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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혜롭게 행하라 - 제 11과 - 2019년 11월 10일 주일 장년성경연구 - 에베소서 5장 15-21절

글쓴이 : 강호길 날짜 : 2019-11-04 (월) 10:50 조회 : 37

장년성경연구 교사용 교안

2019년 11월 10일 주일 용  


제 11과



지혜롭게 행하라         



학습구절: 에베소서 5장 15 -21절


성경진리:  

신자들은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따라, 지혜롭게 행해야 한다.     


주요교리: 성 령    

거듭남의 순간에 성령님은 모든 믿는 자에게 침례를 베풀어 주셔서 그리스도의 몸의 지체가 되게 해 주신다 (갈 4: 6).


암송구절:  에베소서 5장 18절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으라     

“Do not get drunk on wine, which leads to debauchery.

 Instead, be filled with the Spirit.”   


시작하는 글:


만일 당신이 알지 못하는 아주 먼 한 지역에 여행을 가게 되었는데, 그리고 길을 안내해 주는 수단으로 단 한가지의 방법에만 의존할 수 있다면, 당신은 어떤 것을 선택할 것인가?

다시 말해서, 지도, 혹은 GPS 장치, 아니면 그 지역에 여행 오는 사람들을 안내하는 경험 있는 안내자가 있다면, 당신은 그 중에서 어떤 것을 택하겠는가?

지혜 있는 선택은 당신에게 가장 적합한 길과 장소가 어디인지를 잘 알고 있고 직접 인도해 줄 수 있는 안내자일 것이다.


당신은 여행을 계획 할 때 누구의 혹은 어떤 것의 도움을 받는가?     

그것이 신뢰할만한 출처라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는가?



본문배경설명


에베소서 5장 15절부터 21절까지


바울은 이 단원에서 술에 취한 사람들과 성령으로 충만한 사람들을 대조시키고 있다.

이것은 성경에서 그 같은 대조 혹은 비유가 이루어지고 있는 유일한 경우는 아니다.

오순절 날, 제자들이 한 곳에 모여있을 때 성령님이 강림하여 “그들이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언어들로 말하기 시작하[였다]” (행 2: 1 -4).

그 때 어떤 사람들은 그들이 “새 술에 취하였다”고 하였다 (행 2: 13).

구약에서, 한나가 여호와의 집에 올라가 아들을 낳게 해 달라고 기도하고 있을 때, “한나가 속으로 말하매 입술만 움직이고 음성은 들리지 아니하므로” 이를 지켜보고 있던 제사장 엘리는 한나가 술에 취한 줄 생각하였다 (삼상 1: 1: 13)

     성경은 술 취하지 말라고 경고한다.

술 취한 증상으로 성경에 언급되고 있는 몇 가지를 예로 다음과 같이 들 수 있다.

비틀거리며 지각이 혼돈 속에 빠진다 (시 107: 27), 토한다 (사 19: 14), 환각 상태에 빠진다 (잠 23: 33).

술에 취하는 것으로 인한 훨씬 더 심각한 부작용은 그것이 하나님께 대한 감각을 무디게 만드는 것이 되고 있다 (사 5: 11 -12).

술을 마시지 말라는 경고는 음주의 부정적인 영향이 그 이유가 되고 있다.

현대 사회에서는 음주로 인해 자동차 사고와 생명을 앗아가는 불상사가 많이 일어남으로 사회적 문제와 법적 문제가 되고 있다.

     성경에서 술에 취한 것으로 언급 되고 있는 몇 사람을 예로 들면, 노아 (창 9: 21), 롯 (창 19: 33), 나발 (삼상 25: 36), 헷 사람 우리아 (삼하 11: 13), 이스라엘 왕 엘라 (왕상 16: 9), 그리고 아람의 벤하닷 왕 (왕상 20: 16) 등을 꼽을 수 있다.

그들의 각 경우에, 그들이 취한 상태에 있었을 때 혹은 술에서 깨어난 직후에 불행한 일이 그들에게 닥쳤다.

그러므로, 성경은 그 전체를 통해 술 취하지 말라고 분명하게 경고하고 있다 (레 10: 9; 신 21: 20; 잠 23: 29 -35; 고전 5: 11; 갈 5: 21; 엡 5: 18).

술 취하는 일에는 부정적인 결과가 따르지만, 성령으로 충만하면 반대의 결과가 나타난다.

        성령님은 사도 행전 2장 1-4 절에서 초대 교회 신자들에게 임하셨다.
그것은 하나님의 성령이 신자들에게 최초로 임하신 경우가 되고 있다.
베드로와 다른 신자들은 성령이 충만했던 것으로 묘사되고 있다 (행 4: 8, 31).
하나님께서 처음으로 그의 성령을 이방인들에게 부어주셨을 때, 그들은 오순절 날 믿는 자들과 마찬가지로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았다 (행 10: 47).
교회는 예수님의 십자가의 보혈을 통해 하나님과 새로운 언약을 맺었고, 내주하시는 성령님을 통해 하나님과 새로운 관계를 맺었다.


지혜 있는 사람이 되라 (5장 15 -17절)


바울은 그의 독자들에게 시간을 사용하는 문제를 포함하여, 모든 일을 지혜롭고도 책임 있게 그리고 주의하여 행해야 될 필요성에 대해 경고해 주고 있다.

신자들은 매일을 하나님의 뜻에 따라 살아야 할 의무와 책임이 있기 때문이다.  


5장 15절


●   그런즉 너희가 어떻게 행할지를 자세히 주의하여 지혜 없는 자 같이 하지 말고 오직 지혜 있는 자 같이 하여

빛과 어두움을 대조(對照)한 후에(5: 6 -14), 바울은 지혜와 어리석음을 대조하기 시작하였다.

그는 먼저 신자들에게 “너희가 어떻게 행할지를 자세히 주의하[라]”고 하였다.

행하다”로 번역된 동사는 문자적이고도 비유적인 의미를 똑같이 지닐 수 있다.

문자적으로, 그 동사는 발로 걸어 다니는 것을 가리켰다 (마 4: 18).

바울과 다른 신약성경 저자들은 이 동사를 일상 생활, 즉 신자의 생활 방식을 뜻하는 비유로 사용하기 시작하였다.

에베소서에서, 바울은 그 동사를 "살다"라는 의미로 일관되게 사용하였다 (2: 2, 10; 4: 1, 17; 5: 2, 8, 15 참조).

성도들이 매일의 삶을 살아가는 방식은 바울에게 매우 중요하였다.  

주의하라”고 번역된 헬라 어는 ‘살피다’는 뜻이 되고 있다.

바울은 이 단어를 '자세히,' '정확하게' 또는 '신중하게'라는 뜻의 단어와 결합시켰다.

이것은 판사가 한 사건을 면밀히 조사할 때 주의를 기울이는 것을 묘사하기 위하여 사용된 것과 같은 단어가 되고 있다.

바울은 믿는 자들이 구원을 받았을 때 하나님께서 그들 속에서 이루신 변화가 그들의 삶 속에서 확실하게 나타나고 있는지를 깊이 성찰하도록 격려하고 있었던 것이다.

우리는 우리가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 자세히 살펴보아야 한다.

     바울은 그의 독자들에게 “지혜 없는 자 같이 하지 말고 오직 지혜 있는 자 같이” 살라고 하였다.

‘지혜롭게 행하는 것’ 혹은 ‘지혜롭게 사는 것’은 잠언서의 중심 주제가 되고 있다 (잠 1: 7).

어리석은 사람은 자신의 어리석음을 과시하면서 어리석게 살고 있는 사람들과 어울리면서 무모하게 살고 있다.

그는 여호와의 지혜와 훈계를 멸시한다.

그러나 지혜 있는 사람은 지혜를 부지런히 구하며 찾는다 (잠 2: 1 -5).  

     그러면 사람들은 그러한 지혜를 어떻게 얻을 수 있을까?

잠언은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혜의 근본이[라]”고 한다 (잠 9: 10).

분명히 삶의 지혜는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가지는 것으로 시작된다.

야고보는 기록하기를, “누구든지 지혜가 부족하거든 모든 사람에게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는 하나님께 구하라”고 하였다 (야 1: 5).

다시 말해서, 지혜는 주님과 관계를 맺고 그것을 구하는 사람들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선물이다.

게다가, 바울은 가르치기를, “지혜와 지식의 모든 보화가 [그리스도 안에] 감추어져 있[다]”고 하였다 (골 2: 3).

그러므로, 신자는 어리석은 삶을 살 필요가 없고, 주님의 지혜에 근거한 지혜로운 삶을 살아 갈 수 있다.

믿는 자들은 “외인에게 대해서는 지혜로 행하여 세월을 아[껴야]” 한다 (골 4: 5).


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하나님과 관계를 맺음으로만 지혜를 발견할 수 있는가?


5장 16절


●   세월을 아끼라 때가 악하니라  

신자들이 지혜를 실제 삶에 적용할 수 있는 중요한 영역의 하나는 시간 관리이다.

지혜로운 사람은 자신의 시간을 중요하게 취급한다.

실제로, 우리는 돈처럼 시간을 잘 관리해야 한다.

‘시간은 금이다’라는 속담이 그 같은 사실을 말해주고 있다.

바울은 “세월을 아끼라”라는 말로, 시간을 지혜롭게 사용하는 것이 신자들이 삶을 지혜롭게 살아가는 중요한 요소가 되고 있음을 지적하였다.

모세는 이렇게 기도하였다: “우리에게 우리 날 계수함을 가르치사 지혜의 마음을 얻게 하소서” (시 90: 12).

인간의 일생은 시간으로 정해져 있다.

그같이 정해진 시간을 우리는 어떻게 보내야 할까?

무엇을 하며 어떻게 살아야 할까?

그것은 우리 모두가 짧은 일생을 살아가면서 심각하게 물어보아야 될 질문이다.

사도 바울은 궁극적으로 시간이 하나님께 속해있는 것을 인정하였다.

실제로, 시간도, 다른 물질들과 마찬가지로, 우리가 살아가는 동안에 사용할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맡겨주신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러므로, 특별히 믿는 자들인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시간의 청지기로 여기시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을 필요가 있다.

그리고 청지기 혹은 관리자로서, 우리는 시간을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대해 하나님께 책임을 지고 있다.

신약성경에서 시간을 나타내는 용어는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시계(時計)로 측정되는 시간을 가리키는 ‘크로노스’이고 다른 하나는 기회(機會)를 뜻하는 ‘카이로스’이다.

바울은 본 문에서 “세월”로 번역된 시간을 기회를 뜻하는 ‘카이로스’로 썼다.

기회는 항상 있는 것이 아니며 한 번 지나가면 다시 찾을 수 없다.  

그런데, “아끼라”로 번역된 헬라어 어원(語源)의 문자적인 뜻은 ‘다시 사다’ 혹은 ‘다시 찾다’이다.

그 말은 또한 어떤 것을 최대한도(最大限度)로 사용하는 것을 뜻할 수 있다.

그러므로, “세월을 아끼라”는 말은 기회가 찾아왔을 때 그것을 놓치지 말고 최선을 다하여 잘 활용하라는 뜻으로 생각할 수 있다.  

     사도 바울은 성도들이 세월을 아껴야 될 이유로 “때가 악하니라”고 하였는데. “때가 악하다”는 말은 우리가 살고 있는 때가 악한 것을 가리킬 수도 있고 지금 지혜롭게 행하지 않을 경우 우리에게 닥칠 때가 악한 것을 가리킬 수 있다.

바울은 성도들에게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갈 6: 9 -10).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포기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 그러므로 기회 있는 대로 모든 이에게 착한 일을 하되 더욱 믿음의 가정들에게 할지니라.”

그리스도인들은 시간이 돈보다 더 귀중한 것을 깨닫고 시간을 영원한 것이 투자하는 사람들이다.


5장 17절


●   그러므로 어리석은 자가 되지 말고 오직 주의 뜻이 무엇인가 이해하라   


우리가 모든 기회를 최대한 활용할 수 있는 방법 중의 하나는 하나님은 신자들이 죄로 인해 타락되고 악의 세력에 의해 지배를 받고 있는 이 세상에서 어떻게 살기를 원하시는지를 이해하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그것은 믿는 자들을 위한 하나님의 뜻을 아는 지혜가 되고 있다.

바울은 먼저 에베소 교회 성도들에게 “어리석은 자가 되지 말(라)”고 하였다.

어리석은 자는 지혜 없는 자로, 자기 뜻대로 결정하고 행하는 자이다.

     그래서 바울은 믿는 자들에게 “어리석은 자가 되지 말고 오직 주의 뜻이 무엇인가 이해하라”고 하였다.

사람들은 종종 삶의 중요한 결정들을 할 때 혹은 어떤 문제가 생겼을 때 하나님의 뜻을 생각하며 구한다.

물론, 우리는 그 같은 경우에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함으로, 믿음이 좋은 사람에게 지혜를 구함으로, 혹은 환경이나 여건을 통해서 하나님의 뜻을 구할 수 있다.

그러나 바울이 이 구절에서 의도(意圖)하고 있는 하나님의 뜻은 그 같이 얻을 수 있는 특별한 것이나 개인적인 것보다는, 일반적인 것이 되고 있다.

하나님은 “선자자들을 통하여” 그리고 “모든 마지막에는 아들을 통하여”(히 1: 1 -2) 그의 뜻을 세상에 알려주셨다.

다시 말하면, 성경은 신자들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하나님의 뜻을 담고 있다.

예를 들어, 예수님은 믿는 자들에게 “너희는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세상에서 살아가는데 필요한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고 하신다 (마 6: 33).

예수님은 또한 제자들에게 “나라(천국)가 임하시오며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고 기도하라고 가르치신다 (마 6: 10).

예수님은 자기가 달려 처형을 받게 될 십자가를 내다 보시면서 기도하기를, “아버지께는 모든 것이 가능하오니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라고 하셨다 (막 14: 36).

사도 바울은 데살로니가 교회의 성도들에게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그리고 “범사에 감사하라”고 하면서 “이 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고 하였다 (살전 5: 16 -18).

우리가 성경말씀을 부지런히 상고하면, 주님은 성령님을 통해 하나님의 뜻을 깨닫게 해 주시며 그 뜻에 따라 매일의 삶을 살아갈 수 있는 지혜와 힘을 주신다.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으라 (에베소서 5장 18절)


바울은 모든 신자들에게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아 방탕한 생활로 이끄는 어리석은 영향을 받지 말고 성령님의 인도와 지배를 받는 생활을 할 것을 촉구하였다.  


5장 18절


●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으라  


지혜롭게 행하는 일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바울은 그리스도인들에게 “술 취하지 말라”고 하였다.

로마의 영토로 이교 문화권에 속해 있던 에베소는 음주 문화가 강한 사회였다.  

그리고 음주 문화의 특징은, 예나 지금이나 똑같이, 술에 취하는 사람들이 많아지는 것이다.

사람들이 술에 취하면, 생각과 행동의 통제력을 상실하게 되고 갖가지 파괴적이고도 부정적인 일들이 많이 일어난다.  

오늘 날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도 마찬가지이다.

잠언서가 경고하고 있는 것처럼 (잠 23: 32 -35), 술에 취하면 감각과 판단력도 흐려지게 된다.

그 같은 일들이 일어나는 것은 술의 영향력과 지배력 때문이다.

바울은 술로 인해 생기는 그 같은 현상을 “방탕한 [생활을 하는 것]”으로 묘사하였다.

방탕한 것”으로 번역된 용어는 절제되지 않은 행동들과 비효율적이고도 낭비적인 생활을 가리킬 수 있었다.

     그 같은 문화권에 살고 있는 신자들에게, 바울은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으라”고 하였다.

우리는 신자들이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아야 한다]”는 바울의 명령에서 나타나고 있는 몇 가지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   첫째로, 그것은 믿음이 좋다는 특별한 일부 신자들을 위한 하나의 제안이 아니라, 모든 신자들을 위한 명령이 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것은 신자들이 “어떻게 행할지를 자세히 주의하여” 사는 유일한 방법이 되기 때문이다 (5: 15).  
 ●   둘째로, “충만함을 받[다]”로 번역된 헬라어 동사는 현재형 시제로, 진행중인 행동을 강조하고 있다. 그러므로, 그 명령은 ‘계속 충만함을 받다’는 뜻이 될 수 있다.
●   째로, 그 동사는 현재 시제일 뿐만 아니라 수동태(受動態)가 되고 있다. 그것은 실제로 충만케 하는 것은, 믿는 자 자신이 아니라, 성령님이라는 뜻이 되고 있다.  믿는 자들로서, 우리는 성령님께 복종하고 그의 지배를 받을 수 있다.  그러나, 그 분만이 우리를 충만케 하실 수 있다.
●   넷째로, 바울은 우리가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을 때, 성령님의 더 많은 분량이 우리 안에 가득 차게 된다고 말하지 않았다.  성령님은 인격자이시다.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는다]”는 말은 그의 영향력과 능력으로 신자들이 가득 채움을 받는다는 뜻이다.  그 같은 일은 우리가 성령님에게 복종하고 그의 지배를 받을 때, 하나님께서 행해 주심으로 가능하다.


성령님의 지배를 받는 것과 술의 지배를 받는 것은 어떻게 대조되며 비교될 수 있는가?



성령으로 충만한 삶의 진정한 표 (5장 19 -21절)


바울은 신자들이 성령님으로 충만하게 될 때 어떤 일들이 나타나는지를 밝혔다.

그 같은 일에는 하나님의 말씀을 노래하고 말하며,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항상 하나님께 감사하며, 그리스도를 경외함으로 피차 복종하는 태도가 포함되고 있다.


5장 19절


●   시와 찬송과 신령한 노래들도 서로 화답하며 너희의 마음으로 주께 노래하며 찬송하며


사도 바울은 신자들에게 “오직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으라”고 한 다음, “시와 찬송과 신령한 노래들로 서로 화답하며 너희의 마음으로 주께 노래하며 찬송하[라]”고 하였다.

하나님의 영으로 충만한 신자들은 함께 모여 하나님께 드리는 찬양으로 서로 화답한다.

바울은 성령으로 충만한 신자들이 그같이 함께 모여 마음과 힘을 합해 하나님을 찬양하면 하나님께서 더 큰 영광을 받으시며, 성도들도 더 큰 기쁨과 감사를 함께 나눌 수 있는 것을 알고 있었다.

     바울은 세 가지 유형의 노래를 언급하였다.

”라는 말로, 바울은 구약의 시편을 가리킨 것으로 보인다.

성도들은 하나님을 예배하면서 그들 성구들을 큰 소리로 읽거나, 연호하거나, 노래할 수 있었다.

찬송”으로 번역된 말은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과 그리스도께 드리는 찬양의 노래들을 가리킨 것으로 보인다.

성령으로 충만한 사람들은 “신령한 노래들”로 하나님을 예배한다.       

신령한 노래”들은 마음에서 즉흥적으로 흘러나오는 찬양이 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고전 14: 15 참조).

       성령 충만한 삶의 첫 결과가 성도들이 서로 화답하는 친교라면, 두 번째의 결과는 진정한 예배가 되고 있다.


성도들이 주님에 관해 서로 노래하는 노래는 어떤 실용적인 가치가 있는가?

주님께 직접 불러 드리는 찬양의 노래에는 무슨 가치가 있는가?


5장 20절


●   범사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항상 아버지 하나님께 감사하며  


이 시점까지, 바울은 성도들의 교제와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가 성령으로 충만한 성도들의 진정한 징표(徵表) 혹은 결과(結果)가 됨을 지적하였다.
이제 그는 세 번째의 징표 혹은 결과를 추가하고 있는데, 그것은 감사(感謝)가 되고 있다.

바울은 그의 서신에서 여러 번에 걸쳐 신자들에게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하는 자가 되라고 도전하였다 (골 3: 15, 17; 살전 5: 18 참조).

에베소의 신자들은 바울이 대부분의 그리스도인들에게 불평과 변명의 구실이 될 수 있는 많은 역경과 고난을 겪은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는 불평하지 않았다.

바울에게 성령님과 불평하는 마음은 함께 속할 수가 없었다.

      바울은 몇 마디의 짧은 말로 놀라운 감사의 교리를 발전 시켰다.

신자들은 언제 감사해야 할까?  사도 바울은 “항상”해야 한다고 한다.

신자들은 무엇에 대해 감사해야 할까?  사도 바울은 “범사에” 감사하라고 한다.

사도 바울은 데살로니가 전서 5 장 18 절에서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는 말로 같은 교훈을 기록하였다.

신자들은 누구에게 감사해야 할까?  사도 바울은 “아버지 하나님께” 감사하라고 한다.  

신자들은 어떤 방법으로 감사해야 할까?  사도 바울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감사하라고 한다.  


5장 21절


●   그리스도를 경외함으로 피차 복종하라   


오늘 날 우리는 자신의 이익과 권리를 강하게 주장하며 행사하는 것을 미덕으로 여기며 고집하는 문화권에 살고 있다.
사람들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어떻게 해서든지 지배력을 행사하려고 든다.
그 같은 사람들에게 ‘복종’ 혹은 ‘순종’은 패배자나 약자의 몫이며 굴욕적인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그 같은 문화권에 살고 있는 신자들에게 바울은 “피차 복종하라”고 한다.
복종하라”는 단어는 바울의 글에서 스물 세 번에 걸쳐 기록되고 있는데, 그 말은 일반적으로 존경을 받을만한 사람들에게 순복 하는 것을 나타내고 있다.
거기에는 세상 통치자, 부모, 교회 지도자 및 노예의 주인들이 포함될 수 있다.
본문인 5장 21절은 5장 22절부터 6장 9절까지에서 바울이 가족에 대해 가르치고 있는 내용과 연결되고 있다.
복종하는 일은 교만과 자존심이 강한 인간에게 쉬운 것이 아니지만, 그것은 교회와 사회의 질서를 유지하는데 매우 중요한 요소가 되고 있다.
오늘날 “복종하라”는 말은 종종 경멸적인 방법으로 언급되고 약점으로 여겨지지만, 그것은 하나님의 왕국에서 매우 가치 있는 특성이 되고 있다.
그것은 또한 로마 제국의 군사 생활과 정치 생활에서도 똑같이 가치 있는 것이 되고 있다.
피차 복종[하는 일]”이 없이는 혼란이 지배하게 된다.  

예수 그리스도께 순복 하는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에게 순복 하기가 어렵지 않다.    

     사도 바울은 성도들에게 “그리스도를 경외함으로 피차 복종하라”고 하였다.
실제로, 그리스도의 몸이자 믿음의 공동체인 교회 안에서 성도들이 “피차 복종하[는 것]”은 성령으로 충만한 삶의 네 번째의 징표이자 결과가 되고 있다.
성령 충만한 삶의 진정한 표는 고립 된 상태에서가 아니라,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 안에서 “피차” 삶을 나눌 때 가장 잘 나타날 수 있다.
그리스도를 경외함으로”라는 말은 신약성경에서 유일하게 본문에서만 나타나고 있다.
그것은 “여호와를 경외하라”는 구약의 가르침과 관계되고 있다 (신 10: 12, 20 -21; 잠 1: 7).
여기서 바울은 이 구약의 진리를 성자 하나님께 적용하여 그에 대한 경외심을 나타냈다.
믿는 자들인 우리가 경건과 사랑의 마음으로 그리스도께 복종 할 때,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 안에서 다른 사람들에게 순복 하는 일은 힘들지 않다.


말씀을 나의 상황에 적용하기:


●   신자들은 하나님의 지혜에 비추어 그들의 삶을 주의하여 살아야 한다.   
●   신자들은 성령님의 인도와 지배를 받는 삶을 살아야 한다.
●   신자들은 그들 안에 거하시는 성령님에 의해 그들의 삶과 태도에 영향을 받는다.

당신의 성경 반은 어떤 방법으로 온 교회가 공동으로 지혜를 활용할 수 있는 관계를 맺게 할 수 있는가
?


우리는 12월 1일 주일부터 시작하여 2020년 2월 23일 주일까지 3개월 동안에 걸쳐 민수기와 신명기  배우게 됩니다.  기대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