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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하시다 - 제 7과 - 2020년 4월 12일 주일 장년성경연구 - 누가복음 24장 1- 12절

글쓴이 : 강호길 날짜 : 2020-04-05 (일) 05:34 조회 : 46

장년성경연구 지도자 교안

2020년 4월 12일 주일 용
번역 및 편집: 강 호길   
 

제 7과

 

 

부활하시다          

 

 

학습구절: 누가복음 24장 1- 12절

 

성경진리:

구원은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이라는 역사적인 사건을 통해 이루어 지고 있다.                  

 

주요교리: 예수님
예수님은 죽은 자 가운데서 영광스러운 몸으로 부활 하셨으며 제자들에게 나타나 보여주셨다.

 

 

암송구절:  누가복음 24장 6절  

 

여기 계시지 않고 살아나셨느니라

갈릴리에 계실 때에 너희에게 어떻게 말씀하셨는지를 기억하라    

 

“He is not here; he has risen!

 Remember how he told you, while he was still with you in Galilee.”      

 

 

시작하는 글:

 

지금까지 목격한 것 중에 가장 경외감을 느끼게 한 장면을 생각해 보자.  

그러면, 이제 이천여 년 전의 일요일 이른 새벽에 어둠을 뚫고 걸어가 더 놀라운 장면인 빈 무덤을 발견하게 된 일을 상상해 보자.

예수님의 시체에 향품을 발라드리려고 예수님의 무덤을 찾아온 여인들은 무덤의 입구를 막고 있는 돌문을 보게 될 것을 기대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대신에, 영원한 하늘나라의 문이 열린 것을 발견하였다.

그리고 그것은 세상을 완전히 그리고 영원히 바꿔 놓은 일이 되었다.

우리는 오늘날에도 그 변화의 축복과 혜택을 누리고 있다.

 

당신이 지금까지 목격한 경외감을 불러 일으키는 광경들을 나열하고 순위를 정해보십시오.

무엇이  같은 경외감을 갖게 했습니까?

 

 

본문 배경설명

 

누가복음 24장 1 -53절

 

이번 주일은 부활절이기 때문에, 주님이 사망의 권세를 이기시고 무덤에서 다시 살아나신 부활의 이야기를 공부하게 된다.

믿는 자들은, 믿음의 렌즈를 통해볼 때, 예수님의 부활의 이야기를 액면 그대로 받아들인다.     
그러나, 믿음의 눈으로 보지 않는 사람들은 종종 더 많은 증거를 요구한다.

서기 1세기 당시가 그런 경우였다.

이방인 신자로 의사이자, 복음서의 저자였던 누가는 헬라 언어권에 있는 다른 이방인들이 예수님의 생애와 죽음 그리고 부활에 대해 알고 그를 구세주로 믿기를 원하였다.

따라서, 그는 목격자의 증언들을 사용하여 이 놀라운 복음 이야기에 대한 믿을만한 기록들을 제시하였다.

    사복음서들은 모두 똑같이 예수님이 죽음에서 부활하셨다는 놀라운 소식으로 끝맺고 있다.

예수님의 부활에 대한 누가의 이야기는 네 부분으로 나뉠 수 있다.

그것은 1) 여인들이 일요일 새벽에 빈 무덤을 발견한 이야기 (24: 1 -12), 2) 엠마오로 가는 길에서 두 제자가 부활하신 주님을 만난 이야기, 3) 제자들이 한 곳에 모여 있었을 때 예수님이 나타나신 이야기 (33 -49), 그리고 4) 부활하신 예수님이 하늘로 들려 올라가신 이야기 (24: 50 -53)가 되고 있다.

사복음서는 모두 무덤을 찾아간 여인들이 빈 무덤을 발견한 것과 예수님이 부활하셨다는 천사의 메시지를 포함하고 있다.  

이 여인들은 예수님의 부활에 대한 최초의 목격자들이 되고 있는데, 이번 주 학습은 그 사건에 초점이 맞추어 지고 있다.

    다음으로, 누가복음은 다른 복음서에서 찾아 볼 수 없는 이야기를 기록하였는데, 그것은 엠마오라 하는 마을로 돌아 가고 있는 두 제자의 이야기이다.

두 사람이 걸어 가면서 그 모든 일어난 일을 “서로 이야기 하며 문의할 때에,” 예수님이 그들과 합류하셨다.

그 두 제자는 눈이 가려져서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하였다.

     예수님이 “서로 주고 받고 하는 이야기가 무엇이나”는 질문을 하시자, “글로바”라는 제자가 “당신이 예루살렘에 체류하면서 요즘 거기서 된 일을 혼자만 알지 못하느냐”고 예수님을 오히려 나무라며, “나사렛 예수의 일이니”라는 말로 지난 몇 일 동안에 일어난 일을 설명하기 시작하였다 (24: 18 -19).

그는 자기들이 메시야로 생각했던 분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신 일과 여인들이 새벽에 그가 묻혀있는 무덤을 찾아갔다가 시체는 보지 못하고 그가 살아나셨다는 소식을 전하는 천사들만 만나고 돌아왔다는 소문을 전하면서 그것으로 인해 걱정하고 있음을 밝혔다.

     이번에는 예수님이 그들이 성경말씀을 더디 믿는 것을 꾸짖으셨다.

그리고 예수님은 “그리스도가 이런 고난을 받고 자기의 영광에 들어가야 할 것이 아니냐”고 하시면서, 그 같은 모든 일이 성경말씀에 의해 일어난 것임을 “모세와 모든 선지자의 글로 시작하여” 설명해 주셨다.

그래도 두 제자는 그가 예수님인 줄을 알아보지 못하였다.

엠마오 동네에 다달았을 때, 두 제자는 날이 저물었으니 “우리와 함께 유하사이다”라고 하며 예수님께 유숙하도록 강권하였다.

함께 음식을 들 때, 예수님이 “떡을 가지사 축사하시고 떼어 그들에게 주시니,” 그제서야 두 제자의 “눈이 밝아져” 예수님을 알아보게 되었다.

그러자 예수님은 사라져 그들에게 보이지 않게 되었다.

두 제자는 “길에서 우리에게 말씀하시고 우리에게 성경을 풀어 주실 때에 우리 속에서 마음이 뜨겁지 아니하더냐”고 서로 말하며 감격해 하였다.

      두 사람은 곧 예루살렘으로 돌아가 사도들과 다른 제자들이 함께 모여 있는 곳으로 가서 그들과 합류하였다.

그들은 주께서 과연 살아나시고 시몬에게도 나타나셨다는 말을 듣고 자신들이 그를 만난 일도 알려주었다.

그같이 말을 하고 있을 때, 예수님이 불현듯 그들이 있는 방에 나타나셨다.

요한복음은 지적하기를 그때 제자들이 유대 지도자들을 두려워하여 문을 잠그고 있었다고 하였다 (요 20: 19).

예수님을 본 제자들은 “놀라고 무서워하여 그 보는 것을 영으로 생각하[였다].

손과 발을 보이며 자기가 유령이 아닌 것을 확실하게 밝히신 후에, 예수님은 “모세의 율법과 선지자의 글과 시편에 나를 가리켜 기록된 모든 것이 이루어져야 하리라 한 말이 이것이라”고 설명하시면서 “그들의 마음을 열어 성경[말씀]을 깨닫게” 해 주셨다 (24: 44).   

그런 다음 예수님은 “너희는 이 모든 일의 증인이라”고 하시면서, 제자들에게 “그의 이름으로 죄 사함을 받게 하는 회개”의 메시지를 “예루살렘에서 시작하여 모든 족속에게 전파[하는 사명]”을 주셨다 (24: 47 -48).

그들은 그 선교 사역을 위로부터 성령의 “능력”을 받은 후에야 시작해야 하였다.

    누가는 그의 복음서를 부활하신 예수님이 승천하여 아버지께로 돌아가신 간단한 설명으로 끝내었다.

그리고 제자들이 겪은 당혹감과 두려움은 큰 기쁨과 경배로 바뀌었다.

 

 

학습구절 연구

 

빈 무덤을 발견한 여인들 (누가복음 24장 1 -4절)

 

예수님을 믿고 따르던 일단의 여인들이 무덤에 있는 예수님의 시체에 향료를 발라드리기 위해 일요일 이른 새벽에 무덤을 찾아왔다.

무덤에 도착했을 때, 그들은 무덤의 입구를 막았던 돌이 굴려 옮겨진 것과 예수님의 시체가 보이지 않는 것을 발견하였다.

 

누가복음 24장 1 -3절:


●    안식 후 첫날 새벽에 이 여자들이 그 준비한 향품을 가지고 무덤에 가서  
●    돌이 무덤에서 옮겨진 것을 보고   
●    들어가니 주 예수의 시체가 보이지 아니하더라


역사적으로 전통적인 시간 대로 따지면, 예수님은 금요일 오후 3 시경에 예루살렘 성 밖에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셨다.

유대인의 신앙에 의하면, 나무에 달려 처형당한 죄수의 시체를 밤새도록 두는 것은 피해자에게 저주가 되고 약속의 땅을 더럽히는 일이 되었다 (신 21: 22 -23 참조).
예수님이 십자가의 처형을 받은 경우에 문제를 더 복잡하게 만든 것은, 유대인들의 계산으로는, 그날 저녁 해질 때부터 유대인들이 아무 일도 하지 않는 안식일이 시작되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시체를 빌라도 총독의 허락을 받아 십자에서 내려다가 가까운 무덤에다 매장하는 일은 매우 급하게 시행되어야 하는 일이었다.

부자이자 공회 회원으로 예수님을 비밀리에 믿고 따랐던 아리마대 사람 요셉은(눅 23: 50 -51; 요 19: 38) 유대인의 관원으로 예수님을 밤중에 찾아왔던 니고데모의 도움을 받아 (요 3: 1 – 21; 19: 39) 그 같은 일을 하였다.

예수님을 믿고 따랐던 여인들이 “뒤를 따라 그 무덤과 그의 시체를 어떻게 두었는지를 보고 돌아가 향품과 향유를 준비하[였다]” (눅 23: 55 -56).  

     “안식 후 첫날”인 일요일이 되자, 예수님의 시체가 무덤에 묻히는 것을 지켜 보아두었던 여인들은 예수님에 대한 장례절차를 마치기를 작정하였다.

그래서 그들은 “새벽에” 무덤을 찾아왔다.

요한복음서는 여인들이 “일찍이 아직 어두울 때에” 찾아온 것으로 밝히고 있다 (요 20: 1).

    1 세기 당시의 유대인들은 시체를 방부처리 하지 않았다.

대신에, 그들은 죽은 사람의 시신에다 향품과 향료를 세마포로 싸서 부패의 냄새를 없애고 마지막 애정을 표현하는 장례 절차를 행하였다.   

무덤을 찾아온 여인들은 예수님의 시체에 바를 “그 준비한 향품을 가지고” 왔다.

여인들의 동기는 장례가 급하게 이루어졌기 때문에 예수님에 대한 장례 절차를 적절하게 마치며 마지막 사랑과 존경심을 표하는 것이었다.

어쩌면, 이 여인들은 아리마대 요셉과 니고데모가 예수님의 시체에다 “유대인의 장례 법대로” 행한 것을 알지 못하였거나 아니면 기대하지 않았을 수도 있다.

그들이 그같이 마지막 사랑의 마음과 존경심을 표하려고 했던 것은 예수님의 부활을 예상하거나 기대하지 않았던 것을 나타내고 있다.
     마가는 그의 복음서에서 여인들이 무덤에 도착하기 전에 무덤 입구를 막고 있는 큰 돌을 굴러내는 문제를 놓고 서로 의논한 것을 기록하였다 (막 16 : 3).

그러므로, 그들은 “돌이 무덤에서 옮겨진 것을 보고” 놀랐을 것이 틀림 없다.

마태 복음은 무덤의 입구를 막고 있던 돌이 옮겨진 방법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제시해 주고 있는데, “큰 지진이 나며 주의 천사가 하늘로부터 내려와 돌을 굴러 내고 그 위에 앉았[다]”라고 기록하고 있다 (마 28: 2).

물론, 부활하신 주님은 무덤의 돌이 옮겨져야 나오실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그의 부활의 몸은 더 이상 시간과 공간의 물리적 법칙의 제한을 받지 않았다.

부활하신 예수님은 제자들이 방의 문들을 잠가 놓고 있거나 닫아 놓고 있을 때 그들에게 나타나셨다. (요 20: 19; 26).

그러므로, 입구를 막고 있는 돌을 굴려 옮겨놓은 것은 여인들과 제자들이 무덤 안에서 일어난 일을 직접 목격하게 하려는데 목적이 있었다.

     부활에 대한 직접적인 증거는 여인들이 무덤에 들어가서 “주 예수의 시체가 보이지 아니[한 것]”을 목격했을 때 시작되었다.       

그러나 그 사건 자체만으로는 예수님의 제자들이 부활을 믿는데 필요한 모든 증거가 되지 않았다.

막달라 마리아는 처음에 동산지기가 밤 동안에 예수님의 시체를 옮겨 놓은 것으로 생각하였다 (요 20: 15).

시몬 베드로는 빈 무덤을 보고 놀라움을 금하지 못하였지만, 부활하신 주님이 그에게 나타나실 때까지 빈 무덤의 의미가 무엇인지에 대해 확신하지 못하였다. (눅 24: 12; 요 20: 3 -10).

도마는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손과 옆구리에 있는 상처를 만질 수 있을 때까지 예수님의 부활을 믿기를 거부하였다 (요 20: 24 -25).

 

보고 들은 것을 보고한 여인들 (누가복음 24장 4 -9절)

 

두 천사가 여인들 앞에 나타나 예수님께서 부활하셨다는 사실을 알려주었다.

그리고 두 천사는 여인들에게 예수님이 갈릴리에 계실 때에 자신의 죽음과 부활에 관해 말씀하셨던 일을 상기시켜주었다.

여인들은 돌아가 자신들이 보고 들은 모든 것을 열 한 사도와 다른 모든 이에게 알려 주었다. 

 

누가복음 24장 4 -5절:


●    이로 인하여 근심할 때에 문득 찬란한 옷을 입은 두 사람이 곁에 섰는지라
●    여자들이 두려워 얼굴을 땅에 대니 두 사람이 이르되 어찌하여 살아 있는 자를 죽은 자 가운데서 찾느냐  


빈 무덤은 여인들에게 예수님이 죽음에서 부활하셨다는 확신을 갖게 한 증거물이 아니라, 도리어 걱정과 염려를 하게 한 요인이 되었다.

무덤이 비어 있는 것으로 인해, 여인들이 “근심 할 때에 문득 찬란한 옷을 입은 두 사람”이 그들 곁에 나타났다.

근심하다”로 번역된 헬라어 단어의 문자적인 뜻은 ‘방법이 없다’이다.   

그 단어는 또한 어떤 것에 대해 의혹을 품는 것, 혼란에 빠지는 것, 혹은 당황해 하는 것을 가리킬 수 있다.

여인들은 부활이 일어났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들은 계속 슬픔에 잠겨서 상황에 대해 깊은 혼란을 느끼고 있었다.

     누가는 “두 사람”이 갑자기 여인들에게 나타났다고 기록하였다.

요한도 “흰 옷 입은 두 천사가” 나타난 것을 기록하고 있는데, 한 천사는 예수님의 시체가 뉘었던 곳의 머리 편에, 다른 천사는 발 편에 앉아 있었다 (요 20: 12).

다른 한편, 마가복음(16: 5)과 마태복음(28: 2)은 한 천사만 언급하였다.

어떤 사람들은 설명에 그같이 차이가 나는 것은 설명 자체가 믿을 수 없는 이유가 된다고 주장해 오고 있다.

그렇지만, 한 천사만 언급되었다고 해서 다른 천사가 그 자리에 없었다는 뜻은 아니다.
마가와 마태는 여인들에게 말한 한 천사만 언급 한데 반해, 누가와 요한은 두 천사를 언급했던 것이다.

     어두운 무덤 안에서의 두 사람의 겉 모습은 놀라운 것이었다

그들의 옷을 묘사하기 위해 사용된 단어인, “찬란한”이란 말은 번개가 번쩍이는 것을 묘사하기 위한 용도로도 사용되었다  (눅 17: 24).  

 마태는 천사의 모습을 “그 형상이 번개 같고 그 옷은 눈 같이 희거늘”이라는 말로 묘사하였다 (마 28: 3).

     누가는  천사가 아니라, “두 사람”이 여인들에게 나타난 것으로 묘사했지만, 나중에 엠마오로 가는 제자들이 한 말을 기록할 때에는 여인들이 “천사들의 나타남을 보았다”고 한 말을 들은 것으로, 그들을 천사로 묘사하였다 (눅 24:23).

마가는 여인들이 무덤에 들어가서 “흰 옷을 입은 한 청년이 우편에 앉는 것”을  보았다고 기록하였다 (막 16: 5).

마태는 사람이 아니라, “주의 천사”가 하늘로부터 내려왔다고 기록하였다 (마 28: 2).

요한은 “흰 옷 입은 두 천사”로 기록하였다.      

     그의 복음서를 기록할 때에, 누가는 가브리엘 천사가 제사장 사가랴와 요셉에게 정혼한 마리아에게 나타나 이제 그들에게 태어날 두 아이의 출생의 중요성을 설명해 주는 것으로 시작하였다 (눅 1: 11 -20; 26 -38).

그런데, 이제 누가복음서는 천사들이 다시 예수님의 제자들에게 나타나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의 중요성을 설명하는 이야기로 끝나고 있다.

천사들이 처음 나타났을 때, 여인들은 놀라고 강한 두려움에 쌓였다.

여인들이 나타낸 즉각적인 반응은 복종과 경외감으로, 그들은 “두려워 얼굴을” 아래로 숙였다.       

 

빈 무덤은 모든 것을 바꾸어 놓았다.  

 

    천사들이 여인들에게 “어찌하여 살아 있는 자를 죽은 자 가운데서 찾느냐”고 한 처음 말은 가벼운 책망으로 받아 들여질 수 있다.

천사들의 수사적 질문은 여인들의 기본적인 오류를 지적한 것으로, 살아있는 사람을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찾는 것이 되고 있다.

물론, 이 여인들이 무덤에 온 것은 산 사람을 찾기 위한 것이 아니라, 죽은 분에게 사랑과 존경심을 표하기 위한 것이 되고 있다.

빈 무덤은 모든 것을 바꾸어 놓았다.

 

오늘날 사람들이 죽은 자 가운데서 삶을 찾는 방법은 무엇입니까?

 

누가복음 24장 6 -9절:


●    여기 계시지 않고 살아나셨느니라 갈릴리에 계실 때에 너희에게 어떻게 말씀하셨는지를 기억하라
●    이르시기를 인자가 죄인의 손에 넘겨져 십자가에 못 박히고 제 삼일에 다시 살아나야 하리라 하셨느니라 한대
●    그들이 예수의 말씀을 기억하고
●    무덤에서 돌아가 이 모든 것을 열한 사도와 다른 모든 이에게 알리니


천사들은 “여기 계시지 않고 살아나셨느니라”는 말로, 수사적인 질문으로 암시했던 것을 명시적(明示的)으로 밝혀주었다.  

예수님의 몸에 향품과 향유를 바르려고 무덤을 찾아온 여인들의 충성심과 헌신은 잘못된 이해에 근거된 것이었다.

그 같은 잘못된 이해를 바로 잡는 방법은 ‘기억하는 일’이었다.

빈 무덤 자체는 여인들에게 예수님의 부활을 확신시켜주지 못했지만, “여기 계시지 않고 살아나셨느니라”는 천사들이 전하는 말을 믿고 그들이 “갈릴리에” 있을 때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하신 말씀을 “기억하라”는 도전을 받게 한 주체가 되었다.

     복음서 기자들 가운데서 누가 만이 예수님의 부활사건을 기록할 때 예수님께서 자신의 죽음과 부활에 대해 예언하신 일을 언급한 복음서 기자가 되고 있다.

세 가지 다른 상황에서, 예수님께서 예언하신 자세한 내용은 그의 죽음과 부활을 해석하는 용도로 사용되었다 (무덤에서, 엠마오로 가는 길에서, 그리고 사도들과 제자들이 모여 있던 방에서).

천사들이 여인들에게 전한 말은 약간의 차이점을 빼고는 예수님이 자신이 고난을 당하게 될 것을 처음 갈릴리에서 예언하신 말씀과 같은 것이 되고 있다 (눅 9: 22).

예수님은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버린 바 되어”라고 하셨는데 반해, 천사들은 “인자가 죄인의 손에 넘겨져”라고 하였다.

그 외에, 예수님은 “죽임을 당하고 제삼일에 살아나야 하리라”고 하셨는데, 천사들은 “십자가에 못박히고 제삼일에 다시 살아나리라”고 고쳐서 말하였다.

그 같은 일은 예수님이 실제로 처형당하신 방법을 반영하였거나, 예수님이 누가복음 18장 31 -33절에서 하신 말씀의 영향을 받은 결과가 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엠마오로 가는 길을 두 사람과 함께 걸어가는 동안에, 예수님은 모세와 선지자들의 가르침을 사용하여 그리스도가 그의 영광에 들어갈 때에는 고난을 받아야 한다는 사실을 그들에게 설명해 주셨다 (24: 25 -27).

제자들이 모여있는 곳에 가셨을 때, 예수님은 다시 한 번 더 자신이 당한 고난과 죽음을 “모세의 율법과 선지자의 글”에다 연결시켜 성경말씀을 가지고 자기의 부활을 해석하여 그들의 마음을 열어 깨닫게 해 주셨다 (24: 44 -46).

예수님은 이미 전에 자신의 죽음과 부활에 대해 제자들을 준비시켜 주셨는데, 그때 그들은 도리어 “마음에 근심이” 가득 차 있었던 것이다 (요 16: 6).   

천사들이, 빈 무덤에 서서, 여자들에게 “갈릴리에 계실 때에 너희에게 어떻게 말씀하셨는지를 기억하라”고 말했을 때 그것은 효과를 나타냈다.

그들은 “예수의 말씀을 기억하고 무덤에서 돌아가 이 모든 것을 열한 사도와 다른 모든 이에게 알{렸다.]

빈 무덤 만으로는 여인들에게 예수님께서 살아나셨다는 확신을 주지 못했지만, 그가 죽은 자들 가운데서 부활하리라는 약속을 기억한 것은 확신을 주었다.

     이 여자들은 갈릴리에서 예수님을 따랐고, 십자가의 처형을 받는 장소에도 있었으며, 예수님이 무덤에 묻히시는 것을 보았고, 마침내 빈 무덤에까지 나타났던 것이다.

천사들이 증언하는 말을 들은 여인들은 자신들이 보고 들은 것을 알리기 위해 제자들이 모여있는 곳으로 돌아왔다.

열한 사도”에 대한 언급은 예수님에 대한 가롯 유다의 배신과 그를 떠난 것을 상기시켜 준다.

열두 사도는 이제 “열한 사도”가 된 것이다.      

다른 모든 이”라는 말은 열한 사도 외에 그 자리에 함께 있던 다른 사람들을 가리킨다.

그 자리에는 다른 제자들뿐만 아니라, 예수님의 어머니와 형제들도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행 1: 14 -15).

 

혼란에 빠진 여인들을 위해 천사가 제시해 준 해결책은 예수님의 말씀을 “기억하라”는 것이었습니다.

최근에 예수님의 말씀을 기억하지 못해서 혼란에 빠졌거나 잘못된 행동을 했던 때를 생각할 수 있습니까

 

확인된 예수님의 부활 (누가복음 24장 10  -12절)  

 

 누가는 예수님의 무덤을 찾아가 무덤이 비어있는 것을 보고 천사들의 말을 들었던 여인들 중 세 사람의 이름을 거명하였다.

이들 여인들이 돌아와 자기들이 보고 들은 것을 전했을 때, 사도들은 처음에 “그들의 말이 허탄한 듯이 들려 믿지 아니하[였다].”

그렇지만, 베드로는 무덤으로 달려가, 시체를 쌓았던 세마포만 발견하고, “그 된 일을 놀랍게 여기며” 집으로 돌아왔다.

 

누가복음 24장 10 -11절:


●    이 여자들은 막달라 마리아와 요안나와 야고보의 모친 마리아라 또 그들과 함께 한 다른 여자들도 이것을 사도들에게 알리니라
●    사도들은 그들의 말이 허탄한 듯이 들려 믿지 아니하나
●    베드로는 일어나 무덤에 달려가서 구부려 들여다 보니 세마포만 보이는지라 그 된 일을 놀랍게 여기며 집으로 돌아 가니라   


다른 세 복음서 저자들은 예수님의 무덤을 찾아간 여자들의 이름을 빈 무덤을 발견하기 전에 언급했는데 반해, 누가는 여인들이 빈 무덤을 발견하고 그 것을 사도들에게 알릴 때까지 그들의 이름을 밝히는 것을 미루었다.

당시에 여자들은 일반적으로 신뢰할만한 증인으로 여겨지지 않았는데, 특별히 법정에서 그랬다.

구약은 여자들을 증인으로 삼는 것을 구체적으로 금지하지는 않았지만, 일반적으로 여자들의 증언은 의심의 여지가 있는 것으로 받아들였다.

그로부터 약 200년 후에, 이교도 철학자인 셀수스(Celsus)는, 초대 교회지도자인 오리겐(Origen)과 부활에 관해 토론하면서, 여자들이 최초의 증인이라는 사실을 조롱하였다.

그는 여인들의 증언은 신뢰할 수 없는 것으로 보았기 때문에, 그러므로, 그것이 부활사건의 증거의 주요 약점이 되는 것으로 간주하였다.

그러나, 여자들이 빈 무덤의 첫 증인들이 되고 있는 것은 실제로 복음의 증거에 진실성을 더하는 일이다.

그것이 꾸며낸 이야기였다면, 첫 증인들로 남자들을 등장시키고 여자들을 배제했을 것이다.

 

여인들이 빈 무덤의 첫 증인들이 되고 있는 것은 실제로 복음의 증거에 진실성을 더하는 일이다.

 

     누가는 예수님의 무덤을 찾아간 여인들을 “막달라 마리아와 요안나와 야고보의 모친 마리아”와 또 “그들과 함께 한 다른 여자들”로 밝혔다.     

막달라 마리아”는 사복음서 기자들 모두에 의해 첫 번째로 언급되고 있다.

막달라 마리아는 예수님이 갈릴리에서 사역하실 때 그를 만났다.

그리스도에 대한 그녀의 헌신은 예수님이 그녀에게서 일곱 악귀를 쫓아내 주신 것에 대한 응답으로 결코 작은 것이 아니었다 (막 16: 9; 눅 8: 1 -2 참조).

요안나”는 누가에 의해서만 그 이름이 언급되고 있다.

이들 두 여인은 다른 여인들과 함께 갈릴리에서부터 예수님을 따르며 예수님과 그의 제자들을 재정적으로 지원해 준 신실한 신자들이었다.

요안나”의 남편은 “구사”라는 사람으로, 그는 갈릴리 지역을 통치하던 분봉왕 헤롯의 청지기였다 (눅 8: 2 -3).

마가와 누가는 “야고보의 모친 마리아”를 언급하였는데 (막 16:1; 눅 24: 10), 그녀는 세베대의 아들인 야고보와 요한의 어머니가 아니라, 마태가 언급한 “다른 마리아”와 동일한 인물로 보인다 (마 28: 1). 

그렇지만, 누가는 “다른 여자들”이란 말로 이름을 밝힌 여인들 외에 다른 여인들이 있었던 것을 나타냈다.

마가는 “살로메”라는 다른 한 여인의 이름을 밝혔다 (막 16: 1).

요한은 무덤에 찾아갔던 사람으로 “막달라 마리아”의 이름만 밝혔지만 (요 20: 1), 빈 무덤을 발견하고 사도들에게 와서 보고할 때에 “우리가 알지 못하겠다”고 한 말에서는 그 녀가 혼자만 있지 않았다는 뜻이 암시되고 있다.

     사도들은 여인들이 돌아와서 전하는 말이 “허탄한 듯이 들려 믿지 아니하[였다].”       

 “허탄하다”로 번역된 헬라어 단어는 신약성경에서는 이곳에서만 나오고 있다.

그 용어는 고열로 인해 생기는 정신착란 증을 묘사하는 하는 의학적 용어로 사용될 수 있었다.

사도들은, 그들이 믿고 따르던 주님이라 하더라도, 어떤 사람이 죽음에서 살아났다는 말을 쉽게 받아들이고 믿는 순진한 사람들이 아니었다.

그들은 예수님이 실제로 살아 계시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확신할 수 있기를 원하였다.   

 

누가복음 24장 12절:


●    베드로는 일어나 무덤에 달려가서 구부려 들여다 보니 세마포만 보이는지라 그 된 일을 놀랍게 여기며 집으로 돌아 가니라

 

베드로가 여인들의 보고를 믿지 않았지만, “일어나 무덤[으로] 달려[간 것을]”을 보면, 호기심을 견딜 수 없었던 것이 분명하다.

요한복음에 따르면, 베드로와 요한 (“예수님께서 사랑하시던 그 다른 제자”)이 무덤으로 달려갔는데, 요한이 베드로보다 더 빨리 달려가서 먼저 무덤에 도착하였다 (요 20: 3 -10).

엠마오로 가는 길에서, 두 제자 중의 하나인 “글로바”가 예수님과 말하면서 이야기하기를, “우리와 함께 한 자 중에 두어 사람이” 여인들의 증언이 진짜인지를 확인하기 위하여 무덤으로 갔었다고 하였다 (눅 24: 24).

무덤에 있었던 여인들의 이름들과 천사들의 수만 고려하더라도, 베드로라는 이름으로 한 사람만 언급했다고 해서 두 사람이 그 자리에 없었다는 뜻은 아니다.

누가는 자신의 이야기를 베드로에게만 집중시키고 요한은 자신의 설명에서 제외시켰다.

     앞에서 언급한 대로, 일반적으로 무덤의 입구들은 작았기 때문에 대부분의 어른들은 몸을 구부려야 들어갈 수 있었다.

베드로가 몸을 구부려 무덤 안을 들여다 보니 예수님의 몸을 쌓았던 “세마포”만 예수님의 시체가 있던 곳에 놓여있었다.

여인들의 보고는 정확하였다.

무덤은 비어 있었다.

베드로는 “그 된 일을 놀랍게 여기며 집으로 돌아 [갔다].”   

이야기는 갑자기 엠마오로 걸어가는 두 제자의 이야기로 바뀌고 있다.

그렇지만, 그 두 사람이 예수님을 만난 후 예루살렘으로 돌아왔을 때, “주께서 과연 살아나시고 시몬에게 보이셨다”는 말을 들었다 (24: 34). 

 

사도들은 여자들의 증언에 의해 확신을 얻지 못했습니다.

그들의 불신은 여성에 대한 태도의 결과라고 생각합니까?

아니면, 여인들이 전한 소식이 너무나 엄청나고 믿기 힘든 결과라고 생각합니까?

하나님의 사자에 대한 당신의 태도 때문에 하나님께서 당신에게 주시려는 말씀을 듣지 못하게 된 때를 생각할 수 있습니까?

 

말씀을 나의 상황에 적용하기:


●    예수의 무덤은 비어있다.             
●    예수님은 죽음에서 부활하셨다.           
●    부활의 증인들은 예수님의 부활을 확인하였다.     

 

빈 무덤은 당신의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까?
당신은 예수님의 부활을 매일 어떻게 살아가고 있습니까?

 

오늘날 사람들이 예수님의 말씀을 잊고 있는 죄를 짓고 있는 방법들이 어떤 것들인지를 이야기해 보십시오.
당신과 당신의 성경공부 반원들이 어떻게 하면 서로 예수님의 말씀을 기억하고 순종 할 수 있게 할 수 있습니까?

 

      

이 장년 성경연구 지도자 교재는 LifeWay에서 출간하여 보급하고 있는 Explore the Bible 교과과정의 학생용 한국어 교재를 가르치고 배우는데 도움이 되도록, 강 호길 목사가 LifeWay의 허락을 받아 영어 지도자 교재를 번역 및 편집한 것입니다.
그같이 허락한 LifeWay에 감사를 드립니다.
장년 성경연구 한국어 학생 교재는 LifeWay에서 주문하여, 장년 주일학교 시간에 혹은 목장이나 구역 모임에서 성경공부 교재로 사용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