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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자들 속에 거하시는 그리스도 - 제 6과 - 2019년 10월 6일 주일 장년성경연구 - 에베소서 3장 14 -21절

글쓴이 : 강호길 날짜 : 2019-10-03 (목) 22:02 조회 : 93

장년성경연구 교사용 교안

2019년 10월 6일 주일 용  


제 6과



신자들 속에 거하시는 그리스도        



학습구절: 에베소서 3장 14 -21절


성경진리:  

하나님은 그리스도께서 신자들 마음에 계시게 하심으로 신자들에게 힘을 주신다.


주요교리 하나님 아버지  
하나님은 전능하시고, 전지하시며, 완전한 사랑이자 완전한 지혜가 되신다 (시 19: 1).


암송구절:  에베소서 3장 17절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께서 너희 마음에 계시게 하시옵고 너희가 사랑 가운데서 뿌리가 박히고 터가 굳어져서     

“So that Christ may dwell in your hearts through faith.

And I pray that you, being rooted and established in love.”             



시작하는 글:


가끔 한 친구가 곁에 있어주는 것만으로도 기분을 훨씬 좋게 해준다.

우리들 대부분은 심각한 검진 결과를 받을 때나 가족 중 한 사람이 법정에서 재판을 받을

때 누가 우리 곁에 있어 주기만 해도 이를 고맙게 여기며 든든하게 여긴다, 

삶의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는 힘을 누가 함께 해 주는 것만으로도 얻을 수 있다.

그래서 우리가 어려운 일을 겪을 때, 곁에 있는 사람의 “함께 해 줄께” 혹은 “함께 부딪쳐 보자”라는 말 한마디가 우리가 일찍이 듣는 가장 소중한 말이 될 수도 있다.    


당신이 어려운 일을 겪었을 때, 친구가 함께 있어주는 것으로 인해 그 어려움을 이길 수 있는 힘과 용기를 얻었던 때를 생각해 보라.



본문배경설명


에베소서 3장 14절부터 21절까지


에베소서 2장 11절부터 3장 13절까지는 영광스러운 진실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데,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의 십자가를 통해 유대인들과 이방인들로 구성된 새로운 다문화 신앙 공동체를 만드신 것이 되고 있다.

그 새로운 현실을 바탕으로 하여, 바울은 에베소의 신자들을 위하여 기도를 하였다.

사도 바울은 아버지 하나님께서 에베소 교회 성도들의 “속 사람을 능력으로 강건하게” 해 주시기를 기도하였다.

영감 받은 성경말씀으로 기록된 바울의 기도들은 우리가 어떻게 기도해야 하는지를 보여주는 하나의 모범 이상의 것들이 되고 있다.

그 기도문들은 또한 모든 교회와 모든 신자들에 대한 하나님의 계획을 밝혀주며, 이 경우에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존재하게 된 새로운 삶에 대해 설명해 주고 있다.

이 기도는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심을 받은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분명하게 밝혀주고 있다 (엡 2: 5).

바울이 에베소 교회 교인들을 위해 기도한 간청의 기도는 믿는 자들의 삶 속에 거하시는 그리스도를 가리키고 있다.

그리스도께서 함께 해 주실 때 모든 것이 새롭게 변한다.

사도 바울은 믿는 자들에게 나타나는 그 같은 현상을 다음과 같은 말로 표현하였다.

그러므로 우리가 낙심하지 아니하노니 우리의 겉 사람은 낡아지나 우리의 속 사람은 날로 새로워지도다” (고후 4: 16).  

에베소서 3장 14절부터 21절까지에서 바울이 한 기도는 그의 서신인 에베소서에서 구원에 대한 신학적 설명과 그 구원에 따르는 축복들을 (1 -3 장) 신자들의 일상생활에다 적용시키는 문제들에다 (4 -6장) 연결시켜 주는 교량역할을 하고 있다.

그것은 에베소서에서 뿐만 아니라 바울이 쓴 다른 서신에서도 하나의 양식과 형태(pattern)가 되고 있다.

사도 바울은 에베소서 4장 1절을 시작할 때 “그러므로”라는 지극히 중요한 접속사를 사용하였는데, 그것은 교리(敎理)에서 실천(實踐)으로의 전환을 나타내고 있다.

그것은 또한 우리에게 기독교 신앙이 다른 모든 종교들과 구별되고 있음을 상기시켜주는 말이 되고 있다.

인간이 구원을 받을 수 있게 된 것은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풀어 주셨기 때문이지, 인간이 행한

일 때문이 아니다.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 신자의 생활방식은 하나님께서 은혜로 행하신 일에 대한 믿음의 응답이지, 인간적인 노력과 올바른 행동으로 하나님께 나아가려는 노력과 시도가 아니다.

  

사도 바울의 간청 기도 (3장 14 -15절)


바울은 “땅에 있는 각 족속에게 이름을 주신” 아버지께 간청하는 것으로 기도를 시작하였다.


3장 14 -15절


●     이러므로 내가 하늘과 땅에 있는 각 족속에게
●     이름을 주신 아버지 앞에 무릎을 끓고 비노니  


바울이 3장 1절에서 “이러므로”라고 말했을 때, 그것은 문맥상으로 바울이 에베소 교회 성도들을 위해 기도를 시작한 말이 되고 있다.
그런데, 바울은 그같이 시작한 기도를 멈추고, 이방인들도 하나님의 은혜로 유대인들과 똑같이 복음을 믿음으로 구원을 얻게 된 하나님의 놀라운 “비밀의 경륜”을 설명하며 (2 -11 절), 하나님께서 그의 여러 환난과 역경까지도 사용하셔서 그들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셨는지를 놀라워하였다 (12 -13).
3장 14절에서 바울은 “이러므로”라는 말을 다시 사용함으로 3장 1절에서 시작했던 기도를 계속하였다.  
유대인들과 이방인들을 함께 불러 모아주시는 하나님의 놀라운 일에 비추어서, 바울은 무릎을 꿇고 기도하기로 하였다.
유대인 남자들의 일반적인 기도 자세는 양 팔을 위로 들어 올리고 서서 하는 것이었다 (마 6: 5; 눅 18: 11, 13).
무릎을 꿇고 혹은 엎드려서 기도하는 자세는, 솔로몬이 성전을 봉헌하면서 여호와께 기도했을 때와 예수님께서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 하셨을 때처럼 (왕상 8: 54; 눅 22:41), 큰 겸손과 간절함의 표현이 되고 있다.
오늘 날 일부 그리스도인들은 개인적으로 기도할 때 그 같은 자세로 하고 있다.
앞에서, 바울은 하나님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가 되시며 (1: 3) 유대인들과 이방인들이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한 성령 안에서 동등하게 나아감을 얻을 수 있는  “아버지”가 됨을 밝혔다 (2: 18).
그러나 이 단원의 학습구절인 3장 14절에서, 바울은 기도를 삼위일체의 관점에서 좀더 폭넓게 그리고 바르게 이해할 수 있는 단계를 설정하였다.
사도 바울은 에베소 교회의 성도들을 위해 기도할 때, 하나님을 “하늘과 땅에 있는 각 족속에게 이름을 주신 아버지”로 불렀다.
많은 성경학자들은 바울이 그같이 말한 것은 모든 것을 지으시고 통치하시는 창조주로서의 하나님의 역할을 아버지의 역할에다 비유한 것으로 이해해오고 있다.
창세기 1장은 하나님께서, 인간을 포함하여 새들과 물고기들, 짐승들의 여러 가지 종류들 혹은 구성원들을 창조하셨다고 기록하고 있다.

그러므로, 바울은 그 말로 모든 인간은 물론 모든 창조물에 대한 하나님의 고유한 지배권과 통치권을 가리키고 있었을 수 있다.

그같이 이해하는 것이 맞다면, 하늘에 있는 “족속”에 대한 바울의 언급은 그가 3장 10절에서 언급한 “하늘에 있는 통치자들과 권세자들”을 가리키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바울은 또한 하나님을 “각 족속에게 이름을 주신 아버지”로 불렀는데, 그 말도 하나님의 주권과 지배권을 강조하는 뜻이 되고 있다.

하늘의 권세자들과 땅의 인간들을 창조하신 창조주로서, 하나님은 그들에게 생명과 능력을 주시는 분이시다.

하나님은 그 모든 것을 존재케 하신 분이시며, 그의 전체적인 창조 목적에 따라 그들 각각에게 역할을 맡겨주신 분이시다.

그런 다음 하나님께서는 그들 각 “족속에게 이름”을 주셨다.

구약에서, 어떤 것에 이름을 짓는 것은 그것에 대한 지배력을 나타냈다.

하나님께서 인간을 창조하셨을 때, 먼저 그들의 이름을 짓는 매우 중요한 일을 하셨다.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셨고 그들이 창조되던 날에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고 그들의 이름을 사람이라 일컬으셨더라” (창 5: 2).

아담은 동물들의 이름을 지어주며 그들에 대한 지배력을 행사하였다 (창 1: 28; 2: 19 -20).

아담이 모든 가축과 공중의 새와 들의 모든 짐승에게 이름을 주니라.”

이사야 40장 26절이 그 같은 신학적인 면을 잘 설명해 주고 있다:

너희는 눈을 높이 들어 누가 이 모든 것을 창조하였나 보라 주께서는 수효대로 만상을 이끌어 내시고 그들의 모든 이름을 부르시나니 그의 권세가 크고 그의 능력이 강하므로 하나도 빠짐이 없느니라.”

바울이 그의 기도를 아버지께 드릴 때, 그는 단지 유대인의 아버지가 되시는 분에게만 말한 것이 아니라, 그가 지으신 “하늘과 땅에 있는 [모든] 족속에게 이름을 주신 아버지”에게 말씀 드렸던 것이다.

이 하나님은 바울의 간청 기도를 들으시고 그의 자녀들을 믿음과 능력으로 강건하게 해 주실 것이 확실하였다.


당신이 교회를 위하여 하나님께 드리고 있는 간청기도에는 어떤 것들이 있는가?


믿는 자의 마음에 내주하시는 그리스도 (3장 16 – 19절)


사도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에베소 교회의 모든 신자들이 하나님의 영광의 풍성함을 따라 성령을 통하여 영적인 능력과 더 깊은 믿음과 풍성한 사랑을 얻게 되며 “하나님의 모든 충만하신 것”으로 충만하게 되기를 기도하였다.
그 같은 것들과 일들은 그리스도께서 성령님을 통하여 믿는 자들의 마음에 거하실 때 생기게 된다.


3장 16절


●     그의 영광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성령으로 말미암아 너희 속 사람을 능력으로 강건하게 하시오며


바울의 기도는 하나님께서 신자들의 “속 사람을 능력으로 강건하게” 해 주시기를 간청하는 것으로 시작되고 있다.

“능력”으로 번역되고 있는 말은, 구약에서, 종종 하나님의 일을 하는 사람들이 그들의 삶 속에서 역사하는 하나님의 힘을 구하는 것과 관련되고 있다.

다윗이 극도로 어려운 형편에 처했을 때, “그의 하나님 여호와의 힘”을 입어 용기를 얻었다 삼상 30: 6).

제사장 에스라는 “내 하나님 여호와의 손이 내 위에 있으므로 내가 힘을 얻[었다]”고 하였다 (스 7: 28).

바울은 에베소 교회 신자들의 삶에 하나님의 손길이 함께 하심으로, 그들이 하나님께서 불러 행하게 하신 일을 할 수 있는 힘과 능력을 받게 되기를 기도하고 있었던 것이다.

인간은 육체 노동을 하려면 육체적인 힘이 필요하다.

지적 결과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정신적인 에너지를 사용해야 한다. 

많은 경우, 우리는 또한 감정적인 에너지를 소모한다.

그렇지만, 영적인 결과를 얻으려면, 우리는 전적으로 다른 종류의 에너지가 필요하다.

바울은 영적인 에너지를 “능력”으로 불렀다.

이런 종류의 힘은 어떤 인적 혹은 물질적인 자원에서 오는 것이 아니다.

영적인 힘 혹은 능력은 오직 하나님으로부터 온다.

좀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영적인 능력은 믿는 자 안에서 역사하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오는 것이다.

이 기도를 하나님께 드릴 때, 바울은 하나님께서 오직 성령님 만이 주실 수 있는 능력을 주시기를 간청하였다.

많은 성경 해석자들은 바울이 언급한 “너희 속 사람”이라는 말이 그가 에베소서 4장 24절에서 언급한 “새 사람”과 같은 뜻이 되고 있는 것으로 이해하고 있다

다른 해석자들은 그 말이 지적, 도덕적 및 영적 삶의 자리인 마음을 나타내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

잠언서 4장 23절은 “모든 지킬만한 것 중에 네 마음을 지키라”고 하면서 이는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고 하고 있다.


3장 17절


●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께서 너희 마음에 계시게 하시옵고 너희가 사랑 가운데서 뿌리가 박히고 터가 굳어져서


사도 바울이 다음으로 하나님께 간청한 것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께서 [그들의] 마음에 계시게” 되는 것이 되고 있다.

실제로, 그것은 16절의 말을 다른 용어들을 사용하여 다르게 표현한 말이 되고 있다.

바울은 “속 사람”이라고 하는 대신에, “너희 마음”이라는 표현을 사용하였다.

바울은 에베소 교회의 신자들이 성령님으로 말미암아 속 사람이 능력으로 강건하게 되기를 간구하는 대신에, 그리스도께서 그들의 마음에 계시게 되기를 간구하였다.

여기서 바울은 그리스도께서 믿는 자들의 마음에 계시는 것과 성령님이 믿는 자들 안에 거하시는 것을 엄격하게 구별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엄격하게 말하면, 그리스도께서 성령님을 통하여 믿는 자들의 마음에 계시다고 하는 것이 더 정확한 표현이 되고 있다.

에베소서 3장 17절 후 반절에서, 사도 바울은 또 다른 간청기도를 시작하고 있다.

바울은 에베소 교회 성도들이 하나님의 사랑을 체험하여 알게 되기를 기도하였다.

바울은 그 같은 뜻을 “너희가 사랑 가운데서 뿌리가 박히고 터가 굳어져서”라는 말로 표현하였다.

다시 말하면, 바울은 몇 가지 문구를 사용하여 이 탄원기도에 수반되고 있는 내용을 보다 충분하게 표현하려고 하였던 것이다.

본질적으로, 신자들의 “속 사람”이 하나님의 영광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성령으로 말미암아 강건하게 되는 주된 목적은 신자들이 좀더 잘 하나님을 사랑하고 서로 사랑하게 되는 것이 되고 있다.

첫째로, 바울은 믿는 자들이 “사랑 가운데서 뿌리가 박히[게 되기를]” 기도하였다.

바울이 언급 한 사랑의 종류는 헬라어의 “아가페”로, 희생적인 사랑, 그리고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를 통해 베풀어주신 사랑이 되고 있다.

구원을 얻는 믿음의 초자연적인 결과는 진정한 사랑을 표현할 수 있는 능력이 되고 있다.

바울은 나무의 비유를 들어 믿는 자가 하나님의 사랑으로 자라나는 것을 설명하였다.

나무가 좋은 토양에 뿌리를 깊이 내리면, 폭풍이 닥칠지라도 더 잘 견디어 낼 수 있다.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의 사랑이라는 비옥 한 땅에서 영적으로 자라나면, 믿음의 뿌리를 깊이 내리어, 여러 가지 삶의 역경을 견디어 내며, 다른 사람들에게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진정한 사랑을 베푸는 등, 많은 열매를 맺는다.

둘째로, 바울은 믿는 자들이, 나아가서 교회가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터가 굳어져서” 굳건히 서게 되기를 기도하였다.

터가 굳어지다”라는 말은 농업과 관련된 것이 아니라, 건축 용어가 되고 있다.

그 말은 튼튼한 기초 위에다 건물을 짓는 것을 묘사하고 있다.

다른 말로 표현하면, 사랑은 그리스도인들이 그들의 삶을 세우는 견고한 터 혹은 기초가 되고 있다.

하나님의 사랑 위에다 믿음의 집을 지으면, 삶의 폭풍이나 가뭄을 견디어 낼 수 있다.

예수님은 하나의 비유를 들어 그 같은 뜻을 밝히시면서, 집을 모래 위에 짓지 않고 “반석 위에 지은 지혜로운 사람”을 칭찬하셨다 (마 7: 24 -27).


구원을 받는 것은 끝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삶을 살아가는 시작이다.


3장 18 -19절


●     능히 모든 성도와 함께 지식에 넘치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고
●     그 너비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가 어떠함을 깨달아 하나님의 모든 충만하신 것으로 너희에게 충만하게 하시기를 구하노라 


신자들이 하나님의 사랑 가운데서 “뿌리가 박히고 터가 굳어[지기를]” 기도한 후에, 바울은 기도로 그 사랑을 묘사하였다.

비록 그리스도께서 한 신자가 구원을 받을 때에 그의 마음에 내재하실 지라도, 바로 그 신자는 믿음의 생활을 하면서 항상 하나님의 사랑의 크기를 더 많이 발견해야 한다.

구원을 받는 것은 끝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삶을 살아가는 시작이다.

바울은 에베소 교회 신자들이 하나님의 사랑의 모든 차원을 “깨달아” 알 수 있게 되기를 기도하였다.

그는 네 가지 차원을 나열하였다.

첫째로, 바울은 신자들이 하나님의 사랑이 “너비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가 어떠함을 깨달아” 알게 되기를 기도하였다.

그것들은 일반적으로 언약궤 (출 37: 1 - 2)나 솔로몬의 성전 (왕상 6: 2 -3)과 같은 3 차원의 물체와 관련된 용어들이 되고 있다.

그 같은 차원의 용어들을 사용하여, 바울은 사랑이 언약궤나 솔로몬의 성전과 같이 구체적인 것이 되고 있음을 나타내고 있다.

사랑은 정의하기가 어렵고 받아들이는 것은 더 어려운 모호한 성격의 것이 되고 있다.

그러나 바울의 사고 방식으로는, 하나님의 사랑은 그리스도께서 내주하시는 성도들에게는 알려질 수 있고 더욱이 받아 들일 수 있는 구체적인 대상이 되고 있다.

신자들이 하나님의 사랑의 크기를 “깨달아” 알게 되기를 간절히 바란 후에, 바울은 그들에게 “지식에 넘치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상기시켜 주었다.

그리스도의 사랑은, 구원을 받을 때 그리스도의 사랑을 체험한 신자들조차도 믿음이 자라나면서 계속해서 알아가더라도 다 알 수 없는 크기가 되고 있다.

자신의 기도에 대한 요약으로, 바울은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모든 충만하신 것으로 너희에게 충만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고 기도하였다.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교회 (에베소서 3장 20 -21절)


바울은 영광의 찬가로 기도를 마치면서, 하나님의 위엄을 선포하고 하나님의 위엄이 교회 안에서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나타나고 있는 점에 주목하였다.
그러므로, 교회는 하나님께 영원히 영광을 돌리는 주체이다.  


3장 20- 21절


●     우리 가운데서 역사하시는 능력대로 우리가 구하거나 생각하는 모든 것에 더 넘치도록 능히 하실 이에게
●     교회 안에서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영광이 대대로 영원무궁하기를 원하노라 아멘


바울은 하나님을 “우리 가운데서 역사하시는 능력대로 우리가 구하거나 생각하는 모든 것에 더 넘치도록 능히 하실 이”로 묘사하였다.

영어로는 ‘doxology’라는 말로 표시되고 있는 “영광송”(榮光頌)은 ‘여호와 하나님께 드리는 짧은 영광의 찬가’로 정의될 수 있다.
바울은 종종 기쁨과 감사에 차서 영광송으로 하나님을 찬양하며 영광을 돌렸다 (롬 11: 36; 16: 27; 갈 1: 5; 빌 4: 20; 딤전 1: 17).
에베소서 서신 전체를 통해, 바울은 하나님의 영광(뛰어남과 장엄함)에 주목하였다.

그의 서신에서 두 번째로 기도할 때, 사도 바울은 하나님의 “영광의 풍성함”을 언급하는 말로 기도를 시작하였다 (3: 16).

이제 그는 영광송을 “[하나님의] 영광이 대대로 영원무궁하기를 바라노라”는 말로 끝맺고 있다.

여기서 “대대”라는 말을 시간대를 가리키며 “영원무궁”은 시간의 끝이 없는 것을 나타내고 있다.   

이 영광송은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나며 선언되고 있는 두 가지 방법을 밝히고 있는 점에서 독특한 것이 되고 있다.

사도 바울은 하나님의 영광이 “교회 안에서”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대대로 그리고 영원무궁하게 나타나며 선언되기를 바란다고 하였다.

교회는 하나님의 계획과 능력을 드러내는 특별한 장소가 되었다.

교회는 그 자신에게 영광을 돌리지 않고, 하나님께 찬양과 영광을 돌리기 위해 존재한다 (1: 6, 12, 14).

바울의 영광송은, 동의 혹은 타당성을 나타내는 용도로 사용된 히브리 단어의 번역인 “아멘”으로 끝나고 있다.

바울은 모든 사람들이 완전하지 않지만 용서받은 사람들의 신앙 공동체이자, 유대인들과 이방인들로 구성된 교회가 놀라운 비밀이 되고 있음에 동의하기를 바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또한 하나님의 충만함으로 변화되는 과정에 있다.



말씀을 나의 상황에 적용하기:


●    신자들이 다른 신자들의 영적 성장을 위해 기도하면, 그들은 성령님으로 말미암아 능력을 받아 강건하게 자라날 수 있다.
●    신자들은 그들 마음에 거하시는 그리스도를 말미암아 속 사람에서부터 시작하여 겉 사람에 이르기까지 변화한다.
●    신자들은 하나님의 위엄과 능력을 나타냄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