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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마음으로 함께 걸어가는 성도들 - 제 7과 - 2019년 10월 13일 주일 장년성경연구 - 에베소서 4장 1 -10절

글쓴이 : 강호길 날짜 : 2019-10-07 (월) 06:24 조회 : 92

장년성경연구 교사용 교안

2019년 10월 13일 주일 용  

 

제 7과

 

 

한 마음으로 함께 걸어가는 성도들        

 

 

학습구절: 에베소서 4장 1 -10절

 

성경진리:  

신자들은 한 마음으로 함께 행동함으로 복음의 진리를 입증한다.  

 

주요교리 사 람   
오직 하나님의 은혜 만이 사람을 하나님과 거룩한 교제의 관계를 맺게 해 주며 하나님의 창조적 목적을 성취 할 수 있게 해준다 (골 1: 21-22).

 

암송구절:  에베소서 4장 1절

그러므로 주 안에서 갇힌 내가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가 부르심을 받은 일에 합당하게 행하여    

“As a prisoner for the Lord, then, I urge you to live a life worthy of the calling you have received.”              

 

 

시작하는 글:

 

많은 교회들이 약물 중독에 빠져 있는 사람들이 중독에서 벗어나도록 돕기 위한 회복 사역을 실시해 오고 있다.

경우에 따라서는, 그들 교회의 교인들이 자신들도 어떤 중독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음을 깨닫게 될 때, 그들의 초점이 “그 사람들”로부터 “우리”로 옮겨지는 것을 보게 된다.

흥미 있는 것은, 자신도 중독이라는 현실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것을 깨달을 때, 다른 사람들을 바라보는 시각이 달라진다는 사실이다.   

문제를 안고 발버둥치며 분투하는 동료들 사이의 유대감은 계급이나 인종 혹은 정치 집단의 경계선을 넘어갈 수 있다.

 

우리가 개인적으로 겪는 어려움이나 위기의 상황으로 인해 일반적으로 아무 접촉이 없던 사람들과 어떻게 관계를 맺게 되는가?

 

 

본문배경설명

 

에베소서 4장 1절부터 10절까지

 

에베소는 여러 가지 다른 문화와 종교들이 만나는 장소가 되었다.

아데미 여신이 에베소의 지배적인 신이 되었다 할지라도, 결코 그것은 에베소의 모든 사람들이 아데미 여신을 예배하며 섬겼다는 말은 아니다.

에베소에서는 제우스나 아폴로등을 포함하여 여러 신들과 여신들이 숭배되었다.

중요한 것은 에베소 사람들은 다신론 자들이라는 사실을 명심하는 일이다.

그들은 예배의 문제에 있어서는 유일신을 믿지 않았다.  

그들은 단지 예배의 대상으로 더 많은 신을 추가하려고 들었다.

그 같은 상황이 에베소에서 많은 사람들이 그리스도를 믿게 된 배경이 되고 있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많은 종교 및 문화적 배경을 가진 집단의 사람들을 어떻게 하나로 연합시킬 수 있었을까?

다른 숭배자들은 마술이나 민속 신앙을 지키고 있었다.

사도 행전 19장 13 - 20 절에 보면, 누가 복음과 사도행전의 저자인 누가는 스게와라는 한 제사장이 악령을 쫓아내는 그의 의식에다 예수의 이름을 더하려고 한 이야기와 악귀에 들린 자가 그와 그의 일곱 아들들을 공격한 이야기를 자세히 설명하였다.

이 일은 그 같은 주술신앙(呪術信仰)과 민속 신앙들을 따르던 사람들 사이에 큰 두려움을 촉발시켰다.

그같이 마술을 행하던 사람들은 그들 신앙에 관한 책들을 모아가지고 나와서 모든 사람 앞에서 불살랐는데, “그 책 값을 계산한즉 은 오만이나” 되었다.

어떻게 바울은 그같이 다양한 민속 종교에서 개종한 다양한 배경의 사람들을 교회 안에서 같은 믿음을 갖도록 인도할 수 있는가?

유대인들도 또한 에베소의 지배적인 구성 요소가 되었다.

에베소에는 일만 명에서 이만 명에 달하는 유대인들이 살았던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에베소에 온 바울은 처음 3개월 동안은 회당에서 “하나님 나라에 관하여 강론”하는 것으로 선교 사역을 시작하였다 (행 19: 8).

그러나 그는 유대인들로부터 엄청난 반대를 직면하게 되자, 근처에 있는 “두란노 서원”으로 옮겨가 제자들을 따로 세우고 하나님의 말씀을 강론하였다 (행 19: 9).

바울은 “두 해 동안” 그같이 하였다.

에베소서는 크게 두 부분으로 나뉘어지고 있다.

1장부터 3장까지에서는 교리적인 면과 신학적인 면이 강조되고 있는 반면에, 4장부터 6장까지에서는 실제적인 면, 즉 윤리적인 면과 생활적인 면이 더 강하게 나타나고 있다.

바울의 선신들을 보면, 서신 전체를 통해서 교리적인 내용과 윤리적인 내용이 병행해서 나타나고 있는 것이 사실이지만, 대개의 경우 에베소와 같이 전반부는 교리적인 면을 강조하고 후반부는 윤리적인 면을 강조하고 있는 것을 보게 된다.

 

부르심에 합당하게 행하는 믿음의 삶 (4장 1 -3절)

 

바울의 첫 번째 관심사는 그의 편지를 받는 독자들에게 그들의 삶 속에서 그리스도와 같은 태도와 행동을 나타내 보이라고 요청하는 것이었다.

그리스도를 통해 죄로부터 구원을 받은 신자들은 새 사람이 되어 매일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삶을 살아간다.

 

4장 1절


●    그러므로 주 안에서 갇힌 내가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가 부르심을 받은 일에 합당하게 행하여   


그러므로”라는 말은 1장부터3장까지에서 가르친 신학적이고도 교리적인 문제들을 4장부터 6장까지에서 전개될 실 생황에 다 적용시키는 문제에다 연결시키는 기능이 되고 있다.

신학과 윤리, 믿음과 행함 그리고 설교와 실행 등으로 대표되고 있는 구원의 삶은 동전의 양 면과 같이 서로 떼어 놓을 수 없는 불가분의 관계가 되고 있다.

그 같은 사실은 “영혼 없는 몸이 죽은 것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니라”고 한 야곱의 말에서도 잘 나타나고 있다 (약 2: 26).

바울은 먼저 에베소 교회 교인들에게 “주 안에서 갇힌 내가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가 부르심을 받은 일에 합당하게 행하[라]”고 하였다.

바울이 에베소에 있는 성도들에게 이 편지를 기록할 당시 로마에서 가택연금 상태로 옥중 생활을 하고 있었는데 (행 28ㅣ 11 -31), 그는 자신이 그같이 된 상황을 3장 1절에서는 “그리스도 예수의 일로 너희 이방인을 위하여 갇힌 자 된 나 바울”이라는 말로 설명하였다.

그는 법을 어겼기 때문에 옥중 생활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가 복음을 믿는 유대인들과 이방인들에게 똑같이 구세주가 되신다고 증거한 일로 인하여 갇힌 몸이 되었던 것이다 (행 21: 17 -36).

부르심을 받은 일에 합당하게 행하[라]”는 말은 특별한 소명을 받은 것을 뜻할 수도 있지만, 여기서는 모든 신자들이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한 가족이 된 것을 깨닫고 한 마음 한 뜻으로 하나님을 섬기며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즉 그가 기뻐하시는 삶을 살라는 말이 되고 있다.

합당하게”로 번역된 용어는 종종 접시 저울의 양쪽 무게가 똑같아서 균형을 맞추는 것을 묘사하는 말로 사용되었다.

그러므로, 바울이 강조하고 있는 것은 믿음의 고백과 믿음의 행함이 균형을 맞추는 일이 되고 있다.

 

4장 2 -3절


●    모든 겸손과 온유로 하고 오래 참음으로 사랑 가운데서 서로 용납하고
●    평안의 매는 줄로 성령이 하나가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  


바울은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 안에서 성도들이 연합을 이루게 하는 품격 혹은 덕목들을 열거하였다.

그들 품격은 예수님 자신이 직접 보여주신 것들이다.

바울이 열거한 첫 번째는 “겸손”이다. 

겸손의 반대가 되는 현상은 교만과 오만 그리고 자만심으로 알려지고 있는데, 교회가 하나가 되게 하는데 그것들보다 더 파괴적인 것은 거의 없다.

겸손은 자신보다 다른 사람을 높이고 귀하게 여기는 마음의 자세이다.

고대 그리스-로마 세계는 겸손을 가치 있게 여기지 않았다.

실제로 오늘 날 이기적인 경쟁 사회에서도 겸손을 가치 있게 취급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그렇지만. 신자들은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신]” 예수 그리스도와 같은 태도와 자세를 가지라는 요구를 받고 있다 (빌 2: 8).

사도 베드로는 믿는 자들에게 “서로 겸손으로 허리를 동이라”고 권면하였다 (벧전 5: 5).

겸손한 사람들과 다투거나 논쟁을 벌이기가 쉽지 않으며, 그 자체는 사람들을 하나가 되게 하는 첫 단계가 되고 있다.

바울은 또한 에베소 그리스도인들에게 “온유”한 마음으로 살라고 격려하였다.

‘온유하다’는 말은 약하다는 뜻이 아니라, 그것은 자제력과 단련된 마음을 나타내 주고 있다.

예수님도 사람들을 대하실 때, 그 같은 특성을 나타내 셨고 (마 11: 29), 산상 수훈에서 이 특성을 격려하셨다 (마 5: 5).

바울은 또한 성령의 열매의 하나로 이 특성을 열거하였다 (갈 5: 23).

겸손과 온유와 더불어, 바울은 교회를 하나로 만드는 특성의 하나로 “오래 참음”을 포함시켰다.

다른 사람들과의 공동체 생활에 따르는 위험한 요소들 중의 하나는 화가 나면 분노감이나 비통한 감정, 혹은 중상 모략이나 복수심 등의 형태로 관계를 손상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공동체의 맥락에서 그같이 강한 감정을 통제하는 열쇠는 “인내심” 혹은 “오래 참음”이 되고 있다.

헬라어로 “오래 참다”라는 말은 'makrothumia’가 되고 있다.

그 단어는 ‘길다’라는 ‘makro'와 화를 내다’라는 ‘thumia'가 합쳐서 된 복합어이다.

마크로두미아’라는 말을 사람에게 적용하면,

인내심이 강하거나 희망을 포기하지 않는 것을 뜻한다.  

그 말을 일에다 적용시키면,

‘좌절하거나 포기하지 않는 것’을 가리킨다.  

고린도전서 13장에서 ‘사랑은 오래 참고’라고 할 때

바로 그 말이 ‘마크로두미아’이다.   

사랑은 쉽게 포기하지 않는다.

사랑은 오래 참고 견디며 기다린다.

‘마크로두미아’라는 말을 감정에다 적용시키면,

화를 내기 전에 먼저 깊이 생각하고 고민하는 상태를 나타내 준다.

3절이 열거하고 있는 것으로, 성도들을 하나의 신앙공동체 혹은 교회로 만드는 마지막 특성은 “사랑 가운데서 서로 용남하[ ]”이 되고 있다.   

서로 용납하는 ”은 인내의 결과이다.

참는 것은 또한 예수님의 특성 중의 하나였다 (마 17: 17).

다른 사람들을 사랑하는 사람들은 다른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들보다 다른 사람의 잘못을 기꺼이 용납한다.

겸손과 온유함 그리고 오래 참음과 서로 용납을 나타내는 사람들은 그리스도의 몸 안에서 영적 결속을 이루도록 돕는다.
그러므로, 바울은 에베소의 그리스도인들에게 그 같은 품격과 특성들을 나타냄으로 “평안의 매는 줄로 성령이 하나가 되게 한 것을 힘써 지키라”고 권면하였다.

겸손하고 온유하며 오래 참는 일에는 노력이 필요하며 요구된다.

그것들은 자연적으로 생기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결과들은 그만한 가치가 있다.

 

성령님의 역사가 없이는 교회가 하나가 되는 일은 불가능하다.

 

바울은 교회가 그같이 하나가 되는 것을 “성령이 하나가 되게 하신 것”으로 언급하였다.

성령님은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를 하나로 만드시는 분이시다.

성령님이 신자들의 삶에서 열매를 맺으실 때, 성도들의 삶 속에서는 그들이 그리스도의 한 몸을 이루는데 필요한 특성들이 생겨나게 된다 (갈 5: 22 -23).

성령님의 역사가 없이는, 인간관계는 교만과 분노, 그리고 불안 등의 부정적인 특성들의 지배를 더 강하게 받는 위협이 따르게 된다.

성령님의 역사가 없이는 교회가 하나가 되는 일은 불가능하다.

성령님이 교회를 하나가 되게 하시는 일은 “평안의 매는 줄”로 이루어 진다.

 

한 마음 한 뜻으로 행하는 교회 (4장 4 – 6절)

 

모든 신자들은 예수님 안에서만 찾을 수 있는 한 소망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한 마음 한 뜻으로 살아야 한다.

삼위 일체의 관계는 신자들이 하나님과 그리고 성도들 서로가 관계를 이루는 방법과 표준이 되고 있다.

 

4장 4절


●    몸이 하나요 성령도 한 분이시니 이와 같이 너희가 부르심의 한 소망 안에서 부르심을 받았느니라


신자들을 연합시키며 하나로 만드는 영적인 요소들은 그들의 배경과 특성의 다른 점들을 초월 할 수 있고 초월해야 한다.
그리스도인들의 연합, 즉 “하나됨”의 본질과 의미를 더욱 발전시키면서, 바울은 일곱 가지 예를 들어 이를 설명하였다.
바울은 그 목록을 “하나됨”의 가장 훌륭한 본보기가 되고 있는 “삼위일체 하나님”을 중심으로 열거하였다.
하나님은 오직 한 분이시지만, 바로 그 하나님은 성부와 성자와 성령 안에서 완전한 연합을 이루어 한 하나님으로 존재하고 계시다.
삼위 일체 하나님의 관계는 신자들이 하나님과 그리고 성도들 서로가 관계를 이루는 방법과 표준이 되고 있다.

몸이 하나요”라는 말은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에 대한 언급이 되고 있다 (1: 23).

바울이 앞에서 말했듯이, 유대인 신자들과 이방인 신자들은 같은 하나의 가족의 일원이 되고 있다.

그리스도를 믿는 모든 사람은, 원칙적으로, 한 몸으로 연합되어 그리스도의 몸이 되고 있다.

성령도 한 분이시니”라는 말은 성령 하나님을 가리키고 있다.

흥미로운 것은, 바울이 여기서는 삼위 일체 하나님의 위격을 전형적인 순서인 아버지와 아들 그리고 성령의 것과 반대로 언급한 것이다.

교회는 신자들 각자가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믿고 영접할 때 그들 안에 거하시는 바로 그 성령님에 의해 생명력과 활력을 얻는다 (롬 8: 9; 고전 12: 13).

부르심의 한 소망”이라는 말은 모든 신자들이 부활 후에 소유하게 될 영원한 생명에 대해 가지고 있는 확실한 기대치를 가리키고 있다.

우리 믿는 자들이 죄를 회개하고 믿음으로 복음의 부름에 응답했을 때, 우리는 죄 사함을 받고 새 생명을 얻었다.

그 외에도, 우리는 또한 영원한 상속의 소망을 받았다.

앞에서 바울은 말하기를, “하나님은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상속자로 삼으셨[다]”고 하였다 (1: 11 – 표준 새 번역).

그리고 성령님은 “우리 기업의 보증이” 되신다고 하였다 (1: 14).

우리의 인종적인 혹은 사회적인 배경이 무엇이든지 간에, 우리는 모두 같은 영광스러운 기업을 받게 될 것이다.

 

4장 5 - 6절


●    주도 한 분이시요 믿음도 하나요 침례도 하나요
●    하나님도 한 분이시니 곧 만유의 아버지시라 만유 위에 계시고 만유를 통일하시고 만유 가운데 계시도다


주도 한 분이시요”라는 말은 삼위 일체의 아들 하나님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킨다.
 그는 인간의 몸을 입고 세상에 찾아오신 구세주가 되시며 죄인인 인간들은 그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는다.
바울은 로마서 10장 12절에서 구세주이신 예수님을 가리켜 말하기를,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차별이 없음이라 한 분이신 주께서 모든 사람의 주가 되사 그를 부르는 모든 사람에게 부요하시도다”고 하였다.
그리스도인들이 부자이든 가난한 사람이든, 남자이든 여자이든, 유명하거나 무명하거나, 나이가 많든 젊든 간에, 우리는 모두 같은 주님께 대한 충성심으로 묶여 있다.

“믿음도 하나요”라는 말은 두 가지 뜻으로 이해될 수 있다.

하나는 그리스도들이 구원을 받기 위해 구세주이신 예수님께 참 믿음으로 응답하는 개인적인 믿음의 결단과 고백을 뜻하는 말이 될 수 있다.

다른 하나는 복음의 메시지를 구성하고 있는 구원의 믿음에 대한 객관적인 내용을 가리킬 수 있다.

침례도 하나요”라는 말도 “믿음도 하나요”라는 말처럼 두 가지 뜻으로 이해될 수 있다.

그 말은 예수님께서 자신이 먼저 침례 요한에게 받으시고 제자들에게 믿음과 순종의 표시로 받으라고 지시하신 ‘물 침례’ 의식을 가리킬 수 있다 (마 3: 15; 28: 19).

다른 한편으로, 그것은 예수님을 구세주로 믿고 마음에 영접하면 그리스도 예수와 연합된 것을 나타내는 성령침례를 가리킬 수 있다 (롬 6: 3 참조).

이 경우에, 바울은 두 가지 뜻을 똑같이 마음에 두었을 수 있다.

즉 새 신자는 자신이 그리스도 안에서 영적으로 새 생명으로 태어난 것과 그 같은 영적인 사실을 그리스도의 죽음과 매장 그리고 부활을 상징하는 물 침례의식으로 증언한다.

하나님도 한 분이시니 곧 만유의 아버지시라”는 말로, 바울은 삼위일체 하나님의 예를 들어 교회가 하나가 된다는 사실을 설명하는 것을 마쳤다.

그리스도인들은, 기독교를 비난하는 자들이 비난하는 것처럼, 세 신을 믿지 않는다.

성령 하나님, 성자 하나님, 그리고 성부 하나님은 세 인격체가 연합된 한 하나님이시다.

확실한 것은, 에베소의 많은 신자들은 여러 개의 다른 신들이 존재한다고 생각하고 도시 주변의 여러 이교도 사원에서 그것들을 숭배하던 이교 배경에서 개종한 사람들이었다.

그러나, 그들이 그리스도를 믿고 따르는 제자들이 되었을 때, 오직 한 분이신 참 하나님만이 존재하신다는 사실을 강력히 주장하였다.

이 하나님이 바로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기도할 때에 "우리 아버지"로 부르라고 가르치신 분이시다 (마 6: 9).

바울은 하나님에 대해 네 가지 확언을 했는데, 그들 각각은 아버지가 되셔서 한 믿음의 가족을 이루어주시는 하나님을 가리키고 있다.
하나님의 구속 받은 사람들로 구성되고 하나가 된 믿음의 가족은, 바울이 분명하게 묘사한 대로, 하나님께서 창조하시고, 하나님께서 관리하시며, 하나님께서 유지하시고, 하나님으로 충만하신 것이 되고 있다.
한 분이신 하나님은 “만유의 아버지”가 되신다.
창조주로서, 하나님은 모든 인간을 아버지의 태도로 대하신다.
모든 사람들은, 그분을 인정하는지 여부에 관계없이, 궁극적으로 한 분이신 하나님께 책임을 지게 된다.

더욱이,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의 자녀가 된 자녀들에게 진리의  아버지가 되신다.
한 분이신 하나님은 “만유 위에 계[신다].”
그는 만민과 만물 위에 주권자이시다.
그의 구속 받은 믿음의 공동체인 교회를 통해, 하나님은 계속 각종 지혜를 알게 해 주시며 그의 영원한 영광을 나타내신다 (엡 3: 10, 21).
한 분이신 하나님은 “만유를 통일하[신다].”
그는 그가 지으신 우주 만물을 유지하신다.

그는 자신의 목적을 위해 모든 것을 함께 붙드신다.

하나님은 아버지가 되시는 믿음의 가족 안에서, 그의 자녀들이 그의 목적들을 달성 하도록 역사하시며 능력을 주신다.

한 분이신 하나님은 “만유 가운데 계[신다].”
 

함께 승리를 기뻐하는 교회 (에베소서 4장 7 -10절)

 

바울은 신자들이 하나님으로부터 선물을 받는 것을 당시에 군대가 전쟁에서 승리를 거두고 행진해 돌아오는 광경을 예를 들어 설명하였다.  
그는 승리를 거두고 시온 산으로 돌아오는 군대 행렬을 시편 68 편으로부터 이끌어내어 신자들에게 상기시켜 주었는데, 거기서 승리의 왕이신 그리스도는 그를 믿고 따르는 자들에게 선물을 나누어 주신다.

 

4장 7 -8절


●    우리 각 사람에게 그리스도의 선물의 분량대로 은혜를 주셨나니
●    그러므로 이르기를 그가 위로 올라가실 때에 사로잡혔던 자들을 사로잡으시고 사람들에게 선물을 주셨다 하였도다


교회가 하나가 된다는 말은 믿는 자들 모두가 똑같이 된다는 뜻이 아니다.
다시 말하면, 신자들은 모든 면에서 똑같이 되지 않아도 진정한 하나됨을 경험할 수 있다.

그리스도를 따르는 사람들로서, 우리는 성령님이 우리를 “하나되게 하신 것”을 지키도록 부름을 받았다 (4: 3).

우리는 4장 2절에서 언급된 하나가 되게 하는 특성들로 계속 자라나며 다른 성도들에게 그 같은 특성들을 보여줌으로 그같이 한다.

그 같은 특성들은 4: 4-6에 열거된 일곱 가지의 “하나됨”이라는 교리로 신학적인 체계를 이루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같이 마음으로 하나가 되는 것과 믿음으로 하나가 되는 것은 우리의 독특한 성격들과 다른 국적들 그리고 다양한 능력들과 생활 양식이나 상황들을 제거해 버리지 않는다.

또한 믿는 자들로서 우리는 다양한 영적 은사를 받고 교회 안에서 다양한 책임을 맡는다.

사실, 교회를 몸으로 말하는 것은 다양성이 연합에 의해 하나가 되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다.

사도 바울은 그 같은 사실을 다음과 같은 말로 표현하였다:

몸은 하나인데 많은 지체가 있고 몸의 지체가 많으나 한 몸임과 같이 그리스도도 그러하니라.”

7절에서 바울은 은혜라는 단어를 사용하여 영적 은사에 대한 말을 시작하였다.

바울이 사용한 “은혜’란 말은 “그리스도의 선물의 분량대로”라는 문맥에서 나타나고 있듯이, 여기서 은혜라는 용어는 구원의 은혜가 아니라 성령의 은사라는 뜻에서 사용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신자들 각자는 하나님의 은혜로 영적 은사를 받았다.

영적인 은사는 인간의 타고난 재능이 아니라, 신자들이 교회 안에서 그리고 교회를 통해서 주님과 성도들을 섬기도록 하나님께서 주신 특별한 선물과 능력으로 인식되어야 한다.

바울은 시편 68편 18절을 인용하여 신자들이 주님으로부터 영적 은사를 받는 일을 설명하였는데, 그는 시편 68편 전체를 요약하여 다음과 같은 말로 인용하여 8절에 기록하였다:

그러므로 이르기를 그가 위로 올라 가실 때에 사로잡혔던 자들을 사로 잡으시고 사람들에게 선물을 주셨다 하였도다.

시편기자인 다윗은 하나님을 시온 산의 거룩한 곳으로 오르시는 것으로 묘사하였다.

그는 “높은 곳으로 오르시며 사로 잡은 자들을 취하시고” 그들로부터 “선물들을” 받으셨다.

바울은 시편 68편 18절을 예언 적으로 사용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승리한 주님으로 하늘로 올라가신 것으로 묘사하였다.

어떤 의미에서, 예수님도 자신의 죽음과 부활 그리고 승천의 사건으로 사탄과 죄와 죽음을 정복한 승리자이시다.

시편기자는 하나님이 사로잡은 자들로부터 선물을 받으신 것으로 묘사하였는데 반해, 바울은 그리스도께서 그의 백성들에게 “선물”을 주시는 것으로 묘사하였다.

그것은 “영적 은사”를 가리키는 말이다.

 

4장 9 -10절


●    올라가셨다 하였은즉 땅 아래 낮은 곳으로 내리셨던 것이 아니면 무엇이냐
●    내리셨던 그가 곧 모든 하늘 위에 오르신 자니 이는 만물을 충만하게 하려 하심이라


유대인 랍비들은 시편 68편을 모세가 율법을 받으려고 시내 산에 올라간 것에다 비추어 해석하였다.

바울은 시편 68편을 예수님의 삶과 죽음 그리고 부활과 승천의 사건에다 적용시켰다.

예수님은 먼저 “땅 아래 낮은 곳으로 내[려 오셨다].”

이것은 말씀이 육신이 되어 사람들 사이에 거하셨을 때인 성육신을 가리키는 말이다 (요 1: 14).

완전한 삶을 사셨는데도 죄인의 죽음을 죽으신 후, 그리스도께서는 승리하셔서 하늘로 “올라가셨다.”

이 구절은 그리스도께서 이 땅까지 내려 오셨으며 (빌 2: 5-8) 구원의 사역을 마치신 후 하늘로 다시 올라가신 것을 상기시켜주는 말이다(빌 9-11).

바울은 “내리셨던 그가” 곧 인간의 몸을 입고 우리의 구세주로 세상에 오신 예수님이 “모든 하늘 위에 오르신 자”가 되시는 것을 분명하게 밝혔다.

바울은 예수님께서 아버지께로 돌아가신 이유를 강조함으로써 시편 68 편과 승리의 퍼레이드  비유를 사용하여 주님께서 행하시는 일에 대한 설명을 마쳤다.

바울은 예수님을 가리켜 말하기를, “그가 곧 모든 하늘 위에 오르신 자니 이는 만물을 충만하게 하려 하심이라”고 하였다.  

만물의 으뜸”이 되시는 분이신 예수님은 (골 1: 18), 하늘에 오르사 보좌에 앉아 계신다.

보좌에 앉아 계시다는 말을 그의 통치권을 밝혀주는 말이 되고 있다.

 

 말씀을 나의 상황에 적용하기:


●    신자들은 그리스도와 같은 태도와 행동을 통해 복음에 합당한 삶을 살아야 한다.
●    신자들은 그리스도 안에서 한 마음 한 뜻으로 서로 연합하여 살아야 한다.  
●    신자들은 그리스도 안에서 승리하였다.    


당신의 교회가 좀더 많이 하나가 되도록 돕기 위해 당신이 자라나게 하거나 변화를 가져오게 할 수 있는 어떤 특정한 태도는 어떤 것이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