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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 돌보아야 하는 신자들의 책임 - 제 5과 - 2019년 6월 30일 주일 장년성경연구 - 디모데전서 5장 1 -8, 17 -21절

글쓴이 : 강호길 날짜 : 2019-06-24 (월) 12:42 조회 : 96

장년성경연구 교사용 교안

2019년 6월 30일 주일 용  


제 5과



서로 돌보아야 하는 신자들의 책임  



학습구절: 디모데전서 5장 1 -8, 17 -21절


성경진리:

신자들은 과부들과 목회자들을 포함하여, 다른 사람들을 보살펴야 한다.       


주요교리:  그리스도인들과 사회질서  

모든 믿는 자들은 고아들과 가난한 자들과 학대 받는 자들 그리고 노인들과 무력한 자들과 병자들을 도와주기를 힘써야 한다 (골로새서 3: 12 -17).


암송구절:  디모데전서 5장 25절  

이와 같이 선행도 밝히 드러나고 그렇지 아니한 것도 숨길 수 없느니라

“In the same way, good deeds are obvious, and even those that are not obvious cannot remain hidden forever.”        



시작하는 글:


우리들 대부분은 교회가 도덕적으로 완벽한 사람들이 모이는 성당(聖堂)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곳은 나와 여러분처럼, 종종 거짓되고, 교만하며, 조심성 없고, 혼란스럽고, 이기적이며, 회개와 용서가 절대적으로 필요한 사람들로 가득 차 있다.

관계의 모든 문제점들을 안고 있는 우리들은 사람들을 귀중하게 여기거나 불쌍히 여기는 마음으로 섬기거나 소통하지 못하고 있다.

감사하게도, 하나님은 어려운 형편에 있는 사람들과 교회의 지도층에 있는 목회자들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에 대한 분명한 지침을 제공해 주시고 있다.  


교회는 지역사회에 있는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을 돌보아주는데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가?



본문배경설명


디모데전서 5장 1절부터 6장 2절까지


관계는 바울의 서신들에서 중요한 주제가 되고 있다.

그는 신자들이 서로 책임감을 가지고 사랑의 마음으로 대하기를 원하였다.

목회자로서, 디모데는 모든 유형의 사람들과 접촉하며 관계를 맺었다.

바울은 디모데에게 젊은 사람들은 형제와 자매로 생각하는 반면에, 나이가 많은 남자들은 아버지를 대하듯이 그리고 나이가 많은 여자들은 어머니처럼 대해야 됨을 상기 시켰다.

과부들은 특별한 관심의 대상이 되었다.

하나님은 “고아의 아버지시며 과부의 재판장”이 되신다 (시 68: 5).

성경은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보살펴 줄 남편이 없는 이들 과부들을 돌보아 줄 것을 상기시켜 주고 있다 (출 22: 22; 사 1: 17; 약 1: 27).

교회는 도움이 필요한 어려운 교인들에게, 특별히 과부들에게 물질적인 도움을 베풀었고 그것을 교회의 중요한 사역으로 삼았다.  

초대 예루살렘교회가 최초의 집사들로 알려진 ‘일곱 일꾼’을 택하여 세운 것도 과부들에 대한 사역을 주도하기 위한 것이 목적이었다 (행 6: 1 -6).

동시에, 바울은 마땅히 가족들에게 돌아갈 과부들에 대한 책임들은 교회가 맡아 하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하였다.

과부들 중 일부는 젊어서 재혼 할 수 있었다.

나이가 많은 과부들 중에는 장성한 자녀들과 그들의 필요를 제공 할 수 있는 다른 가족들을 두고 있는 사람들이 있었다.

바울은 디모데가 이 중요한 사역을 위해 교회가 적절한 지침들을 수립하도록 인도하기를 원하였다.

디모데가 생각해야 될 또 다른 사역의 범주는 “장로들”이 되고 있다.

장로”라는 용어는 말씀을 전하고 가르치는 사람을 가리키는 것으로, 교회의 목회자가 맡고 있는 역할이 되고 있다.

그들은 “삯을 받는 것”이 마땅한 “일꾼(들)”이며 “존경”을 받을만한 영적 지도자들이다.

바울은 디모데와 교회가 이들 영적 지도자들을 책임감 있게 대해야 하는 몇 가지 방법들을 요약하였는데, 특별히 목회자에 대한 비난 혹은 “고발”이 있을 때 이를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지에 대해 조언해 주었다.

이 시점에서, 바울은 디모데를 위한 사적인 권면의 말을 끼어 넣었다.

디모데의 건강 문제로 인해, 바울은 디모데가 보통 마시는 물에다 포도주를 섞어 마시라는 의료 처방 법을 알려주었다.

6 장의 시작 구절에서, 바울은 믿는 종들과 주인들이 서로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에 대한 지침을 제시해 주었다.

이 모든 관계들 속에서, 바울은 주님께 영광을 돌리는 행동을 강조하였다.   



학습구절 연구


모든 사람을 존중하라 (디모데전서 5장 1 -2절)


5장 1 -2절


●   늙은이를 꾸짖지 말고 권하되 아버지에게 하듯 하며 젊은이에게는 형제에게 하듯 하고
●   늙은 여자에게는 어머니에게 하듯 하며 젊은 여자에게는 온전히 깨끗함으로 자매에게 하듯 하라


새로운 주제로 바꾸어서, 바울은 디모데에게 그가 여러 종류의 교인들을 대하는 문제에 대해 언급하였다.

앞장인 14장에서는, 바울은 디모데에게 그가 행하는 것과 가르치는 일에 세심한 주의를 기울임으로, 영적 지도자의 좋은 본을 보일 것을 촉구하였다 (4: 12, 16).

디모데의 생활과 지도력은 그가 전하는 복음을 나타내어야 하였다.   

5장 1절에서, 바울은 디모데에게 영적 지도자로서 교회 안에 있는 여러 다른 그룹과 계층의 사람들을 바르게 잘 대하는 문제에 대해 지도해 주었다.

젊은 목회자였던 디모데는 나이 많은 교인의 잘못을 지적하고 고쳐주려면, 어떻게 하는 것이 지혜로운 방법이 되었을까?

바울은 디모데에게 “늙은이를 꾸짖지 말고 권하되 아버지에게 하듯 하(라)”고 하였다.

여러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그를 꾸짖는 것은 현명치 못한 방법이다.

꾸짖다”로 번역된 헬라어는 신약성경 전체에서 여기에만 나타나고 있는데, 그 단어의 기본적인 뜻은 어떤 사람이나 물건을 때리는 것을 나타내고 있다.

그 용어는 부끄러움과 수치를 줄 목적으로 가혹하고도 엄하게 대하는 뜻을 담고 있다.

그 같은 방법은 잘못을 고치는 결과가 되기보다는, 오히려 감정을 상하게 하고 노엽게 하는 결과를 낳기 쉽다.

성경은 그 같은 경우를 두고 다음과 같이 말씀하고 있다 (잠 18: 19).

노엽게 한 형제와 화목하기가 견고한 성을 취하기보다 어려운즉 이러한 다툼은 산성 문빗장 같으니라.”

대신에, 바울은 디모데에게 더 나은 방법을 제시하면서, “아버지에게 하듯” 권하라고 하였다.

권하되”라는 말에서는 ‘간곡한 요청’이라는 뜻이 나타나고 있다.

젊은 목회자인 디모데는 나이가 많은 교인들에게 나이와 경험에 대한 적절한 존경심을 나타내면서도 영적 지도자로서 그들에게 바르게 행하도록 권할 수 있었다.

마찬가지로, 젊은 남자 교인들을 다룰 때도, 디모데는 “형제에게 하듯”하여야 하였다.  

그 같은 방법은 교회를 지도하는 디모데의 영적 지도력과 권위를 간과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사랑의 마음으로 관계를 두텁게 하는 일이 되고 있다.  

물론, 젊은 교인들 중에는 자기 또래의 사람이 목회자로 어떤 일을 하라 혹은 하지 말라고 지시하는 것에 대해 거부감을 나타내는 사람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바울은 디모데가 그들을 형제로 대하며 사랑의 마음으로 권할 때 더 나은 결과를 얻게 될 것을 알고 있었다,

 본래 “권하다”라는 말은 어떤 사람을 자기 옆으로 부른다는 뜻을 갖고 있다.

그 말이 여기서 상징하는 것은 교인을 가혹하게 꾸짖는 것이 아니라, 그를 옆으로 불러 그리스도의 사랑과 말씀으로 권면하는 것이 되고 있다,

2절에서 바울은 여자 성도들을 대하는 문제에 대해 지시하였다.

나이 많은 여자 신자들은 “어머니에게 하듯 하며” 젊은 여자 신자에게는 “온전히 깨끗함으로 자매에게 하듯” 하라고 하였다

온전히 깨끗함으로 (하라)”라는 말은 디모데가 교회에서 “젊은 여자” 신자들을 대할 때 행사해야 될 특별한 주의를 나타내주고 있다.

깨끗함”으로 번역된 헬라어는 ‘도덕적으로 바른 것’을 뜻할 수도 있지만, 본문의 경우처럼 특별하게 “성적 순결”을 가리키는 경우가 많았다.

큰 책임을 위임 받은 교회의 젊은 영적 지도자로서, 디모데는 특별히 성적인 유혹을 경계하여야 하였다.  

디모데에 대한 바울의 가르침은 목회자들 뿐 아니라, 모든 교인들이 받을 만한 것이 되고 있다.

교인들이 서로를 존경하며 존경 받는 가족으로 대할 때, 교회에 유익이 되고 주님께 영광을 돌리는 건전한 관계를 경험하게 될 것이다.


과부들을 돌보아주라 (디모데전서 5장 3 -8절)


5장 3 -7절  


●   참 과부인 과부를 존대하라
●   만일 어떤 과부에게 자녀나 손자들이 있거든 그들로 먼저 효를 행하여 부모에게 보답하기를 배우게 하라 이것이 하나님 앞에 받으실 만한 것이니라
●   참 과부로서 외로운 자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어 주야로 주야로 항상 간구와 기도를 하거니와
●   향락을 좋아하는 자는 살았으나 죽었느니라
●   네가 또한 이것을 명하여 그들로 책망 받을 것이 없게 하라


하나님은 힘없는 사람들, 특히 과부들과 고아들에게 깊은 관심을 갖고 계신다.

바울 당시에는, 오늘 날 정부나 사회 단체들이 하는 것처럼, 과부들이나 스스로 돌볼 수 없는 다른 사람들을 도와주는 제도나 기관들이 없었다.

당시의 경제적 구조는 남편이 일을 해서 돈을 벌어들이는 것이 가족의 유일한 수입원이었다.

남편이 죽을 경우, 과부가 된 그의 아내는 자신을 부양할 방편이 없었다.

특별히 그리스도인들은 신앙 때문에 박해를 받았을 때, 경제적인 도움이 필요한 경우가 많았다.

교회 초기부터, 신자들은 교회를 통해 도움이 필요한 형제 자매들을 헌신적으로 도왔다 (행 2: 42 ~ 45; 4: 32 -37 참조).

3절의 “참 과부인 과부를 존대하라”는 말에는 ‘의지할 데 없이 신앙생활을 잘하고 있는 과부를 도와주라’는 뜻이 담겨 있다.

교회는 과부들을 돕는 일반적인 책임을 지고 있는  것이 아니라, 남편을 잃고 생활방편이 없이 믿음생활을 잘하고 있는 과부들을 도와준다는 뜻을 갖고 있었다.

매일의 구제에서 빠지므로”라는 말을 근거로 삼을 때 (행 6: 1-6), 그 같은 도움은 주로 일용할 양식이 되었지만, 의복이나 다른 필수품도 포함했을 수 있다.

바울은 도움을 베풀 교회의 책임을 “참 과부(들)”에다 한정시켰던 것이다.

어떤 과부들은 교회의 관대함을 이용하려고 들었던 것이 분명하다.

디모데는 회중에게 과도한 부담을 주지 않으면서 “참 과부”들을 돌보는 방법에 관한 지침이 필요하였다.

바울은 교회가 따라야 될 몇 가지 지침을 제시하였다.

바울은 말하기를, “만일 어떤 과부에게 자녀나 손자들이 있거든 그들로 먼저 자기 집에서 효를 행하여 부모에게 보답하기를 배우게 하라”고 하였다.

자녀”나 “손자”에 대한 언급은 어머니나 할머니를 도와줄 책임이 기대되는 장성한 자녀들을 가리키는 것이 분명하다.

바울은 과부를 돕는 일은 그의 자녀들에게 우선적인 책임이 되고 있음을 밝혔던 것이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는 일은 약속이 담긴 첫 번째 계명이 되고 있다 (출 20: 12, 엡 6: 2).

바울은 믿는 사람들이 자신의 가족을 돌보는 것을 경건을 실천하는 방법의 하나로 보았다.

바울은 또한 자녀들에게 그같이 하게 함으로 “그들로 먼저 자기 집에서 효를 행하여 부모에게 보답하기를 배우게 하라”로 하였다.  

바울은 자녀들이 어렸을 때 부모가 자녀를 보살펴주고 키워준 사실과 이제 장성한 자녀들이 과부가 된 어머니나 할머니가 늙어서 생활 방편이 없을 때 돌보아 주는 것이 옳은 것임을 강조하였다.

그것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이다.

5절에서 바울은 “참 과부”의 특징을 좀더 자세히 설명하여 교회의 도움을 받을 만한 가치가 있음을 밝혔다.

첫째로, 참 과부는 “외로운 자”였다.

외로운 자”라는 말은 그녀에게 도움을 줄 가족이나 가까운 친척이 없는 것을 표현하는 또 다른 방법이었다.  

둘째로, 그녀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었다).”

그녀는 자신의 상황에 대해 절망하지 않았고, 하나님을 원망하지도 않았으며, 속이거나 훔치는 등 부적절한 방법으로 상황을 해결하려고 들지도 않았다.

셋째로, 그녀는 “주야로 항상 간구와 기도를” 하면서 적극적인 기도생활을 하였다.

누가복음 18장 1절부터 8절까지에서, 제자들에게 “항상 기도하고 낙심하지 말아야 할 것을 비유로” 가르치실 때, 예수님이 그 비유의 주인공으로 한 과부를 등장시키신 것에서 우리는 당시 과부들의 적극적이고도 끈질긴 기도생활을 보게 된다.

바울은 하나님을 의존하고 진실되게 살려는 믿음의 과부와 “향락을 좋아하는 (과부)”를 대조시켰다.

향락을 좋아하는 자”는 하나님보다는 개인적인 쾌락을 위해 살았다.

“향락을 좋아(한다)”는 말은 영적인 희생이 아니라, 관능적인 만족을 추구하는 면을 포함하고 있다.

사도 바울은 그 같은 사람을 “살았으나 죽었느니라”고 하였다.

그 말은 ‘영적으로 죽은 사람’을 가리키고 있다.

그 말에 함축되어 있는 의미는 부도덕한 욕망을 추구하기 위해 하나님을 섬기는 일을 버린 과부는 처음부터 신자가 아니었을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그 같은 경우에, 그 과부는 교회로부터 도움을 받을 자격이 없었다.

7절에서 바울은 디모데에게 “네가 또한 이것을 명하여 그들로 책망을 받을 것이 없게 하라”고 했는데, “그들”이 누구를 가리키고 있는지가 분명치 않다.

어떤 성경해석자들은 그 명령이 교회의 과부들에게 직접 한 것으로 보고 있다.

그 같은 경우, 디모데는 향락을 좋아하는 과부들에게 명하여, 그 같은 생활을 버리고 믿음 생활을 잘 함으로 교회나 지역사회로부터 책망을 받지 않게 하라는 뜻이 될 수 있다.  

다른 주석가들은 바울이 디모데가 교회 전체에게 명하기를 원했던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

그럴 경우, 디모데가 교인들에게 명할 것은 바울이 5장 4절에서 자녀들과 손자들에게 명한 것을 가리키고 있다.

그들은 먼저 “자기 집에서 효를 행하여 부모에게 보답하기를” 힘써야 하였다.

두 가지 견해 모두 논리적으로 본문에 부합되고 있다.

어느 견해가 되었건, 디모데의 가르침이 의도하고 있는 결과는 사람들로부터 “책망을 받을 것이 없게 (되는 것)”이다.


5장 8절:


●   누구든지 자기 친족 특히 자기 가족을 돌보지 아니하면 믿음을 배반한 자요 불신자보다 더 악한 자니라


5장 8절애서, 바울은 4절의 교훈으로 되돌아가 “누구든지 자기 친족 특히 자기 가족을 돌보지 아니하면 배반한 자요 불신자보다 더 악한 자니라”고 하였다.

어떤 사람들은 이 구절을 남편이 가족을 돌보아야 한다는 생각을, 특별히 재정적인 면에서, 뒷받침하기 위한 목적으로 사용해 오고 있다.

그 원칙은 사실이긴 하지만, 문맥은 좀더 구체적으로 과부들을 가리키고 있다.

교회가 과부의 필요를 채워줄 책임을 맡기 전에, 그녀의 가족이 그 의무를 축복의 기회로 받아들여야 한다.

특히 자기 가족”이라는 말은 그 같은 책임을 더 절실하게 깨닫게 해 준다.

돌보다”로 번역된 헬라어의 문자적인 뜻은 “미리 생각하다” 혹은 “미리 계획하다”가 되고 있다.

바울은 그 단어를 사용하여 가족이 나이가 많이 들어서 도움이 필요한 부모를 돕기 위해 어떤 사전 계획을 세우거나 미리 생각하는 것을 묘사하였다.

바울은 그 같은 책임을 하지 않는 가족이나 친척을 “불신자보다 더 악한 자”와 “믿음을 배반한 자”에다 비겼다.

바울 시대의 이교도 사회조차도 자녀들이 부모를 공경하며 귀중히 여기는 가족 관계를 소중하게 여겼다.

따라서, 신자들이 생활이 어려운 나이 많은 가족을 돌보지 않는 것은 이교도 사회의 기준에도 미치지 못하는 부끄러운 일이 되었다.  

“믿음을 배반한 자”라는 강한 표현은 사람들이 구원을 잃을 수 있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도움이 필요한 자신의 다른 가족을 믿음으로 섬기지 않는 것은 그들이 고백한 믿음을 부인하는 것을 반영하는 일이 되고 있다.  

도움이 필요한 과부들이나 다른 사람들에게 사랑으로 도움을 베푸는 것은 우리의 참된 믿음을 드러내는 한 가지 방법이 되고 있다.  

야고보는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정결하고 더러움이 없는 경건은 곧 고와와 과부를 그 환난 중에서 돌보고 또 자기를 지켜 세속에 물들지 아니하는 그 것이니라”고 하였다 (약 1: 27).


목회자를 돌보아주라 ( 디모데전서 5장 17 -21절) 


5장 17 -18절


●   잘 다스리는 장로들은 배나 존경할 자로 알되 말씀과 가르침에 수고하는 이들에게는 더욱 그리할 것이니라
●   성경에 일렀으되 곡식을 밟아 떠는 소의 입에 망을 씌우지 말라 하였고 또 일꾼이 삯을 받는 것은 마땅하다 하였느니라  


개 교회의 목회자들은 재정적인 지원과 존경을 받을 자격이 있다.

장로들”이란 말은 목회자를 가리키는 정식 명칭이었다.

성경은 교회의 두 직분을 일관되게 지칭하고 있는데, 그들은 목회자와 집사이다.

성경은 또한 목사의 직분과 역할을 가리키는 말로 세 가지 다른 용어를 사용하고 있는데, 그들은 감독자와 장로 그리고 목자가 되고 있다.

이 경우에, 바울은 교회가 “잘 다스리는 장로들,” 즉 목회자들을 어떻게 대우해 주어야 하는지에 대해 언급하였다.

잘 다스리는 장로들”이라는 말에서는 목회자들이 제공하는 지도력의 질적인 면이 강조되고 있다.

목회자들은 교회를 영적으로 지도하며 인도하는 영적 지도자들이 되고 있다.

어떤 목회자들은, “배나 존경할 자”로 인정을 받을 만큼, 훌륭한 지도력을 발휘하였다.

그 말은 금전적인 사례를 받는 일과 존경을 받는 것을 동일하게 가리킬 수 있다.

목사는 그가 맡고 있는 역할 때문에 존경을 받을만하다.

교회는 특히 사역을 뛰어나게 잘 하는 목사를 인정해 주어야 한다.

바울은 “말씀과 가르침에 수고하는 이들에게 더욱 그리할 것이니라”는 말로, 목회자의 전파하는 사역과 가르치는 역할을 강조하였다.

가르치는 은사는 목회자의 주요한 자격의 하나가 되고 있다 (딤전 3: 2 참조).

바울의 요점은 설교와 가르침의 중요한 역할을 부지런히 잘 한 목회자들은 존경과 인정을 받을만하다는 것이다.

그들 장로들이 금전적인 사례를 받는 것이 마땅한 것은 그들이 맡고 있는 사역의 중요성뿐 아니라, 그들이 전 시간을 바쳐 일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배나 존경할 자”라는 말이 금전적인 사례를 가리킨다는 주장은 바울이 성경말씀을 인용한 일에서 뒷받침되고 있다.  

그는 신명기에 있는 두 구절을 인용하였다.

첫 번째 인용은 신명기 25장 4절의 것으로, “곡식을 떠는 소의 입에 망을 씌우지 말라”는 말씀이.

한 폭의 그림 같은 그 표현은 타작마당에서 곡식을 밟아 떠는 소의 모습을 연상케 한다.

주인은 그같이 힘들에게 일하는 소에게 그가 밟아 떨고 있는 곡식을 먹도록 허용하였다.

같은 방법으로, 교인들의 필요한 영의 양식을 공급하기 위하여 일하고 있는 목회자가 교인들로부터 자신의 필요한 육의 양식을 제공받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바울은 고린도 교회에 보내는 그의 서신에서도 같은 말씀을 인용하였다.

그는 개인적으로는 물질적으로 교회의 지원을 받을 수 있는 권리를 행사하지 않았지만, 그는 교회가 목회자의 물질적인 필요를 제공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주장하였다 (고전 9: 9-14 참조).

두 번째의 성서적 언급은 일꾼이 자기가 일한 삯을 받는 것에 대한 언급이 되고 있다.

바울이 “또 일꾼이 그 삯을 받는 것은 마땅하다”고 한 말은 또 다른 모세의 율법을 의역한 것이다 (신 24: 14 -15).

예수님도 누가복음 10장 7절에서 똑 같은 말씀을 하셨다.

충실하게 열심히 일하는 교회 지도자들은 교인들로부터 진정한 존경을 받을 뿐 아니라, 재정적인 지원을 받을 자격이 있다.


5장 19절


●   장로에 대한 고발은 두세 증인이 없으면 받지 말 것이요


목회자가 회중의 존경을 받는 위치에 서게 되는 것은 그만큼 높은 수준의 책임감이 따르는 일이다.

동시에, 목회자는 명성에 손상이 가거나 지도력에 영향이 미치지 않도록 보호를 받을 필요가 있다.  

그러므로 교회는 목회자가 단순한 의견의 차이나 어떤 오해나 좋지 않은 감정으로 인해 비난을 받는 일이 생기지 않도록 신중을 기할 필요가 있다.   

바울은 디모데에게 “장로에 대한 고발은 두세 증인이 없으면 받지 말(라)”고 하였다.


모세의 율법은 어떤 잘못이나 범죄한 일에 대해서는 한 사람의 증언만으로 결정하지 말고 두 세 사람의 증언을 요구하였다 (신 19: 15).

교회 내에서의 목회자의 중요한 역할과 위치를 감안할 때, 목회자가 어떤 비난을 받을 경우 최소한 그 정도의 보호를 받아야 마땅하다는 것이다.  

바울은 사람들이 순수하지 못한 의도로 목회자를 험담이나 거짓 고발로 공격 할 수 있다는 사실을 직접 알고 있었다.

바울은 교회에서 모든 신자들이, 특별히 지도적 위치에 있는 사람들이, 공정한 판단과 취급을 받게 되기를 바랬다.


5장 20절:


●   범죄한 자들을 모든 사람 앞에서 꾸짖어 나머지 사람들로 두려워하게 하라


다른 한편, 목회자가 그릇 행한 것이나 범죄한 일이 드러날 경우, 그는 그 일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하였다.

바울은 디모데에게 “범죄한 자들을 모든 사람들 앞에서 꾸짖어 나머지 사람들로 두려워하게 하라”고 명하였다.

여기서 “모든 사람들 앞에서”라는 말은 ‘모든 장로들’을 가리키는 말로 볼 수도 있고 ‘모든 회중’을 지칭하는 것일 수도 있다.

오늘날 교회들은 목회자들이 죄를 범하면 이를 징계하려고 하기보다는 교회를 떠나거나 어떤 다른 조건으로 덮어두는 방법을 선호하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바울은 교회에게 범죄한 목회자를 징계하여 나머지 사람들도 두려워하게 하고 교훈을 삼게 하라고 하였다.

바울은 징계로 인하여 교회의 명성이 손상될 수도 있으나, 징계가 필요한데 하지 않을 경우 그것은 장기적으로 교회의 영적 생활에 악영향을 미치게 되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5장 21절:


●   하나님과 그리스도 예수와 택하심을 받은 천사들 앞에서 엄히 명하노니 너는 편견이 없이 이것들을 지켜 아무 일도 불공평하게 하지 말며


바울은 “엄히 명하노니”라는 엄중한 말로 디모데에게 훈계하는 말을 끝맺었다.

그는 특별히 “하나님과 그리스도 예수와 택하심을 받은 천사들 앞에서” 그같이 명한다고 말함으로, 자기가 하고 있는 말의 중요성을 강조하였다.

그것은 또한 매우 민감한 사항이 되고 있음을 암시해 주고 있다.

바울은 디모데에게 “너는 편견이 없이 이것들을 지켜 아무 일도 불공평하게 하지 말(라)”고 하였다.

먼저, 디모데는 “편견 없이 이것들을 지켜(야)” 했는데, “이것들”이란 말은 장로들과 관련된 지침, 특별히 잘못에 대해 장로들에게 책임을 묻는 문제와 관계되고 있다.

디모데가 에베소에 있는 교회들 중에서 사역할 때, 그는 바울이 지시한 일들을 “편견 없이” 그리고 “공평하게” 해야 되었다.



말씀을 나의 상황에 적용하기:


●   신자들은 서로를 존경하며 존경 받는 가족으로 대해야 한다.       
●   신자들은 혼자서 살아가고 있는 신실한 신자들의 필요를 돌보는 일을 해야 한다.   
●   신자들은 그들의 목회자를 재정적으로 지원할 책임이 있다.

가족과 교회의 일원으로서,

다른 사람들에 대해 어떤 책임들을 지고 있는지를 생각해 보라.

가족이나 교회에서 스스로 돌볼 능력이 없는 사람들을 좀더 잘 보살펴 주기 위해 당신은 어떤 일들을 할 수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