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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 용납하며 격려하는 신자들 - 제 13과 - 2020년 5월 24일 주일 장년성경연구 - 로마서 14장 1-12절

글쓴이 : 강호길 날짜 : 2020-05-18 (월) 04:00 조회 : 40

장년성경연구 지도자 교안
2020년 5월 24일 주일 용

번역 및 편집: 강 호길
hokilkahng@hotmail.com 

 

 

제 13과

 

 

서로 용납하며 격려하는 신자들         

 

 

학습구절: 로마서 14장 1 -12절

 

성경진리:

신자들은 그리스도의 한 몸을 이루기 위하여 다른 신자들을 용납하며 격려하여야 한다.   

 

주요교리교회  
교회의 각 회중(會衆)은 민주적 과정을 통해 그리스도의 주권 아래서 활동하며, 각 회원은 그리스도로를 주님으로 모시고 그에게 책임을 지는 삶을 살고 있다 (골 1: 18).

 

 

암송구절:  로마서 14장 19절  

 

그러므로 우리가 화평의 일과 서로 덕을 세우는 일을 힘쓰나니  

 

Let us therefore make every effort to do what leads to peace

 and to mutual edification.”

 

 

시작하는 글:

 

인간의 몸은 놀라운 창조물(創造物)이다.

순환계, 소화계통, 골격조직 및 신경계통과 같은 일련의 기관들과 조직들은 함께 일하여 몸 전체가 활동하며 성장한다.

한 기관이나 조직에 문제가 생기면, 그것은 다른 기관이나 조직에도 문제를 일으키며 몸 전체에 영향을 끼칠 수 있다.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도 같은 방식으로 일한다.

신자들은 건강하고 효율적인 몸을 이루기 위하여 하나가 되어야 한다.  

 

몸의 한 부분에서 생긴 문제가 몸의 다른 부분에 문제를 일으킨 것을 경험한 것은 언제입니까?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에서 그 같은 유형의 원인과 결과가 어떻게 일어날 수 있습니까?  

 

 

본문 배경설명

 

로마서 14장 1절부터 15장 13절까지

 

그의 서신 전체를 통해, 바울은 로마 교회의 다양한 배경의 교인들과 관련된 영적 문제를 다루었다.

이방인 신자들은 죄인들이었지만, 유대인 신자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들 모두는 하나님의 은혜에 의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다 (엡 2: 8).

하나님은 또한 신자들 각자에게 성령의 은사를 주셔서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 안에서 서로 섬기게 하셨다 (12: 3 -13).

모든 신자들은 전체 신앙 공동체의 영적 건강에 중요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떤 교회들은 신자들의 서로 다른 문화적 및 인종적 배경으로 인해 계속 갈등을 겪고 있었다.

로마에 있는 그리스도인들도 그 같은 갈등에서 제외되지 않았다.

로마서 14장 1절부터 15장까지에서, 바울은 교회 내에서의 그 같은 갈등의 문제에 대해 이야기 하고 있다.

바울은 문제의 핵심으로 돌아와서, 비본질적인 문제에 대해 성도들이 그리스도 안에서 서로를 받아 줄 것을 권하고 있다.

그것들은 복음이나 거룩한 생활과 관련된 신학적인 차이가 아니라, 음식과 거룩한 날과 같은 것에 대한 문화적(文化的)이고도 개인적(個人的)이자 사적(私的)인 차이들이었다.

      첫 번째의 쟁점(爭點)은 음식과 관계된 것이었다.
당시 많은 유대인 신자들은 유대교의 유산(遺産)인 음식규례를 계속 지켰다.
반면에, 많은 이방인 신자들은 특정 음식에 관한 유대교의 전통과 유산을 지키지 않았다.

두 번째의 문제(問題)는 갖가지 성일(聖日)을 지키는 것과 관계 되었다.
일부 유대인 신자들은 예수님을 주님과 구세주로 믿으면서도 그 같은 성일들을 하나님에 대한 헌신(獻身)의 표시(表示)로 지켰던 것이 확실하다.

그렇지만, 이들 유대인 신자들이 이방인 신자들도 유대교의 음식규례와 거룩한 날들을 지켜야 한다고 주장했을 때, 갈등 혹은 분쟁이 일어나게 되었다.

     어느 한쪽 편을 들거나 두둔하는 대신에, 바울은 하나님의 가족 안에서 형제 자매들이 가져야 될 태도에 관한 더 깊은 문제에 초점을 맞추었다.

그는 모든 신자들에게 서로 비판(批判)하며 파벌(派閥)로 나누기 보다는 서로를 존중하며 받아 들일 수 있는 방법을 깊이 생각하도록 격려하였다.

    바울은 로마에 있는 믿음이 성숙하고 강한 신자들에게, 그들의 믿음을 타협하는 일이 되지 않고 믿음이 더 연약한 신자들의 믿음을 키워주는 일이 될 때, 그들의 행동을 기꺼이 바꾸라고 권고하였다.      

신자들이 태도와 행동을 그같이 바꿀 수 있는 동기와 힘은 두 가지로, 하나는 그리스도께서 보여주신 본과 다른 하나는 신자들의 마음에 있는 그리스도의 사랑의 힘이 되고 있다.

바울은 신자들에게 예수님께서 구원을 베푸시기 위하여 자신의 권리를 포기 하셨음을 상기시켜 주었다.

바울은 또한 죄인들을 위한 그리스도의 희생적인 사랑에 대해 말하였다.

신자들이 그같이 놀라운 그리스도의 사랑에 보답하는 방법은 신자들 서로가 사랑하는 것이다.

 그래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이같이 말씀하셨다 (요 15: 12):

내 계명은 곧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하는 이것이니라.”

그리스도인들의 사랑은 다른 사람들이 우리의 취향(趣向)을 따르도록 요구(要求)하기보다는 다른 사람들의 유익(有益)을 추구하는 것이다.

 

 

학습구절 연구

 

비판(批判)하지 말라 (로마서 14장 1 -4절)  

 

그리스도인들은 다른 신자들에 대한 비판(批判)을 삼가야 한다.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의 종들이며 하나님께만 책임이 있다.

 

로마서 14장 1 - 3절


●    믿음이 연약한 자를 너희가 받되 그의 의견을 비판하지 말라
●    어떤 사람은 모든 것을 먹을 만한 믿음이 있고 믿음의 연약한 자는 채소만 먹느니라
●    먹는 자는 먹지 않는 자를 업신여기지 말고 먹지 않는 자는 먹는 자를 비판하지 말라 이는 하나님이 그를 받으셨음이니라  


 “받다”로 번역된 헬라어는 다른 사람을 "환영하다” 혹은 “영접하다”는 뜻이 되고 있다.
 바울은 이 동사를 명령형으로 사용함으로, 그가 단순히 그리스도인 관계에 대해 어떤 한 제안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님을 나타냈다.

교회 내에서의 성도들의 관계는 너무나 중요하고 소중하였기 때문에, 성도들이 좋아하는 관계 자체에만 맡겨놓을 수 없었다.  

     그 권고의 말이 “믿음이 연약한 자”를 받으라는 명령형으로 되고 있는 것으로 보아, 바울은 주로 자신들의 믿음이 강하다고 생각하고 있는 신자들에게 말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믿음이 연약하다”는 말은 영적으로 성숙하지 못하거나 교리적인 이해가 부족한 것을 가리키는 말이 될 수 있다.

이 경우에, 바울은, 자신과 마찬가지로, 그리스도와의 믿음의 관계가 무슨 음식을 먹느냐 혹은 어떤 날을 거룩하게 지키느냐에 달려 있지 않다는 것을 이해하고 있는 신자들에게 말하고 있었던 것이 분명하다.

     게다가, 바울은 “믿음이 연약한 자”라는 말을 동료 신자들을 낮추어 말하는 뜻으로 사용하지 않았다.

실제로, 서신의 이 부분에서 그의 주제는 그와는 반대로, 모든 신자들이 서로 존중하고 받아 들이는 것을 격려하는 것이 되고 있다.

아마도, 그는 예수 그리스도를 주님과 구세주로 믿으면서도, 구약의 율법에서 규정하고 있는 음식 규례와 성일을 계속 지키고 있던 유대인 신자들과 그들의 영향을 받아 그것들을 준수해야 하는 것으로 믿고 있던 다른 신자들을 지칭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바울은 갈라디아의 일부 교사들이 그 문제를 구원의 교리와 결부시켜 가르쳤을 때에는 이를 ‘다른 복음’으로 규정하며 강하게 정죄하였는데 반해 (갈 1: 6 -9; 3: 1 -4 참조), 로마에 있는 이들 신자들의 경우에는 그같이 정죄하지 않았다.

대신에, 바울은 영적으로 성숙하고 믿음이 강하다는 신자들에게 교회의 지엽적인 문제로 그들과 다르게 행하는 신자들을 인내심을 가지고 정중하게 받아들이도록 격려하였다.

     따라서, 신자들은 의견을 달리할 수 있는 문제에 대해 서로 비판하며 시간과 힘을 소모하지 말아야 하였다.

교회가 한 몸을 이루는 것이 복음에 필수적이지 않은 문제를 가지고 논쟁을 벌여 이기는 것보다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성도들이 의견을 달리한 문제들은 복음의 교리적 기초(基礎)와 관계가 없고 도리어 근본적인 믿음과 무관한 다양한 관행 혹은 관습들과 관계된 것들이었다.
     바울이 첫 번째로 다룬 논쟁점은 음식을 먹는 것과 관계된 것이었다.
예수님은 모든 음식물은 깨끗하며 다 먹을 수 있다고 가르치셨다 (막 7: 18 -19).

그것은 베드로가 로마군대의 백부장인 고넬료의 집으로 가기 전에 환상으로 배운 교훈이기도 하다 (행 10: 15).

로마 교회의 신자들 중에는 그 가르침을 바르게 이해하여 모든 종류의 음식을 자유롭게 먹을 수 있다고 생각한 사람들이 있었다.

사도 바울도 고린도 교회에 편지를 썼을 때 같은 결론을 내렸다 (고전 10: 25 -26). 

     그렇지만, 다른 어떤 신자들은 음식에 대해 그같은 자유를 똑같이 느끼지 못하였다.

그래서 그들은 고기는 먹지 않고 “채소만 먹[었다.]”

바울은 그같은 신념을 가지고 있던 사람들을 “믿음이 연약한 자”라는 명칭을 붙여 명시적으로 분류하였다.

분명하게 밝혀지고 있지는 않지만, 이 부류에 속한 사람들은 시장에서 파는 고기가 구약의 정결법에 따라 준비되지 않았거나 이방 우상들에게 바쳤던 제물의 일부일 수도 있는 것을 두려워했을 수 있다.

음식에 관한 문제로 고린도 교회에서 일어났던 일이 고린도전서 8장 4절부터 8절에 기록되고 있는데, 그것은 로마 교회에서 일어나고 있는 음식에 대한 분쟁의 성격을 밝혀주는 배경이 될 수 있다.

고린도의 시장에서 팔린 고기 중 일부는 이교도 사원에서 나온 것이었다.

고기가 다양한 우상에게 바치는 희생 제물로 사용 된 후, 그것은 판매용으로 시장으로 옮겨졌다.

일부 그리스도인들은, 특히 유대인 신자 들은, 그러한 고기를 사서 먹는 것이 우상을 숭배하는 것과 같은 것으로 생각하였다.

바울은 그 같은 생각을 반박하였다.

그러면서도 그는 자기와 같이 생각하는 신자들에게 다르게 생각하는 다른 신자들이 걸려 넘어지지 않도록 영적인 걸림돌을 놓지 말라고 권면하였다 (고전 8: 9).

    바울에게 있어서, 음식에 대한 논쟁의 가장 걱정스럽고 염려스러운 면은 신자들이 서로 비판함으로 한 몸인 교회가 분열되는 가능성이었다.

교회가 한편으로 받는 유혹은 그리스도 안에서 자유를 누리는 신자들이 자기들처럼, 음식이 어디서 왔던지 관계 없이, 모든 종류의 음식을 거리낌 없이 먹지 않는 신자들을 낮춰보는 것이었다.

그래서 바울은 “먹는 자는 먹지 않는 자를 업신여기지 말[라]”고 하였다.

교회가 다른 한편으로 받는 유혹은 신앙적인 이유로 음식을 가려먹는 것을 자랑스럽게 여기는 신자들이 자신들과 다르게 생각하고 행동하는 신자들의 믿음이나 구원의 문제에 대해 의문을 품는 것이었다.

그래서 바울은 “먹지 않는 자는 먹는 자를 비판하지 말라”고 하였다.

업신여기다”라는 말은 그리스도인의 사랑과 반대가 되고 있는 경멸과 증오의 태도를 묘사하고 있다.

마찬가지로, “비판하다”로 번역된 헬라어는 다른 사람보다 도덕적인 우월감을 전제(前提)로 하고 있다.

바울은 믿는 자들에게 하나님께서 유대인 신자들과 이방인 신자들 모두를 그의 구원의 가족으로 받아 주신 것은 그들이 무엇을 먹느냐가 아니라, 그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느냐에 달려 있다는 사실을 상기시켜 주었다.

 

로마서 14장 4절


●    남의 하인을 비판하는 너는 누구냐 그가 서 있는 것이나 넘어지는 것이 자기 주인에게 있으매 그가 세움을 받으리니 이는 그를 세우시는 권능이 주께 있음이라


바울은 신자들이 동료 신자들을 판단해서는 안 된다는 자신의 훈계를 강화(强化)하기 위해 “남의 하인을 비판하는 너는 누구냐”는 수사학적(修辭學的)인 질문을 사용하였다.  

노예 제도에 대한 비유적 표현은 믿음이 연약한 신자들에게 적절한 명령계통(命令系統)을 상기시켜 주고 있다.

하인들은 다른 하인들에게 책임을 지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주인에게 지고 있다.

하인이 “서있는 것이나 넘어지는 것”은 주인과 하인 사이의 문제이다.

하인이라는 통상적인 용어는 바울의 비유가 지상 노예의 주인을 언급하는 것을 뜻하는 말이 되고 있기는 하지만, 바울은 또한 그 말이 하나님을 가리키는 것을 독자들이 깨닫게 되기를 기대하였다.

     바울은 “그를 세우시는 권능이 주께 있음이라”는 말로, 믿음의 연약한 신자들에게 믿는 자들을 세우시는 분은 하나님이신 것을 상기시켜 주었다.

믿는 자가 서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의 결과이지, 음식규례 법의 결과가 아니었다.

하나님께서 모든 신자들을 받아들이신 것처럼, 우리는 하나님께서 받아들이신 신자들을 받아들이고 그들의 영적 성숙상태에 대해 비판을 자제해야 할 책임이 있다.

분명히, 잘못된 교리와 비기독교적인 행동의 문제는 수정되어야 하지만, 종교적인 관행의 문제에 있어서는 우리는 비판과 경멸이 아니라 은혜와 관용을 보여야 한다.

 

오늘날 교회에서 논쟁을 불러 일으키는 문제들은 어떤 것들이 있습니까?

그것들은 바울이 지적한 문제점들과 어떻게 비교되고 있습니까?

 

 

하나님을 공경하라 (로마서 14장 5 -8절)

 

신자들은 자신의 삶의 초점을 어떻게 하나님을 공경할 수 있느냐에 맞추어야 한다.
이 신념(信念)의 기초(基礎)는 소유권의 원칙을 따르는 것으로, 모든 신자들은 하나님께 속해 있으며 모든 면에서 하나님을 공경해야 한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 되고 있다.

 

로마서 14장 5 -6절:


●    어떤 사람은 이 날을 저 날보다 낫게 여기고 어떤 사람은 모든 날을 같게 여기나니 각각 자기 마음으로 확정할지니라
●    날을 중히 여기는 자도 주를 위하여 중히 여기고 먹는 자도 주를 위하여 먹으니 이는 하나님께 감사함이요 먹지 않는 자도 주를 위하여 먹지 아니하며 하나님께 감사하느니라     


바울이 두 번째로 다룬 로마 교회 신자들의 논쟁점은 특별한 날들을 지키는 것과 관계된 것이었다.

바울은 어떤 날이 특별한 날로 생각되었는지 혹은 왜 그렇게 여겨졌는지 밝히지 않았다.

그는 단순히 “어떤 사람은 이 날을 저 날보다 낫게 여기고 어떤 사람은 모든 날을 같게 여기나니라고 기술하였다.

일부 성경학자들은 바울이 복음을 받아들인 후에도 로마의 “행운의 날”이나 “불운의 날” 혹은 이방 축제들과 관련된 특별한 날들을 계속 지키고 있던 이방인 그리스도인들을 언급하고 있다고 제안해오고 있다.

가능성이 더 높은 것은, 바울은 안식일이나 특별한 금식일을 포함하여 유대인의 축제일을 계속 지켜오고 있던 유대인 그리스도인들을 가리켰을 수 있다.

여기서도 똑같이 비판하거나 업신여기는 태도로 대하는 일이 생긴 것으로 보인다.

어떤 날은 다른 날보다 더 거룩한 것으로 본 사람들은 그렇게 보지 않은 사람들을 비판적으로 보았을 것이다.

모든 날을 똑같게 여긴 신자들은 똑같게 여기지 않은 신자들을 업신여겼을 것으로 보인다.

      바울은 “각각 자기 마음으로 확정할지니라”는 말로, 양쪽 편에게 경고하였다.

바울은 한 입장을 칭찬하거나 다른 입장을 정죄하지 않았다.

바울에게 있어서, 그것은 아무래도 좋은 일이었다.

각 그룹은 자신들이 취하고 있는 입장을 신중하게 생각하고 실천해야 하며 다른 그룹의 신자들에게 잘못된 반응을 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14장 22절에서, 바울은 신자들에게 “그대가 지니고 있는 신념(信念)을 한나님 앞에서 스스로 간직하십시오”라고 하였다 (표준 새 번역).
바울은 특별한 날들이나 절기를 구원의 문제와 연결시켜 지켰던 것으로 보이는 갈라디아 신자들에게 말했을 때에는 더 강한 입장을 취하였다 (갈 4: 9-11).

바울은 그같이 하는 신자들에게 “어찌하여 너희가 다시 약하고 천박한 초등 학문으로 돌아가서 다시 그들에게 종 노릇 하려 하느냐”고 질책하였다 (갈 4: 9).

그렇지만, 로마 교회의 성도들의 경우는 문제가 달랐다.

로마 교회의 문제점은 구원의 문제와 관련된 교리적인 것이 아니라, 성도들간의 친교의 문제였다.

     바울이 이들 문제들을 아무래도 좋은 일로 여겼던 이유는 신자들의 동기(動機)와 관계되고 있다.
그는 먼저 특별한 날들을 지켰던 믿음이 연약한 신자들이 그같이 한 동기를 언급하였다.

그들은 “주를 위하여” 하였던 것이다.

그는 “날을 중히 여기는 자도 주를 위하여 중히 여기고 먹는 자도 중히 여기니”라고 하면서  

비판의 대상이 되고 있는 신자들이나 업신여김을 당하고 있는 신자들 모두가 주를 위하여 하고 있음을 밝혔다.

그뿐 아니라, 그들은 그같이 하는 것을 “하나님께 감사하였[다].”       

그들의 목표는 그리스도를 영화롭게 하는 것이 되었기 때문이다.

 

로마서 14장7 -8절:


●    우리 중에 누구든지 자기를 위하여 사는 자가 없고 자기를 위하여 죽은 자도 없도다
●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해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다


바울은 14장 4절에서 “남의 하인을 비판하는 너는 누구냐”라는 말로 하인의 소유권에 대한 문제를 제기하였는데, 바울이 7절과 8절에서 강조하고 있는 것이 바로 그 소유권(所有權)의 문제가 되고 있다.  

     믿는 자들이 한 몸을 이루는 것은 지체들이 모두 그리스도께 속해 있으며 서로 의존되고 있음을 인식하는 것으로 시작되고 있다.

어떤 신자도 자신이 교회에서 “독불 장군 식”으로 살 수 있다고 생각하지 말아야 한다.

그래서 바울은 그리스도 안에서 “누구든지 자기를 위하여 사는 자가 없고 자기를 위하여 죽는 자도 없도다”는 말로 그 같은 원리를 제시하였다.

우리 믿는 자들은 삶 속에서 무엇을 하든지, 특별히 그리스도의 몸의 일부로서, 다른 신자들의 행동이 우리에게 영향을 미치는 것처럼 다른 신자들에게 영향을 미치게 마련이다.

    신자들의 삶은 서로에게 속해 있을 뿐 아니라, 가장 중요한 것으로는 그리스도께 속해 있다.

바울은 그 같은 사실을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해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다는 말로 표현하였다.

바울은 고린도 교회 신자들에게는 “너희는 너희 자신의 것이 아니라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 그런즉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고 하였다 (고전 6: 19 -20).   

그러므로 신자들의 가장 큰 관심사는 주님께 대한 충성과 신실함이 되고 있다.

 

믿는 자들의 삶의 목표는,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주님을 공경하는 것이 되어야 한다.   

 

신자들은 그리스도의 소유물로서 그들의 삶을 위한 주님의 뜻과 목적에 따라 자신의 삶을 살아가야 한다.

부차적인 문제로 논쟁을 벌리는 일은 “우리가 주의 것이로다”라는 고백 앞에 빛을 잃게 된다.

 

우리는 중요하지 않은 것들에 대한 논쟁을 어떻게 주님을 공경 할 수 있는 기회로 바꿀 수 있습니까      

  

걸림돌이 되지 말라 (로마서 14장 9 -12절)

 

그리스도인들은 서로 진실하게 여기는 신념을 존중해야 하며 교회 안에서 걸림돌이 되지 말아야 한다.

신자들은 그들이 먹거나 먹지 않는 것을 가지고 하나님을 공경할 자유가 있다.

우리는 우리의 행동에 대해 하나님께 책임을 진다는 사실을 깨닫고 삶의 선택을 해야 한다.

 

로마서 14장9절:


●    이를 위하여 그리스도께서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셨으니 곧 죽은 자와 산 자의 주가 되려 하심이라


그리스도께서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셨[다]”는 사실은 복음의 본질이 되고 있다.

우리를 위한 그의 희생적인 죽음은 우리의 죄를 속죄해 주었다.

그의 부활은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그의 주장뿐만 아니라 죽음의 권세에 대한 그의 지배권을 입증하는 일이 되었다.

바울은 고린도교회 신자들에게 말할 때도 그 같은 점을 지적하였다 (고후 5: 15).  

“그가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으심은 살아 있는 자들로 하여금 다시는 그들 자신을 위하여 살지 않고 오직 그들을 대신하여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신 이를 살게 하려 함이라.”

    그리스도의 주요 목적은 그를 주님과 구세주로 믿는 모든 사람에게 구원을 베푸시는 것이 되고 있다.

사망의 결과가 되고 있는 “죄의 삯”은 지불되어야 하였다 (롬 6: 23).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예수님은 우리를 대신하여 십자가에서 돌아가셔서 죄의 값을 치러 주셨다.

기쁜 소식은 예수님께서 우리를 대신해서 죽으셨을 뿐만 아니라 무덤에서 일어나셔서 영원히 살아 계시다는 선언이 되고 있다.

따라서, 그는 “죽은 자와 산 자의 주가 되[신다].”  

그 선언은 바울이 주장하고 있는 점을 확립시켜 주는데 필수적인 두 가지 개념을 위한 기초가 되고 있다.

첫째로, 로마 교회의 신자들은 이차적인 문제들보다는 복음이라는 중심적인 문제에 그들의 관심을 집중(集中)해야 하였다.

둘째로, 예수님의 그 같은 주권(主權)은 모든 사람의 재판장으로서의 그의 권세의 기초가 되고 있다.   

 

로마서 14장 10절:


●    네가 어찌하여 네 형제를 비판하느냐 어찌하여 네 형제를 업신여기느냐 우리가 다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서리라


바울은 신앙의 본질을 떠난 음식물과 특별한 날을 지키는 부차적인 문제를 놓고 견해차이로 인해 서로 다투고 있는 로마 교회의 신자들에게 말하였다.

그것은 “네가 어찌하여 네 형제를 비판하느냐 어찌하여 네 형제를 업신여기느냐”라는 직선적이고도 수사학적인 두 개의 질문형태가 되고 있다.

바울에게 있어서, 그것은 견해차이(見解差異)에서 오는 사소한 문제였지만, 실제로는 신앙공동체(信仰共同體)를 위협하는 심각한 일이었다.

     “우리가 다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서리라”는 말로, 사도 바울은 신자들이 중요하지 않은 종교 문제를 가지고 서로 다투며 갈등하는 것을 중단해야 할 가장 강력한 이유를 제시하였다.

심판대”로 번역된 헬라어는 계단으로 올라가게 된 높이 들린 곳으로 당시에 재판장의 공식 판결(判決)자리가 되었다.

바울은 그같이 사람들에게 친숙한 이미지를 “하나님의 심판대”를 가리키는 용도로 사용하였다.

하나님이 마지막 심판을 환상으로 본 사도 요한은 하나님의 심판대를 “크고 흰 보좌”로 묘사하였다 (계 20: 11).

     여기서 바울이 언급한 “심판”은 모든 불신자들이 마귀와 그 사자들과 함께 지옥에 보내지는 마지막 심판이 아니다 (마 25: 41 -46; 계 20: 11 -15 참조).

오히려, 이것은 그리스도께서 그의 백성이 충성스럽게 섬긴 일에 대해 상급을 주시는 심판이 되고 있다 (고전 3: 10 -15; 고후 5: 10 참조).

바울은 고린도후서 5장 10절에서 “우리가 다 반드시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나타나게 되어 각각 선악간에 그 몸으로 행한 것을 따라 받으려 함이니라”는 말로, 믿는 자들에 대한 마지막 심판을 분명하게 가르치고 있다.

그러므로, 바울은 신자들이 다른 신자들을 업신여기며 비판하는 것은 주님께 속한 권리를 침해하는 것으로 정죄하였다.

 

로마서 14장11 -12절:


●    기록되었으되 주께서 이르시되 내가 살았노니 모든 무릎이 내게 끓을 것이요 모든 혀가 하나님께 자백하리라 하였느니라
●    이러므로 우리 각 사람이 자기 일을 하나님께 직고하리라


바울은 “모든 무릎이 내게 끓을 것이요 모든 혀가 하나님께 자백하리라”는 이사야 45장 23절의 말씀을 인용하여 신자들에 대한 미래의 심판이 있다는 자신의 주장을 강화하였다.

내가 살았노니”라는 말은 맹세가 되고 있다.

신자들은 십자가에 못 박히시고 부활하신 그리스도 앞에 서게 될 것이다.

그때 모든 신자들은 부활하신 주를 찬양하며 예배할 것이다 (빌 2: 10 -11).  

     12 절에서 바울의 결론은 “우리가 다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서리라”고 한 그의 이전의 주장을 요약 한 것이 되고 있다 (14: 10).

그때는 “우리가 다”라고 했는데, 여기서는 “우리 각 사람”이라고 말을 바꿈으로, 그 경험의 개인적(個人的)인 성격을 강조하고 있다.

바울은 “우리 각 사람이 자기 일을 하나님께 직고하리라”고 하였다.

    

 

말씀을 나의 상황에 적용하기:


●    그리스도인들은 다른 신자들의 영적인 문제에 대한 이해와 종교적 관습에 대한 비판을 될 수 있는 한 피해야 한다.                  
●    신자들은 어떤 것이 요구되든지 간에 하나님을 공경해야 한다.  
●    신자들은 다른 신자들과 하나님을 공경하는 그들의 관행에 대한 이해심을 표현해야 한다.      



당신은 다른 사람들을 판단하거나 경시하는 것 중에 어느 것을 더 많이 하는 경향이 있습니까?
오늘의 학습에 근거하여 어떤 것들을 바로 잡아야 하겠습니까?

 

 

이 장년 성경연구 지도자 교재는 LifeWay에서 출간하여 보급하고 있는 Explore the Bible 교과과정의 학생용 한국어 교재를 가르치고 배우는데 도움이 되도록, 강 호길 목사가 LifeWay의 허락을 받아 영어 지도자 교재를 번역 및 편집한 것입니다.
그같이 허락한 LifeWay에 감사를 드립니다.

 
장년 성경연구 한국어 학생 교재는 LifeWay에서 주문하여, 장년 주일학교 시간에 혹은 목장이나 구역 모임에서 성경공부 교재로 사용할 수 있습니다.

 

 

잠언 / 아가서 공부

로마서 공부는 5월 31일 주일이면 끝나게 됩니다.  
그리고 6/7/8월 학기에는 구약의 잠언과 아가서를 공부하게 됩니다.
지혜의 말씀을 배울 수 있는 좋은 기회입니다.
잠언은 “내 열매는 금이나 정금보다 나으며 내 소득은 순은보다 나으니라”고
말씀합니다 (잠 8: 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