들이 친히 와서 우리를 데리고 나가야 하리라고 하면서 떠나기를 거절하였다.

바울은 로마 사람인 우리를 죄도 정하지 아니하고 공중 앞에서 때리고 옥에 가두었다가가만히 내 보내려는 것은 옳지 않다고 하였다.

부하들이 바울의 말을 듣고 치안관들에게 보고하자, 그들은 바울과 실라가 로마 시민이라는 말을 듣고 두려워하여 직접 와서 사과하고 그들을 옥 밖으로 데리고 나가 그 성에서 떠나기를 청하였다.

우리는 바울이 왜 투옥되고 구타 당하기 전에 로마 시민의 권리를 주장하지 않고 그 후에 했는지에 대해 궁금해 할 수 있다.

아마도 그는 자신을 변호하기 보다는 자기가 떠난 후 잠재적인 박해로부터 갓 믿기 시작한 빌립보의 신자들을 보호하기를 더 원했을 수 있다.

바울과 관련하여 한 번 잘못을 범했기 때문에, 로마 당국자들은 바울이 남겨두고 간 신자들에게 간섭을 덜 했을 것으로 보인다.

바울과 실라가 옥에서 나와 루디아의 집에 들어가서 형제들을 만나보고 위로하고빌립보를 떠난 사실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 (16: 40).   

 

말씀을 나의 상황에 적용하기

·        신자들은 핍박을 받고 조롱을 당할 때도 하나님을 찬송할 수 있으며, 하나님은 그 같은 신자들의 반응을 다른 사람들에게 믿음의 증거로 사용하시는 것을 알 수 있다.

·        신자들은 믿지 않는 다른 가족들에게도 예수님을 전해야 한다.

·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얻는 구원은 말이나 행함으로 다른 사람들이 볼 수 있는 믿음의 표현으로 이어지게 마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