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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답은 무엇인가? 2013년 8월 25일 주일 장년성경연구 제 13과 (전도서 공부)

글쓴이 : 강호길 날짜 : 2013-09-13 (금) 11:38 조회 : 1725
2013년 8월 25일 주일
 
해답은 무엇인가?
 
배경구절: 전도서 11장 1절 – 12장 14절
학습구절: 전도서 11장 1 -5, 9 -10절; 12장 13 -14절
 
금주의 성경진리:
 
삶의 목적을 성취하며 삶의 의미를 얻을 수 있는 방법은 우리가 하는 모든 일에서 하나님을 경외하며 순종하는 것이다.
 
시작하는 글:
 
“해답은 무엇인가?”라는 것이 오늘 학과의 제목이 되고 있다.
전도자가 세상 만사와 인간의 삶 속에서 되어어지는 모든 일들을 살폈을 때, 그는 인생이 허무하고 불합리하며 무의미하다는 감정을 떨쳐 버릴 수 없었다.
전도서 기자는 오늘 날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가지고 있는 영생을 알지 못했기 때문에, 현재의 삶 속에서만 행복과 의미를 구하려 했던 것이다.
그는 여러 가지 세상적인 방법으로 행복을 얻으려고 하였으나, 어느 것 하나도 삶의 참 만족과 의미를 주지 못했다.
죽음 앞에서는 지혜로운 자나 어리석은 자나 매일반인 것같이 보였다.
전도자가 보기에, 해 아래에 사는 인간에게 해답은 없는 것같이 보였다.
그래서 전도서는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는 말로 시작되고 있다.
그런데 전도서 기자는 그 같은 갈등과 몸부림 속에서 어렴풋하게 나마 삶의 의미와 기쁨을 주는 방법들과 인간의 문제에 대한 해답을 찾을 수 있었다.
행복을 얻는 방법으로 그가 깨달았던 가장 귀한 방법은 하나님께서 선물로 주신 현재의 삶을 감사하고 기뻐하며
하나님을 경외하며 순종하는 삶이 되고 있다. 
 
학습구절 연구:
 
삶에 투자하라 (전도서 11장 1 -5절)
 
11: 1    너는 네 떡을 물 위에 던져라 여러 날 후에 도로 찾으리라
11: 2    일곱에게나 여덟에게 나눠 줄지어다 무슨 재앙이 땅에 임할는지 네가 알지 못함이니라
11: 3    구름에 비가 가득하면 땅에 쏟아지며 나무가 남으로나 북으로나 쓰러지면 그 쓰러진 곳에 그냥 있으리라
11: 4    풍세를 살펴보는 자는 파종하지 못할 것이요 구름만 바라보는 자는 거두지 못하리라
11: 5    바람의 길이 어떠함과 아이 반 자의 태에서 뼈가 어떻게 자라는지를 네가 알지 못함과 같이 만사를 성취하시는 하나님의 일을
           네가 알지 못하느니라
 
전도자는 독자들에게 “네 떡”을 물 위에 던지라고 하고 그렇게 하면 “여러 날 후에 도로 찾으리라”고 한다.
“떡” 혹은 “식물”로 번역된 히브리어는 사람들이 주식(主食)으로 삼는 음식물 혹은 식료품을 가리키고 있다.
서양에서는 빵(bread)이고 동양에서는 쌀을 주식으로 삼고 있다.
1절의 말씀은 성서학자들에 의해 보통 영적인 것과 경제적인 것의 두 가지 의미로 해석되고 있다.
어떤 뜻으로 해석하든지 간에, 물 위에 던지는 것은 여러 날 후에 도로 찾으리라는 말에서 나타나고 있듯이 투자를 목적으로 삼고 있으며
투자방법이 되고 있다.
영적인 의미로 해석할 때, 그 말은 하나님의 일에 투자하는 것으로, 구체적인 한 가지 방법은 어려운 사람을 돕는 일을 들 수 있다.
“가난한 자를 불쌍히 여기는 것은 여호와께 꾸어 드리는 것이니 그의 선행을 그에게 갚아 주시리라”는 잠언은
그 같은 사상을 잘 나타내 주는 말씀이다 (잠 19: 17).
투자의 목적은 수익(收益) 혹은 이익(利益)인데,
영적인 해석에서 강조되고 있는 것은 “영적인 부요”함과 하늘에 쌓아 두는 “보물”이 될 수 있다 (마 6: 20).
두 번째의 해석은 경제적인 투자로, 무역을 하여 이윤을 남기는 것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는 것이다.
그래서 표준새번역 개정판에서 1절은 “돈이 있으면, 무역에 투자하여라 여러 날 뒤에는 너는 이윤을 남길 것이다”는 말로 번역되었다.
성서학자들이 전도자가 특별히 무역을 투자의 대상으로 삼은 것으로 보는 이유는 “물 위에 던져라”는 말과
전도자인 솔로몬 왕이 무역업으로 투자를 활발하게 했던 역사적 배경이 되고 있다 (왕상 9: 26 -28).
일반적으로, 성서학자들은 투자를 어떤 방법이나 형태로 하든 관계 없이 여러 날 후에 도로 찾는다는 이윤에 강조점을 두고 있다.
전도자는 “일곱에게나 여덟에게 나눠 줄지어다”라는 말로 한 곳에만 투자를 하지 말고 여러 곳에 나누어 하라고 하였다.
그 같은 전략을 취하는 주요이유는 재해의 가능성이 되고 있다.
큰 풍랑을 만나 배에 싣고 가던 화물을 한꺼번에 잃을 수도 있고 경기침체나 불황이 닥칠 수도 있다.
현명한 투자가들은 그 같은 재해에 미리 대비한다.
‘모든 계란을 한 바구니에 넣지 말라’는 격언도 만일의 경우에 대비하는 말이다.
전도자는 예측 가능한 몇 가지 자연 현상을 예를 들어 설명해 주고 있다.
전에 전도자는 삶 속에서 예측 불가능한 것이 있음을 언급했는데 (9: 11),
여기서는 구름에 물이 가득 차면 비가 되어서 땅 위로 쏟아지는 법이라고 하였다.
전도자는 “나무가 남으로나 북으로나 쓰러지면”이라는 상징적인 표현을 써서 폭풍우가 비와 함께 몰아치는 것을 묘사하였다.
전도자는, 비유적이거나 실제이건 간에, 인간의 삶에 폭풍이 몰아치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실제 날씨도 항상 화창하고 따뜻한 것만은 아니다.
갑자기 토네이도나 폭풍이 불어 닥쳐 나무가 뿌리 채 뽑혀나 쓰러지는 것을 볼 수 있다.
특별히 근래에는 기후가 변화무쌍하며 예측하기가 어렵다.
기후뿐 아니라, 인간의 삶도 굴곡이 심하고 사회, 정치 및 경제적으로 예측할 수 없는 일들이 많이 일어나고 있다.
경제적인 여건도 매우 불투명하며 투자에도 많은 위험부담이 따르고 있다.
전도자는 말하기를, 사람들이 그 같은 부정적인 측면만 바라보고 있으면 아무 것도 하지 못한다고 하였다.
농부가 바람이 그치기를 기다리다가는 씨를 뿌리지 못한다.
씨를 뿌리지 않으면 싹이 나올 수 없고, 싹이 나오지 않으면 곡식이 자라날 수 없으며, 곡식이 자라나지 않으면 아무 것도 거두어 들일 수 없다.
전도자가 밝히려는 요점은 분명하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생기는 것이 아무 것도 없기 때문에, 아무 것에도 투자하지 않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그러나 일곱이나 여덟 가지에 투자하면, 폭풍이나 홍수 같은 재해 때문에 몇 가지는 손해를 볼지라도 다른 것들에서는 계속 이익을 얻을 수 있다.
마찬가지로, 갖가지 핑계를 대며 하나님의 계시에 따라 삶을 투자하지 않는 사람은 어리석은 사람이다.
성경은 하나님께서 주신 인간의 삶 자체를 투자로 보고 있다.
그 같은 사실은 예수님의 비유 말씀에서 잘 나타나고 있다(마 25: 14 -30).
비유에서 한 주인은 오랜 기간 동안 타국으로 여행을 떠나면서 세 종에게 각각 돈을 맡겼다.
두 종은 그 돈을 가지고 장사를 하여 이윤을 남겼다.
그런데 나머지 한 종은 그 돈을 잃을 경우 주인이 노할 것이 걱정되어 땅에 감추어 두었다.
여행에서 돌아 온 주인은 그 종을 “악하고 게으른 종”이라고 부르며 심히 노하여 꾸짖었다.
믿는 자들의 삶은 동전 주머니처럼 안전한 곳에 잘 간직해 두도록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사도 바울은 믿는 자들의 삶을 다음과 같이 고백하였다.
“우리는 그가 만드신 바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니 이 일은 하나님이 전에 예비하사
우리로 그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하심이라” (엡 2: 10).
그리스도인들이 어그러지고 거스르는 세대 가운데서 선한 일을 행할 때 여러 가지 불이익을 당할 수도 있고 아무 효과가 없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다.
전도자는 오늘의 말씀을 통해 그리스도인들에게 기대한 것처럼 열매가 맺히지 않는다고 낙심하거나 좌절하지 말고 하나님께서 주신 삶을
세상에 투자할 것을 권한다.
 
한계 내에서 일하라 (전도서 11장 9 -10절)
 
11: 9     청년이여 네 어린 때를 즐거워하며 네 청년의 날들을 마음에 기뻐하며 마음에 원하는 길들과 네 눈이 보는 대로 행하라
           그러나 하나님이 이 모든 일로 말미암아 너를 심판하실 줄 알라
11: 10   그런즉 근심이 네 마음에서 떠나게 하며 악이 네 몸에서 물러가게 하라 어릴 때와 검은 머리의 시절이 다 헛되니라
 
전도자는 “청년이여”라는 말로 본 단원에서 특별히 젊은 세대를 관심의 대상으로 삼고 있다.
그렇지만, 그의 말은 모든 연령층의 남녀에게 적용되는 것이다.
그러나 가능성과 육체 및 정신적인 활력이나 활동적인 면에서 볼 때, 인생에서 가장 중요하고 값진 시기를 들라면 그것은 단연 젊은 때가 되고 있다.
그러므로 전도자는 청년의 시기를 대표적인 예로 들고 있다.
전도자는 그들 젊은 이들에게 “네 어린 때를 즐거워하며 네 청년의 날들을 기뻐하(라)”고 하였다.
전도자가 강조하고 있는 것은 ‘젊은이들의 때와 청년의 날’이 되고 있다.
우리가 기억해야 될 것은 연령층에 관계 없이 모든 사람들에게 “때와 날”들이 있다는 사실이다.
나이는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삶을 위해 정해주신 한계의 하나가 되고 있다.
그런데 사람들은 자주 자신의 날들과 때에 대해 불만스럽게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어린 아이들은 빨리 어른이 되고 싶어한다. 나이든 사람들은 젊은 때로 돌아가고 싶어한다.
그런데 전도자는 자신이 처한 때와 날들을 마음에 기뻐하라고 한다.
청년들은 “마음에 원하는 길들과 네 눈이 보는 대로 행하라”는 말을 마음에 원하는 대로 행해도 좋다는 ‘백지수표’로 오해하지 말아야 한다.
고대 히브리 사상에서 사람들은 마음을 인간의 의지와 생각 그리고 감정이 자리잡고 있는 장소로 이해하였다.
인간의 마음은 부패해 질 수도 있지만, 하나님과 그의 말씀에 따라 살아가겠다는 결단과 작정을 하는 것도 마음이다.
그래서 잠언은 우리에게 “무릇 지킬만한 것보다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고 한다 (잠 4: 23).
이는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나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러나 하나님이 이 모든 일로 말미암아 너를 심판할 줄 알라”고 한 전도자의 경고의 말은 젊은이들에게
어떤 마음을 가지고 살아야 될지를 분명하게 가르쳐 주고 있다.
전도자는 특별히 12장 1절에서는 젊은이들에게 “너는 청년의 때에 너의 창조주를 기억하라”고 하였다.
곤고한 날이 이르기 전에, 아무 낙이 없다고 할 해들이 가깝기 전에, 해와 빛이 어둡기 전에 그리고 비 뒤에 구름이 다시 일어나기 전에 그리하라고 하였다.
인생의 황금기로 알려지고 있는 청년들이라고 해서 항상 즐겁고 기쁜 일만 있는 것은 아니다.
그들에게도 역경과 고통이 있고 걱정과 근심되는 일이 찾아오기 마련이다.
전도자는 이들에게 말하기를, “그런즉 근심이 네 마음에서 떠나게 하며 악이 네 몸에서 물러나게 하라”고 한다.
그러면서 혈기 왕성한 청춘의 시기와 때가 덧없이 지나가 버리는 사실을 상기시켜 준다.
예수님은 그같이 덧없고 걱정과 근심에 찬 사람들에게 초청하신다.
“ 수고하고 무거운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마 11: 28).
전도자가 한 말은 오늘날 하나님께서 정해 주신 한계를 겸손하게 받아 들이지 못하고 한계를 넘어 살려고 하는 많은 사람들에게 큰 경고가 되고 있다.
 
하나님을 경외하며 그를 순종하라 (전도서 12장 13 -14절)
 
12: 13    일의 결국을 다 들었으니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의 명령들을 지킬지어다 이것이 모든 사람의 본분이니라
12: 14    하나님은 모든 행위와 모든 은밀한 일을 선악 간에 심판하시리라
 
“일의 결국을 다 들었으니”, 즉 지금까지 말한 모든 것들을 종합해 볼 때 인간의 참된 삶에 관해 어떤 대답을 얻을 수 있을까?
전도자는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의 명령들을 지킬지어다”라는 말로 그 질문에 대답하였다.
그리고 덧붙여 말하기를 “이것이 모든 사람의 본분이니라”고 하였다.
먼저 사람들은 다른 무엇보다 하나님을 경외해야 한다.
전도서의 저자인 솔로몬은 잠언에서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혜의 근본이요 거룩하신 자를 아는 것이 명철이니라”고 하였다 (잠 9: 10).
여기서 경외한다는 말은 무서워하거나 두려움에 차서 벌벌 떠는 성격의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알고 자신이 어떤 존재인지를 알 때 생기는 마음의 상태이다.
하나님은 우주 만물을 지으신 전지전능하신 분이시며 우리 인간은 지음을 받은 유한한 존재이다.
하나님께서는 거룩하신 절대자이시며 인간은 불완전한 죄인이다.
둘째로, 인간은 하나님의 명령을 지켜야 한다.
전도자는 인간의 모든 삶을 위한 하나님의 지시사항들과 가르침을 아우르는 포괄적인 용어인 “명령”이란 말을 사용하였다.
전도자는 “하나님은 모든 행위와 모든 일을 선악 간에 심판하시리라”는 말로 그의 독자들에게 하나님께 충성할 것을 당부하였다.
전도자는 사람들이 이 세상에 살 동안에 행한 죄악에 대한 처벌을 받지 않게 될지라도, 종국적으로는 하나님의 심판이 있는 것을 알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