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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적인 탁월함을 나타내라 - 2013년 5월 19일 주일 장년성경공부 제 12과 (디도서 공부)

글쓴이 : 강호길 날짜 : 2013-09-13 (금) 11:12 조회 : 1455
2013년 5월 19일 주일
 
영적인 탁월함을 나타내라
 
배경구절: 디도서 2장 1 -15절
학습구절: 디도서 2장 1 -15절
 
금 주의 성경진리: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은 자신의 삶 속에서 어떤 상황이나 여건에 처하든지 성실하게 행해야 한다.
 
시작하는 글:
 
식물들은 생존하는데 필요한 여러 가지 수단과 방편을 갖고 있다.
그들은 먼저 대기권으로부터 이산화탄소를 흡수해 들이고 뿌리를 이용하여 수분을 섭취한다.
그런데 식물은 이산화 탄소와 수분을 가지고 영양분을 만들 수 없다.
이때 식물들에게 필요한 것이 햇빛이다.
식물은 빛의 에너지를 받아 그것을 이산화탄소와 수분과 합성시켜 영양분을 만든다.
식물이 그같이 하는 것을 광합성 작용이라고 한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빛이 없이는 모든 생물체가 필요로 하는 영양분을 얻을 수 없다는 사실이다.
좀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인간이 생존하는데 필요한 에너지는 궁극적으로 태양에너지로부터 얻어진다는 것이다.
식물은 그 같은 광합성 작용으로 전분과 당을 만들어 자신의 생존과 건강을 유지할 뿐 아니라, 산소를 만들어 다른 생물체에까지 유익을 베풀고 있다.
사람들과 동물들은 또한 식물과 나무들이 대기권으로 뿜어낸 산소를 호흡하여 살아가고 있다.
산소는 지상의 생물체들이 생존하는데 필요 불가결한 요소이다.
병원에서는 환자가 건강이 아주 나빠지면 먼저 산소호흡기로 건강을 유지시켜 준다.
우리는 이 자연의 원리를 신앙생활에 적용시켜 생각해 볼 수 있다.
이는 예수님이 우리에게 "생명의 빛"이 되시기 때문이다.
사도 요한은 예수님을 가리켜 “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고 하였다 (요 1: 4).
생명의 빛이신 예수님을 구세주로 영접하면 우리는 새 생명을 얻고 풍성하고 건강한 삶을 살아갈 뿐 아니라,
다른 여러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은혜를 베풀어 줄 수 있다.
 
학습구절 연구:
 
나이 많은 사람에게 따르는 영예 (디도서 2장 1 -5절)
 
2: 1    오직 너는 바른 교훈에 합당한 것을 말하여
2: 2    늙은 남자로는 절제하며 경건하며 신중하며 믿음과 사랑과 인내함에 온전하게 하고
2: 3    늙은 여자로는 이와 같이 행실이 거룩하며 모함하지 말며 많은 술의 종이 되지 아니하며 선한 것을 가르치는 자들이 되고
2: 4    그들로 젊은 여자들을 교훈하되 그 남편과 자녀를 사랑하며
2: 5    신중하며 순전하며 집안 일을 하며 선하며 자기 남편에게 복종하게 하라 이는 하나님의 말씀이 비방을 받지 않게 하려 함이라
 
“오직 너는”이란 말은 바울이 디도를 거짓 교사들과 대조시켜 표현한 것이다.
바울은 디도에게 허탄한 것을 말하며 진리를 배반하는 거짓 교사들과는 달리, “바른 교훈에 합당한 것”을 말하며 가르치라고 하였다.
“바른 교훈”이라는 말은 후렴처럼 디모데와 디도에게 보낸 바울의 편지에 계속 나타나는 주제가 되고 있다( 딤전 1: 10; 6: 10; 딤후 4: 3; 딛 1: 9).
바울이 바른 교훈을 그같이 강조한 이유는 그것이 믿는 자들을 세워주며, 거짓 교훈의 파괴적인 영향에 빠지지 않도록 지켜 주기 때문이다
나이가 많이 든 사람들은 신앙 공동체 내에서 믿음의 성숙도나 영향력의 면에서 기대와 존경의 대상이 되고 있기 때문에,
바울은 나이 많은 사람들을 우선으로 삼았다.
바울은 먼저 말하기를 나이가 많이 든 남자들은 “절제하며 경건하며 신중(해야 한다)”고 하였다.
원어로 ‘절제하다’는 말이 음주와 관계되고 있는 것을 감안하면, 음주로 인해 생겨나는 문제들이 그 말의 배경이 될 수도 있다 (잠 23: 29 -35).
‘경건하다’는 말에서는 존경을 받을 만한 인품을 갖추고 있다는 뜻이 나타나고 있다.
‘신중하다’는 말은 생각과 판단력이 바른 것을 뜻한다.
그런 다음 바울은 “믿음과 사랑과 인내함에 온전하게” 하라는 말로,
삶의 후반기를 맞은 나이 많은 사람들에게 믿음생활을 더욱 열심히 그리고 건강하게 하며 흔들리는 일이 없게 하라고 하라고 권면하였다.
다음으로, 바울은 나이가 많이 든 여자들에게 관심을 돌려 권면하였다.
나이가 많이 든 여자들은 “행실이 거룩(해야 된다)”고 하였다.
여기에서 사용된 ‘거룩하다’는 말에서는 제사장이 성전에서 하나님을 섬기는 것처럼 행해야 된다는 뜻이 나타나고 있다.
그들은 또한 모함하지 말아야 되었다.
모함한다는 말은 다른 사람을 해칠 목적으로 악하게 혹은 거짓되게 말하는 것을 뜻한다.
바울이 늙은 여자들에게 특별히 “술의 종”이 되지 말라고 한 것을 보면, 음주가 큰 문제가 되고 있었던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
대신에 “선한 것을 가르치는 자들이 되(라)”고 하였다.
바울은 나이 많은 여자가 가르치는 일을 구체적인 몇 가지 예를 들어 설명하였다.
그것은 젊은 여자들을 가르치는 것으로, 결혼생활과 자녀의 양육 그리고 가정생활에 미치고 있다.
젊은 여자들을 잘 가르치며 본을 보여서 그들이 믿는 아내와 어머니가 되어 주께 하듯 남편과 자녀들을 사랑하며 헌신적으로 대하게 하라고 하였다.
바울은 아내들의 행실이 가정의 조화와 화목을 이루는데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는 것으로 보았다.
젊은 여자들은 또한 분별력 있게 행하고 (“신중하며”), 결혼생활에 충실하며 (“순전하며”), 집안 일을 열심히 해야 되었다.
마지막으로, 바울은 젊은 여자들로 하여금 “남편에게 복종하게 하라”고 하였다.
‘순복하다’는 말이 원문에 더 가까운 표현이 되고 있다.
신약성경에서 “복종하라” 혹은 “순종하라”는 말은 아내와 남편의 관계에만 적용되고 있는 것이 아니라(엡 5: 24; 골 3: 18; 벧전 3: 1, 5),
그리스도인들이 일반적으로 취해야 될 기본적인 자세가 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만물은 그리스도에게, 시민은 정부에게, 종은 주인에게, 그리스도인들은 서로에게 복종해야 하기 때문이다.
특별히 바울은 젊은 여자들이 가정에서 남편에게 복종해야 되는 이유로 “하나님의 말씀이 비방을 받지 않게 하려(는 것)”을 들었다.
 
성실함 나타내라 (디도서 2장 6 -8절)
 
2: 6    너는 이와 같이 젊은 남자들을 신중하도록 권면하되
2: 7    범사에 네 자신이 선한 일의 본을 보이며 교훈에 부패하지 아니함과 단정함과
2: 8    책망할 것이 없는 바른 말을 하게 하라 이는 대적하는 자로 하여금 부끄러워 우리를 악하다 할 것이 없게 하려 함이라
 
바울은 다음으로 디도에게 “젊은 남자들”을 가르치라고 하였다.
대개의 경우 당시 그 사회에서 젊은 남자들이라고 하면 결혼을 하여 자녀들을 둔 사람들이었다.
그렇지만 바울이 권면한 말은 결혼을 하지 않은 젊은 사람들에게도 적절한 내용이다.
그들은  “신중”해야 하였다. ‘신중하다’는 말에는 분별력 있게 행하며 자제한다는 뜻이 담겨있다.
젊은 사람들은 무분별하게 혹은 충동적으로 생각하거나 행동하기가 쉽다.
7절에 나오는 “범사에”라는 말은 6절에도 똑같이 적용될 수 있다.
젊은 사람들은 삶의 모든 영역에서 자신을 억제할 필요가 있다.
바울은 젊은 사람들에게 신중하도록 권면하면서 디도에게는 “범사에 네 자신이 선한 일의 본을 보이(라)”고 하였다.
본을 보이고 본을 따르는 일은 기독교의 신앙교육에 매우 중요한 요소가 되고 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의 발을 씻기신 후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내가 너희에게 행한 것 같이 너희도 행하게 하려 하여 본을 보였노라” (요 13: 15).
바울은 “너희는 나를 본받는 자가 되라”고 하였다 (고전 4: 16).
디모데와 디도는 바울의 바른 가르침과 좋은 믿음의 본을 받은 사람들이다.
이제 바울은 그레데 섬에 있는 교인들이 디도의 바른 가르침과 좋은 믿음의 본을 받게 되기를 간절하게 바라고 있었다.
바울은 또한 디도에게 교인들을 가르칠 때 ‘성실함과 위엄 있는 태도’(“부패하지 아니함과 단정함”)를 보이라고 하였다.
가르치는 말은 “책망할 것이 없는 바른 말”을 하라고 하였다.
바울이 여기서 강조하고 있는 것은 ‘행함이 따르는 신실한 말’이다.
말과 행동이 다를 때, 그 말은 신뢰심을 잃게 마련이다.
사람들은 말과 행동이 다른 사람 혹은 겉과 속이 다른 사람을 ‘위선자”라고 한다.
행함이 뒷받침 되지 않는 말은 제아무리 잘한다 할지라도 신뢰할 수 없다.
믿는 자들이 말과 행동으로 그같이 성실성을 나타내면,
복음을 반대하는 자들일지라도 믿는 자들을 걸어서 나쁘게 말할 것이 없으므로 부끄러움을 당할 것이라고 하였다.
바울은 젊은 사람들에게는 자제력에 대해 권면 한데 반해 디도에게는 성실성에 대해 권면하였다.
 
신실하게 일하라 (디도서 2장 9 -10절)
 
2: 9    종들은 자기 상전들에게 범사에 순종하여 기쁘게 하고 거슬려 말하지 말며
2: 10   훔치지 말고 오히려 모든 신실성을 나타내게 하라 이는 범사에 우리 구주 하나님의 교훈을 빛나게 하려 함이라
 
가끔씩 사람들은 복음은 왜 인류의 악습인 노예제도를 즉각적으로 규탄하지 않았을까 의아하게 생각할 때가 있다.
그같은 의문에 대해
우리는 당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에는 이미 자유의 씨앗이 싹을 내고 노예제도는 이미 죽음을 고하고 있었다고 대답할 수 있다(갈 5: 1; 골 3: 11).
또한 예수님은 인간이 바라는 것처럼, 세상의 어떤 제도나 조직을 개혁하거나 파괴할 목적으로 오신 것이 아니라,
인류에게 복음을 전파하고 인간의 마음에 하늘나라의 원리를 심어줄 목적으로 오셨다고 대답할 수 있다.
예수님께서 바라시는 것은 내적인 변화이다.  참된 외적인 변화는 내적인 변화로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 
1 세기 당시 로마 제국에서 노예제도는 사회 전반에 깊이 뿌리를 내리고 널리 퍼져 있었다.
바울의 주요 관심사는 주인 집에서 노예로 섬기고 있는 믿음의 성도들에게 복음이 그들의 상황에 어떻게 적용되고 있는지를 가르쳐 주려는데 있었다.
더욱이, 바울이 그리스도인 노예들에게 적용시킨 교훈은 오늘 날 직장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고용관계에서도 적용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고용인과 피고용인 사이의 관계는 저항이나 거역이 아니라, 기꺼이 동의하는 것이 기본적인 태도 혹은 원리가 되고 있다.
그래서 바울은 에베소서 6장 7절과 골로새서 3장 22절에서 피고용인들에게 권하기를 “주께 하듯” 고용주를 섬기며 순종하라고 하였다.
바울은 또한 “훔치지 말고 오히려 모든 참된 신실성을 나타내게 하라”는 말로
그리스도인의 바람직한 두 가지 직업 윤리인 ‘정직함과 성실함’을 추가로 제시하였다.
개인적인 자유가 심하게 제약을 받는 상황 속에서도 그리스도인들이 정직하고도 신실하게 일할 때,
그들은 복음이 삶의 모든 영역에서 얼마나 매력적인 것이며 놀라운 변화를 일으키고 있는지를 보여 줄 수 있다.
 
의롭게 생활하라 (디도서 2장 11 -15절)
 
2: 11    모든 사람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나타나
2: 12    우리를 양육하시되 경건하지 않은 것과 이 세상 정욕을 다 버리고 신중함과 의로움과 경건함으로 이 세상에 살고
2: 13    복스러운 소망과 우리의 크신 하나님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이 나타나심을 기다리게 하셨으니
2: 14    그가 우리를 대신하여 자신을 주심은 모든 불법에서 우리를 속량하시고 우리를 깨끗하게 하사
          선한 일을 열심히 하는 자기 백성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
2: 15    너는 이것을 말하고 권면하며 모든 권위로 책망하여 누구에게서든지 업신여김을 받지 말라
 
믿는 자들은 성경에서 가르치며 요구하고 있는 높은 윤리 조건들을 충족시킬 수 있을까?
인간의 능력이라는 측면에서만 말한다면, “할 수 없다”라고 대답할 수 밖에 없다.
그런데 감사하게도, 바울은 신자들이 말과 행동이 일치하며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삶을 살기 위해 이용할 수 있는 능력에 대해 설명해 주었다.
바울은 그 능력을 “모든 사람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로 묘사하였다.
“모든 사람에게 구원을 주(신다)"는 말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는다’는 뜻이 아니라,
남녀노소 인종을 가리지 않고 모든 사람을 구원으로 초대하시는 하나님의 구원의 보편성을 가리키는 말이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며 진리를 아는 데에 이르기를 원하(신다)” (딤전 2: 4).
사람들은 누구나 예수 그리스도를 믿기만 하면 구원을 얻을 수 있다.
그래서 성경은 구원을 하나님의 선물로 부르고 있다. 
하나님의 은혜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인간에게 나타나고 있다.
예수 그리스도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시며 (요 1: 14), 믿는 자들은 그를 통하여 “은혜 위에 은혜"를 받는다 (요 1: 16).
바울은 자신의 경험을 통하여 하나님의 은혜가 믿는 자들에게 삶의 어떤 역경이나 어려움도 충분히 이길 수 있는 힘이 되는 것을 알고 있었다 (고후 12: 9).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나타난 은혜는 또한 믿는 자들로 하여금 “경건치 않은 것과 이 세상 정욕”을 다 버리도록 가르치며 양육해 준다.
‘경건치 않은 것’은 하나님에게 반대가 되는 것들을 가리키고 있다.
‘세상 정욕’이라는 말은 성적 욕망을 가리키기도 하지만, 좀더 넓은 의미로는 세상적인 권력, 재물, 명예 및 지배력에 대한 이기적인 욕망들을 포함하고 있다.
그리스도인들은 자기 중심적인 행동을 버려야 하지만, 그리스도인의 삶은 ‘하지 않는다’는 부정적인 측면의 것만은 아니다.
그리스도인들은 다른 사람들이나 하나님과의 관계에서는 물론 자신과의 관계 속에서도 “신중함과 의로움과 경건함으로” 살아가야 한다.
믿는 자들이 그리스도 안에서 시작한 새로운 삶은 신중함과 의로움과 경건함이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생활이다.
하나님의 은혜에 의해서만 우리는 그 같은 생활을 할 수 있는 방법과 힘을 얻을 수 있다.
그리스도인들은 매일의 삶을 주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서 살아갈 뿐 아니라, 주님이 다시 오실 날을 바라보며 큰 기대감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시는 일은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복스러운 소망”으로, 믿는 자 모두에게 신앙생활의 큰 힘과 동기가 되고 있다.
그리스도인들은 항상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실 때를 준비하는 마음으로 살아야 한다.
주님의 재림은 우리의 구원이 완성되는 때로, 바울은 예수님의 재림의 때를 “크신 하나님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이 나타나시는 때로 묘사하였다.
그리스도인들이 섬기며 기다리는 분은 다름 아닌 “우리를 대신하여 자신을 주(신)” 구세주이시다.
그는 모든 불법에서 우리를 속량해 주시고 깨끗하게 해 주셔서 선한 일을 열심히 하는 그의 백성으로 삼아주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