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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리의 길에서 벗어나지 말라 - 제 4과 - 2019년 6월 23일 주일 장년성경연구 - 디모데전서 4장 1 -13절

글쓴이 : 강호길 날짜 : 2019-06-18 (화) 09:58 조회 : 37

장년성경연구 교사용 교안

2019년 6월 23일 주일 용  

 

제 4과

 

 

진리의 길에서 벗어나지 말라  

 

 

학습구절: 디모데전서 4장 1 -13절

 

성경진리:

신자들은 진리를 알고 믿음이 자라나기 위해 하나님의 말씀을 양식으로 삼아야 한다.       

 

주요교리:  성경

성경은 하나님께서 인간을 심판하시는 원리를 계시해 주기 때문에, 그것은, 현재는 물론 세상 끝날까지, 기독교 연합의 진정한 중심과 모든 인간의 행위와 신조 및 종교적 견해를 가늠하는 최상의 표준으로 남게 될 것이다 (시 19: 7-10).

 

암송구절:  디모데전서 4장 13절  

 

내가 이를 때까지 읽는 것과 권하는 것과 가르치는 것에 전념하라

“Until I come, devote yourself to the public reading of Scripture, to preaching and to teaching.”       

 

 

시작하는 글:

 

우리가 사는 세상은 사기꾼들과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진리를 왜곡시키는 사람들로 가득 차 있다.   

그래서 우리는 사람들이 주장하는 것들을 신중히 검토해 볼 필요가 있다.

특별히 그것이 금전문제와 관계된 것이면 더욱 그렇다.

같은 방식으로, 마귀는 복음의 메시지를 부인하거나 비난하는 신념과 행동을 계속 팔고 있다.

그리스도를 믿고 따르는 신자들이 그릇된 믿음과 거짓된 교리(敎理)를 경계하는 것은 매우 중요(重要)하고도 긴요(緊要)한 일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준비되어야 하며 참된 믿음의 길을 계속 걸어가야 한다.

 

당신은 사기꾼이나 거짓 광고의 피해자가 되어본 적이 있는가?

"놓칠 수 없다”고 주장하는 다른 기회들에 대해 당신은 어떻게 반응하였는가?

 

 

본문배경설명

 

디모데전서 3장 14절부터 4장 16절까지

 

바울은 마케도니야를 방문하고 있는 동안에 이 편지를 썼다.

바울은 디모데를 에베소에 남겨 두어(1: 3) 그로 하여금 교회와 교인들이 교리와 신앙 생활에 믿음의 뿌리를 깊이 내릴 수 있도록 도와주게 하려고 하였다.

바울은 디모데와 다시 합류하기를 희망하였지만, 그 동안에 에베소교회에서 해결되어야 할 문제들과 해야 될 일들이 많은 것을 알고 있었다.

그는 교회 신자들이 한 교인으로뿐 아니라, 전체 교회로서 어떻게 행해야 되는지를 알기를 원하였다.

영적 성장은 교인들의 영적 생활을 위해서뿐만 아니라, “살아 계신 하나님의 교회요 진리의 기둥과 터”인 교회의 평판과 명성을 위해서도 중요하다 (딤전 3: 15).

기독교 신앙과 실천의 기초는 “경건의 비밀”이 되고 있는데 (3: 16), 바울은 그것을 정의하기를, 다름 아닌 예수님 자신이라고 하였다.

바울은 ‘신비’라는 개념을 여러 다른 경우에도 여러 가지 다른 방법으로 사용하였다.

앞에서 바울은 집사의 자질의 하나로 “믿음의 비밀”을 가진 자라야 한다고 하였다 (3: 9).

골로새 교회에 보내는 편지에서, 바울은 복음과 이방인들에 대한 숨겨졌던 “비밀”에 관해 기록하였다 (골 1: 27).

여기서, 바울은 예수님에 대한 초기의 신앙 고백이었던 것으로 보이는 것을 말하였다 (딤전 3: 16).  

참된 경건은 그리스도의 복음을 믿고, 그 복음으로 살아가며, 복음을 전파하는 것을 포함하고 있다.

교회가 악마의 영향을 받고 있는 세상의 적대에 직면할 때 바르게 믿고 바르게 행하는 것은 필수적인 요소가 되고 있다.

바울은 후일에 나타나게 될 거짓 교사들뿐 아니라, 이미 신자들을 미혹하고 있는 거짓 교사들에 대해서도 경고하였다.

그들 거짓 교사들은 자기 스스로 견딜 수 없는 것을 다른 사람들에게 위선적으로 요구하면서, 유대교 율법의 옹호자라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실제로 그들은 율법과 은혜를 똑같이 파괴시키는 자들이었다.

바울은 디모데를 “믿음 안에서 참 아들”로 보았을 뿐 아니라 (1: 2), 사역의 동역자이자 제자로도 보았다.

바울은 그의 제자인 디모데가 그리스도 예수의 좋은 일꾼으로 사역을 성공적으로 잘하기를 원했다.

억측과 신화를 따르는 대신에, 디모데의 가르침은 사람들이 그들의 소망을 그리스도 안에만 튼튼하게 둘 수 있도록 경건에 초점을 맞추어야 하였다,

디모데는 말씀을 전하고 가르치는 은사를 받았지만, 바울은 그를 가르치는 일을 위해서만 에베소에 남겨 두지 않았다.

바울은 디모데가 그리스도를 위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본이 되기를 원하였다.

즉 “말과 행실과 사랑과 믿음과 정절에 있어서 믿는 자에게 본이 되(기를)” 원하였다 (4: 12).

디모데는 자신의 삶과 자신의 가르치는 일에 세심한 주의를 기울어야 하였다.

그 두 가지를 인내심을 가지고 계속하여 잘 하면, 듣는 사람들에게뿐 아니라, 그 자신에게도 유익 할 것이다.

 

 

학습구절 연구

 

조심하라 (디모데전서 4장 1-5절)

 

4장 1 -2절


●   그러나 성령이 밝히 말씀하시기를 후일에 어떤 사람들이 믿음에서 떠나 미혹하는 영과 귀신의 가르침을 따르리라 하셨으니
●   자기 양심에 화인을 맞아서 외식함으로 거짓말하는 자들이니라

 

바울은 이 편지의 앞에서 언급했던 주제인 “거짓 교사들과 그들의 그릇된 가르침”에 대해 다시 관심을 돌렸다 (1: 3 -7 참조).

바울은 먼저 “성령이 밝히 말씀하시기를”이라고 말함으로, 그가 거짓 교사들과 그들의 거짓 가르침에 대해 말하려는 것은 성령님으로 받은 것임을 밝혔다.

바울은 성령님께서 그 경고의 말씀을 어떤 방법으로, 즉 성경말씀을 통해서나 혹은 다른 예언적 계시로, 전해주셨는지를 밝히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메시지의 내용은 분명하였다.

"후일에”라는 문구는 신약성경에서 여기에서만 나타나고 있는데, 유사한 문구들이 성경의 다른 곳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예를 들면, 바울은 딤후 3장 1절에서 “말세에”라는 말을 사용하였다.

베드로도 “말세에”라는 말을 사용하였고 (벧전 1: 20), 히브리서 기자는 “이 모든 날 마지막에는”라는 문구를 사용하였다 (히 1: 2).

그 문구는 예수님의 승천부터 재림까지의 기간을 가리키고 있으며, 그것은 또한 ‘교회시대’로 불려지기도 한다. 

사도 요한은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마지막 때는 “적 그리스도”와 싸우는 영적 전쟁의 시기가 되고 있는 것으로 묘사하였다 (요일 2: 18).

성령님은 바울에게 이 마지막 때에는 “어떤 사람들이 믿음에서 떠나 미혹하는 영과 귀신의 가르침을 따르리라”는 사실을 밝혀주셨다.  

믿음에서 떠나”라는 말에서, “믿음”으로 번역된 용어는 믿는 자의 구원과 관계된 믿음 혹은 하나님과의 관계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것은 복음의 기초가 되는 교리적인 진리, 즉 복음의 바른 가르침을 가리키고 있다.

다음으로, “떠나(다)”로 번역된 헬라어는 어떤 사람이나 어떤 것으로부터 ‘자신을 멀리하다’ 혹은 ‘분리시키다’는 뜻이 되고 있다.

에베소에 있는 거짓 교사들은 복음에 대한 올바른 가르침에서 떠나 다른 교리에 빠졌으며, 교회 내에서의 그들의 영향력은 다른 신자들로 하여금 믿음에서 점점 멀어지게 하였다.

거짓 교사들과 그들을 추종하는 자들은, “청결한 마음과 선한 양심과 거짓 없는 믿음에서 나오는 사랑”(1: 5)에 초점을 맞추기 보다는 “미혹하는 영과 귀신의 가르침을 따르(고)” 있었다.

미혹하는 영”은 바울이 에베소서 2장 2절에서 묘사한 “세상풍조를 따르고 공중의 권세를 잡은 자”를 가리키는 말이 될 수 있다.

그렇지만, 바울은 거짓 교사들을 스스로 “속이기도 하고 속기도 하(는 자들)”로 묘사하였다 (딤후 3: 13).

귀신의 가르침”이라는 문구는 이들 거짓 교사들의 본질을 분명하게 밝혀주는 말씀이다.  

교회가 싸우고 있는 것은 “혈과 육을 상대하는 것”이 아니라, “어둠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을 상대”하고 있는 것이다 (엡 6: 12).

어떤 신자들은 거짓 가르침을 해롭지 않은 것으로 보려는 유혹을 받을 수도 있다.

바울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는 복음의 바른 가르침을 왜곡하거나 반대되는 어떤 교리도 “귀신의 가르침을 따르는 것”으로 규정하였다.  

“귀신의 가르침”은 “자기 양심이 화인을 맞아서 외식함으로 거짓말하는 자들”을 통해 행해지고 있다.  

거짓 교사들이 복음에 대해 주장하는 것들은 거짓말들이었다.

거짓 교사들은 자신들의 거짓 교훈들을 숨기거나 위장하기 위하여 위선의 탈을 쓴 위선자들이었다.

위선자들이란 속임수로 위장하여 겉과 속이 다른 사람들이다.

예수님도 제자들에게 “거짓 선지자들을 삼가라”고 경고하시면서, 그들은 “양의 옷을 입고 너희에게 나아오나 속에는 노략질하는 이리라”는 말씀으로 그들의 정체를 밝혀주셨다 (마 7: 15).

양심이 화인을 맞아서”라는 말은 두 가지 뜻으로 해석될 수 있다.

하나는, 거짓 교사들의 양심이 마치 뜨겁게 달군 쇠로 지져진 것 같이 무디어져서 옳고 그른 것을 분별하지 못하게 되었다는 뜻이 되고 있다.

다른 하나는, 화인을 맞았다는 말은 마귀의 소유물로 낙인이 찍혔다는 뜻이 될 수 있다.

어떤 경우가 되었건, 사도 바울은 그들 거짓 교사들을 “자기 양심이 화인을 맞아서 외식함으로 거짓말하는 자들”로 불렀다,

 

4장 3 -5절


●   혼인을 금하고 어떤 음식물은 먹지 말라고 할 터이나 음식물은 하나님이 지으신 바니 믿는 자들과 진리를 아는 자들이 감사함으로 받을 것이니라
●   하나님께서 지으신 모든 것이 선하매 감사함으로 받으면 버릴 것이 없나니
●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로 거룩하여 짐이라


1장 3절과 4절에서, 바울은 디모데를 예베소 교회에 남겨두는 목적을 밝히면서, 거짓 교사들을 명하여 “다른 교훈을 가르치지 말게” 하며 “신화와 끝없는 족보에 몰두하지 말게” 하라고 명하였다.  

여기서, 바울은 거짓 교사들의 그릇된 가르침의 두 가지를 구체적인 예로 들고 있다. 

그것들은 “혼인을 금하고 어떤 음식물은 먹지 말라”고 한 일이 되고 있다.

그 같은 금욕주의적인 관행의 이면에 담겨있는 뜻과 목적은 인간적인 노력이나 행위로 더 높은 도덕적 혹은 영적인 상태에 이르려는 인간적인 노력과 극단적인 자기 부인 혹은 극기가 되고 있다.

바울은 골로새 지역에 있는 교회들에서 행해지고 있던 그 같은 관행들을 정죄하였다 (골 2: 16-23).

바울은 고린도전서 7장 32 ~35 절에서 복음 사역을 위해 독신 생활을 권장하며 그 이점들을 밝히긴 했을지라도, 결코 결혼생활을 금하지는 않았다.

실제로, 그는 고린도에 있는 그리스도인 부부들에게 “다만 기도할 틈을 얻기 위하여 합의상 얼마 동안은” 성적인 절제(節制)를 할 수 있지만, 그 기간이 끝나면 서로 성적 의무를 다하라고 권하였다 (7: 3 -5).

디모데전서 3장 2절과 12절에서 교회 지도자들은 "한 아내의 남편"이 되어야 한다고 한 바울의 가르침은 결혼에 대한 묵시적 승인이 되고 있다.

후에 바울은 젊은 과부들에게 “시집가서 아이를 낳고 집을 다스리(라)”고 하였다 (딤전 5: 14).

바울은 결혼 생활을 부부가 서로 즐기고 잘 지켜야 될 하나님이 주신 관계로 보았다.

거짓 교사들은 또한 하나님께서 지으신 음식물들 중에 “어떤 음식물은 먹지 말라”고 하였다.

로마에 있는 교회에 편지를 써 보냈을 때, 바울은 어떤 음식은 먹지 않는 문제를 제기한 일이 있다.

바울의 쟁점은 한 음식이 본래 다른 음식보다 우월하다는 것이 아니라 (롬 14: 2 -4 참조), 오히려 믿음이 약한 신자를 존중해 주려는 것이 되고 있다 (14: 13 ~ 21).

음식물을 창조하신 하나님의 목적은 인간의 필요를 채워주는 것이 되고 있다.

그래서 바울은 말하기를, “믿는 자들과 진리를 아는 자들(은)” 모든 음식물을 하나님께서 주신 것으로 “감사함으로 받을 것”이니라고 하였다.

바울은 자신의 주장을 정당화하는 방법으로, “하나님께서 지으신 모든 것이 선하매”라는 말로 그것을 창세기에 나오는 창조기록에다 연결시켰다.  

창세기 1장 31절은 하나님이 우주 만물을 지으신 후에 그 모든 것을 보시고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고 기록하고 있다.

예수님도 마가복음 7장 18 -19절에서 음식물에 관한 비슷한 주장을 제자들에게 하셨다.

복음은 똑같이 유대인들과 이방인들을 위한 것이라는 사실을 보여주기 위한 방법으로, 하나님은 사도 행전 10: 9-16에서 시몬 베드로에게 그 결론을 다시 확인시켜 주셨다.

그러므로, 바울은 “하나님께서 지으신 모든 것이 선하매 감사함으로 받으면 버릴 것이 없나니”라는 말로, 하나님의 선물들은(음식물을 포함하여) 버릴 것이 아니라, 감사함으로 받아야 한다는 자신의 주장을 재확인하였던 것이다.

어떤 성경학자들은 음식을 들기 전에 감사기도를 드리는 관습의 근거로 이 구절을 지적하고 있다.

예수님도 음식을 들 때 자주 시간을 내어 감사의 기도를 드렸다 (막 6: 41; 8: 6).

그렇다고 우리는 바울의 주장을 잘못 해석하거나 악용(惡用)하여, 하나님께서 만드신 것이라고 주장하며 폭식을 하거나 유해 물이나 독물을 취하는 것을 정당화시키려 들지 말아야 한다.

바울의 주장은 악한 의도와 이유로 음식을 먹지 말라고 그릇되게 가르친 거짓 교사들에 대한 것이었다.

그런 다음, 바울은 “하나님께서 지으신 모든 것”은 (4: 4)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로 거룩하여 짐이라”고 하였다 

여기서 “거룩하여 지다”라로 번역 된 단어는 "구별되다”는 뜻이 되고 있다.

우리가 음식에 대해 감사의 기도를 드릴 때, 그것은 하나님께서 그 음식물을 주신 것을 인정하며 특별하게 구별된 것으로 받는 일이 되고 있다.

성경학자들은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말이 구체적으로 무엇을 뜻하느냐에 대해 일반적으로 세 가지로 해석하고 있다.

하나는 그 말은 하나님께서 그의 지으신 모든 것을 보시고 “심히 좋았더라”고 하신 말씀을 가리키고 있는 것으로 보는 것이다 (창 1: 31).

다른 하나는 일반적으로 구약의 말씀은 “하나님의 말씀”을 가리킨 것으로 보는 것이다.

어떤 성경학자들은 그 같은 예로 신자들이 음식을 들 때 하나님께 감사기도와 함께 시편의 말씀 등을 읽었던 것을 들고 있다.  

세 번째의 해석은 바울이 “복음”을 가리키고 있는 것으로 보는 것인데, 이는 복음이 믿는 자들을 율법에 있는 음식규례로부터 자유를 얻게 해 주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복음을 알고 믿는 자들은 “하나님께서 깨끗하게 하신 것”을 속되다 하지 말아야 한다 (행 10: 15).

 

좋은 사역자가 되도록 자신을 연단하라 (디모데전서 4장 6 -10절)

 

4장 6절


●   네가 이것으로 형제를 깨우치면 그리스도 예수의 좋은 일꾼이 되어 믿음의 말씀과 네가 따르는 좋은 교훈으로 양육을 받으라

 

교회를 위협하는 거짓 가르침에 대한 바울의 해결책은 디모데가 “이것으로” 형제 자매들, 즉 교회를 “깨우치(는 것)”이었다.

여기서 “이것(들)”이란 말은 바울이 4장 1절부터 5절에서 말한 것이거나 좀더 넓게는 그의 서신에서 그가 말한 전체적인 내용을 가리킬 수 있다.

후자의 것이 더 가능해 보이는데, 바울의 의도는 결혼문제와 음식문제에 대한 가르침을 강조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디모데는 맡겨진 사역을 효과적으로 잘 하기 위해서는 “그리스도 예수의 좋은 일꾼”이 되어야 하였다.

여기서 “일꾼”으로 번역된 용어는 딤전 3장 8 -13절에서는 “집사”로 번역되고 있다.

바울은 이 구절에서 그 용어를 사용함으로 디모데의 역할이 “섬기는 지도자”가 됨을 강조하였다.

바울은 디모데에게 “믿음의 말씀과 네가 따르는 좋은 교훈으로 양육을 받으라”고 권면하였다.

사역자가 교인들을 가르치고 깨우쳐 주려면, 믿음의 말씀과 바른 교리로 양육을 받아야 한다.

 

4장 7 -10절:


●   망령되고 허탄한 신화를 버리고 경건에 이르도록 네 자신을 연단하라
●   육체의 연단은 약간의 유익이 있으나 경건은 범사에 유익하니 금생과 내생에 약속이 있느니라
●   미쁘다 이 말이여 모든 사람들이 받을 만하도다
●   이를 위하여 우리가 수고하고 힘쓰는 것은 우리 소망을 살아 계신 하나님께 둠이니 곧 모든 사람 특히 믿는 자들의 구주시라  

 

바울은 신자들과 자신을 양육하기 위하여 디모데가 맡아 해야 할 긍정적인 역할에 대해 말한 후에, 디모데에게 거짓 교사들이 선전하고 있는 그릇된 교리들을 버리게 하라고 경고하였다.

1장 4절에서처럼, 바울은 거짓 교사들의 그릇된 가르침의 한 가지 예로 “망령되고 허탄한 신화”를 들었다.

그 같은 신화는 구약성경에 등장하는 특정한 영웅들을 중심으로 꾸며진 환상적인 이야기들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들은 성경의 인물들이었기 때문에, 그들 이야기는 신자들에게 어떤 호소력이 있었다.

그렇지만, 내용물은 어리석고도 망령된 것들로 가득 차 있었다.

'허탄한”으로 번역된 헬라어는 고대 철학적 논쟁에서 진지하게 고려할 가치가 없는 주장을 묘사하기 위해 종종 사용되었다.

바울은 디모데에게 거짓 교사들처럼 “망령되고 허탄한 신화”에 집착하지 말고, “경건에 이르도록 네 자신을 연단하라”고 지시하였다.

바울 당시에 “연단하다”로 번역된 헬라어로 단어는 운동경기에 참가하기 위한 준비로, 선수가 철저하게 연습하며 관리하는 것을 묘사하는 용도로 사용되었다.

그 용어에서 체육관을 뜻하는 영어의 ‘gymnasium’라는 단어가 파생되었다.

바울은 디모데에게, 운동선수가 하는 것처럼, 경건한 믿음과 행동을 갖게 하는 영적인 훈련에 집중하라고 격려하였던 것이다.

바울은 육체의 연단이 가치 없는 것이라고 말하지 않았다.

그가 육체의 연단에 대해 언급한 것은 영적 훈련의 더 큰 영원한 가치를 강조하며 비교하는데 목적이 있었다.

그래서 바울은 말하기를, “육체의 연단은 약간의 유익이 있으나 경건은 범사에 유익하니 금생과 내생에 약속이 있느니라”고 하였다.

바울의 요점은 분명하다.

경건한 삶을 위해 영적인 훈련을 하는 것은 신자들에게 가장 중요한 일이 되고 있다는 것이다.

바울은 육체의 단련을 능가하는 경건의 월등한 가치는 영속성(永續性)에 있음을 지적하였다.

경건은 신자들이 “금생”(今生)동안에 그리스도 안에서 풍성하고도 의미 있는 삶을 살게 해주며 하나님을 더 잘 섬길 수 있는 자격(資格)과 능력(能力)을 갖추도록 준비(準備)시켜 줄 뿐 아니라, “내생”(來生)에 누리게 될 말할 수 없는 하늘 나라의 축복을 약속해 준다.

바울은 또한, 1 장 15 절과 3 장 1 절에서처럼, “미쁘다 이 말이여”라는 말로 그가 하려고 하는 말 혹은 그가 한 말의 효력과 타당성을 강조하였다.

여기서 “이 말”은 그가 8절에서 한 말을 가리키고 있다.

그 말은 모든 사람이 전적으로 받을 만하고 믿어야 할 만큼 귀하고 중요하다는 것이다.

바울은 “우리”라는 대명사를 사용하여 자신과 디모데를 포함하여 모든 신자들이 복음 사역에 “수고하고 힘쓰(고)” 있음을 밝힌 후에, 그같이 하는 것은 “소망을 살아계신 하나님께 (두고 있기)” 때문이라고 하였다.

수고하다”와 “힘쓰다”로 번역된 두 단어는 바울의 서신에 자주 사용되고 있다.

수고하다’로 번역된 말의 문자 그대로의 뜻은 어떤 일을 하는데 필요한 에너지 혹은 활력을 가리키고 있다.

반면에, “힘쓰다”로 번역된 단어는 운동 경기에서 혹은 일반적으로 싸움에서 이기려고 힘을 다 쓰는 행동을 묘사 할 수 있다.

바울은 이 용어를 두 번에 걸쳐 사용하여, 믿음의 삶을 선한 싸움을 싸우고 있는 것으로 묘사하였다 (딤전 6: 12; 딤후 4: 7).

바울은 그리스도인들이 “수고하고 힘쓰는 것”은 구원을 얻기 위한 것이라는 뜻으로 말한 것이 아니다.

바울은 우리가 구원을 받는 방법에 대해서는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고 분명하고도 확실하게 밝혀주었다 (엡 2: 8 -9).

그러나 신자로 우리의 믿음이 자라나며 주님의 교회로서 세상에서 그를 효과적으로 섬기려고 할 때, 우리가 경건을 위해 “수고하고 힘쓰는 것”은 자신과 다른 사람들에게 영원한 유익을 얻게 하는 방법이 되고 있다.  

바울은 “우리 소망을 살아계신 하나님께 둠이니”라는 말로, 그리스도인들이 주님의 일에 열심을 내는 또 다른 이유를 밝혔다.

살아 계신 하나님”이라는 말은 생명력도 없고 신이 아닌 우상을 대조(對照)시키는 것이 목적이 되고 있다.

바울이 하나님을 “모든 사람의” 구세주로 묘사한 말에서는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의 뜻이 반영되고 있다.

 

훌륭한 사역자의 본이 되라 ( 디모데전서 4장 11 -13절)

 

4장 11절


●   너는 이것들을 명하고 가르치라

 

바울은 “너는 이것들을 명하고 가르치라”는 말로, 디모데에게 그가 에베소에 남아서 해야 될 일이 무엇인지를 분명하게 밝혀주었다.

그는 바울에게서 배운 바른 복음의 진리를 분명하고도 권위 있게 “명하고 가르(쳐야)” 하였다.

이것들”이란 말은 바울이 4장 6절부터 10절에서 기록한 것을 구체적으로 가리킬 수 있다.

그러나, 그 말은 또한 지금까지 바울이 서신에서 언급한 모든 것을 가리킬 수도 있다.

 

4장 12절


●   누구든지 네 연소함을 업신여기지 못하게 하고 오지 말과 행실과 사랑과 믿음과 정절에 있어서 믿는 자에게 본이 되어

 

1세기 당시의 헬라 문화권에서는 40세 이하의 사람들은 누구나 “연소”한 것으로 취급되긴 하였지만, 특별히 바울이 디모데에게 “누구든지 네 연소함을 업신여기지 못하게 하(라)”고 말한 것을 보면, 디모데는 교인들보다 특히 거짓 교사들보다 나이가 퍽 어렸던 것이 분명하다.

때문에 어떤 교인들은 그의 지도를 따르기를 주저했을 수 있다.

그 같은 불리한 조건을 극복할 수 있는 방법으로, 바울은 디모데에게 “말”과 “행실”과 “사랑”과 “믿음”과 “정절”에 있어서 믿는 자들의 본이 되라고 하였다.

그러니까, 디모데는 육체의 연령에 구애 받지 말고 성숙한 믿음과 행실로 믿는 자들에게 본이 되어야 하였다.

말에 본이 된다는 것은 디모데가 무엇을 전하는가 뿐만 아니라 어떻게 전하는가를 의미하였다.

목사들은 그들이 말한 내용이 신뢰를 받을 수 있는 방법으로 말을 해야 한다.

행실에 본이 된다는 것은 한 사람의, 특별히 한 지도자의 인격을 나타내는 모든 행동들을 포함한다.

사랑에 본이 된다는 것은 예수님이 명령하신 것처럼, 서로 사랑하며 원수까지도 사랑하는 일이 되고 있다 (요 13: 35; 마 5: 44).

믿음에 본이 된다는 것은 구원을 받는 믿음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그 믿음을 가지고 삶 속에서 하나님에 대한 신뢰를 나타내는 것이다.

정절에 본이 되는 것은 하나님 앞에서 깨끗하고 거룩한 삶을 살기를 힘쓰는 것을 가리켰다.

 

4장 13절:


●   내가 이를 때까지 읽는 것과 권하는 것과 가르치는 것에 전념하라

 

바울은 디모데를 에베소에서 다시 보게 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었다.

바울은 디모데에게, 그때까지, 그의 목회 사역의 세 가지 중요한 일에 전념하라고 하였다.

그들 세 가지는 “앍는 것”과 “권하는 것”과 “가르치는 것”이 되고 있다.

읽는 것”은 성경말씀을 여러 교인들 앞에서 혹은 예배의 일부로 읽는 것을 가리켰다.

 신약성경의 본문들이 아직 정경으로 모아지지 않았던 때이므로, 그같이 읽는 것은 두루마리 구약성경이 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렇지만, 바울이 교회들에게 그의 편지를 읽어주라고 명령하였던 것처럼, 교회에 읽어주는 일에는 바울의 서신이나 다른 신약 기록물 중 하나나 그 이상의 것들이 포함되었을 수 있다 (살전 5: 27; 골 4: 16 참조).

권하는 것”은 성경의 진리로 시작하여 사람들이 말씀에 따라 믿고 행동하도록 격려하는 것을 포함하였다.

디모데는 분명히 설교의 은사를 가지고 있었다.

바울은 디모데가 교회의 유익과 복음전파를 위해 그 은사를 사용하기를 원하였다 (딤전 4: 14, 딤후 1: 6 참조)

가르치는 것”은 예배의 교훈적인 부분이 되었을 수도 있다.

그렇지만, 그것은 또한 목회사역의 제자 삼는 일을 가리키는 말일 수도 있다.

여러 사람을 대상으로는 물론 일대일로도, 디모데는 성경의 교리적인 진리뿐만 아니라 실제 생활에서 적용 할 수 있는 것들도 가르쳐야 하였다.

디모데처럼, 신자들은 경건한 삶의 본이 되기 위해 하나님의 말씀에 계속 집중해야 한다.

다른 신자들 중에서 그리고 세상 가운데서 복음으로 살아갈 때, 우리는 서로 격려하며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한다.

 

가정에서부터 시작하여, 당신은 어떤 방법으로 믿는 자들의 본이 될 수 있는가?

 

 

말씀을 나의 상황에 적용하기:


●   신자들은 거짓 교사들이 그들을 그릇된 길로 인도하려고 하고 있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한다.     
●   신자들은 자신의 삶 속에서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로 자신을 훈련해야 하며, 복음대로 생활함으로써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기를 힘써야 한다.  
●   신자들은 경건한 삶의 좋은 본이 되기 위해 하나님의 말씀에 계속 전념해야 한다.   

 

당신은 거짓 교리와 이단에 대해 배우게 될 때 어떻게 경계를 강화하며 대처할 수 있는가?                                                                     

 

디모데전서 4장 13절을 읽고 묵상하라.

그런 다음, 바울이 디모데에게 집중하라고 지시한 세 가지 사역 영역의 각각에 대해 당신이 취할 수 있는 행동을 한 가지씩 열가해 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