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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뻐하라 - 제 1과 2019년 9월 1일 주일 용 - 장년성경연구 교사용 교안 - 에베소서 1장 1 -14절

글쓴이 : 강호길 날짜 : 2019-08-26 (월) 23:10 조회 : 87

장년성경연구 교사용 교안

2019년 9월 1일 주일 용  


제 1과



기뻐하라       



학습구절: 에베소서 1장 1 -14절


성경진리: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의 희생을 통해 인간에게 축복을 베풀어 주시기로 하셨다.


주요교리 은혜에 대한 하나님의 목적

택정(擇定)은 하나님의 은혜의 목적으로, 하나님은 그 목적에 따라 죄인들을 새 생명으로 태어나게 하시고(regenerate), 의롭다 하심을 얻게 하시며(justify), 거룩하게 하시고(sanctify), 그리고 영광을 얻게 하신다(glorify). 택정(擇定)의 은혜는 인간의 자유의지와 일치하며 마지막 때와 관련하여 모든 수단과 방법을 포함하고 있다 (살후 2 : 13-14). 


암송구절:  에베소서 1장 7절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은혜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피로 말미암아

속량 곧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In him we have redemption through his blood, the forgiveness of sins,

In accordance with the riches of God’s grace.          



시작하는 글:


자신의 삶에 대한 목표가 있고 그 목표를 성취하기 위한 분명한 계획을 세우고 그 계획에 따라 살아가는 사람들을 보면 우리는 감탄하게 된다.

그들이 하는 모든 것은 그 목표와 연결되어 있는 것처럼 보인다.

우리는 그들의 결단력과 집중력을 존경한다.

동시에, 우리는 하나님께서 그의 창조물에 대해 목적 혹은 목표를 갖고 계시며, 그 목적에 집중하고 계시다는 것을 잊고 있다.

하나님은 무작정 닥치는 대로 일하지 않으시고, 그의 목적을 이루시는 방향으로 그의 창조물을 이끌어 가신다.

바울은 설명하기를, 하나님께서 그의 아들을 통해 인간을 구원하시는 목적을 위해 일하실 때, 우리는 그 목적의 수혜자(受惠者)가 된다고 하였다.  


당신은 창조의 목적을 어떻게 설명 하겠는가? 그 목적을 성취하기 위해 역사가 어떻게 움직이고 있다고 생각하는가?



본문배경설명


에베소서 1장 1절부터 14절까지


에베소서의 시작 구절은 서신의 나머지 부분을 위한 무대를 설정하고 있다.

바울은 두 곳에서 자신을 편지의 저자로 언급하였다 (엡 1: 1; 3: 1).

1절에서, 그는 자신을 “하나님의 뜻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 된 바울”로 불렀다.

자신에 대한 두 번째 언급에서, 그는 자신을 “그리스도 예수의 일로 너희 이방인을 위하여 갇힌 자 된 나 바울”로 불렀다.

유대인들과 이방인들에게 똑같이 사도가 되고 있는 바울은 “에베소에 있는 성도들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신실한 자들에게” 편지하였다.

에베소 도시는 본래 헬라의 식민지(植民地)였는데, 바울 당시에는 로마의 통치지역인 아시아 지방의 수도가 되었다.

오늘 날 터키에 속해있는 항구도시인 에베소는 당시 로마 제국을 통과하는 여러 주요 통상로 (通商路)들을 잇는 무역 및 상업도시가 되었다.

그렇지만, 에베소는 다른 무엇보다 문화 및 종교의 중심지였다.

그곳은 아데미 여신을 섬기는 이단의 본거지가 되었다.

아데미의 신전은 세계 7 대 불가사의 중 하나가 되었다.

바울은 복음을 에베소에 전하였고, 바울의 복음 전파는 이 강력한 이교 숭배에 위협이 되었다, (사도행전 19: 23-41 참조).

처음에 바울은 그곳에서 침례 요한의 제자들을 만났는데, 그들을 인도하여 예수님을 믿게 하였다 (행 19: 1-5).

바울은 처음 석 달 동안은 회당에 들어가 “담대히 하나님 나라에 관하여 강론하며” 예수님을 전파하였다.

그러나 어떤 사람들은 마음이 완고해져서 믿으려 하지 않고 도리어 그리스도의 도를 비방하며 반대하였다.

그러자, 바울은 그들을 떠나 “두란노 서원에서” 따로 모이기 시작하였다.

바울은 “두 해 동안” 에베소에 머물면서 날마다 복음을 전하며 말씀을 가르치는 사역을 계속하였으며, 그 지역에 있는 유대인들과 이방인들은 복음을 듣게 되었다 (행 19: 8 -10).   

그는 거기서 별 저항을 받지 않고 “악귀 들린 자들”에게서 악귀를 쫓아내며 표적과 기사를 행하였다 (행19: 11 -20).

그러나, 바울이 전하는 복음으로 인해 아데미 여신을 섬기는 우상 숭배와 신상과 신전의 모형을 만들어 파는 상업이 영향을 받게 되자, 바울은 그 지역에서 강한 반대와 적대에 직면하게 되었다 (행 19: 21 -27). 

이로 인해, 시내에는 큰 소동이 일어나게 되었고, 바울은 에베소를 떠나게 되었다 (행 19: 28 -41).

그런 다음, 바울은 교회와 편지로 연락을 취했는데, 그것이 우리가 이 번 학기에 학습하는 “에베소서”가 되고 있다.

바울은 그 같은 종교적으로 복합적인 환경과 문화권에 살았던 신도들이 복음을 바르게 믿고 영적으로 튼튼하게 자라나도록 이 서신을 써 보냈다.

그는 아마도 이 서신이 다른 교회에서도 읽혀지도록 의도했던 것으로 보인다.

바울은 많은 신들을 섬기며, 그들 중 어느 하나도 유일 신으로 생각하지 않았던 다신교 도시와 지역에 편지를 써 보냈던 것이다.

그같이 종교적으로 복합적인 사회에 살았던 사람들은 아무 거리낌 없이 다른 신들을 섬길 수 있었다.

그렇지만, 그것은 유대교에서는 허용되지 않았으며, 바울이 전한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복음도 마찬가지였다.


택함을 받다 (에베소서 1장 3 -6절)


바울은 신자들이 하나님의 신령한 축복을 받은 사실을 상기시키는 말로 그의 찬양을 시작하였다.
삼위일체 하나님을 언급하면서, 바울은 독자들이 하나님의 택하심을 받았고 (1: 3 -6), 그리스도 안에서 속량 곧 죄 사함을 받았으며 (1: 7 -12), 약속의 성령으로 인치심을 받은 사실을 상기시켜 주었다.
이 전체 단원, 즉 에베소서 1장 3절부터 14절까지는, 헬라어로 하나의 길고도 복잡한 문장이 되고 있다.


1장 3 절


●    찬송하리로다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을 우리에게 주시되


사람들이 축복을 받았다고 말할 때, 그들은 종종 다른 사람으로부터 자기가 좋아하는 것을 받은 것을 의미한다.

하지만, 성경은 참된 축복은 궁극적으로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흥미 있는 것은, 바울은 그의 찬양을 헬라어로 “찬송하리로다” 혹은 “축복하리로다”로 번역될 수 있는 말로 시작한 것이다.

모든 축복의 원천이 되시는 ‘하나님을 축복하리로다’는 말로 번역할 때, 그 말은 하나님을 칭송(稱頌)한다는 뜻이 되고 있다.

바울은 의도적으로 하나님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로 묘사하면서, 바로 그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을” 믿는 자들에게 주셨다고 하였다.  

”라는 명칭은 아들의 신성(神性)과 통치권을 강조해 주고 있다.

예수”라는 이름은 아들의 인간성(人間性)을 강조하는 반면에, 구세주로서의 그의 사명(使命)을 상기시켜 준다.

예수’라는 헬라어 이름은 히브리어로는 ‘여호수아’인데, 그것은 ‘여호와께서 구원하신다’는 뜻이 되고 있다.

하늘에 속한”, “하늘에서” 혹은 “하늘에 있는”이란 말은, 에베소서에서만 찾아볼 수 있는 표현이 되고 있는데 (1: 3, 20; 2: 6; 3: 10; 6: 12) 어쩌면 바울이 만들어 낸 신조어로, 우리가 받는 모든 신령한 복이 하늘에서 오는 것을 의미하는 것으로, 실제의 장소를 가리키는 말이 돌 수 있다.

또한 그 같은 축복들이 물질적인 것들보다는 영적인 성격의 것으로, 영적인 영역을 가리킬 수도 있다.

바울은 또한 하나님께서 믿는 자들을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으로 축복하시는 것은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어진다고 설명하였다.   

그리스도 안에서”라는 문구는 그리스도와의 관계를 통해 확보된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연합을 가리킨다.

그것은 바울이 즐겨 쓰는 구원에 대한 표현이 되고 있다.


1장 4 -6 절


●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    이는 그가 사랑하시는 자 안에서 우리에게 거저 주시는 바 그의 은혜의 영광을 찬송하게 하려는 것이라


바울이 그의 찬송 시에서 언급한 첫 번째의 “신령한 복”은 하나님께서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믿는 자들을 “택하(신 일)”이 되고 있다.

믿는 자들을 택하신 “신령한 복”은 하나님께서 뒤늦게 생각해 내신 것이 아니다.

하나님께서는 창세기 1 -2장에 기록된 창세 이전부터 이미 아들을 통하여 인간을 구속하시려는 계획을 마음에 두고 계셨다.  


전지하신 하나님은 사람이 죄를 짓기 이전에 이미 죄에 대한 준비를 하기 시작하셨다.


하나님의 택함을 받는 것은 자랑이나 자만할 일이 아니다.

하나님은 세상의 미련한 것들을 택하셔서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시고, 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하셔서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신다 (고전 1: 27 -28).

하나님께서는 창세 이전에 이미 우리를 택해주셨다.

하나님께서는 주도권을 잡으셔서 죄 많은 인간을 찾아 내려 오셨으며, 만일 하나님께서 그같이 행하지 않으셨다면, 아무도 구원을 받지 못했을 것이다.

그렇다고, 그 말이 믿음의 필요성을 배제하는 것은 아니다.

한 성경학자는 “택함을 받다”와 “믿음”은 같은 한 문장에 담긴 것으로, 그것은 하나님만이 쓰실 수 있는 문장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믿는 자들을 택하시는 하나님의 목적의 하나는 그들이 하나님의 사랑을 받으며 하나님 앞에서 “ 거룩하고 흠이 없(는)” 사람이 되게 하는 것이 되고 있다.

그러니까, 하나님은 이미 창세이전부터 인간을 구속하시려는 계획을 마음에 두고 계셨을 뿐 아니라, 그의 택한 백성이 어떻게 행해야 될지도 마음에 두고 계셨던 것이다.

넓은 의미로 볼 때, 구원은 죄인이 하나님 앞에서 의롭다 함을 받고, 단지 죽은 후에 일어날 일만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그가 예수 그리스도를 만남으로 그의 마음과 삶 속에서 일어나는 변화도 포함하고 있다.

흠이 없게 하(다)”는 말은 흠이 없다는 뜻이다.

그 말은 예수님과 (히 9: 14; 벧전 1: 19), 교회 (엡 5: 27), 그리고 믿는 자들(벧후 3: 14; 유 24)에 대해 사용되고 있다.

거룩하다”라는 말의 문자적인 뜻은 ‘따로 구별해 놓는 것’이 되고 있다.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은 전적으로 하나님께 속하여 그 만을 예배하며 섬기도록 ‘구별 받은 사람’'들이다.

나아가서, 믿는 자들의 생활 방식은 하나님을 떠나 살고 있는 믿지 않는 사람들과 구별되어야 한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로마서에서 “너희는 이 세대를 본 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고 하였다 (롬 12: 1).

바울은 ‘택하다’라는 언어를 사용하여 하나님께서 “우리를 예정하(신 일)”을 설명하였다.

오늘 날 그리스도인들 사이에서 ‘예정론’보다 더 강한 논쟁을 불러 일으키고 있는 신학적 개념은 거의 없다.

예정하다”로 번역된 헬라어는 "이전"혹은 “미리”를 의미하는 접두사와 "경계” 또는 “한계를 설정하다”를 뜻하는 단어를 결합한 복합어가 되고 있다.

예정”이라는 말은 또한 행 4: 28; 롬 8: 29, 30; 고전 2: 7; 및 엡 1: 11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예정하다”로 번역된 용어의 문자 그대로의 뜻은 "미리 표시하다”가 되고 있다.

신자들이 하나님의 구원의 계획과 관련하여 이 개념을 중심으로 논쟁을 벌리고 있는 문제는 하나님께서 누구를 혹은 무엇을 ‘미리 정하셨는가’가 되고 있다.  

동시에, 대부분의 복음주의 그리스도인들은 다음과 같은 중요한 점에 동의하고 있다.

1).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주권(主權)으로 주도권을 사용하셔서 그리스도 안에서 죄인들이 구원을 받을 수 있는 하나의 유일한 길을 마련하셨다.

2). 모든 인간은 죄인들이며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서만 구원을 받을 수 있다.

3). 그리스도를 진정으로 믿는 모든 사람은 지금은 물론 영원히 하나님의 구속 받은 백성의 일부가 된다.

그리스도인들이 동의하고 있는 세 번째의 영역은 바울이 1장 5절에서 강조하고 있는 것으로, 하나님께서 미리 한계를 정하셔서 택하신 것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이 되게 하(신 것)”을 포함하고 있다.

아들이 되게 하(신)” 것은 입양을 뜻하는 말로, 구원의 놀라운 면이 되고 있다.

로마서 8장 15절과 갈라디아서 4장 5절부터 6절까지는 똑같이 신자들이 하나님과 맺은 관계를 강조하고 있다.

믿는 자들은 이제 하나님을 “아빠 아버지”로 부르게 된 것이다.

예수님은 겟세마네에서 기도하실 때 “아빠 아버지”라는 호칭을 사용하여 하늘에 계신 하나님께 간구하셨다 (막 14: 36).

그러므로, 믿는 자들인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에 의해 은혜로 택함을 받은 축복을 누리고 있을 뿐 아니라, 또한 그의 자녀로 입양되어 그의 가족이 된 것이다.

하나님의 계획은 그의 영원한 아들인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그의 영적 가족을 만드는 일이 되고 있다.

더 나아가, 모든 “족속과 방언과 백성과 나라 가운데서” 온 자녀들로 구성된 영적 가족에 대한 하나님의 계획은 그의 “기쁘신 뜻”이 되고 있다 (계 5: 9).

하나님께서 우리를 택하여 구속해 주시고 그의 자녀로 입양해주신 것에 대한 올바른 반응은 오만이나 교만이 아니라, “그의 은혜의 영광을 찬송”하는 것이다.


에베소 사람들은 사람들이 신을 선택하는 곳에 살았다

그런데 바울은 그들을 택하신 하나님에 대해 말하였다.


에베소 사람들은 신을 예배해야 되느냐를 물은 것이 아니라, 오히려 어떤 신을 예배해야 하는지를 묻고 있었다.

그 같은 질문에 대해 바울은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셔서 행하신 일을 보여주는 것으로 대답하였다.


속량함을 받다 (에베소서 1장 7 -12절)


바울은 관심을 아버지께서 태초부터 믿는 자들을 구속하시기 위해 주도권을 가지고 그의 뜻의 결정대로 계획하신 것으로부터 아들이 인간 역사 속에서 그들을 구원하기 위해 십자가 위에서 행하신 일로 옮겼다.

그리스도를 통해 우리가 받는 속량은 우리에게 죄를 사함 받고, 지혜와 총명을 얻고, 영원한 기업을 받는 축복을 누리게 해 준다.


1장 7 -8절


●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은혜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피로 말미암아 속량 곧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    이는 그가 모든 지혜와 총명을 우리에게 넘치게 하사


속량함을 받는다’라는 노예제도에서 사용되던 것으로, 값을 치르고 자유롭게 되거나 자유롭게 되는 것을 뜻하고 있다.

그 말을 하나님께서 그의 아들을 통해 죄인들을 위해 행하신 일에다 적용하면, 아들이 십자가 위에서 흘리신 피는 죄인들을 꽉 붙잡고 있는 죄의 빚을 갚아주는 값이 되었다.

모든 사람은 죄인이므로 (롬 3: 23), 모든 사람은 죄의 노예가 되고 있다.

그러나, 그리스도를 통해 속량함을 받는 것은 중요한 몇 가지 개념과 연결되어 있다.

첫째로, “속량함을 받는다”라는 말은 “죄 사함을 받는다”는 말로도 묘사되고 있다.

여기서 “”로 번역된 말은 바른 길에서 벗어나는 일이 되고 있다.

하나님의 울타리에서 벗어난 사람들에게 필요한 것은 사함을 받는 것인데, 그 용어는 어떤 것을 얽매고 있는 것으로부터 풀어주는 것을 뜻하고 있다.

인류는 죄에 의해 묶여있는데, 인간은 예수님의 보혈의 피로 죄의 속박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될 수 있다.

둘째로, ‘속량함을 받는다”는 말은 하나님의 은혜와 관계되고 있다.

그것은 자신의 노력이나 공로로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값없이 주어지는 것이다.

셋째로, “속량함을 받는 (것)”은 “모든 지혜와 총명을 (받는 일)”이 되고 있다.

하나님은 단지 구원을 베풀어주실 뿐만 아니라, 그 구원에 비추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아는 능력과 지혜를 주신다.


1장 9 -10 절


●    그 뜻의 비밀을 우리에게 알리신 것이요 그의 기뻐하심을 따라 그리스도 안에서 때가 찬 경륜을 위하여 예정하신 것이니
●    하늘에 있는 것이나 땅에 있는 것이 다 그리스도 안에서 통일되게 하려 하심이라  


하나님의 구속의 계획은 죄인들을 개별적으로 구원하는 것 이상의 것이 되고 있다.
하나님의 구속의 궁극적인 목표는 “하늘에 있는 것이나 땅에 있는 것이 다 그리스도 안에서 통일 되게” 하는 것이 되고 있다.
바울은 하나님의 그 같은 계획을 하나님이 “그의 기뻐하심을 따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때가 찬 경륜을 위하여 예정하신 것”으로 표현하였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시오며 [하나님의]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라고 기도하도록 가르치셨다 (마 6: 10).
오늘 날 세상을 언뜻 살펴보기만 해도, 그 기도가 충분히 응답되지 않고 있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죄가 만연하고 있다.
증오심과 전쟁이 이 세상의 왕국을 지배하고 있다.
그러나 모든 것이 그리스도 안에서 통일이 될 날은 다가오고 있다.


1장 11 -12 절


●    모든 일을 그의 뜻의 결정대로 일하시는 이의 계획을 따라 우리가 예정을 입어 그 안에서 기업이 되었으니
●    이는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전부터 바라던 그의 영광의 찬송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


믿는 자들은 하나님의 가족이 되었기 때문에, 하나님의 자녀 혹은 상속자로 기업을 받는다.
친 자식이나 입양된 자식이나 구별이 없다.  

하나님은 그의 자녀가 된 신자들을, 죄를 사해 주시고 (1: 7), 모든 지혜와 총명을 넘치게 해 주시는 것 (1: 8) 외에도, 아버지께 찬양이 되기에 합당한 “기업”이 되게 하셨다.

구약에서 이스라엘 백성은 여호와 하나님의 기업 혹은 상속자가 되었는데, 지금은 영적으로 새 이스라엘인 교회가 같은 특권을 누리고 있다 (롬 8: 17; 갈 3: 29; 골 1: 12).  

개인 신자들도 같은 특권을 누리게 되었다.

바울은 에베소 성도들에게 그같이 된 것은 신자들의 노력이나 어떤 공로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과 목적이 되고 있음을 상기시켰다.

그리고 바울은 말하기를, 하나님께서 믿는 자들을 그의 기업 혹은 상속자로 삼으신 것은 그의 영광을 찬미하게 하려는 것이라고 하였다.


인치심을 받다 (에베소서 1장 13 -14절)


1장 13절


●    그 안에서 너희도 진리의 말씀 곧 너희의 복음을 듣고 그 안에서 또한 믿어 약속의 성령으로 인치심을 받았느니라


바울은 에베소 교회의 성도들이 구원을 받은 것을 다음과 같이 설명하였다.

그들은 그리스도 안에서 “진리의 말씀” 곧 “구원의 복음”을 듣고 그리스도를 믿어 구원을 받았으며, “약속의 성령으로 인치심을 받았(다)”고 하였다.
그리스도 안에서, 믿는 자들은 성령님으로 인치심을 받는다.

당시에 “인을 치는 것”은 어떤 물건의 소유권을 표시하거나 혹은 어떤 귀중한 물건을 보존해 두거나 그 물건이 진짜인 것을 입증하기 위하여 양초 같은 것으로 그 물건을 봉한 다음, 그 위에다 표를 해 두거나 도장 같은 것으로 찍어 놓는 방법이 되었다.

구원은 한 사람이 예수님을 구세주로 믿는 순간에 시작되지만, 그것은 죽음이나 그리스도의 재림 때까지 완전히 완성되지 않는다.  

성령님의 인치심을 받았다는 말은 하나님이 믿는 자 안에서 시작하신 일을 마치실 때까지 그가 하나님의 소유가 되며 보호를 받고 있는 것을 나타내고 있다 (빌 1: 6 참조).


1장 14절


●    이는 우리 기업의 보증이 되사 그 얻으신 것을 속량하시고 그의 영광을 찬송하게 하려 하심이라


성령님을 “인치시는 분” 혹은 “인침”으로 언급한 후에, 바울은 또한 성령님이 “기업의 보증”이 된다고 하였다.  
바꾸어 말하면, 성령님은 믿는 자들이 받게 될 기업에 보증이 되신다는 뜻이 되고 있다.

당시 “보증”이라는 말은 상업 용어로, “선약 금”, “계약 금”, 혹은 “보증 금”을 뜻하였다.

그 경우, 보증은 후에 나머지 전액을 다 지불하겠다는 약속이자, 증거가 되었다.

그러므로, 바울이 성령님을 우리 기업의 보증으로 표현한 것은 믿는 자들이 하늘 나라에서 받게 될 기업 혹은 유업에 대한 보증금 혹은 담보물이 되신다는 뜻이 되고 있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 교회에 보내는 그의 편지에서, 하나님께서 우리 마음에 성령님을 주셔서 믿는 자들을 자기의 소유로 인을 쳐 주시고 그 보증이 되게 해 주셨다고 하였다 (고후 1: 22).


하나님께서 성령님을 우리에게 주신 것은 그가 우리 안에서 시작하신 것을 마칠 때까지 보증하는 계약금이다.


믿는 자 안에 거하시는 성령님은 하나님의 소유인 믿는 자들이 완전히 구원을 받을 때까지 기업의 보증이 되신다.
믿는 자들은 죄 사함을 받았고 (1: 7) 약속의 성령으로 인치심을 받았을지라도 (1ㅣ 13), 그들은 여전히 제작 중인 작품이 되고 있다.
구원이 하나님의 은혜로 받은 것이고 사람이 행한 일이 아니라면, 그 구원을 지키는 일도 인간이 하는 것이 아니다.
믿는 자들의 인치심과 보증이 되시는 성령님은 믿는 자들의 인치심과 보증으로 하나님께서 그들 안에서 시작하신 것을 다 이루시는 것을 확신시켜 주며 그들의 구원을 지켜 주신다.   



말씀을 나의 상황에 적용하기:


●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은혜로 믿는 자들을 그의 자녀로 삼아 주셨기 때문에, 영적 교만이나 자랑의 여지가 없다.    
●    예수님은 그의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을 통해 모든 믿는 자들을 구속해 주시는데, 그들의 죄를 사해 주시고, 영적인 이해력을 주시며 영원한 기업을 주신다.   
●    성령님은 모든 신자들을 하나님의 자녀로 확신을 갖게 해 주시며, 그들의 구원을 보증해 주신다.


당신의 삶 속에 어떤 영적 교만이 있는지 당신의 삶을 살펴보아 달라고 하나님께 기도하라.
만일 그것이 구원의 문제와 관계된 것이라면, 그것을 해결하기 위해 어떤 조치를 취해야 하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