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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속된 메시아 - 제 4과 - 2017년 12월 24일 주일 장년성경연구 - 누가복음 2장 25 -38절

글쓴이 : 강호길 날짜 : 2017-12-19 (화) 11:18 조회 : 134

장년 성경연구 교사용

2017 12 24일 주일

 

4

 

약속된 메시아

 

학습구절: 누가복음 225 -38


성경진리:

예수님은 하나님의 약속된 메시아로, 그를 믿는 모든 사람에게 구원을 베풀어 주시는 분이시다


주요교리구원

구원은 십자가의 피로 믿는 자들을 위해 영원한 구속을 이루어 주신 분인, 예수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믿고 주님으로 영접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값 없이 주시는 하나님의 선물이다.


암송구절:  누가복음 27

첫아들을 낳아 강보로 싸서 구유에 뉘었으니 이는 여관에 있을 곳이 없음이러라   

And she gave birth to her firstborn, a son. She wrapped him in cloths and placed him in a manger, because there was no guest room available for them. 


시작하는 글:


우리가 축하하며 매년 지키는 성탄절은 음악이 없으면 같지 않을 것이다.

식당이나 길거리 혹은 사무실에서 흘러나오는 성탄절 노래는 성탄절 분위기를 돋우어 준다.

고요한 밤 거룩한 밤같은 곡은 성탄절의 의미를 더해 준다.

누가는 첫 번째 성탄절이 음악을 강조했다.

그는 엘리자벳의 축복에 대한 응답인 마리아의 찬가를 기록하였다( 46 -55).

그는 또한 사가랴가 아들의 이름을 밝힌 후에 부른 찬송(1: 68 -79)과 천군 천사들의 찬송 (2: 14), 그리고 마지막으로 시므온의 예언적 찬양(2: 29 -32)을 기록하였다.

첫 번째 성탄절의 이 마지막 노래는 우리가 이과에서 배우게 될 학습구절이다.


본문배경설명:

누가복음 2 1 -40; 사도행전 13 23 -25

바울이 바나바와 1차 선교 여행을 했을 때 비시디아 안디옥에서 전한 사도 행전 13 장의 메시지로 잠시 돌아가 보자.

이스라엘 역사를 간략하게 요약한 후에, 바울은 하나님의 마음에 맞는 사람인 다윗 왕에게 초점을 맞추었다.

그러면서, 바울은 하나님이 약속하신 대로 이 사람의 후손에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구주를 세우셨으니 곧 예수라고 선언하였다 (13: 23.

하나님께서는 약속하신 대로 오랫동안 기다려온 메시아이신 구세주를 다윗의 후손에서 세워주셨는데, 그의 이름은 예수가 되고 있다.

그런 다음 바울은 침례 요한의 대중적인 사역을 언급함으로써 예수님의 탄생을 역사적인 사건의 맥락에다 연결시켰다.

요한의 회개의 침례는 다가오는 왕국과 예수님의 사역을 위한 길을 열어주는 일이 되었다 (13: 24 ).

침례 요한은 그의 공 사역을 마치기 전에, 자신이 메시아가 아님을 분명히 하였다.

실제로, 그는 자신을 메시아보다 훨씬 밑에 있는 것으로 생각했기 때문에 자기는 그 발의 신발끈을 풀기도 감당하지 못하리라고 하였다 (13: 25).

이제 메시아이신 예수를 자세히 살필 때, 우리는 하나님께서 특별한 방법으로 사용하시기 위하여 선택하신 평범한 두 사람, 즉 시므온과 안나가 성전에서 아기 예수를 만난 일과 그 아기에 대한 그들의 증언에 초점을 맞추게 될 것이다.

누가복음 2장에 기록된 예수님의 출생에 대한 전체 이야기는 학습구절의 더 큰 배경이 되고 있다.

의사이자 역사가였던 누가는 예수님의 탄생을 큰 역사적인 관점에서 시작하고 있다.

당시 가이사 아구스도가 내린 칙령으로 말미암아 로마제국의 모든 사람들은 호적 등록을 하러 각기 고향으로 돌아가게 되었다 ( 2: 1 -2).   

하나님의 섭리로, 이 일은 요셉과 마리아가 베들레헴으로 가게 된 계기가 되었는데, 이는 요셉이 베들레헴 출신인 다윗의 집과 가계에 속해 있었기 때문이었다..  

마리아는 베들레헴에서 아들을 낳았는데, 그것은 베들레헴 에브라다야 너는 유다 족속 중에 작을지라도 이스라엘을 다스리는 자가 네게서 내게로 나올 것이라고 한 미가의 예언을 성취시키는 일이 되었다 ( 5: 2).    

하나님은 그리스도의 탄생을 비천한 목자들에게 알리는 방법을 택하셔서, 구세주, 그리스도 주다윗의 동네에서 태어난 사실을 확실하게 밝혀주셨다 ( 2: 11).

천군 천사들의 찬양을 들은 후에, 목자들은 아기를 보러 베들레헴으로 곧장 향하였다.

마리아와 요셉과 구유에 누워있는 아기를 찾은 목자들은 천사가 그들에게 알려준 것을 전해 주었다.

마리아는 그 모든 말을 마음에 소중히 간직하고 아들에 관해 듣고 있는 사실을 깊이 생각하기 시작하였다.

누가복음 2 21 -24절은 아기 예수에게 일어난 두 가지 다른 사건을 간단하게 기록하고 있다.

첫 번째는, 아기 예수가 탄생한지 팔일 째 되는 날에 언약의 표징으로 할례를 받은 것으로,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지시해 주시고 ( 17: 10 -14) 모세에게 명령하신 일이 되고 있다 ( 12: 3).

그것은 예수님이 언약의 백성에 속해 있음을 나타내 주고 있다.

할례를 받을 때, 아기는 공식적으로 예수라는 이름도 받았는데, 실제로 그것은 그가 잉태되기 전에 천사가 마리아에게 알려준 것이었다( 1: 31).

그 이름은 여호와는 구원하신다는 뜻으로, 구세주로서의 예수님의 사역을 강조해 주고 있다.  

헬라 음역으로 예수라는 이름은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할 자가 되고 있다( 1: 21).     

두 번째의 사건은 아기 예수의 정결예식으로, 그가 태어나서 40일이 되는 때에 행해진 일이다.

레위기에 기록된 율법은 여인이 아들을 낳으면 그 아기가 여덟째 날에 할례를 받을 때까지 칠일 동안 부정하다고 규정하고 있다 (레위기 12).

그런 다음에도, 산모는 피로 더럽게 된 몸이 깨끗하게 될 때까지 삼십삼일 동안 집 안에 계속 머물러 있어야 하였다.

그 기간 동안 산모는 의식적으로 부정하기 때문에 성물(聖物)을 만지지도 말며 성소에 들어가지도말아야 되었다.  

그같이 하여 총 40일 동안의 정결기한이 끝나면, 산모는 번제로 드릴 일년 된 어린 양과 속죄제로 드릴 집비둘기 새끼나 산비둘기를 회막 문으로 가지고 가서 제사장에게 바쳐야 하였다 ( 12: 6).

만일 산모가 너무 가난하여 어린 양울 드릴 형편이 못되면, 산비둘기 두 마리나 집비둘기 새끼 두 마리를 가져다가 하나는 번제물로, 하나는 속죄물로 드릴 수 있었다 ( 12: 8).

마리아가 어린 양을 드리지 못하고, 비둘기 한 쌍을 가지고 와서 여호와 하나님께 드린 것을 보면, 만왕의 왕이신 예수님이 자기가 지으신 창조 세계에 얼마나 가난한 상태로 오셨는지를 알 수 있다.

이 때 아기 예수를 성전에 데리고 와 주께 드린 것은 태에서 처음 난 남자 아이는 거룩하게 구별하여 여호와께 드리라고 한 출애굽기13 2 절과 12 절에 근거되고 있다.

지구상에서 펼쳐진 가장 놀라운 드라마에서 평범하지만, 매우 중요한 역할을 맡은 두 인물이 등장한 것은 바로 이 시점이 되고 있다.

성경에서 단지 한 곳에서만 언급되고 있는 사람들인 시므온과 안나는 약속된 메시아, 즉 그를 믿는 모든 사람들에게 구원을 베풀어 주시는 구세주가 태어난 것을 증거한 최초의 인물들이 되고 있다.

 

학습구절연구


시므온의 찬송 (누가복음 225 -32)

2: 25    예루살렘에 시므온이라 하는 사람이 있으니 이 사람은 의롭고 경건하여 이스라엘의 위로를 기다리는 자라 성령이 그 위에 계시더라

2: 26    그가 주의 그리스도를 보기 전에는 죽지 아니하리라 하는 성령의 지시를 받았더니

2: 27    성령의 감동으로 성전에 들어가매 마침 부모가 율법의 관례대로 행하고자 하여 그 아기 예수를 데리고 오는 지라

2: 28    시므온이 아기를 안고 하나님을 찬송하여 이르되

2: 29    주재여 이제는 말씀하신 대로 종을 평안히 놓아주시는 도다

2: 30    내 눈이 주의 구원을 보았사오니

2: 31    이는 만민 앞에 예비한 것이요

2: 32    이방을 비추는 빛이요 주의 백성 이스라엘의 영광이니라


시므온은 메시아의 오심을 기다리며 살았던 의롭고 경건한 사람이었다.

누가는 이 경건한 사람이 성령의 인도를 받고 있은 것을 분명하게 밝히고 있다.

짧은 몇 개의 학습구절들에서, 누가는 성령의 사역을 세 번에 걸쳐 언급하고 있다

성령님이 그 위에 계심으로, 그는 죽기 전에 그리스도를 보게 될 것이라는 성령의 지시를 받았고, “성령의 감동으로 아기 예수가 성전에 왔을 때 성전에 들어가()” 되었다.

2 25 이 이야기를 제외하고는, 시므온에 대해 아무 것도 알 수 없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이름과 그가 한 말은 오늘 날 우리 입술에 오르내리고 있다.

누가는 하나님께서 잘 알려지지 않은 인물을 택하여 사용하신 것은 그를 가장 좋은 도구로 삼게 한 그의 자질 때문인 것으로 암시하고 있다.

당시 많은 유대인들의 영적 상태는 매우 저조하였다.

그래서 그 당시는 영적 암흑시대로 불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므온은 의롭고 경건()” 사람이었다.

경건한혹은 독실한이라는 용어는 누가에 의해서 신약성경(누가복음과 사도행전)에서만 사용되고 있는데, 그 말은 시므온이 종교적 의무에 신중하며 조심성이 많았던 것을 나타내주고 있다.

더욱이, 시므온은 이스라엘의 위로를 기다리는 자였다.

바꾸어 말하면, 그는 메시아의 오심을 생각하며 살았던 사람이다.

마지막으로, “성령이 그 위에 계(셨다).”

우리는 구약에서 성령이 사람들의 삶 속에서 역사하신 것을 보지만, 그것은 특정한 경우와 사건에 국한되고 있다.

예수님께서 부활 후 승천하시고 오순절 날에 성령님이 임하실 때까지 신약성경적인 의미에서 사람들이 성령의 충만함을 얻는 일이 가능하지 못했을지라도, 성령님은 독특한 방법으로 시므온 위에 임하여 계셨다.

2 26 -28 시므온은 주의 그리스도를 보기 전에는 죽지 아니하리라성령의 지시를받았다.

우리가 주로 종을 평안히 놓아 주시는도다고 한 29절에 근거하여, 종종 시므온을 노인으로 생각하는 것은 흥미 있는 일이다.

그 말이 시므온의 죽음을 가리킬 수도 있지만, 실상은 시므온의 나이에 대한 아무 단서도 없다는 것이다.

그의 나이가 몇 살이었든 간에, 그는 성령의 음성에 민감했으며 메시아를 보기까지 살 것이라는 하나님의 약속을 전적으로 믿었기 때문에, 그는 기다리는 삶을 살았다.

시므온이 성전 뜰로 들어간 때도 성령의 인도하심(“성령의 감동으로”)을 받았다.

시므온은 영적으로 매우 민감한 사람이었다.

부모가 아기 예수를 앉고 오는 것을 보았을 때, 시므온은 메시아를 알아보고 아기 예수를 받아 자기 팔에 안고 하나님을 찬송하기 시작하였다.

2 29 -32 어떤 성경학자들은 2 29절부터 32절까지의 짧은 찬송이 구약에 나오는 어떤 찬양 시에 못지 않게 아름답다고 한다.

우리는 시므온이 하나님을 찬양할 때 그를 주재여라고 부름으로, 하나님을 주권자로 보고 있는 것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

더 나아가 그는 자신을 으로 부름으로, 자기는 의무를 충실하게 완수 한 종이 되고 있음을 바르게 인정하였다.

이 찬양에 담겨있는 이미지는 길고 어두운 밤 동안 망을 보면서 특별한 밝은 한 별이 나타나는 것을 알리는 임무를 맡은 종의 것이 되고 있다.

이제 메시아가 나타나셨기 때문에, 시므온은 그의 임무가 끝나고 주인이 종을 평안히 놓아줄 수 있는 것을 알았다.

놓아 주다라는 말은 종이 죽는 것 혹은 종을 어떤 특정한 임무에서 벗어나게 해 주는 것으로

 이해될 수 있다.

말씀하신 대로라는 문구는 시므온이 죽기 전에 메시아를 볼 것이라고 한 하나님의 약속의 신실함을 가리키는 말이다.

시므온이 아기 예수 얼굴을 보았을 때, 무엇을 보았는가?

그는 내 눈이 주의 구원을 보았사오니라고 하였다.

그러나 그가 본 것은 당시 많은 사람들이 기대하던 것을 훨씬 뛰어넘는 것이었다

그는 유대인들이 증오하는 로마인들로부터 정치적 자유를 가져다 줄 구속자를 보지 않았다.

그가 본 것은 하나님께서 만민 앞에 예비하신 것으로, “이방을 비추는 빛주의 백성 이스라엘의 영광이었다.  

만민 앞에라는 문구는, 32절이 이방을 비치는 빛이요라는 말로 분명하게 밝혀주듯이, 하나님의 구속 계획의 범위를 넓혀주고 있다.

빛의 반대인 어두움은 성경전체를 통해 죄와 불행, 무지, 심판, 및 죽음의 상징이 되고 있다.

아기 예수는 어둠을 쫓아내기 위해 빛으로 오셨다.

그는 유대 백성을 통해 오셨지만, 모든 인류를 위한 구세주가 되신다.

이방을 비추는 이 빛은 결코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에게 영광을 약화시키지 않을 것이다.

반대로, 구약성경 전체를 통해 하나님의 임재를 나타내는 영광은 이제 예수의 생애와 사역으로 가장 충만하게 드러날 것이다 ( 1: 14 참조). 

이 단원에서 우리의 관심과 주의를 끄는 것은 하나님께서 평범한 사람들을 매우 특별하게 사용하시는 방법이 되이다.

마리아와 요셉 그리고 시므온은 비교적 잘 알려지지 않은 인물들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순종심과 충성심을 보시고 그들을 택하여 사용하셨던 것이다.

마리아와 요셉은이 이 특정한 날에 성전에 와 있었던 것은 모세의 법대로 아기 예수의 정결예식을 행하려는 순종심 때문이었다.

시므온이 그 자리에 온 것은 성령의 인도하심에 민감하였고 순종했기 때문이었다.

하나님께서는 오늘날에도 그 같은 사람들을 찾으셔서 그의 웅대한 계획의 도구로 사용하신다.

 

장차 어머니 마리아의 마음을 아프게 할 아기의 사역 (누가복음 233 -35)

2: 33    그의 부모가 그에 대한 말들을 놀랍게 여기더라

2: 34    시므온이 그들에게 축복하고 그의 어머니 마리아에게 말하여 이르되 보라 이는 이스라엘 중 많은 사람을 패하거나 흥하게 하며 비방을 받는 표적이 되기 위하여 세움을 받았고

2: 35   또 칼이 네 마음을 찌르듯 하리니 이는 여러 사람이 마음의 생각을 드러내려 함이니라

시므온은 요셉과 마리아에게 축복의 말을 하였지만, 그 아기 예수는 또한 장차 사람들을 크게 둘로 갈라지게 하는 요인이 되고(12: 51-53; 7: 13 -14; 14: 6), 적대의 표적이 되며, 사람들의 운명을 결정지으며, 칼이 마음을 찌르듯 사람들의 마음의 생각까지도 드러내는 사역을 하게 될 것을 예언하였다

시므온의 말에는 또한 예수님의 사역으로 인해 어머니 마리아가 겪을 마음의 아픔이 암시되어 있다.

2 33이전에 들에서 양떼를 치던 목자들이 베들레헴으로 가서 자기들이 본 것과 천사가 아기 예수에 대하여 말해준 것을 전해 주었을 때, 듣는 자들이 모두 놀랍게 여겼었다( 1: 18).

시므온이 아기 예수에 대해 말해 말해 주었을 때, 요셉과 마리아는 놀랍게 여겼다.

2 34 -35 시므온은 이 젊은 부부에게 임한 영광스러운 특권을 인정하고 그들에게 축복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므온은 예기치 않은 예언적 메시지를 전하였다.

그는 아기 예수를 가리켜 말하기를, “이는 이스라엘 중 많은 사람을 패하거나 흥하게 하며 비방 받는 표적이 되기 위하여 세움을 받았()”고 하였다.

그것은 예수님의 사역의 성격을 가리키는 말이 되고 있다.

사도 베드로가 이사야 8 14 절을 인용 하여 예수님을 어떤 사람들이 걸려 넘어지는 모퉁이의 머릿돌로 불렀을 때도 같은 뜻이 되고 있다 (벧전 2: 6 -8).

그 모두는 예수님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에 달려있다.

자신의 일이나 공적을 의지하고 예수님의 은혜를 거부하는 사람들은 예수님과 그의 메시지에 걸려 넘어 질 것이다.

그러나, 그를 믿는 사람들에게, 예수님은 그들의 삶을 짓는 기촛돌이 될 것이다.

예수님의 전체 사역은 모든 사람들을 위한 하나님의 사랑을 베푸는 일이 될 것이지만, 사람들 모두가 그 사랑을 받아들이지는 않을 것이다.

도리어 어떤 사람들은 그리스도를 적대할 것이며, 그것은 십자가의 처형으로 절정을 이루게 될 것이다.

그 같은 적대감은 마리아로 하여금 칼이 그녀와 마음을 찌르듯 깊은 슬픔을 겪게 만드는 요인이 되었다.

메시아의 오심은 또한 여러 사람의 마음의 생각을 드러내()” 결과로 이어질 것이다.  

예수님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은 그들의 가장 깊은 내면, 즉 마음의 반응을 드러내 줄 것이다.

 


안나의 확언(누가복음 2 36 -38)

2: 36    또 아셀 지파 비누엘의 딸 안나라 하는 선지자가 있어 나이가 매우 많았더라 그가 결혼한 후 일곱 해 동안 남편과 함께 살라다가

2: 37    과부가 되고 팔십사 세가 되었더라 이 사람이 성전을 떠나지 아니하고 주야로 금식하며 기도함으로 섬기더니

2: 38    마침 이 때에 나아와서 하나님께 감사하고 예루살렘의 속량을 바라는 모든 사람에게 그에 대하여 말하니라 

이제 우리는 두 번째의 증언자인 안나를 만나게 된다.

안나는 알려지지 않은 여인으로 과부였다.

안나도 시므온처럼 의롭고 경건한 생활을 했던 것이 분명하며 예루살렘의 속량(구원)을 바라는사람이었다(38).

주로 남자들의 증언에 초점이 맞추어지고 있던 당시 사회와 문화 권에서, 하나님이 그같이 여자를, 그것도 아무 힘이 없는 과부를 택하셔서 예루살렘의 속량을 바라는 모든 사람에게기쁜 소식을 전하신 것은 놀라운 일이다

2 26 -37 - 안나는 성전에서 그리스도 아이를 만나도록 하나님께서 성전으로 인도해 주신 또 다른 경건한 사람이었다.

안나는 구약시대 당시의 드보라( 4: 4)나 홀다에(왕하22: 14) 처럼 여선지자였다.

아셀 지파는 북쪽의 열 지파, 즉 소위 없어진 지파들 중의 하나였다.

따라서 이들 지파의 일부 구성원들은 하나님의 백성의 백성에 포함되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당시 이스라엘에는 수백 년 동안 선지자가 없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한 여 선지자를 세우셔서 자기 아들을 증거하게 하신 것은 주목할 만 일이다.

 

우리는 얼마나 오랫동안 소망을 잃지 않고, 혹은 낙망하지 않고 하나님께 기도할 수 있는가?

안나는 결혼을 한 후 단지 일곱 해 동안 남편과 함께 살다가과부가 되었다.

안나가 과부가 되고 팔십사 세가 되었더라는 말은 팔십사 년 동안 과부로 살았다 혹은 이제 그녀는 팔십사 세가 된 과부 이다는 뜻이 될 수 있다.

두 가지가 다 가능하지만, 강조점은 그녀의 나이가 아니라, 그녀가 여호와 하나님을 섬긴 기간이 되고 있다.

안나가 성전을 떠나지 아니하고 주야로 금식하며 기도함으로 섬(겼다)는 말은 그녀가 성전 주위에서 살았던 것을 암시해 주고 있다.

어떤 경우가 되었건,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안나가 성전에 나와 하나님을 섬겼을 때 뛰어나게 충성스러웠으며 기도의 여인이었다는 사실이다.

문맥을 보면 안나의 기도 생활은 메시아의 오심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던 것을 나타내고 있다.

우리는 얼마나 오랫동안 소망을 잃지 않고, 혹은 낙망하지 않고 하나님께 기도할 수 있는가?

2 38 – “마침 이 때에라는 말은 다시 성령의 분명한 인도를 나타내 주고 있다.

비록 안나가 정기적으로 성전 경내에 있었지만, 하나님은 적시에 그리고 적절한 장소로 안나를 인도해 주셨던 것이다.

하나님께서 안나의 영의 눈을 열어주셔서 구속자를 알게 해 주셨을 때, 안나는 하나님께 감사하고, “예루살렘의 속량을 바라는 모든 사람에게구속자에 대해 말해 주었다.

기쁜 소식은 가두어 놓을 수 없다.

자신의 기도가 응답된 것을 알았을 때, 이 경건한 기도의 여인이 나타낸 첫 반응은 하나님께 감사하고 다른 사람들에게 말해준 것이다.

또한 하나님의 구속을 찾은 다른 사람들이 있는 것을 주목하는 것도 흥미 있는 일이다.

 

말씀을 나의 상황에 적용하기

·        예수님은 하나님께서 선지자들을 통하여 약속하신 메시아이시다.

·        예수님이 이 세상에 오신 목적에는 십자가의 희생적인 죽음이 포함되었다.

·        신자들은 구원의 은혜를 베풀어 주시는 하나님을 찬양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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