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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 가운데서 행함 - 2015년 6월 14일 주일 장년성경연구 제 2과 (요한일서 공부)

글쓴이 : 강호길 날짜 : 2015-06-03 (수) 17:34 조회 : 748

2015 6 14 주일 장년성경연구

 

2

 

가운데서 행함

 

주의 학습구절:  요한일서 1 1 -5절부터 2 6절까지

 

주의 암송구절:  요한일서 1 9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그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과의 성경진리:

하나님과 사귀는 삶에는 하나님을 닮아가며 거룩해지고, 죄를 고백하며, 예수 님을 신뢰하며, 그의 말씀에 순종하는 특징이 나타난다.

 

시작하는 :

 

요한은 하나님과 참된 믿음의 그리고 부도덕한 삶을 은유법으로 표현하였다.

요한은 하나님을 빛에다 비겼다 (1: 5).

여기서 모든 생명의 근원이 되시는 하나님을 가리키고 있다.

요한 복음서에 보면, 예수님도 빛으로 불려지고 있다 ( 1: 3 -11; 8: 12).

빛은 생명의 근원이 되기 때문에, 하나님이계신 곳에는 빛이 있다.

그러므로, 생명을 얻기 원하는 사람은 하나님 안에 거해야 하며 가운데서 행해야 한다.

반대로, 어둠에 행하는 것은, 요한의 말에 의하면, 가운데서 생활하는 것을 뜻하며, 또한 하나님과 교제의 관계가 끊어진 것을 뜻한다.

하나님은 빛이시기 때문에, 오직 가운데 행하는 자만이 하나님과 진정한 사귐의 관계를 가질 있다.

같은 사귐의 놀라운 한가지 결과는 예수 그리스도의 피를 통하여 죄를 깨끗이 씻김을 받게 되는 것이다.  

하나님의 본성에 대한 요한의 주장으로 인하여 죄의 어둠 가운데 행하면서도 하나님과 사귐의 관계를 계속할 있다는 거짓 교사들의 믿음은 거짓된 것으로 드러났다.

사도 요한은 죄의 문제에 대한 거짓교사들의 황당한 주장을 논박하고, 예수님의 속죄의 죽음으로 인해 죄의 형벌에 대한 하나님의 요구조건이 충족된 사실을 인정하였다.

그는 또한 사람들이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맺고 있는지 아닌지를 입증할 있는 기준을 제시하였다.

진정한 신자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과 사귐의 관계를 맺고 그의 말씀에 순종하는 사람이다.

끝으로, 요한은 믿는 자들이 하나님의 사랑의 가운데서 행하는 것은 하나님과 사귐의 관계를 맺고 있는 증거가 된다고 하였다.

 

 

학습구절 연구:

 

거룩함을 나타내라 (요한일서 15 -7)

 

1: 5      우리가 그에게서 듣고 너희에게 전하는 소식은 이것이니 하나님은 빛이시라

            그에게는 어둠이 조금도 없으시다는 것이니라

1: 6      만일 우리가 하나님과 사귐이 있다 하고 어둠에 행하면 거짓말을 하고 진리를 행하지

            아니하거니와

1: 7      그가 가운데 계신 같이 우리도 가운데 행하면 우리가 서로 사귐이 있고 아들 예수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1 5 - 요한일서 1: 1 -4절에서, 사도 요한은 자신이 직접 목격하고 경험한 성육신 하신 하나님의

아들 대한 증거를 강조하였다.

1 5절에서 요한은 우리가 그에게서 듣고 너희에게 전하는 소식은 이것이니라는 말로, 하나님의

아들에게서 들은 것을 소개하며 독자들에게 전하였다.

그가 전하는 멧시지는 하나님은 빛이시라 것과 그에게는 어둠이 조금도 없으시다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어둠 정반대되는 개념으로, 극명하게 대조되고 있는 것을 있다.

예수님은 세상에 계실 나는 세상의 빛이니 나를 따르는 자는 어둠에 다니지 아니하고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 말씀하시면서 자신을 빛으로 표현하셨다 ( 8: 12).

사도 요한은 빛과 어둠의 대조법을 사용하여 그의 서신에서 선과 ’, ‘의와 ’, ‘아는 것과 무지한 ’, ‘사랑과 미움등을 대조시키고 있다.

그러니까, “그에게는 어둠이 조금도 없으시다 말은 하나님께는 악한 것이나 그리고 무지한

것이 조금도 없다는 뜻이다.

빛은 또한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가리키는 말이 되고 있다.

하나님은 빛이시기 때문에, 빛이 어둠을 들어내는 것처럼, 하나님은 죄와 거짓의 어둠을 드러내 주신다.

하나님의 본성에 대한 요한의 가르침은 사람이 하나님과 사귐의 관계를 맺는 기초가 된다.

같은 본성으로 인해, 하나님은 거룩하고 의로운 속성을 나타내시며 그의 백성들도 거룩한 삶을 살기를 기대하신다.

1 6 – “우리가 하나님과 사귐이 있다 말은 거짓 교사들의 주장을 대변한 것이다.

요한은 몸으로 죄를 지어도 혹은 악한 일을 행하여도 영적으로 하나님과 사귀는 데는 아무 상관이 없다고 하는 거짓 교사들의 주장을 반박하였다.

그들은 육체는 악하고 영은 선하다고 가르쳤다.

그러므로, 사람이 육체로 행하는 것과 영적으로 행하는 것은 아무 상관없는 별개의 것이라고 가르쳤다.

이에 대해, 사도 요한은 하나님과 사귐이 있다 하고 어둠에 행하면 거짓말을 하고 진리를 행하지 아니함이라고 하며 거짓 교사들을 강하게 질책하며 반박하였다.

하나님은 빛이 되시고, 또한 때문에 진리와 온전하심과 공의의 표준이 되시기 때문에, 어둠 가운데서 행하는 사람, 악과 거짓을 행하며 하나님을 거역하는 사람은 하나님과 사귐을 가질 없다는 것이

요점이 되고 있다. 

그것은 빛과 어둠이 함께 없는 것과 같다.

어둠에 (한다)” 말은 하나님의 뜻과 말씀을 무시하고, 습관적으로 죄된 생활을 하는 것을 뜻한다. 

1 7 어둠에 행하는 것은 하나님과의 관계를 갈라놓는 일이 되는 것에 반해, 가운데 행하는

일은 놀라운 축복을 누리게 된다.

가운데 행하는 번째의 축복은 빛이신 하나님과 그리고 가운데서 행하는 다른 사람들과 사귐의 관계를 가지게 되는 것이다.

하나님과의 사귐의 증거는 그의 말씀에 순종하는 삶이 되고 있다.

그래서 예수님은 그의 제자들에게 나의 계명을 지키는 자라야 나를 사랑하는 자니 나를 사랑하는 자는 아버지께 사랑을 받을 것이요 나도 그를 사랑하여 그에게 나를 나타내리라 하셨다 ( 14: 21).

가운데 행하는 번째의 축복은 예수님의 피로 죄가 깨끗이 씻김을 받게 되는 것이다.

사도 요한은 아들 예수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라고 하였다.

예수의 라는 말은 예수님께서 그를 믿는 자들이 죄를 사함 받을 있도록 십자가에 달려 피를 흘리시고 죽으신 것을 가리킨다.

 

죄를 자백하라 (요한일서 1 8 -10; 2 1 -2)

 

1: 8      만일 우리가 죄가 없다고 말하면 스스로 속이고 진리가 우리 속에 있지 아니할 것이요

1: 9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그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1: 10    만일 우리가 범죄하지 아니하였다 하면 하나님을 거짓말 하는 이로 만드는 것이니 또한 그의

            말씀이 우리 속에 있지 아니하니라

2: 1      나의 자녀들아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씀은 너희로 죄를 범하지 않게 하려 함이라 만일 누가 죄를

            범하여도 아버지 앞에서 우리에게 대언자가 있으니 의로우신 예수 그리스도시라

2: 2     그는 우리 죄를 위한 화목 제물이니 우리만 위할 아니요 세상의 죄를 위하심이라

 

1 8 거짓 교사들은 하나님이 아무 죄가 없으시다는 사실은 바르게 믿었다.

그들의 문제는 아무 죄가 없으신 하나님과 사귐을 가지기 위해서는 인간도 죄가 없어야 한다고 믿은

것이었다.

만일 우리가 죄가 없다고 말하면이란 가정구는 실제로는 죄가 없다는 거짓 교사들의 주장이 되고 있다.

같은 주장은 인간의 타락된 상태를 부인하고 기독교의 구원론을 부정하는 일이 되었다.

성경은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 3: 23), “죄의 삯은 사망이라고 증거하고 있다( 6: 23).

그리고 성경은 또한 사람들이 죄인임을 깨닫고 죄를 회개하고 구세주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

구원을 얻는다고 가르친다.

이에 반해, 거짓 교사들은 특별한 영적 지식을 깨닫는 것으로 구원을 얻을 있다고 가르쳤다.

사도 요한은 거짓 교사들의 같은 주장과 가르침은 자신을 속이며 진리를 저버리는 그릇된 결과를 초래케 한다고 하였다.

1 9 요한은 구절에서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제시하고 있다.

문제에 대한 해결책은 거짓 교사들처럼 죄가 없다 죄를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죄를 인정하고

회개하는 것이다.

요한은 말하기를, “우리가 죄를 자백하면하나님은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실 이라고 분명하게 밝혀 주고 있다.

자백하다 번역된 헬라어는 용어의 합성어로, 하나는 말하다 뜻이고 다른 하나는 같은 뜻하고 있다.

 그러므로, 죄를 자백한다는 말의 문자 그대로의 뜻은 죄의 문제에 대해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것과 같이 말한다는 것이다.

하나님은 죄는 그릇 되다고 하시며, 죄를 미워하신다.

죄는 온전히 거룩하시고 정결하신 하나님으로부터 우리를 갈라놓는다.

죄를 자백한다는 말은 또한 우리가 생각과 태도와 행동을 회개하고 버려야 한다는 것에 동의하는

것을 뜻한다.

우리가 우리의 죄를 자백하면, 미쁘시고 의로우신 하나님은 우리 대신 행해주신다.

그는 그리스도의 피로 우리의 문제를 해결해 주신다.

사도 요한은 우리가 죄를 자백하면 하나님은 우리 죄를 사하시며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실 이라고 하였다.   

사하다 동사에는 빛을 탕감 받는다는 뜻이 내포되어 있다.

깨끗하게 하다 동사는 얼룩이나 오점을 제거하는 것을 뜻한다.

우리는 1: 9절의 말씀을 다음과 같은 뜻으로 풀어서 있다.

우리가 죄를 자백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영접하면, 우리는 죄를 사함 받아 하나님 앞에서 의롭다 하심을 받는다.

사도 바울은 같은 칭의(稱義) 과정을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니라는 말로

표현하였다( 5: 1).  

주님을 구세주로 영접한 후에도, 우리는 종종 유혹에 빠지거나 죄를 짓게 된다.

같은 죄로 인하여 하나님 아버지와 그의 자녀의 관계가 멀어지기도 한다.

그러나 미쁘시고 의로우신 하나님 아버지는 그의 자녀가 죄를 자백하면, 죄를 용서해 주시고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주시며 멀어진 관계를 회복시켜 주신다.

 그것이 바로 믿는 자들의 성화의 과정 되고 있다.   

1 10 요한은 구절에서 만일 우리가 범죄하지 아니하였다 하면 하나님을 거짓말하는 이로 만드는 이라고 하였다.  

인간의 죄는 해결되어야 심각한 문제가 되기 때문에, 하나님은 이를 해결하기 위해 그의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셔서 십자가의 죽음을 당하게 하셨다. 

그런데, 하나님을 안다고 하고 하나님과 사귐이 있다고 하는 거짓 교사들이 우리가 죄가 없다 하며 우리가 범죄하지 아니하였다 하는 것은 하나님의 하시는 일을 부인하는 일이 되었다.

요한은 또한 그의 말씀이 우리 속에 있지 아니하니라 말로 거짓 교사들의 허구성을 지적하였다.  

2 1 -2 요한은 그의 독자들을 나의 자녀들 부름으로, 그들의 영적 선도자(先導者)로서 느끼고

있는 자신의 애정을 나타냈다.  

그는 서신을 쓰는 목적은 독자들로 하여금 거짓교사들과 같이 죄를 범하지 않도록 돕는 것이라고

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요한은 독자들이 그들의 죄를 자백할 아니라, 그들의 대언자이신 의로우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들을 위해 대언하고 계신 것을 있도록 격려하였다.

예수님은 하나님 앞에서 그를 믿는 자들의 대변자, 중보자가 되신다.

요한은 또한 예수님을 죄를 위한 화목 제물 묘사하였다.

예수님은 십자가 위에서 죽으심으로 우리의 죄를 위한 속죄제물이 되셨다.

하나님은 거룩하고 공의로운 분이심으로 죄를 간과하실 없으시다.

죄에는 하나님의 심판이 따르게 마련이다.

그래서 성경은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해진 것이요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라고 분명하게

밝혀주고 있다 ( 9: 27).

그러나 누구든지 그리스도를 믿으면, 예수님의 죽음의 공로를 힘입어 죄를 깨끗이 씻김을 받게 된다.

예수님께서 속죄를 위한 대속 제물로 십자가에 달려 죽으심으로, 죄를 사함 받을 있는 길이 열리게

되었다는 기쁜 소식을 모든 사람이 들을 필요가 있다.

여기에 선교에 대한 성서적 요구가 담겨있다. 

 

순종하기를 힘쓰라 (요한일서 2 3 -6)

 

2: 3      우리가 그의 계명을 지키면 이로써 우리가 그를 아는 줄로 것이요

2: 4      그를 아노라 하고 그의 계명을 지키지 아니하는 자는 거짓말하는 자요 진리가 속에 있지

            아니하되

2: 5      누구든지 그의 말씀을 지키는 자는 하나님의 사랑이 참으로 속에서 온전하게 되었나니 이로써

            우리가 그의 안에 있는 줄을 아노라

2: 6      그의 안에 산다고 하는 자는 그가 행하시는 대로 자기도 행할지니라

 

2 3-4 사도 요한이 서신을 당시에 영지주의를 표방(標榜)하는 거짓 교사들이 즐겨 쓰던 말들 중의 하나가 하나님을 안다 것이었다.

그들은 자신들이 그같이 주장하는 근거로, 다른 사람들이 가지고 있지 못하고 자신들만 가지고 있다고한 신비스러운 지식 들었다.    

그들의 주장과 가르침을 따르면, 신비스러운 지식은 구원에 이르는 열쇠가 되었다.

반면에, 그들은 자신의 일상생활 속에서는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려는 어떤 노력도 하지 않았다.

요한은 믿는 자들이 하나님을 진짜 알고 있는지를 입증하기 자신들의 속에서 적용할 있는 분명한

방법을 제시하였다.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며 하나님의 뜻에 따라 행하는지를 보면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사도 요한은 우리가 그의 계명을 지키면 이로써 우리가 그를 아는 줄로 이라고 하였다. 

물론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것은 구원을 얻는 조건이 아니고, 구원의 결과로 나타나는 증거이다.

4절은 3절의 말을 다른 관점에서 좀더 자세히 설명해 주고 있다.

요한은 말하기를, 하나님을 안다고 하고 그의 말씀대로 행하지 않는 사람은 거짓말하는 자요 진리가

속에 있지 아니 ()” 하였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의 삶은 말과 행동이 일치되는 삶이 되고 있다.

그런데, 우리가 유의해야 점은 하나님의 말씀을 지킨다는 말에서는 순종하는 마음과 동기가 강조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2 5 -6 하나님의 말씀과 그의 뜻에 순종하는 삶은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과 사귐이 있다고 하는

사람들의 특징이 되어야 한다.  

요한은 밝히기를 같은 마음과 태도로 사는 사람은 하나님의 사랑이 참으로 속에서 온전하게 (된다)” 하였다.

사랑으로 번역된 헬라어는 아가페의 사랑이다.

하나님의 사랑이란 말은 믿는 자들을 위한 하나님의 사랑’, ‘하나님께 대한 믿는 자들의 사랑’, 혹은

참된 하나님의 사랑으로 해석될 있다.

온전하게 되다 말은 아무 죄가 없이 완전해 진다는 뜻이 아니라, 믿음이 성숙해 지는 것을 가리키고 있다.

우리가 하나님께 많이 순종하면 할수록, 많이 그리스도 안에 거하게 되며 ( 14: 21; 15: 50), 따라서 믿음이 자라나게 된다.

요한은 말을 행동으로 뒷받침해야 필요성을 강조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