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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살리심을 받다 - 제 3과 2019년 9월 15일 주일 용 - 장년성경연구 교사용 교안 - 에베소서 2장 1-10절

글쓴이 : 강호길 날짜 : 2019-09-09 (월) 10:21 조회 : 65

장년성경연구 교사용 교안

2019년 9월 15일 주일 용  


제 3과



다시 살리심을 받다       



학습구절: 에베소서 2장 1 -10절


성경진리: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선행과 관계 없이 우리가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도록 은혜를 베풀어 주신다.


주요교리 인간                                                                                                                                                                                                                                                                                                                                                                                                                                                                                                                                                                                                                                                                                                                                                                                                                                                                                                                                                                                                                                                                                                                                                                                                                                                                                                                                                                                                                                                                                                                                                                                                                                                                                                                                                                                                                                                                                                                                                                                                                                                                                                                                                                                                                                                                                                                                                                                                                                                                                                                                                                                                                                                                                                                                                                                                                                                                                                                                                                                                                                                                                                                                                                                                                                                                                                                                                                                                    

인간은 사탄의 유혹을 받아 본래의 무죄 상태에서 타락하였으며, 이로 인하여 그의 후손은 죄의 속성과 환경을 물려받게 되었다 (롬 3: 23).  


암송구절:  에베소서 2장 8 -9절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하지 못하게 함이라  

“For it is by grace you have been saved, through faith –

and this is not from yourselves, it is the gift of God – not by works,

so that no one can boast.”           



시작하는 글:


우리는 우리가 보는 모든 판매 광고와 선전물들이 “이전과 이후”의 접근 형식을 따르고 있다고 가정할 수 있다.

적어도, 대부분의 화장품이나 체력단련 광고들은 제품이나 프로그램을 사용하기 이전의 사람을 보여주고 그것을 사용한 후에 나타나는 놀라운 효과를 다시 보여주는 방법을 사용한다고 말할 수 있다.

이 방법에서, 감지하기 힘든 변화라도 놀라움과 감탄의 모델이 되고, 충격적인 정보가 제시되며 문제에 대한 놀라운 해결책이 뒤 따른다.


어떻게 한 사람의 삶 속에서 일어나는 긍정적인 변화가 다른 사람들에게 같은 변화를 일으키도록 동기를 부여해 주는가?



본문배경설명


에베소서 2장 1절부터 10절까지


본문 구절들에서, 바울은 인간이 본질적으로 어떤 존재가 되고 있는지 그리고 하나님의 은혜로 어떤 사람이 될 수 있는지를 극명하게 대조시키고 있다.

여기서 우리가 발견하게 되는 것은 “이전”과 “이후”의 그림이다.

2장 1절부터 3절까지는 “이전의 그림”으로, 그리스도를 믿기 이전의 우리의 모습이고, 4절부터 10절까지는 “이후의 그림”으로, 그리스도를 믿은 후의 우리의 모습이 되고 있다.

에베소의 문화적인 상황과 종교적인 배경을 살펴보면, 그 이전과 그 이후의 차이점을 더 분명하게 볼 수 있다.

에베소의 예배는 아데미(Artemis)로 불려지고 있던 헬라의 여신을 숭배하는 것이 중심이 되었다.  

아데미는 보호와 풍요의 여신, 특별히 야생 짐승들을 수호하는 여신으로 숭배되었다.

아데미 신전은 에베소 성 밖에 위치해 있었는데, 그것은 아데미 여신을 숭배하고 예배하도록 지정된 특별한 장소가 되었다.  

아데미 신전은 그 크기가 아덴에 있던 지혜와 예술의 전당인 파테논(Parthenon) 신전의 네 배나 되었다.

아데미 신전은 당시 세계 7 대 불가사의 중 하나가 되었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은 에베소를 “아데미 여신”과 연결시켜 생각하였다.

또한 예배자들은 정기적으로 여신의 신상을 들고 신전으로 행진해 들어가 예배 의식에 참여하였다.

아데미 신전에서는 또한 해마다 음악, 춤, 연극 등으로 펼쳐지는 축제가 열려 많은 사람들이 참석하였다.  

에베소 사람들은 보호와 보살핌을 얻기 위한 목적으로 신을 섬겼다.

바울의 은혜의 복음은 아데미 신전에서 예배하는 사람들에게는 생소하고도 이질적으로 들렸다.

아데미 여신 숭배 외에도, 그 지역에 있는 많은 사람들은 마술(魔術)과 그 지역 특유의 민속신앙에 관여하였다.

사도행전 19장 13 -20절에는, 바울이 병자를 고치고 악귀를 쫓아낸 것을 포함하여, 특별한 기적을 행한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다.

스게와”라는 유대인 제사장을 따르던 사람들이 악귀를 쫓아내려고 하였으나 성공하지 못하였다 (행 19: 14 -16).

에베소 사람들이 그 이야기를 들었을 때, 많은 사람들이 자기들이 행한 일을 자백하며 공개하였다 (행 19: 18).

또 마술을 행하던 많은 사람들이 그 책을 모아가지고 와서 모든 사람들 앞에서 불살라버렸다 (행 19: 19).


한 때 죽었던 신자들 (에베소서 2장 1 -3절)


이 단원의 세 구절은 신자들이 구원받기 이전의 상태를 기술하고 있으며, 구원받은 신자들의 영적 상태를 묘사해 주고 있는 4절부터 7절까지의 배경이 되고 있다.  

바울은 그의 수신자들에게 그들이 그리스도 안에서 구원을 받기 이전에는 영적으로 죽었던 것을 상기시켜주었다.  

그들은 또한 사탄에 의해 죄에 매여있었다.


2장 1 -2절 


●    그는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
●    그 때에 너희는 그 가운데서 행하여 이 세상 풍조를 따르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랐으니 곧 지금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영이라


사도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구원을 받기 이전의 에베소 교회 신자들의 영적 상태를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로 묘사하였다.
바울이 사용한 “너희”라는 이인칭 복수 대 명사는 에베소 교회 교인들을 가리키는 일반적인 말이 될 수 있지만, 여기서는 특별히 이방인 신자들을 가리키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사도 바울은 2장 3절에서 “우리도”라는 일인칭 복수 대명사를 사용하였는데, 그 말은 바울과 그의 동역자들을 포함하여 유대인 신자들을 가리키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바울은 이방인이건 유대인이건 관계 없이 모두가 그리스도 안에서 구원을 받기 전에는  “죽었던 (자)”들이었던 사실을 강조하였다.

여기서 “죽었(다)”는 말은 육체의 죽음이 아니라, 영적인 죽음을 가리키는 것으로, 하나님과의 영적인 관계가 끊어지고 다시 영적 관계를 맺을 수 없는 인간의 상태를 묘사하고 있다.

사도 바울은 로마서 3장 23절에서는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라는 말로 인간은 누구나 죄인인 것을 강조하고, 6장 23절에서는 “죄의 삯은 사망이요 하나님의 은사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영생이라”라는 말로 죄인인 인간은 모두가 영적으로 죽었다는 사실과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다시 살리심을 받아 영생을 얻을 수 있음을 밝혀주었다.

그런데, 바울은 여기에서는 에베소 교회 신자들에게 “(하나님이)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라고 하였다.  

인간은 어떻게 영적으로 죽게 되었는가?

바울은 “허물”과 “”라는 두 가지 용어로 설명하였다.

그 두 가지는 같은 내용이 되고 있지만, 그 둘 사이에는 미묘한 차이가 있다.

“허물”로 번역된 용어는 넘지 말아야 할 경계선을 고의적으로 넘어서거나 바른 길에서 벗어나는 것을 가리키고 있다. 

”로 표현된 용어는 죄에 대해 보다 일반적인 의미로 사용되고 있는 것으로, 표적을 못 마치다 혹은 기대에 미치지 못하다는 뜻이 되고 있다.

이들 두 단어는 함께 적극적인 잘못 (죄를 저지르는 것)과 소극적인 잘못 (옳은 일을 하지 않은 것)을 포함하고 있다.

야고보도 “사람이 선을 행할 줄 알고도 행하지 아니하면 죄니라”는 말로, 소극적인 잘못을 죄로 규정하였다 (약 4: 17).

그러므로, 죄인들은 거역한 자들과 실패한 자들이 되고 있다.

구원받지 못한 모든 죄인들은 영적으로 죽었다는 성경의 가르침과 구원받지 못한 많은 사람들이, 심지어 그리스도를 공개적으로 거부하고 있는 사람들조차도 - 살아 있는 것같이 보이며 활동할 수 있다고 보려는 우리의 인식을 바르게 일치시키는 것이 중요하다.

그같이 행하는 사람들은 정말로 죽은 것인가?

영적인 측면에서 그들은 죽은 자들이다.

그들은 하나님을 알 수 없고, 하나님을 진정으로 사랑할 수도 없으며,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맺을 수도 없다.

다시 말해서, 영적으로 죽은 자들은, 시체가 주위의 다른 생명체에 반응이 없는 것처럼, 하나님께 아무 반응이 없다.

죄인들이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영적으로 죽은 사실을 깨닫고 인정할 때까지, 그들은 그리스도 안에서 얻는 구원의 놀라운 축복을 받아들일 수도 없고 그같이 하지 않을 것이다.


세상은 사람들에게 ‘자신을 믿으라’ 혹은 ‘네 힘으로 할 수 있다’고 한다.

그러나, 성경은 ‘허물과 죄로 죽었다’고 한다.  죽은 사람은 자신을 구원할 수 없다.


예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은 영적으로 죽었다고 선언 한 후에, 바울은 그 상태가 무엇을 의미하는 지를 설명하였다.
첫째로, 그들은 “세상 풍조를 따라” 살고 있다고 하였다.
세상”으로 사용 된 단어가 항상 부정적인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여기서는 그렇다.
세상 풍조”라는 말은 그리스도 밖에 있는 사람들이 받아들이는 기독교적이 아닌 가치 체계를 포함하고 있다.
행하다”로 번역된 헬라어는 ‘걸어가다’는 뜻이 되고 있다.
그 말은 일관된 삶의 방식을 가리키고 있다.
여기서 그 말은 그리스도 밖에 있는 세상적인 가치관을 받아들이는 것을 뜻한다.
세상의 메시지는 그리스도의 메시지에 반대되고 있다.
세상은 사람들에게 ‘자신을 믿으라’ 혹은 ‘네 힘으로 할 수 있다’고 한다.

그러나, 성경은 ‘허물과 죄로 죽었다’고 한다.  죽은 사람은 자신을 구원할 수 없다.

세상 풍조를 묘사하면서, 바울은 설명하기를 세상풍조를 따르는 것은 곡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르는 일이라고 하였다.
그것은 사탄을 가리키는 말이다.
요한은 사탄을 “세상 임금”으로 불렀다 (요 12: 31; 14: 30; 16: 11).
사탄은 또한 “귀신의 왕”으로 불려지고 있기도 하다 (마 9: 34; 12: 24; 막 3: 22; 눅 11: 15).
바울은 “공중”이라는 용어를 사용하여 사탄이 거하는 곳을 지칭하였다.
바울은 “공중의 권세 잡은 자” 혹은 “사탄”을 “지금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영”으로 불렀다.


2장 3절


●    전에는 우리도 다 그 가운데서 우리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을 하여 다른 이들과 같이 본질상 진노의 자녀이었더니


영적으로 죽은 사람들은, “세상 풍조”를 따르는 삶을 사는 것 외에 “육체의 욕심을 따라”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지내며”로 번역된 헬라어는 생활 방식을 뜻하는 것으로, 그 말의 문자적인 뜻은 ‘원형을 끊임 없이 빙빙 돌다”이다.

이 말이 나타내고 있는 뜻은 영적으로 죽은 자는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이 육체의 욕심에 빠져들어 계속 반복적으로 그 같은 삶을 계속 살아가고 있다는 것이다.

영적으로 죽은 자들이 “육체의 욕심을 따라” 살고 있다는 말은 어떤 면에서 반어적(反語的)인 표현이 될 수 있다.

그러나, 그들은 영적으로 죽었기 때문에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마음의 원하는 것”을 하고 있는 것이다.  

사도 바울은 그같이 사는 사람들을 “본질상 진노의 자녀”로 불렀다.

아담과 이브가 죄를 지은 일은 단순히 하나의 도덕적 과실이나 실수 혹은 나쁜 결정이 아니었다.

그들이 에덴 동산에서 하나님께 죄를 지었을 때, 그것은 그들에게 타락한 죄의 본성을 갖게 하고, 육체의 죽음이 찾아오게 되었고, 하나님과 원수가 되게 한 심각한 일이 되었다.

더욱이, 타락한 죄의 본성은 그들의 모든 후손들에게 유전되고 있다.

그들은 죄로 죽게 되었으며 하나님의 진노아래 놓이게 되었다.

영적으로 죽은 인간은 스스로 자신을 도울 수 있는 위치에 있지 못하기 때문에 하나님의 도우심이 필요하다.


다시 살리심을 받은 신자들 (에베소서 2장 4 -7절)


바울은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이 하나님의 은혜로 살리심을 받은 사실을 선언하였다.
믿는 자들이 받은 이 구원은 그들의 공로나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에 근거되고 있다. 
신자들은 예수님이 높이 들림을 받은 것과 같이 "하늘에서" 높이 들림을 받는다.


2장 4- 5절


●    긍휼이 풍성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큰 사랑을 인하여
●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 (너희는 은혜로 구원을 받은 것이라)


2장 1절부터 3절까지의 학습구절에서, 바울은 그리스도 밖에 있는 사람들은 “허물과 죄로” 영적으로 죽은 자들이며 하나님의 진노아래 있다고 하였다.

그러므로, 공의의 하나님은 죄를 못 본체하실 것이 아니라, 벌해야 마땅하셨다.

바꾸어 말하면, 죄인들은 하나님의 징벌을 받아 마땅하였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의 큰 사랑으로 죄는 벌하시고, 죄인은 죄를 용서받을 수 있는 길을 열어주셨다.

그의 다른 서신인 로마서에, 바울은 하나님께서 죄인들을 위해 행하신 일을 다음과 같이 표현하였다: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롬 5: 8).

우리의 죄에 대해 우리를 징벌하시는 대신에, 하나님은 우리의 죄에 대한 진노를 그의 아들인 예수님에게 쏟으셨는데, 그에게는 벌을 받을 어떤 죄도 없으셨다.

실제로, 그것은 바울이 하나님의 사랑을 크다고 한 이유가 되고 있다.

그 큰 사랑을 인하여,” 하나님께서는 그를 믿는 자들에게 세 가지 놀라운 일을 행하셨다.

첫째로, 하나님은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다).”

바울은 “너희는 은혜로 구원을 받은 것이라”는 말을 덧붙여 그 뜻을 설명하였다.

예수님을 죽은 자들 가운데서 살리신 것같이,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영적 죽음에서 살려주시고 “은혜로’ 구원해 주신다.

은혜로”라는 말은 에베소서에서 열두 번씩이나 사용되고 있다.  

영적 죽음에서 새 생명으로 살리심을 받은 신자들은 그 같은 놀라운 일에 대해 어떤 공로도 주장할 수 없다.

단지 불가능하게 보이는 일을 행하신 하나님의 능력에 놀라움을 금치 못할 뿐이다.   


2장 6절 


●    또 함께 일으키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하늘에 앉히시니


사도 바울은 하나님께서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 “또 함께 일으키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하늘에 앉히(셨다)”고 하였다.

우리는 “함께”라는 단어가 반복적으로 사용되고 있는 점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

살리셨고,” “일으키사” 그리고 “앉히시니”라고 한 말은 하나님께서 아들이신 예수님에게 하신 일을 가리키는 것으로, 1장 20절에서 밝힌 것과 같은 내용이다.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를 죽은 자들 가운데서 살리셔서 하늘에 있는 보좌에 앉히셨다.

이제 바울은 하나님께서 그리스도께 하신 것처럼 그를 믿고 구원을 얻은 우리들에게도 똑같이 행해주시고 있는 것을 밝혀주고 있는 것이다.

하나님은 죄로 죽었던 우리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다시 살려 주셨다.

“살리셨다”, “일으키셨다”, “하늘에 앉히셨다” 등의 말들로 묘사되고 있는 영적 축복들은 신자들에게 있어서 현재의 상태가 되고 있다.

우리 믿는 자들은 그 같은 축복들이 마지막 때에 완성되기를 기다리고 있지만, 하나님은 그의 백성들을 위해 이미 모든 것을 이루어 가시고 계시기 때문이다.


2장 7절 


●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자비하심으로써 그 은혜의 지극히 풍성함을 오는 여러 세대에 나타내려 하심이라


하나님께서는 왜 죄인들에게 그렇게 은혜를 베푸실까?

이 구절이 그 이유를 알려주고 있다.

하나님은 “그 은혜의 지극히 풍성함을 오는 여러 세대에 나타내시기를” 원하신다.

한 죄인이 구원받을 때마다 하나님의 은혜는 더 풍성해 지고 더 확장되게 마련이다.

하나님께서 지극히 크신 은혜로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려주시고, 일으켜 세워 주시고, 하늘에 앉혀주신 우리들은 그의 은혜의 트로피가 되고 있다.


오직 하나님의 은혜에 의하여 (에베소서 2장 8 -10절)


구원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통해서만 얻을 수 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타락한 피조물에게 베풀어주시는 은혜의 행위가 되고 있다.
구원은 단지 선물로 받는 것이지, 노력이나 공로로 얻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선한 일을 행함으로 구원을 받은 것이 아니라, 선한 일을 행하도록 구원을 받았다.
인간에게 필요한 것은 인간 자체의 개혁이나 개발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을 받고 변화를 받는 일이다.
그것은 하나님께서만 하실 수 있는 일이다.


2장 8- 9절


●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하지 못하게 함이라  


이 시점까지, 바울은 에베소 교회의 신자들이 영적으로 그들의 허물과 죄로 죽었었지만, 그의 큰 사랑을 인하여 은혜로 살리심을 받은 사실을 설명하였다.

그같이 놀라운 일이 어떻게 일어났는가?

그것은 믿음으로 받아들인 하나님의 은혜의 행위가 되고 있다.

바울은 그같이 일어난 현상을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라는 말로 표현하였다.  

구원에는 죄를 사함 받는 것 이상의 것들이 포함되고 있다.

구원을 받는 일은 죽음의 권세로부터, 죄의 속박으로부터, 죄의 진노로부터 구출을 받는 일들을 포함하고 있다.   

바울은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는 말로, 그 같은 것들로부터 자신을 구원할 수 있다는 어떤 환상도 말살시켜 버리고, 하나님의 은혜의 필요성을 강조하였다.


구원이 인간의 방법과 수단에 의해 성취된다고 믿는 것은 인간의 능력을 높게 평가하는 일이 되고 있는 반면에 죄와 죽음의 힘을 낮게 평가하는 일이 되고 있다.


구원의 유일한 기초는 하나님의 은혜이지만, 바울은 그 은혜는 믿음을 통해서만 받을 수 있는 것을 분명하게 밝혔다.

다른 서신들에서, 바울은 이 구원을 받는 개인의 책임을 강조하였다 (롬 3: 22, 25; 갈 2: 16; 벧전 1: 5 참조).

구원은 믿음으로 받는 것으로 하나님의 선물이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은혜로 구원의 선물을 우리에게 주신다.

그렇지만, 우리는 하나님께서 주시는 그 선물을 받아야 얻을 수 있다.

우리가 하나님께서 구원의 계획과 은혜로 보내신 구세주가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은 그 선물을 받는 방법이 되고 있다.


당신은 바울이 구원을 인간의 업적이 아니라, 하나님의 선물이라고 강조한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구원은 인간의 행위나 업적으로 얻을 수 있다는 생각을 배제하기 위해, 바울은 9절에서 덧붙여 말하기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하지 못하게 함이라”고 하였다.

어느 누구도 선한 일을 하거나 율법을 지킴으로써 구원을 얻을 수 없다.

로마서에서, 바울은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얻는 것은 율법의 행위에 잊지 않고 믿음으로 되는 줄 우리가 아노라”고 하였다 (롬 3: 28).

바울은 덧붙여 말하기를, 아브라함이 의롭다 하심을 받은 것은 그의 믿음에 의해서이지, 행위가 아니라고 하였는데, 실제로 그것은 율법이 주어지기 이전의 일이 되었다 (로마 4: 1 -4).

바울은 또한 디도에게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신 것은 우리의 “행한 바 의로운 행위로 말미암지 아니하고” “성령의 새롭게 하심으로 하셨(다)”고 하였다 (딛 3: 5).

갈라디아서 2장 16절에서는, “사람이 의롭게 되는 것은 율법의 행위로 말미암음이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는 줄 알므로 우리도 그리스도 예수를 믿(는다)”고 하였다,   

바울은 사람이 선한 사람이 되거나 선을 행함으로써 구원을 얻을 수 없다는 것을 일관되게 분명히 밝혔다.


2장 10절


●    우리는 그가 만드신 바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니 이 일은 하나님이 전에 예비하사 우리로 그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하심이니라


구원 받은 신자는 하나님의 작품인 것을 알기 때문에, 바울은 “우리는 그가 만드신 바라”고 고백하였다.

태초에, 하나님께서는 인간을 만드셨다.

그러나, 모든 피조물들 중에서 최상의 걸작품이었던 인간은 하나님께 죄를 범함으로 타락하게 되었고 저주를 받게 되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의 은혜로 아들을 세상에 보내셔서 그를 믿는 자들 속에서 새 사람을 만드시는 일을 하셨다.

사도 바울은 하나님께서 그같이 하시는 일을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는 말로 표현하였다 (고후 5: 17).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구원을 받은 신자들은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으로 새롭게 지음을 받은 자들이다.

그런데, 사도 바울은 그같이 “새로운 피조물”로 지음을 받은 신자들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라고 하였다.


선한 일은 구원의 뿌리가 아니라, 구원의 열매이다.


비록 선한 일로 구원을 얻지 않을 지라도, 구원을 얻은 후에는 구원은 선한 일의 열매를 맺는다.

바울은 또한 구원을 받은 신자들은 그들의 삶 속에서 선한 일을 나타내고 있음을 지속적으로 언급하였다 (고전 15: 58; 고후 9: 8; 골 1: 10; 살후 2: 17; 딤전 2: 10; 6: 18; 딤후 2: 21; 3: 17; 딛 2: 7, 14).  

마지막으로, 바울은 신자들이 하는 선한 일은 “하나님이 전에 예비하사 우리로 그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하심이니라”고 하였다.

그것은 신자들에게 구원의 목적을 밝혀주는 말이 되고 있다.



말씀을 나의 상황에 적용하기:


●    그리스도를 떠나서는, 모든 사람들은 하나님과 분리된 상태에 있으며 죄에 대한 그의 심판을 받게 된다.     
●    신자들은 예수님을 믿는 믿음을 통해 삶과 목적을 찾는다.  
●    구원은 하나님의 은혜로 예수님을 믿는 믿음을 통해서만 얻을 수 있기 때문에 아무도 그것에 대해 자랑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