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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사회에서 선교하는 교회 - 제 2과 - 2019년 6월 9일 주일 장년성경연구 - 디모데전서 2장 1 -15절

글쓴이 : 강호길 날짜 : 2019-06-06 (목) 02:52 조회 : 152

장년성경연구 교사용 교안

2019년 6월 9일 주일 용  

 

제 2과

 

 

지역사회에서 선교하는 교회

 

 

학습구절: 디모데전서 2장 1 -15절

 

성경진리:

신자들은 그들이 이 세상에서 하나님을 어떻게 대표 하고 있는지에 유념해야 한다.     

 

주요교리:  인간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은 특별한 창조물이다.  

하나님은 인간을 남자와 여자로 지으시되 그의 창조물의 가장 뛰어난 걸작품으로 만드셨다 (창 1: 26 -30).    

 

암송구절:  디모데전서 2장 1절  

그러므로 내가 첫째로 권하노니 모든 사람을 위하여 간구와 기도와 도고와 감사를 하되   

“I urge, then, first of all, that petitions, prayers, intercession and thanksgiving be made for all people.”       

 

 

시작하는 글:

 

우리가 어느 곳을 가든지, 지켜보는 사람이 있다.

그가 가족 구성원이거나 아이 혹은 친구나 동료이든 간에, 누군가가 지켜보고 있다.

그같이 지켜보는 것은 특별한 호기심에서 이상한 방법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특별히 그리스도인이라고 하면, 그냥 어떻게 행동하고 있는지를 보려는 것이다.

행동뿐만 아니라, 우리의 태도나 동기까지도 주시의 대상이 된다.

사람들은 그리스도인들의 삶이 말하는 것처럼, 참되고 진실한지를 알고 싶어한다.

그래서 그들은 지켜본다.

예수님은 자기를 믿고 따르는 제자들을 “세상의 소금과 빛”이라고 부르시면서, “너희 빛이 사람(들) 앞에 비치게 하여 그들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고 하셨다.

예수님은 우리 그리스인들이 이 세상에서 그를 대표하는 방법으로, 다른 사람들에게 영향력을 끼칠 수 있는 기회를 주신다.   

 

당신은 어떤 사람이 당신을 지켜보고 있다는 것을 의식한 적이 있는가?

그 같은 의식은 당신의 행동을 어떻게 변화시켜 주었는가?  

 

 

본문배경설명

 

디모데전서 2장 1절부터 15절까지

 

바울은 이 과에서 디모데에게 에베소 교회의 신자들이 그리스도를 위해 그들의 지역 사회에 영향을 끼치는 삶을 살도록 지도하며 인도하라고 촉구하고 있는데, 그는 그 교훈을 지난 주에 배운 거짓 교사들에 대한 경고의 말과 다음 주에 배울 목사와 집사의 자질과 자격에 대한 지시사항 사이에다가 끼어놓았다.

복음을 전파하고 가르치는 선교는 바울이 행한 것 같이 다른 지역으로 여행하면서 하는 방법에만 국한 된 것이 아니다.

디모데는 바울과 함께 여행을 하면서 복음을 전하고 교회를 개척하는 일을 했을 때 경험했던 갖가지 기회와 반대를 잘 알고 있었다.

그렇지만, 이제 목회자로서, 디모데는 다른 과업(課業)을 갖게 되었다.  

그것은 교인들이 자신들의 영향권에서 복음을 전하도록 가르치고 준비시키는 일이었다.  

오늘 날 터키의 서쪽지역으로, 당시에는 소아시아의 로마 영토에 위치해 있던, 에베소는 세 개의 주요 상업지역을 연결시켜주는 국제도시였다.

그 당시에는 로마 황제가 사람들에게 알려진 세계를 지배하고 있었지만, 여러 지역의 통치자들도 그 나름대로의 세력과 통치권을 행사하고 있었다.

바울은 디모데에게 믿는 자들이 삶 속에서 만나는 사람들뿐만 아니라 그들 통치자들을 위해서도 기도하게 하라고 권고하였다.

바울과 디모데는기도가 모든 사역의 기초가 되는 것을 알고 있었다.

하나님의 권능만이 복음을 전하는데 장벽이 되는 것들을 돌파할 수 있다.

이 과의 나머지 부분은 남자 성도들과 여자 성도들이 그리스도를 위해 지역 사회에 영향력을 끼칠 수 있는 방법에 대해 바울이 그들에게 가르친 교훈이 되고 있다.  

기도와 예배 생활로부터 어떻게 옷을 입고 행동하느냐는 방법에 이르기까지, 에베소 교회 성도들은 이 도시의 이교도 문화에 있는 사람들에게 복음을 증거할 갖가지 기회를 갖고 있었다.

에베소에는 아데미 신전으로도 알려져 있던, 유명한 다이애나 신전이 있었다.

에베소 경제의 대부분은 거짓 숭배의 장소인 이 신전을 중심으로 만들어져 있었다.

바울은 그 신전과 관련이 있는 영업을 하고 있던 상인들로부터 강하고도 심각한 반대를 받았다  (사도 행전 19 장).

기독교 공동체는 그 같은 이교도적인 문화권에 영향력을 끼칠 수 있는 어떤 경제적 혹은 정치적 힘이나 방법이 없었다.

바울은 그리스도인들이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 가장 큰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힘의 원천은 기도와 경건한 생활 방식이 되고 있는 것을 알고 있었다.

바울은 또한 하나님께서 모든 사람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을 받게 되기를 원하고 계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에베소 교회는 복음을 전하고 증거하는 하나님의 도구가 되었다.

성도들이 -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들로부터 일반 시민에 이르기까지- 에베소 사람들을 위해 중보기도를 하였을 때, 믿는 자들의 기도는 강한 능력이 나타났다.

일관된 생활 방식과 신실한 예배는 그들이 선포한 믿음이 참된 것임을 입증해 주었다.

무엇보다도, 모든 성도들은 에베소와 그 밖의 지역에 선교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학습구절 연구

 

기도로 (디모데전서 2장 1 -7절)

 

2장 1 -2절


●    그러므로 내가 첫째로 권하노니 모든 사람을 위하여 간구와 기도와 도고와 감사를 하되
●    임금들과 높은 지위에 있는 모든 사람을 위하여 하라 이는 우리가 모든 경건과 단정함으로 고요하고 평안한 생활을 하려 함이라

 

바울은 디모데에게 교회로 하여금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도록 기도하게 하라고 권고하였다.

“내가 첫째로 권하노니”라고 한 말의 “첫째”는 기도의 중요성을 강조해 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

에베소를 주님께로 인도하는 일에는 전적으로 주님께 의존하는 영적인 접근법이 요구되었다.

바울은 먼저 성도들에게 하나님의 영적인 능력이 모든 사람에게 나타나도록 기도할 것을 촉구하였던 것이다.

여기서 바울은 기도를 네 가지 다른 용어로 표현하였는데, 그것들은 “간구와 기도와 도고와 감사”가 되고 있다.

간구”는 성도들이 개인적으로 하나님께 간청한 기도를 구체적으로 가리키고 있다.

하나님께 간청하는 “간구”는 기도가 되고 있는 것이 확실하지만, 바울은 좀더 포괄적이고도 폭넓은 뜻으로, “기도”라는 용어를 사용하였다.

바울이 사용한 기도의 또 다른 종류는 “도고” 혹은 “중보기도”가 되고 있는데, 그 말은 본래 다른 사람을 대신하여 권력자 앞에 나아가는 것을 뜻하고 있다.

바울은 또한 에베소의 성도들에게 감사의 기도를 하도록 권하였는데, 그것은 하나님의 축복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그들이 복음을 전하며 기도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은혜를 베풀어 주시고 응답해 주시는 것이 되고 있다.

그들 네 가지 기도의 대상은 단지 어떤 특정한 부류의 사람들에게만 한정된 것이 아니라, “모든 사람”을 위한 것이 되고 있다.

바울은 2 절에서 기도의 대상으로 특별히 “임금들과 높은 지위에 있는 모든 사람”을 밝히고 있지만, 그는 믿음의 성도들이 모든 부류의 사람들을 위해 기도하기를 원하였다.

모든 사람들이 복음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믿음의 성도들은 “모든 사람을 위하여” 기도를 하는 동안에, 특별히 “임금들과 높은 지위에 있는 모든 사람을 위하여” 기도할 필요가 있다.

높은 지위에 있는 모든 사람”이라는 말에 포함되고 있는 사람들은 모든 정부 차원에서 권한을 행사하는 사람들이 되고 있다.

기본적인 원칙은 교회나 회사의 지도자들에게도 적용될 수 있다.

그들을 위한 신자들의 기도의 목적은 신자들과 그들의 공동체에 미칠 수 있는 영향 때문이다.

권한을 행사할 수 있는 사람들이 선하든 혹은 악하든 관계 없이, 그들은 다른 사람들이 “고요하고 평안한 생활을” 할 수 있느냐에 큰 영향을 끼칠 수 있다.

우리가 권한을 행사하는 지위에 있는 사람들을 위해 기도 할 때, 하나님께서는 그의 백성의 유익을 위해 그리고 그의 목적이 성취되도록 그들의 삶 속에서 역사하실 것이다.  

 

2장 3 -4절


●    이것이 우리 구주 하나님 앞에 선하고 받으실 만한 것이니
●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며 진리를 아는 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어쩌면 핍박하는 통치자들에게 고통을 당하고 있던 성도들의 반박을 예견했는지, 바울은 덧붙여 말하기를 “이것이 우리 구주 하나님 앞에 선하고 받으실 만한 것”이라고 하였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그들을 학대하며 핍박하는 사람들을 위해 기도하라고 하시면서, 그같이 하는 것이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원칙과 일치하기 때문이라고 하셨다 (마 5: 44 -45).

하나님은 믿음의 성도들이 다른 사람들을 위해, 그가 악한 통치자라 할지라도, 기도하는 것을 기뻐하신다.

바울은 정식으로는 하나님을 아버지로, 그리고 예수님을 구세주로 불렀다.

바울은, 여기서는, 하나님을 “우리 구주”로 불렀다.

하나님을 “우리 구주”로 불렀을 때, 바울은 다음 구절들에서 설명될 구원에 대한 하나님의 목적과 방법을 염두에 두고 있었다.

바울은 주장하기를, 우리의 구주가 되시는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며 진리를 아는데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고 하였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기를 원하시느니라)”는 바울의 주장은 하나님께서는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하지 아니하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고 한 베드로의 격려의 말과 일치하고 있다 (벧후 3: 9).

두 구절 모두 하나님의 뜻을 밝혀주고 있다.

두 구절은 모두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을 것이라고 말하지 않고,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게 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말하고 있다.  

진리를 아는데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는 문구는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을 얻고 회심하는 방법을 가리켜주는 다른 표현이 되고 있다.

목회서신에서는 여러 번에 걸쳐 “진리”라는 말이 단순히 “복음”을 뜻하는 용도로 사용되고 있다 (딤전 4: 3; 딤후 2: 18, 25; 4: 4; 딛 1: 14).   

 

2장 5 -7절

●    하나님은 한 분이시요 또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중보자도 한 분이시니 곧 사람이신 그리스도 예수라
●    그가 모든 사람을 위하여 자기를 대속물로 주셨으니 기약이 이르러 주신 증거니라
●    이를 위하여 내가 전파하는 자와 사도로 세움을 입은 것은 참말이요 거짓말이 아니니 믿음과 진리 안에서 내가 이방인의 스승이 되었노라

 

하나님은 사람들이 구원 받기를 원하실 뿐만 아니라, 우리가 구원받은 방법을 제공해 주셨다.

바울은 “하나님은 한 분이시요”라는 말로, 유대인들과 그리스도인들이 공통적으로 믿고 받아들이는 기본적인 진리와 신앙 선언으로 시작하였다 (신 6: 4; 막 12: 29 참조).

세상에는 유대인들을 위한 신이나 이방인들을 위한 신 등 여러 신들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참 신은 오직 한 분이신 하나님이시다.

그러므로 모든 사람들은 바로 이 하나님께로 나와야 한다.

바로 이 하나님께로 나아올 수 있는 방법으로, 바울이 제시한 두 번째의 중요한 진리는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중보자도 한 분이시(다)”는 사실과 그가 바로 “사람이신 그리스도 예수라”는 것이다.

유대인의 제사 제도에서는 제사장들이 중재자의 역할을 수행하였다.

그런데 여기서 바울이 선언하고 있는 것은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중보자는 한 분밖에 없다는 사실이 되고 있다.

그리스도”라는 용어는 오랫동안 약속 된 메시야로서의 예수님의 역할을 강조하고 있다.

“예수”라는 이름은 “여호와는 구원자시니라”는 뜻이 되고 있다.

사람”이란 용어는 예수님이 두 번째 아담으로 모든 인류와 연결되고 있음을 가리킨다 (롬 5: 12-21).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인정하는 것은 그를 하나님으로 선언하는 것과 같다.

예수님은 완전한 신이 되시면서도 완전한 인간이 되셨다.

구원을 얻을 수 있는 방법으로 바울이 세 번째로 밝힌 진리는 예수님이 “모든 사람을 위하여 자기를 대속물로 주셨(다)”는 사실이다.

구원을 대속물로 보는 개념은 구약 전체를 통해 반복되고  (사 35: 10; 렘 31: 11; 호 13: 14).

예수님은 자신의 사명을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는 것으로 밝히셨다 (마 20: 28).

바울은 그가 선포해오고 있던 복음의 메시지를 생각하면서, 세 가지 용어를 사용하여 자신의 역할을 묘사하였다.

바울은 자신을 “전파하는 자”와 “사도”와 “이방인의 스승”으로 불렀다.

전파하는 자”는 자기를 보낸 사람의 메시지를 전파하는 사람이었다.

바울이 전파한 복음은 그의 메시지가 아니라, 하나님의 것이었다.

마찬가지로, 사도의 문자적 의미는 임무를 받고 보냄을 받은 사람이다.

바울은 열 두 사도 중 하나가 아니었지만, 하나님은 그를 택하셔서 이방인의 사도로 삼으셨다.

어떤 사람들은 사도에 대한 그의 권위에 의문을 제기했기 때문에, 자기가 “사도로 세움을 입은 것은 참말이요 거짓말이 아니(라)”고 강조하여 말하였다.

마지막으로, 바울은 “이방인의 스승”이었다.

바울은 사역 초기에 회당에서 자주 가르치긴 했지만, 그의 주요 사역은 비 유대인에게였다.

전파하는 자”와 “사도” 그리고 “스승”이라는 세 명칭은 이방인들에 대한 그의 사역과 관계되고 있다.

바울이 전한 메시지와 사도로서의 사명, 그리고 가르친 사역은 예수님을 통해 얻는 구원에 관한 하나님의 좋은 소식을 만국에 전할 때 성취되었다.

바울은 그들 역할을 자신이 추구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에 의해 세움을 입은 것임을 확언하였다.

그러므로, 그의 권위의 원천은 사람이나 인간의 협의체가 아니라, 하나님이셨다.

 

신자들은 구원받지 못한 사람들에게 특별히 초점을 맞추어 기도하도록 요구 받고 있다.

 

구원은 오직 예수님을 믿음으로만 오기 때문에, 믿음의 성도들은 구원을 받지 못한 사람들에게 특별히 초점을 맞추어 기도하도록 요구 받고 있다.   

하나님의 좋은 소식을 전하는 전파하는 자로서 선교를 할 때, 우리의 기도는 사람들의 마음을 그리스도께로 열어 주도록 하나님께 의지하고 있는 것을 나타내고 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맡겨주신 사명을 수행하는데 있어서 기도가 그토록 중요한 이유는 무엇인가?

 

남자신도들의 지도로 ( 디모데전서 2장 8절)

 

2장 8절


●    그러므로 각처에서 남자들이 분노와 다툼이 없이 거룩한 손을 들어 기도하기를 원하노라

 

남자 신도들에게 말한 이 구절과 다음에 나오는 여자 신도들에 대한 구절들은 바로 이전 단원에서 기도와 구원에 대해 말한 것을 보충해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

바울은 신자들에게 기도로 사랑과 화합의 본을 보이라고 촉구하였다.

특별히 그는 교회가 그리스도를 위해 선교를 하도록 남자 성도들이 앞장서서 기도하기를 원하였다.

바울은 이전에 기도와 구원의 광범위한 범위를 강조하였다 (2: 1, 4).

믿음의 성도들은 ‘모든 사람’을 위하여 기도해야 하며,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게 되기를 원하신다는 것이었다.

이제 그는 “각처에서 남자들이” “기도하기를 원하노라”고 하면서, 8절에서도 기도와 구원에 대한 강조를 계속하였다.

교회가 어느 곳에서 모이던, 남자 성도들은 1 절에서 언급된 기도의 네 가지 측면을 적용하여 기도해야 하였다.

바울은 남자 성도들이 “거룩한 손을 들어 기도하기를 원하노라”고 하였는데, 우리는 그것을 기도의 특정한 자세를 주장하는 말로 받아들이지 말아야 한다.

‘손을 들어 올리는 것’은 바울의 말에서 부차적인 성격의 것이 되기 때문이다.

첫째로, 기도는 거룩하신 하나님과의 사귐과 교제이자 대화가 되고 있다.

그러므로, 기도하는 사람은 “거룩한 손”을 가져야 한다.

거룩한 손”이라는 말은 믿는 자의 영적 상태를 상징하는 은유가 되고 있다.

거룩하시고 전능하신 하나님 앞에 나오려면, 우리는 깨끗한 손과 청결한 마음을 가져야 한다 (시 24ㅣ 3 -4).

둘째로, 기도의 방법은 “분노와 다툼”이 없어야 한다.

바울은 이미 1장에서 거짓 교사들이 논쟁만 일삼고 있는 것을 지적한 바가 있다.

기도가 그 같은 마음과 자세로 되어지지 말아야 한다.

 

당신의 교회에 있는 경건한 남자 성도들은 모든 사람들을 위해 기도하는 일을 어떻게 주도할 수 있는가?

 

경건한 여자신도들의 섬김으로  (디모데전서 2장 9 -15)

 

2장 9  -10절:

●    또 이와 같이 여자들도 단정하게 옷을 입으며 소박함과 정절로써 자기를 단장하고 땋은 머리와 금이나 진주나 값진 옷으로 하지 말고
●    오직 선행으로 하기를 원하노라 이것이 이것이 하나님을 경외한다 하는 자들에게 마땅한 것이니라

 

선교하는 교회는 모든 회원의 참여가 필요하다.

또 이와 같이”라는 말은 8절에서 남자 성도들에게 한 말을 상기시켜 주면서 이제 여자 성도들에게 말하려는 것을 연결시켜 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

이 교훈은 남자성도들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온 성도들이 교회에 함께 모여 예배를 드리며 신앙생활을 할 때를 배경으로 삼고 있다.

남자 성도들이 “기도”와 “거룩한 삶”으로 교회를 섬기는 것처럼, 여자 성도들도 그같이 하는 것이 마땅하였다.

그래서 그같이 하는 방법의 하나로, 바울은 여자 성도들에게 “단정하게 옷을 입으며 소박함과 정절로서 자기를 단장하(라)”고 권하였다.

주위에 있는 믿지 않는 여인들처럼, “땋은 머리와 금이나 진주나 값진 옷으로 하지 말고 오직 선행으로 하기를 원하노라”고 하였다.

바울은 이어서 말하기를, 그같이 하는 것이 “하나님을 경외한다 하는 자들에게 마땅한 것이니라”고 하였다. 

사도 베드로도 여인들에게, 특별히 아내들에게, 똑 같은 교훈을 하였다.

너희의 단장은 머리를 꾸미고 금을 차고 아름다운 옷을 입는 외모로 하지 말고 오직 마음에 숨은 사람을 온유하고 안정한 심령의 썩지 아니할 것으로 하라”고 하였다 (벧전 3: 3 -4).

베드로는 여자들이 그같이 하는 것이 “하나님 앞에 값진 것이니라”고 하였다.

 

바울은 에베소의 이교도 여자들, 특별히 아데미 신전에서 섬기고 있던 여인들의 관습들과 대조되며 구별되는 그리스도인 여자 성도들의 관습을 강조하고 있었다.

 

당시 사회는 여자들의 외모에 특별히 주의를 기울이고 판단의 기준으로 삼았기 때문에, 바울은 믿는 여자 성도들에게, 특히 그들이 교회에서 모일 때, 입는 옷과 행동에 유의할 것을 권장하였다.

경건한 여인들은 주님을 영화롭게 하며 사람들에게 좋은 평판을 듣는 방법으로 외모를 꾸미며 자신을 치장하여야 하였다.  

 

2장 11 -14절:


●    여자는 일체 순종함으로 조용히 배우라
●    여자가 가르치는 것과 남자를 주관하는 것을 허락하지 아니하노니 오직 조용할지니라
●    이는 아담이 먼저 지음을 받고 하와가 그 후며
●    아담이 속은 것이 아니고 여자가 속아 죄에 빠졌음이니라  

 

1 세기 사회에서 여자들은 종종 교육에서 제외되었다.

따라서 바울이 여자 성도들에게 “배우라”고 한 것은 시대를 앞서가는 말이었다.

여자 성도들은 남자 성도들과 마찬가지로 예배에 참석하여 성경말씀을 읽으며, 좋은 가르침과 설교를 통해 배울 수 있었다.

그러므로11 절은 신자들이 배울 필요성을 강조해주고 있다.

그런데 사도 바울은 여자 성도들에게 말하기를, “여자는 일체 순종함으로 조용히 배우라”고 하였다.

성경학자들은 “일체 순종함으로 조용히 배우라”고 한  바울의 말이 정확하게 무엇을 의미하고 있느냐는 문제를 가지고 의견을 달리해 오고 있다.  

그러나, 성경학자들은 “조용하(라)”는 말을 아무 말도 하지 말고 잠잠 하라는 뜻이 아니라, 그 말은 가르칠 수 있는 마음과 배우려는 자세를 강조하고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고린도전서 11장 5절에서 우리는 바울이 고린도 교회의 여자 신도들에게 “기도나 예언하는” 것을 금하지 않고, 다만 당시의 사회적 관습에 따라 머리를 가리고 하도록 요구한 것을 보게 된다.

그러므로, “여자는 일체 순종함으로 조용히 배우라”는 바울의 말은 여자 성도들이 교회에서 말하거나 기도 할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 것이 분명하다.

많은 성경학자들은 그 말이 교회에서 성경의 교리를 가르치는 일과 성도들을 지도하는 권위의 문제에 있어서는 목사에게 맡겨야 한다는 뜻이 되고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어떤 성경학자들은 “여자가 가르치는 것과 남자를 주관하는 것을 허락하지 하니하노니” 라고 한 11절을 똑 같은 관점으로 해석함으로, 그 말은 여자 성도들에게 교회에서 목사의 역할을 금하고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어떤 성경 학자들은 “조용히 배우라”는 바울의 말은 일부 여자 신도들이 거짓 교사들의 그릇된 가르침을 받아 그리스도 안에서의 새로운 자유를 지나치게 주장하며 남용하고 있는 것에 대한 교훈으로 보고 있다.

바울은 성경말씀을 들어 교회에서 여자 신도들이 조용하며 순종해야 한다는 자신의 주장을 정당화하며 옹호하였다.

먼저, 바울은 “아담이 먼저 지음을 받고” 그 후에 하와가 지음을 받은 사실을 지적하였다 (창 2: 7, 21 -22 참조).

그것은 남자와 여자의 역할이 서로 다른 점을 밝혀주는 말로, 그 같은 남녀의 서로 다른 역할은 하나님께서 남자와 여자를 지으실 때 정하신 본래의 목적에 근거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경은 남자와 여자를 우열이나 종속적인 관계로 보지 않고 평등하며 서로 보완해주는 관계로 보고 있다. 

그 같은 사실을 강조하기 위하여, 바울은 처음에는 여자가 남자에서 났지만, 그 후부터는 남자가 여자에게서 태어나고 있으며, 그 모든 것이 궁극적인 근원은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지적하였다 (고전 11: 12).

바울이 여자 성도들에게 예배에 참석하여 조용히 배우라고 말한 자신의 주장에 대한 성경적 근거로 인용한 두 번째 사건은 “여자가 속아 죄에 빠(진 일)”이 되고 있다.

그래서 바울은 말하기를, “아담이 속은 것이 아니고 여자가 속아 죄에 빠졌음이니라”고 하였다.

아담이 속은 것이 아니고”라고 했을 때, 바울은 아담이 무죄하다고 말한 것이 아니었다.

로마서 5 장 12 ~ 14 절에서, 사도 바울은 아담 한 사람의 죄로 말미암아 죽음이 세상에 들어오게 된 책임이 있음을 분명하게 밝혔다.

 

2장 15절:


●    그러나 여자들이 만일 정숙함으로 믿음과 사랑과 거룩함에 거하면 그의 해산함으로 구원함을 얻으리라

 

2장 15절의 본문구절은 건성으로 읽는 독자에게 혼동을 줄 수 있다.

이는 여인들이 “해산을 함으로 구원을 얻(는다)”는 말처럼 보이는 내용때문이다.

모든 성경말씀은 일관성이 있다는 것을 명심할 때, 이 해석은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구원을 얻는다는 수 많은 구절들과 모순이 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또한 우리는 그 말이 믿음과 사랑 그리고 거룩함이라는 생활양식들과 연결되고 있는 것을 보게 된다.

그러므로, 넓은 관점에서 볼 때, 15절은 여인들의 역할과 관계되고 있는 것으로 해석될 수 있다.

구원함을 얻으리라로 번역 된 헬라어는 문맥에 따라 육체적인 보존 또는 영적 구원을 나타낼 수 있다.

더 나아가, 신약성경에서 "해산함으로”라는 말로 번역된 용어는 일반적으로 출산이나 메시아 탄생을 뜻하는 용도로 사용되고 있다.

여자들의 역할, 특별히 어머니로서의 역할은 교회와 가족 모두에게 값진 것이었다.

따라서, 그들은 일관된 자질을 유지할 필요가 있었다.

경건한 여인들의 “믿음”은 많은 어린이들이 그리스도를 신뢰하고 사랑하게 하였다.

남편과 자녀들을 위한 한 여인의 “사랑”은 가정을 함께 묶어 서로 돌보며 보살펴주게 한다.

한 여인의 거룩함은 가족들로 하여금 여호와를 경외하는 삶을 살게 하는 본이 될 수 있다.

정숙함으로써”라는 말은 바울이 9절에서 여자 성도들에게 “소박함과 정절로써 자기를 단장하(라)”고 한 말을 가리키고 있다.

그러므로, 경건한 여자 성도들은 자신들의 사역과 역할이 교회와 가정에 어떤 영향력을 끼치고 있는지를 깊이 깨달을 필요가 있다.

사도 바울은 교회의 젊은 여자들에게 권면하기를, “젊은이는 시집가서 아이를 낳고 집을 다스리고 대적에게 비방할 기회를 조금도 주지 말기를 원하노라”고 하였다 (딤전 5: 14).

남자 성도들과 여자 성도들이 그리스도의 교회의 사명을 수행해 나갈 때, 그들은 각기 독특하고도 중요한 역할을 맡아 하고 있다.  

그렇지만, 그들은 그리스도의 복음을 그와 함께 세상에 전하는 선교를 위해 함께 기도하며 사역하는 동역자들이다.

 

당신은 자신의 삶 속에서 경건한 여자 성도들에 의해 긍정적으로 영향을 받은 적이 있는가?

 

 

말씀을 나의 상황에 적용하기:


●    믿는 자들의 기도는 영적으로 구원받지 못한 ‘잃어버린 자들’에게 초점이 맞추어 져야 한다 (눅 19: 10 참조).    
●    경건한 남신도들은 다른 사람들을 위해 기도하는 일에 본을 보여야 한다.  
●    경건한 여신도들은 그들의 옷차림과 행동이 교회의 선교와 전도에 어떻게 영향을 미치는지를 유념해야 한다.   


성경공부 반에서, 다른 사람들의 구원을 위해 좀더 의도적으로 기도할 수 있는 방법들을 논의해 보라.  당신의 성경공부 반이 지역사회에 있는 영적으로 구원받지 못한 잃은 자들을 위해 지속적으로 기도할 수 있는 방법들은 어떤 것이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