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ntle_05_01.gif
총 게시물 499건, 최근 1 건

거룩하라 - 제 2과 - 2016년 9월 11일 주일 장년성경연구

글쓴이 : 강호길 날짜 : 2016-09-05 (월) 10:33 조회 : 478

2016911일 주일 장년성경연구

 

2


거룩하라

 

학습구절:  베드로전서 113 -25

성경진리:

예수님의 부활은 신자들로 하여금 거룩한 삶을 살게 해준다.

주요교리: (성화)

성화는 중생한 때부터 시작하여, 믿는 자가 자신을 구별하여 하나님의 목적에 쓰임을 받으며

자기 안에 거하시는 성령님의 임재와 능력으로 성숙해 가는 과정이다.

 

암송구절: 베드로전서 122

너희가 진리를 순종함으로 너희 영혼을 깨끗하게 하여 거짓이 없이

형제를 사랑하기에 이르렀으니 마음으로 뜨겁게 서로 사랑하라 

Now that you have purified yourselves by obeying the truth so that you have sincere love for your brothers, love one another deeply from your heart.

시작하는 글:

우리 중 많은 사람들은 2001911일에 어디에 있었던지 기억하고 있다.

이는 그날 일어난 엄청난 사건 때문이다.

그날 이후로 많은 것들이 변화되었다.

어떤 것들은 당시에 일어난 사건들과 직접 관계되고 있는 변화인 반면에, 다른 것들은 그 사건과 직접 관계가 없거나 그 후유증으로 일어난 것들이 되고 있다.

우리가 목격해 오고 있는 몇 가지 예만 들어보아도, 테러위협의 증가, 철저한 보안검색, 현실적인 경제문제들, 및 결혼에 대한 정의 등을 꼽을 수 있다.

물론 우리도 많이 변한 것이 사실이다.

다른 사람들은 관계가 끊어 진데 반해 우리는 새로운 관계를 시작했을 수도 있다.

자녀들이 생겼을 수 있다.

직장을 바꾸었거나 큰 병을 앓았을 수도 있다.

개인적인 변화의 문제를 주님과의 관계의 문제로 좁혀보도록 하자.

더 좋아졌건 나빠졌건 간에, 당신이 과거보다 지금이 어떻게 달라졌는지를 생각해 보자.

어쩌면, 당신은 처음으로 교회에 나오기 시작했거나 교회를 옮겼을 수 있다.

당신은 성경말씀을 더 열심히 그리고 진지하게 공부하기 시작했거나, 선교여행에 참가했거나, 혹은

성경공부 반을 인도하기 시작했을 수 있다.

 

베드로는 소아시아 지역에서 고통을 당하고 있는 그리스도인들에게 편지를 썼다.

그들은 지역적으로 일어나고 있던 박해를 당하고 있었으며, 계속 믿음을 지키기 위해서는 격려와

용기가 필요하였다.

핍박은 신앙을 타협하게 하는 구실이 될 수 없었다.

도리어, 그들은 그 같은 위협에 직면해서도 더 거룩한 삶을 살기를 힘써야 하였다.

그들은 어떻게 생활하느냐에 대해 하나님께 책임을 지고 있었다.

그들의 사는 방식은 복음에 대한 그들의 믿음을 반영하는 일이 되었다.

미래의 소망을 예수님의 부활에다 연결시켰던 것처럼, 베드로는 주님의 부활이 믿는 자들에게 능력을 주어 현재의 삶을 거룩하게 해 주는 점을 밝혀주었다.

 

본문배경설명:

베드로전서 113 -25


본문의 구절들을 좀더 잘 이해하기 위해서는, 1세기 당시에 일어났던 특정한 사건들과 문화적인

관습에 대해 아는 것이 중요하다.

많은 성경학자들은 베드로전서가 주후 60년대에 기록된 것으로 믿고 있다.

당시에 로마를 통치했던 황제는 주후 54년부터 68년까지 다스린 네로였다.

주후 64년 로마시의 절반을 태운 대형 화재사건 때부터 그가 죽을 때까지, 네로는 로마에 있는

그리스도인들을 핍박하였고, 그 후부터 로마정부는 공식적으로 그리스도인들을 적대하는 입장을

취하였다.

그 같은 정책은 수세기 후에 콘스탄틴 황제가 중단할 때까지 계속되었다.

때문에 당시 베드로의 편지를 받아본 그리스도인들은 정치 및 사회적으로 변화를 겪고 있었다.

그러므로, 이번 주의 학과에서 모든 행실에서 거룩한 자가 되라고 한 베드로의 말은 상황이 변하거나 일이 어려워지는 것이 거룩한 삶을 추구하는 것을 포기하는 이유가 결코 될 수 없음을 상기시켜 주고 있다.

베드로는 오늘 날 우리에게 생소한 당시의 두 가지 문화적 관습을 예로 들어 설명하였다.

첫째는 문자 그대로, “너희 마음의 허리를 동이고라는 13절의 말이다.

그 말은 남자들이 입던 긴 겉옷을 허리까지 걷어 올린 다음 허리 띠로 동여매던 옛 관습을 가리키고

있다.

그것은 달려가거나 격렬한 활동을 하기 위한 준비를 갖추는 일이 되었다 (왕상 18: 46; 왕하 4: 29; 9: 1).

베드로가 든 예는 있는 힘을 다해 일을 하려는 의도적인 준비를 생생하게 묘사해 주고 있다.

둘째는 대속함을 받은이라는 말이다 (1: 18).

그 말이 가리키고 있는 것은 일세기 당시의 관습으로, 노예나 인질을 돈을 주고 사서 자유를 주는

일이었다.

오늘날 우리는 그 개념을 이해하고 있을지라도, 그 같은 의미로 대속함을 받은 경험을 한 일은

없을 것이다.

우리는 대속함을 받았다는 말을 구원을 받았다는 말과 동일하게 사용하는 것 같이 보인다.

그러나, 베드로가 사용한 용어는 우리가 사용하는 것보다 더 정확한 의미를 나타내고 있다.

 

학습구절연구:

순종하는 삶 (베드로전서 113 -16)

1: 13     그러므로 너희 마음의 허리를 동이고 근신하여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에 너희에게 가져다 주실 은혜를 온전히 바랄지어다

1: 14     너희가 순종하는 자식처럼 전에 알지 못할 때에 따르던 너희 사욕을 본받지 말고

1: 15     오직 너희를 부르신 거룩하신 이처럼 너희도 모든 행실에 거룩한 자가 되라

1: 16     기록되었으되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지어다 하셨느니라

 

113:  그러므로라는 접속어는 베드로가 13절부터 12절까지에서 한 말을 상기시켜 주며,

앞으로 13절부터 25절까지에서 하려고 하는 말을 연결시켜 주는 말이 되고 있다.

실제로 그 말은 그 모든 사실에 비추어 볼 때, 우리는 이렇게 해야 합니다라는 뜻이 되고 있다.

베드로는 먼저 너희 마음의 허리를 동이고 근신하여라는 말로 믿는 자들이 가져야 될 마음의

자세에 대해 말하였다.

허리를 동이고라는 문구는 당시 남자들이 옷을 입던 방식과 관계되고 있다.

당시 남자들은 오늘 날처럼 바지나 외투 같은 간편한 옷을 입은 것이 아니라. 길고 헐거운 긴 겉 옷을 입고 다녔다.

그들은 힘든 일을 할 때는 다리 밑까지 늘어져서 일하는데 거치적 거리며 방해가 되는 옷을 허리까지 걷어 올린 다음 띠로 허리를 동였다.

그러니까, 그것은 일할 준비를 갖추는 일이 되었다.

그러니까, 베드로는 세상의 것을 은유로 들어 영적인 면과 마음의 자세에 적용시켰던 것이다.

그 은유를 오늘의 말로 표현하면, ‘소매를 걷어 올리고 준비를 하십시오라고 할 수 있다.

베드로가 사용한 은유는 근신하여라는 말에서 나타나듯이 마음을 굳게 먹고 정신을 바짝 차리십시오혹은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취하라는 뜻이 될 수 있다(6: 13).

베드로는 믿음 때문에 핍박을 당하고 있는 그의 독자들이 누구를, 무엇을 그리고 왜 믿는지를 깊이

생각하고 확실하게 깨닫기를 원하였다.  

자신이 믿고 있는 신앙에 대해 깊이 그리고 진지하게 생각하는 것은 계속해서 믿은 자들이 교회에서 해야 될 주요한 일이 되고 있다.

다음으로, 베드로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에 너희에게 가져다 줄 은혜를 온전히 바랄지어다는 말로 소망을 가지고 살아가는 마음의 자세를 강조하였다.

그것은 세상적인 희망이나 소망이 아니라, “산 소망이 되고 있다 (1: 3).

그리스도인들은 마지막 때에 얻게 될 하늘나라의 소망을 바라보며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114-15: 로마서 109절은 믿음의 요소로 예수님이 구세주가 되시는 것을 입으로 시인하는 것과 그가 죽으셨다가 다시 사신 것을 마음에 믿는 것으로 밝히고 있다.

그렇다고 믿음은 입으로 시인하고 마음으로 믿는 것이 전부가 아니다.

오히려 그것은 시작에 불과하다.

믿음은 자라나는 것이며, 그같이 자라나는 믿음은 신학적으로 성화의 삶혹은 제자의 삶으로

표현되고 있다.

그것은 믿음이 매일의 삶 속에서 행함으로 나타나는 것을 뜻하며, 주님의 뜻을 따르며 그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 되고 있다.

그것은 자녀들이 부모의 뜻을 따르며 부모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과 같다.

그래서 베드로는 너희가 순종하는 자식처럼이라는 말로 믿는 자들에게 순종의 삶을 살 것을 권면하였다.

베드로는 그리스도인의 자녀로서의 순종을 그리스도인의 생활방식의 긍정적인 면과 부정적인 면의

관점에서 정의하였다.

그는 먼저 전에 알지 못할 때에 따르던 너희 사욕을 본받지 말고라는 말로 그리스도인들이 하지

말아야 될 것을 밝혔다.

한 성경학자는 그 말을 당신의 인격이 전에 모르고 쫓았던 욕망에 의해 형성되지 않게 하십시오라는 뜻으로 해석하였다.

전에 알지 못할 때에 따르던이라는 말은 베드로전서가 주로 이방인들을 대상으로 기록된 서신이

되고 있음을 나타내는 내적 증거의 하나가 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유대인들의 경우에는, 하나님의 뜻과 말씀을 모른 것이 아니라, 알고 있었는데도 불순종한 것이

문제가 되고 있다.    

그리스도인들이 하지 말아야 하는 관점에서 문제를 밝힌 후에, 베드로는 오직 너희를 부르신

거룩한 이처럼 너희도 모든 행실에 거룩한 자가 되라는 말로 그리스도인의 생활에 포함되어야

할 것이 무엇인지를 확언하였다.

거룩함은 하나님의 주요한 속성이 될 뿐아니라, 하나님은 세상과 구별되시는 분이심을 나타내고 있다.

그러므로 성경에서 하나님은 거룩하신 분으로 불리고 있다 (30: 15).  

거룩이란 말의 기본적인 뜻은 구별되다혹은 분리되다이다.  

그러므로, 그 말을 믿는 자들에게 적용할 때 그 것은 죄로부터 분리되고 하나님만을 위해 구별된 혹은 헌신된 삶을 사는 것을 가리킨다.   

특별히 여기서 거룩하다는 말은 윤리적인 면을 강하게 나타내고 있으며, 베드로는 믿는 자들에게

주일에 교회에 나와서 뿐만 아니라, “모든 행실에 거룩한 자가 되라고 하였다.

116: 베드로는 성경에 기초하여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이해하고 성도들에게 거룩한 자가 되라고 명령하였다.

그래서 그는 레위기서에 여러 번에 걸쳐 나오고 있는 말씀을 인용하였다 (11: 44 -45; 19: 2; 20: 7, 26).

그의 백성을 위한 하나님의 윤리적인 기준은 구약과 신약에서 똑 같으며, 그의 속성에 기초되고 있다.

우리는 어떤 일이 윤리적으로 옳은지 그른지를 어떻게 알 수 있을까?

어떤 사람들은 한 사회의 윤리적 기준이나 그 사람의 양심에 비추어보면 알 수 있다고 한다.

그러나 윤리의 근거와 기초는 하나님이시며, 그의 말씀이 윤리의 기준이 된다.

하나님은 그의 성품을 나타내는 행동이나 태도를 기뻐하시며, 그의 품성에 반대되는 것은 싫어하시기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을 닮아가며 그를 영화롭게 하기를 힘써야 한다.

세상의 자녀들이 부모를 닮기를 원하는 것처럼, 하나님의 자녀들인 우리도 하나님 아버지를

닮아가야 한다.  

 

경외하는 삶 (베드로전서 117 -21)


1: 17     외모로 보시지 않고 각 사람의 행위대로 심판하시는 이를 너희가 아버지라 부른즉 너희가

            나그네로 있을 때를 두려움으로 지내라

1: 18     너희가 알거니와 너희 조상이 물려 준 헛된 행실에서 대속함을 받은 것은 은이나 금 같이 없어질 것으로 된 것이 아니요

1: 19     오직 흠 없고 점 없는 어린 양 같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된 것이니라

1: 20     그는 창세 전부터 미리 알린 바 되신 이나 이 말세에 너희를 위하여 나타내신 바 되었으니

1: 21     너희는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시고 영광을 주신 하나님을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믿는

            자니 너희 믿음과 소망이 하나님께 있게 하셨느니라

 

117: 예수님은 우리들에게 하나님을 우리 아버지로 부르라고 하셨다 (6: 9).

그렇지만, 우리는 또한 하나님이 모든 인간을 심판하시는 분이심을 알고 있다.

117절은 믿는 자들에게 거룩한 삶을 위한 더 강한 동기를 주는데 목적이 있다.

어떤 성경학자들은 베드로가 마지막 심판을 마음에 두고 있었다고 믿는데 반해, 다른 성경학자들은

인간 부모가 자녀들이 잘 되라고 계속 징계하는 것처럼, 우리가 삶 속에서 하나님으로부터 받는 현재의 징계 혹은 심판도 포함되고 있는 것으로 믿고 있다 (벧전 4: 17).

어느 경우가 되었던 간에, 하나님은 완전하고 공평한 심판자가 되신다.

그는 인간 부모가 하는 것처럼 겉모양으로 판단하지 않으신다.

그 같은 사실을 깨닫고, 우리는 베드로가 나그네로 있을 때로 표현한 이 세상에서의 삶을

두려움으로살아가야 한다.

이 세상의 삶은 나그네와 같이 임시 거하는 것으로, 영원을 위한 준비기간이 되고 있다.

베드로가 두려움이라고 한 말은 공포를 느끼거나 무서워 하는 것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경외심,

즉 공경하며 두려워하는 마음을 가리킨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일은 신약과 구약에서 똑같이 가르치는 교훈이 되고 있다 (1: 7; 3: 22).

그러므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신뢰하며 공경하면서도 두려워하는 일을 전적으로 가능하며 양립될 수 있다.

118 -19:  우리는 하나님이 우리의 아버지가 되시며 심판자가 되시기 때문에 그를 공경하며

두려워할 뿐 아니라, 우리를 헛된 행실에서 대속해 주셨기 때문에 우리의 공경과 사랑을 받으실

만 하다.

대속하다는 말은 본문 배경설명에서 지적했듯이 노예시장에서 사용되던 용어였다.

당시 사람들은 몸 값을 지불하고 다른 사람의 자유를 살 수 있었다.

베드로는 그의 독자들에게 그들이 세상 조상으로부터 헛된 행실을 물려받은 사실을 상기시켰다.

죄가 아담으로부터 그의 후손들에게 다 퍼졌으며, 어떤 무서운 질병처럼 인간 모두에게 전해

내려오고 있다.

사도 바울은 그 같은 사실을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라는 말로 표현하였다 (3: 23).

그것은 죄를 물려받은 모두를 노예로 만들었으며, 죄인들은 은이나 금으로도 살수 없는 대속

필요하게 되었다.

하나님에 대한 사랑과 공경심을 높이기 위하여, 베드로는 하나님이 믿는 자들을 어떻게 대속해

주셨는지를 말하였다.

믿는 자들이 대속함을 받은 것은 은이나 금 같이 없어질 것으로 된 것이 아니다.    

하나님은 죄에 노예가 된 자들을 해방시켜주시기 위하여 자신의 아들을 대속물로 주셨다.

하나님은 그들을 자유 케 해 주셔서 자녀로 삼아 주셨다.

오직 흠 없고 점 없는 어린 양이란 말로, 배드로는 죄 없는 양이 되셔서 우리 죄를 위해 십자가에

달리신 그리스도를 가리켰다 (22: 19 -25).     

120 -21:  인간을 대속하시려는 하나님의 계획은 미리부터 정교하고도 주도 면밀하게

만들어졌기 때문에, 그것만으로도 하나님은 공경을 받으시기에 합당하시다.

베드로는 예수님이 창세 전부터 미리 알린 바 되신사실을 우리에게 상기시켜 주고 있다.

그 것은 예수님의 죽음이 창세 전부터 계획된 하나님의 구원의 계획이 되고 있음을 밝혀주는 말이다.

십자가는 하나님이 나중에 생각해 내신 차후 계획이 아니었다.

주권자이신 하나님은 아담과 이브가 타락할 것을 아셨으며, 미리부터 구원의 계획을 세우셨다.   

예수님은 대안이 아니었다.

사람들이 항상 하나님의 계획을 이해하지 못했을지라도, 하나님은 계속해서 예수님을 계시해 주셨고 때가 되자 그를 나타내 주셔서 사람들이 믿게 해 주셨다

21절에서, 베드로는 그리스도를 통한 하나님의 대속의 시역을 펼쳐 보여 주셨다.

믿는 자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시고 영광을 주신 하나님을 그리스도를

말미암아 믿는 자들로 믿음과 소망을 하나님께 두고 있는 사람들이다.

 

사랑하는 삶 (베드로전서 122 -25)


1: 22     너희가 진리를 순종함으로 너희 영혼을 깨끗하게 하여 거짓이 없이 형제를 사랑하기에 이르렀으니 마음으로 뜨겁게 서로 사랑하라

1: 23     너희가 거듭난 것은 썩어질 씨로 된 것이 아니요 썩지 아니할 씨로 된 것이니 살아 있고 항상 있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되었느니라

1: 24     그러므로 모든 육체는 풀과 같고 그 모든 영광은 풀의 꽃과 같으니 풀은 마르고 꽃은

            떨어지되

1: 25     오직 주의 말씀은 세세토록 있도다 하였으니 너희에게 전한 이 복음이 곧 이 말씀이니라

 

122:  믿는 자들이 다른 그리스도인들과의 관계 속에서 강조해야 할 것은 무엇이 되어야 할까?

베드로의 대답은 서로 사랑하라는 말이 되고 있다.

그리스도를 믿게 됨으로 믿는 성도들의 삶은 변화되었고, 그 같은 사랑은 가능해졌다.

여기서 베드로는 예수님을 믿게 된 것을 진리를 순종는 것으로 묘사하였다.

믿음과 소망을 하나님께 두었다는 말도 (1: 21) 다른 방식의 표현이 될 수 있다.

예수님을 믿음으로 나타난 한 가지 결과는 영혼깨끗하게 씻김을 받은 것이다.

더 나아가서, 믿는 자들에게는 계속해서 더욱 깨끗해지는 과정이 있다.

그것은 영혼과 마음뿐 아니라, 행동과 태도가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것으로, 점점 더 거룩해 지는

것이다.  

그것은 종종 성화의 삶으로 표현된다. 

그리스도인의 변화는 안에서부터 밖으로 일어난다.

내적 정결이 밖으로 나타나는 중요한 결과의 하나가 거짓이 없이 형제를 사랑하는 것이다. 

베드로가 사용한 용어들의 문자적인 뜻은 교육적이다.

이 구절에서 명사로 사용된 사랑이란 헬라 어는 형제 사랑이 되고 있다.

그래서 형제를 사랑하기에 이르렀으니라는 말로 번역되고 있다.

거짓 없이로 번역된 형용사는 위선이 없는혹은 속임이 없는뜻이 되고 있다.

베드로는 마음으로 뜨겁게 서로 사랑하라는 명령으로 이 진리를 확고하게 하였다.

이번에 사용한 사랑이란 말은 동사형태로, 신약성경에서 잘 알려진 희생적인 사랑이다.  

우리는 122절에서 진행되고 있는 과정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

예수님을 믿게 되었을 때, 우리는 영혼이 깨끗함을 얻게 되었다.

믿음이 점점 더 자라고 거룩해 짐에 따라, 하나님의 가정에서 형제를 사랑하는 정도까지 이르게

되었다.

이제 베드로는 그 같은 성도들에게 마음으로 뜨겁게 사랑하라고 한다. 

123:  거듭나다란 말은 13절에서 사용된 것과 같은 동사 형태가 되고 있다.

베드로는 13절에서는 거듭나는 일에 있어서 부활의 역할을 강조하였다.  

그는 여기서는 하나님의 말씀을 강조하였다.

문맥상으로 볼 때, 베드로는 복음이 전파될 때 전해지는 말씀을 뜻하였다 1: 25).

복음이 전파됨으로, 죄인들은 듣고, 마음이 열리며, 성령님은 거듭나게 하심으로 새 생명을 주신다.

베드로는 그 말씀을 살아있고 항상 있는 하나님의 말씀로 묘사하였다.

베드로는 거듭나게 하는 하나님의 말씀의 역할을 썩어질 땅의 씨에다 비겼다.  

씨앗이 좋은 땅에 심겨지면, 새 생명이 나타난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말씀이 죄를 회개하고 그 말씀을 믿는 죄인의 마음에 심겨지면, 새 생명이 태어난다.

124 -25: 베드로는 성경말씀을 들어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증거하였다 (1: 16).

이제 그는 하나님의 말씀이 영원하다는 사실을 증거하기 위하여 성경말씀을 들고 있다.  

그는 아사야 406 -8절에 있는 히브리 시의 이행 어구를 상기하였다.

첫 번째 이행 어구에서 두 번째 줄은 첫 번째 줄의 의미를 반복하고 있는데, 다른 단어로 하고 있다.

육체라는 말은 자연계의 인간 존재를 가리키며, “모든 영광이란 말은 인간의 화려함과 명성을

가리키고 있다.

이것들은 얼마나 영구적인가?

그것들은 뜨거운 햇볕에 타버리는 풀처럼 무상하다.

그것들은 곧 시들어 떨어지는 풀의 꽃처럼 말라버린다.  

지금 살고 있는 인간들 각자도, 제아무리 유명하 할지라도, 잠깐 동안 있다 사라져 버린다.

세상에는 우리들 자신이 믿고 의지할 수 있는 영원한 어떤 것이 있는가?  

이사야와 베드로는 있다는 말로 대답하였다.

두 번째 이행어구에서, 두 번째 줄은 주의 말씀은 세세토록 있도다라는 말로 풀은 마르고 꽃은

떨어지되라는 첫 번째 줄과 반대되는 의미를 나타내주고 있다.

세상의 모든 것들은 풀과 꽃처럼 시들고 말라버릴 지라도,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은 세세토록 있는 것을 꼭 붙을 수 있다.

베드로는 너희에게 전한 복음이 곧 이 말씀이니라는 말로 항상 있는 하나님의 말씀은 복음이 되고

있음을 밝히고 이를 독자들의 삶에 적용시켰다.  

이 말씀은 사람이 새로 태어나게 하는 필요한 도구가 된다.

인간이 성취한 모든 영광들은 없어져 버리지만, 복음으로 다시 태어난 사람들은 영원히 하나님과 함께 살게 된다.

 

말씀을 나의 상황에 적용하기


하나님이 거룩하시기 때문에 하나님의 자녀들인 믿는 자들은 거룩한 삶을 살아야 한다.

하나님은 믿는 자들이 어떻게 살아가느냐에 대해 책임을 물으신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고 무덤에 묻히셨다가 부활하신 일은 그리스도인들이 거짓 없는

사랑의 삶을 살게 하는 동기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