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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비하고 있으라 - 2010년 11월 28일 주일 공부 (에베소서 제 13회)

글쓴이 : 최고관리자 날짜 : 2013-09-13 (금) 05:39 조회 : 1377
2010년 11월 28일
 
준비하고 있으라
 
배경구절: 에베소서 6장 10 -21절
학습구절: 에베소서 6장 10 -21절
 
성경진리:
그리스도인들은 영적으로 잘 준비하고 있으면 어떤 악의 세력이 공격해 올지라도 이를 대적하며 물리칠 수 있다.
 
시작하는 글:
그리스도인들은 자신이 살고 있는 세상과 시대(때)에 대해 바른 안목을 가질 필요가 있다.
성경에서 믿음의 삶은 종종 ‘승리의 삶’으로 묘사되고 있다.
승리는 경주를 하거나 싸움을 할 때 쓰이는 용어이다.
이는 그리스도인들이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을 누리는 삶을 누릴 뿐 아니라,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워야 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리스도를 대적하는 사단이 마지막 발악을 하는 마지막 때에 살고 있다 (요일 2: 18).
사망과 악의 세력이 지배하는 세상에 살고 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하나님 편에 서게 되면, 그 때부터 사단의 공격이 시작된다.
사단은 갖가지 밥법과 술수로 성도들을 넘어뜨리려고 있는 힘을 쓰고 있다.
그래서 사도 베드로는 성도들에게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
     너희는 믿음으로 굳게 하여 저를 대적하라”고 명하였다 (벧전 5: 8 – 9).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사단과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는 ‘군사’들이다 (딤후 2: 3).
옛 날 군인들이 재래식 전투를 할 때는 전선이 정해져 있었고 양쪽 군인들은 서로 맞서서 싸웠다.
그래서 적이 나를 공격해 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었고 누가 적인지도 분명하게 알수 있었다. 
그런데 요즘의 싸움은 성격이 많이 달라졌다.
전선이 확실하게 정해져 있는 것도 아니고 적의 정체가 분명하게 노출되는 것도 아니다.
전투방법도 직접적인 공격보다는 갖가지 술수와 교묘한 수법을 사용하고 있다.
그같은 적을 맞아 싸우려면 항상 준비태세를 갖추고 있어야 한다.
요즘 미국이 벌리고 있는 테러리스트와의 전쟁이 바로 그같은 것이다.
비행기 여행을 하기 위해 비행장에 가면 테러리스트들과의 싸움이 얼마나 현실적이고 심각한지를 새삼 실감하게 된다.
이렇게 철저하게 경계하고 대비하니까 우리가 안전한 삶을 살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테러이스트들과의 싸움보다 더 현실적이고 심각한 전쟁을 들라면, 그것은 사단과의 영적 싸움이다.
대부분의 경우 사단과의 전쟁은 공격보다는 방어를 하는 것이고 그 싸움은 우리 속에서 벌어지기 때문에 싸우기가 더 힘들다.
사도 바울의 경우가 그랬다. 그는
   “내 속 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되 내 지체 속에서 한 다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
    내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 아래로 나를 사로 잡아 오는 것을 보는도다”고 고백한 다음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고 탄식하였다.
우리가 깨달아야 할 것은 사단과의 싸움은 우리의 힘이나 방법만 가지고는 결코 이길 수 없다는 사실이다.
하나님께서 도와주셔야 이길 수 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말하기를 우리가 영적 전쟁에서 쓰는 무기는
“육체의 무기가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견고한 요세라도 무너뜨리는 강력한 무기”라고 하였다 (고후 10: 4).
믿음의 성도들이 사단과의 싸움에서 승리하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전신갑주”로 무장을 해야 한다.
오늘의 학습구절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전신갑주로 무장하는 것이 무엇을 뜻하는 지를 배우게 된다.
 
학습구절 연구
 
더 강해져라 (에베소서 6장 10 -13절)
 
    6: 10    좀말로 너희가 주 안에서와 그 힘의 능력으로 강건하여 지고
    6: 11    마귀의 궤계를 능히 대적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입으라
    6: 12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에 대한 것이 아니요 정사와 권세와 이 어두움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에게 대함이라
    6: 13    그러므로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취하라 이는 악한 날에 너희가 능히 대적하고 모든 일을 행한 후에 서기 위함이라
 
바울은 마지막으로 성도들에게 믿음의 삶은 사단과의 영적싸움을 싸우고 있는 것임을 일깨워 주고
잘 준비시켜 주어 그 싸움에서 이기게 해 주기를 원하였다.
바울은 성도들에게 자신의 연약함을 깨닫고 여호와 하나님을 의지할 것을 촉구하고 있다.
“주 안에서와 그 힘의 능력으로 강건하여 지고”라는 말이 이를 뜻하고 있다.
사도 바울은 에베소서 1장 19절에서
“믿는 사람들인 우리에게 강한 힘으로 활동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얼마나 엄청나게 큰지를, 여러분이 알기를 바랍니다”고 간구하였다(표준 새번역).
이제 바울은 그같이 엄청난 하나님의 힘으로 강해지라고 하고 있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성도들이 사단의 공격을 받을 때 결코 자신의 힘만으로는 대적하거나 승리할 수 없는 것을 알고 계신다.
하나님은 성도들에게 이길 수 있는 힘을 주신다.
하나님은 어떤 방법으로 그리스도인들을 강하게 만들어 주시는가?
하나님은 성도들에게 ‘전신갑주’로 무장시켜 주신다.
그래서 바울은 성도들에게 사단의 간계(‘궤계’)를 능히 대적하고 이기려면, ‘하나님의 전신갑주’로 무장하라고 하였다.
그리스도인들이 싸우는 대상은 인간(“혈과 육”)이 아니다.
우리의 대적자는 영적 존재들로
‘정사’와 ‘권세’, 그리고 ‘어두움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로 묘사되고 있는 사단(“마귀”)과 그 추종세력들이다.
적의 실체를 밝힌 후에, 바울은 다시 성도들에게 ‘전신갑주’를 입으라고 하였다.
이는 우리의 힘과 방법만으로는 도저히 사단을 당해 낼 수 없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공급해 주시는 영적무기로 무장을 하고 있어야 악한 날을 견딜 수 있다.
실제로 매일매일이 악한 사단의 유혹과 공격을 받는 악한 날이다.
그러나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의 전신갑주로 무장하고 있으면,
그 모든 것을 견딜 수 있으며 악의 세력에 맞서 싸운 후에도 넘어지지 않고 서 있을 수 있다.
 
굳게 서라 (에베소서 6장 14 – 17절):
 
    6: 14    그런즉 서서 진리로 너희 허리 띠를 띠고 의의 흉배를 붙이고
    6: 15    평안의 복음의 예비한 것으로 신을 신고
    6: 16    모든 것 위에 믿음의 방패를 가지고 이로써 능히 약한 자의 모든 화전을 소멸하고
    6: 17    구원의 투구와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라
 
바울은 성도들이 하나님께서 영적으로 무장시켜 주시며 강하게 해 주시는 것을 분명하고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당시 로마 병사들이 무장하고 있던 장비들에다 적용시켜 설명하였다.
그들은 모두 여섯 가지로, ‘진리의 허리 띠’, ‘의의 흉배’, ‘평안의 복음으로 예비한 신’, ‘믿음의 방패’, ‘구원의 투구’, 그리고 ‘성령의 검’이다.
바울은 성도들에게 먼저 굳게 서서 진리의 허리 띠를 띠고 의의 흉배로 가슴을 가리라고 하였다.
‘허리띠’는 로마 병사에게 안정감을 주고 감정을 다스려 주며 힘을 내게하는 역할을 하였다.
그 허리띠에는 다른 장비들을 붙들어 매달 수도 있었다.
 다른 무엇보다 바지가 흘러내리지 않도록 붙들어 매주었다.
그리스도인의 허리 띠는 진리이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주신 진리의 말씀 혹은 진리이신 그리스도를 가리키거나
성도들이 진실되게 행하며 말하는 것을 가리킬 수 있다.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으로 무장하고 그 말씀을 붙들고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로마 병사들이 가슴에 붙이는 흉배는 심장과 다른 중요한 기관들을 보호해 주는 역할을 하였다.
의는 그리스도인의 흉배로 마음을 지켜준다.
본절에서 언급되고 있는 의는 두 가지로 이해될 수 있다.
하나는 하나님의 의로,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하나님과의 관계가 바르게 될 때 얻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성도들의 바른 행위를 가리킨다.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를 확실하게 깨닫고, 그 관계에 따라 경건하게 살아갈 때 우리는 사단의 비난을 성공적으로 막아 낼 수 있다.
의의 흉배를 붙인 신자들은 매일의 삶 속에서 이렇게 기도한다.
   “하나님이여 나를 살피사 내 마음을 아시며 나를 시험하사 내 뜻을 아옵소서
   내게 무슨 악한 행위가 있나 보시고 나를 영원한 길로 인도하소서” (시 139: 23 -24).
운동선수가 잘 달리거나 혹은 군인이 굳건한 자세로 서 있거나 힘있게 행군하려면 신이 좋아야 한다.
당시 로마 병사들은 오늘날의 운동선수처럼 징이 달린 군화를 신었다고 한다.
바울은 그리스도인들에게 징이 달린 신이 아니라, ‘평안의 복음’으로 준비된 신을 신으라고 하였다.
본문의 말은 복음에 깊이 뿌리를 내려 굳건히 서 있는 것을 가리킬 수도 있고
어떤 상황에서나 복음을 전파할 준비를 갖추고 있어야 한다는 뜻으로 말했을 수 있다.
바울은 이사야서 52장 7절의 말슴을 인용하여 “좋은 소식을 전하는 자들의 발”을 찬양하였다 (롬 10: 15).
로마 병사들은 방패를 들고 적군이 칼이나 불화살로 공격하는 것을 막았다.
그러므로 방패는 방어용 무기이다.
믿음은 사단의 어떤 공격도 막아낼 수 있는 우리의 방패가 된다.
사단의 화전(“불화살”)은 시험과 의혹, 낙심과 두려움, 시련과 유혹등 갖가지 형태를 취하고 있다.
하나님을 전적으로 믿고 의짛할 때에만 우리는 그같은 사단의 공격을 막아 낼 수 있다.
투구는 인체의 가장 중요한 부분인 머리를 보호해 주는 장비이다.
다시 말해서 인간의 삶에 가장 중요한 요소인 ‘생각’을 보호해 주는 역할을 한다.
잠언서는 사람이 무엇을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알면 그 사람의 됨됨이를 알 수 있다고 한다 (잠 23: 7).
바울이 구원을 투구에다 비유한 것을 보면, 우리가 구원을 얻을 때
바른 생각을 갖게 되고 바른 생각으로 하나님을 섬기게 되는 것을 알 수 있다.
병사들이 직접 맞붙어 싸우던 재래식 전투에서 칼은 가장 중요한 공격용 무기였다.
사도 바울은 “성령의 검”이라는 용어로 하나님의 말씀을 칼에다 비겼다.
히브리서도 하나님의 말씀을 ‘ 양쪽에 날카로운 날이 선 가장 날카로운 칼보다 더 예리한 것’으로 묘사하고 있다(히 4: 12).
우리는 결코 하나님의 말씀의 놀라운 힘을 과소 평가하지 말아야 한다.
하나님의 말씀에는 강한 힘이 있다. 하나님의 말씀은 영적 무장에서 언급되는 유일한 공격용 무기이다.
예수님이 사단의 시험을 받으셨을 때,
그는 하나님의 말씀 혹은 성경말씀을 가리키는 “기록하기를”, “말씀하기를” 라는 말로 대응하셨다.
그리스도인들이 악의 세력과 맞서 싸울 때 사용할 수 있는 유일한 공격무기는 “성경말씀”인 것을 명심할 필요가 있다.
 
항상 기도하라 (에베소서 6장 18 -20절)
 
    6: 18    모든 기도와 간구로 하되 무시로 성령 안에서 기도하고 이를 위하여 깨어 구하기를 항상 힘쓰며 여러 성도를 위하여 구하고
    6: 19    또 나를 위하여 구할 것은 내게 말씀을 주사 나로 입을 벌려 복음의 비밀을 담대히 알리게 하옵소서 할 것이니
    6: 20    이 일을 위하여 내가 쇠사슬에 매인 사신이 된 것은 나로 이 일에 당연히 할 말을 담대히 하게 하려 하심이니라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의 전신갑주”로 무장하고악의 영들과 싸워야 함을 역설하면서 특별히 기도로 할 것을 강조하였다.
“모든(여러 가지 형태의) 기도와 간구로” 하라고 하였다.
우리는 여러 가지 방법과 통로로 하나님께 말씀드릴 수 있다.
“무시로”, 즉 ‘항상 계속해서’ 기도하라고 하였다.
군인들이 전투를 할 때, 병사들과 지휘관 사이에 그리고 병사들 사이에 통신이 두절된다면,
병사들이 아무리 훌륭한 병기로 무장을 했다 할지라도 승리를 더둘 수 없다.
기도는 하나님과 신자들 사이의 대화의 통로이다.
우리는 기도를 통해 더 가까운 관계를 유지할 수 있다.
우리는 자신을 위해서만 기도할 것이 아니라, 다른 여러 성도들을 위해서도 기도해야 한다.
나 혼자만 사단과 싸우는 것이 아니라, 다른 동료 그리스도인들과 싸우고 있는 것을 명심할 필요가 있다.
바울은 에베소 교회 교인들이 기도할 때 자기를 위해서도 기도해 주기를 바랬다.
그도 영적 싸움을 싸우고 있었다.
당시 그는 감옥에 같힌 몸이었다.
악한 일을 행했기 때문이 아니라, 구원의 복음을 전한 것으로 인해 옥살이를 하고 있었다.
우리 같았으면 억울하게 갇혀 있다고 불평하며 다른 무엇보다 자유를 얻게 되도록 기도해 달라고 간청했을 것이다.
그런데 바울은 에베소 교회 교인들에게 이렇게 부탁하였다.
“내가 입을 열 때에, 하나님께서 말씀을 주셔서 담대하게 복음의 비밀을 알릴 수 있게 해 달라고 하십시오.”
그는 감옥에 갇혀 있는 것을 ‘담대하게 복음을 전할 수 있는 기회’로 보았던 것이다.
3장 1절에서 바울은 자신을 ‘그리스도 예수의 일로 너희 이방인들을 위하여 갇힌 자’로 불렀다.
4장 1절에서는 ‘주 안에서 갇힌 자’로 불렀다.
이제 그는 자신을 ‘쇠사슬에 매인 사신’으로 부르고 있다(6: 20).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의 사신으로 주께서 맡겨주신 복음을 충성스럽게 전하기를 힘썻다.
 
맺는 글
어떤 분이 다음과 같은 말을 하였다.
‘만일 당신이 안일하고도 평안한 삶만을 보장해 주는 종교를 찾는다면, 기독교는 아닙니다.’
이는 우리가 신봉하는 기독교는 이 세상의 죄악과 싸우는 종교이기 때문이다.
사단과 영적 전쟁을 하는 종교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내가 세상에 화평을 주러 온 줄로 생각지 말라 화평이 아니요 검을 주러 왔노라” (마 10: 34).
적과 싸우려면, 우리는 힘이 강해야 한다. 약하면 싸울 수 없다.
그런데 오늘날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영적으로 너무 약하다는 사실을 자인하지 않을 수 없다.
어린 아이처럼 얻을 것만 바란다.
우리는 또한 우리의 힘이 아무리 강하다 할지라도 사단을 이길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전능하신 하나님의 도움이 없이는 사단과 싸워서 결코 이길 수 없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는 성도들에게 하나님의 힘의 능력.으로 강건해 지라고 한다.
그리고 ‘하나님의 전신 갑주’로 무장하라고 한다.
우리 모두가 악한 세상에서 하나님의 힘으로 강해져서 선한 싸움을 잘 싸워 승리하는 성도들이 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