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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대를 피하지 않는 믿음의 삶 - 제 11과 2019년 8월 11일 주일 용 - 장년성경연구 교사용 교안 - 디도서 1장 1 -5절, 10 -16절

글쓴이 : 강호길 날짜 : 2019-08-08 (목) 03:45 조회 : 111

장년성경연구 교사용 교안

2019년 8월 11일 주일 용  


제 11과



반대를 피하지 않는 믿음의 삶      



학습구절: 디도서 1장 1 -5절, 10 -16절


성경진리:

신자들은 거짓 교사들과 그릇된 교훈들을 거부해야 할 책임이 있다.    


주요교리 전도와 선교                                                                  

복음을 말과 글로 전할 뿐만 아니라 실제의 삶으로 증거함으로, 그리고 복음의 가르침에 부합하는 다른 방법들을 사용하여 불신자들에게 전도하며 그들을 그리스도께로 인도하기 위해 끊임 없이 노력하며 기도하는 것은 하나님의 모든 자녀들의 책임이자 의무이다 (행 10: 42 -48).


암송구절:  디도서 1장 2절  


영생의 소망을 위함이라

이 영생은 거짓이 없으신 하나님이 영원 전부터 약속하신 것인데

“In the hope of eternal life, which God, who does not lie,

promised before the beginning of time.”        



시작하는 글:



사람들이 좋아하든 싫어하든 간에, 복음의 진리(眞理)는 편협(偏狹)한 잣대를 가지고 있다.

복음의 진리는 원하는 사람은 누구나 값 없이 얻을 수 있으며, 은혜로 사람들을 자유롭게 해 주지만, 진리의 핵심은 아무도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을 구세주로 믿지 않고는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가질 수 없고 구원을 받을 수 없기 때문에, 진리는 편협할 수 밖에 없다.

사람들은 진리를 속 좁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그렇다고 진리 자체가 변하는 것은 아니다.

어떤 사람들은 진리를 거부한다는 사실과 우리는 그런 것에 구애 받지 않고, 계속 진리를 사랑하도록 부르심을 받았다는 사실을 알고, 우리는 진리에 계속 충성해야 한다. 


어떻게 하면 신자들은 다른 신앙을 가진 사람들의 권리를 존중해 주면서도 복음의 메시지를 옹호할 수 있는가?  



본문배경설명


디도서 1장 1절부터 16절까지


바울이 디도에게 써 보낸 디도서는, 디모데에게 보낸 두 서신과 함께, 종종 목회서신(牧會書信) 으로 불려지고 있다.

이들은 교회 회중들이 아니라, 선교 및 목회 동역자(同域者)들에게 보낸 서신들이다.

대부분의 성경 학자들은 바울이 디도에게 편지를 써 보낸 시기(時期)를 그가 디모데에게 보낸 두 편지의 사이로 잡고 있다.

바울이 디모데 전서와 디도서를 쓴 것은 사도행전 28장 30 -31절에서 언급되고 있는 것으로, 로마에서 가택 연금을 당하고 있다 석방 된 지 얼마 되지 않았던 때로 보인다.

디모데 후서를 썼을 당시에, 바울은 다시 로마에서 수감되었고 곧 처형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었다 (딤후 4: 6 ~ 7 참조).

디도에게 편지를 써 보냈을 당시에, 바울은 자유롭게 여행할 수 있었으며 (딛 3: 12 참조), 에게해 지역 주변에 있던 대부분의 이방인 교회들을 튼튼하게 세우는 일을 급하게 행한 것으로 보인다.  

흥미로운 것은, 사도행전은 바울의 선교여행을 기록하면서 디도를 그의 동역자의 하나로 언급하지 않고 있는 것이다.

그렇지만, 바울은 그의 서신들에서는 디도를 언급하고 있는 것이다. 

예를 들어, 바울은 갈라디아서 2 장 1 절에서 자기와 바나바가 예루살렘으로 올라갔을 때 “디도”가 동행하였던 것을 기록하였다.

많은 성경학자들은 그 여행을 “예루살렘 회의”로 알려진 사도행전 15장의 기록과 연결시키고 있다.

디도는 또한 고린도후서에서도 여러 번에 걸쳐 언급되고 있는데, 거기서 그는 소식을 전해주는 사자와 동역자로 묘사되고 있다 (고후 2: 13; 7: 6, 13 -14; 8: 16, 23).

바울이 디모데 후서를 썼을 때, 디도는 “달마디아”에 있었는데, 어쩌면 그것은 사도 바울의 요청에 따랐던 것으로 보인다 (딤후 4: 10).

분명한 기록은 없지만, 바울과 디도는 “그레데” 섬에서 함께 선교사역을 하면서 시간을 보냈던 것으로 보인다 (1: 5).

우리는 사도 행전 27 장으로부터 죄수가 된 바울이 배로 로마로 압송되었을 때, 짧은 기간 동안 그 섬에 머물렀던 것을 알 수 있지만, 디도가 그 배에 타고 있었는지 혹은 바울이 그 때에 전도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는지는 알려지지 않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리스의 남동쪽 지중해에 위치한 그레데 섬은 고대문명의 발상지가 되었다.

또한 바울 당시에, 그레데 섬은 로마제국을 위한 용병 군인들과 상인들의 본거지가 되었다.

디모데가 에베소에서 경험한 것과 흡사하게, 디도는 그레데 섬에서 거짓 교사들의 문제에 직면하였다.

이들 거짓 교사들은 주로 “할례파“로도 불렸던 유대인 개종자들로(1: 10 참조), 그들은 “어리석은 변론과 족보이야기”를 퍼뜨리며 “분쟁과 율법에 대한 다툼”을 일으키고 있었다 (3: 9).

그들은 믿음이 미숙한 가정들을 침투해 들어오고 있었다 (1 : 11).

바울의 해결책은 디도로 하여금 그레데 섬에 있는 모든 교회들을 위해 하나님을 경외하는 지도자들을 세우고 그들을 훈련시키는 일이 되고 있다.  

그 같은 지도자들을 위한 자격과 요건들은 바울이 에베소에 있는 감독들을 위해 디모데에게 준 자격과 비슷하였다.

그레데 섬에 있는 교회들은 복음을 바르게 가르칠 수 있고 복음의 진리와 모순되는 거짓 교사들을 반박할 수 있는 자격을 갖춘 지도자들이 필요하였다 (1: 9).

  

종의 심정 (디도서 1장 1 -3절)


1장 1 - 2절


    하나님의 종이요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인 나 바울이 사도 된 것은 하나님이 택하신 자들의 믿음과 경건함에 속한 진리의 지식과
    영생의 소망을 위함이라 이 영생은 거짓이 없으신 하나님이 영원 전부터 약속하신 것인데


바울은 디도서를 그의 다른 서신들의 일반적인 형식을 따라 시작하였다.

그는 자신의 역할을 “하나님의 종”과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로 밝혔다.

“종”으로 번역된 헬라어는 또한 당시에 주인의 전적인 소유물로 취급되었던 “노예”를 뜻하기도 하였다.

사도”로 번역된 헬라어의 문자 그대로의 뜻은 어떤 특정한 임무를 띠고 “보냄을 받은 사람” 혹은 “사신”이 되고 있다.

바울은 두 가지 역할을 함께 묶음으로, 예수님의 사도로서의 자신의 역할은 ‘자기가 주장하고 나설 수 있는 영광’이 아니라 ‘순종해야 할 임무’가 됨을 나타냈던 것이다.

고린도후서 5장 20절에서, 바울은 그와 다른 복음 사역자들이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사신이 되(었다)”고 하였다.

이는 “하나님이 우리를 통하여” 사람들에게 권고하시기 때문이다.  

바울은 예수님의 본래의 열두 사도 중의 하나가 아니었지만, 그는 확언하기를,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활하신 그리스도께서는 그를 진정한 사도로 세우셨다고 하였다 (고전 15: 9 -10; 고후 1: 1; 갈 1: 1; 딤전 1: 1 참고).  

바울은, 자신의 편지의 서두 인사에다 말을 덧붙일 경우에, 종종 편지 본문에서 말하려고 하는 것을 요약한 핵심 주제를 소개하는 것으로 하였다.

그는 자기가 사도가 된 것은 “하나님이 택하신 자들의 믿음과 경건함에 속한 진리의 지식과 영생의 소망을 위함이라”고 하였다.

구약에서 “택한 자”라는 용어는 이스라엘 백성을 가리켰지만 (사 45: 4), 여기서 그 말은 구원을 받은 사람을 뜻하고 있다.

특별히, 바울은 그가 섬겨야 될 두 가지 측면을 강조하여 말하였다

첫째, 그는 “믿음”을 위해 그리스도의 보냄을 받았다.

바울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고 구원을 얻도록 복음을 증거하여야 하였다. 

둘째, 그는 믿는 자들이 “경건함에 속한 진리의 지식”을 얻도록 가르쳐야 하였다;

바울은 단순히 세상 철학이나 지혜를 가르치는 교사가 아니었다.

바울의 동족인 유대인들은 하나님께 대한 열심은 있었으나, 하나님의 의와 관련된 지식이 없었다  (롬 10: 1-3).

하나님께서 바울에게 맡겨주신 사명은 사람들이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을 알도록 돕는 일 (복음 전도)과 하나님의 진리를 알게 도와줌으로, 올바른 삶 (제자의 삶)을 살게 해 주는 것이 되고 있다.

바울은 또한 사람들이 “영생의 소망”을 가지고 살 수 있도록 복음을 전하였다.

그러한 소망은 희망적인 생각이나 마음으로 바라는 것을 훨씬 넘는 것이 되고 있다.

그리스도를 믿는 그들의 믿음은 영생에 대한 확신을 주었다.

신자들의 확신은 하나님 안에 있다.

이 영생은 거짓이 없으신 하나님이 영원 전부터 약속하신 것”이기 때문에 우리는 믿을 수 있다.

하나님의 영원성은 영원한 미래를 내다보는 동시에 영원 이전의 것을 되돌아 본다.

성경은 종종 하나님의 구원의 계획의 영구적인 측면을 가리키고 있다.

하나님의 왕국은 창세 이전부터 우리를 위해 준비되었다 (마 13: 35; 25: 34).

디모데후서에서, 바울은 세상이 시작되기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마련된 하나님의 구원을 가리켰다 (딤후 1: 9 -11).


1장 3절


    자기 때에 자기의 말씀을 전도로 나타내셨으니 이 전도는 우리 구주 하나님이 명하신 대로 내게 맡기신 것이라


하나님의 구원의 계획은 인간이 시간을 계산하는 일을 시작하기 이전에 이미 시작되었다 할지라도, 바울은 말하기를 하나님은 “자기 때”에 “자기의 말씀을 전도로 나타내셨(다)”고 하였다.

다른 서신에서, 바울은 하나님의 구원의 계획을 “영세 전부터 감추어 졌다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계시된 “비밀” 혹은 “신비”에다 비기었다 (롬 16: 25; 고전 2: 7; 골 1: 26 -27).

하나님은, 그의 때에, 전도로 이 “복음의 비밀”을 계시하기로 하셨다 (엡 6: 19).

바울은 이 진리를 그리스도로부터 계시로 받았고, 그 계시를 세상에 전하는 임무를 받았다 (엡 3: 3).

바울은 이 메시지의 심각한 본질과 성격을 이해하였다.

그는 말하기를, “이 전도는 우리 구주 하나님이 명하신 대로 내게 맡기신 것”이라고 하였다.

바울은 어느 날 갑자기 잠에서 깨어나 전도자가 되겠다고 결정하지 않았던 것이다.

바울은 이 복음을 전파하도록 구원해 주신 하나님의 부름을 받았던 것이다.

바울은 그의 구세주로의 명령으로 보냄을 받고 책임을 받았던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바울의 삶의 사명과 열정이 되었다.

마찬가지로, 모든 신자들은 다른 사람들에게 전해야 하는 복음을 위탁 받았다.    


왜 하나님의 부르심은 우리로 하여금 종의 마음을 가지도록 요구하고 있는가?


목적이 담긴 결정 (디도서 1장 4 -5절)


1장 4 -5절


    같은 믿음을 따라 나의 참 아들 된 디도에게 편지하노니 하나님 아버지와 그리스도 예수 우리 구주로부터 은혜와 평강이 네게 있을지어다
    내가 너를 그레데에 남겨 둔 이유는 남은 일을 정리하고 내가 명한 대로 각 성에 장로들을 세우게 하려 함이니


바울은 디도를 믿음 안에서 자기의 “참 아들”로 생각하였다.

바울을 만나기 전부터 그리스도인이었던 디모데와는 달리, 디도는 사도 바울에 의해 에수님께로 인도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바울은 “같은 믿음을 따라”라는 말을 사용하여, 둘이 함께 그리스도를 믿고 헌신하고 있음을 강조하였다.

바울은 이들 두 전도자를 똑같이 사랑하였고 그들을 믿음과 사역 안에서 아들로 대하였다.

바울과 디도는 그리스의 남쪽이자 오늘 날 터키의 서남쪽에 위치한 지중해의 섬인 “그레데”에서 함께 사역하였다.

사도행전에서 그레데에 대한 언급은 유일하게 바울이 죄수의 몸으로 배에 실려 로마로 이송되었을 때가 되고 있다.

그러므로, 그레데에 대한 디도서의 언급은 사도행전에 기록되지 않은 다른 때를 묘사하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그것은 바울이 첫 번째 감옥생활에서 풀려난 후 여행을 했을 동안에 생겼을 수 있다.

바울은 디도를 그레데에 남겨 둔 이유를 밝히면서 “남은 일을 정리하고 내가 명한 대로 각 성에 장로들을 세우게 하려 함이(라)”고 하였다.

바울은, 디도와의 개인적인 관계뿐 아니라 사도적인 권위와 그의 멘토로서, 디도에게 사역에 대한 지시를 할 수 있는 권리가 있었다.

여기서 “장로”로 번역된 용어는 성경이 목사를 지칭하기 위해 사용하고 있는 세 가지 용어들 중의 하나가 되고 있다.

다른 두 가지 용어는 “감독”과 “목자”인데, 그것들은 목사의 사역의 지도력과 돌봄을 묘사하고 있다.

바울은 더 나아가서 목사가 그리스도의 교회의 영적 지도자가 되기 위하여 필요로 하는 자격을 설명하였다 (딛 1: 6 -9).

장로가 될 수 있는 자격은 바울이 디모데전서 3장 1 -7절에서 감독의 자격으로 언급한 것과 근본적으로 같은 것이 되고 있다.

장로들”은, 즉 감독 혹은 목회자들은, “책망할 것이 없고”, 한 아내의 남편이어야 하며, 믿음이 있고 믿음의 훈련을 잘 받은 자녀를 둔 사람이어야 하였다 (1: 6).

7 -9절에서, 바울은 “책망할 것이 없고”라는 말의 의미를 좀더 자세하게 거론하기 위하여 다섯 가지 하지 말아야 될 일과 일곱 가지 해야 될 일을 들었다.

하지 말아야 될 일을 보면, 교회 지도자들은 1) 제 고집대로 하지 아니하며, 2) 급히 분내지 아니하며, 3) 술을 즐기지 아니하며, 4) 구타하지 아니하며, 5) 더러운 이득을 탐하지 말아야 한다.

다른 한 편 ㅎ야 될 일을 보면, 교회지도자들은 1) 나그네를 대접하며, 2) 선행을 좋아하며, 3) 신중하며, 4) 의로우며, 5) 거룩하며, 6) 절제하며, 7) 끝으로 장로들은 믿음으로 굳게 세움을 받아 다른 사람들을 가르치고 권하는 것은 물론 진리를 거슬리는 자에게 죄를 깨닫게 해 주며 확신을 줄 수 있어야 한다.   

바울이 디도에게 “장로들을 세우게 하려 함이니”라고 한 말에는 디도로 하여금 교회 지도가 될 수 있는 교인들을 가르치고 훈련시키는 과정이 포함되고 있음을 깨달을 필요가 있다.

그리고 자격을 갖춘 지도자들을 장로로 세우도록 교회를 도울 수 있다.  


반대자들에 대한 설명과 대응책 (디도서 1장 10 - 16절)


1장 10 - 11절


    불순종하고 헛된 말을 하며 속이는 자가 많은 중 할례파 가운데 특히 그러하니
    그들의 입을 막을 것이라 이런 자들이 더러운 이득을 취하려고 마땅하지 아니한 것을 가르쳐 가정들을 온통 무너뜨리는 도다


바울은 그레데 신자들을 분열시키며 혼란에 빠뜨리는 유대주의 자들에게 집중하였다.

바울은 그들을 “불순종하고 헛된 말을 하며 속이는 자”로 특징지었다.

바울은 그들이 행한 일들을 신뢰의 결여의 증거로 지적하였다.

바울은 몇 가지 용어들을 사용하여 거짓 교사들을 묘사하였다.

첫째로, 거짓 교사들의 수가 “많(았다).” 

만일 교회에 반대자가 소수만 있었더라면, 큰 문제가 없었겠지만, 거짓 교사들이 계속 방해하며 그럴듯한 말로 사람들을 꾀므로 반대자의 수와 거짓 교사들의 수도 많이 늘어났던 것으로 보인다.

둘째로, 그들은 “불순종하(였다).”  

그들은 바울이 전한 복음을 거절하고, 진리에 반하는 가르침을 주장하였다.

불순종하다’로 번역된 단어는 거역(拒逆)하다는 뜻을 담고 있다.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기를 원치 않았기 때문에, 복음을 거절했을 수 있다.

셋째로, 거짓 교사들과 반대자들은 “헛된 말”을 많이 하였다.

그들의 헛된 말은 게으르고, 의미 없는 추측을 대표하였다.

더 악의적(惡意的)인 것은 “그들이 속이는 자”가 되고 있는 것이다.

그 말은 그들이 진리를 알면서도 고의적(故意的)으로 사람들을 그릇된 길로 인도하는 것을 시사(示唆)하고 있다.

바울은 “속이는 자가 많은 중 할례파 가운데 특히 그러하니”라는 말로, 속이는 사람이 많이 있는데, 특별히 이방인 신도들은 할례를 받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할례파 사람들 가운데 많이 있다고 하였다.  

할례파”사람들은 바울이 갈라디아서와 그의 다른 서신들에서 언급 한 ‘유대주의자들’과 같다.

그들은 주장하기를 누구든지 그리스도인이 되려면 모세의 율법과 유대교의 관행과 의식을 따라야 한다고 하였다 (행 15: 5 참조).  

특히”라는 용어를 의도적으로 사용하여, 바울은 반대자들 중에는 “할례파” 밖에 있는 사람들도 포함되어 있는 것을 나타냈다.

바울은 디도에게 그들 반대자들의 “입을 막을 것이라”고 하였다.

입을 막다”라는 말에는 훈련이 안된 짐승을 재갈이나 고삐를 물려 부린다는 개념이 들어 있다.

하나님의 말씀의 진리를 가지고 그들을 반박하고 논박함으로, 이 젊은 목회자는 그들을 부끄럽게 만들어야 하였다.  

복음의 진리는 디도의 반대자들의 잘못을 잠재워야 하였다.

디도의 적극적인 대응과 개입이 절실하게 필요한 것은 거짓교사들이 그릇된 교리를 가지고 “가정들을 온통 무너뜨리(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들이 “마땅하지 아니한 것”을 가르치는 동기는 탐욕이 되고 있다.

바울은 그들이 “더러운 이득을 취하려고” 그같이 한다고 하였다.

본문의 “가정들”이란 용어가 개인 가정이든 혹은 가정 교회가 되었든 간에, 믿는 자들은 그들의 교사들을 위해 재정적인 지원을 하였다.

바울이 “더러운 이득” 혹은 “부정한 이득” (표준 새 번역)이란 말을 사용한 것은 거짓 교사들이 바른 것을 주장하지 않고, 이득을 얻기 위해 사람들을 속이고 있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거짓 교사들에 대한 바울의 대처방법은 수동적인 것이 아니라, 적극적이고도 능동적인 것이었다.

바울은 디도에게 바른 교훈을 가르침으로 거짓 교훈을 대항하며 권면하라고 하였다.


1장 12 -14절


    그레데인 중의 어떤 선지자가 말하되 그레데인들은 항상 거짓말쟁이며 악한 짐승이며 배만 위하는 게으름뱅이라 하니  
    이 증언이 참되도다 그러므로 네가 그들을 엄히 꾸짖으라 이는 그들로 하여금 믿음을 온전하게 하고
    유대인의 허탄한 이야기와 진리를 배반하는 사람들의 명령을 따르지 않게 하려 함이라  


바울은 “그레데인 중의 어떤 선지자”의 말을 인용함으로 거짓 교사들에 대한 자신의 부정적인 평가를 강화(强化)하였다.

많은 성경학자들은 사도 바울이 인용한 “그레데인 중의 어떤 선지자”가 주전 600년경에 살았던 그레데 출신의 철학자인 에피메니데스[Epimenides]로 보고 있다.

플라톤[Plato]과 아리스토텔레스[Aristotle]을 포함하여, 고대 헬라 철학자들은 그들의 저서에서 에피메니데스를 언급하였다.

그레데 섬에서 태어나 자라났던 이 철학자는 세 가지의 경멸적인 표현을 써서 자기 동족들을 묘사하였다.

그레데인들은 1]항상 거짓말쟁이며, 2] 악한 짐승이며], 3] 배만 위하는 게으름뱅이라고 하였다.

사도 바울은 “이 증인이 참되도다”는 말로, 그 철학자가 한 말을 그레데의 거짓 선자자들에게 적용시켰다.

그러면서, 바울은 디도에게 “그러므로 네가 그들을 엄히 꾸짖으라”고 하였다.

바울은 디도에게 거짓 교사들과 그들을 따르는 자들을 “엄히 꾸짖으라”고 하면서, “이는 그들로 하여금 믿음을 온전하게 하고 유대인의 허탄한 이야기와 진리를 배반하는 사람들의 명령을 따르지 않게 하려 함이라”는 말로 그같이 꾸짖는 목적을 밝혀주고 있다.

믿음을 온전하게 하고”라는 말에서는 구속적인 목적이 나타나고 있다.


1장 15절


    깨끗한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깨끗하나 더럽고 믿지 아니하는 자들에게는 아무 것도 깨끗한 것이 없고 오직 그들의 마음과 양심이 더러운지라


바울은, 그의 서신의 다른 곳에서, 특정한 음식, 특별히 우상에 바쳤던 고기를 먹는 문제에 대해 기록하였다 (고전 8: 4; 롬 14: 14-23 참조).
15 절의 것은 이방인 신자들은, 음식물에 대한 규례를 포함하여, 유대교의 관습을 따라야 한다고 주장하며 가르쳤던 유대주의자들과 관계되고 있다.
그러므로, 바울의 훈계는 일반적인 음식 규례와 관계된 말이 되고 있다.
바울의 요점은 깨끗한 마음을 가진 사람은 다른 것들의 깨끗한 특성을 본다는 말이 되고 있다.

반면에, “더럽고 믿지 아니하는 자들”은 다른 물건들이나 사람들을 왜곡된 눈이나 마음으로 본다는 것이다.
그들은 “마음과 양심이 더러[워]” 졌기 때문에 모든 것이 더럽게 보였다.

마음”이라는 용어는 지적인 면뿐 아니라 인식과 사고의 방식을 포함하고 있다.

양심”이라는 용어는 옳고 그른 것을 식별할 수 있는 한 사람의 능력을 묘사하고 있다.

믿자 않는 사람은 영적 분별력이 없이 세상을 본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로마서 14장 14절에서 말하기를, “내가 주 안에서 알고 확신 하노니 무엇이든지 스스로 속된 것이 없으되 다만 속되게 여기는 그 사람에게는 속되니라”고 하였다.  


1장 16절


    그들이 하나님을 시인하나 행위로는 부인하니 가증한 자요 복종하지 아니하는 자요 모든 선한 일을 버리는 자니라


바울은 특별히 하나님의 백성을 속이는 반항적인 사람들에게 초점을 맞추어, “그들이 하나님을 시인하나 행위로는 부인하는 자니”라는 말로 그들의 구원의 타당성을 공격하였다.

그들은 하나님을 안다고 주장하였을지라도, 그들의 탐욕에 찬 일들과 행위들은 그들의 악한 마음을 드러내 주었다.

그것은 마치 야고보가 “영혼 없는 몸이 죽은 것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이 죽은 것이니라”고 한 말과 같다고 볼 수 있다 (약 2: 26).

바울은 세가지 강한 말로 그들의 사악함을 강조하며 정죄하였다.

그들은 “가증한 자”였다.

그들이 그레데의 새 신자들을 속인 것은 혐오스러운 일이 되었다.

그들은 또한 “복종하지 아니하는 자”들이었다.

이 용어는 이따금씩 잘못된 일을 하는 것 이상의 것을 나타내고 있다.

이 사람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무시하고 불순종하는 습관적인 생활 방식을 발전시켰다.

결과적으로, 그들은 모든 선한 일에 합당하지 못한 자들이 되었다.


말씀을 나의 상황에 적용하기:


    신자들은 다른 사람들에게 전해야 하는 복음을 위탁 받았다.     
    신자들은 지역 교회와 교회 지도자들을 세우고 더 튼튼하게 만드는 일에 부름을 받고 있다.
    
신자들은 거짓 가르침을 정면으로 지적하고 맞서야 한다.        


당신은 복음을 왜곡시키는 거짓 가르침에 맞서기 위해 어떤 장애물들을 극복해야 하는가?

그 같은 장애물들을 극복할 수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