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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롭다 하심을 얻다 - 제 4과 - 2020년 3월 22일 주일 장년성경연구 - 로마서 3장 21절 – 4장 3절

글쓴이 : 강호길 날짜 : 2020-03-17 (화) 11:39 조회 : 52

장년성경연구 지도자 교안

2020년 3월 22일 주일 용
번역 및 편집: 강 호길   

 

제 4과

 

 

의롭다 하심을 얻다      

 

 

학습구절: 로마서 3장 21절 – 4장 3절  

 

성경진리:

믿음으로 복음을 받아들이는 사람들은 모두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의롭다 하심을 얻는다.                

 

주요교리: 인간
인간은 자유 의지와 선택으로 하나님께 죄를 지었고 이로 인하여 죄가 인류에게 전해지게 되었다 (요일 1: 8-10).

 

 

암송구절:  로마서 3장 23 -24절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속량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 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   

 

“For all have sinned and fall short of the glory of God,

and all are justified freely by his grace through the redemption

that came by Christ Jesus.”     

 

 

시작하는 글:

 

우리들 대부분은 직불카드(debit card) 가 거부되거나 1불이 부족해서 방금 주문한 음식 값을 지불 할 수 없을 때 겪는 무안(無顔)함이나 곤혹(困惑)을 당하고 싶어하지 않는다.

그 같은 일들을 겪을 때, 마치 사람들의 시선이 갑자기 자기에게 쏠리는 것처럼 느껴진다.

바울은 로마교회의 신자들에게 “하나님의 ”를 말할 때, 그들 모두가 하나님의 의를 이루기를 부족하다는 사실을 상기시켜 주었다.

그는 또한 우리들 모두는 예수님을 믿는 믿음을 통해 우리의 부족함을 채워주시려는 하나님의 뜻과 그의 은혜를 발견할 수 있음을 설명해 주었다.


식당에서 직불카드가 거절되어 대금 결제가  되는 것과 현금만 받는 식당에서 1불이 모자라 음식 값을 치르지 못하는  중에서 어느 것이  무안하고 곤혹스럽습니까?  설명해 보십시오.

 

 

본문 배경설명

 

로마서 3장 21절부터 4장 25절까지

 

이 단원의 처음 몇 구절들은 우리가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를 맺을 수 있는 방법에 대해 통찰력을 주는 말들로 가득 차 있다.

이방인들이나 유대인들이나 구별이 없이 모두가 죄인들인 것처럼 (3: 23),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모든 자에게 미치는 “하나님의 의”도 차별이 없다 (3: 22).

그 “하나님의 의”는 하나님께서 그의 은혜로,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를 “속량”해 주심으로 인하여 성취되고 있다 (3: 24).     
하나님은 예수님을 우리의 죄를 위한 속죄의 희생제물로 주심으로써 우리를 “속량” 혹은 “구속”해 주시는 일을 시작하셨다 (3: 25).

그같이 하심으로, 하나님은 죄에 대해 “자기의 의로움을 나타내사 자기도 의로우시며 또한 예수 믿는 자를 의롭다”고 하실 수 있게 되었다 (3: 25 -26).

     바울은, 일련의 질문과 답변 형식을 취하여, 하나님께서는 유대인들과 이방인들의 하나님이 되시며, 그들 모두는 하나님의 은혜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통해 의롭다 하심을 받는다는 사실을 확고히 하였다.

그런 다음, 바울은 믿음의 율법을 무효하게 하느냐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였다.

그는 “그럴 수 없느니라”고 단호하게 대답하면서 “도리어 율법을 굳게 세우느니라”고 하였다.

앞에서 바울은 유대인이 되는 것과 할례를 받는 것은 의롭다 함을 받는 방법은 못되지만, 유익된 것이 “범사에” 많다고 확언하였다 (3: 1- 2).       

     바울은 이 단원의 결론으로 아브라함을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은 예로 들었다.

아브라함은 행함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지 않았기 때문에, 그는 자랑할 근거가 없었다.

사람들은 임금(賃金)을 노동의 대가로 받는 보수로, 즉 자기가 응당 받아야 할 것으로 생각한다.

그렇지만, 아브라함은 하나님을 믿기만 하였고, 하나님은 은혜로 아브라함의 믿음을 의로 여기셨다 (창 15: 6; 롬 4: 1 -8).

아브라함의 경우는 하나의 특별한 실례가 되고 있지 않다는 사실을 입증하기 위하여, 바울은 다윗의 예도 들었다 (4: 6 -8).

사도 바울은 시 32편 1 -2절을 다윗이 하나님 앞에서 의롭다 하심을 받은 사실에 대해 고백한 말로 인용하였던 것이다.

바울은 그같이 의롭다 함을 얻은 것은 행위 때문이 아니라, 믿음에 근거되고 있는 것으로 주장하였다.

     그러면서, 바울은 아브라함이 할례를 받기 이전에 의롭다 하심을 얻었던 사실을 지적하였다.

실제로, 할례는 아브라함이 의롭다 함을 얻게 된 하나의 외적 증거가 되었던 것이다.

아브라함이 할례를 받기 이전에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었던 것처럼,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받은 일도 율법을 받은 사건보다 앞서고 있다 (창 15: 5; 17: 5; 22: 17).

바울은 주장하기를,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의심하지 않고 믿음으로, 그것이 아브라함에게 “의로 여겨졌[다]”고 하였다 (롬 4: 20 -22).

바울은 아브라함뿐만 아니라, 우리들도 그같이 하나님을 믿으면, 그 믿음이 의로 여겨진다는 것을 상기시키는 것으로 단원을 끝마치고 있다. (4: 24).

 

 

학습구절 연구

 

믿음으로 말미암는 하나님의 의 (로마서 3장 21 -24절)  

 

바울은 유대인이나 이방인이나 모두 죄를 범하였기 때문에 하나님 앞에서 의롭다 하심을 얻을 수 있는 방법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나타난 하나님의 은혜인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통해서만 온다고 선언하였다.

죄인들로서 우리는 하나님의 율법에 의해 정죄를 받고 있으며 의인이라고 주장 할 수 없다.
하나님은 예수님을 믿고 신뢰하는 모든 사람에게 그의 은혜로 값 없이 의의 선물을 주신다.

 

로마서 3장 21 -23절:


●    이제는 율법 외에 하나님의 한 의가 나타났으니 율법과 선지자들에게 증거를 받은 것이라
●    곧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모든 믿는 자에게 미치는 하나님의 의니 차별이 없느니라
●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1장 18절부터 바울은 일반 계시를 받은 헬라인이나 특별 계시를 받은 유대인이나 구별 없이 모두 죄를 죄를 범했다는 사실을 밝히고, 3장 9절에서는 “다 죄아래 있다”고 선언하였다.

그런 다음 21절에서 바울은 “이제는 율법 외에 하나님의 한 의가 나타났[다]”고 하였다.

바울은 계속해서 말하기를, 그것은 “율법과 선지자들에게 증거를 받은 것이라”고 하였다.

성경에서 “율법”이라는 용어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하신 특정한 명령을 가리키기도 하지만, 성경의 처음 다섯 권인 모세의 오경을 가리키고 있다.

마찬가지로, “율법과 선지자들”이란 말은 오늘날 우리가 구약으로 부르는 전체 내용을 가리키고 있다.

구약은 창조 때부터 구세주가 오시기 직전까지에 걸쳐 하나님과 그의 언약의 백성의 이야기를

말해 주고 있다.

바울은 창세기부터 말라기까지의 구약 성경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얻을 수 있는 하나님의 의를 “증거”하고 있다고 선언하였던 것이다.

바울이 여기서 밝히고 있는 것은, 율법을 주신 하나님의 목적은 사람들이 자신들의 힘이나 노력으로 율법을 완전히 지켜 의롭게 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그와는 정 반대로, 인간의 죄악과 구세주에 대한 인간의 절박한 필요를 나타내 주는 것이며, 바울은 그 필요에 대한 해결책을 제시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면, 죄 많은 인간인 우리는 어떻게 하나님의 조건에 따라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를 맺고 유지하기를 바랄 수 있을까?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라는 말은 바울이 제시한 해결책이 되고 있다.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예수님을 보내셔서 우리의 죄 값을 치르기 위해 우리 대신 죽으시고 다시 살아나게 하심으로, 그의 은혜로 인종적인 배경이나 종교적인 유산에 상관없이 “모든 믿는 자에게” 그와 바른 관계를 맺고 유지하게 하셨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은혜는, 모든 사람들에게 미치고 있다는 점에서, 보편적인 것이 되고 있다.

그렇지만, 하나님의 구원은 “믿는 자”만 얻을 수 있다는 점에서 배타적인 성격이 되고 있다.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단순히 말로만 하는 것 이상이 되고 있다.

예수님을 믿는 구원의 믿음에는 죄를 용서해 주시고, 마음을 새롭게 변화시켜 주시며, 영원한 생명을 주시는 것을 전적으로 믿고 온 마음으로 의지하는 것이 포함되고 있다.

그 같은 믿음은 결코 율법에서 생겨날 수 없다.  

율법은 사람들로 하여금 죄와 믿음의 필요를 보게 해 줄 뿐이다.

     바울은 23절에서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라는 말로 모든 사람이 믿음으로 말미암는 하나님의 의가 필요함을 강조하였다.

헬라어로 “죄를 범하다”라는 말은 활을 쏘는 것과 관계되고 있다.

죄를 범한 사람은 활을 쏠 때처럼 목표 혹은 과녁을 빗 마친 사람이다.

그리고 이 경우에 빗 마친 과녁 혹은 목표는 “하나님의 영광”이 되고 있다.

하나님의 영광’이라는 말은 몇 가지 의미로 해석되고 있다.

어떤 성경학자들은 그것을 아담이 타락했을 때 상실한 온전한 형상 혹은 믿는 성도들이 장차 이루게 될 형상으로 보고 있다.

반면에, 다른 성경학자들은 하나님께서 현재 우리에게 요구하고 계신 의의 기준으로 보고 있다.

그런데, 인간들 모두는 죄 때문에 그 기준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로마서 2장 24절:


●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속량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 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


그 같은 인간들에게, 바울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속량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 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는 기쁜 소식을 전하고 있다.

그 말은 신학적인 용어로 ‘칭의”로 불려지고 있는데, 깊은 신학적인 진리를 담고 있다.  

“칭의”라는 말은 의롭다고 하거나 죄가 없다고 하는 뜻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말미암는 하나님의 의’라는 말로도 표현될 수 있다.

     바울은 이 구절에서 신학적으로 매우 중요한 세 가지의 개념을 언급하였다.

그것들은 “속량”이라는 말과 “은혜”와 “의롭다 하심을 얻[다]”는 말이 되고 있다.

의롭다 하심을 얻다”는 말은 죄인인 인간이 거룩하시고 의로우신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맺는 방법이 되고 있다.

하나님에 의해 “의롭다 하심을 얻[는다]”는 말을 하나님께서 우리의 죄를 사해 주시고 받아주시는 것을 뜻한다.

하나님의 은혜로 값 없이”라는 말은 아무 공로나 노력이 없이 그냥 얻는 칭의의 성격을 강조해 준다.

그들 두 가지는 당시 법정에서 사용되는 용어들이었다.  

속량” 혹은 “구속”으로 번역되고 있는 단어는 노예시장에서 사용되던 것으로, 종종 노예나 포로들의 몸 값을 치르고 그들을 되찾아 자유롭게 해 주는 것을 묘사하는 용어가 되었다.

구속에 대한 성경적 개념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의 노예 생활로부터 속량해 주신 일이 되고 있다.

죄인들인 인간은 죄의 종들이며, 죄로부터 자신을 구원 할 수 없는 절망적인 상태에 있다.

속량”의 유일한 소망은 죄에 매여있지 않은 구속 자가 우리를 대신하여 죄 값을 지불해 주시는 것이 되고 있다.  

그 구속자가 바로 다름 아닌 예수 그리스도이신 것이다.  

 

예수님을 믿는 믿음으로 얻는 하나님의 의 (로마서 3장 25 -26 절)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십자가의 죽음을 자취하심으로, 인류의 죄 값을 대신 치러주셨다.

결과적으로, 하나님은 “자기도 의로우시며 또한 예수 믿는 자를 의롭다”고 하실 수 있게 되었다.

 

로마서 3장 25 -26절:


●    이 예수를 하나님이 그의 피로써 믿음으로 말미암는 화목제물로 세우셨으니 이는 하나님께서 길이 참으시는 중에 전에 지은 죄를 간과하심으로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려 하심이니
●    곧 이 때에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사 자기도 의로우시며 또한 예수 믿는 자를 의롭다 하려 하심이라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음은 그 본질과 범위 그리고 목적에 관한 많은 토론을 불러 일으켜 오고 있다.

바울은 3장 25절에서 “이 예수를 하나님이 그의 피로써 믿음으로 말미암는 화목제물로 세우셨으니 이는 하나님께서 길이 참으시는 중에 전에 지은 죄를 간과하심으로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려 하심이니”라는 말로 구속의 교리의 필수 요소들을 제시하였다.   

먼저, 바울은 하나님이 예수님을 “화목제물로 세우셨[다]”고 진술하고 있다.

하나님이 구속의 모든 과정을 먼저 시작하신 분이 되신다는 사실에 주목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는 인간에게는 죄를 속죄하기 위한 희생 제물로 바칠만한 것이 없기 때문이다.

     이 구절에서 가장 중요한 논점은 "화목제물”로 번역된 헬라어 단어의 뜻이 되고 있다.

그 단어가 신약성경의 다른 곳에서 나타나고 있는 것은 단 한곳뿐으로, 거기서 그 단어는 언약 궤의 뚜껑인 “속죄소”를 묘사하고 있는데, 대제사장은 속죄 일에 지성소에 들어가 그 속죄소 위에다 염소의 피를 뿌려 백성들의 죄를 속죄하였다 (레 16: 15; 히 9: 5).

구약에서 제사장이 한 속죄 사역은 일년에 한 번씩 대 제사장이 혼자서 지성소의 휘장 안으로 들어가 행하였다.

그런데, 바울은 예수님의 속죄 사역에 대해 말하기를, 하나님이 예수를 “화목제물로 세우셨[다]”고 하였다.

세우다”로 번역된 헬라어는 공개적으로 전시된 것을 설명하는 용도로도 사용될 수 있다.

그러니까, 염소의 피를 뿌려 속죄하는 대 제사장의 사역은 지성소의 휘장 뒤에서 보이지 않게 행해졌던 것에 반해,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을 십자가에 달리게 하심으로 우리의 속죄 제물로 공개적으로 제시하셨던 것이다.

     바울은 예수님이 어떻게 우리의 “화목제물” 혹은 “속죄제물”이 되셨는지를 설명하였다.
피로써”라는 문구(文句)는 희생제물의 방법과 수단이 되고 있는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음을 일컫는 말이 되고 있다.

이 희생제물의 혜택들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얻게 된다.

     바울은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려 하심이니”라는 말로, 하나님이 예수님을 “화목제물”로 세우신 또 다른 목적은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는 방법이 되고 있음을 분명히 밝혔다.

그같이 하심으로, 하나님은 “자기도 의로우시며 또한 예수 믿는 자를 의롭다”고 하실 수 있으시다.

전에 지은 죄”라는 말은 예수님의 희생적 죽음으로 인해 죄를 사함 받고 구원을 받는 새로운 시대가 시작되기 이전에 범한 죄를 가리키고 있다.

하나님께서는, 길이 참으셔서,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은 하나님의 의가 세상에 나타날 때까지 그들 죄를 간과하신 것이다.

 

모든 사람에게 미치는 하나님의 의 (로마서 3장 27 -31절)

 

구원은 모든 사람이 예수님을 믿는 믿음을 통해서만 얻을 수 있는 것이기 때문에, 자기 의를 내세우거나 자랑할 수 있는 자리가 없다.   

 

로마서 3장 27 -28절:


●    그런즉 자랑할 데가 어디냐 있을 수가 없느니라 무슨 법으로냐 행위로냐 아니라 오직 믿음의 법으로니라
●    그러므로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얻는 것은 율법의 행위에 있지 않고 믿음으로 되는 줄 우리가 인정하노라  


바울은 수사학적인 질문과 대답의 형식을 사용하여, 자신의 독자들로 하여금 구원은 하나님의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얻을 수 있다(엡 2: 8)는 바른 결론에 도달하게 하려고 하였다.

사도 바울은 “그런즉 자랑할 데가 어디냐”고 물었는데, 그 말은 율법을 온전히 지키고 선행으로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유지하려고 노력하던 것을 자랑으로 삼았던 유대인 신자들의 이전 사고 방식을 가리켰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그 같은 생각은 복음에서 설 자리가 없다는 뜻으로, 바울은 “있을 수 없느니라”는 말로 분명하게 대답하였다.

모든 자랑이 나쁜 것은 아니다.

바울은 “하나님의 영광”을 자랑하고 (롬 5: 2), 동역자들을 자랑으로 삼았으며 (고후 7: 14), 심지어 자신의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였다 (고후 12: 9).

그러나, 어떤 사람이든지 하나님 앞에서 자기가 옳다고 자랑할 수 없다.

바울은 이미 3장 20절에서 “율법의 행위로 [하나님] 앞에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다]”고 선언하였다.  

죄 많은 인간이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서 의로운 자로 설 수 있는 방법은 “오직 믿음의 법”인 ‘예수님을 믿는 것’으로만 말미암는 것이라면, 그 신자는 다른 신자들보다 우월하다고 느낄 근거가 없다.

     바울은 결론적으로 말하기를, “그러므로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얻는 것은 율법의 행위에 있지 않고 믿음으로 되는 줄 우리가 인정하노라”고 하였다.

구원은 우리가 누구이냐 혹은 하나님을 위해 무엇을 하느냐에 달려 있지 않다.

그것은 그리스도가 누구이시며 그의 희생적인 죽음과 승리의 부활을 통해 우리를 위해 무엇을 행하셨느냐에 달려 있다.    

 

로마서 3장 29 -31절:


●    하나님은 다만 유대인의 하나님이시냐 또한 이방인의 하나님은 아니시냐 진실로 이방인의 하나님도 되시느니라
●    할례자도 믿음으로 말미암아 또한 무할례자도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하실 하나님은 한 분이시니라  
●    그런즉 우리가 믿음으로 말미암아 율법을 파기하느냐 그럴 수 없느니라 도리어 율법을 굳게 세우느니라


     사도 바울은 구원을 베풀어주시는 하나님의 계획은 항상 인간의 공로나 행함에 있지 않고 믿음으로 말미암는 것이라는 사실을 확실하게 밝혔다.

그는 유대인 신자들에게 이스라엘 신앙의 기본적인 교리에 대해 생각해 보라고 요구하였다.

그것은 “이스라엘아 들으라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유일한 여호와이시니”라는 신앙고백이 되고 있다 (신 6: 4).
한 분이신 여호와 하나님 만이 계실 뿐이다.

이 진리를 받아들일 때, 그들은 “하나님은 다만 유대인의 하나님이” 되실 뿐 아니라, “또한 이방인의 하나님”이 되심을 받아 들어야 논리적으로 마땅하였다.
인류에게 구세주의 필요를 보여주기 위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율법을 주신 하나님은 예수님을 구세주로 보내주신 바로 그 하나님이시며, 예수님은 그를 믿는 모든 사람을 위한 속죄의 제물이 되셨다.

    30절에서 바울은 “하나님은 한 분이시라”는 말로 자신의 결론을 분명하게 밝혔다.

따라서, 그는 모든 사람의 하나님으로, 당시에 “할례자”로 대표되고 있던 유대인들의 하나님이 되실 뿐 아니라, “무할례자”로 대표되고 있는 이방인들의 하나님이 되신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이라는 한 가지 방법으로 유대인들과 이방인들을 똑같이 “의롭다”고 하실 것이다.

     31절에서, 바울은 신자들이 율법에 대한 자신의 말을 오해하지 않게 되기를 확실하게 하기를 원하였다.

믿음으로 말미암는 구원의 복음은 “율법을 파기하[지]” 않는다.  

파기하[다]”로 번역된 헬라어는 “무효로 하다” 혹은 “전복시키다”라는 말로도 번역될 수 있다.
예수님은 그의 산상설교에서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를 폐하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하게 하려 함이라”고 하셨다 (마 5: 17).

마찬가지로, 이 단원에서 바울이 주장해 오고 있는 것은 구원을 위해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은, 유대인들이거나 이방인들이건 간에 구별 없이, 실제로는 “도리어 율법을 굳게 세우[고]” 있다는 것이다 (갈 3: 21 -24 참조).           

 

아브라함에까지 미치는 하나님의 의 (로마서 4장 1 - 3절)
 

아브람이 여호와를 믿으니 여호와께서 이를 그의 의로 여기시고”라는 창세기 15 장 6 절의 말씀을 언급함으로, 바울은 아브라함의 이야기를 사용하여 ‘믿음으로 말미암는 하나님의 의’가 항상 견고한 성경의 가르침이 되어 오고 있는 것을 보여주었다.  

 

로마서 4장 1절:


●    그런즉 육신으로 우리 조상인 아브라함이 무엇을 얻었다 하리요


바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하심을 받는다는 칭의에 관한 가르침을 특별히 유대인 신자들이 즉시 인정하며 존경의 대상으로 삼고 있던 구약의 강력한 실례(實例)에다 연결시켰다.

그것은 “육신으로” 그들의 “조상인 아브라함”의 이야기이다.

바울의 질문은 유대인들의 조상인 아브라함이 여호와 하나님 앞에서 의로운 자로 인정을 받고 있었다는 신자들의 생각에 초점을 맞추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과의 관계에 대해 유대인들의 인정과 존경을 받는 인물이었다.

만일 유대인들에게, 그들의 역사를 통해, 어느 누가 자랑 할 자격과 권리가 있다고 한다면, 그것은 의심의 여지 없이 아브라함이었다.

 

로마서 4장 2 -3절:


●    만일 아브라함이 행위로써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면 자랑할 것이 있으려니와 하나님 앞에서는 없느니라
●    성경이 무엇을 말하느냐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매 그것이 그에게 의로 여겨진 바 되었느니라


바울은 2절에서 “만일 아브라함이 행위로써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면 자랑할 것이 있으려니와 하나님 앞에서는 없느니라”라고 하였는데, 언뜻 보면 우리는 그 말을 아브라함이 다른 사람들 앞에서는 자랑할 것들이 있지만, 하나님 앞에서는 자랑할 수 없다는 뜻으로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그 말을 문맥에 비추어보면, 그 말은 아브라함이 하나님 앞에서 행함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면 자랑할 것이 있겠지만, 그렇지 않다는 뜻이 되고 있다.

그러므로, 바울의 말에서 대조되고 있는 것은 행함으로 의롭다고 하나님의 인정을 받는 것과 믿음으로 의롭다고 인정을 받는 것이 되고 있다.

    자신의 주장을 확고히 하기 위하여, 바울은 성경말씀, 구체적으로 “아브라함이 여호와를 믿으니 이를 그의 의로 여기고”라는 창세기 15장 6절의 말씀에다 호소하였다.

이것은 성경에서 "믿다"로 번역된 단어가 처음으로 나오는 것인데, 그 말은 “의로 여기시고“라는 말의 “”와 연결되고 있다.

문맥이 밝혀주고 있는 것은 일찍이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것이 (창 12 장) 아직 성취되지 않은 것에 대한 아브라함의 걱정과 염려가 되고 있다.

아브라함은 “땅의 티끌”처럼 자손이 많은 것이 아니라 (창 13: 16), 그의 노예가 유일한 상속자였다 (15: 2).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하늘의 “뭇 별을 셀 수 [없는 것처럼]” 그의 자손을 많게 해 주시겠다고 재차 약속을 해 주셨을 때 (창 15: 5),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믿었고 하나님은 그 같은 그의 믿음을 “의로” 여겨 주셨다 (창 15: 6).
그러므로, 바울은 “성경이 무엇을 말하느냐”는 질문을 하고,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매 그것이 그에게 의로 여겨진 바 되었느니라”고 대답하였다.

로마서 4장 전체를 통해, 바울은 그의 독자들에게 아브라함의 그 같은 믿음은 언약의 표징인 할례를 받기 이전부터 (창 17: 10) 그리고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이삭을 번제물로 드리려고 한 놀라운 순종을 나타내기 이전부터 (창 22: 9 -12) 있었던 것을 상기시켜 주었다.

 

 

말씀을 나의 상황에 적용하기:


●    하나님은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은 누구에게나 값 없이 구원을 베풀어 주신다.            
●    하나님은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을 의롭다고 선언하신다.           
●    모든 사람이 예수님을 믿는 믿음으로 구원을 받기 때문에 자랑할 것이 없다.
●    믿음은 하나님께로 나아가는 유일한 길이다.      

 


당신은 어떤 죄들을 하나님의 즉각적인 심판이 요구되는 것으로 분류하려는 경향이 있습니까?
그 진술에 근거하여, 당신이 밝힌 죄를 범하는 사람들에게 대한 당신의 태도를 어떻게 조정할 필요가 있습니까?

 

하나님께서 베푸시는 구원을 어떻게 믿음으로 받아들였는지를 기록해 보십시오.
그리고 시간을 내어 그같이 구원을 베풀어주신 하나님께 감사하십시오.



 장년 성경연구 지도자 교재는 LifeWay에서 출간하여 보급하고 있는 Explore the Bible 교과과정의 학생용 한국어 교재를 가르치고 배우는데 도움이 되도록, 강 호길 목사가 LifeWay의 허락을 받아 영어 지도자 교재를 번역 및 편집한 것입니다.
그같이 허락한 LifeWay에 감사를 드립니다.
장년 성경연구 한국어 학생 교재는 LifeWay에서 주문하여, 장년 주일학교 시간에 혹은 목장이나 구역 모임에서 성경공부 교재로 사용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