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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의 일에 힘쓰는 사역자들 - 제 9과 2019년 7월 28일 주일 용 -장년성경연구 교사용 교안 - 디모데후서 2장 14 -26절

글쓴이 : 강호길 날짜 : 2019-07-22 (월) 12:47 조회 : 50

장년성경연구 교사용 교안

2019년 7월 28일 주일 용  

 

제 9과

 

 

주님의 일에 힘쓰는 사역자들     

 

 

학습구절: 디모데후서 2장 14 -26절

 

성경진리:

신자들은 성경말씀을 공부함으로 삶의 진리와 방향을 찾는다.   

 

주요교리 전도와 선교                                                     

한 사람이 하나님의 성령에 의해 영적으로 새로 태어나는 것은 다른 사람들을 위한 사랑의 탄생을 뜻한다 (갈 5: 6).  

 

암송구절:  디모데후서 2장 15절  

너는 진리의 말씀을 옳게 분별하며 부끄러울 것이 없는 일꾼으로 인정된 자로

자신을 하나님 앞에 드리기를 힘쓰라

 

“Do your best to present yourself to God as one approved, a worker

   who does not need to be ashamed and 

   who correctly handles the word of truth.       

 

 

시작하는 글:

 

 

한 벽돌공이 공을 들이고 정성을 다하여 벽돌들을 하나씩 기술적으로 쌓아 올려가며 건물의 구조물을 갖추어 나아가는 것을 볼 때, 우리는 그가 “열심히” 혹은 “힘써서 일한다”고 표현한다.

우리는 또한 한 운동선수가 기량(技倆)을 연마하기 위하여 땀을 흘리며 계속 연습하는 것을 보면, 우리는 그가 연습에 “힘쓴다”고 말한다.

우리는 “힘쓰다” 혹은 “열심히 하다” 는 말을 어떤 일을 하다가 단념하거나 포기하지 않는 것을 가리키는 뜻으로 사용하기도 하며, 몸과 마음의 양쪽 면에다 적용시키고 있다.  

바울은 디모데에게 “너는 진리의 말씀을 옳게 분별하며 부끄러울 것이 없는 일꾼으로 인정된 자로 자신을 하나님 앞에 드리기를 힘쓰라”고 충고함으로, 사역을 위해 준비하는 일과 사역에 힘쓰는 일의 중요성을 강조하였다.  

 

일반 사회에서 사람들이 힘을 다하고 열심을 다해 일하고 있는 몇 가지 실례들을 들어보라.

그리스도인의 삶 속에서 힘을 다하고 열심을 다해 일하는 것이 필요한 것을 들라면 어떤 것들이 있는가?

 

 

본문배경설명

 

디모데후서 2장 14절부터 26절까지

 

디모데후서 2장 1절부터 13절에서, 바울은 디모데에게 충성된 교회 지도자들을 가르치고 훈련시켜서 그들로 하여금 제자 삼는 자가 되게 하는 사역을 할 때,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은혜 가운데서 강하(라)”고 하였다.

젊은 목회자는 고난과 역경에 직면해서도 자신의 삶과 사역을 위해 계속 자신을 훈련할 필요가 있었다.

디모데는 전투에 임할 준비를 하고 있는 병사들과 이기기를 다투는 운동선수들 그리고 열심히 일하는 농부들의 예들로부터 훈련의 중요성을 배울 수 있었다.

무엇보다도, 디모데는 예수님과 바울의 본으로부터 참고 견디는 이유와 동기를 발견 할 수 있었다.

2장 14절부터 26절에서, 바울은 계속해서 디모데가 에베소에서 직면했던 어려운 문제들을 해결하는데 도움이 될 지침들을 주었다.

에베소 교회에서 거짓 교사들에 의해 생겨났던 문제들은, 바울이 디모데 전서를 써 보낼 때도 그의 마음을 무겁게 짓누르고 있던 주제였는데, 그것은 다시 후서의 전면에 나서게 되었다.

분명히 이 문제는 완전히 해결되지 않았으며, 거짓 교사들은 아직도 교회에서 문제를 일으키고 있었던 것이다.

바울은 거짓 교사들의 가르침을 “악성 종양이 퍼져 나감과 같은 (것)”에다 비유하였다 (2: 17 -18).

바울에게, 이 문제에 대한 해결책은 먼저 하나님의 말씀을 신중하고도 일관되게 잘 연구하고, 그런 다음에 성경의 진리를 교인들에게 정확하고도 바르게 잘 가르치는 것이었다.

바울은 디모데에게, 큰 집에는 귀하게 쓰이는 그릇들이 있고 천하게 쓰이는 그릇들이 있는 것처럼, 하나님께서는 그의 집인, 교회에서 깨끗하고, 귀하며, 거룩한 그릇들이 사용되는 것에 더 관심을 두고 계시며 기뻐하시는 것을 상기시켜 주었다.

그래서, 바울은 디모데에게 “너는 청년의 정욕을 피하고 주를 깨끗한 마음으로 부르는 자들과 함께 의와 믿음과 사랑과 화평을 따르라”고 권면하였다 (2: 22).

성도들은 디모데의 본을 따름으로, 거짓 교사들이 일삼고 있는 “어리석고 무식한 변론”을 버리고 아무 유익도 없는 “다툼”에 참가하지 말아야 하였다.

오히려, 교회 지도자들은 거역하는 자들을 “온유함으로” 훈계하고 인내심과 친절로 가르쳐야 하였다.

그같이 하면, 그리고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진리를 깨닫게 해 주시고 회개함을 주시면, 거짓 교사들까지도 “마귀의 올무에서” 벗어나는 은혜가 나타날 수도 있었다.

 

두 그룹의 교인들 (디모데후서 2장 14 - 19절)

 

2장 14절


●    너는 그들로 이 일을 기억하게 하여 말다툼을 하지 말라고 하나님 앞에서 엄히 명하라 이는 유익이 하나도 없고 도리어 듣는 자들을 망하게 함이라


이 단원의 구절들에서, 바울은 에베소에있는 거짓 교사들의 문제와 그 문제를 다루는 디모데의 역할로 되돌아가고 있다.

바울은 디모데에게 “너는 그들로 이 일을 기억하게 하여 말다툼을 하지 말라고 하나님 앞에서 엄히 명하라”고 하였다.

여기서 “그들”로 지칭된 사람들은 교인들 전체를 가리킬 수 있지만, 좀더 구체적으로는 거짓 교사들과 그들의 가르침을 따르는 그룹의 교인들을 가리키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이 일”로 번역된 말은 일반적으로 바울이 지금까지 기록한 모든 것을 가리키거나, 혹은 좀더 구체적으로는 2장 1절부터 13절까지에서 그가 훈계한 말을 가리킬 수 있다.

디모데는 그들에게 바울이 가르친 교훈들을 상기시켜 줄뿐 아니라, “말다툼을” 하지 말도록 하나님 앞에서 엄숙히 명하여야 하였다.

말다툼”에 대한 발상은 디모데전서 1장 4절에서 지적되고 있는데, 거기서 바울은 에베소에 있는 거짓교사들이 “신화와 끝없는 족보에 몰두하(는 것)”과 “믿음 안에 있는 하나님의 경륜을 이룸보다 도리어 변론을 내는 것”을 질책하였다.

디모데전서 6장 4절에서, 바울은 계속해서 거짓 교사들에 대해 경고하기를, “그는 교만하여 아무 것도 알지 못하고 변론과 언쟁을 좋아하는 자”라고 하면서, “이로써 투기와 분쟁과 비방과 악한 생각이” 난다고 하였다.

그러므로 디모데는 상황의 심각성과 긴급 성을 에베소 교회 회중에게 일깨워 줄 필요가 있었다.

그 같은 논쟁은 “유익이 하나도” 없을 뿐 아니라, “듣는 자들을 망하게” 하였다.   

 

복음의 일은 하나의 취미로 행해질 수 없다 

 

2장 15 -18절


●    너는 진리의 말씀을 옳게 분별하며 부끄러울 것이 없는 일꾼으로 인정된 자로 자신을 하나님 앞에 드리기를 힘쓰라
●    망령되고 헛된 말을 버리라 그들은 경건하지 아니함에 점점 나아가나니
●    그들의 말은 악성 종양이 퍼져나감과 같은데 그 중에 후메내오와 빌레도가 있느니라
●    진리에 관하여는 그들이 그릇되었도다 부활이 이미 지나갔다 함으로 어떤 사람들의 믿음을 무너뜨리느니라


잘못된 교리를 논박하기 위해서, 디모데는 성경말씀을 공부하는데 “힘(써야)” 하였다.

복음의 일은 하나의 취미로 행해질 수 없다.

 “진리의 말씀을 옳게 분별하[다]”는 말에서는 성경말씀을 옳게 해석하여 바르게 가르치는 일이 강조되고 있다.

진리의 말씀을 옳게 분별하며” 가르치는 일에는 상당한 노력이 필요하다.

디모데는 하나님의 밭에서 일하는 “일꾼”이었다.

하나님은 디모데에게 그의 양떼를 맡겨주셨다.

디모데의 책임은 하나님의 말씀을 사용하여 그들을 먹여주고, 인도하며, 보호해 주는 것이었다.

바울은 디모데에게 하나님께서 맡겨주신 일을 책임 있게 그리고 충성스럽게 하여 “부끄러울 것이 없는 일꾼으로 인정된 자로 자신을 하나님 앞에 드리기를 힘쓰라”고 하였다.

그 일이 중요하기 때문에, 디모데는 성경의 중심에서 벗어나게 하는 것은 어떤 것이든 “버[려야]” 하였다.

바울은 성경의 중심에서 벗어나게 하는 구체적인 예로 “망령되고 헛된 말”을 들었다.  

망령되[다]”로 번역된 헬라어는 불경(不敬)스럽거나 세속적 인 말, 혹은 영적인 가치가 없는 말을 가리킬 수 있다.

헛된 말”로 번역된 단어는 무의미한 말 혹은 잡담들을 뜻할 수 있다.

그 같은 대화를 일삼는 사람들은 자신의 믿음과 인격을 키우지 못할 뿐 아니라, 진리를 따르려고 하는 사람들을 방해하고 있다.

17절의 “그들의 말”이라는 문구는 16절에서 언급된 일들을 하고 있는 “거짓 교사들의 가르침”을 가리키는 말로, 바울은 그들의 그 같은 가르침을 “악성 종양이 퍼져나[가는 것]”으로 묘사하였다.

만일 신자들이 적극적인 방법과 조치를 취하여 그 같은 이단을 반박하며 막지 않는다면, 이단들은 교인들을 하나 하나씩 그리고 교회들을 하나 하나씩 오염시킬 것이다.

바울은 이단인 거짓교사들의 “다른 교훈”을(딤전 1: 3) 막기 위한 적극적인 방법의 일환으로, “그 중에 후메내오와 빌레도가 있느니라”는 말로, 거짓 교사들 중에서 대표적인 인물로 두 사람의 이름을 직접 거명하였다.

사도 바울은 디모데에게 보낸 첫 번째 편지에서는 “후메내오와 알렉산더”를 거짓 교사들의 대표적 인물로 거명하며 그들을 “사탄에게 넘겨[주었다]”고 하였다 (딤전 1: 20).

바울이 그들을 정죄한 것은 그들이 진리에서 떠나 그릇된 교리를 가르쳤기 때문이었다.

그 한 예로, 바울은 그들이 “부활이 이미 지나갔다”고 가르치면서 사람들의 “믿음을 무너뜨(린다)”고 경고하며 정죄하였다.

[부활의 교리]에는 그리스도의 부활에 대한 기대와 죽는 신자들의 몸의 부활이 포함되고 있다.

그리스도의 부활은 그가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은 지 사흘 만에 일어난 역사적인 사건이 되고 있는데 반해, 믿는 자들의 부활은 그리스도의 재림 때 일어날 미래의 사건이 되고 있다 (살전 4: 16).

미래의 사건이 될 믿는 자들의 “부활”이 거짓 교사들이 그릇된 교리로 가르친 이단의 핵심이 되었다.

그들 이단자들은 “부활이 이미 지나갔다”고 가르치기 시작하였다.   

본질적으로, 그들은 신자들을 오도(誤導)하여 그들로 하여금 부활의 문제는 단지 그리스도의 부활에만 적용하고 믿는 자들의 미래의 부활에는 적용되지 않는 것으로 생각하게 하였다.

그같이 함으로, 그들은 “어떤 사람들의 믿음을 무너뜨[렸 던 것]”이다.

이 말은 그같이 그릇된 가르침에 끌린 사람들이 그 같은 교리의 혼란으로 인해 구원을 잃어 버렸다는 의미로 받아 들여지지 말아야 한다.

오히려, 바울이 언어로 그린 그림은 그들의 그릇된 가르침이 진리에 대한 이해를 곡해시키고 있는 것을 나타내고 주고 있다.

   

2장 19절


●    그러나 하나님의 견고한 터는 섰으니 인침이 있어 일렀으되 주께서 자기 백성을 아신다 하며 또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마다 불의에서 떠날 지어다 하였느니라


그러나” 혹은 ‘그럼에도 불구하고’라는 강한 어조의 말로, 바울은 거짓 교사들의 그릇된 가르침과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일을 대조시키며 연결시키고 있다.

이단의 바람이 교회에 아무리 강하게 불어 닥친다 할지라도, 하나님의 교회를 흔들어 놓거나 무너뜨릴 수 없다.

그래서 바울은 말하기를, “그러나 하나님의 견고한 터는 섰으니”라고 하였다.

바울은 디모데전서 3장 15절에서 교회를 “하나님의 집”으로 부르면서, “진리의 기둥과 터”라고 하였다.

본문 구절에서, 바울은 비유적 표현법을 써서, 그 “견고한 터”인 교회에는 “주께서 자기 백성을 아신다”는 말씀과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마다 불의에서 떠날지어다”라는 말씀이 “인침”으로 기록되어 있다고 하였다.

당시에 “인침”이라는 용어는 어떤 것이 진짜인 것을 증명해 주며 그것에 대한 소유권을 표시하는 방법이 되었다.

주께서 자기 백성을 아신다”는 첫 번째의 말씀은 민수기 16장 5절에서 따온 것으로, 히브리 자손이 출애굽 당시에 모세에게 반역하였고, 결과적으로 하나님의 주권을 저버렸던 역사적 사건을 배경으로 삼고 있다.  

하나님께서는 자기에게 속한 자들과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그들의 삶은 그 고백이 거짓임을 드러내주고 있는 자들을 알고 계셨다.

주께서 자기 백성을 아신다”라는 말을 들으면, 예수님께서 자신을 “선한 목자”라고 하시면서 “나는 내 양을 알고 양도 나를 (안다)”고 하신 말씀을 상기하게 된다 (요 10: 14).

인침”의 두 번째 부분은 근본적으로 거룩한 삶을 살라는 도전이 되고 있다.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마다 불의에서 떠날지어다”라는 말씀은 구약에서 직접 인용한 것이 아닐지라도, 그 도전의 말씀은 “악을 버리고 선을 행하며 화평을 찾아 따를지어다”라고 한 시 34편 14절의 말씀을 상기시켜 주고 있다.

우리가 계속 바른 믿음의 길로 가려면, 하나님의 말씀을 계속 공부해야 한다.

우리가 성경말씀을 열심히 공부하고 그 말씀에 충성스럽게 순종할 때에만 믿음으로 굳게 설 수 있다.

 

성경말씀을 충실히 그리고 열심히 공부하는 것은 어떻게 신자들로 하여금 쓸데없는 거짓 토론을 피하도록 도울 수 있는가?

한 사람이 성경말씀을 공부하지 않고도, 쓸데 없는 빈 말과 믿음으로 세워주는 말의 차이를 구별할 수 있는가?

 

두 종류의 그릇으로 비유된 신자들 (디모데후서 2장 20 -22절)

 

바울은 디모데에게 하나님의 일에 매우 유용하게 쓰임을 받을 수 있도록 죄를 피하고 의를 추구하도록 도전하였다.

바울은 자신의 주장과 요점을 한 집에서 사용되고 있는 여러 가지 그릇들과 기구들을 예를 들어 설명하면서, 어떤 그릇들은 깨끗하기 때문에 특별히 사용되고 있음을 강조하였다.

 

2장 20 -21절:


●    큰 집에는 금 그릇과 은 그릇뿐 아니라 나무 그릇과 질그릇도 있어 귀하게 쓰는 것도 있고 천하게 쓰는 것도 있나니   
●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런 것에서 자기를 깨끗하게 하면 귀히 쓰는 그릇이 되어 거룩하고 주인의 쓰심에 합당하며 모든 선한 일에 준비함이 되리라    


큰 집”이라는 말에서 우리는 한 부유한 사람의 집의 모습을 연상하게 된다.

그 같은 집에서, 우리는 다양한 기능과 용도를 가진 많은 "그릇”들을 발견하게 될 것으로 기대한다.

바울은 비유적 표현법을 사용하여, 그같이 큰 집에서 쓰이는 그릇들을 “귀하게” 쓰이는 것과  “천하게” 쓰이는 것으로 구별하고 대조시켜, 귀하게 쓰이는 그릇들은 “금 그릇과 은 그릇”으로 묘사하고, 천하게 쓰이는 그릇들은 “나무 그릇과 질그릇”으로 묘사하였다.

바울이 그 같은 비유적 표현법을 써서 밝히려는 요점은 “큰 집”으로 대표되고 있는 교회에서, 어떤 신자들은 하나님의 일에 귀하게 쓰임을 받고 있는 반면에, 다른 신자들은 그같이 귀하게 쓰임을 받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바울은 부끄러운 일들을 하고 있는 사람은 누구든지 자신의 삶에서 그러한 요소들을 제거함으로써 자신을 깨끗하게 하도록 디모데가 격려하기를 원하였다.

자신을 깨끗하게 하는 방법에는 두 가지가 있다.

한 가지는, 누구든지 죄를 회개하고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믿으면, 그리스도의 피가 그를 죄로부터 깨끗하게 해 준다.

또 다른 한 가지는, 신자들이 죄가 되는 일들을 그들의 삶에서 제거함으로써, 자신들을 깨끗하게 하는 일에 참여하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신자들은 “금 그릇”이나 “은 그릇”과 같이 “귀히 쓰는 그릇이” 될 것이다.

바울은 왜 그 그릇이 주님 앞에서 “귀히 쓰는 그릇”이 되고 있는지를 구체적으로 세 가지 이유를 들어 설명하였다.

첫째로, 그 그릇은 “거룩하(다)”고 하였다.

가룩하다는 말은 하나님의 속성을 닮다 혹은 따로 떼어놓다는 뜻이 되고 있다.

둘째로, 그 그릇은 “주인의 쓰임에 합당하(다)”고 하였다.

셋째로, 그 그릇은 “모든 선한 일에 준비함이” 되고 있다.

 

2장 22절:


●    또한 너는 청년의 정욕을 피하고 주를 깨끗한 마음으로 부르는 자들과 함께 의와 믿음과 사랑과 화평을 따르라   

 

마찬가지로, 바울은 디모데에게 계속 하나님의 쓰임을 받도록 자신을 깨끗하게 하라고 촉구하였다.

그 말은 디모데가 세상적인 유혹에 빠졌다는 뜻이 아니다.

영적 전쟁의 엄격함과 철저함을 알기 때문에, 바울은 믿음의 아들이자 제자인 디모데에게 삶의 올바른 길을 계속 걸어가도록 힘쓰라고 경고했던 것이다.

그는 자신의 요점들을 밝히기 위해 서로 대조되는 두 가지의 비유적 표현을 사용하였다.

첫째로, 디모데는 “청년의 정욕”을 피해야 하였다.

청년의 정욕”으로 번역된 단어는 성적인 욕구를 가리킬 수 있지만, 이 문맥에서는 성적 욕구에만 한정되지 않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그 말은 오만함, 자기 방종, 지나친 야망, 그리고 세상적인 쾌락에 대한 집착 등을 포함할 수 있다.

둘째로, 디모데는 자신의 눈과 마음을 전혀 다른 목표에 맞추어야 하였다.

그래서, 바울은 디모데에게 “주를 깨끗한 마음으로 부르는 자들과 함께 의와 믿음과 사랑과 화평을 따르라”고 명하였다.

바울이 사용한 “의”(義)란 말에서 강조되고 있는 것은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이다.

그 같은 종류의 의(義)는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를 통해 신자들에게 주신 것이다.

그 의는 행위나 율법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은 것”이다 (빌 3: 9; 딛 3: 5)).

마찬가지로, “믿음”은 구원의 수단이 될 뿐 아니라, 하나님을 섬기는데도 필요하다.

하나님의 의와 인간의 믿음은 본질적으로 뗄 수 없는 관계가 되고 있다.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며)” (롬 1: 17),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한다)” (히 11: 6).

경건한 사람은 또한 “사랑과 화평”을 추구한다.

여기서 언급된 “사랑”은 아가페의 사랑이다.

헬라어의 아가페로 표시되고 있는 하나님의 사랑은 세상적인 사랑과 극명한 대조(對照)를 이루고 있다.

하나님의 사랑은 베푸는 성격의 것이 되고 있는데 반해, 세상적인 사랑은 취하는 성격의 것이 되고 있다.

하나님의 사랑은 사랑하는 사람의 유익을 구하는 반면에, 세상적인 사랑은 이기심에서 개인적인 욕구를 충족시키려고 한다.

신자들이 하나님의 사랑으로 사랑을 하면, 자연히 하나님과 그리고 다른 사람들과 “화평”한 관계를 누리게 된다.

주를 깨끗한 마음으로 부르는 자들”이라는 말은 두 가지 방법으로 적용될 수 있는데, 그들 두 가지 모두 실제적인 방법이 될 수 있다.

첫째로, 바울은 “주를 깨끗한 마음으로 부르는 자들”은 세상적인 정욕을 피하고 “의와 믿음과 사랑과 화평”등의 경건한 덕목들을 추구해야 됨을 강조했을 수 있다.

두 번째의 방법은 디모데가 주를 부르는 자들과 함께 섬길 때 그들 경건한 덕목들을 추구해야 됨을 뜻했을 수 있다.

어느 경우가 되었건 간에, 초점은 1) 주를 부르는 자들과 2) 깨끗한 마음으로 부르는 일이 되고 있다.

육신에 속한 사람들과는 반대로 (고전 3: 3), 참 예배자들은 진정한 마음으로 하나님을 찾는다.

 

말씀 사역의 두 가지 접근 법 (디모데후서 2장  23 -26절)

 

2장 23 -25절


●    어리석고 무식한 변론을 버리라 이에서 다툼이 나는 줄 앎이라
●    주의 종은 마땅히 다투지 아니하고 모든 사람에 대하여 온유하며 가르치기를 잘하며 참으며
●    거역하는 자를 온유함으로 훈계할지니 혹 하나님이 그들에게 회개함을 주사 진리를 알게 하실까 하며


바울은, “말다툼을 하지 말라”는 14절의 주제로 돌아가서, 디모데에게 “어리석고 무식한 변론을 버리(고)” 대신 복음의 진리를 가르치라고 격려하였다.

바울은 그 같은 변론을 “어리석고 무식한 (것)”으로 묘사하였다.

어리석다”라는 말은 주장하는 것들이 상식과 기본적인 이해력이 부족한 것을 의미하고 있다.

무식하다”는 용어는 교육을 받지 못했다는 뜻이 되고 있다.

신자들은 그 같은 변론에 빠져들지 않도록 해야 한다.

그 같은 변론에서는 “다툼”이 생겨성도들의 믿음을 키워주며 변화시켜 주는 대신에 도리어 갈등과 불화를 일으킨다.

주의 종은 마땅히 다투지” 말아야 한다.

주의 종들은 그 같은 종류의 변론에 휘말리지 않을 뿐 아니라, 복음을 “거역하는 자”까지도 회개하고 그리스도께로 돌아올 수 있게 되기를 위해서 기도하며 모든 사람을 “온유함으로” 대하며 가르쳐야 한다.

그리스도를 섬기는 사람들은 사람들에게 진리의 말씀을 온유한 마음과 태도로 가르쳐 주어야 한다.

특별히 처음 복음을 거절하는 사람들에게는 가르치기를 잘할 뿐 아니라, 잘 참아야 한다.

25절은 24절에서 언급한 것으로, 온유한 마음으로 잘 참고 잘 가르칠 때 나타나는 사역의 결과가 되고 있다.

바울은 말하기를, “거역하는 자를 온유함으로 할지니 혹 하나님이 그들에게 회개함을 주사 진리를 알게 하실까” 한다고 하였다.

그러므로, 디모데의 말씀사역에는 “거역하는 자를 온유함으로” 가르치는 일이 포함되었다.

인간은 공격적이거나 적대적인 사람을 마주 대하게 되면, 거부하며 밀어내는 것이 본성이 되고 있다.

우리가 하나님의 진리를 사람들에게, 심지어 자기에게 적대하는 것으로 보이는 사람에게까지, 온유함으로 가르치며 훈계할 때, 더 나은 사역의 결과를 얻을 수 있다. 

가르치는 사역의 궁극적인 목적과 결과는 “변론”을 하여 이기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회개함을 주사 진리를 알게” 해 주시는 것이 되고 있다.

사람들은 이전에 잘못 생각하고 있던 생각에 대해 마음이 바뀌게 되면 진리를 알게 될 것이다.

그들은 도움이 없이 바른 이해에 도달하지 못할 것이다.

바울은 하나님의 일꾼들이, 하나님께서 자기들을 통해 일하시는 것을 믿고, 사랑과 온유함으로 믿지 않는 사람들을 진리로 인도하며 가르치는 사역의 일원이 되는 방법을 설명해 주었던 것이다.

 

2장 26절


●    그들로 깨어 마귀의 올무에서 벗어나 하나님께 사로 잡힌 바 되어 그 뜻을 따르게 하실까 함이라


바울은 디모데전서 2장 8절에서 감독 혹은 목회자가 되려는 교회 지도자들에게 “마귀의 올무에 빠질까 염려하라”고 경고했었는데, 여기서는 같은 비유적 표현을 사용하여, 복음에 적대하는 자들이 믿는 자들의 가르침과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회개하고 진리를 알게 되어 “마귀의 올무에서 벗어나 하나님께 사로 잡힌 바 되어 그 뜻을 따르게” 되기를 바란다고 하였다.

믿는 자들은 믿지 않는 자들이 “깨어 마귀의 올무에서 벗어나(게)” 되는 것을 소망과 목표로 삼고 사랑과 온유함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전달해야 한다.

 

복음의 메시지를 전달하는 친절하고도 온유한 접근 방법의 이점들은 무엇인가?

그 같은 접근 방법은 어떻게 장벽들을 무너뜨릴 수 있는가?

 

말씀을 나의 상황에 적용하기:


●    신자들은 그릇된 길로 빠져들지 않도록 계속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공부해야 한다.   
●    신자들은 하나님의 일에 유용하게 쓰임을 받도록 의도적으로 죄를 피하고 의를 따라야 한다.      
●    신자들은 사랑과 친절로 다른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해야 한다.    

 

당신이 교회에서 멘토가 되어 가르치며 지도할 수 있는 젊은 신자들을 찾아보라.

그리고 그들이 믿음 생활 속에서 경건한 선택들을 하도록 어떻게 격려하며 도와 줄 수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