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ntle_05_01.gif
총 게시물 504건, 최근 1 건

구원의 선물 - 2013년 9월 22일 주일 장년성경연구 제 4과 (요한복음 공부)

글쓴이 : 강호길 날짜 : 2013-09-18 (수) 13:39 조회 : 1277
구원의 선물   
 
배경구절: 요한복음 3장  1 -36절
학습구절:  요한복음 3장 1 -16절
 
금주의 성경진리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께 믿음으로 응답하면, 그는 우리에게 영생을 선물로 주신다. 
 
시작하는 글:
 
선물은 받는 것이다. 
어떤 값이나 대가를 치르는 것이라면, 그것은 전정한 선물이 아니다. 
선물은 단지 받든지 아니면 거절하는 것뿐이다. 
선물의 그 같은 속성을 염두에 두고,
잠시 동안 인간에게 가장 놀라운 일이 되고 있는 복음의 메시지에 대해 생각해 보기로 하자.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모든 죄인들에게 죄 사함과 영생의 선물을 주신다. 
우리는 그같이 놀라운 선물을 받을 자격이 없다. 
그 선물은 우리가 열심히 일하고 노력하면 하나님께서 꼭 주셔야 될 성질의 것이 아니다. 
그렇다고 값비싼 대가를 치르고 살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그 선물은 값으로 따질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받든지 아니면 거절하는 것밖에 없다.  
구원은 하나님께서 죄인인 우리들 각자에게 그리고 모두에게 주시는 선물이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하나님께서 그 선물을 준비하시기 위해 자신의 독생자인 아들을 희생시키셨다는 사실이다.  그 선물의 특별한 점은 그 선물이 값 없이 주시는 것이지만, 값 싼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이번 주에 우리는 사람들에게 가장 사랑 받는 성경말씀을 배우게 된다. 
그것은 거듭 나는 문제에 대해 예수님이 니고데모라는 사람과 함께 나눈 대화인데,
‘복음 중의 복음’으로 불리는 구절을 특별히 부각시키고 있다.    
 
학습구절 연구
 
관심이 있는가?  (요한복음 3장 1 -3절)
 
3: 1    그런데 바리새인 중에 니고데모라 하는 사람이 있으니 유대인의 지도자라
3: 2    그가 밤에 예수께 와서 이르되 랍비여 우리가 당신은 하나님께로부터 오신 선생인줄 아나이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지 아니하시면 당신이 행하시는  이 표적을 아무도 할 수 없음이니이다
3: 3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으니라
 
3장 1절에 소개되고 있는 “니고데모”는 예수님 당시에 중요한 유대인 지도자의 한 사람으로 “바리새인”이었다.  당시 유대 사회에는 여러 종파들이 있었는데,
복음서에는 영향력이 가장 컸던 바리새 파와 사두개 파 만이 언급되고 있다. 
역사 기록에 의하면, 예수님 당시에는 바리새인들이 약 6천명 정도가 있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바리새인’이라는 명칭은 ‘구별하다’라는 뜻의 말에서 유래되었다. 
바리새인들은 유대 율법을 엄격하게 지키며 조상들의 전통을 철저하게 따르는 생활에 헌신하던 사람들이었다. 
사두개인들은 부활을 믿지 않았던 것에 반해  바리새인들은 부활을 믿었으며(행 23: 6 -8),
율법을 철저하게 지키는 것을 하나님께로 나아가는 길로 생각하였다. 
니고데모는 또한 “유대인의 지도자”였다. 
어떤 번역판에서는 지도자를 관원으로 표기하고 있다. 
당시 유대인들은 로마의 통치를 받고 있었지만, 산헤드린이라는 최고 법정이 있어서 정치 및 군사적인 것 외의
일반 민사사건이나 종교적인 문제들은 자체적으로 해결하고 처리하였다. 
유대인의 관원이라는 말은 산헤드린의 일원이었음을 뜻한다. 
그러므로 니고데모는 종교적으로는 물론 사회적으로도 영향력이 큰 사람이었다. 
그런데 니고데모는 예수님께서 행하시는 일들을 보고 예수님에 대해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밤에 예수님을 찾아 왔다. 
성서학자들은 니고데모가 밤에 예수님을 찾아 온 사실이 복음서에서 강조되고 있는 것을
여러 가지로 해석하고 있다. 
자신의 위치와 다른 사람들의 안목을 의식해서 밤에 찾아왔을 것이라는 해석도 있고,
낮 보다는 밤에 조용히 대화할 수 있었기 때문에 밤 시간을 택했을 것이라는 의견도 있다. 
실제로 그것은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중요한 것은 니고데모가 예수님을 찾아왔다는 사실이다. 
니고데모는 예수님을 “랍비”로 불렀다. 
랍비라는 말은 ‘선생님’을 뜻하는 유대인들의 호칭으로, 좀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율법에 정통한 사람을 가리켰다.  니고데모는 “우리가 당신은 하나님께로부터 오신 선생인 줄 아나이다”라는 말로
예수님의 특별한 점을 인정하였다. 
그는 덧붙여서 하나님께서 함께 하지 않으시면 당신이 행하는 그런 표적들을 아무도 할 수 없다고 하였다. 
그는 어렴풋하게 나마 예수님이 하나님께서 보내주신 분인 것을 알고 있었다. 
그렇지만, 니고데모는 예수님을 관심과 호기심의 대상으로 삼았지, 메시아로 생각하지는 않았던 것이다. 
또한 확실하게 말할 수는 없지만,  니고데모의 “우리가”라는 말에서
우리는 다른 유대 지도자들도 니고데모처럼 겉으로는 밝히지 않았지만
예수님이 하나님께로부터 오신 분임을 인정하고 있었던 것으로 짐작할 수 있다.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일에 깊은 관심을 갖고 있는 니고데모에게
예수님은 하나님이 행하시는 진짜 놀라운 일을 말씀해 주셨다.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 
“진실로”라는 말은 ‘참으로’라는 뜻으로, 뒤에 나오는 말이 참됨을 강조해 주고 있다. 
헬라어로 그것은 우리가 자주 쓰는 “아멘”이다. 
바리새인들에게 하나님의 자녀와 백성이 되는 방법은 아브라함의 혈통에서 태어나는 것이고
하나님의 축복을 받는 방법은 율법을 온전히 지키는 것이었다.  
그런데 예수님은 니고데모에게 거듭나야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있다고 가르치셨다.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있다”는 말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다는 말로도 해석될 수 있다. 
또한 “하나님의 나라”라는 말을 현재의 삶에다 적용시킬 때,
그것은 한 사람의 삶이 하나님의 통치 혹은 지배를 받고 있는 것을 가리킨다. 
그것은 지리적인 요소보다는 관계를 나타내는 말이 되고 있다.  
헬라어로 “거듭”이라는 말은 ‘다시’ 혹은 ‘두 번째’의 뜻이 되고 있다. 
니고데모는 문자 그대로의 뜻으로 이해하였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거듭난다’는 말은 '위로부터 태어나는 것'을 뜻한다. 
 
의문이 있는가?  (요한복음 3장 4 -9절)
 
3: 4    니고데모가 이르되 사람이 늙으면 어떻게 날 수 있사옵니까 두 번째 모태에 들어갔다가
         날 수 있사옵니까
3: 5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
3: 6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영으로 난 것은 영이니
3: 7    내가 네게 거듭나야 하겠다 하는 말을 놀랍게 여기지 말라
3: 8    바람이 임의로 불매 네가 그 소리는 들어도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하나니
         성령으로 난 사람도 다 그러하니라
3: 9    니고데모가 대답하여 이르되 어찌 그러한 일이 있을 수 있나이까
 
니고데모는 ‘거듭나야 한다’는 예수님의 말씀을 문자 그대로 받아들였기 때문에 잘못 이해하였다. 
그는 육신으로 태어나는 것만을 생각하고 놀라움을 금치 못하였다. 
“사람이 늙으면 어떻게 날 수 있사옵니까 두 번째 모태에 들어갔다가 날 수 있사옵니까”라고 물었다. 
그것은 도저히 불가능한 일이다. 
알고 싶어하는 니고데모의 마음을 보신 예수님은 ‘거듭난다’는 사실을 좀더 자세히 설명해 주셨다. 
이번에도 “진실로”라는 말을 반복하심으로 하시려는 말씀의 중요성을 강조하셨다. 
예수님은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고 하셨다. 
‘물로 난다’는 말은 몇 가지 다른 뜻으로 해석될 수 있다. 
먼저 그것은 태아가 첫 9개월 동안 모태의 물 주머니 속에서 지내는 것을 가리키는 말로,
육체적인 출생을 뜻할 수 있다. 
그 말은 또한 죄를 회개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믿는 것을 상징하는 의식인 물 침례를 가리킬 수도 있다. 
3장 6절에서 저자가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영으로 난 것은 영이니”라는 말로
육체적인 출생과 영적인 출생을 대조시키고 있는 것을 보아 첫 번째 해석이 더 가능해 보인다. 
예수님은 인간의 육체적인 출생과 영적인 출생을 똑같이 강조하셨던 것이다. 
“육으로 난 사람”은 죽음을 포함하여 갖가지 육체의 제한을 받는다.  
그러나 “영으로 난 사람”은 이 세상의 인간들이 미칠 수 없는 차원의 능력과 생명을 얻을 수 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때 우리는 영적으로 태어나게 되며
예수님은 우리에게 영생과 성령님의 역사를 통해 하나님의 뜻에 따라 살아갈 수 있는 능력을 입혀 주신다.  
예수님은 니고데모에게 “내가 거듭나야 하겠다 하는 말을 놀랍게 여기지 말라”고 하시면서
“바람”의 예를 들어 성령님께서 행하시는 일을 설명해 주셨다. 
 바람은 불고 싶은 대로 분다. 
바람의 힘은 보이지 않지만 명백한 증거를 나타낸다. 
사람들은 바람 소리를 들을 수 있고, 바람의 힘을 느낄 수 있으며,
나무 같은 물건들이 흔들리는 것을 목격할 수 있다. 
예수님은 “성령으로 난 사람도 다 그러하니라”는 말씀으로 바람의 비유를 ‘영으로 난 사람’에게 적용시키셨다.  세상에서 바람이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바람의 존재를 부인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성령의 존재가 바로 그와 같다. 
니고데모는 ‘영적인 출생’에 대해 좀더 알고 싶었다. 
그래서 그는 “어찌 그러한 일이 있을 수 있나이까”라고 물었다. 
그러나 우리는 니고데모의 마음의 문이 복음을 향해 조금씩 열리는 것을 볼 수 있다. 
 
진리를 아는가 (요한복음 3장 10 -12절)
 
3: 10    예수께서 그에게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는 이스라엘의 선생으로서  이러한 것들을 알지 못하느냐
3: 11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우리는 아는 것을 말하고 본 것을 증언하노라  그러나 너희가
          우리의 증언을 받지 아니하는 도다
3: 12    내가 땅의 일을 말하여도 너희가 믿지 아니하거든 하물며 하늘의 일을 말하면  어떻게 믿겠느냐
 
바리새인이면서 유대의 최고 법정이자 의결기관인 산헤드린의 관원이었던 니고데모는
유대 사회에서 최고의 종교지식과 권위를 대표했던 사람이었다. 
예수님은 그같이 높이 평가를 받는 이스라엘의 선생이,
더구나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통해 행하시고 계심을 인정한 사람이,
변화시키는 하나님의 성령의 능력을 이해하지 못하느냐고 하셨다. 
3장 2절에서 니고데모는 “우리가”라는 말을 사용하여 유대 종교지도자들을 지칭하였다. 
3장 11절에서 예수님도 “우리”라는 말을 사용하셨는데, 그 말은 삼위일체 하나님을 가리키고 있다. 
하나님이 인간을 만드실 때도 그 같은 표현법을 쓰셔서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라고 하셨다 (창 1: 26). 
니고데모는 하나님의 진리를 이해하고 가르치지 못하는 유대 종교지도자들의 무능력을 대표했다. 
예수님은 바로 그 진리를 가르쳐 주시기 위해 오신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많은 유대 종교지도자들이 예수님의 증거를 받아들이지 않으려고 한 것이었다. 
그래서 예수님은 “우리는 아는 것을 말하고 본 것을 증언하노라”고 하시면서
그런데도 그들이 그 증언을 받아들이지 않는 것을 한탄하셨다. 
예수님은 니고데모에게 새로운 탄생의 필요성을 깨달을 것을 역설하였다. 
예수님이 니고데모에게 강조하신 것은
인간으로 하늘에 올라가 그가 니고데모에게 증언한 진리를 발견한 사람은 세상에 아무도 없다는 사실이다. 
하늘에서 내려온 인자인 예수님 자신만이 하늘의 일을 직접 보고 말해 줄 수 있다. 
그러므로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은 예수님과 그가 전하는 증언을 믿는 것이다.  
 
믿을 것인가? (요한복음 3장 13 -16절)
 
3: 13    하늘에서 내려온 자 곧 인자 외에는 하늘에 올라간 자가 없느니라
3: 14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 같이 인자도 들려야 하리니
3: 15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3: 16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바리새인이었던 니고데모는 구약 성경에 정통한 교사였다. 
그같은 사실을 잘 아셨던 예수님은 성경말씀으로 방향을 돌리셨다.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 같이 인자도 들려야 하리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처음으로 니고데모의 운에 깨달음의 빛이 빛났을 것으로 보인다. 
그것은 익히 알고 있는 내용이었기 때문이다. 
예수님이 인용하신 것은 민수기 21: 4 -9에 나오는 말씀이다.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에 있었을 때 하나님 앞에 죄를 범한 것으로 인해 많은 사람이 뱀에 물려 죽는 일이
발생하였다. 
모세가 하나님께 부르짖으며 기도하자, 하나님은 모세에게 놋뱀을 만들어 장대 위에 매달라고 하셨다. 
그리고 말씀하셨다.  “물린 자마다 그것을 보면 살리라” (민 21: 8). 
당시 뱀에게 물린 사람들은 놋뱀을 쳐다보면 어떻게 살 수 있느냐고 따지지를 않았다.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놋뱀을 바라보았더니 죽지 않고 살았다. 
이 사건은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행하실 일을 나타내 주는 상징이 되었다. 
그래서 예수님은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같이 인자도 들려야 하리니”라고 하셨다. 
그것은 예수님이 인간의 죄를 사하시기 위해 십자가에 매달려야 하는 것을 가리키는 말씀이다. 
예수님은 자신이 말씀하신 대로  십자가의 처형을 받으셨다. 
십자가에 달려 죽으셨다가 부활하신 예수님을 구세주로 믿는 사람들은 모두 죄를 사함 받고
영생을 선물로 받을 것이다. 
3장 16절은 복음의 핵심을 밝혀주는 말씀이다. 
그래서 이 구절은 복음 중의 복음으로 불리고 있다. 
이 한 구절 속에는 모든 사람을 구원시키기에 충분한 복음의 진리가 담겨 있기 때문이다. 
이 구절에는 가장 위대한 사랑의 공급자인 “하나님”이 소개되고 있다. 
“이처럼 사랑하사”라는 말로 가장 큰 사랑이 묘사되고 있다. 
가장 놀라운 사랑의 수혜자는 “세상”이다. 
가장 위대한 사랑의 언어는 “주셨다”는 것이다. 
가장 큰 사랑의 선물은 “독생자”이다. 
그 사랑에 대한 가장 놀라운 반응은 “저를 믿는 것”이다. 
사랑으로 인한 가장 위대한 해방은 “멸망치 않는 것”이다.  
사랑의 가장 놀라운 결과는 “영생을 얻는 것”이다 (요한복음: 생명으로의 초대 - 허셀 홉스).  
복음서의 저자인 요한은 니고데모가 이 시점에서 예수님을 구세주로 영접했다고 말하지 않았다. 
그러나 적어도 복음의 씨가 그 속에 뿌려졌던 것을 알 수 있다. 
그 씨가 후에 싹이 나고(요 7: 50 -51)
마침내는 예수님께 온전히 헌신하는 열매가 맺혔던 것이다 (요 19: 39 -4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