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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적당하다고 주저한 모세 - 제 1과 - 2017년 9월 3일 주일 장년성경연구 - 출애굽기 3장 4 -14절; 4장 13 -16절

글쓴이 : 최고관리자 날짜 : 2017-08-27 (일) 02:59 조회 : 73

201793일 주일 장년성경연구

 

1

 


부적당하다고 주저한 모세

학습구절출애굽기 34 -14; 413 -16


성경진리:

하나님은 사람들을 부르시고 능력을 주셔서 그를 섬기며 그의 목적을 이루게 하신다.


주요교리: 하나님

영원한 삼위일체 하나님은 본성이나 본질, 혹은 존재는 동일하면서도 개별적으로는 독특한 속성을 지닌 성부와 성자 그리고 성령으로 인간에게 계시 하신다.


암송구절: 출애굽기 314

하나님이 모세에게 이르시되 나는 스스로 있는 자이니라 또 이르시되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같이 이르기를 스스로 있는 자가 나를 너희에게 보내셨다 하라

God said to Moses, “I AM WHO I AM. This is what you are to say to the Israelites: ‘I AM has sent me to you.’”    


시작하는 글:

우리들 대부분은 자신 없게 느끼는 일이나 분야가 있다

그리스도인들도 그 같이 확신이 없는 감정에서 예외는 아니다.

 기독교 역사는 역량이 없어 자신이 없다고 생각한 지도자들과 죄의 문제로 싸웠던 죄인들, 믿음이 약해 의심했던 자들과, 힘이 약한 일꾼들로 특징을 이루고 있다.

인간의 한계와 실패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인간을 통해 자신의 일을 이루어오셨다.

출애굽기의 처음 장들에서 우리는 모세를 만나게 된다.

모세는 신약 성경에서 여러 번에 걸쳐 언급되고 있으며, 거의 항상 긍정적인 면으로 보여지고 있다.

하나님의 사람들 중에서, 모세는 비판이나 비난을 받는 일이 거의 없고, 항상 존경의 대상이 되고 있다.

그러나, 출애굽기의 처음 장들에서 모세를 만날 때, 우리는 약하고 두려움에 찬 그의 초기의 모습을 보게 된다.

불붙고 있는 떨기나무 숲의 사건에 비추어볼 때에도, 모세의 의심은 이야기의 시작 부분에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다.

출애굽기 이야기에서 모세의 지도력에 대한 묘사는 그의 강점은 물론 그의 약점에 초점을 맞추어지고 있다.

모세는 처음에는 하나님의 뜻에 따라 행동하는 것이 부적절하다는 느낌에 기초하여 크게 주저하였다.

이 시점에서 모세의 주된 중요성은 그가 어떻게 경건과 신앙의 본이 되고 있는가가 아니다.

도리어, 모세의 중요성은, 그의 의심과 두려움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그 같은 모세를 통하여 어떻게 그의 계획과 능력으로 그의 뜻을 성취하셨는가가 되고 있다.

모세의 이야기는 하나님의 백성을 위한 구속의 시작이 되고 있다.

출애굽의 시작은 하나님께서 초자연적인 행위로 스스로를 도울 힘이 없는 한 백성을 구원하시기 위한 무대를 설정하는 일이 되고 있다.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약함은 절망에 빠지게 하는 요인이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을 의존함으로 그의 뜻을 이루는 방법이 되어야 한다.

 

배경설명:

출애굽기 11– 431

출애굽기 3장에서 모세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일의 틀을 이루고 있는 성경의 배경은 놀랍다.

그 이야기는 창세기에서 요셉이 아버지 야곱과는 물론 자기를 배신하고 남의 손에 넘겨 죽음의 상태에까지 이르게 했던 형들과 다시 만나 관계의 회복을 이루는 것으로 시작되고 있다 (Gen. 46 -50 ).

극심한 기근 동안에 하나님은 긍휼과 자비로 야곱과 그의 가족의 필요 물을 공급해 주셨다 (47).

요셉이 애굽의 바로 밑에서 제 이의 통치자로 권세의 자리에 오르게 된 것으로 인해 (41), 신생 이스라엘 민족은 기름진 땅인 고센 지역에서 살면서 번성하였다 (45:10).

그것은 하나님의 백성에게 성장과 확장의 시기였다.

그런 다음 출애굽기1 8 절은 애굽에서 요셉을 알지 못하는 새 통치자가 일어나 나라를 다스리게 된 것을 우리에게 밝혀주고 있다.

인구가 많은 하나님의 백성들 점점 더 두려워하게 되자, 새 통치자인 바로는 어려운 노동으로 하나님의 백성을 괴롭게 하며 억압하였다 (1: 9 -14).

또한, 인구 통제 노력의 일환으로, 바로는 히브리 산파인 십브라와 부아에게 새로 태어난 아기가 남자이면 모두 죽이고 여자면 살려두라고 명령함으로, 이스라엘 백성에 대한 일종의 대량학살정책을 폈다 (1: 15 -16).

그러나, 산파들은 하나님을 두려워하였으므로, 바로의 명령을 어기고 남자 아이들을 살려주었다 (1: 17 -21).

하나님의 백성은 그 수와 힘이 계속 자라났는데, 이에 비례하여 이스라엘 백성에 대한 바로의 두려움도 커졌다.

모세는 그같이 무서운 상황 속에서 레위 제사장 지파의 한 여인에게서 태어났다 (2: 1).

모세의 어머니는 남자 아이가 태어나면 모두 죽이라는 바로의 칙령이 두려워서, 석 달 동안 그를 숨겨서 키웠다.

아기를 더 이상 안전하게 숨길 수 없다고 느꼈을 때, 모세의 어머니는 갈대 상자를 가져다가 역청을 칠하고 아기를 그 상자에 넣은 다음 나일강 가 갈대 숲에다 띄워 놓았다.

그것은 아기 모세를 하나님께 맡기는 일이 되었다 (2: 2 -4).

하나님은 아기를 그냥 내버려두지 않으셨다.

바로 그 시점에 바로의 딸이 나일 강에 목욕하러 나왔다가, 아기의 울음 소리를 듣고, 버려진 히브리 아기로 보이는 그를 불쌍히 여겨, 궁궐로 데려다가 이름을 모세라 짓고, 아들로 궁궐에서 양육하였다(2: 5 -10).

바로의 딸은 모세의 친 어머니를 고용하여 그를 대신해서 젖을 먹여 기르게 하였다 (2: 7 -9).

모세가 왕궁에서 애굽이 제공 할 수 있는 최고의 교육을 받으며 성장한 동시에, 바로 그 왕궁에서 생모가 들려주는 이스라엘의 하나님과 그의 동족의 이야기를 듣고 마음에 새기며 자라난 것은 얼마나 놀라우면서도 역설적인 일인가!

그것은 오직 하나님 만이 하실 수 있는 일이다.

어떤 영웅(英雄)이든지 결함이 있게 마련이며, 모세도 예외는 아니었다.

모세가 장성한 후에 한번은 애굽 감독자가 자기 동족을 학대하는 것을 보고, 분노심을 참지 못하고 화가 폭발한 나머지, 그를 쳐 죽이고 말았다 (2: 11 -12).

살인을 은폐하려는 시도가 실패하자, 모세는 바로의 낯을 피하여 미디안 사막 지대로 피신하였다 (2: 13 -15).

미디안 땅에서, 모세는 그의 아내 십보라와 장인인 이드로를 만났다 (2: 16 -22).

모세는 그 후 40년을 미디안에서 보냈는데, 그것은 무의식 중에 하나님의 백성을 애굽의 속박에서 인도하기 위해 준비하는 과정이 되었다.

모세는 양떼를 치는 목자에서 하나님 백성을 치는 목자가 될 것이다.

그 동안에, 하나님의 백성은 애굽의 무거운 압제하에 신음하였다.

하나님은 백성들의 부르짖는 소리를 들으셨고, 그들을 기억하셨다 (2: 23 -25).

그 같은 압제와 불확실성의 때에, 하나님은 그의 백성을 인도하도록 모세를 부르셨다.

그러나 문제는 모세가 하나님이 그의 백성을 구출하시려는 일에 기꺼이 참여할 것인가? 아니면 그는 주저하는 지도자가 될 것인가 이었다.


학습구절:

다가오신 하나님 (출애굽기 34 -6)

3: 4     여호와께서 그가 보려고 돌이켜 오는 것을 보신지라 하나님이 떨기나무 가운데서 그를 불러 이르시되 모세야 모세야 하시매 그가 이르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3: 5   하나님이 이르시되 이리로 가까이 오지 말라 네가 선 곳은 거룩한 땅이니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

3: 6   또 이르시되 나는 네 조상의 하나님이니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니라 모세가 하나님 뵈옵기를 두려워하여 얼굴을 가리매

34 -5 하나님은 주권자이시자 무엇이나 하실 수 있는 전능 자이시지만, 어떤 일을 하실 때에 은혜로 그의 목적에 우리를 포함시키신다.

하나님은 우리를 그의 동역자들로 부르셔서 그의 구속의 계획과 사역에 참여하게 하신다 (고전 3: 9). 

고통을 당하고 있는 그의 백성을 노예 생활에서 구출할 준비가 되셨을 때, 하나님은 평범한 한 사람을 부르셔서, 그를 통해 이 위대한 과업을 성취하려고 하셨다.

호렙 산 근처의 미디안 사막 뒷 편에서 양떼를 치고 있을 동안에, 모세는 가장 특이한 방법으로 그를 부르시는 하나님을 만났다.

그는 떨기 나무에 불이 붙었는데도 타서 없어지지 않는 진기한 광경을 보았다 (3: 2).

불은 종종 하나님의 임재와 관련이 되고 있다 (13: 21 -22; 19: 18).

이 특별한 사태에 흥미를 느낀 모세는 이 독특한 광경을 살피기 위해 다가갔다(3 : 3).

모세가 불타는 떨기 나무로 다가갔을 때, 그 가운데서 모세야 모세야라고 그를 부르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다

나일 강에서 건져()”을 받았던(2: 10) 모세는 이제 하나님의 백성을 애굽의 속박에서 인도해 내도록 불러()”을 받고 있었던 것이다.

모세는 내가 여기 있나이다라고 즉시 대답하였다.  

하나님은 이리로 가까이 오지 말라고 즉시 말씀하셨다.

그리고 모세에게 네가 선 곳은 거룩한 땅이니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고 명령하셨다.

거룩한이란 용어는 구별된혹은 분리된이라는 뜻을 나타내고 있다.

그 말이 하나님에게 사용될 때, 그 것은 도덕적으로 완전하고 순수한 것을 묘사해주고 있다.

고대 사회에서 왕 앞에 나아갈 때 신발을 벗는 것은 겸손과 경외감을 나타내는 표가 되었다.

모세가 하나님을 만난 곳은 본래부터 거룩한 땅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그곳에 나타나셨기 때문에 거룩한 땅이 되었다.

36 하나님은 모세에게 자신을 나는 네 조상의 하나님이니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라고 밝혀주셨다.

요약하면, 모세는 족장들의 하나님에 의해 부름을 받고 있었는데, 그것은 처음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아브라함에게서 시작되어 (12). 이삭에게 약속되었고 (17), 여러 면에서 야곱을 통하여 꽃을 피우게 된 하나님의 구속 계획의 장엄한 이야기와 모세의 사명을 서로 연결시켜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께서는 일차적으로 그의 백성을 노예의 속박에서 벗어나게 하는 구속의 계획을 성취 하시고, 나아가서 예수님 안에서 완성을 이루게 될 구원의 목적을 이루시기 위해 모세를 부르셨던 것이다.

6 절의 후반부는 모세가 하나님 뵈옵기를 두려워하여 얼굴을 가리매라는 말로 모세가 하나님의 부르심에 대해 나타낸 최초의 반응을 묘사하고 있다.

모세가 나타낸 최초의 반응은 하나님에 대한 겸손과 두려움이었다.  

 

사명을 주신 하나님 (출애굽기 37 -10)

3: 7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내가 애굽에 있는 내 백성의 고통을 분명히 보고 그들이 그들의 감독자로 말미암아 부르짖음을 듣고 그 근심을 알고

3: 8     내가 내려가서 그들을 애굽인의 손에서 건져내고 그들을 그 땅에서 인도하여 아름답고 광대한 땅, 젖과 꿀이 흐르는 땅 곧 가나안 족속, 헷 족속, 아모리 족속, 브리스 족속, 히위 족속, 여부스 족속의 지방에 데려가려 하노라

3: 9     이제 가라 이스라엘 자손의 부르짖음이 내게 달하고 애굽 사람이 그들을 괴롭히는 학대도 내가 보았으니

3: 10          이제 내가 너를 바로에게 보내어 너에게 내 백성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게 하리라

하나님이 모세를 찾아오시고 부르신 것은 특별한 임무 때문이었다.

7절과 9절에서 하나님은 그가 모세를 불러서 말씀하시려는 문제를 밝혀 주셨다.

그것은 그의 백성이 겪고 있는 고통과 당하고 있는 학대였다.

하나님은 8절에서는 그 문제에 대한 타개책(打開策)을 밝혀주셨다.

하나님은 그의 백성들을 고통과 학대에서 구해주시기 위해 찾아오셨던 것이다.

하나님은 또한 이전에 그의 조상들에게 그의 백성을 약속의 땅으로 인도하겠다고 하셨던 약속의 말씀을 새롭게 하셨다.

37 -8 하나님은 먼저 모세에게 애굽에 있는 그의 백성이 받고 있는 고통을 똑똑하게 보았다고 하셨다.

그리고 억압 때문에 괴로워서 부르짖는 소리를 들으셨다고 하였다.

그러므로, 백성들의 고난을 분명하게 아신다고 하셨다.

그래서 하나님은 그의 백성을 애굽인의 손에서 건져내(려고)” 하늘에서 내려 오셨다.  

건져내다혹은 구해내다로 번역된 히브리어는 갑자기 낚아채 오는 것을 묘사하는 말이다.

바로는 이스라엘 백성을 자기의 손 아귀에 꽉 잡고 있는 것으로 믿고 있었지만, 하나님은 그의 백성을 바로의 손 아귀에서 낚아채 오실 것이다.

하나님의 건져내시는 일 혹은 구해내시는 일에는 그의 백성을 애굽에서 건져내시는 것뿐만 아니라 그들을 약속의 땅으로 인도하는 것이 포함되었다.

하나님은 그 곳을 아름답고 광대한 땅으로 묘사하셨는데, 그것은 엄청난 수의 이스라엘 백성이 정착할 수 있을 만큼 크고, 하나님의 축복을 경험할 수 있을 정도로 좋은 땅이 되고 있음을 나타내고 있다.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라는 말은 양식이 풍부하여 삶을 충분히 즐길 수 있는 곳이 되고 있음을 묘사해 주고 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을 데려올 땅에는 다른 족속들이 살고 있었다.

그들은 가나안 족속,” “헷 족속,” 아모리 족속,” “브리스 족속,”히위 족속,” 그리고 여부스 족속이었다.

가나안 족속은 팔레스타인의 지중해 해안을 따라 살았다.

여부스 족속은 예루살렘 인근 지역에 살았다.

이들 여섯 족속들이 차지하고 있던 땅은 약속의 땅 전체를 대표하였다.  

39 -10 하나님은 이스라엘 자손의 부르짖음이 내게 달하고 애굽 사람이 그들을 괴롭히는 학대도 내가 보았으니라는 말씀으로, 이스라엘 백성의 형편과 처지를 알고 계심을 재차 밝히셨다.

그런 다음 하나님은 모세에게 가라고 단호하게 명령하셨다.

그리고 이제 내가 너를 바로에게 보내어 너에게 내 백성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게 하리라고 말씀하셨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을 애굽에서 건져내시는 일에 모세를 통로로 삼으시겠다는 말이다.

그것은 엄청난 규모의 쉽지 않은 일이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이를 위해 모세를 전 생애에 걸쳐 준비시키셨던 것이다.   

모세는, 애굽 공주대신 그를 유모로 키운 어머니로부터, 이스라엘의 신앙과 전통을 배웠다.

그는 또한 애굽 궁중에서 자라나면서 당시의 세계 최고의 문물을 접하고 교육과 훈련을 받았다.

장인이었던 미디안 제사장 이드로는 모세에게 하나님을 섬기는 일에 대해 어떤 통찰력을 주었을 것으로 보인다.

모세는, 그 같은 사실들을 깨닫지 못한 채 다른 동족들처럼, 왜 하나님께서 도와주시지 않고 오랫동안 지체하고 계신지 불평했을 수 있다.

그러나 모세의 경우, 하나님은 그를 준비시키고 계셨던 것이다.

그리고 이제 하나님은 모세에게 바로를 찾아가 이스라엘 백성을 노예생활에서 건져내라고 하셨다.

오늘날에도 하나님은 먼 곳에 떨어져 계신 초월적인 존재가 아니시다. 그는 그의 백성들의 부르짖는 소리를 들으시며 도움의 손길을 펴신다.

 

모세에게 권능을 부여해 주신 하나님 (3: 11 -14)

3: 11  모세가 하나님께 아뢰되 내가 누구이기에 바로에게 가며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리이까

3: 12  하나님이 이르시되 내가 반드시 너와 함께 있으리라 네가 그 백성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낸 후에 너희가 이 산에서 하나님을 섬기리니 이것이 내가 너를 보낸 증거니라

3: 13  모세가 하나님께 아뢰되 내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가서 이르기를 너희의 조상의 하나님이 나를 너희에게 보내셨다 하면 그들이 내게 묻기를 그의 이름이 무엇이냐 하리니 내가 무엇이라고 그들에게 말하리이까

3: 14  하나님이 모세에게 이르시되 나는 스스로 있는 자이니라 또 이르시되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같이 이르기를 스스로 있는 자가 나를 너희에게로 보내셨다 하라

311- 하나님께서 영광스럽고 압도적인 방법으로 자신을 계시해 주셨는데도 불구하고, 모세는 하나님의 부르심에 대해 꺼려하는, 심지어 거의 거부하는, 반응을 보였다.

모세가 하나님께 내가 누구이기에 바로에게 가며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리이까라고 한 항의의 말은 이해가 가지만, 지나치게 저항하며 꺼려하는 말이 되고 있다.

하나님을 도와 그의 백성을 자유롭게 하는 일에 쓰임을 받는다는 엄청난 임무에 모세는  압도되고 말았던 것이다.

312 -하나님은 모세에게 놀라우면서도 긍정의 방법으로 대답하셨다.

12절은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그 임무를 위해 권능을 부여해 주시는 계획을 제시해주고 있다.

하나님은 모세게 세 가지 약속을 해 주셨다.

1) 하나님은 반드시 (모세와) 함께 있으(실 것)”이다.

2) 하나님은 모세를 통하여 그 백성을 애굽에서 인도하여내실 것이다.

3) 일단 그들이 애굽의 속박에서 자유로워지면, 이스라엘 백성은 이 산에서 하나님을 섬(길 것)”이다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자유롭게 하시려는 하나님의 목적은 단순히 자유를 위한 것이 아니었다.

하나님이 그의 백성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시려는 더 큰 목적은 그들이 자유롭게 하나님을 예배하고 섬기게 하려는 것이 되고 있다.

313 - 모세는 하나님의 계획의 지속가능성에 대해 확신이 서지 않았다.

모세는 하나님께 묻기를, “내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가서 이르기를 너희의 조상의 하나님이 나를 너희에게 보내셨다고 하면 그들이 내게 묻기를 그의 이름이 무엇이냐 하리니 내가 무엇이라고 그들에게 말하리이까라고 하였다.

그것은 매우 적절하고도 좋은 질문이 되고 있다.

다신론 (많은 신의 존재를 인정하는 신론)과 범신론 (자연계와 신을 동일시 하는 신론)을 믿고 있던 애굽의 문화권에서, 한 분이신 참 하나님의 정체성을 아는 것은 결정적이고도 중대한 일이었다.

모세가 대표할 하나님은 어떤 한 신이나 많은 신들 중의 하나가 아니었다.

대신, 하나님은 옛날에도 계셨고 지금도 계신 유일하고 참된 하나님으로, “너희 조상의 하나님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 되신다 (15).

314 모세의 질문에 대한 하나님의 답변은 놀랍고도 멋진 것이 되고 있다.

하나님은 자신을 스스로 있는 자로 밝히셨다.

이 말은 이다혹은 있다”(to be)라는 히브리 동사에서 파생되었다.

그 말은 나는 있기 때문에 나이다라고 번역될 수 있다.

본질적으로, 하나님은 자기에게는 참고나 비교할 점이 없다고 말씀하신 것이다.

그에게는 시작점도 없었고, 끝이 없으실 것이다.

하나님이 누구인지를 밝히는 것은 오직 그 자신이다.

하나님은 변함이 없으시고 전능하시다.

다른 방법으로는 할 수 없는 이 엄청난 임무를 위해 모세를 부르시고 권능을 부여해 주시는 분은 바로 그 같은 하나님이셨다.

하나님은 모세에게 스스로 있는 자가 나를 너희에게 보내셨다고 하라고 하셨다.

예수님은 요한복음에서 나는 이다라는 이름을 사용하셔서 자신의 신성과 사역을 묘사하셨다.

예수님이 묘사하신 나는 이다의 말씀들:

·       나는 생명의 떡이다 (6: 35).

·       나는 세상의 빛이다 (8: 12; 9: 5).

·       나는 양의 문이다 (10: 7, 9).

·       나는 선한 목자이다 (11, 14).

·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다 (11: 25).

·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14: 6).

·       나는 참포도 나무이다 (15: 1, 5).  

 

확신을 주신 하나님 (413 -16)

4: 13  모세가 이르되 오 주여 보낼 만한 자를 보내소서

4: 14  여호와께서 모세를 향하여 노하여 이르시되 레위 사람 네 형 아론이 있지 아니하냐 그가 말 잘하는 것을 네가 내가 아노라 그가 너를 만나러 나오나니 그가 너를 볼 때에 그의 마음에 기쁨이 있을 것이라

4: 15  너는 그에게 말하고 그의 입에 할 말을 주라 내가 네 입과 그의 입에 함께 있어서 너희들이 행할 일을 가르치리라

4: 16  그가 너를 대신하여 백성에게 말할 것이니 그는 네 입을 대신할 것이요 너는 그에게 하나님 같이 되리라

413 -16 이 시점까지의 하나님의 자기 계사는 모세에게 충분치 않았다.

모세는 여전히 두려운 마음에 사로 잡혀있었다.

모세는 그때까지 갖가지 변명을 늘어놓았으며, 그때마다 하나님은 그들 변명 하나하나에 끈기 있게 답변해 주셨다.

모세는 출애굽기 3 11 절에서 내가 누구이기에라는 말로 잘못된 정체성을 주장했었다.

출애굽기 312절에서, 하나님은 모세에게 그가 어디로 가든지 함께 해 주실 것을 상기시켜 주심으로 답변해 주셨다.

모세는, 출애굽기 313절에서는, 하나님의 이름이 무엇인지 그리고 그가 누구인지를 모른다고 하면서 무지를 변명의 구실로 삼았다.  

하나님은 출애굽기 314 -15절에서 자신을 스스로 존재하시는 하나님, 자족하시며 전능하신 하나님, 그리고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으로 밝혀 주심으로 모세의 변명에 답변해 주셨다.

출애굽기 41절에서 모세는 세 번째의 변명을 하였다.

그러나 그들이 나를 믿지 아니하며 내 말을 듣지 아니하고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네게 나타나지 아니하셨다 하리이다.”

하나님은 모세의 걱정에 대해 그가 모세와 함께 하시고 계시다는 증거로 여러 가지 표적을 보여주셨다 (4: 2 -9).

이에 만족하지 못하고, 모세는 네 번째의 변명을 늘어 놓았다.

그는 오 주여 나는 본래 말을 잘 하지 못하는 자니이다.”  “나는 입이 뻣뻣하고 혀가 둔한 자니이다라고 하였다 (4: 10).

하나님은 모세에게 자기가 모세의 입을 지어 주신 사실을 상기시켜 주시면서 때가 되면 내가 네 입과 함께 있어서 할 말을 가르치리라고 안심시키셨다 (4: 11 -12).

그러면서 하나님은 모세에게 이제 가라고 하셨다 (4: 12).

변명거리가 떨어지자, 모세는 진짜 문제점을 드러냈다.

그는 순종할 마음이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그는 하나님께 오 주여 보낼만한 자를 보내소서라고 말하였다.

본문은 하나님이 모세를 향하여 노하셨다고 기록하고 있다.

그리고 말씀하시기를, 말을 잘하는 그의 형 아론을 보낼 터이니 그를 통해 말하라고 하셨다.

모세에게 기쁜 소식은 하나님의 백성을 구원하는 일에 도구로 사용되는 하나님의 부르심에는 그가 필요로 하는 모든 자원이 약속되고 있는 것이다.

말하자면, 그것은 하나님 자신이 되고 있다.

 


말씀의 적용:

·       하나님은 거룩하시고 초월적인 분이시지만, 죄인들인 인간을 찾아오셔서 은혜를 베풀어주신다.

·       하나님께서는 특정한 사람들을 택하셔서 그의 목적을 이루며 그의 백성을 인도하게 하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세처럼, 우리는 종종 하나님의 뜻에 따라 살 수 있는 능력을 의심한다.

·                 신자들은 하나님께서 어떤 임무를 맡겨주실 때 이를 성공적으로 수행 할 수 있도록 필요한 자원을 공급해 주시는 것을 확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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