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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죄 판결 - 제 2과 - 2020년 3월 8일 주일 장년성경연구 - 로마서 1장 18 -7, 13 -17절

글쓴이 : 강호길 날짜 : 2020-03-03 (화) 00:02 조회 : 47

장년성경연구 지도자 교안

2020년 3월 8일 주일 용
번역 및 편집: 강 호길   
 

제 2과

 

 

유죄 판결      

 

 

학습구절: 로마서 1장 18 -7, 13 -17절  

 

성경진리:

하나님을 무시하면 파멸에 이르게 된다.              

 

주요교리: 인간
인간은 사탄의 유혹을 받아 하나님의 명령을 어김으로, 본래의 무죄에서 타락하였고 그의 후손들은 죄의 본성과 환경을 이어받게 되었다 (창 3: 1 -10).

 

암송구절:  로마서 2장 11절  

 

이는 하나님께서 외모로 사람을 취하지 아니하심이라    

“For God does not show favoritism.”   

 

 

시작하는 글:

 

당신이 사는 도시 안에서 한 목적지를 정하고, 당신의 집에서 그 곳까지 가는 길이 몇 개나 되는지 살펴보자.

지역에 따라서, 어쩌면, 열 개 이상의 길이 나 있을 수 있다.

어떤 길들은 다른 길 들보다 더 쉽게 가거나 더 빨리 갈 수 있을 수 있다.

여러 길들 중에서 하나가 가장 좋은 길이 있을 수 있다.

인생은 많은 면에서 그와 같을 수 있다.

인생은 목적지를 향하여 걸어가는 여정이 되고 있다.

세상은 인간에게 진정한 삶의 의미와 목적을 준다고 주장하는 여러 가지 많은 길들을 제시하고 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인간을 죄로부터 구원하고 진리의 삶을 살게 하기 위한 계획을 발표 하셨을 때, 그가 제시하신 구원과 진리의 길은 유일한 것으로, 그 길 이름은 예수 그리스도가 되고 있다 (요 14: 6).

 

 사람이 삶의 의미와 행복을 얻기 위해 추구하고 있는 것이 무엇일까요?  

가장 많이 추구하는 것부터 적게 추구하는 것을 차례로 다섯 가지만 열거한다면당신은 어떻게 열거하겠습니까?   

 

 

본문 배경설명

 

로마서 1장 18절부터 2장 16절까지

 

     로마 교회에 보낸 바울의 편지인 로마서의 서두와 인사말은 겸손과 영적 간절함이 그 특징이 되고 있다 (1: 1 -15).

이방인의 사도로서, 바울은 로마에서 복음을 전파하기를 간절히 원했으며, 로마를 방문하여 그곳의 신자들을 섬길 계획을 오랫동안 세우고 있었다.

그는 로마 교회 교인들의 강하고도 지속적인 믿음에 대한 좋은 소식을 듣고 있었고 그들을 위해 정기적으로 기도하였다.

더욱이 바울은 로마의 신자들이 자기에게 영적으로 큰 격려가 될 것으로 기대하였다.


▶     16과 17절은 바울이 앞으로 복음을 자세히 설명하기 위한 기초가 되고 있다.  


바울에게 복음은 추상적인 어떤 신학적인 개념이나 생각이 아니었다.

그에게 복음은 자신이 직접 체험한 것으로 자신을 완전히 바꾸어 놓은 “하나님의 능력”이다.

그래서 그는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라고 하면서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니라”고 고백하였다.

그러면서, 바울은 그 복음은 “먼저는 유대인에게요 그리고 헬라인에게로다”고 하였다.

우리는 제아무리 열심히 노력한다 할지라도 하나님의 의를 이룰 수는 없지만, 복음을 믿음으로 하나님의 의를 선물로 받을 수 있고 그같이 해야 한다.


▶     18절부터 2장 16절까지에서, 바울은 이방인들의 복음의 필요성에 초점을 두고 있다.


유대인들의 복음의 필요성은 2장 17절부터 3장 26까지에 이어지고 있다.

그는 이방 세계가 하나님의 진노의 심판을 받고 있다고 선언하면서 시작하고 있다 (1: 18).

이방 민족들에게는 하나님의 진리의 계시인 히브리 성경이 없었을지라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창세로부터 하나님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을 알 수 있는, 즉 창조주 하나님을 알 수 있는 분명하고도 충분한 증거를 그가 만드신 만물에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1: 20).

그런데도 불구하고, 이방인들은 한 창조주에 관한 진리를 거부하고 모든 종류의 피조물을 닮은 우상들을 만들어 신으로 섬기고 있는 것이다.

바울은 그 같은 현상을 “그들이 하나님의 진리를 거짓 것으로 바꾸어 피조물을 조물주보다 더 경배하고 섬김이라”고 표현하였다 (1: 25).  

     본문에서 “헬라인”으로 대표되고 있는 이방인들은 우상 숭배에 의해 영적으로 눈이 멀었으므로, 하나님은 그들을 “부끄러운 욕심에 내버려 두셨[다]” (1: 26).

우상 숭배자들은 그들이 숭배하는 우상들에 구현(具顯)되고 있는 죄의 특성들을 취하였다.

사람들은 남자와 여자의 동성애의 성적 관행을 포함하여 모든 형태의 성적 불순을 받아 들였다 (1: 24 -27).  

또한 하나님께서는 이방인들을 “그 상실한 마음대로 내버려 두사 합당하지 못한 일을 하게 하셨[다]” (1: 28).           

그들의 도덕적 나침반은 반대로 되어 있어서 그들은 온갖 종류의 죄악과 파괴적인 방법으로 행동할 뿐 아니라 악을 행한 사람들을 칭찬하며 박수를 보낸다 (1: 29 -32).

     본질적으로, 바울의 메시지는 이방인들이 죄의 노예가 되어 있고 하나님 앞에서 변명 할 수 없는 죄인이기 때문에 복음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거룩하신 공의의 하나님은 죄를 보지 못하거나 무시하지 않으신다.

이방인들에게 성경이 없더라도, 하나님의 의로운 표준은 그들에게도 적용된다.

 

성서에서 로마서 1 장 1 -7절과 13 -17절을 읽으십시오.

그들 구절에서 바울이 그리스도를 어떻게 묘사하고 있는지를 살펴보십시오.

그것은 당신이 예수님에 대해 생각하고 있는 것과 어떻게 다른지 말해 보십시오.

 

 

학습구절 연구

 

하나님의 일반 계시 (로마서 1장 18 -20절)  

 

바울은 모든 사람들이 그들의 죄에 대해 변명하거나 핑계할 수 없는 이유로, 하나님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가 지으신 만물에 분명히 계시되어 있는 사실을 지적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들은 하나님의 존재와 그의 진리를 받아들이고 그에 따라 행하는 대신에 하나님과 그의 진리를 인정하지 않고 불의를 행하고 있다.  

 

로마서 1장 18 -20절:


●     하나님의 진노가 불의로 진리를 막는 모든 사람들의 모든 경건하지 않음과 불의에 대하여 하늘로부터 나타나나니
●     이는 하나님을 알 만한 것이 그들 속에 보임이라 하나님께서 이를 그들에게 보이셨느니라
●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가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려졌나니 그러므로 그들이 핑계하지 못할지니라


     많은 사람들은 “하나님의 진노”에 대해 이야기하기를 좋아하지 않는다.
그들은 도리어 하나님의 영원한 본질과 본성이 되고 있는 하나님의 사랑을 강조한다.

하나님은 사랑이시며 (요일 4: 8), 그것은 전적으로 맞는 일이다.

반면에, 하나님은 항상 옳고 바르시며, 거룩하신 분이시다.

하나님의 진노”는 인간의 죄에 대해 그 같은 공의와 정의의 속성에서 나오는 반응이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바르고 거룩한 본성과 규범에 어긋나는 태도와 행동들을 결코 용납하지 않으시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진노는 인간의 죄에 대한 현세적(現世的) 혹은 영원한 심판의 형태를 취한다,

그러나, 하나님의 진노에 담겨있는 목적은 그의 창조세계를 태초에 의도하신 온전함으로 회복시키는 것이 되고 있다.

      바울은 18절에서 “하나님의 진노가 불의로 진리를 막는 모든 사람들의 모든 경건하지 않음과 불의에 대하여 하늘로부터 나타나나니라고 하였다.

하나님의 진노가 “하늘로부터 나타[난다]”고 한 말에서는 두 가지 중요한 진리가 암시되고 있다.

첫째로, 하나님의 진노를 이해하려면, 우리는 먼저 하나님의 진노의 본질과 목적을 알아야 한다.

하나님의 진노는 이기적이거나 죄 된 것이 아니다.

그러나, 이 진리는 “영적으로 분별되기 때문에,” 성령님께서 우리에게 밝혀주시지 않으면, 우리는 이 진리를 알 수 없다 (고전 2: 12 -14).

둘째로,  “하늘로부터 나타나나니”라는 말은 하나님께서는 그의 의로운 목적을 이루시기 위해 그의 창조물과 적극적으로 관계하고 계심을 암시하고 있다.

제아무리 최상의 것이라 할지라도, 인간의 정의(正義)의 체계는 하나님의 정의에 결코 미칠 수 없다.

그러나 성경은 하나님께서 모든 불의한 인간 통치자들과 체제들에게 그 책임을 물으실 것이라고 약속하고 있다.

결국, 하나님의 공의는 그의 창조세계를 심판하고 승리를 거둘 것이다.

     바울은 계속 선언하기를, 하나님의 진노가 “사람들의 모든 경건하지 않음과 불의”를 대상으로 삼고 있다고 하였다.  

경건하지 않음”으로 번역된 헬라어는 ‘실질적인 무신론,’ 즉 ‘하나님을 전혀 고려하지 않는 삶’을 가리키는 말이 되고 있다.

경건하지 않음”을 따르는 사람들은 하나님이 없다고 말하지 않을 수도 있지만, 그들이 생활하는 것을 보면 하나님을 중요하게 여기지 않을 뿐 아니라, 의식하고 있지 않는 것을 확실하게 알 수 있다.

그들은 하나님을 반대하는 사람들이다.

불의”라는 용어는 하나님께서 율법이나 양심으로 계시하신 도덕적 및 윤리적 표준이나 명령을 거부하는 것을 가리키고 있다.

여기에서 바울의 주의 깊은 표현은 하나님이 없이 불의하게 행하는 행동에 대해 하나님이 그의 진노를 나타내시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19절에서 바울은 “이는 하나님을 알만한 것이 그들 속에 보임이라 하나님께서 이를 그들 속에 보이심이라”는 말로, 모든 사람들은 하나님에 대해 꼭 알아야 될 필수적인 것들의 충분한 증거로 둘러싸여 있다고 하였다.

사람들이 정신 없이 움직이는 도시나 태평한 시골, 혹은 원시적인 정글이나 오지에 살든 간에, 하나님은 그들에게 하나님이 계시는 것과 바로 그 하나님이 그들을 존재케 하신 분이 되고 있음을 보여 주셨다.

알만한 것”이란 말은 모든 사람들이 하나님의 영원하신 본성이나 사실의 모든 측면을 이해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바울은 하나님 앞에서 변명하거나 핑계할 수 없을 정도로 자명한 하나님에 대한 진리에 초점을 맞추었다.

     그래서 그는 20절에서 말하기를,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가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려졌[다]”고 하였다.

이스라엘 백성이 약속의 땅을 향하여 시내 산을 떠나기 전에, 모세는 “주의 영광을 내게 보이소서”라고 하면서 여호와께 그의 영광을 보여주시기를 간청하였다.

그때 하나님은 모세에게 그의 선한 속성들(모든 선한 것)을 나타내고 그의 언약의 이름을 선포하시겠다고 약속하시면서, 덧붙여 말씀하시기를 “네가 내 얼굴을 보지 못하리니 나를 보고 살 자가 없음이니라”고 하셨다 (출 33: 18 -20).     

14 세기가 지난 후에, 예수님은 수가 동네의 야곱 우물 가에서 사마리아 여인에게 말씀하셨다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영과 진리로 예배할지니라” (요 4: 24).

그렇다면, 어떻게 바울은 하나님께서 자신에 대한 분명한 증거를 모든 사람들에게 보여 주셨다고 주장할 수 있었을까?

     바울의 대답은 하나님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가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려[졌다]”는 것이다.

우주보다 더 크고, 지혜롭고, 강한 분이 우주를 존재케 할 수 있는데, 그 분이 바로 하나님이시다.  

바울은 결론으로 말하기를 “그러므로 그들이 핑계하지 못할지니라”고 하였다.  

 

하나님을 허망한 것으로 바꾼 인간 (로마서 1장 21 -23 절)  

 

하나님을 거절한 결과 인간의 생각은 허망하여 지고 마음은 어두워졌다.
인간들은 우상으로 하여금 영원하신 하나님의 자리를 대신하게 하였다.

 

로마서 1장 21 -23절:


●     하나님을 알되 하나님을 영화롭게도 아니하며 감사하지도 아니하고 오히려 그 생각이 허망하여지며 미련한 마음이 어두워졌나니
●     스스로 지혜 있다 하나 어리석게 되어
●     썩어지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영광을 썩어질 사람과 새와 짐승과 기어다니는 동물 모양의 우상으로 바꾸었느니라 


사람들이 하나님의 진리를 거부 할 때마다, 그들은 필연적으로 자신의 행동을 정당화하기 위해 거짓들이나 믿음을 의뢰한다.

하나님의 일반 계시로 인해 인간은 하나님을 알 수 있는데도, 하나님을 인정하려고 들지 않는다.

알다”로 번역 된 헬라어 단어의 어근은 직접적인 경험에서 얻은 지식을 가리킨다.

그러나 본문의 맥락에서, 그 말은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의 관계를 통해 오는 구원의 지식을 의미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 말은 하나님의 창조물들을 직접 경험한 것을 가리키고 있다.

    인간은 처음부터 하나님을 알고 있었다 (창 3: 8).
그러나 죄로 타락한 후, 인간은 하나님을 떠나 자기 중심적이 되었다.

바울은 하나님의 진노가 나타나게 된 주요 이유로, 인간이 하나님께 보인 두 가지 반응을 밝혔다.

첫째로, 그들은 그들의 창조 주를 “하나님”으로 “영화롭게” 하지 아니하였다.      

그들은 하나님을 피하여 숨었고, 그의 존재를 무시하였으며, 그리고 그들의 삶에 대한 하나님의 정당한 주장을 받아들이기를 거부하였다.

둘째로, 그들은 하나님께 “감사하지도” 않았다.   
그것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거나 그의 존재를 인정하기를 거부할 때 나타나는 필연적인 결과가 되고 있다.

누구든지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그리고 어떤 일을 행하시는지를 알면, 자연히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감사하게 마련이다.

     죄는 항상 자기 파멸의 내리막 길이 되고 있다.

바울은 그 같은 현상을 “그 생각이 허망하여지며 미련한 마음이 어두워졌나니”라는 말로 묘사하였다. 

하나님은 인간을 영적인 일을 깨달을 수 있는 놀라운 능력을 가진 존재로 지으셨다.

그러나 죄로 인하여 인간은 더 이상 하나님의 일을 이해할 수 없게 되었고, 영적인 일들을 어리석은 것으로 생각하게 되었다 (고전 2: 12 -14).

구약 성경은 인간의 마음을 감정과 생각과 의지가 자리잡고 있는 곳으로 여겼다. 

열정과 결단력도 마음에서 생겨나는 현상이 되고 있다.

그러므로,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맺지 않고는, 죄 많은 인간은 생각과 마음이 어두워져서 그들의 욕망과 결정은 점점 더 악해지고 있다.

하나님의 영적 빛이 없이는, 그들은 원하는 대로 무엇이나 숭배하였다.

     잠언서 16장 25절은 기술하기를, “어떤 길은 사람이 보기에 바르나 필경은 길이니라”고 한다.

오늘의 본문인 로마서 1장 22절에서, 바울은 하나님을 떠난 사람들이 “스스로 지혜 있다 하나 어리석게 되어 썩어지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영광을 썩어질 사람과 새와 짐승과 기어 다니는 동물 모양의 우상으로 바꾸었느니라”고 하였다.

영적으로 죄악에 물든 상태에서, 그들은 분별력을 잃게 되었고, 결정력도 무디어 졌던 것이다.

실제로, 그들은 “어리석게” 되었던 것이다.

어리석음”에 대한 성경적인 개념은 지적인 어리석음뿐 아니라, 도덕적 및 영적 타락을 가리키고 있다.

     그들의 어리석음의 정도는 그들의 우상 숭배에서 잘 나타나고 있다.

만물을 창조하신 분 대신에, 다른 인간이나 짐승들을 포함하여 창조된 것들을 숭배하는 것은 얼마나 무분별하고 비정상적이고도 왜곡된 일인가!

     오늘날 많은 사람들은 실제의 우상에다 절하는 것을 생각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참되고도 살아있는 창조주 하나님의 존재를 부인하고, 자기 자신이나 다른 것들, 즉 재물이나 권력, 명성 등을 그들의 마음의 제단에 놓고 섬길 때, 그것이 바로 우상 숭배가 되고 있는 것이다.  

 

죄의 상태에 내버려진 죄인들 (로마서 1장 24 -28 절)

 

바울은 죄 많은 인간을 하나님께서 자기 중심의 우상 숭배에 내버려 두사, 하나님과의 관계는 물론 인간 관계의 타락으로 이어지게 된 것으로 특징지었다.

 

로마서 1장 24 -28절:


●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그들을 마음의 정욕대로 더러움에 내버려 두사 그들의 몸을 서로 욕되게 하게 하셨으니
●     이는 그들이 하나님의 진리를 거짓 것으로 바꾸어 피조물을 조물주보다 더 경배하고 섬김이라 주는 곧 영원히 찬송할 이시로다 아멘
●     이 때문에 하나님께서 그들을 부끄러운 욕심에 내버려 두셨으니 곧 그들의 여자들도 순리대로 쓸 것을 바꾸어 역리로 쓰며
●     그와 같이 남자들도 순리대로 여자 쓰기를 버리고 서로 향하여 음욕이 불 일 듯 하매 남자가 남자와 더불어 부끄러운 일을 행하여 그들의 그릇됨에 상당한 보응을 그들 자신이 받았느니라
●     또한 그들이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매 하나님께서 그들을 그 상실한 마음대로 내버려두사 합당하지 못한 일을 하게 하셨으니


불 경건한 죄인들이 계속해서 하나님을 거절할 때, 궁극적으로 그것은 하나님이 그들을 거절하는 결과가 된다.

하나님은 또한, 죄 많은 인간이 하나님의 경고와 징계를 계속 무시할 때, 인간들이 자신의 길을 따르고 자신이 선택한 결과들은 겪게 하신다.

그렇다고 해서, 그 말은 하나님께서 그들을 되찾지 않으신다거나 그들이 용서받을 수 없는 죄를 지었다는 뜻은 아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그들로 하여금 죄와 어리석음의 온 무게를 깊이 느끼게 하신다는 뜻이 되고 있다.

   바울은 죄 많은 인간의 반역과 거역이 그들의 삶의 점점 더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것을 지적하였다.

그 생각이 허망하여 지며 미련한 마음이 어두워졌[던]” 처음의 상태는 (1: 21) “그들의 몸을 서로 욕되게”하는, 특별히 성적 불결을 통하여, 상태로 영향을 미쳤다.

바울은 “욕되게 하다”는 용어를 사용하여 체계적으로 타락해 가는 불 경건한 행동을 묘사하였다.

그 말에서 암시되고 있는 뜻은 죄의 암세포가 가는 곳마다 오염시키며 온 몸에 빠르게 퍼지는 현상이 되고 있다.

바울은 또한 하나님이 없다고 하는 사람들이 “하나님의 진리를 거짓으로 바꾸어 피조물을 조물주보다 더 섬기고 경배하고” 있는 점을 지적하였다.

그들의 마음이 너무 어두워진 나머지 그들은 옳고 그름의 차이를 분별할 수 없게 되었다.

설상 가상으로, 그들은 생각과 마음에서 옳은 것과 잘못된 것을 동일시하기 시작한 것이다.

23절에서 바울은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은 “썩어지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영광을

거짓되고 썩어질 “우상으로 바꾸었느니라”고 했는데, 25절에서는 그 같은 현상을 “피조물을 조물주 보다 더 경배하고 섬김이라”는 말로 표현하였다.

그것은 본질적으로 그들이 창조주의 존재와 권세를 부정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원하대로 하는 것이 어떻게 더 큰 문제를 야기하게 됩니까?

 

     26절의 ‘이 때문에”라는 말은 25절에서 밝힌 죄에 대한 하나님의 반응이 되고 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이 없다고 하며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이 하나님의 계시 된 진리에 따라 살기보다는 사탄의 거짓말을 믿기 때문에, 하나님은 그들을 “부끄러운 욕심에 내 버려두셨[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성적 욕구를 한 남편과 아내 사이의 결혼 언약에 의해 충족되는 것으로 설계 하셨다.

사탄의 거짓말은, 어떤 부끄러운 행위가 되든지 관계없이, 사람들은 자기가 원하는 대로 성적 욕망을 채울 수 있다는 것이다.

바울은 이 정죄에 여자들 (1: 26)과 남자들 (1: 27)의 동성 관계를 포함시켰다.

그는 그 같은 성적 행위를 정죄하여 말하기를, “여자들도 순리대로 쓸 것을 바꾸어 역리로 쓰며” “남자들도 순리대로 여자 쓰기를 버리고 서로 향하여 음욕이 불 일듯 하매 남자가 남자와 더불어 부끄러운 일을 행[한다]”고 하였다.

     주후 1세기 당시에, 바울이 이 서신을 쓰고 있던 고린도나 이 서신의 수신지(受信地)이자 그가 방문하여 복음을 전하고 싶어했던 로마 같은 도시에서는 동성간의 성적 관계를 정상적인 것으로 인정하고 있었다.

바울은 로마에 있는 신자들에게 그 같은 성적인 관계는 사람들이 보기에도 바르지 못하고 수치스러운 일이 될 뿐 아니라, 하나님이 보시기에 “부끄러운” 일이 됨을 상기시켰다.

     바울은 그같이 행하는 사람들이 “그들의 그릇됨에 상당한 보응을 그들 자신이 받았느니라”고 하였는데, 그 말은 온갖 종류의 성적 부도덕은 단순한 하나의 무해한 즐기는 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심각한 도덕적, 정서적, 심지어 육체적인 결과가 따른다는 뜻을 나타내고 있다.

그같이 행하는 사람들은 정서적으로 일생 동안 상처를 받거나 다른 사람들에게 씻지 못할 상처를 줄 수도 있으며, 가장 직접적인 결과로는 성병에 걸릴 수도 있다.

그렇지만, 모든 죄의 행동과 마찬가지로, 가장 심각한 결과는 죄를 회개하지 않는 사람들은 그들의 죄로 죽을 것이며, 그들을 지으시고 그들을 죄 가운데서 구원하시기 위해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신 하나님으로부터 영원히 분리된 상태에 처하게 될 것이라는 것이다.

죄에는 “보응”이 따르게 마련이다.

    1장 28절에서 바울은 다시 “그들이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매 하나님께서 그들을 그 상실한 마음대로 내버려 두사 합당하지 못한 일을 하게 하셨[다]”고 하였다.

바울은 그의 독자들에게 죄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은 유일한 존재인 인간으로 하여금, 하나님께 감사하며 그의 명령에 순종하는 것은 고사하고, 마음에 하나님을 두기를 싫어할 만큼 인간의 마음을 타락시킨 것을 상기시켜 주었던 것이다.

우리의 죄의 본성은 죄의 행동을 낳는다; 그러므로 우리는 필연적으로 “합당하지 못한 일”을 하게 된다.

     바울은, 1장 29절부터 31절에서, 죄로 타락한 마음에서 나타나는 죄 된 태도와 행동들을 열거하였다.

그 목록에는 불의와 탐욕과 시기, 살인과 분쟁, 거짓과 악독, 비방과 교만, 부모를 거역하는 일과 배우자에게 불 성실한 일등이 포함되고 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을 거부하는 일은 모든 삶을, 즉 자신의 삶은 물론 다른 사람의 삶을, 무분별하게 그 가치를 절하시키는 일로 이어지고 있다.

죄는 죽음이라는 한 종착지를 향해서만 달려가고 있다.        
 

사형에 해당하는 죄 (로마서 1장  32절)

 

하나님을 부인하며 거절하는 사람들은 악을 행할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그렇게 하도록 격려한다.

그들은 자신들의 죄에 대한 하나님의 판결이 무엇인지를 알면서도 그렇게 한다.  

 

로마서 1장 32절:


●     그들이 이 같은 일을 행하는 자는 사형에 해당한다고 하나님께서 정하심을 알고도 자기들만 행할 뿐 아니라 또한 그런 일을 행하는 자들을 옳다 하느니라


분별력이 있는 사람들은 “죄의 삯은 사망”이라는 것을 (로마서 6:23) 진정으로 믿는다면, 죄의 길을 회개하려고 들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인류 역사를 통해 이 엄숙한 진리를 인간들에 거듭 거듭 밝혀주셨다.
예를 들면, 모세의 율법으로 (창 2: 17; 출 19: 21), 이스라엘의 선지자들을 통해 (겔 18: 20 참조), 및 성경의 지혜 서들을 통해 (잠 5: 21 -23 참조) 그 같은 사실을 계시해 주셨다.
바울이 이 구절에서 강조하고 있는 것은 사람들이 죄의 노예가 되어 분별력을 잃음으로, 죄에 대한 하나님의 정당한 판결을 알면서도 어쨌든 “이 같은 일”을 행하고 있다는 것이다.
     설상가상으로, 회개치 않는 자들은 자신들만 죄를 범할 뿐 아니라, “또한 그런 일을 행하는 자들을 옳다”고 하면서 두둔하기까지 하였다.
죄는 무리를 짓는 것을 좋아한다.
그러나 죄의 결과에 대한 하나님의 경고는 태초 때와 마찬가지로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하다.
각 사람은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서 “사형에 해당한다”고 유죄 판결을 받을 수 밖에 없다.
     그런데 감사한 것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의 처형을 받으심으로 모든 죄인들의 죄 값을 치러주신 일이다.

우리의 응답은 1)우리의 죄를 회개하고 (행 3: 19), 2) 예수님을 믿고 (행 16: 31), 3) 그를 주와 구세주로 마음에 영접하는 것이다 (요 1: 12).

이것들은 단 하나의 믿음의 세 가지 측면이 되고 있다.

그리스도를 통해, 우리는 용서받은 하나님의 자녀로서 겸손한 마음으로 믿음과 확신을 가지고 심판대 앞에 설 수 있다.  

 

 

말씀을 나의 상황에 적용하기:


●     하나님은 그의 창조 역사 속에서 자신을 계시하신다.
●     하나님의 진리를 거절하면, 생각이 허망해 지고 마음이 어두워진다.          
●     하나님을 거절하는 것은 삶의 가치를 떨어뜨리는 일이 된다.
●     하나님을 공경하지 않으면 사형 선고가 정당화된다.     

 


당신은 어떤 방법으로 죄에 눈이 멀었던 적이 있습니까?
당신은 하나님이 필요한 것을 어떻게 깨닫게 되었습니까?
당신은 다른 사람들도 하나님이 필요함을 깨닫도록 어떻게 도와줄 수 있습니까?

 

당신의 지역 사회에서 어둠이 판을 치고 있는 곳은 어디입니까?
어떻게 그 같은 장소에 하나님의 빛이 비취게 도울 수 있습니까?

 

 

이 장년 성경연구 지도자 교재는 LifeWay에서 출간하여 보급하고 있는 Explore the Bible 교과과정의 학생용 한국어 교재를 가르치고 배우는데 도움이 되도록, 강 호길 목사가 LifeWay의 허락을 받아 영어 지도자 교재를 번역 및 편집한 것입니다.
그같이 허락한 LifeWay에 감사를 드립니다.
장년 성경연구 한국어 학생 교재는 LifeWay에서 주문하여, 장년 주일학교 시간에 혹은 목장이나 구역 모임에서 성경공부 교재로 사용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