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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평을 누리자 - 제 5과 - 2020년 3월 29일 주일 장년성경연구 - 로마서 5장 1- 11절

글쓴이 : 강호길 날짜 : 2020-03-23 (월) 13:00 조회 : 43

2020년 3월 29일 주일 용
번역 및 편집: 강 호길   
 

제 5과

 

 

화평을 누리자       

 

 

습구절: 로마서 5장 1- 11절

 

성경진리:

복음을 받아들이는 사람들은 모두 하나님과 화평을 누린다.                 

 

주요교리: 구원 (칭의)
복음을 믿고 구원을 받은 자는 하나님과 화평과 은혜의 관계를 맺게 된다 (갈 3: 13).

 

암송구절:  로마서 5장 8절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But God demonstrates his own love for us in this:

While we were still sinners, Christ died for us.”      

 

 

시작하는 글:

 

우리는 “원인과 결과”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를 갖고 살아간다.

우리는 보고 경험하는 모든 것에 대해 어떤 형태의 원인을 찾는 경향이 있다.

바울은 로마 독자들에게 구원의 현실(現實)과 그리스도인의 삶을 하나씩 알려줄 때 그 같은 논리를 따랐다.

죄에는 결과가 따르며 예수님을 믿는 믿음도 마찬가지이다.

 

어떤 형태의 사건 뒤에 담겨있는 주요 원인을 찾는 것이  중요합니까?
어떤 특정한 사건을 야기시킨 구체적인 원인을 어떻게 찾을  있습니까?

 

 

본문 배경설명

 

로마서 5장 1 -21절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은 실례로 아브라함을 든 후에 (4 장), 바울은 의롭다 하심을 받은 결과에 관심을 돌렸다.

로마서 5장의 전반부는 세 부분으로 나뉘어지고 있다.

     첫째 부분인 1절부터 5절까지에서, 바울은 의롭다 하심을 받은 사람들이 누리는 삶으로, 구원의 삶의 축복들을 열거하였는데, 그것들은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는 것, 하나님의 은혜를 얻는 것, 그리고 영광의 소망을 바라게 되는 것 등이 되고 있다.

믿는 자들은 심지어 삶의 어려움과 문제들 중에서도 기뻐할 수 있는데, 이는 하나님께서 그것들을 사용하여 우리 안에서 인격을 단련시켜 주시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바울은 그 같은 현상을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것]”으로 표현하였다.

우리 안에 사랑을 부어주심으로 하나님은 그 소망이 결코 우리를 실망시키지 않을 것을 확신시켜 주신다.

     둘째 부분인 6절부터 8절까지에서, 바울은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보내어 우리 대신 죽게 하심으로 그의 사랑을 어떻게 나타내셨는지를 기록하고 있다.  

바울은 “우리가 아직 연약할 때에 기약대로 그리스도께서 경건하지 않은 자를 위하여 죽으셨도다”고 언급한 후에, 한 가상적인 상황을 예로 들어 독자들에게 하나님의 사랑이 얼마나 크며 위대한지를 밝혀주고 있다.

세상에서 “선인”이나 “의인”을 위해 죽는 사람이 간혹 있을 수 있으나, 반항적인 죄인을 위하여 죽으려는 사람을 찾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하신 일이 바로 그 같은 일이 되고 있다.  

     셋째 부분인 9절부터 11절까지에서, 바울은 화목의 개념을 소개하고 있다.

예수님의 죽음으로 인하여 신자들은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맺어 현재의 삶 속에서 화평을 누리게 될 뿐 만 아니라, 그것은 어느 날 영원한 구원으로 이어지는 관계로 바뀌게 될 것이다.

바울은 그것을 “더욱 그의 살아나심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을 것이니라”는 말로 표현하였다.      

     로마서 5장의 후반인 12절부터 21절에서, 바울은 ‘차별이 없다’는 반복적인 주제를 택하여 다시 자세히 설명하기 시작하였다 (3: 22 -23).

바울은 인류를 유대인과 이방인의 두 범주로 나누는 대신에, 모두 한 집단으로 묶었다.

인간들 모두는 죄를 범하였으며, 하나님의 은혜의 선물을 받는데 에는 차별이 없다.  

바울은 한 사람의 범죄로 인하여 죄와 죽음이 세상에 들어온 것을 추적하고 있다.

그와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게 되었다]” (5: 15).
그런데, “한 사람의 범죄를 인하여” 죽음이 인간 세상을 지배하게 된 것처럼, 하나님의 은혜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많은 사람에게 넘[쳐나게]” 되었다 (5: 15).

     아담의 불순종이 인류가 정죄를 당하게 된 죄의 행동이 된 것 같이, 예수님의 순종은 많은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받아 생명”에 이르게 된 “의로운 행위”가 되었다 (5: 18).

바울은 그것을 “한 사람이 순종하지 아니함으로 [온 인류가] 죄인이 된 것 같이 한 사람이 순종하심으로 많은 사람이 의인이 되리라”는 말로 표현하였다 (5: 19).

비록 죄가 사망 안에서 왕 노릇할지라도, “은혜도 또한 의로 말미암아 왕 노릇 하여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영생에 이르게” 되리라 (5: 21).   

 

 

학습구절 연구

 

믿음으로 말미암아 누리는 축복들 (로마서 5장 1 -5절)  

 

예수님을 믿는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는 자가 된 신자들은 여러 가지 면에서 하나님의 축복을 경험한다.

그 축복들을 몇 가지 예로 들면,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게 됨, 하나님의 은혜에 들어감을 얻음, 하나님의 영광을 소망으로 삼음, 고난과 역경 가운데서도 기뻐함, 하나님의 사랑이 넘침, 및 성령님의 임재 하심 등이 될 수 있다.     

 

로마서 5장 1 -2절:


●     그러므로,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니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자
●     또한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믿음으로 서 있는 이 은혜에 들어감을 얻었으며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고 즐거워하느니라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니”라는 말은 앞 절 (4: 25)뿐만 아니라 이 시점까지의 전체 내용을 요약한 내용이 되고 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의롭다”하심을 받은 것은 예수님이 속죄의 희생제물이 되시는 것을 믿는 믿음의 결과이다.

신자들의 삶 속에서 행하시는 그리스도의 성화의 사역은 그들이 믿음으로 예수님을 주와 구세주로 영접하는 날부터 시작된다.

그러므로”라는 말은 바울이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하심을 받는 일에 대해 이전에 가르친 것과 (4 장) 그같이 의롭다 하심을 받은 후에 혹은 그 결과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를 연결시켜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

“의롭다” 하심을 받았다는 것은 믿는 자가 죄를 사함 받았으며 이제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갖게 된 것을 의미한다.

     사도 바울은 신자들이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니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자”고 하였다.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는 것]”은 의롭다 하심을 받는 일의 가장 중요한 축복들 중의 하나이다.

신자들은 그들의 삶 가운데 거하시는 하나님의 임재로 인해 내면의 평강을 경험하지만, 바울이 여기에서 강조하고 있는 것은 거룩한 하나님과 죄를 사함 받은 신자들 사이에 확립 된 새로운 화평의 관계가 되고 있다.

용서받지 못한 죄 많은 상태에 있을 때, 불신자들은 하나님과 싸우고 있는 그의 원수가 되고 있다.

성경은 불신자들을 “허물과 죄로 죽었던 [자들]”과 “본질상 진노의 자녀[들]”로 묘사하고 있다 (엡 2: 1, 3).  

또한 불신자들은 “악한 행실로 멀리 떠나 마음으로 원수”가 된 자들로 묘사되고 있다 (골 1: 21).

그러나, 예수님의 대속의 사역을 통해 하나님은 회개하는 죄인들의 죄를 사해주시고 “원수 된 것을 십자가로 소멸하[셨다]” (엡 2: 16).

그러므로, 믿는 자들은 하나님과 화평을 누릴 수 있다.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고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는 신자들에게, 그리스도는 그들의 “화평”이 되신다 (엡 2: 14).

 하나님과의 화평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누릴 수 있다.

죄인들은 선한 일이나 종교 의식을 통해 하나님과의 적대감을 극복 할 수 없다.

     바울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은 신자들이 누리게 되는 두 번째의 축복으로 “하나님의 은혜에 [계속] 들어감을 얻[는 일]”을 들었다.

히브리서 4장 16절은 믿는 자들에게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고 한다.  

5장 2절의 “이 은혜”라는 말은 바울이 로마서 4장 16절에서와 같이 앞에서 이미 묘사한 은혜를 가리키고 있다.

은혜”라는 용어는 죄를 사함 받기 위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에게 베풀어주시는 하나님의 호의를 가리키고 있다.

하나님의 은혜에는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는 것’뿐만 아니라 그에 수반되는 것으로, 신자들을 성화시키는 하나님의 지속적인 사역들이 포함되고 있다.

죄를 회개한 죄인들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믿음으로” 하나님의 은혜의 자리로 나아갈 수 있다.

믿음은 하나님께서 예수님의 속죄 제물을 통해 죄를 사해주시고 새 생명을 얻게 해 주시는 것에 대한 신자들의 반응이다.

믿음은 또한 신자들이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의 은혜를 받는 수단과 방법이 되고 있다.  

서 있다”로 번역된 헬라어 동사는 현재형 시제로 나타나고 있는데, 그것은 지속적인 행동이 되고 있음을 암시해 주고 있다.

믿는 자들에게, 하나님의 은혜는 일시적인 축복이 아니라, 영구적인 것이 되고 있다.

결과적으로, 신자들은 믿음으로 하나님의 은혜 안에 서 있다고 할 수 있다.

여기서 ‘서 있다’는 말은 흔들리지 않고 확고하게 서 있는 것을 뜻한다.

그러므로, 신자들은 어떤 어려운 일이 일어날지라도, 하나님의 은혜의 자리로 나아와 도움을 받으며 믿음으로 굳건히 서서 살아갈 수 있다.

    바울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은 신자들이 누리게 되는 세 번째의 축복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는 소망}”을 들었다.        

로마에 거주하던 그리스도인들은 종종 적대적인 이교도 문화의 표적이 되었다.

바울은 로마의 신자들에게 그들의 소망은 인간의 정치적인 권세가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에 있음을 상기시키기를 원하였다.

그래서 바울은 믿는 자들이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고 즐거워하느니라”고 하였다.

그 말은 세상의 모든 적대와 핍박에 대한 하나님의 궁극적인 승리를 가리키며, 하늘에서 하나님과 함께 누리게 될 영생에 대한 신자의 기대를 포함하고 있다.

영광”이란 성경적 용어는 하나님의 신성과 거룩하심 그리고 위엄에 찬 그의 임재를 가리키고 있다.

 

로마서 5장 3 -4절:


●     다만 이뿐 아니라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


그리스도 안에서, 신자들은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며 즐거워할 수 있을 뿐 아니라, “환난 중에도” 즐거워할 수 있다.

바울이 이 서신을 쓸 당시에, 로마에서 그리스도인들에 대한 핍박은 주후 60년대의 네로 황제나 90년대의 도미티안 황제에 의해 발생된 적대감이나 핍박의 수준에 도달하지는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자들은 그들의 신앙 때문에 상당한 압박을 받고 있었다.

     야고보서 1 장 2 - 4 절과 비슷한 방식으로, 바울은 시련을 겪고 있는 신자들에게 어려운 상황에도 불구하고 즐거워하라고 격려하였다.

우리가 유의할 것은 사도 바울이 고난 받는 것을 즐거워하라고 하지 않고, 환난 중에 혹은 환난을 겪는 동안에 즐거워하라고 한 점이다.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는 현실과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는 소망은 그리스도인들로 하여금 고난이나 역경에 대해 새로운 안목을 갖게 한다.

더욱이, 신자들 안에 내주하시는 성령님은 모든 신자들이 시련과 환난을 그의 능력을 받아 확신과 기쁨으로 직면하게 해 주신다.

    바울은 하나님께서 믿는 사람들이 겪는 고난을 사용하셔서 그들 안에 더욱 강한 확신과 소망을 갖게 해 주시는 과정을 요약하였다

첫째로, 그리스도인들이 환난을 겪으며 능력을 얻기 위해 성령님을 의지할 때, 그들은 영적인 면에서 “인내”를 키운다.

고난이 인내를 키운다고 해서 모든 신자가 문제에 대한 반응으로 자동적으로 영적인 성장을 이루는 것은 아니다.

고난이 인내를 키우는 일은 하나님의 은혜에 믿음으로 바르게 응답할 때 생긴다.     

     그런 다음, 바울은 “인내는 연단”(단련된 인격)을 이룬다고 하였다.

다시 말해서, 인내심을 갖고 반복적으로 행하는 믿음의 행위는 시간이 흐름에 따라 신앙생활로 뿌리를 내리고 자라나게 된다.

성화는 하나님이 신자들을 그리스도의 형상으로 만들어 가시는 지속적인 과정이다 (롬 8: 29).

경건한 인격은 하룻밤 사이에 갑자기 생겨나지 않는다.

그것은 정기적으로 시험 혹은 검증되어야 한다.

사도 베드로는 신자들이 경험하는 시련을 금속 세공인이 불을 사용하여 금속을 녹여 정화하고 튼튼히 하여 유용한 도구나 그릇으로 만드는 것에다 비유하였다 (벧전 1: 6 -7 참조).

     바울은 또한 단련된 인격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고 하였다.

성경적인 소망은 단순한 하나의 바램이 아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신실하심과 약속에 근거하여 그것이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확신에 찬 마음의 자세이다.

그 같은 소망에 가득 찬 신자는 삶의 모든 상황을, 심지어 엄청난 시련과 역경까지도, 하나님께서 신자들과 그의 영광을 위해 일하고 계시다는 확고한 믿음을 가지고, 잘 대처할 수 있다.

그것이 바로 기뻐하는 이유이다!

 

로마서 5장 5절:


●     소망이 우리를 부끄럽게 하지 아니함은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은 바 됨이니


바울은 “소망이 우리를 부끄럽게 하지 아니함은”이라고 하였는데, 그 말은 그가 3절과 4절에서 묘사한 바로 그 소망이 믿는 자들을 결코 실망시키지 않는다는 뜻이 되고 있다.
우리는 약속을 신실하게 지키시는 하나님 아버지를 신뢰하며 확실히 믿을 수 있다.
바울은 이 소망이 우리 믿는 자들을 실망시키지 않을 것을 확신하며 알 수 있는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은 바 됨이니”라고 하였다.

이 소망은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들을 위해 부어주신 진정한 사랑의 표현이 되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안전하듯이, 마찬가지로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소망 안에서 확신을 가질 수 있다.

하나님의 사랑의 두 가지 측면이 우리의 소망을 확증시켜 준다.
     첫째로,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은 바” 되었다.

하나님의 사랑의 일차적인 목적은 우리의 죄를 대속하시기 위해 예수 그리스도를 세상에 보내셔서 속죄제물로 삼으신 것이 되고 있다 (요 3: 16 참조).
하나님께서 세상을 너무나 사랑 하셔서 독생자인 예수님까지도 아끼지 아니하시고 세상에 보내셔서 우리 대신에 십자가에 달리어 우리의 죄 값을 치르게 하셨다면, 그 아들을 믿는 신자들에게 무엇이든지 이끼지 않으실 것이다.

     둘째로, 하나님은 그의 사랑을 “성령[을 통하여]” 믿는 자들에게 부어주셨다.

예수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믿고 마음에 영접하는 순간에, 믿는 자들은 인침과 보증으로 성령님을 받는다.

 다시 말해서, 신자들 안에 거하시는 성령님은 신자들을 위한 하나님의 사랑은 결코 끝나지 않을 것이며 그의 약속은 결코 실패하지 않을 것이라는 보증이 되고 있다.

 

예수님의 죽으심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다 (로마서 5장 6 -8절)  

 

칭의(“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은 것”)는 예수님께서 우리 대신 죽으셔서 우리의 죄 값을 치러주셨기 때문에 허락되었다.

예수님의 대속의 죽음은 온 인류를 위한 하나님의 사랑의 크기와 깊이를 보여준다.

 

로마서 5장 6절:


●     우리가 아직 연약할 때에 기약대로 그리스도께서 경건하지 않은 자를 위하여 죽으셨도다  


많은 사람들-은, 자부심과 자만심에 차서, 선행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살 수 있다고 믿는다.

그렇지만, 하나님의 은총(恩寵)은 우리가 “연약할 때에”, 즉 하나님의 용서를 받을만한 어떤 일도 할 수 없을 때에, 시작된다.

하나님은 우리가 그의 은혜를 받을 자격이 될 때까지 기다리지 않으셨다.

실제로, 죄 많은 인류는 결코 그리스도의 속죄의 죽음이라는 하나님의 선물을 받을 자격을 갖출 수 없었다.

“연약하다” 혹은 “무력하다”는 말은 도덕적으로 하나님의 완전한 기준을 충족시킬 수 없다는 뜻이 되고 있다.

그러나 복음의 좋은 소식은 우리가 희망이 없고 자신을 도울 수는 없지만, “그리스도께서 경건하지 않은 자를 위하여 죽으셨다”는 것이다.

"경건하지 않은”이라는 용어는 하나님을 무시하는 것 이상의 뜻을 포함하고 있다.

그 말은 하나님에게 적대적인 것을 가리키고 있다.

경건하지 않은 자들은 의도적으로 거역하고 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 위에서의 대속의 죽음은 “기약대로,” 혹은 “제 때에” 일어났다.

인간적인 관점에서, 우리는 종종 하나님의 시간표를 이해하려고 노력할 때가 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의 시간 표나 일정에 따라 행하시기를 원한다.

그런데, 예수님은 하나님의 시간표에 따라 인류 역사에서 완벽한 때에 세상에 오셨다(갈 4 : 4).

하나님의 계획은 메시아가 인간의 몸을 입고 세상에 태어나는 성 육신과, 죄 없이사는 삶과 그리고 우리 대신 죽으심으로 우리의 죄 값을 치러 주는 것을 포함하고 있다.

이 모든 것은 하나님께서 택하신 때에 일어 남으로, 그의 모든 약속을 성취하고 죄인들을 위한 구원의 길을 제공하셨다.

 

로마서 5장 7 -8절:


●     의인을 위하여 죽는 자가 쉽지 않고 선인을 위하여 용감히 죽는 자가 혹 있거니와
●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바울은 하나님의 사랑과 인간의 애정을 대조시키면서 말하기를, 한 사람이 다른 사람 대신 자기의 목숨을 자발적으로 버리는 일이 간혹 있기는 하지만, 쉽지 않은 점을 지적하였다.

사도 바울은 “선인을 위하여 용감히 죽는 자가 혹 있[는 경우]”를 인정하였다.

예를 들어, 부모가 위험에 처한 자녀를 구출하기 위해 목숨을 버리는 경우나, 군인들이 싸움터에서 혹은 구급대원들이 위험한 상황에 처한 사람들을 구출하기 위해 생명의 위험을 무릅쓰는 경우를 상상할 수 있다.

그러나, 그같이 영웅적인 혹은 애정에 찬 감동적인 보기 드문 일이라 할지라도, 그리스도께서 온 인류를 위해 행하신 희생적이고도 사랑에 찬 엄청난 일과는 감히 비교될 수 없다.

    바울은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는 말로 하나님께서 인간을 위해 행하신 가장 고귀한 사랑을 인간의 사랑에다 대조시키며 강조하였다.

      “확증하다”는 말로 번역 된 헬라어 단어는 문자적으로 "완벽하게 정렬 된 상태로 함께 서있다”는 뜻의 복합 용어이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과 “[그의] 사랑”은 분리 할 수 없는 실재가 되고 있다는 뜻이다.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이라는 말은 하나님의 사랑의 독특한 본질을 강조하고 있다.

그 사랑은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것으로 그의 인격을 구현해 주고 있다.

그 같은 뜻을 나타내주는 것이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니라”는 말이 되고 있다 (요일 4: 8).

하나님의 사랑이 비교될 수 없다는 증거는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셨다]”는 사실에 있다.

우리 중 어느 누구도 우리가 그렇게 나쁘지 않다고 생각하지 않기 위하여, 우리가 기억해야 될 것은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죄가 너무 악하다고 생각하시기 때문에 그의 아들의 피만이 죄의 값을 치르기에 충분하다고 생각하시고 계시다는 사실이다.

예수님은 죄인인 우리가 믿음으로 하나님의 의롭다 하심을 받을 수 있도록 불의한 자들을 위하여 죽으신 의로운 사람이 되신다 (벧전 3: 18).

     하나님은 예수님의 대속의 죽음을 통해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신다.]”
 그 사랑에 대한 우리의 합당한 반응은 그의 사랑을 되돌려드리는 것이다.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그가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기 때문이다]” (요일 4: 19).

우리는 하나님을 믿는 믿음과 그가 우리에게 부어 주신 사랑을 가지고 마음과 행함으로 하나님께 응답해야 한다.

 

화목의 삶이 되고 있는 구원의 삶  (로마서 5장 9 -11절)

 

예수님을 믿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 앞에서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므로, 믿는 자들은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었다.

우리는 더 이상 하나님의 원수들이 아니라, 하나님의 진노로부터 구원을 받은 자들이다.

예수님을 통해, 우리는 영원한 생명을 받았다.

 

로마서 5장 9절:


●     그러면 이제 우리가 그의 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니 더욱 그로 말미암아 진노하심에서 구원을 받을 것이니


우리”라는 인칭 대명사를 사용하여, 바울은 자신을 독자들과 동일시하였다.
 그는 개종하기 전에 교회를 박해하였기 때문에 누구보다도 하나님의 자비를 깊이 알고 있었다.

바울은 그리스도인들에게 하나님과의 새로운 관계를 상기시켜 주면서, “의롭다 하심을 받았[다]”는 칭의(稱義)에 관한 두 가지 중요한 진리를 강조하였다.

첫째로,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니”라는 동사의 수동태를 사용하므로, 바울은 하나님이 신자들에게 그들이 받을 자격이 없고 스스로 달성 할 수 없는 “의롭다”는 은혜를 베풀어 주시고 계시는 것을 확언하였다.

둘째로, 바울은 “그의 피로 말미암아,” 즉 예수님이 십자가 위에서 속죄 희생 제물이 되신 것에 근거하여 하나님께서 믿는 자들에게 의롭다 하심의 은혜를 베풀어 주시고 계심을 강조하였다.

     바울은, “더욱”이라는 비교 형태의 말을 사용하여, 칭의는 구원을 믿는 사람들에게 오는 축복들의 시작이 되고 있음을 주장하였다.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으로부터 의롭다 하심을 받는 것은 또한 믿는 자들이 “그로 말미암아 진노하심에서 구원을 받[는 것]”을 의미한다.

하나님의 진노는 죄에 대한 하나님의 공의의 심판과 형벌이 되고 있다.

그것은 이 생에서 경험하는 형벌을 포함할 수 있지만 (삼하 12: 13 -14; 행 5: 3 -5 참조), 주로 죄악과 불신에 대한 종말의 심판을 가리키고 있다 (계 11: 17 -18; 20: 11-15 참조).

 

로마서 3장 10절:


●     곧 우리가 원수 되었을 때에 그의 아들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었은즉 화목하게 된 자로서는 더욱 그의 살아나심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을 것이니라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하심을 받음으로 인하여 하나님 앞에서의 우리의 신분 혹은 입장은 완전히 바뀌게 되었다.

예수님을 믿기 전에, 우리는 하나님의 “원수”들이었다.

우리는 죄로 인해 하나님의 진노 아래 놓여 있었으며 아무 소망이 없이 죽을 운명과 지옥에서 하나님과 영원히 분리 될 운명이었다.

그러나, “[하나님]의 아들의 {대속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그 상태는 바뀌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구세주와 주님으로 영접했을 때, 우리는 하나님의 구속 받은 자녀가 되었고, 하나님으로부터 의롭다고 선언되었으며, 그의 진노에서 구원을 받았다.

     “더욱”이라는 비교 형태를 다시 사용하여, 바울은 의롭다 하심을 받는 것이 부활하셔서, 살아계신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죄의 권세로부터 구원해 주실 때 신자들 안에서 일어나는 지속적인 변화, 즉 성화로 알려진 과정의 시작이 되고 있을 뿐임을 선언하였다.
그래서, 바울은 말하기를, “[그리스도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었은즉 화목하게 된 자로서는 더욱 그의 살아나심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을 것이니라”고 하였다.

이것은 구원의 성화의 과정을 가리키는 말이다 (빌 2: 12 참조).

 

로마서 3장 11절:


●     그뿐 아니라 이제 우리로 화목하게 하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 안에서 또한 즐거워하느니라 


바울은 이 구절에서 “이제 우리로 화목하게 하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 안에서 또한 즐거워하느니라”고 하고 있는데, 이것은 금주의 학습구절인 로마서 5 장 1 ~ 11 절에서 신자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얻는 구원의 축복들에 대해 기뻐할 이유들로 바울이 언급한 세 번째의 경우가 되고 있다.
먼저, 우리는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고 즐거워 [할 수 있다]” (5: 2).

또한, 우리는 “환난 중에도 즐거워할 [수 있는데]”(5: 3), 이는 하나님께서 그 같은 상황들을 사용하여 우리의 “소망”을 다듬어 주시고 견고하게 해 주시기 때문이다.

바울이 이 구절에서 말한 것처럼, 우리가 “하나님 안에서 또한 즐거워하[는]” 가장 큰 이유는 하나님과 원수 되었던 우리가 그리스도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목하게” 된 것이다. “하나님과 화목하게” 됨으로 인하여, 모든 것이 “더욱” 낫게 그리고 “더욱” 좋게 변하게 되었다.

하나님과 화평의 관계를 누리게 되었고, 영생을 얻게 되었으며, 새 사람이 되었다.

바울이 우리가 기뻐할 수 있다고 말한 것은 당연하다!

 

 

말씀을 나의 상황에 적용하기:


●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는 일은 예수님을 믿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하심을 받은 결과가 되고 있다.              
●     하나님은 우리에 대한 그의 사랑을 예수님의 대속의 죽음을 통해 확증하신다.           
●     신자들은 예수님을 믿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현재와 영원을 위한 구원을 받는다.  

 


당신이 현재 겪고 있는 시련들과 역경들을 열거해 보십시오.
당신을 그 같은 역경들을 통해 그리스도 안에 있는 소망을 어떻게 반영 할 수 있습니까?

 

암송구절인 로마서 5장 8절을 다시 읽으면서, 어떤 단어나 문구가 당신의 마음에 깊은  깨달음과 감동을 주는지를 살펴보십시오.
이 구절이 당신에게 의미하는 바를 누구에게 말해 줄 수 있습니까?



이 장년 성경연구 지도자 교재는 LifeWay에서 출간하여 보급하고 있는 Explore the Bible 교과과정의 학생용 한국어 교재를 가르치고 배우는데 도움이 되도록, 강 호길 목사가 LifeWay의 허락을 받아 영어 지도자 교재를 번역 및 편집한 것입니다.
그같이 허락한 LifeWay에 감사를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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