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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복음의 증인이 될 수 있는가? 2013년 2월 3일 주일 장년성경연구 제 10과 (아모스서 공부)

글쓴이 : 강호길 날짜 : 2013-09-13 (금) 10:56 조회 : 1298
2013년 2월 3일 주일
 
나는 복음의 증인이 될 수 있는가?
 
배경구절: 아모스 7장 1 -17절
학습구절: 아모스 7장 4 -17절
 
이 과의 성경진리:
 
하나님은 순종하는 증인이 되어 다른 사람들을 위하여 기도하며 하나님의 메시지를 전하는 그의 백성들을 통해 일하신다.
 
시작하는 글:
 
부활하신 주님은 승천하시기 전 제자들에게
“그리스도가 고난을 받고 제삼일에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날 것과 또 그의 이름으로 죄 사함을 받게 하는 회개가 예루살렘에서 시작하여
모든 족속에게 전파될 것”이 성경에 기록되어 있는 사실을 상기시키시면서 “너희는 이 모든 일의 증인이라”고 하셨다 (눅 24: 46 -48).
그들은 예수님이 승천하신 후에 증인의 역할을 충실하게 잘 하였다.
베드로와 요한은 종교지도자들이 그들을 체포하여 “도무지 예수의 이름으로 말하지도 말고 가르치지도 말라”고 위협했을 때,
“우리는 보고 들은 것을 말하지 아니할 수 없다”고 담대하게 대답하였다.
증인은 법적용어로, 자기가 보고 들은 것을 그대로 진술하는 사람이다.
그리스도인들은 복음의 증인들이다. 복음의 주인공인 예수 그리스도가 누구인지 그리고 그를 구제주로 믿을 때 자신에게 어떤 일이 일어났으며
자신의 삶에 어떤 변화가 생겼는지를 증거하며 증언하는 증인들이다.
그러나 이 세상은 죄와 악한 세력의 지배를 받고 있기 때문에 그리스도인들이 주님을 증거하며 그의 복음을 증언할 때
거절이나 적대를 당하는 것은 물론, 핍박을 당할 때도 많다.
때로는 생명의 위험을 무릅쓰기도 한다.
그같은 상황 속에서도 증인의 역할을 충실하게 행한 사람이 바로 서머나 교회의 감독이었던 폴리갑이다.
당시 폴리갑은 다른 그리스도인들과 마찬가지로 로마황제와 그들이 섬기는 신들을 숭배하지 않고 예수 그리스도를 섬기며 충성하는 것으로 인해
체포되어 처형을 받게 되었다.
그를 심문했던 지방 총독은 폴리갑이 나이가 많고 많은 사람들에게 존경을 받고 있는 점을 고려하여 그를 살려주려고 하였다.
총독은 폴리갑에게 황제의 이름으로 맹세하고 그리스도를 저주하면 자유를 주어 곧장 집에 돌아가게 해주겠다고 약속하였다.
이 때 폴리갑은 후세의 많은 사람들이 즐겨 인용하는 유명한 답변을 남겼다.
“86년 동안이나 나는 그 분을 섬겨왔고 그분은 나에게 아무 나쁜 일도 행하신 것이 없습니다.
그런데 내가 어떻게 나를 구원해 주신 그 분을 저주할 수 있습니까?”
폴리갑은 산 채로 나무에 묶인채 불에 타서 순교를 당했다.
그같은 일들로 인해, 헬라어로 증인과 순교자는 동일어로 사용되고 있다.
아모스 선지자도 하나님의 신실한 증인으로 생명의 위협을 받으면서도 두려워하지 않고 담대하게 하나님의 메시지를 전하였다.  
그들이 행한 일에서 우리는 좀더 신실한 증인이 되어야 겠다는 강한 도전과 담대함을 얻을 수 있다. 
 
학습구절 연구
 
중보하는 증인 (아모스 7장 4 -6절)
 
7: 4    주 여호와께서 또 네게 보이신 것이 이러하니라 주 여호와께서 명령하여 불로 징벌케 하시니 불이 큰 바다를 삼키고
         육지까지 먹으려 하는지라
7: 5    이에 내가 이르되 주 여호와여 청하건대 그치소서 야곱이 미약하오니 어떻게 서리이까 하매
7: 6    주 여호와께서 이에 대하여 뜻을 돌이켜 주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이것도 이루지 아니 하리라 하시니라
 
아모스서 7장부터 9장까지는 하나님의 심판에 관한 일련의 환상들을 담고 있다.
세 번째 환상 뒤에는 아모스와 벧엘의 제사장으로 그의 적대자였던 아마샤가 만나서 한 이야기가 실려있다.
아모스가 본 처음 두 환상에서는 두 가지 대상, 즉 메뚜기 떼와 불에 초점이 맞추어지고 있다 (7: 1 -6).
그들 두 환상의 메시지는 같은 뜻으로,
언약의 백성인 이스라엘의 영적음행과 돌이킬 수 없는 죄악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의 결과로 이스라엘이 파멸의 위험에 처해 있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아모스는 환상으로 “불이 큰 바다를 삼키고 육지까지 먹으려” 하는 것을 지켜보았다.
불이 하나님의 심판의 방법과 상징으로 사용되고 있는 것은 성경의 여러 곳에서 찾아볼 수 있다 (민 11:1; 시 50: 3; 사 30: 30; 벧후 3: 7).
아모스가 목격한 불은 이스라엘에 임할 가뭄의 큰 재앙을 상징했을 수 있다.
귀중한 물 근원들은 말라버리고 바짝 마른 땅은 먼지만 낼 것이다.
이스라엘이 회개하지 않을 경우, 그 환상이 그들에게 미칠 충격과 영향이 얼마나 엄청날지를 잘 알고 있었다.
그들은 국가로 살아남을 수 없을 것이다.
“야곱이 미약하오니 어떻게 서리이까”라는 말이 그같은 뜻을 나타내 주고 있다.
아모스는 또 다시 여호와 하나님께 자비를 베풀어 주시기를 간구하면서 백성들을 위해 중보 기도를 하였다.
아모스는 담대하게 보좌 앞에 나아가 하나님께 이스라엘이 완전히 소멸되기 전에 불의 심판을 그쳐 달라고 간청하였다.
하나님은 아모스의 기도를 들어주셔서 그의 “뜻을 돌이켜” 주셨다.
하나님께서 뜻을 돌이키셨다는 말은
주권자이신 하나님이 또 다시 자비를 배푸셔서 심판의 과정을 바꾸셔서 이스라엘에게 회개하고 그에게로 돌아올 수 있는 기회를 주신 것을 뜻한다.
심판에 대한 뜻을 바꾸신 것은 아니다.
아모스가 그의 백성들을 위해 중보기도를 한 것은 믿는 자들인 우리에게 강한 도전감을 갖게 하는 일이 될 수 있다.
우리는 믿지 않는 사람들을 위해 간절히 기도하며 그들에게 복음을 전할 기회를 찾음으로 하나님과 그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준비해 주신
구원을 전하는 증거인이 될 수 있다.
 
진실대로 전하는 증인 (아모스 7장 7 -9절)
 
7: 7    또 내게 보이신 것이 이러하니라 다림 줄을 가지고 쌓은 담 곁에 주께서 손에 다림 줄을 잡고 서셨더니
7: 8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아모스야 네가 무엇을 보느냐 내가 대답하되 다림줄이니이다
         주께서 이르시되 내가 다림줄을 내 백성 이스라엘 가운데 두고 다시는 용서하지 아니하리니
7: 9    이삭의 산당들이 황폐되며 이스라엘의 성소들이 파괴될 것이라 내가 일어나 칼로 여로보암의 집을 치리라 하시니라
 
세 번째로 본 환상에서, 아모스는 당시 일상적으로 볼 수 있었던 물체에 시선이 집중되었다.
그 물체는 “다림줄”로, “쌓은 담 곁에” 서 계신 하나님의 손에 들려 있었다.
다림줄은 긴 줄 끝에 추가 달린 일종의 측량기구이다.
목수나 미장이들이 높은 담을 쌓을 때, 그들은 다림줄을 사용하여 담을 수직으로 바르게 잘 쌓아 나갔다.
그 다림줄은 또한 ‘쌓은 담’이 수직적으로 잘 쌓아졌는지를 판단하는 도구로 쓰여졌다.
만일 담이 삐뜰게 잘못 쌓아졌으면, 결국에가서 그 담은 중심을 못잡아 무너져 버리고 만다.
아모스는 처음에 환상의 뜻이 얼른 이해되지 않아 어리둥절 했을 것으로 보인다.
그때 여호와 하나님께서 부르셨다. “아모스야 네가 무엇을 보느냐?”
아모스는 직업이 양을 치는 목자이자 뽕나무를 재배하는 농부였지만, 다림줄을 알고 있었고 그 용도도 잘 알고 있었다.
아모스는 대답하였다. “다림줄이니이다.”
그러자 하나님은 그 환상이 그가 이스라엘 백성에게 행하시고 있는 일을 묘사해 주고 있는 사실을 밝혀 주셨다.
여호와 하나님은 ‘영적 다림줄’로 이스라엘 백성을 검증하셨던 것이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은 불행하게도 그검증에서 실패했다.
그리고 그들은 하나님께서 더 이상 참으실 수 없는 지점까지 미쳤던 것이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에 대해 “다시는 용서하지 아니하리(라)”고 하셨다.
아모스는 특별히 당시 이스라엘 전역에 흩어져 있던 “산당”들과 “성소”들을 황폐와 파괴의 대상으로 지적하였다.
“이삭의 산당들”은 여러 지역에 흩어져 있던 예배처소들을 가리키고 (왕상 3: 2)
“이스라엘의 성소들”은 여로보암이 건축한 것으로, 벧엘과 단에 위치해 있던 전국적인 예배처소를 가리키고 있다.
그 장소들은 백성들을 위해 공의와 진리의 등대역할을 했어야 마땅했는데,
도리어 그곳들은 죄악과 이스라엘 백성들로 하여금 하나님을 버리고 우상들을 섬기게 한 주범이 되었고 죄악과 불법의 법의 소굴이 되었던 것이다.
그것은 마치 예수님이 예루살렘 성전에서 돈 바꾸는 사람들의 상과 비들기 파는 사람들의 상을 엎으시면서
“내 집은 기도하는 집이라 일컬음을 받으리라 하였거늘 너희는 강도의 소굴로 만드는도다”고 말씀하신 것과 같다 (마 21: 13).
나라가 앗수르에 의해 붕괴될 때, 그곳들은 황폐되고 파괴될 것이다.
더우기 여호와 하나님은 “내가 일어나 칼로 여로보암의 집을 치리라”고 하셨다.
“여로보암의 집”은 이스라엘의 왕조 혹은 통치권을 구체적으로 지칭하는 말이다.
종교권 뿐 아니라, 이스라엘의 정치권도 파멸을 당하게 될 것이다.
아모스가 이스라엘에 전한 환상의 메시지는 환영받을 수 없는 위협적인 것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모스는 자신이 본 그대로 전하였다.
그는 자신이 보고 들은 것을 사실 그대로 전한 신실한 증인이었다.
 
적대에 직면한 증인 (아모스 7장 10 -13절)
 
7: 10    때에 벧엘의 제사장 아마샤가 이스라엘의 왕 여로보암에게 보내어 이르되 이스라엘 족속 중에 아모스가 왕을 모반하니
           그 모든 말을 이 땅이 견딜 수 없나이다
7: 11     아모스가 말하기를 여로보암은 칼에 죽겠고 이스라엘은 반드시 사로잡혀 그 땅에서 떠나겠다 하나이다
7: 12     아마샤가 또 아모스에게 이르되 선견자야 너는 유다 땅으로 도망하여 가서 거기에서나 떡을 먹으며 거기에서나 예언하고
7: 13     다시는 벧엘에서 예언하지 말라 이는 왕의 성소요 나라의 궁궐임이니라
 
벧엘은 아모스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다림줄 환상을 전한 성소들 중의 하나였던 것이 분명하다.
벧엘의 제사장이었던 아마샤가 특별히 이스라엘의 왕 여로보암에게 메시지를 보내어 아모스가 왕에게 반란을 일으키고 있다고 보고한 일은
그같은 사실을 설명해 주고있다.
벧엘이나 단에서 제사장으로 섬겼던 사람들은 레위자손이 아닌 일반 백성들이었던 것으로 미루어 볼 때 (왕상 12: 31),
아마샤는 여로보암 욍에 의해 세움을 받아 제사장으로 섬겼던 사람이었을 가능성이 크다.
그같은 이유로 인해 그는 왕에게 더욱 충성했던 것으로 보인다.
아마샤는 아모스가 예언한 말을 왜곡시켜 아모스 자신이 왕에게 반역을 일으키며 민심을 선동하고 있는 것으로 여로보암 왕에게 전하였다.
실제로 아모스가 말한 것은 이스라엘 왕조가 적군에 의해 멸망을 당하게 될 것이라는 뜻이었다.
그런데 아마샤는 아모스가 하나님의 메시지를 전하고 있는 사실은 전혀 언급하지 않고,
“여로보암은 칼에 죽겠고 이스라엘은 반드시 사로잡혀 그 땅에서 떠나겠다고 하나이다”라고 하였다.
그같이 아모스가 왕을 모반하고 있으므로 백성들이 그 모든 말을 더 이상 듣고만 있을 수 없다고 하였다.
그것은 아모스에 대한 중대한 도전인 동시에 심각한 고발이 되고 있다.
아마샤 제사장은 여로보암 왕이 아모스 선지자를 추방해 버리거나 제거해 버리기를 바랐던 것으로 보인다.
아마샤는 또 아모스를 “선견자”로 부르면서 “유다 땅으로 도망하여” 거기에서나 예언하고 “다시는 벧엘에서 예언하지 말라”고 하였다.
그 것은 아마샤가 스스로 한 말이거나 왕의 명령을 받고 한 말일 수도 있다.
“선견자”는 구약 초기 당시에 선지자를 일컫는 말이었다 (삼상 9: 9).
아마샤는 벧엘이 “왕의 성소요 나라의 궁궐”이라고 하였다.
벧엘은 왕이 세운 예배장소인 동시에 왕이 예배하는 곳이 되었기 때문이었다.
아모스가 벧엘에서 예언하는 것을 아마샤가 원치 않은 이유는 순전히 정치적인 것이었다.
아마샤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기 보다는 왕을 기쁘게 하는 것을 중요하게 여기고 관심이 더 많았던 것이다.
 아마샤는 어떤 것도 왕의 기분을 상하게 하는 것을 원치 않았다.
아마샤는 권력에 아부하는 종교 지도자들을 대표하는 전형적인 인물이 되고 있다.
결과적으로 그들은 아모스 선지자가 전하는 하나님의 메시지를 듣고 회개할 수 있는 기회를 놓쳤다.
아모스 같이, 우리도 복음의 메시지를 전할 때 사람들에게 반대나 거부 혹은 적대를 당할 수 있다.
바울도 그같은 일을 수 없이 겪었다 (고후 11: 24 -27).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가는 곳마다 신실하게 구원의 메시지를 전하였다.
우리도 아모스나 바울 처럼 하나님의 신실한 대변자가 되어야 한다.
 
순종하는 증인 (아모스 7장 14 -17절)
 
7: 14    아모스가 아마샤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나는 선견자가 아니며 선지자의 아들도 아니라 나는 목자요 뽕 나무를 재배하는 자로서
7: 15    양 떼를 따를 때에 여호와께서 나를 데려다가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기를 가서 내 백성 이스라엘에게 예언하라 하셨나니
7: 16    이제 너는 여호와의 말씀을 들을지니라 네가 이르기를 이스라엘에 대하여 예언하지 말며 이삭의 집을 향하여 경고하지 말라 하므로
7: 17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기를 네 아내는 성읍 가운데서 창녀가 될 것이요 네 자녀들은 칼에 엎드려지며
          네 땅은 측량하여 나누어질 것이요 이스라엘은 반드시 사로 잡혀 그의 땅에서 떠나리라 하셨느니라
 
베드로는 믿음의 성도들에게 그리스도를 마음에 주님으로 모시고 거룩한 삶을 살며 그들 속에 있는 소망에 관한 이유를 묻는 사람들이게
대답할 말을 항상 준비하고 있으라고 하였다 (벧전 3: 15).
아모스야 말로 항상 그같이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는 아마샤의 위협에 굴하지 않고 담대하게 맞섰다.
아모스는 먼저 자신이 아마샤가 알고 있는 종류의 선지자가 아님을 밝혔다.
그는 어떤 선지자 단체에 소속되어 있어서 훈련을 받았거나 개인적인 이해 관계에 따라 메시지를 전하는 전문적인 선지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분명하게 밝혔다.
자기는 본래 양떼를 치는 목자이자, 뽕나무를 재배하는 농부였다고 하였다.
그 말에는 아모스 자신도 하나님의 선지자가 되리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는 뜻이 담겨 있다.
그런데 아모스가 양때를 치고 있을 때에, 여호와께서 자기를 부르셔서 “가서 내 백성 이스라엘에게 예언하라”고 말씀하셨다고 하였다.
아모스는 자신이 원해서 선지자가 된 것이 아니었다.
그는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그 부르심에 순종하여 하나님의 선지자가 되었고 하나님의 메시지를 충실하게 전하였다.
아모스는 하나님의 메시지를 전할 수 있는 자신의 권세를 분명하게 밝혔다.
여호와 하나님을 전적으로 섬기는 제사장이었던 아마샤는 어느 누구보다도 아모스가 전하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회개하고
왕과 백성들을 하나님께로 인도했어야 마땅했다.
그런데 도리어 아마샤는 아모스에게 “이스라엘에 대하여 예언하지 말며 이삭의 집을 향하여 경고하지 말라”고 하였다.
그래서 아모스는 아마샤에게 단화게 “너는 여호와의 말씀을 들을지니라”고 하였다.
그런다음 아모스는 아마샤 집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을 선언하였다.
그의 아내는 성읍가운데서 창녀가 될 것이며, 그의 자녀들은 칼에 찔려 죽고, 그의 땅은 남들이 측량하여 나누어 가질 것이며,
아마샤는 사로 잡혀간 더러운 땅에서 죽을 것이다.
그 것은 아마샤 집에 대한 메시지인 동시에 이스라엘 온 집에 대한 심판이 되고 있는 것으로 여겨진다.
아마샤에게 일어난 일은 하나님의 경고의 말씀을 무시하고 그가 하시는 일을 방해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두려운 경종이 되고 있다.
그리스도를 믿는 자인 동시에 그를 증거하는 자들인 성도들이 해야될 일은 성령의 능력으로 복음을 땅 끝까지 전하는 것이다 (마 28: 19 -20; 행 1: 8).
우리의 책임은 복음에 대한 사람들의 응답이 아니고, 복음을 전하라는 말씀에 순종하느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