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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중(集中)하는 믿음의 삶 - 제 8과 2019년 7월 21일 주일 용 -장년성경연구 교사용 교안 - 디모데후서 2장 1 -13절

글쓴이 : 강호길 날짜 : 2019-07-15 (월) 04:39 조회 : 40

장년성경연구 교사용 교안

2019년 7월 21일 주일 용  


제 8과



집중(集中)하는 믿음의 삶    



학습구절: 디모데후서 2장 1 -13절


성경진리:

신자들은 하나님의 은혜와 복음에 초점을 맞춤으로 삶의 어려움을 이길 수 있는 힘을 얻을 수 있다.       


주요교리 하나님의 은혜의 목적 

믿는 자들은 부주의(不注意)나 태만(怠慢)으로 혹은 유혹을 받아 죄를 지을 수 있으며, 이로 인해 성령님을 근심하게 하고(엡 4: 30), 자신들이 받은 은혜와 위로를 손상시키며, 그리스도의 사역이 비난을 받게 하고 자신들에 대한 세상적인 판단(判斷)을 받게 하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믿는 자들을 만물보다 크신 그의 능력으로 구원에 이르는 믿음으로부터 지켜 주신다 (요 10: 28 -29).


암송구절:  디모데후서 2장 10절  

이제는 우리 구주 그리스도 예수의 나타나심으로 말미암아 나타났으니

그는 사망을 폐하시고 복음으로써 생명과 썩지 아니할 것을 드러내신지라

“But it has now been revealed through the appearing of our Savior,

Christ Jesus, who has destroyed death and has brought life and immortality to light through the gospel.      



시작하는 글:



우리들 모두에게는 실망과 낙심의 계절이 있다.

그리스도를 따르는 제자들인 우리는 고난과 역경을 피할 수 있는 면제 카드를 받지 않았다.

오히려 주님은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고 하시면서 (요 16: 33) 우리가 환난을 겪게 될 것을 확실하게 말씀해 주셨다,

주님은 또한 시련과 역경이 제아무리 힘들고 어렵더라도 우리를 결코 버려두지 않으실 것을 약속해 주셨다.

믿는 자들이 시련과 역경을 겪게 되면, 두 가지 선택의 기로에 서게 된다.  

하나는 문제 자체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능력으로 함께해 주시는 주님께 초점을 맞추는 것이다.

우리가 어떤 길을 택하느냐에 따라 결과는 엄청나게 달라진다.

승리와 패배가 결정되기 때문이다.  


고난과 역경이 삶의 안목을 예리하게 해 주거나 삶을 고통스럽게 해 주는 요인들은 무엇인가?



본문배경설명


디모데후서 2장 1절부터 13절까지


바울은 1장의 많은 부분을 디모데에게 자기가 처해있는 상황에 대해 부끄러워하거나 두려워하지 말고, 도리어 복음을 위해 고난을 받으라고 촉구하는데 사용하였다 (딤후 1: 8).

제 1장을 마치면서, 바울은 에베소지역에 있는 몇몇 다른 복음사역자들에 관한 그의 관심사를 간략하게 설명하였다.

어떤 사람들은 사도 바울과 함께 사역하는 것을 중단하였다.

그러나, ”오네시보로”라는 한 동역자는 에베소로부터 로마로 와서 감옥에 갇혀있는 사도 바울을 돌보아주고 격려해 주었다.

바울은 그 도움에 대해 크게 감사하였다 (1: 15 -18).

디모데 후서 2 장 1 ~ 2 절은 1장의 나머지 부분의 논조(論調)를 정하고 있는 두 가지 명령이 주축을 이루고 있다.

첫째로, 바울은 디모데에게 “너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은혜 가운데서 강하(라)”고 하였다 (2: 1).

바울은 특별히 영적인 힘, 즉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생기는 힘과 신자들이 담대하고 충성스럽게 그리스도를 섬길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주시는 힘을 가리키고 있다.  

둘째로, 바울은 디모데에게 “네가 많은 증인 앞에서 내게 들은 (복음의 가르침)을 충성된 (다른) 사람들에게 (전수)하라”고 명령하였다 (2: 2).

그러면 그들은 또한 미래(未來)의 잠재적인 교회 지도자들을 가르치고 훈련시킬 수 있을 것이라고 하였다.

실제로, 사도 바울은 디모데에게 에베소 교회에서 지속적인 제자 훈련프로그램을 확립하여 실시하도록 명령하였던 것이다.

바울이 2장 1절부터 13절에서 강조하고 있는 것은 미래의 교회지도자들을 세워서 가르치고 훈련시키는 일이 되고 있다.

그래서, 먼저 그는 디모데에게 삶의 어려움과 역경을 영적 훈련의 기회로 삼도록 호소 하였다.

그는 디모데에게 병사와 운동 선수 그리고 농부처럼 생각하도록 권하였다 (2: 3 -7).

그들 모두는 자신들의 분야에서 성공하기 위해 열심히 단련하며 어려움을 잘 참고 견디며 부지런히 일하는 사람들이다.

다음으로, 바울은 디모데에게 잘 참고 견딘 두 가지 예를 생각하도록 격려하였다.

다른 무엇보다, 디모데는 “예수 그리스도를 기억하(여야)” 했다 (2: 8).

예수님께서는 온 세상 죄를 대신 지시고 십자가에 달려 고난을 당하시고 죽으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은 고난과 역경을 치유로 그리고 그의 죽음을 죄와 무덤의 권세를 이긴 승리로 바꾸어 놓았다.

더욱이, 바울이 복음을 위해 “매이는 데까지 고난을 받았으나” 잘 참고 견딘 것은 “하나님의 말씀은 매이지 아니(한 것)”을 보여주는 본이 되었다 (2: 9 -10).

바울은 두 가지 예를 인내에 대한 믿을만한 말로 마무리 지었다 (2: 11 -13).

우리는 오늘의 학습 구절들에서 몇 가지 원칙을 이끌어 낼 수 있다.

첫째로, 교회들은 미래의 일꾼들을 지속적으로 모집하여 교육하고 훈련시켜야 한다 (2: 2 참조).

둘째로믿음의 삶과 믿음의 사역은 쉽지 않다 (2: 3 -6 참조).

셋째로, 믿는 자들은 강한 반대와 적대로 인해 쉽게 낙담에 빠지지 않도록 인내심과 인내력을 키우고 개발할 필요가 있다.

바울은 디모데에게 또한 우리들에게 복음의 능력에 대한 충성된 증인으로 섬길 것을 요구하였다.


미래의 사역을 준비하는 일에 초점을 맞춤 (디모데후서 2장 1- 2절)


2장 1 -2절 


●    내 아들아 그러므로 너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은혜 가운데서 강하고
●    또 네가 많은 증인 앞에서 내게 들은 바를 충성된 사람들에게 부탁하라 그들이 또 다른 사람들을 가르칠 수 있으리라


우리가 그리스도를 바라보지 않고 세상이나 현재의 상황 혹은 역경을 바라보면 낙심할 수 있다.

바울은, “그러므로”라는 말을 사용하여 자기가 전에 한 말에다 연결시킴으로, 디모데의 관심을 다시 주님께로 돌리게 하였다.

상황이 어떻든 관계 없이, 초점을 적절하게 맞추면 젊은 목회자인 디모데는 사역을 잘해 나갈 수 있었다.

첫째로, 바울은 디모데에 대한 자신의 사랑을 굳게 하기를 원하였다.

디모데를 “내 아들”이라고 부름으로, 바울은 디모데에게 오래 지속되고 있는 자신들의 관계를 상기시켰다.

바울은 디모데에게 직접 전도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믿게 하지는 않았지만, 같이 선교여행을 하면서 디모데의 멘토로써 그를 가르치고 지도하였다.

둘째로, 바울은 디모데에게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은혜 가운데서 강하(라)”고 격려하였다.

'강하라”로 표현 된 헬라어 동사는 “강하게 되다”라는 시제로 이해될 수 있다.

어느 경우이든, 신자들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얻는 하나님의 은혜가 디모데에게 필요한 힘의 원천이었음이 분명하다.  

사역을 위한 힘의 원천을 밝힌 후에, 바울은 “네가 많은 증인 앞에서 내게 들은 바를 충성된 사람들에게 부탁하라 그들이 또 다른 사람들을 가르칠 수 있으리라”라는 말로, 곧장 사역의 장기적인 목표로 관심을 돌렸다

디모데는 현재의 사역에 충성을 다하며 복음을 전하는 것으로 만족하지 말아야 하였다.

바울이 사역의 현장을 떠날 준비를 하며 자신이 하고 있는 일을 그 동안 준비시키고 훈련한 사람들에게 맡기려고 하고 있는 것처럼, 디모데도 똑같이 해야 하였다.

디모데도 자기가 하는 일을 끝내야 하는 때가 올 것이다.

그같이 피할 수 없는 일을 준비하기 위하여, 디모데는 바울에게서 듣고 배운 것들을 “충성된 사람들에게” 전수해야 하였다.  

그러면, 그들은 “또 다른 사람들을 가르칠 수 있(을 것)”이다.   

많은 작가들에 의해 "영적 증식"으로 불려지고 있는 이 과정은 또한 계속 진행중인 제자 만들기의  과정으로 이해 될 수 있다.

충성된 신자들은 미래의 교회 지도자들의 삶에 투자를 한다.

우리는 그리스도를 계속 증거할 뿐 아니라 차세대 지도자들을 훈련시키며 양성하는 일을 계속하지 않을 경우, 다음 세대는 전적으로 무실론 세계가 될 수 있다.

우리는 현재의 성공에 결코 만족할 수 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리스도의 교회의 미래에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


디모데가 다른 세대를 이끌어나갈 지도자들을 준비시키고 훈련시키는 것이 왜 그렇게 중요 하였는가?   그 전략은 오늘 날 어떻게 사용되고 있는가?



사명에 초점을 맞춤 (디모데후서 2장 3 -7절)


2장 3 -4절:


●    너는 그리스도 예수의 좋은 병사로 나와 함께 고난을 받으라  
●    병사로 복무하는 자는 자기 생활에 얽매이는 자가 하나도 없나니 이는 병사로 모집한 자를 기쁘게 하려 함이라


바울은 그리스도인의 삶과 사역을 상징하는 세 가지 비유를 실례로 들어 설명하였다.

그 비유들은 ‘충성스러운 병사’와 ‘절도 있게 훈련된 운동선수’와 ‘열심히 일하는 농부’ 가 되고 있다.

바울은 디모데에게 그들이 하는 일들을 생각해보고 교훈을 배워 그것들을 자신의 삶과 사역에 적용하기를 원하였다.

바울은 목회 사역의 어려움과 역경을 겪고 있는 디모데를 부드러운 말로 위로해주기 보다는 “너는 그리스도의 좋은 병사로 나와 함께 고난을 받으라”고 권면하였다.

고난은 그리스도인이 일반적으로 겪는 삶의 한 부분이 되고 있다.

여기서, 바울은 “병사”라는 용어를 사용하여 그리스도인의 삶과 사역을 “그리스도 예수의 좋은 병사”가 되는 것에다 비유하였다.

바울은 다른 서신들에서도 군사 용어들을 사용하였는데, 종종 그것들은 그리스도인들이 영적 싸움을 싸우고 있는 문맥에서 나타나고 있다 (롬 7: 23, 고후 10: 3 -4, 엡 6: 10 -17 참조).

디모데의 경우에서 바울이 강조하고 있는 점은 디모데가 어려움과 역경에 직면할지라도 훈련을 잘 받은 병사가 하는 것처럼 사명에 초점을 맞추는 일이 되고 있다.

바울은 “좋은 병사”에 대한 비유를 확대시켜, 군대 생활의 두 가지 중요한 면을 강조하였다.

첫째로, 바울은 디모데에게 “병사로 복무하는 자는 자기 생활에 얽매이는 자가 하나도 없(다)”고 하였다.  

훈련을 잘 받은 충성된 병사들은 당면한 임무와 과업에 전적인 관심과 주의를 기울인다.

그들이 군대 밖의 일에 마음을 빼앗기거나 낙심되는 일이 생기면, 그 사명과 임무를 성공적으로 수행 할 수 없다.

여기서 바울이 강조하고 있는 영적 원리는 목회자들은 병사들이 하는 것처럼, 하나님께서 맡겨주신 사명과 임무에 관심과 주의를 집중하는 일이 되고 있다.

둘째로, 바울은 좋은 병사는 항상 자기를 “병사로 모집한 자”를 기쁘게 하기를 힘쓰는 점을 강조하였다

고대에나 현대에나 똑같이, 군인의 기본적인 의무는 지휘관에게 충성을 다하며 지휘관의 지시와 명령을 최선을 다하여 수행하는 것이 되고 있다.

디모데의 최고의 지휘관은 “그리스도 예수”가 되셨다 (2: 3).

바울은 또한 디모데가 바울이 에베소에있는 교회와 관련된 임무에 집중할 필요가 있음을 염두에 두었을 수도 있다.

우리는 오늘날의 목회자들과 관련하여 바울의 비유를 잘못 적용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예를 들어, “좋은 병사”라는 말은 목회자들이 독신으로 지내야 된다는 뜻이 아니다.

이 비유는 또한 생업을 위해 다른 직업적을 가지고 있는 목사는 교회의 목회자가 될 수 없는 것을 뜻하는 것도 아니다.  

바울의 강조점은 교회의 사명과 그 사명에 있어서 목회자의 중대한 역할의 관점에서 교회 지도자로서 훈련을 받는 일이 되었다.


2장 5절:


●    경기하는 자가 법대로 경기하지 아니하면 승리자의 관을 얻지 못할 것이며 


충실한 그리스도인의 사명(使命)과 사역(使役)을 위해 바울이 두 번째로 둔 비유는 “경기하는 자,” 즉 운동 선수가 되고 있다.

경기하는 자”에 대한 두 가지 가정은 준비하려는 마음과 경쟁하려는 의욕을 포함하고 있다.

당시에 경기하는 자의 승리는 일반적으로 월계수 잎으로 엮어 만든 ‘월계수 관’ 혹은 ‘승리의 관’을 머리에 쓰는 것으로 인정되었다.

운동경기의 비유들은 바울의 서신(고전 9: 24-27 참조)과 히브리서 (히 12: 1-2,12-13 참조)등의 신약 전서에서 찾아볼 수 있다.

고대 올림픽 경기와 이두미안 경기가 개최되었던 지역에서 상당한 기간을 보낸 후, 바울은 운동 선수의 생활과 운동 경기의 엄격함에 익숙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는, 예를 들어, 운동 선수에게는 오직 한 가지 목표만 있는 것을 알았다.

즉 경기에서 승리하여, 우승자의 ‘승리의 관’을 쓰는 것이었다.

그 관을 얻기 위해, “경기하는 자”는 “법대로” 혹은 “규칙대로” 경기를 해야 되었다.

바꾸어 말하면, 속임수를 쓰거나, 정해진 경기 규칙을 어긴 선수는 실격되며, 챔피언으로 선언되지 않을 것이다.

고대 희랍의 운동 선수들은 경기 자체뿐만 아니라 그 경기를 준비하는 과정에 대한 규칙들도 준수해야 하였다.

바울이 디모데가 그 예화에서 배워서 적용하기를 바란 것은 그리스도인의 삶과 사역에서의 승리에도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실 때 그가 주실 "의의 면류관"(딤후 4: 8)이라는 목표에 집중해야 한다는 것이다.

믿음의 경주를 하는 동안 어려움과 역경을 견디어 내는 것은 일반적으로 신자들이 그리고 특별히 사역자들이 사탄과의 궁극적인 싸움에서 승리하기 위해 준비하며 훈련하는 과정의 일부가 되고 있다.

바울의 훈련의 목표와 사역의 초점은 경기에서 실격을 당하지 않는 것이 되었다 (고전 9: 26 -27 참조).

바울과 마찬가지로, 디모데도 더 쉬운 사역의 길을 가려고 하지 말아야 하였다.

오히려, 그는 복음의 규칙을 지키고 준비과정이나 경기에서 지름길을 취하지 말아야 하였다.  


2장 6절:


●    수고하는 농부가 곡식을 먼저 받는 것이 마땅하니라


마지막으로, 바울은 그리스도인의 삶과 사역을 “농부”에다 비유하였다.

이 친숙한 비유를 사용함으로써, 바울은 두 가지 요점(要點)을 강조하였다.

첫째로, 바울은 농부의 부지런함과 단련된 생활을 지적하였다.

농부는 열심히 일하는 사람들이다.

지금도 마찬가지이지만, 고대 사회에서 성공적인 농사는 쉽지 않았다.

농사에는 힘든 일이 요구되고 있다.

잠언은 농작물을 추수하는데 필요한 힘든 일을 하지 않고 있는 게으른 자를 규탄하는 수많은 비난의 말을 담고 있다 (잠 20: 4 참조).

다음으로, 바울은 열심히 그리고 힘들게 일한 농부는 “곡식을 먼저 받는 것이 마땅하니라”고 하였다.  

그는 고린도 교인들에게 보내는 서신에서 비슷한 지적을 하였다 (고전 9: 7).

“누가 포도를 심고 그 열매를 먹지 않겠느냐 누가 양떼를 기르고 그 양 떼의 젖을 먹지 않겠느냐?”

근면과 단련은 때로 어렵고 힘들 수 있지만, 결국은 결심을 맺는다.

병사, 경기하는 자, 혹은 농부와 마찬가지로, 복음을 위해 고난을 받으며 충성스럽게 섬기는 신자들은 언젠가는 하나님께서 그들을 보상해 주실 것을 확신 할 수 있다.


2장 7절:


●    내가 말하는 것을 생각해 보라 주께서 범사에 네게 총명을 주시리라  

바울은 디모데에게 자신이 “말하는 것을 생각해 보라”고 하는 말로, 믿음의 삶과 사역을 비유로 설명하는 것을 끝내었다.

예수님도 영적인 진리를 가르치실 때 비유를 사용하셨는데, 그는 종종 “귀 있는 자는 들으라”는 말씀으로 마치셨다 (마 13: 43).

예수님의 말씀과 디모데에게 한 바울의 충고는 비유의 말에 담겨있는 깊은 뜻에 주의를 기울여 교훈을 얻으라는 요구가 되고 있다.

디모데가 시간을 내어 바울이 예로 든 세가지 비유들을 깊이 생각하면, 주님은 젊은 목회자에게 “총명을 주(셔서)” 그리스도인의 삶과 사역의 영적인 뜻과 목적을 깨닫게 해 주실 것이다.


그리스도께 초점을 맞춤 (디모데후서 2장  8 -13절)


이 단원의 구절들은 두 부분으로 나뉘어 질 수 있는데, 첫째 부분은 2장 8절의 “기억하라”는 말로 시작되고 있으며, 둘째 부분은 2장 11절의 “미쁘다 이 말이여”라는 말로 시작되고 있다.

첫 번째 부분에서, 바울은 디모데에게 예수님의 정체성에 대해 말한 다음 자신이 겪고 있는 고난의 예를 들었다.

두 번째 부분에서, 바울은 디모데에게 인내의 필요성과 그리스도를 부인하지 말아야 될 것을 지적해 주었다.

이 단원은 “주는 항상 미쁘시니”라는 말로 그리스도의 신실하심을 상기시켜주는 말로 끝나고 있다.


1장 8 -9절


●    내가 전한 복음대로 다윗의 씨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신 예수 그리스도를 기억하라
●    복음으로 말미암아 내가 죄인과 같이 매이는 데까지 고난을 받았으나 하나님의 말씀은 매이지 아니하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기억하라”는 바울의 명령은 디모데의 기억력에 결함이 있는 것을 암시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바울은 디모데가 그의 초점을 바로 맞추기를 원했던 것이다.

젊은 목회자인 디모데는 자신이 직면하고 있는 문제들이나 여건들을 바라보는 대신에, 그리스도께 집중해야 하였다.

바울은 디모데의 주의 깊은 관심을 요구하고 있는 두 가지 측면을 강조하였다.

첫째로, 디모데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신 (것)”을 기억하여야 하였다.

그리스도의 고난과 죽음은 그의 부활로 이어졌다.

디모데는 마찬가지로 복음을 위해 그가 겪은 모든 고난은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실 때 그 정당상이 입증될 것을 확신 할 수 있었다.

디모데가 기억해야 될 두 번째의 측면은 예수님이 “다윗의 씨”가 되신다는 사실이다.

예수님은 다윗 왕의 혈통으로부터 약속 된 메시아로, 이는 창조 때부터 하나님의 영원한 통치권을 확립시키고 견고케 하실 분이시다  (삼하 7: 12-16 참조).

이들 두 가지 측면들, 즉 예수님의 부활과 메시아로써의 그의 영원한 통치는 바울이 전파하는 복음의 핵심이 되었다.

바울은 “내가 전한 복음대로”라는 말로, 하나님께서 자기에게 복음을 세상에, 특별히 이방세계에, 전하는 사역을 맡겨주신 것을 강조하였다.

바울은 “복음으로 말미암아 내가 죄인과 같이 매이는 데까지 고난을 받았으나 하나님의 말씀은 매이지 아니하니라”라는 말로, 자신이 처해 있는 상태와 하나님의 말씀이 처해 있는 상태를 비교하였다.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로 투옥을 당하여 사슬에 묶여 있었지만, 그가 전파한 복음은 그와는 대조적으로 속박해 놓을 수 없었다.  

복음 때문에 바울이 옥에 갇힌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엇다.

실제로, 지금 신약 성경에 들어있는 몇 개의 그의 서신들은 그가 감옥에서 서 보낸 것이다.

로마 정부는 복음 전파자를 일시적으로 감옥에 가두어 놓을 수는 있었으나, 복음 자체는 결코 가두어 놓을 수 없었다.


2장 10절


●    그러므로 내가 택함 받은 자들을 위하여 모든 것을 참음은 그들도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구원을 영원한 영광과 함께 받게 하려 함이라


그러므로”라는 말은 바울이 2장 8절과 9절에서 말한 것에 근거된 결론을 가리키고 있다.

바울은 자신이 고난을 겪을지라도, 복음은 매이지 않고 계속 전파되고 있으며, 그 복음으로 인하여 “택함을 받은 자들”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구원을 영원한 영광과 함께” 받고 있기 때문에 모든 것을 참고 있다고 하였다.

택함을 받은 자”란 말은 당시의 그리스도인들은 물론 모든 세대를 통하여 그리스도 예수를 믿고 구원을 받은 모든 사람을 포함하고 있다.

바울은 다른 사람들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구원과 영원한 영광을 받게 하려고 부끄러움과 고난을 다 참고 견디었으며 복음을 전했던 것이다.


2장 11 -13절


●    미쁘다 이 말이여 우리가 주와 함께 죽었으면 또한 함께 살 것이요
●    참으면 또한 함께 왕 노릇 할 것이요 우리가 주를 부인하면 주도 우리를 부인하실 것이라
●    우리는 미쁨이 없을지라도 주는 항상 미쁘시니 자기를 부인하실 수 없으리라


미쁘다 이 말이여”라는 말은 그 다음에 나오는 네 가지 조건부 약속의 말을 가리키고 있다.

그것들은 믿는 자들과 예수님과의 관계를 밝혀주는 말들이 되고 있다.

첫째로, 바울은 “우리가 주와 함께 죽었으면 또한 함께 살 것이요”라고 하였다.

바울은 같은 말을 로마서 6장 8절에서 사용하였는데, 그것은 한 사람이 예수님을 믿고 그 믿음의 표로 침례를 받는 것을 묘사한 말이 되고 있다.

그것은 또한 부활의 믿음을 나타내는 말이 되고 있다.

바울은 갈라디아서 2장 20절에서는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는 고백으로 십자가의 믿음과 부활의 믿음을 표현하였다.

“미쁘다 이 말이요”라는 바울의 두 번째의 말은 믿음을 위해 참고 견디는 면을 강조하고 있다. 바울은 “참으면 또한 함께 왕 노릇 할 것이요”라고 하였다.

예수님은 그의 제자들이 “이스라엘의 열두 지파를 다스리게” 하겠다고 약속하였다 (눅 22: 29 -30 참조).

교인들 사이의 소송문제에 대해 언급하면서, 바울은 “성도가 세상을 판단할 것”을 상기시켜 주었다 (고전 6: 2).

세 번째로, 바울은 긍정적인 측면에서 부정적인 측면으로 초점을 바꾸어 “우리가 주를 부인하면 주도 우리를 부인하실 것이라”고 하였다.  

예수님도 마태복음 10장 33절에서 제자들에게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시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그를 시인할 것이요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부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아버지 앞에서 그를 부인하리라”고 경고하셨다.

끝으로, 바울은 “우리는 미쁨이 없을지라도 주는 항상 미쁘시니”라고 하였다.

그것은 우리는 신실하지 못하더라도 주님은 항상 신실하시기 때문에 믿을 수 있다는 말이다.

그것은 참으로 믿는 자들로 하여금 “미쁘다 이 말이여”라고 화답하게 한다.

믿을 수 있는 말이 되고 있다는 뜻이다.



말씀을 나의 상황에 적용하기:


●    신자들은 미래의 교회 지도자들의 삶에 투자해야 한다.     
●    신자들은 어려움에 직면할 때 하나님께서 그들의 신실함을 보상해 주실 것을 알기 때문에 계속 복음에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    
●    신자들은 그들의 신실한 복음의 증거가 복음이 전해지고 믿어지는 전도의 문이 열리고 있는 것을 알기 때문에 힘을 얻을 수 있다.       


당신은 미래의 교회 지도자로 누구에게 투자를 하고 있는가?

어떤 방법으로 그같이 하고 있는가?


현재 직면하고 있는 도전적인 상황이나 문제들을 확인해 보라.

어떻게 그들 각 문제를 다른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할 수 있는 수단으로 활용할 수 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