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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도들을 위한 바울의 기도 - 제 2과 2019년 9월 8일 주일 용 - 장년성경연구 교사용 교안 - 에베소서 1장 15 -23절

글쓴이 : 강호길 날짜 : 2019-09-02 (월) 05:23 조회 : 95

장년성경연구 교사용 교안

2019년 9월 8일 주일 용  


 2과



성도들을 위한 바울의 기도       



학습구절: 에베소서 1장 15 -23절


성경진리:  

하나님께서는 신자들이 그들의 삶에 대한 하나님의 부르심의 풍성함과 위대함을 이해하도록 도와 주신다.


주요교리 아들 하나님                 

부활하신 그리스도는 하늘로 들려 올라 가셔서, 거기서 높임을 받아 이제는 하나님의 오른편에 앉아 계시며, 한 분이신 중보자가 되시고, 완전한 하나님이시자 완전한 사람이 되시며,

그 안에서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화목이 이루어 지고 있다  (딤전 2: 5 -6).


암송구절:  에베소서 1장 18절  

너희 마음의 눈을 밝히사 그의 부르심의 소망이 무엇이며 성도 안에서

그 기업의 영광의 풍성함이 무엇이며

“I pray that the eyes of your heart may be enlightened in order that you may know the hope to which he has called you, the riches of his glorious inheritance in his holy people.”          



시작하는 글:


통찰력은 원인과 결과의 관계를 이해하는 능력이 되고 있다.
과학자들은 관찰할 수 있는 반복적인 현상과 예측이 가능한 통찰력에 기초하여 이론을 제기한다.

아이작 뉴턴 경은 사과 나무에서 사과가 수직으로 땅에 떨어지는 것을 목격하고 그것에 기초하여 “중력(重力)의 법칙(法則)”을 제안하였다.

결과(結果)가 원인(原因)을 밝혀준 것이다.

그리스도인의 삶에서도, 우리는 원인과 결과의 실재를 보게 된다.

바울은 에베소의 신자들이 그리스도를 통해 얻은 그들의 구원이 그들의 일상 생활에 미치는 결과를 깨닫게 되기를 기도하였다.


이 세상에서 우리는 결과를 보고 어떻게 원인을 알 수 있는가?

한 사람의 영적 생활에서는 어떤가?

결과가 나타나지 않는 원인이 있을 수 있는가?  설명해 보라.



본문배경설명


에베소서 1장 15절부터 23절까지


바울은 하나님께서 에베소 교회 성도들을 구원하시기 위해 그들에게 베풀어 주신 축복들을 열거하는 것으로 에베소 교회에 보내는 서신을 시작하였다.

하나님 아버지는 창세 전에 그들을 구원을 받도록 택하여 주셨고, 그의 기쁘신 뜻을 따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그의 자녀가 되게 예정해 주셨다 (엡 1: 3 -6).

그들은 하나님의 그 같은 축복을 얻기 위해 한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

하나님은 그의 사랑과 은혜로 그같이 행해 주셨다.

그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였다.

에베소 교회 성도들은 예수님을 구세주로 믿음으로 그의 피로 말미암아 죄 사함을 받고, 기업의 상속자가 되었으며, 삶을 위한 지혜와 총명을 받았다 (1: 7-11).

성령님은 그들의 봉인(封印)이 되어주셔서, 그들이 하나님의 소유가 되고 보호를 받고 있음을 입증해 주셨다.

성령님은 또한 믿는 자들이 받을 기업의 보증(保證)이 되셔서, 하나님이 그들 안에서 시작하신 것을 끝내실 것을 약속해 주셨다 (1: 12 -13; 빌 1: 6).  

그 모든 일은 그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영광을 찬양케 하는 일이 되었다.

하나님께서 믿는 자들의 삶 속에서 행하시는 일들을 강조한 찬양한 후에, 바울은 1장 15절부터 23절까지에서 에베소서 교회 성도들을 위하여 기도하였다.

바울은 편지를 쓸 때 종종 수신자(受信者)들을 위한 감사의기도로 시작하였다.

로마서를 쓸 때, 바울은 로마에 있는 성도들로 인하여 하나님께 감사하였고, 그들을 방문할 수 있는 기회를 주시기를 하나님께 기도하였다 (롬 1: 8 -10).

고린도전서에서, 바울은 그곳 신자들을 위하여 하나님께 감사하였고, 영적 은사를 나타내려는 그들의 열심을 칭찬하였다 (고전 1: 4 -10).

고린도 후서에서 그는 성도들이 고난에 직면했을 때 위로를 받게 되기를 기도했다 (고후 1: 3-7).

바울은 빌립보에 있는 성도들에게는 그들이 복음에 참여한 자가 됨을 인하여 감사하였고 (빌 1: 3 -11), 골로새에 있는 성도들에게는 그들의 믿음을 인하여 하나님을 찬양하였다 (골 1: 3 -8).

바울의 서신들 중에서 주목할 만큼 기도와 감사의 말이 빠진 것은 갈라디아서가 되고 있는데, 거기서 바울은 주님을 떠나 “다른 복음”을 따르는 사람들이 있는 문제를 곧장 다루기 시작하였다 (갈 1: 6).

그것은 갈라디아 교인들에게 매우 심각한 문제가 되었기 때문에, 바울은 서신의 형식에 구애 받지 않고 처음부터 그 문제를 공격하였다.

그러나, 에베소 교회 성도들의 경우는 그렇지 않았다.

바울은 그들의 믿음에 대한 소식을 들었고, 이를 인하여 감사하며 그들의 믿음이 계속 자라나도록 하나님께서 그들을 도와주시기를 기도하였다 (1; 15 -23).

바울이 에베소에서 사역했을 당시 (행 19: 1 -20), 에베소는 인구가 2십 5만명으로 추산되는, 세계에서 가장 큰 도시의 하나였다.

교회는 복음을 전파하는데 전략적으로 매우 중요한 위치에 있었던 것이다.

에베소 교회는 사도 바울에 의해 개척되었으며, 당시 바울은 3년 동안이나 머물면서 복음을 전하며 두란노 서원을 중심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쳤다 (행 19: 9; 20: 31).

1 세기 말까지 교회는, 한때 가졌던 주님에 대한 초기의 열정과 사랑이 많이 식어지긴 했지만, 여전히 활발하게 사역했던 것으로 보인다 (계 2: 1 -7).


하나님을 더 잘 알도록 (에베소서 1장 15 -17절)


바울은 편지의 수신자들을 위해 간절히 기도하고 있음을 밝혔다.

그는 설명하기를, 그들의 믿음과 성도들을 위한 사랑을 인하여 감사할 뿐 아니라, 그들이 믿음 안에서 하나님을 더 잘 알게 되기를 끊임 없이 기도하고 있다고 하였다.


1장 15 -16 절


●    이로 말미암아 주 예수 안에서 너희 믿음과 모든 성도를 향한 사랑을 나도 듣고
●    내가 기도할 때에 기억하며 너희로 말미암아 감사하기를 그치지 아니하고

이로 말미암아”라는 말은 3절부터 14절까지에서 바울이 그리스도 안에서 얻는 구원의 풍성한 영적 축복을 베풀어 주신 하나님을 찬송한 것을 가리키고 있다.

바울은 그것을 근거로 하여 믿는 자들을 위해 기도하기 시작하였다.

특별히, 사도 바울은 신자들이 궁극적으로 받게 될 ‘영적 상속’ 혹은 “기업”에 대한 “보증”으로, 성령님의 인침을 받은 축복에 대해 생각하고 있었다 (1: 13 -14).

사도 바울은 “믿음”과 “사랑”이라는 두 가지 중요한 영적 특성을 연결시켜, “주 예수 안에서 너희 믿음과 모든 성도를 향한 사랑”을 들었다는 말로 예베소 교회 성도들을 칭찬하였다.

믿음”은 “주 예수”를 믿는 것으로, 에베소 교회의 성도들은 그 믿음으로 구원을 얻고 믿음의 생활을 하게 되었다 (엡 2: 8).

바울은 에베소에서 많은 사람들이 “주 예수 안에서” 그를 믿는 믿음으로 구원을 얻는 것을 직접 목격하기도 했지만, 그가 떠난 후에도 더 많은 사람들이 계속해서 믿게 되었다.

바울은 많은 사람들이 그리스도를 믿는 것을 기뻐하였다.

그들이 모든 성도들에게 나타낸 “사랑”은 참된 믿음의 증거가 되었다.

이 구절에서 언급되고 있는 “사랑”은 헬라어로 “아가페”로, 희생적인 사랑인 하나님의 사랑이 되고 있다.

성도”라는 말은 특정한 계층의 신자들이 아니라, 모든 믿는 자들을 지칭하는 공식 명칭이 되고 있다.

모든 신자들은 죄 많고 타락한 세상에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백성으로 구별되고 있다는 점에서 성도들이다.


교인들이 끊임 없이 감사하며 기도하는 교회는 축복받는 교회이다.


에베소 교회의 성도들의 믿음과 사랑에 대해 들었을 때, 바울은 “감사”하며 기도하기 시작하였다.
그는 에베소 교회 성도들에게 “내가 기도할 때에 기억하며 너희로 말미암아 감사하기를 그치지 아니(한다)”고 하였다.

기도할 때에 그들을 “기억(한다)”고 한 말에서는 하나님 앞에서 그들 교회의 이름을 부르고 있다는 뜻이 암시되고 있다.

바울의 기도는 지속적이고도 구체적인 것이었다.


1장 17절


●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 영광의 아버지께서 지혜와 계시의 영을 너희에게 주사 하나님을 알게 하시고


신자들이 어느 때나 어느 장소를 가리지 않고 가장 필요로 하는 것은 하나님과의 믿음의 관계가 계속 자라나는 것이다.

그러므로, 바울은 그의 독자들인 에베소 교회 성도들의 믿음이 계속 자라나기를 기도하였다.

그의 중보의 기도에서는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과 “계시의 영”이라는 말로, 삼위일체 하나님, 즉 아버지와 아들 그리고 성령님의 임재와 역사하심이 분명하게 나타나고 있다.

기독교의 기도의 교리는 “온갖 좋은 은사와 온전한 선물이 다 위로부터 빛들의 아버지로부터 내려 (온다)”고 가르친다 (약 1: 17).

그러므로, 바울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 영광의 아버지께” 기도함으로, 그 같은 사실을 확증하였다.

에베소서 1장 3 -14 절에서 묘사 되고 있는 모든 영적 축복은 하늘 아버지로부터 오는 것들이며, 믿는 자들은 하나님의 아들인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만 그것들을 얻을 수 있다.

바울이 에베소 교회 성도들을 위해 기도한 구체적인 기도는 그들이 “하나님을 알게” 되도록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 영광의 아버지께서” 그들에게 “지혜와 계시의 영”을 그들에게 주시는 것이 되고 있다.

바울은 그들이 하나님을 더 잘 알게 되기를 기도했던 것이다.

한 신도가 하나님을 아주 많이 알고 있다 할지라도, 혹은 아주 오랫동안 하나님과 동행해 오고 있다 할지라도, 우리는 하나님을 다 알 수 없다.

하나님께는 알아야 할 것이 끝이 없이 많다.

오직 교만한 자들만이 하나님을 잘 안다고 생각한다.

믿는 자들 속에 거하시는 성령님은 성도들이 두 가지 영역에서 자라나도록 도와 주시는데, 하나는 “지혜”이고 다른 하나는 “계시”가 되고 있다.

여기서 “계시”는 하나님을 알게 되는 지식을 가리키며 (고후 4: 6; 골 1: 9 -10), “지혜”는 그 지식을 삶의 방향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실질적인 능력을 가리키고 있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소망을 알도록 (에베소서 1장 18 -19절)


바울은 신자들이 그리스도 안에 있는 그들의 소망이 무엇인지를 좀더 잘 이해하도록 기도하고 있다고 하였다.

바울은 그의 독자인 신자들이 그들의 기업의 가치를 알고 또 그들의 삶 속에서 나타나고 있는 하나님의 능력을 깨닫게 되기를 원하였다.  


1장 18- 19절


●    너희 마음의 눈을 밝히사 그의 부르심의 소망이 무엇이며 성도 안에서 그 기업의 영광의 풍성함이 무엇이며
●    그의 힘의 위력으로 역사하심을 따라 믿는 우리에게 베푸신 능력의 지극히 크심이 어떠한 것을 너희로 알게 하시기를 구한노라 


에베소 교회의 성도들이 하나님을 더 잘 알게 되도록,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지혜와 계시의 영을 주시기를 기도한 후에 (1: 17), 바울은 성령님께서 그들에게 행해 주시기를 원하는 구체적인 제목을 가지고 기도하였다.

바울은 성령님께서 그들의 “마음의 눈을 밝(혀주시기를)” 기도하였다.

마음”은 지적(知的)인 그리고 영적(靈的)인 삶의 자리가 되고 있다.  

그래서 마음은 종종 “속 사람”으로 표현되고 이따.

그리고 바울은 마음에 눈이 있는 것을 믿었다.

마음의 눈은 감겨져서, 사람을 어둠 속에 잠기게 할 수 있거나, 떠져서 빛을 드러내 줄 수 있다.

그리스도와 성령님의 행함이 없이는, 사람들은 복음에 눈이 감겨져서 죄의 어두움 가운데 살게 된다. 

바울은 사람이 그리스도를 믿는 순간에 성령님이 그의 삶 속에 들어와 계시는 것을 믿었지만 (엡 1: 13-14), 개종 후에도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계속 자라나는 것이 필요한 것을 믿었다.

첫째로, 바울은 에베소 교회 교인들이 마음의 눈이 밝아져서 하나님의 “부르심의 소망이 무엇(인지)”를 알기를 원하였다.

바울은 종종 자신이 하나님과 맺고 있는 관계를 그의 부르심으로 표현하였다.

확실히, 그것은 과거에 일어난 일이 되고 있다.

바울은 딤후 1장 9절에서 디모데에게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사 거룩하신 소명으로 부르(셨다)”고 설명하였다.

그렇지만, 이 부르심은 현재의 삶에 계속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

바울은 데살로니가 교회의 성도들에게 “너희를 부르사 자기 나라와 영광에 이르게 하시는 하나님께 합당히 행하(라)”고 간청하였다 (살전 2: 12).

하나님의 과거의 부르심에는 현재의 의미와 목적이 담겨 있다.

바울은 또한 데살로니가 교회의 성도들에게는 하나님께서 그들을 “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을 얻게 하려 하(시려고)” 복음으로 부르신 것을 상기시켜 주었다 (살후 2: 14).  

바울은 하나님의 부르심 안에는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가 포장되어 있는 것을 보았다.

두 번째로, 바울은 에베소 교회의 성도들이 “성도 안에서 그 기업의 영광의 풍성함이 무엇(인지)”를 알게 되기를 기도하였다.

여기서 “그 기업의 영광”이란 말은 특별히 그리스도의 재림 때 성도들에게 일어날 일들을 가리키고 있다.

바울은 로마서에서 “피조물이 고대하는 바는 하나님의 아들이 나타나는 것”이라고 하면서,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비교할 수 없(다)”고 하였다 (롬 8: 18 -19).

세 번째로, 바울은 에베소 교회의 성도들이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베풀어 주시는 “능력의 지극히 크심이” 어떠한지를 알게 되기를 기도하였다.

이 세상에서 아무리 강한 인간일지라도 무력해지는 파괴직인 힘을 들라면, 그것은 죄와 죽음의 힘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리스도 안에서 죄와 죽음의 권세를 이기셨다.

믿는 자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죄와 죽음의 권세를 이기고 승리의 삶을 살고 있다.


하나님의 능력을 알도록 (에베소서 1장 20 -23절)


하나님의 능력을 알도록 신자들의 마음을 밝혀주시기를 기도한 후에, 20절부터 23절까지에서
바울은 그 주제에 대해 좀더 자세히 부연하였다.
이들 네 구절에서, 바울은 특별히 하나님께서 그의 능력을 나타내셔서 그리스도 안에서 행하신 네 가지 일에 주의를 환기시켜 주고 있다.


         1). 하나님은 예수님을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려 주셨다.

         2). 하나님은 부활하신 예수님을 들어올려 자기의 오른 편에 앉히셨다.
         3). 만물을 예수님의 발 아래 복종하게 하셨다.
         4). 예수님을 교회의 머리로 삼으셨다.  


하나님께서 죽은 자를 살리셨다면, 그에게 불가능한 일이 어디 있는가?


1장 20 -21절


●    그의 능력이 그리스도 안에서 역사하사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리시고 하늘에서 자기의 오른 편에 앉히사
●    모든 통치와 권세와 능력과 주권과 이 세상뿐 아니라 오는 세상에 일컫는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나게 하사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능력을 발휘하셔서 죽은 자들 가운데서 그를 살려주셨다.

예수님의 부활은 바울의 복음제시의 중심적인 교리가 되고 있다.

그 같은 사실은 고전 15장 14절에서 “그리스도께서 만일 다시 살아나지 못하셨으면 우리가 전파하는 것도 헛것이요 또 너희 믿음도 헛것이며”라고 한 바울의 말을 들으면 더 분명해 진다.

하나님께서 죽은 자를 살리셨다면, 그에게 불가능한 일이 어디 있는가?
하나님은 아들을 살리셨을 뿐 아니라, “하늘에서 자기의 오른 편에 앉히사” 그의 능력을 입증하셨다.
그것은 예수님의 승천을 가리키는 말이 되고 있다.
부활사건만큼 많이 언급되고 있지는 않지만, 승천사건도 복음 이야기의 중요한 부분이 되고 있다 (막 16: 19; 눅 24: 51; 행 1: 9 참조).
하나님은 부활의 사건으로 죽음의 과정을 역전(逆轉)시키셨을 뿐 아니라, 예수님을 하늘로 들려 올리셔서 자기의 오른 편에 앉히심으로 죽음을 초월(超越)케 하셨다.  

그것은 “여호와께서 내 주에게 말씀하시기를 내가 네 원수들로 네 발판이 되게 하기까지 너는 내 오른 쪽에 앉아 있으라 하셨도다”라고 한 시 110편 1절을 가리켜 한 말이 될 수 있다.
다윗의 왕권의 연장으로, 예수님은 아버지의 보좌의 오른 편에 앉아 계시면서, 죽음을 포함하여, 모든 원수를 그의 발 아래 두셨다.
그리스도를 다시 살리시고 하늘 보좌에 앉히신 것에 더하여, 하나님은 모든 원수를 예수님의 권세에 복종케 하심으로 그의 권세와 능력을 보여주셨다.
예수님은 왕좌를 위해 모든 경쟁자들보다 월등하시다.
바울은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를 “모든 통치와 권세와 능력과 주권”을 초월하는 자리에 앉히셨다고 하였다.
이 세상뿐 아니라 영적 세계에서도, 권세를 주장하는 모든 자는 그리스도의 권세에 미치지 못한다.  
바울은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나게 하(셨다)”고 하였다.  
바꾸어 말하면, 어떤 권세의 이름을 대든, 예수님은 그 권세보다 훨씬 뛰어나시다.  

1장 22 -23절


●    또 만물을 그의 발 아래에 복종하게 하시고 그를 만물 위에 교회의 머리로 삼으셨느니라
●    교회는 그의 몸이니 만물 안에서 만물을 충만하게 하시는 이의 충만함이니이다


하나님은 “만물”을 예수님의 “발 아래에 복종하게” 하셨다.
바울이 그같이 말했을 때, 그의 마음에는 시 8장 6절의 말씀이 있었을 수 있다.

만물이 그리스도의 발 아래 있을 뿐 아니라. 모든 것이 그에게 복종하게 되었다.

예수님은 인간의 죄를 몸소 지시고 우리 죄를 대속하기 위해 죽으셨을지라도, 하나님은 그를 살려주시고, 절대적인 권세의 자리에 앉히셨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그의 강한 능력을 실증(實證)하신 일이 되었다.  

오직 하나님만이 그 같은 일을 하실 수 있다.


교회의 모든 방향과 결정은 교회의 머리이신 주 예수 그리스도의 지시에 따라  정해져야 한다.


하나님은 또한 예수님을 “만물 위에 교회의 머리로 삼으셨(다).”  

교회의 머리는 또한 만물의 머리가 되고 있다.

모든 몸에는 머리가 있는 법인데, 예수님은 그의 교회의 머리가 되신다 (골 1: 18; 엡 5: 23). 

예수님은 또한 교회를 위해 만물의 머리가 되신다.

그러므로, 교회의 모든 방향과 결정은 교회의 머리이신 주 예수 그리스도의 지시에 따라 정해져야 한다.

23절에서, 바울은 교회에 대한 가장 고상한 표현들 중의 하나에 이르렀다.

먼저, 바울은 교회를 그리스도의 “”으로 불렀다.

바울이 그 같은 비유로 교회를 언급한 것은 이 곳만이 아니다 (엡 4: 12, 16; 5: 30; 롬 12: 5; 고전 12: 27; 골1: 24; 2: 19 참조).

바울은 교회를 단순한 하나의 조직이 아니라 하나의 유기체(有機體)로 보았던 것이다.

그것은 교회는 생명체(生命體)로 머리이신 예수 그리스도와 연결되어 있다는 것이다.

몸이 머리에 예속되어 있는 것처럼, 교회는 그리스도께 예속되어 있어야 한다.

교회에 대한 그 다음의 비유는 많은 토론과 여러 가지 다른 해석들을 야기(惹起)시켜 오고 있다.

바울은 몸인 교회를 “만물 안에서 만물을 충만하게 하시는 이의 충만함이니라”고 하였다.
서로 다른 해석들은 다음과 같이 세 가지 방법으로 요약될 수 있다.

첫 번째 해석방법은, 교회는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충만함을 받고, 그리스도는 교회를 통해 세상을 충만하게 하신다.

두 번째 해석방법은, 교회는 그리스도에 의해 충만케 되고, 대신 그리스도는 하나님에 의해 충만케 된다.

이 견해에 따르면, 그리스도는 하나님에 의해 충만함을 받을 때, 교회를 충만케 하신다.

성경은 그리스도를 하나님의 충만하심으로 강조하고 있다 (골 1: 19; 2: 9).  

이 구절에 대한 세 번째의 해석방법은, 점점 더 많은 회원들이 그의 몸인 교회에 연합됨에 따라 교회는 그리스도를 충만하게 채워간다는 것이다.

세가지 해석 방법 모두 가능하지만, 많은 성경학자들은 첫 번째 해석이 본문의 문맥에 더 잘 부합되는 것으로 보고 있다.



말씀을 나의 상황에 적용하기:


●    신자들은 하나님과의 관계가 자라나도록 자신들과 다른 사람들을 위해 기도하는 것이 좋다.    
●    신자들은 그리스도 안에서 받은 부르심을 온전히 이해할 때 하면서 소망과 능력으로 믿음의 자라날 수 있다.
●    신자들은 예수님의 부활의 능력을 힘 입어 확신을 가지고 살아 갈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