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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의 메시지를 맡은 신자들 - 제 1과 - 2019년 6월 2일 주일 장년성경연구 - 디모데전서 1장 3 -17절

글쓴이 : 강호길 날짜 : 2019-05-29 (수) 06:00 조회 : 62

장년성경연구 교사용 교안

2019년 6월 2일 주일 용  


제 1과



복음의 메시지를 맡은 신자들



학습구절: 디모데전서 1장 3 -17절


성경진리:

하나님의 은혜를 받은 신자들은 복음의 메시지의 진리를 맡은 사람들이다.    


주요교리:  인간   

인간은, 사단의 유혹을 받아,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게 되었고, 본래의 무죄상태에서 벗어나게 됨으로 그의 후손은 죄의 본성과 환경을 물려받게 되었다.


암송구절:  디모데전서 1장 15절  


미쁘다 모든 사람이 받을 만한 이 말이여 그리스도 예수께서 죄인을 구원하시려고 세상에 임하셨다 하였도다 죄인 중에 내가 괴수니라   

“Here is a trustworthy saying that deserves full acceptance: Christ Jesus came into the world to save sinners – of whom I am the worst.”      



시작하는 글:


다니엘 웹스터 (Daniel Webster) (1782 – 1852)는 미국 역사에서 경험 많고 존경 받는 정치인들 중의 하나로 꼽히고 있다.

그가 한 번은 그의 마음을 지배하고 있는 가장 심오한 생각이 무엇이냐는 질문을 받은 적이 있다.

그는 진지하게 “하나님께 지고 있는 나의 개인적인 책임입니다”이라고 대답하였다.

그리스도를 믿고 따르는 신자들로서, 우리는 그의 진리를 존중하며 실천해야 될 엄숙한 책임을 느끼고 있다.

우리는 복음이라는 귀중한 보화를 맡아가지고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들에게 그의 진리를 지키고, 그것을 가지고 살며 다른 사람들에게 전하는 거룩한 특권을 주셨다.


당신의 가정에는 대대로 전해 내려오며 지키는 특별한 조리법이나 이야기 혹은 전통들이 있는가? 그럴 경우, 그 같은 사실을 아는 것은 어떻게 다른 가족 구성원들에 대한 더 큰 책임감을 느끼게 해 주는가?



본문배경설명


디모데전서 1장 1절부터 20절까지


기록에 있는 것으로 바울이 한 지역에서 가장 오래한 사역은 에베소와 그 주변에서의 3 년간에 걸친 선교사역이 되고 있다 (행 20: 31).

그는 제 3차 선교여행 때 에베소에 와서 처음 “석 달 동안”은 “담대히 하나님 나라에 관하여 강론하며 권면하였고,” 다음 두 해 동안은 “두란노 서원에서 날마다 강론”하며 복음을 전파하는 선교 사역과 복음의 진리를 가르치는 교육사역을 하였다 (19: 8 -10).

그 같은 바울의 열심에 찬 사역으로 인해 “아시아에 사는 자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다 주의 말씀을 듣(게)” 되었고 놀라운 영적인 승리를 얻게 되었다.

에베소는 로마 제국에서 가장 중요한 도시들 중의 하나로, 차례로 따지면 로마와 아덴 다음이 되었다.

에베소는 아데미 신전 혹은 다이애나 신전을 중심으로 한 우상 숭배로 유명하였다.

로마의 여신인 다이애나는 그리스 여신인 아데미와 동일한 것이 되었다.

많은 은 세공인(銀 細工人)들은 아데미 여신의 신전 모형(模型)들을 만들어 팔아서 생업을 삼고 있었다.

그들의 두목 격(頭目 格)인 데메드리오라는 사람은 생업의 위협을 느끼고 있는 은세공인들을 선동하여 “크다 에베소 사람의 아데미여”라고 소리치면서 바울의 선교에 강한 적대 운동을 폈다 (행 19: 24 -40).

그러므로 바울의 사역은 초기부터 외적인 강한 적대에 직면하였다.  

디모데는 바울을 만나기 전부터 그리스도를 믿는 신자였는데, 바울의 제 2차 선교 여행 때 “루스드라”에서 그를 만나 두 사람은 함께 선교여행을 하며 매우 가깝고도 강한 관계를 발전시켰다 (행 16: 1 -2).

바울은 디모데를 “믿음 안에서 참 아들”로 불렀다 (딤전 1: 2).  

디모데는 바울과 함께 여행하면서 다양한 방법으로 바울의 사역을 도왔다 (사도 행전 17: 14 -15; 18: 5; 20: 4).

바울 일행이 에베소에 들렸을 때, 바울은 디모데에게 권하기를 자기가 마게도냐로 계속해서 여행하는 동안에 에베소에 남아 교회를 도우라고 하였다.

바울은 에베소 교회를 사랑하였다.

바울이 디모데를 에베소에 남겨두려고 한 것은 그로 하여금 교회에 스며들고 있는 그릇된 교리를 바로 잡는 어려운 임무를 수행하게 하려는 것이었다.

교사로 자처하는 교회 내의 어떤 사람들은 믿는 신자들의 신앙을 위협하는 그릇된 가르침으로 회중을 감염시키고 있었다.

이단적인, 즉 다른 교리를 가르치는 교사들은 유대인의 율법을 더 잘 적용한다고 주장하고 있었지만, 사실은 자기들이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 그리고 무엇을 주장하고 있는지를 알지 못하였다 (딤전 1: 6 -7).

바울은 디모데에게 율법의 올바른 목적에 대해 상기시켜 주는 것으로 그들에게 도전하였다.

바울은 디모데에게 그가 받은 은사와 다른 사람들이 그에게서 관찰 한 자질들을 성취하도록 격려하였다 (4: 14).

디모데는 “외조모 로이스”와 “어머니 유니게”로부터 개인적으로 받은 영적 유산을 갖고 있었다 (딤후 1: 5).

디모데는 또한 영적인 싸움을 싸우면서 에베소 교회를 믿음으로 인도한 실질적인 경험도 있었다.

후메내오와 알렉산더와 같은 사람들은 믿음이 난파한 자들이었다.  

그들은 수 년 동안 계속해서 바울과 에베소 교회에게 문제를 일으켰다 (딤후 2: 14, 17 -18).

그렇지만, 바울은 디모데가 참 믿음을 위해 강하고도 굳건히 서도록 격려하였다.



학습구절 연구


바른 교훈을 위한 책임 (디모데전서 1장 3 -7절) 


1장 3 -4절 


●     내가 마게도냐로 갈 때에 너를 권하여 에베소에 머물라 한 것은 어떤 사람들을 명하여 다른 교훈을 가르치지 말며
●     신화와 끝없는 족보에 몰두하지 말게 하려 함이라 이런 것은 믿음 안에 있는 하나님의 경륜을 이룸보다 도리어 변론을 내는 것이라


책임은 모든 사람에게 적용되고 있다.

이 서신의 시작 구절에서, 바울은 자신이 하나님에 의해 사도로 택함을 받고 보냄을 받은 사실을 밝혔다.

그는 그 직분에 충성해야 될 의무감을 느꼈을 뿐 아니라, 그를 구원해주시고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로 불러주신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였다.

바울은 또한 자기가 도와서 시작된 교회들과 사역한 신도들에게 대한 책임을 느꼈다.

에베소 교회의 교인들은 바울을 사랑하였고, 바울은 그들의 사랑에 보답하였다.

따라서, 그는 마게도냐로 떠날 때에 디모데에게 권하여 “에베소에 머물(있게)” 하였다.

디모데는 바울과 "믿음 안에서 참 아들"(1: 2)이라는 특별한 관계를 누렸으며 자주 그와 함께 선교여행을 하였다.

바울이 디모데를 에베소에 남겨둔 것은 그가 에베소 교회의 사역을 얼마나 중요하게 여기고 있는지를 말해주었다.  

소아시아 지역에 있던 바울은 빌립보 성과 마게도냐 지역으로 여행을 떠나야 했을 때, 교회를 거짓 교사들의 처분에 맡겨놓고 떠나기를 원하지 않았다.

바울은 디모데에게 에베소 교회에 머물러 있으면서 “어떤 사람들을 명하여 다른 교훈을 가르치지 말(게 하라)”고 강력히 권하였다.

바울은 이 구절에서는 “어떤 사람들”이 누구들인지 그 이름을 밝히지 않고 있으나, 20절에가서는 그들 중의 대표자로 “후메내오”와 “알렉산더”의 이름을 밝혔다.

3절에서 언급된 “다른 교훈”들은4 절에 열거 된 “신화와 끝없는 족보”와는 다른 문제점들을 포함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일부 학자들은 다른 교훈들이 유대교의 우화와 이교의 신화를 복음과 혼합시켜, 기독교에 대한 혼합 주의적 접근방법을 창출하려는 시도와 관련된 것으로 믿는다.   

또 어떤 학자들은 다른 교훈을 헬라 배경과 연결시켜 당시 ‘영지주의’로 알려졌던 이단 운동과 관계되고 있는 것으로 보기도 한다.

영지주의자들은 영적인 것과 물질적인 것을 분리시켜, 영적인 것은 선하고 물질적인 것은 악한 것으로 보았다.

그러므로, 영지주의자들은 육체적인 생활과 영적인 생활을 별개의 것으로 보았다.  

바울은 말하기를, 그 같은 교훈들은 “믿음 안에 있는 하나님의 경륜,” 즉 그리스도의 복음을 이루기보다 도리어 쓸데없는 변론만 일으킨다고 하였다.

에베소에있는 거짓 교사들은 신자들을 복음을 전파하는 사명으로부터 이끌어내어 신화적인 이야기들에 대한 쓸데없는 변론만 일으키게 하였다.



디모데 전서의 주요 주제들


●     바른 교훈 - 바울은 바른 교훈에 대한 깊은 관심을 표명하였다 (1: 3,11; 4: 13; 6: 3 -5).
●     교회 지도자 바울은 목회자와 집사의 자격을 제시하였다 (3: 1 -13);


그는 또한 디모데에게 지도자로서 행해야 될 구체적인 사항들을 지시해 주었다 (4: 11 -16).


●     교회 내에서의 행동 바울은 성도들이 하나님의 집에서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를 디모데가 알고 있기를 원하였다 (3: 14-15). 그는 기도를 드리는 일에 대해 (2: 1-7), 예배를 질서 있게 드리는 일에 대해 (2: 8 15), 과부를 돌보는 일에 대해 (5: 3 -16), 그리고 장로들을 존경하는 일에 대해 (5: 17 -22) 구체적인 지시를 해주었다.


1장 5절:


●     이 교훈의 목적은 청결한 마음과 선한 양심과 거짓 없는 믿음에서 나오는 사랑이거늘


디모데의 교훈의 내용은 복음 이지만, 그 “교훈의 목적”은 사랑이 되고 있다.

바울은 디모데와 에베소 교회의 신자들에게 교훈의 목적을 상기시켜 주었다.

믿는 자들에게 진리의 말씀을 가르치는 목적은 신자들 사이에 무의미한 논쟁을 일으키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몸 안에서 사랑을 실천하는 것이다 (요 15: 12,17 참조).

 헬라어 원문에서 사랑이란 용어는 아가페(agape)이다.

신약성경의 저자들은 세상을 위한(요 3: 16) 그리고 특별히 구속 받은 그의 자녀들을 위한 (롬 8: 37 -39; 요일 3: 1) 하나님의 희생적이고 자기를 주는 사랑과 관련하여 이 용어를 일관되게 사용하였다.

믿는 자들에게, 이 같은 종류의 사랑은 그리스도께서 행하신 것처럼, 의도적인 행동들로 나타나기 마련인데, 바울은 그것이 “청결한 마음과 선한 양심과 거짓 없는 믿음”에서 나온다고 가르쳤다.

1 세기 당시의 신자들은 “마음”이 사람의 중심, 즉 태도와 의사 결정의 중요한 자리가 되고 있다고 생각하였다.

예수님은 “마음이 청결한 자”는 “하나님을 볼 것”이기 때문에 “복이 있(다)”고 가르치셨다 (마 5: 8).

바울은 디모데에게 “청년의 정욕을 피하고 주를 깨끗한 마음으로 부르는 자들과 함께 의와 믿음과 사랑과 화평을 따르라”고 하였다(딤후 2: 22).

히브리서 9장 14절은 그리스도의 대속의 피가 “믿는 자들의 양심을 죽은 행실에서 깨끗하게 하고 살아계신 하나님을 섬기게” 한다고 선언한다.

즉, 그리스도 안에서 죄를 사해주고 사람을 변화시켜주는 하나님의 놀라운 능력은 믿는 자의 이전의 수치와 죄책감을 제거해 준다.

성령님에 의해 인도를 받을 때, 양심은 신뢰할 수 있는 내적 인도자가 되어, 그리스도와 같은 태도와 행동을 갖게 해준다.

마지막으로, 그리스도의 사랑은 “거짓 없는 믿음”에서 나온다.

바울과 야고보는 다른 사람들의 행복을 위한 사심 없고 희생적인 행동인 선행은 거짓 없는 믿음에서 나온다는데 동의하였다 (엡 2: 8-10, Jas. 2: 17-18).

바울은 복음에 대한 디모데의 가르침이 헛된 말에 빠져 끝없는 논쟁을 일삼는 교인들이 아니라, 매일 참 믿음과 변화된 삶을 보여주는 신자들을 만들어 내기를 원하였다.


1장 6 -7절:


●     사람들이 이에서 벗어나 헛된 말에 빠져
●     율법의 선생이 되려 하나 자기가 말하는 것이나 자기가 확증하는 것도 깨닫지 못하는 도다


성경말씀을 바르게 잘 해석하려면 대명사를 바르고도 분명하게 이해하는 일이 필요하다.

사도 바울은 “사람들이 이에서 벗어나”라고 했는데, “이에서”라는 말은 “이것들”을 가리키는 대명사로, 5절에서 언급된 세가지 특성, 즉 ‘청결한 마음’과 ‘선한 양심’ 그리고 ‘거짓이 없는 믿음’과 함께 그것들로 인해 생기는 ‘아가페의 사랑’을 가리킨다.

사람들”이라는 대명사는 “다른 교훈을 가르치(는)” 거짓 교사들을 가리키고 있다.

바울은 에베소 교회의 어떤 신자들이 바른 교훈에서 떠나서 대신 “헌된 말에 빠(진 것)”을 슬퍼하였다.  

더 심각한 것은, 그들은 자신들이 그리스도의 바른 교훈을 떠날 뿐 아니라, “율법의 선생”이 되려고 혹은 그같이 자처하면서 다른 성도들을 잘못된 길로 인도하는 것이었다.

여기서 “율법”이라는 용어는 모세의 율법을 가리키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바울은 그들을 정죄하여 말하기를, 그들은 율법선생이 되려고 혹은 그같이 자처하고 있지만, 사실은 자기들이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 또는 무엇을 주장하고 있는지도 알지 못하고 있다고 하였다.

그들은 단지 교사의 권위를 행사함으로써 지위와 명성을 얻으려는 함정에 빠졌던 것이다.

오늘날 교회에서 전도자들과 교사들은 교회와 하나님께 무거운 책임을 지고 있다.

다른 사람들을 인도하는 사람들은 더 높은 기준의 책임을 지고 있기 때문에, 야고보는 교사의 역할을 가볍게 여기는 것에 대해 경고하였다 (약 3: 1).

그렇다고, 어떤 본문구절도 말씀을 가르치는 교사가 나쁜 선택이라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설교자와 교사는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바른 교훈을 가르치고 선포하는 일에 충실해야 된다는 뜻이다.


신자들은 어떻게 그들의 교사들이 성경적으로 바르고 정확한 교리를 가르치는 것을 확실하게 할 수 있는가?


복음의 관점에서 본 바른 교훈 ( 디모데전서 1장 8 -11절) 


1장 8 -11절


●     그러나 율법은 사람이 그것을 적법하게만 쓰면 선한 것임을 우리는 아노라
●     알 것은 이것이니 율법은 옳은 사람을 위하여 세운 것이 아니요 오직 불법한 자와 복종하지 아니하는 자와 경건하지 아니한 자와 죄인과 거룩하지 아니한 자와 망령된 자와 아버지를 죽이는 자와 어머니를 죽이는 자와 살인하는 자며
●     음행하는 자와 남색하는 자와 인신매매를 하는 자와 거짓말하는 자와 거짓맹세하는 자와 기타 바른 교훈을 거스르는 자를 위함이니
●     이 교훈은 내게 맡기신 바 복되신 하나님의 영광의 복음을 따름이니라


바울이 하나님의 율법의 거짓 교사들을 거부하였다는 말은 하나님의 율법을 거부하였다는 뜻이 아니다.

바울과 디모데는 율법이 선한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릇된 것은 율법 자체가 아니라, 거짓 교사들이었던 것이다.

그래서 바울은 “율법은 사람이 그것을 적법하게만 쓰면 선한 것임을 우리는 아노라”고 하였다.

적법하게”로 번역된 헬라어는 이 구절과 디모데 후서 2장 5절에서만 사용되고 있는데, 거기에서는 경기하는 선수가 “법대로 경기하는 것”을 가리키고 있다.

여기서 바울이 주장하고 있는 것은 율법이 하나님의 계획과 목적에 따라 사용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율법은 인간의 삶에 대한 하나님의 뜻을 반영해 주고 있다.

사도 바울은 율법의 기능과 역할을 하나님의 뜻과 표준에 따라 사람들에게 옳고 그른 것을 가르쳐 주는 “초등교사”로 보았다 (갈 3: 24 -25).

율법은 또한 목수의 다림줄과 같다.

목수의 다림 줄은 벽이 삐뚤어진 것을 보여주는 것이 목적이 되고 있는 것처럼, 율법도 울와 하나님의 관계가 바르지 못한 것을 보여주는 것이 목적이 되고 있다.

율법은 죄를 밝혀주고 심판하는 것이 그 목적과 역할이 되고 있다.  

율법은 죄로 인해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가 바르지 못한 것을 알려주기는 하지만, 바로 잡아 줄 수는 없다.

그 같은 일을 할 수 있는 것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복음이 되고 있다.

그러므로, 바울은 율법을 우리를 그리스도께로 인도하는 초등교사로 묘사하였다.


율법은 우리에게 구세주가 필요한 것을 어떻게 가르쳐주고 있는가?

예수님께서는 율법이 할 수 없는 것을 어떻게 제공해 주시고 있는가?


바울은 “알 것은 이것이니”라는 강조하는 말로, “율법은 옳은 사람을 위하여 세운 것이 아니”라고 하였다.

그러면, 바울은 십계명을 어긴 사람들의 예들을 들어, 율법은 불의한 자와 악한 자와 죄인들을 위해 세운 일이 되고 있음을 강조하였다.

바울은 먼저 여섯 가지 악한 일들을 비슷한 것끼리 세 쌍으로 묶어서 열거하였는데, 그것들은 십계명 중에서 하나님께 대한 네 가지 계명을 어긴 것과 관계되고 있다 (출 20: 3 -8).

첫 번째 쌍은 “불법한 자”와 “복종하지 아니하는 자”가 되고 있는데, ‘불법한 자’는 하나님의 법 밖에서 사는 사람들을 가리키고 있다.    

복종하지 아니하는 자’도 자신들이 하나님의 법의 적용을 받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점에서 불법한 자와 같다.

두 번째 쌍은 “경건하지 아니한 자”와 “죄인”으로, ‘경건하지 아니한 자’는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는 자를 가리키며 ‘죄인’은 하나님의 규범들, 특별히 그의 도덕률을 무시하는 자들을 나타내고 있다.

세 번째의 쌍은 “거룩하지 아니한 자”와 “망령된 자”인데, 아무 것도 거룩하게 여기는 않는 자들로, 특별히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모독하며 그의 이름을 망령되게 취급하는 자들이다.

아버지를 죽이는 자와 어머니를 죽이는 자와 살인하는 자”는 제 오계명과 제육 계명을 범한 죄가 되고 있다.

음행하는 자”와 “남색하는 자”는 “간음하지 말라”는 제칠 계명을 범한 죄로, 동성애도 간음의 범주에 포함되고 있다.

바울이 마지막으로 예로 든 “인신매매를 하는 자와 거짓말하는 자와 거짓 맹세하는 자”는 광범위하게 제 8, 제 9, 그리고 제 10계명을 범한 죄들이 되고 있다.

바울은 말하기를, 율법은 그 밖에도 바른 교훈을 거스르는 자를 위하여 주신 것이라고 하였다.


은혜의 관점에서 본 교훈 (디모데전서 1장 12 -17절) 


1장 12 -14절:


●     나를 능하게 하신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께 내가 감사함은 나를 충성 되이 여겨 내게 직분을 맡기심이니
●     내가 전에는 비방자요 박해자요 폭행자였으나 도리어 긍휼을 입은 것은 내가 믿지 아니할 때에 알지 못하고 행하였음이라
●     우리 주의 은혜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과 사랑과 함께 넘치도록 풍성하였도다


바울은 복음으로 인해 자신의 삶 속에서 생긴 변화를 돌이켜 보았을 때, 그것은 자신의 죄와 하나님의 은혜를 상기시켜 주는 일이 되었다.

그는 먼저 바울은 그가 받은 은혜에 감사하였다.

그리스도께서는 그의 복음으로 바울을 최악의 죄인으로부터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를 증거하며 전파하는 증인으로 변화 시켜 주셨던 것이다.

그래서 바울은 그리스도 예수께서 자기를 충성 되이 여겨 “직분”을 맡겨 주신 것과 그 직분을 잘 수행하도록 능력을 베풀어 주신 것을 감사하였다.

나를 능하게 하신 그리스도 예수께 내가 감사함은”이라는 말로, 바울은 디모데에게 신자들의 사역의 참 힘과 능력의 원천이 어디에 있는 지를 상기시켜 주었던 것이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하나님의 은혜는 단지 충분한 것만이 아니라,

그것은 계속해서 더욱 풍성하게 늘어난다.


바울은 과거의 죄를 철저하게 인식하고 있었다.

그는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를 통하여 역사하고 계신 것을 믿지 않고 도리러 훼방한 “비방자”였다.

그는 또한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들을 적극적으로 억압하고 핍박한, “박해자”였다.

그는 또한 다른 사람들에게 고통과 괴로움을 끼치기를 즐겨 하던 “폭행자”였다.

이전의 그 같은 행함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바울에게 자비와 은혜를 베풀어주셨다.

바울은 그가 “믿지 아니할 때에 알지 못하고 행하였음(으로)” 하나님께서 그같이 큰 은혜를 베풀어주셨다고 하였다.

하나님께서 자기에게 베풀어주신 자비와 은혜를 생각할 때, 바울은 하나님의 넘치는 은혜에 압도되었다.

그래서 그는 하나님의 은혜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과 사랑과 함께 넘치도록 풍성하였도다”고 고백하였다.


1장 15 -17절:


●     미쁘다 모든 사람이 받을 만한 이 말이여 그리스도 예수께서 죄인을 구원하시려고 세상에 임하셨다 하였도다 죄인 중에 내가 괴수니라
●     그러나 내가 긍휼을 입은 까닭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내게 먼저 일체 오래 참으심을 보이사 후에 주를 믿어 영생 얻는 자들에게 본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
●     영원하신 왕 곧 썩지 아니하고 보이지 아니하고 홀로 하나이신 하나님께 존귀와 영광이 영원무궁하도록 있을지어다 아멘


바울이 언급 한 “모든 사람이 받을 만한 이 말”은 그 당시에 교회에서 흔히 사용되던 신앙 선언문 같은 것일 수 있다.

어떤 경우가 되었든 간에, “그리스도 예수께서 죄인을 구원하시려고 세상에 임하셨다”는 그 말은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불러 회개시키려고 왔노라”고 하신 예수님의 말씀을 가리키고 있는 것이 확실하다 (눅 5: 32).

그 말은 “모든 사람이 받을만한” 것으로, 바울은 “미쁘다”라는 감탄의 말로 믿을 수 있는 것임을 선언하였다.

디모데와 에베소 교회는 예수님의 구속적 목적을 전적으로 믿을 수 있었다.

사람들은 그리스도 안에서 얻을 수 있는 하나님의 은혜의 메시지를 주저 없이 그리고 완전하게 받아들여야 하였다.  

바울은 고백하기를, “죄인 중에 내가 괴수니라”고 하였다.

그가 앞에서 극악한 죄인들을 목록으로 열거한 것은 오만에 찬 비난이 아니라, 그들의 우두머리가 되고 있음을 겸손하게 인정함으로 자기가 얼마나 큰 죄인인지를 밝히려는 것이었다.

바울이 죄인들의 우두머리가 되고 있는 것을 깨달은 일은 하나님의 자비와 은혜를 확대시켜 주었다. 

그리스도께서 죄인의 우두머리인 바울에게까지 그같이 “일체 오래 참으심을 보이사” 은혜를 베풀어주셨다면, 사람들은 누구나 하나님의 은혜를 받을 수 있다.  

바울은 자기가 받은 “구원”이 “주를 믿어 영생을 얻는 자들에게 본이” 되고 있는 것으로 보았다.

하나님의 은혜는 예수님을 믿는 모든 사람들에게 넘쳐난다.  

바울은 이 단원을 그같이 과분한 은혜를 베풀어주신 하나님을 송축하는 말로 끝맺고 있다.

하나님의 특성들을 강조하면서, 바울은 하나님을 왕으로 찬양하였다.

그는 현재는 물론, 과거에도 존재하셨고 미래에도 똑같이 존재하실 “영원하신 왕”이시다.

그는 영원히 살아 존재하시는 “썩지 아니하(는)” 왕이시다.

그는 영적인 존재로 “보이지 아니하(는)” 왕이시다.

그는 또한 그와 같거나 유사한 대상이 없는 “홀로 하나이신” 왕이시다.  

그는 “영원무궁하도록” “존귀”와 “영광”을 받으시기에 합당하신 왕이시다.

믿는 자들이 하나님을 그같이 송축할 때에, 우리는 바울과 함께 “아멘”으로 화답한다.

믿는 자들은 모든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은혜와 자비를 보여주는 전시품이다.  



말씀을 나의 상황에 적용하기:


●     성경 말씀을 가르치는 교사들은 교회와 하나님께 책임을 지고 있다.  
●     구원은 예수님을 믿는 믿음을 통해서만 얻을 수 있다.
●     믿는 자들은 모든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은혜와 자비를 보여주는 전시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