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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함을 얻다 - 제 6과 - 2020년 4월 5일 주일 장년성경연구 - 로마서 6장 1- 14절

글쓴이 : 강호길 날짜 : 2020-04-01 (수) 04:03 조회 : 65

장년성경연구 지도자 교안

2020년 4월 5일 주일 용
번역 및 편집: 강 호길   
 

제 6과

 

 

자유함을 얻다         

 

 

학습구절: 로마서 6장 1- 14절

 

성경진리:

복음을 받아들이는 모든 사람은 죄로부터 자유함을 얻는다.                

 

주요교리: 침례  
침례는 순종의 행위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셔서 무덤에 묻히셨다가 부활하신 구세주를 믿는 신자의 믿음과, 믿는 자가 죄에 대하여 죽어서, 옛 사람은 무덤에 묻히고,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새 생명으로 부활하여 새 생활을 하게 된 것을 상징한다 (골 3: 12).

 

 

암송구절:  로마서 6장 23절  

 

죄의 삯은 사망이요

하나님의 은사는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 있는 영생이니라    

 

“For the wages of sin is death,
 but the gift of God is eternal life in Jesus Christ our Lord.”       

 

 

시작하는 글:

 

우리는 일반적으로 자유라는 개념을 어떤 일이든지 자유롭게 할 수 있다는 관점에서 생각한다.

우리는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그리고 원할 때는 언제든지 하고 싶어한다.

그리스도인들은 자기 의견을 표현할 수 있는 자유, 자기가 원하는 일을 선택할 수 있는 자유, 하나님을 믿고 예배할 수 있는 자유, 그리고 반대할 수 있는 자유를 고맙게 생각한다.

그러나, 자유에는 ‘행하지 않는 자유’라는 다른 측면이 있다.

바울은 로마교회의 성도들이 바로 이 측면의 자유를 이해하기를 원하였다.

신자들이 그리스도 안에서 누리는 자유는 죄의식에 사로 잡혀 살지 않는 자유이자, 죄의 노예로 살지 않는 자유이다.  

 

당신이 그리스도인이기 때문에   있는 것들로 무엇이 있습니까?
당신이 그리스도인이기 때문에 믿음의 힘으로 피할  있는 것들은 무엇입니까?

 

 

본문 배경설명

 

로마서 6장 1절부터 7장 27절까지

 

     로마서 6장과 7장에서, 바울은 일련의 수사법적(修辭法的)인 질문들과 비유들을 사용하여 신자들이 그리스도 안에서 누리는 새로운 삶을 묘사하였다.

바울은, 그가 앞에 장들에서 내린 결론, 즉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다’는 것과(3:23), 그리고 ‘모든 사람들은, 유대인이든 이방인이든 간에,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에 의해서만 구원을 받을 수 있다’ (4: 16)는 사실에 기초하여, 그리스도인의 새로운 삶을 다음과 같이 묘사하였다.

바울은 그리스도인의 삶을 1) 죄와 옛 생활에 대해 죽고 새 생명으로 부활한 것으로 (6: 15 -23), 2) 죄의 속박에서 해방되어 기꺼이 자원하는 마음으로 하나님을 섬기는 것으로 (6: 15 -23), 그리고 3) 율법의 정죄에서 해방되어 다른 종류의 법, 즉 믿는 자가 즐겨 지키려고 하는 마음에 기록된 법을 (7: 1 -25) 경험하게 되는 것으로 묘사하였다.
     로마서 6장 3절과 4절에서, 바울은 침례 의식을 비유로 삼아 그리스도인의 삶이 죄에 대해 죽고 그리스도 안에서 새 생명으로 부활하는 개념이 되고 있다는 것을 설명하였다.          

물에 잠기는 침례를 받을 때 일어나는 현상은 신자가 “그리스도 예수와 합하여 침례를” 받을 때 일어나는 더 큰 뜻을 상징하는 일이 되고 있다.

말하자면, 수침자가 물 속으로 잠기는 것은 믿는 자의 옛 사람이 죽어서 매장되는 것을 묘사하는 것으로 그리스도의 속죄의 죽음과 무덤에 매장되는 것을 상징하는 일이 되고 있다.  

마찬가지로, 물 속에 잠겼던 수침자가 물 밖으로 들려 올림을 받는 것은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들 가운데서 부활하신 것과 믿는 자가 믿음으로 그 부활에 동참하는 것을 보여주는 상징이 된다.

 이 비유에 대한 바울의 요점은 신자들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삶의 옛 방식으로부터, 즉 죄와 반항 및 범법으로부터 벗어나 하나님을 공경하는 삶을 살게 되는 것이다.

사도 바울은 그 같은 삶을 “죄에 대하여는 죽은 자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께 대하여는 살아 있는 자”로 표현하였다 (6: 11).

     바울이 그리스도인의 삶을 묘사하는데 사용한 두 번째의 비유는 노예 제도였다 (6: 16).
서기 1세기 당시에 로마에는 노예들이 많이 있었는데, 일부 역사학자들은 당시 노예를 전체 인구의 40 % 정도로 추산하고 있다.

사도 바울은 이 서신의 독자들 중 일부는 당시 노예로 살고 있거나 과거에 노예로 살았던 사람들이었던 것을 알고 있었던 것이 분명하다.

이들 신자들은 사납고 포학적인 죄라는 주인으로부터 해방되어 “하나님[의] 종이 되어 거룩함에 이르[게]” 된 그리스도인의 삶을 극적으로 감사했을 것이 분명하다 (6:22).

이전의 주인이 지불한 “삯은 사망이요” 새 주인인 하나님을 섬기는 보상은 말할 수 없는 “은사”로,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 있는 영생”이다 (6 23).

     셋째로, 바울은 언약관계가 되고 있는 결혼 생활을 비유로 들어 그리스도인의 삶을 모세의 율법과는 다른 “다른 법”(7:23) 아래에 살고 있는 것으로 설명하였다.

모세의 율법은 하나님의 선한 목적이 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율법은 죄악의 타락과 만연을 나타내주고 있다.

율법은 결코 구원의 수단과 방법으로 의도된 것이 아니다.

대신에, 죄는 율법을 이용하여 사람들 속에 하나님의 법을 어기고 싶은 유혹을 일으켜 준다.

바울은 그 같은 현상을 “죄가 기회를 타서 계명으로 말미암아 내 속에서 온갖 탐심을 이루었나니 이는 율법이 없으면 죄가 죽은 것이라”고 표현하였다 (7: 8).   

도리어 율법은 죄인을 정죄하며 심판하는 역할을 하였다.

그래서 바울은 “내 지체 속에 한 다른 법이 있어 내 마음의 법과 싸워 내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으로 나를 사로 잡아 오는 것을 보는 도다”고 하면서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건져 내랴”고 부르짖었다 (7: 23 -24).

그러면서 바울은 그리스도를 통해 믿는 자들을 모세 율법의 정죄로부터 구해 주시는 것을 인해  하나님께 감사하였다.

 

 

학습구절 연구

 

죄에 대하여 죽은 옛 사람 (로마서 6장  1 -7절)  

 

바울 당시 거짓 교사들이 “하나님의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받는 구원의 복음을 (엡 2: 8) 조롱하는 한 가지 방법은 “[하나님의] 은혜를 더 하게 하려고” 신자들이 의도적으로 죄를 계속 지어야 한다고 제안하는 것이었다.

바울은 그 같은 사고 방식에 대해 과장된 형식의 질문들을 제기하고 대답함으로써 대응하였다.  

 

로마서 6장  1 -2절:


●    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을 하리요 은혜를 더하게 하려고 죄에 거하겠느냐
●    그럴 수 없느니라 죄에 대하여 죽은 우리가 어찌 그 가운데 살리요


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을 하리요”라는 말은 바울이 5장 20절에서 말한 ‘죄가 더한 곳에 은혜가 더욱 넘쳤나니”라는 말을 가리키고 있다.

사도 바울은 인간의 죄가 제 아무리 크고 악하더라도, 하나님의 은혜는 항상 그것을 용서해 주며 회복시켜 줄 만큼 넘친다는 뜻과 의도로 그 같은 말을 했지만, 그 말은 악용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래서 그는 하나님의 은혜가 신자들이 계속 죄를 지을 수 있는 면허증과 같다는 주장에 대항하도록 고안된 수사학적 질문을 제시하였다.

     바울은 “우리”라는 일인칭 대명사를 사용하여 자신을 독자들과 동일시함으로, 그들을 자신이 설명하고 있는 그리스도인의 삶이라는 물줄기에 동참시켰다.

그는 추상적인 철학적 논증을 제시하고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는 모든 신자들을 위한 실제의 상황을 설명하고 있었다.

죄 가운데서 계속 살기 위해 변명을 하려는 경향이 있는 사람들은 잘못을 정당화 하기 위해 “은혜를 더하게 하려고 죄 [가운데서 그대로 살 수 있다]”는 생각을 고수할 수 있었다.

바울은 그 같은 그릇된 생각을 고쳐주기를 원하였다.

     “은혜를 더하게 하려고 죄에 거하겠느냐”라는 사도 바울의 과장된 형식의 질문은 절대적인 부정(不定)의 답을 예상하는 방식으로 표현되었다.

그는 주저나 추측의 여지를 남기지 않았다.

그는 “그럴 수 없느니라”는 가능한 가장 강력한 용어로 바른 답을 제시하였다.

계속 죄를 짓는 것이 신자들에게는 좋은 일이 되고 있다고 상상하는 것의 어리석음을 강조하기 위해, 바울은 “죽은 우리가 어찌 그 가운데서 살리요”라는 말로 좀 더 합리적인 질문을 제시하였다.

     바울은 신학적인 비유로 신자들에게 죽음과 부활의 개념(槪念)을 제시하여 그들이 더 이상 죄의 권세 아래 있지 않다는 사실을 보여주었다.

구원을 받기 이전에, 그들은 죄 때문에 사형 선고를 받고 살았다.

그러나, 신자들은 그리스도 예수를 믿음으로 마음과 영혼으로 그들 대신 속죄의 희생으로 자신을 바친 죄 없는 구세주와 연합되었다.

실제로, 믿는 자들은 죄에 대하여 죽은 사람들이다.

이제 그들은 죄의 권세에서 벗어나 자유를 얻어 하나님을 위해 살게 되었다.

그러므로, 신자가 죄의 삶으로 되돌아 간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

 

로마서 6장 3 -4절:


●    무릇 그리스도 예수와 합하여 침례를 받은 우리는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침례를 받은 줄을 알지 못하느냐
●    그러므로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침례를 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사 되었나니 이는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우리로 또한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라


자신의 주장이 진실됨을 설명하기 위해, 바울은 신자들에게 침례의 본질과 의미를 상기시켰다.
물 침례는 더 큰 영적 실체, 즉 신자가 예수님을 믿자마자 “그리스도 예수와 합하여 침례를 받[는]” 것을 보여주는 한 폭의 그림이 되고 있다.

헬라어로 “뱊티조” (baptizo)라는 말의 문자적인 뜻은 ‘물에 잠기다’ 혹은 ‘담구다’가 되고 있다.

이 개념은 바울이 그의 글에서 즐겨 사용하는 주제가 되고 있다.

구원을 받는다는 말의 문자적인 뜻은 “그리스도 안에” 완전히 잠긴다 가 되고 있다 (롬 8: 1; 고후 5: 17).

바울은 갈라디아 교회에 보내는 편지에서 바로 이 개념을 사용하여 “그리스도와 합하여 침례를 받[는 것]”으로 표현하였다 (갈 3: 27).

우리는 물 침례를 통해서 구원을 받는 것은 아니다.

침례는 신자가 구원을 받을 때 일어나는 일을 상징하는 의식이다.

신자들은,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무덤에 묻히셨다가 부활하신 사건을 자신의 것으로 동일시 한다.

물에 완전히 잠기는 것은 그리스도의 죽음뿐 아니라, 그의 대속의 죽음을 통해서 침례를 받는 신자가 죄에 대해 죽는 것을 묘사하고 있다.

말하자면, 믿음을 통해 신자는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으심과 합하여 침례를 받[는다.}

그래서 우리는 사도 바울과 함께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고 고백한다 (갈 2: 20).  

     다음으로 바울은 “그와 함께 장사되었나니”라는 말로, 믿는 자들이 그리스도 예수와 합하여 침례를 받는 것의 더 깊은 의미와 목적을 밝혀주고 있다.

바울에게 있어서, 침례를 받을 때 물 속에 잠기는 것은 그리스도와 함께 죽는 것 이상의 의미를 나타냈다.

침례는 죄가 더 이상 통치하지 못하는 새 생명으로 부활하는 것을 상징하였다.

물 속에 잠겼다가 일어나는 것은 믿는 자가 영적으로 그리스도 안에 있는 새 생명으로 부활하는 것과 그리고 궁극적으로 그의 몸이 부활하게 되는 것을 상징하고 있다.

침례는 또한 예수님께서 죽은 자들 가운데서 부활하신 것을 묘사해 준다.

     바울은 침례가 나타내고 있는 상징과 목적으로, “이는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우리로 또한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니라”고 하였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의 삶은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는 것]”이 되고 있다.           

 

로마서 6장  5 -7절:


●    만일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같은 모양으로 연합한 자가 되었으면 또한 그의 부활과 같은 모양으로 연합한 자도 되리라
●    우리가 알거니와 우리의 옛 사람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은 죄의 몸이 죽어 다시는 우리가 죄에게 종 노릇 하지 아니하려 함이니
●    이는 죽은 자가 죄에서 벗어나 의롭다 하심을 얻었음이라  


신자들이 변화된 삶을 살 수 있다고 확신하는 바울의 이유는 그리스도와의 연합이 되고 있다.

그는 먼저 신자들이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합하여 침례를 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사되었[다]”고 주장하였다 (6: 4).

그것이 사실임으로, 바울은 신자들이 또한 그리스도의 부활과 연합하게 될 것을 확신하였다.

5절에서, 바울은 그 같은 사실을 믿는 자들이 “그의 죽으심과 같은 모양으로 연합한 자가” 되고 “그의 부활과 같은 모양으로 연합한 자도 되리라”는 말로 표현하였다.

    하나님께서는 믿는 자들이 그리스도의 죽으심으로 그와 연합을 이루게 하신 목적이 있으셨다.

그것은, 이를 통해, 즉 “죄의 몸이 죽어” 믿는 자들이 “죄에게 종 노릇 하지 아니하려 함”이 되고 있다.

여기서 우리는 두 가지 사실에 주의를 기울어야 될 필요가 있다.    

     첫째, 바울은 죄 자체가 파멸 당했다고 말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신자들에 대한 지배력이 깨어졌다고 말하였다.

그래서 죄는 믿는 자들에 대한 지배력을 더 이상 행사할 수 없게 되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죽음으로 그리스도와 연합한 신자들은 죄에게 “노”라고 말할 수 있는 자유와 힘을 갖게 되었다.

     둘째, 바울은 우리 믿는 자들의 몸이 더 이상 죄의 영향을 받지 않는다는 말하지 않았다.

믿는 자들에 대한 죄의 지배권은 폐지되었지만, 우리의 몸은 계속해서 죄와 질병 등의 영향을 받고 있다.

우리는 종말 때에 영광스럽고 완전한 몸을 받을 것이지만, 이 세상에서 우리 몸은 여전히 죄의 영향을 받고 있다.

그래서 바울은 “죽은 자가 죄에서 벗어나 의롭다 하심을 얻었[다]”고 하였다.

 

그리스도 안에서 사는 신자들 (로마서 6장 8 -11절)

 

신자들은 예수님의 부활을 통해 영생을 얻는다.

죄의 결과인 죽음은 더 이상 신자들을 지배하지 못한다.

 

로마서 6장 8 -9절:


●    만일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으면 또한 그와 함께 살 줄을 믿노니
●    이는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셨으매 다시 죽지 아니하시고 사망이 다시 그를 주장하지 못할 줄을 앎이로다     


바울은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의 사건과 그 두 사건이 신자들에게 미치는 영적 영향을 즉시 연결시켰다.

바울은 앞에서 침례 의식의 예를 들어 믿는 자들이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다]”는 사실과 그 같은 일이 무엇을 뜻하는지를 설명하였다 (6: 3 -4 참조).

그 같은 사실에 근거하여, 바울은 말하기를,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으면 또한 [부활하신] 그와 함께 살 줄을 믿[는다]”고 하였다.

우리의 죄가 사함을 받고 우리에 대한 죄의 권세가 힘을 잃게 된 새로운 삶은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셨다는 사실에서 비롯되고 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고린도 교회에 보내는 편지에서 말하기를, “그리스도께서 다시 살아나신 일이 없으면 너희의 믿음도 헛되고 너희가 여전히 죄 가운데 있을 것이요”라고 하였다 (고전 15: 17).

그와 함께”라는 말은 신자들이 장차 하늘에서 그리스도와 함께 거하게 되는 것뿐만 아니라 그리스도인들이 현재 이곳에서 누리고 있는 승리에 찬 거룩한 삶을 가리키고 있다.

그리스도께서 신자들에게 주시는 삶은 풍성하고도 영원한 것이 되고 있다 (요 10: 10).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의 사건은 강력한 두 가지 사실을 담고 있다.
첫째는, 예수님이 그의 대속의 죽음으로 우리의 죄를 단번에 속죄하는 희생제물이 되셨다는 사실이다.

그는 자기 몸을 희생제물로 “단번에 드리심으로,” 짐승을 희생제물로 드리는 구약의 희생 제사 제도가 요구하는 것처럼 반복해서 드리지 않아도 되었다 (히 9: 8 -14; 10: 10 -14 참조).
둘째로,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셔서] 다시 죽지 아니하시고 사망이 다시 그를 주장하지” 못하게 되었다.  

실제로는, 그리스도께서 죄를 지으신 법이 없으시기 때문에 죄의 삯인 사망이 그를 주장할 수 없었다.

그렇지만, 예수님은 우리의 죄를 위한 속죄 제물로 십자가 위에서 육체의 죽음을 자초하셨다.

그같이 하심으로, 그리스도께서는 단번에 우리 죄를 대속해 주셨다.

더욱이, 예수님은 부활하심으로 사망의 권세를 이기셨다.

 

로마서 6장 10 -11절:


●    그가 죽으심은 죄에 대하여 단번에 죽으심이요 그가 살아 계심은 하나님께 대하여 살아 계심이니
●    이와 같이 너희도 너희 자신을 죄에 대하여는 죽은 자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께 대하여는 살아 있는 자로 여길 지어다      


그리스도께서 “죄에 대하여 단번에 죽으[시고]” “하나님께 대하여 살아 계[시기]” 때문에,
그의 “죽으심과 같은 모양”과 그의 “부활과 같은 모양”으로 “연합한 자”가 된 신자들은(6: 5) “하나님께 대하여” 살아 가는 것이 당연하다.  

이 단원 전체를 통해, 바울은 그리스도와 신자들의 동일성(同一性)을 강조하였다.

그러나 그 같은 신조(信條)는 단순한 교리적 진술로만 남아 있을 수 없다.

그리스도와의 동일성은, 바울이 6장 4절에서 “우리로 또한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라”는 말로 부활의 주님과 함께 다시 살아난 삶의 목적을 밝힌 것처럼, 새로운 삶의 방식이 되고 있다.

사도 바울은 결론적으로 신자들에게 “너희 자신을 죄에 대하여는 죽은 자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께 대하여는 살아 있는 자로 여길지어다”라고 하였다.

“여기다”라는 말로 번역된 헬라어 단어는 계산의 결과로 어떤 것을 평가하는 것을 뜻하는 수학적 용어였다.

이 단어는 또한 어떤 문제에 대해 신중하게 생각하거나 특정 입장이나 견해를 가지는 것을 뜻할 수 있다.

     바울은 로마 교회 신자들에게 그들의 위치나 상태를 재고 해달라고 요청하고 있었다.
그들은 죄에 대하여 죽고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께 대하여는 살아 있는 자[들]”이 되기 때문에, 은혜를 더하게 하려고 죄 안에 거하려고 하는 것은 말도 되지 않는 일이었다.

 

우리 자신을 죄에 대하여는 죽고 그리스도 안에서 살아있는 것으로 생각하는 것은 우리의 일상 생활에 어떤 영향을 미칩니까?

구체적인 예를 생각할 수 있습니까?

 

(義)의 무기와 도구인 신자들 (로마서 6장 12 -14절)

 

바울은 신자들에게 그리스도를 통해 받은 의에 따라 살라고 촉구하였다.
부활을 통해 그리스도 안에서 다시 살아난 신자들은 죄가 아닌 하나님께 자신을 드려야 한다.

 

로마서 6장 12 -13절:


●    그러므로 너희는 죄가 너희 죽을 몸을 지배하지 못하게 하여 몸의 사욕에 순종하지 말고
●    또한 너희 지체를 불의의 무기로 죄에게 내주지 말고 오직 너희 자신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난 자 같이 하나님께 드리며 너희 지체를 의의 무기로 하나님께 드리라


바울은 두 가지 하지 말라는 명령과 한 가지 하라는 명령으로 죄와 죽음에 대한 자신의 실제적인 주장을 결론지었다.

그들 도전의 말들은 믿는 자들에게 그들의 실제의 모습대로 행하라는 뜻으로, 죄에 대해서는 죽고 그리스도 안에서는 “다시 살아난 자”같이 살라는 말이 되고 있다.  

첫째로, 그리스도인들인 우리는 죄가 우리 위에 권세를 행사하지 않게 해야 한다.

“죽을 몸”이라는 말은 육체를 가리키고 있다.

“몸” 자체는 죄가 없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의 공통적인 유혹을 받는다.

우리는 죄가 우리 삶에서 권세를 행사하지 않게, 즉 죄의 욕망에 복종하는 일이 없게 해야 한다.

몸의 사욕”으로 번역된 욕망에는 인간의 기본적인 필요나 욕구의 범위를 벗어나는 지나친 욕망과 정욕 등이 포함될 수 있지만, 꼭 이 같은 것에만 국한되는 것은 아니다.

몇 가지 예로, 우리는 권력욕, 탐욕, 명예 욕 및 교만 등을 들 수 있다.

     13절에서,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 안에서 새 생명으로 태어난 신자들에게 “너희 지체를 불의의 무기로 죄에게 내주지 말고 오직 너희 자신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난 자 같이 하나님께 드리며 너희 지체를 의의 무기로 하나님께 드리라”고 하였다.

여기서 “죄에게 내주지 말고”라는 말과 “하나님께 드리라”고 한 말의 동사는 같은 용어가 되고 있는데, 헬라어로 그 용어는 어떤 것을 다른 사람의 처분에 맡기는 것을 뜻하는 말이 되고 있다.

그 단어는 또한 희생제물을 뜻하는 전문 용어로도 사용될 수 있었다.

사도 바울은 이 용어를 사용하여 로마 교회 신자들에게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고 하였다 (롬 12: 1).

     “지체”라는 말로 번역된 헬라어 단어는 일반적으로 몸의 지체를 가리키지만, 그 말은 또한 큰 그룹의 개별 구성원들을 나타낼 수도 있다.

무기”로 번역된 단어는 모든 유형의 도구 또는 기구를 가리킬 수 있지만, 상징적으로 전투에서 사용하는 무기를 지칭할 수도 있다 (요 18: 3).

그 용어는 또한 영적 싸움에서 사용하는 무기를 비유적으로 지칭하고 있다 (고후 10: 4).                 

 

바울은 신자들에게 죄와의 싸움에서 그들 자신을 의의 무기로 적극 사용하도록 촉구하였다.

 

     신자들은 자신의 일부가 죄와 악에게 사용되게 허용하지 말아야 하며, 자신의 모든 부분을 하나님의 의의 무기로 드려야 한다.

다른 어떤 것보다 먼저, 신자들은 승리를 보장해 주시는 하나님께 자신들을 의의 무기와 도구로 드려야 한다.

 

우리는 의를 위해 싸우는 싸움에서 어떤 실질적인 방법으로 우리 몸을 무기로 하나님께 드릴 수 있습니까?

 

로마서 6장 14절:


●    죄가 너희를 주장하지 못하리니 이는 너희가 법 아래 있지 아니하고 은혜 아래에 있음이라 


바울은 “죄가 너희를 주장하지 못하리니”라는 선언으로 이 단원을 끝내고 있다.
그 선언은 미래 시제로 되어 있는데, 그것은 아마도 죄는 지금이나 다른 어느 때든지 믿는 자를 지배하지 못할 것이라는 단호한 약속의 말씀을 나타낼 수 있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로 인하여, 죄는 믿는 자들을 지배할 권리나 권세가 없다.

바울이 담대하게 말할 수 있었던 이유는 믿는 자들이 율법 아래 있지 않고 은혜 아래에 있기 때문이다.

율법이 요구하고 있는 것이 이제는 은혜를 통해 성취되었다.

 

 

말씀을 나의 상황에 적용하기:


●    예수님의 대속의 죽음은 신자들을 죄의 속박으로부터 해방시켜 준다.              
●    예수님의 부활은 믿는 자에게 영원한 생명을 보장해준다.           
●    신자들의 의로운 삶은 그들이 받은 구원을 실증하는 방법이 되고 있다.     

 

자신의 삶에 죄가 되는 태도들이나 행동들이 어떤 것들이 있는지를 점검해 보십시오.
어떻게 하면 그 같은 죄에서 벗어날 수 있겠습니까?  

 

어떻게 당신의 일상 생활이 다른 사람들을 그리스도께로 인도하고 있습니까?
다른 사람들을 좀더 효과적으로 인도하기 위해 당신의 말이나 행동 혹은 태도가 어떻게 바뀌어야 하겠습니까?



    이 장년 성경연구 지도자 교재는 LifeWay에서 출간하여 보급하고 있는 Explore the Bible 교과과정의 학생용 한국어 교재를 가르치고 배우는데 도움이 되도록, 강 호길 목사가 LifeWay의 허락을 받아 영어 지도자 교재를 번역 및 편집한 것입니다.
그같이 허락한 LifeWay에 감사를 드립니다.
장년 성경연구 한국어 학생 교재는 LifeWay에서 주문하여, 장년 주일학교 시간에 혹은 목장이나 구역 모임에서 성경공부 교재로 사용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