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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에 사로 잡힌 삶 - 제 1과 - 2020년 3월 1일 주일 장년성경연구 - 로마서 1장 1 -7, 13 -17절

글쓴이 : 강호길 날짜 : 2020-02-23 (일) 13:42 조회 : 34

장년성경연구 지도자 교안

2020년 3월 1일 주일 용
번역 및 편집: 강 호길   

 

제 1과

 

 

복음에 사로 잡힌 삶               

 

 

학습구절: 로마서 1장 1 -7, 13 -17절  

 

성경진리:

신자들은 사람을 변화시키는 복음에 사로 잡혀 다른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한다.             

 

주요교리: 하나님 아버지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자녀가 된 사람들에게 진실로 아버지가 되신다 (요 14: 6 -7).

 

암송구절:  로마서 1장 16절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먼저는 유대인에게요 그리고 헬라인에게로다   

“For I am not ashamed of the gospel,

because it is the power of God

that brings salvation to everyone who believes:

first to the Jew, then to the Gentile.”  

 

 

시작하는 글:

 

우리의 삶 속에서 일어나고 있는 중요한 일이나 사건들에 대해 생각해 보자.

생일이 되면, 우리는 생일을 축하하는 파티를 연다

결혼식을 하면, 우리는 가까운 사람들을 결혼식에 초청하는 초대장을 보낸다.

아이들이 태어나면, 우리는 주위사람들에게 이를 알린다.

삶을 변화시키는 순간이나 일을 다른 사람들에게 알리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다른 사람들이 함께 축하해 줄 때 기쁨은 배가 된다.

우리가 받은 구원은 우리의 삶 속에서 다른 어떤 극적인 사건들이 할 수 없는 방법으로 우리의 삶을 변화시킨 것으로 축하할 일이다.

그렇지만, 솔직하게 말해보자.

우리는 그것을 다른 사람들과 함께 기뻐하고 축하하기보다는 우리들 자신의 것으로만 삼으려는 경향이 있다.

바울은 로마 교회의 성도들이 그같이 하는 것을 원치 않았다.

그는 로마 사람들이 복음을 받아들이고 그 복음을 다른 사람들에게 전하기를 원하였다.

 

당신이 축하한 가장 최근의 일은 무엇이 되고 있습니까?

그것을 어떻게 축하하고 기념했습니까?

 

 

본문 배경설명

 

로마서 1장 1절부터 17절까지

 

     우리는 앞으로 3개월 (3, 4, 5월) 동안, 사도 바울이 로마 교회에 써 보낸 “로마서”를 학습하며 가르치게 된다.  
사도 바울이 편지를 써 보낸 다른 교회들과는 달리, 로마 교회는 바울이 설립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로마서를 쓸 당시에도 그는 그곳 교인들을 만난 적이 없었다.

바울은 그들을 직접 만나고 싶은 간절한 마음이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그들을 만날 수 있는 기회를 얻지 못하였다 (로마서 1: 9 -12).

15장 22절부터 24절의 기록을 보면, 바울은 “서바나”로 가는 새로운 선교 여행을 계획하고 있었으며, 가는 도중에 로마에 들려 그곳 교인들을 만나기를 소원했던 것이 분명하다.

그런데 누가는 사도행전에서 설명하기를, 바울은 로마에 죄수의 몸으로 갔으며 가이사 앞에서 재판을 받을 때까지 거기서 가택연금 상태로 살았다 (행 28: 11 -31).

     로마서는 바울의 가장 긴 서신의 하나가 될 뿐 아니라, 또한 신학적으로 대단히 강한 서신이 되고 있다.

1장부터 8장까지인 서신의 전 반 전체를 통해, 바울은 구원의 신학을 질서정연하고도 논리적으로 간략하게 설명하였다.

그는 인간의 죄의 본성과 구세주의 필요성을 확립하는 것으로 시작하였다.

그런 다음, 그는 왜 그리스도가 죄 많은 사람들에게 유일한 소망이 되고 있는지를 밝히고 신자들의 삶에서 나타나고 있는 하나님의 사랑과 임재에 대한 확신의 말로 전반부를 끝내고 있다.

     9장부터 11장까지에서 바울은 이스라엘의 구원과 관련된 신학적인 문제들을 다룬 후에, 서신의 나머지 부분에서는 앞에서 제시한 신학적인 가르침에 기초한 실질적인 삶의 문제들을 다루고 있다.

바울은 그리스도와의 새로운 관계에는 새로운 윤리기준이 요구되고 있는 것을 인식하였다.

교회를 구성하는 개인들은 주위의 세상과 구별된 삶을 살며 다르게 행동해야 하였다.

그 같은 뜻은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고 한 12장 2절의 말씀에 잘 반영되고 있다.   

그러한 행동과 삶은 다른 사람들을 구세주께로 인도하는 요인이 되고 있다.

     로마서 1 장 1절부터 17 절까지는 다음의 몇 장을 가르칠 무대를 설정하고 있다.

바울은 독자들이 복음의 능력에 초점을 맞추기를 원하였다.

개인적으로, 그는 하나님께서 복음을 통해 자신의 삶에서 행하신 일을 부끄러워하지 않았다.

그는 또한 “온 백성에게 미[치는]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을 [전하는]” (눅 2: 10) 전달자의 역할을 기꺼이 받아 들였다.

복음을 통해, 불신자들은 하나님의 의(義)와 구원을 베푸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게 된다.

 

성서에서 로마서 1 장 1 -7절과 13 -17절을 읽으십시오.

그들 구절에서 바울이 그리스도를 어떻게 묘사하고 있는지를 살펴보십시오.

그것은 당신이 예수님에 대해 생각하고 있는 것과 어떻게 다른지 말해 보십시오.

 

 

학습구절 연구

 

복음에 대한 설명 (로마서 1장 1 -7절)  

 

바울은 자신을 예수 그리스도의 “부르심”을 받고 “택정함”을 입은 “”과 “사도”로 소개하였다.
그는 또한 복음을, 하나님에 의해 약속되었고, 그리스도 안에서 발견할 수 있으며, 부활의 사건으로 입증되었고,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으로 설명하였다.

사도 바울은 이 서신을 로마에 있는 신자들에게 보냈는데, 특별히 그들은 이방인 그리스도인들이 되고 있다.

 

로마서 1장 1 -4절:


●     예수 그리스도의 종 바울은 사도로 부르심을 받아 하나님의 복음을 위하여 택정함을 입었으니
●     이 복음은 하나님이 선지자들을 통하여 그의 아들에 관하여 성경에 미리 약속하신 것이라
●     그의 아들에 관하여 말하면 육신으로는 다윗의 혈통에서 나셨고
●     성결의 영으로는 죽은 자들 가운데서 부활하사 능력으로 하나님의 아들로 선포되셨으니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시라   


     바울은, 고대 서신의 전형적인 형태를 따라, 서두에서 자신의 이름을 밝혔다.

바울은 독자들에게 단지 자기의 이름을 알릴 뿐 아니라, 그들이 자기가 누구인지를 알기를 원하였다.

     그래서 바울은 먼저 자신을 “예수 그리스도의 종”으로 소개하였다.

바울은 자신을 다른 사람에게 예속되어 있는 사람인 “” 혹은 “노예”로 생각하였다.

노예제도는 구약 시대와 마찬가지로 1 세기에 널리 퍼져있었다.

율법은 히브리인 종들을 두고 있는 주인들에게, “너는 애굽 땅에서 종 되었던 것과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속량하셨음을 기억하라”고 하면서, 종들을 공정하고도 자비롭게 대하며 궁극적으로 자유를 줄 것을 요구하였다 (출 21: 2; 신 15: 12-15 참조).

율법은 또한 이스라엘 종들이 평생 동안 종으로 남아서 주인을 섬기기를 원하면 그같이 하도록 허용하였다.

종이 스스로 선택해서 그 같은 결정을 한다면, 주인은 송곳으로 종의 귀를 뚫어 영구히 종이 된 표식으로 삼았다 (신 15: 16 -17).

바울이 비유로 사용한 종이라는 말을 가장 장 묘사해주고 있는 것은 바로 스스로 원해서 평생 동안 주인을 섬기기로 결정한 경우가 되고 있다.

그런데, 여기서 사도 바울이 사용한 것으로, “”으로 번역된 헬라어는 “노예”라는 용어로,

그 말에서는 다른 사람의 소유물로 그 주인에게 전적인 충성심을 지고 있는 뜻이 강조되고 있다.

그 용어를 사용했을 때, 사도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를 주인으로 모시고 그에게 전적인 충성을 다 하겠다는 뜻을 나타냈던 것이다.

     그런 다음, 바울은 자신을 “사도”로 소개하면서,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로 부르심”을 받았다고 하였다.

그는 자신의 노력으로 자격을 얻거나 지위를 얻어서 혹은 스스로 선언하여 사도가 되지 않았다.

헬라어로 사도라는 말에는 “보냄을 받다”라는 뜻이 담겨 있다.

따라서, 사도는 권한을 갖고 있는 다른 사람에 의해 어떤 임무를 받고 보냄을 받은 사람이다.

그 용어는 단순한 전달자, 청지기 또는 대사를 뜻할 수 있었다.

예수님은 그 용어를 그가 보내어 복음을 전파하고, 가르치며, 그의 이름으로 병을 고치게 한 열 두 제자들을 지칭하는 용도로 사용하였다 (마 10: 1 -4; 막 6: 7 -13; 눅 6: 12 -16).

그들 중 몇 사도는 초대 교회의 지도자가 되었고 성경 저자들이 되었다.

바울은 열 두 사도의 하나가 아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그리스도께서 자기를 사도로 불러주시고 하나님의 복음을 위하여 “택정[해 주셨다]”고 주장하였다.     

    바울은 자신의 사명을 “하나님의 복음”으로 밝혔다.

우리는 보통 복음을 예수님의 “큰 기쁨의 좋은 소식”으로 생각하지만 (눅 2: 10), 바울은 그 복음이 본래 하나님 아버지에게 속한 것을 알고 있었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하나님의 기쁨의 좋은 소식이 되고 있는 것이다.

그 목적과 사명을 위해, 바울은 부름과 택정함을 받았던 것이다.

     복음이 그리스도 안에서 계시되었고, 당시 1 세기에 그의 사도들에 의해 선포되고 있었지만, 그것은 그 당시에 급조된 것이 아니었다.

이 복음은 하나님이 선지자들을 통하여 그의 아들에 관하여 성경에 미리 약속하신 것”이 되고 있다.

성경에 미리 약속하신 것”이라는 말은 구약성경을 가리키고 있다.

구약성경에는 사람들을 죄로부터 구원하기 위하여 메시야가 오실 것을 예시하거나 직접 예언하고 있는 수 많은 구절들이 담겨 있다.

그뿐 아니라, 바울은 그의 서신 전체에 걸쳐 구약의 말씀들을 인용하여 복음이 처음부터 하나님의 구원의 계획이 되고 있음을 보여 주고 있다 (예로, 1: 17; 3: 10 -18; 4: 3; 8: 36; 9: 25 -29; 11: 8 -10, 26 -27; 12: 20; 14: 11; 15: 9 -12).

     기쁨의 좋은 소식은 “그의 아들에 관[한]”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들을 포함하고 있다.

먼저, 바울은 “그의 아들에 관하여”라는 말로,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 됨을 단언하였다.

그 말에서는 이전부터 존재해 있는 예수님의 신성이 강조되고 있다.

그는 태초부터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며, 그는 곧 하나님이시다 (요 1: 1).

     그런 다음, 바울은, “육신으로는 다윗의 혈통에서 나셨고”라는 말로, 예수님이 다윗의 후손이 되고 있음을 지적하였다.

그것은 예수님이 인간의 본성을 지니신 완전한 인간이 되시는 것과 다윗 왕에게 하신 메시야에 대한 하나님의 약속이 성취된 것을 나타내 주는 말이 되고 있다 (예를 들어, 삼하 7: 16; 시 2: 6 -7; 사 9: 7 참조).

      마침내, 바울은 예수님이 “죽은 자들 가운데서 부활하사 능력으로 하나님의 아들로 선포되었으니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시니라”고 하였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신과 인간이 되시는 독특한 분으로, “메시야”가 되시며 “하나님의 아들”이 되신다.

예수님이 다윗 왕의 혈통에서 태어나신 것은 “육신으로” 되어진 것에 반해, 그의 부활은 “성결의 영”으로 되어진 것이 되고 있다.           

바울은 인간인 그리스도의 육체적인 본성과, (그는 죄가 없으셨으므로 육신의 소욕이 아니라), 영광스럽게 부활 된 상태를 대조시키고 있었던 것이다.

 

로마서 1장 5 -6절:


●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은혜와 사도의 직분을 받아 그의 이름을 위하여 모든 이방인 중에서 믿어 순종하게 하나니
●     너희도 그들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것으로 부르심을 받은 자니라  


바울은 그의 사도의 직분이 자신의 개인적인 공로나 노력의 결과가 아니라는 것을 인정하였다.

그는 고백하기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의 은혜를 입어 “사도의 직분을 받[았다]”고 하였다.

하나님의 은혜는 바울의 구원뿐만 아니라(엡 2: 8), 그의 사도직분에도 필수적인 중요한 요소가 되었다.

바울은 사도의 직분과 역할을 하나님께서 주시는 선물로 받았던 것이다.

     바울을 구원하고 부르신 하나님의 목적은 많은 사람들, 특별히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이 되고 있다.

“이방인”이라는 용어는 유대인이 아닌 모든 사람들 그룹들을 포함하고 있다.

사역 초기에는, 바울은 복음을 주로 유대인들에게 전파하였다.

그들에 의해 거부를 당하자, 바울은 자신의 궁극적인 선교 대상자들인 이방인들에게로 옮겨 갔다.

이 확장 된 사역은 모든 이방인들을 믿음에서 오는 순종으로 부르는 일이 되었다.

그들은 행함을 위한 순종이 아니라, 믿음의 순종을 나타냈던 것이다.

순종은 믿음에 속해 있으며, 믿음을 떠나서는 지정한 순종을 경험할 수 없다.

     바울은 로마 교회를 구성하고 있는 유대인과 이방인 그리스도인들에게 똑같이 편지를 썼다.
바울은 이방인 그리스도인들에게 “너희도 그들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것으로 부르심을 받은 자니라”고 하였다.

구원은 유대인 그리스도인들의 독점적인 소유물이 아니었다.

 

로마서 1장 7절:


●     로마에서 하나님의 사랑하심을 받고 성도로 부르심을 받은 모든 자에게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은혜와 평강이 있기를 원하노라   


서신의 서두를 장식하는 인삿 말의 일부로, 바울은 “로마에서 하나님의 사랑하심을 받고 성도로 부르심을 받은 모든 자에게”라는 말로, 편지의 수신자를 밝히고 그들에게 축복을 기원하였다.

     먼저, 바울은 수신자들을 ‘로마에서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모든 자]”로 불렀다.

1 세기 당시의 로마의 인구는 거의 50 만 명에 달하였다.

대다수의 시민들은 그리스-로마 신들이나 황제를 숭배하는 이교도 사원에서 예배를 드렸다.

기독교의 가정교회들은 비교적 수가 적었으며, 신자들은 종종 경멸의 대상이 되었고 때로는 공공연히 박해를 받았다.

바울은 그 같은 로마 교회의 신자들에게 하나님께서 그들을 사랑하시고 계시는 사실을 일깨워주기를 원하였다.

     다음으로, 바울은 수신자들을 “성도로 부르심을 받은 모든 자”로 불렀다.

성도”로 번역 된 헬라어 단어의 문자적인 뜻은 "거룩한 자"이다.

그 단어는 또한 "따로 구별된 자” 혹은 “따로 세움을 받은 자”로 번역될 수 있다.

신자들은 본래 거룩하지 않다.

그러나, 믿는 자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새 사람으로 다시 태어날 때, 내재하시는 성령님의 능력으로 거룩해지며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따라 거룩한 삶을 살 수 있다.

그래서 사도 베드로는 갓 믿기 시작한 신자들에게 “오직 너희를 부르신 거룩한 이처럼 너희도 모든 행실에 거룩한 자가 되라”고 하고 (벧전 1: 15), 구약의 말씀을 인용하여 이를 뒷받침 하였다 (레 11: 45).

     그런 다음 바울은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은혜와 평강이 있기를 원하노라”는 말로 로마에 있는 성도들에게 축복을 기원하였다.

 

 

로마서의 주제

복음은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으로 그리스도 예수를 믿는 모든 사람들의 삶을 근본적으로 변화시켜 준다 (1: 16).

복음에 대한 바울의 열심은 첫 구절에서부터 서신의 끝까지 나타나고 있다.

그는 불신자들에게 복음을 선포하기 위해 택정함을 받았으며 (1: 1); 그 복음은 로마에 있는 성도들을 견고하게 할 것이다 (16: 25).

 

 

복음의 빚 (로마서 1장 13 -15절)

 

바울은 로마에서 복음을 전하고자 하는 강한 욕구를 표명하였다 (1: 8 -12 참조).
이방인의 사도로서, 바울은 그리스도의 메시지를 이방인들이 우세한 곳으로 가져갈 의무를 느꼈다.

 

로마서 1장 13절:


●     형제들아 내가 여러 번 너희에게 가고자 한 것을 너희가 모르기를 원하지 아니하노니 이는 너희 중에서도 다른 이방인 중에서와 같이 열매를 맺게 하려 함이로되 지금까지 길이 막혔도다


     전도자와 교회 개척자로서, 바울은 그의 사역 계획이 빨리 그리고 자주 바뀔 수 있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로마로 가서 그곳 성도들을 만나고 복음을 전하려는 계획은 그가 해야 할 목록에 계속 남아 있었다.

바울이 개인적으로 아는 로마의 신자들도 제국의 수도인 로마를 방문하도록 강력히 권했던 것으로 보인다.

바울은 그들에게 “내가 여러 번 너희에게 가고자 한 것을 너희가 모르기를 원하지 아니하노니” 라고 하면서, 그러나 “지금까지 길이 막혔도다”고 하였다.

바울은 그같이 길이 막히게 된 이유를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았다.

어떤 때는 성령님이 그의 계획을 바꾸어 주었을 수 있다 (행 16: 6 -10 참조).

다른 때는 바울의 계획이 병에 걸리거나, 투옥되거나, 위기에 처한 교회를 돌보는 등 예기치 않은 사건에 의해 영향을 받았을 수 있다.

     바울은 로마에서 유대인 신자들 중에서뿐 아니라, 특별히 이방인 신자들 중에서도 자신의 사역이 “열매를 맺게” 될 것을 기대하고 있었다.

결국 그는 헬라-로마 문화가 지배하는 다른 도시들 (예를 들어 고린도와 에베소등)에서 “다른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가르치는 사역을 효과적으로 했던 것이다.           

바울은 성령님께서 로마에 있는 이방인들 중에서도 자기를 효과적으로 사용하실 것을 확신하고 있었다.    

 

로마서 1장 14 -15절:


●     헬라인이나 야만인이나 지혜 있는 자나 어리석은 자에게 다 내가 빚진 자라
●     그러므로 나는 할 수 있는 대로 로마에 있는 너희에게도 복음 전하기를 원하노라


     여기서 바울은 자신의 소명의식을 청지기 직분의 관점에서 표현하였다  (고전 4: 1 -2 참조).
그는 “헬라인이나 야만인이나 지혜 있는 자나 어리석은 자에게 다 내가 빚진 자라”고 하였다.

바울은 그들 모두에게 무슨 빚을 지고 있었는가?

바울은 그들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좋은 소식을 전할 빚을 지고 있는 것으로 생각했던 것이다.

즉 바울은 자신을 ‘복음의 빚진 자’로 생각했던 것이다.

복음은 단지 유대인들만이 아니라 모든 민족과 종족을 위한 것이 되고 있다.

은혜에 의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말미암는 구원의 메시지는 유대인들에게 먼저 전해졌지만, 그것은 거기서 멈추어 지게 계획된 것이 아니다.

초대 교회는 성령님의 능력을 힘 입어 모든 곳의 모든 그룹의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일을 하였다 (행 1: 8; 10: 34 -35, 44 -45; 13: 2 -3).  
따라서, 바울은 나중에 로마서에서 이렇게 물었다 (롬 10: 14 -15):

그런즉 그들이 믿지 아니하는 이를 어찌 부르리요 듣지도 못한 이를 어찌 믿으리요 전파하는 자가 없이 어찌 들으리요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으면 어찌 전파하리요.”

은혜에 의해 자신이 받은 구원에 대해 깊이 감사하는 마음에서, 바울은 이방인들 중에서 그리스도의 분부를 완수해야 할 의무와 책임을 기쁜 마음으로 받아들였다.

     “헬라인이나 야만인이나 지혜 있는 자나 어리석은 자에게”라는 말은 바울이 복음을 가지고 추구하고 있는 그룹들이나 사람들에게 인위적인 제한을 두지 않고 있음을 강조하고 있다.

헬라인”이라는 용어는 단순히 바울 시대에 헬라 언어와 문화를 받아 들인 사람들을 가리킬 수 있었다.  

스펙트럼의 다른 쪽 끝에는 헬라인이나 유태인의 언어와 문화와 아무 관계가 없는 많은 그룹들과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도 복음의 메시지를 들을 기회를 가질 자격이 있다.

     그리스도께 복음의 빚을 지고 있다는 강한 부채 감과 복음을 들을 필요가 있는 모든 사람에 대한 책임감으로 인해, 바울은 로마에 있는 사람들에게도 복음을 전해야겠다는 간절한 마음을 떨쳐버릴 수 없었다.

그래서 그는 말하기를, “나는 할 수 있는 대로 로마에 있는 너희에게도 복음을 전하기를 원하노라”고 하였다.

     오늘날의 신자 들로서, 우리는 그리스도에 대해 아직 듣지 못한 사람들에 대해 어떤 의무감과 책임감을 느끼고 있는가?

바울이 이 구절에서 나타낸 심정을 깨달을 때, 우리도 “할 수 있는 대로” 복음을 전하는 일에 힘써야겠다는 동기를 부여 받게 된다.

우라는 기도로, 헌금으로, 섬기는 일로, 또는 가서 복음을 전하는 것으로 전도할 수 있다.

 

선포된 복음 (로마서 1장  16 -17절)

 

바울은 오직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통해만 하나님의 의가 나타난다는 사실을 선언하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고 하였다.

 

로마서 1장 16 -17절:


●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먼저는 유대인에게요 그리고 헬라인에게로다
●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 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


     고린도 전서 1장 23절과 24절에서, 바울은 말하기를, “우리는 십자가에 못박힌 그리스도를 전하니 {표적을 구하는} 유대인에게는 거리끼는 것이요 [지혜를 찾는] 이방인에게는 미려한 것이로되 오직 부르심을 받은 자들에게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니라”고 하였다.

실제로, 바울과 다른 신자들은 때때로 복음을 전하는 일로 인하여 적대와 박해에 직면하였다.
그 같은 적대와 박해로 인해 어떤 신자들은 두려움에 떨거나 믿음을 숨기려 들었다.

그런데, 바울은 복음을 선포하는데 따르는 박해의 상처를 기꺼이 감수하기를 원하였다 (갈 6: 17).

     그런데, 바울은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라고 하면서 자신이 그 같은 확신을 가지고 부끄러워하지 않는 이유를 짧은 한 마디 말로 설명하였다.

첫째로, 바울은 복음이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고 하였다.

인간을 순종이나 죄를 선택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존재로 창조하신 하나님께서, 원하시면, 인간이 죄를 선택한 후에 그들을 구원 할 수 없으셨을까?

이에 대해 복음은,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죽으셔서 죄의 값을 치러주심으로, 그같이 하실 수 있으셨다고 대답한다.

둘째로, 복음은 “모든 믿는 자”들에게 주어지는 은혜의 선물이 되고 있다.

구원은 하나님의 용서와 회복의 능력이 죄인의 겸손한 회개와 믿음을 만나는 곳이 되고 있다.

셋째로, 믿음을 통해 전해지는 은혜의 복음은 “먼저는 유대인에게요 [다음으로는] 헬라인에게로” 미치고 있다.

승천하시기 전에 제자들에게 분부하실 때, 예수님은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내 중인이 되라고 하시면서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가기 전에 먼저 “예루살렘과 온 유대”에서부터 증인의 역할을 하라고 하셨다 (행 1: 8).

후에 바울은 지적하기를, 선을 행하는 자들에게는 축복과 악을 행하는 자들에게는 심판이 있을 터인데, “먼저는 유대인에게요 그리고 헬라인에게라”고 하였다 (롬 2: 9 -10).       

     “모든 믿는 자”라는 말은 똑같이 포괄적이고도 배타적인 성격이 되고 있다.

복음은 인종이나 성별 또는 사회적 지위에 관계없이 모든 사람을 위한 것이라는 점에서 포괄적이다.

반면에, 그 말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는다고 말하지 않는다.

예수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믿는 자들만이 구원을 얻는다는 점에서 복음은 배타적이다.

예수님을 믿는다는 말은 죄에서 돌아서서 예수님을 온전히 그리고 전적으로 믿는 것을 뜻한다.

     17절은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라는 말로, 복음이 “하나님의 의”를 나타내고 있는 점을 밝히고 있다.

바울은 로마서 3장 21 -26절에서 이 진리를 더 자세히 설명하였다.

바울은 먼저 21절과 22절에서 “이제는 율법 외에 하나님의 한 의가 나타났으니 율법과 선지자들에게 증거를 받은 것이라”고 하면서, “곧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모든 믿는 자에게 미치는 하나님의 의니 차별이 없느니라”고 하였다.

그런 다음 25절과 26절에서 말하기를, “이 예수를 하나님이 그의 피로써 믿음으로 말미암는 화목제물로 세우셨으니,” 이는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사 자기도 의로우시며 또한 예수를 믿는 자를 의롭다 하려 하심이라”고 하였다.

     다시 말해서, 예수님이 우리의 죄를 위해 십자가에서 자신을 주셨을 때, 복음은 그 것이 하나님께서 죄에 대한 대가를 지불해야 하는 그의 의로운 요구를 충족시키신 일이 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죄인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때, 하나님은 더 이상 그들이 죄가 있다고 하시지 않고, 그들을 그리스도 안에서 의롭다고 선포하신다.

그것은 놀라운 복음의 은혜가 되고 있다.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라는 말은 단순히 하나님께서는 죄인들에게 그들의 믿음을 통해 자신의 의를 덧입혀 주신다는 뜻이 되고 있다.

믿음으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신뢰하며 그를 구세주로 영접한다 (요 1: 12; 롬 3: 22).

     17절의 끝맺는 말인,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라라”는 말은 하박국 2장 4절을 인용한 것이다.

바울은 한 구약선지자의 말을 빌려 믿음으로 구원을 받는 것뿐만 아니라 믿음으로 사는 것의 그  중요성을 강조하였다.

 

 

말씀을 나의 상황에 적용하기:


●     복음에는 진리가 나타나고 있다.           
●     진리를 알고 있는 믿는 자들은 아직 진리를 모르는 사람들에게 전해야 할 의무와 책임이 있다.         
●     진리는 믿는 사람들에게 확신과 담대함을 갖게 한다.    

 

예수님에 대해 잘못 알고 있은 것들이 있습니까?
잘못 알고 있은 것들이 있다면, 바울이 복음에 대해 설명한 것을 가지고 그것들을 어떻게 바로 잡을 수 있습니까?  

당신의 성경 공부 반이 더 효과적으로 복음을 전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해 토론하십시오.
당신의 반은 교회가 복음을 전할 목적으로 벌리고 있는 전도활동을 어떤 방법으로 지원할 수 있습니까?

복음이 당신의 삶을 어떻게 변화시켜 주었습니까?
당신을 그 같은 변화를 누구에게 말해 줄 수 있습니까?

 

 

로마서 공부 

이번 주일부터 우리는 앞으로 3개월 동안 (3, 4, 5월) 로마서를 공부하게 됩니다. 


      

이 장년 성경연구 지도자 교재는 LifeWay에서 출간하여 보급하고 있는 Explore the Bible 교과과정의 학생용 한국어 교재를 가르치고 배우는데 도움이 되도록, 강 호길 목사가 LifeWay의 허락을 받아 영어 지도자 교재를 번역 및 편집한 것입니다.
그같이 허락한 LifeWay에 감사를 드립니다.
장년 성경연구 한국어 학생 교재는 LifeWay에서 주문하여, 장년 주일학교 시간에 혹은 목장이나 구역 모임에서 성경공부 교재로 사용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