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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계시는 예수님 - 제 13과 - 2019년 5월 26일 주일 장년성경연구 - 마가복음 15장 42 -47절; 16장 1 -8절

글쓴이 : 강호길 날짜 : 2019-05-20 (월) 22:53 조회 : 73

장년성경연구 교사 교안

2019년 5월 26일 주일 용  

 

제 13과

 

 

살아계시는 예수님 

 

 

학습구절: 마가복음 15장 42 -47절; 16장 1 -8절  

 

성경진리:

예수님은 그를 믿는 모든 사람을 위하여 사망의 권세를 이기시고, 오늘도 살아계신다.

 

주요교리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은 죽은 자 가운데서 영광스러운 몸으로 살아 나시고, 십자가에 못 박히시기 전에 제자들과 함께 있었던 분으로 그들에게 나타나셨다 (요 20: 19).  

 

암송구절:  마가복음 16장 6절

청년이 이르되 놀라지 말라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히신 나사렛 예수를 찾는구나

그가 살아나셨고 여기 계시지 아니하리라 보라 그를 두었던 곳이니라

“Don’t be alarmed,” he said.  “You are looking for Jesus the Nazarene,

who was crucified. He has risen! He is not here. See the place where they laid him.”       

 

 

시작하는 글:

 

세상 사람들에게 가장 많이 사랑 받는 어떤 이야기들은 절망적으로 보이는 상황을 소재로 삼고 있다.

전혀 소망이 없는데, 극적인 반전이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대부분의 경우, 그 같은 반전은 한 구원의 영웅에 의해 시작되고 있다. 

우리는 성경에 기록 된 많은 역사적 사건들에서 그 같이 역동적인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을 보게 된다.

 

당신은 파국적인 일이 반전(反轉)을 이루게 된 좋아하는 이야기가 있는가?

마침내 그 같은 상황이 바뀌어 좋은 결과가 되었을 때, 당신은 어떻게 반응하였는가?

그것이 당신에게 충격적인 일이 된 것은 무슨 이유인가 

 

 

본문배경설명   

 

마가복음 15장 42절부터 16장 20절까지

 

몇 주 전에 (제 8과에서), 우리는 부활절 때 예수님의 죽음에 초점을 맞추기 위해 예수님이 십자가의 처형을 받으신 것에 대한 마가의 이야기를 공부하였다.

우리가 예수님의 죽음을 그 당시 그를 믿고 따랐던 제자들의 입장과 관점에서 볼 때, 그것은 모든 예상을 뛰어넘는 재난이었다.

열두 제자의 대변인 격이었던 시몬 베드로는 예수님을 “그리스도,” 즉 성경에 예언된 구원자로 확신을 가지고 자신 있게 고백하였다 (마가 복음 8: 29).

예수님이 다윗의 성인 예루살렘으로 들어오실 때 군중들은 “호산나 찬송하리로다”를 외치면서 그를 왕으로 환영하였다 (11: 9 -10).

그런 다음, 상상할 수 없는 일이 일어났다.

그들의 세계는 산산 조각이 났던 것이다.

그들이 모든 신뢰와 희망을 두었던 메시야가 십자가의 처형을 받고 죽으셨던 것이다.

더 이상 할 것이 없었다.  더 이상 무엇을 할 수 있겠는가?

마가는 그의 복음서를 기록할 때 신중하고도 세심하게 배려하여 이 파국적인 일이 예수님 자신이 여러 번에 걸쳐 예언하신 일이 되고 있음을 그의 독자들에게 알려 주었다 (8: 31-32; 9: 31; 10: 33-34).

또한 예수님은 그때마다 그 대참사(大慘事)가 반전을 이루게 될 것을 예언 하셨다.

삼일 째 되는 날에 그는 부활하여 새로운 생명으로 다시 살아나실 것이다.

그러나, 마가는 예수님의 예언의 말씀을 들은 제자들이 그가 의미하는 것을 아직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을 강하게 보고하였다.

당시 그들 제자들은 어떤 방법으로든지 죽은 자의 부활이 무엇을 의미하는 지를 이해할 수 없었다.

결국, 부활은 인간의 역사에서 결코 일어난 적이 없었다.

그들은 죽음과 부활에 관한 예수님의 말씀을 완전히 차단(遮斷)해 버렸다.

그것이 바로 제자들이 예수님의 죽음을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엄청난 충격을 받은 이유가 되고 있다.

마가복음서의 마지막 공과로 예수님의 부활에 초점을 맞추어 공부를 할 때, 우리는 예수님의 부활이 모든 것을 변화시키는 방법에 대해 경외심을 새롭게 하기를 바란다.

이것은 지금까지 있은 가장 큰 재앙의 반전이 되고 있다.

예수님은 그를 믿는 모든 사람을 위하여 죽음의 권세를 이기시고, 오늘도 살아계신다.

 

학습구절 연구

 

무덤에 묻히신 예수님 [마가복음 15장 42 -47절]

 

15장 42 -43절


●    이 날은 준비일 곧 안식일 전날이므로 저물었을 때에
●    아리마대 사람 요셉이 와서 당돌히 빌라도에게 들어가 예수의 시체를 달라 하니 이 사람은 존경 받는 공회원이요 하나님의 나라를 기다리는 자라

 

마가는 놀랄만한 양의 관심을 쏟아 예수님의 시체를 무덤에 묻은 일을 자세히 기록하였다.

그는 예수님이 정말로 죽으셨다는 사실을 독자들이 확실히 이해하게 되기를 원하였다.

그는 또한 여인들이 예수님의 시체가 묻힌 정확한 장소를 자세히 보아두었다가 “안식 후 첫날 매우 일찍이” 그곳에 찾아갔을 때 실수를 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강조하였다.

이 두 가지는 모두 예수님의 부활을 가리키는 증거의 중요한 구성요소가 되었다.

마가는, 가끔씩 그랬듯이, 그의 이방인 독자들을 위해 ‘유대인의 용어’들을 설명하였다.

“준비일 곧 안식일 전날”이라는 말도 또 다른 한 예가 되고 있다.

오늘날의 시간 계산법으로 하면 “안식일”은 금요일 일몰부터 토요일 일몰까지로 토요일이었다.

그러므로유대인들이 안식일을 지키는데 필요한 모든 준비를 갖출 때인 “준비일” 혹은 “예비일”은 “안식일 전날”로 금요일 일몰까지가 되었다.

저물었을 때에”로 번역된 말은 금요일 저녁 일몰을 전후로 하여 약 두 시간 이내가 되는 때가 되고 있다.

그 말이 나타내고 있는 확실한 뜻은 안식일이 더럽혀지지 않도록 예수님의 시체를 장사 지내는 일을 일몰 전에 끝내야 한다는 것이다 (신 21: 22 -23).   

성경학자들은 “아리마대”가 어느 곳이었는지를 확실히 알지 못하고 있다.

누가복음은 아리마대를 “유대인의 동네”로 묘사하고 있다 (눅 23: 51).

  

요셉은 성경에서 단지 예수님의 장례를 위해 무덤을 내어 준 것으로 인해서만 우리에게 알려지고 있다.

마가는 더 나아가 요셉을 “존경 받는 공회원,” 즉 당시 종교재판의 주체였던 ‘산헤드린’의 일원이자 “하나님의 나라를 기다리는 자”로 밝혔다.

마태복음 27장 57절은 그를 “예수의 제자”로 불렀는데, 요한복음 19장 38절은 요셉이 유대인들이 두려워서 그 같은 사실을 숨겼던 일을 특별히 언급하였다.

요한은 또한 요셉이 밤중에 예수님을 찾아왔던 니고데모(요 3: 1 -21)의 도움을 받은 일을 언급하였다 (요 19: 38).

요셉이 와서 당돌히 빌라도에게 들어가 예수의 시체를 달라”고 한 것은 그가 마침내 예수님 때문에 어떤 위험도 감수하려고 하고 있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예수님의 시체는 로마 정부의 재산이었고, 그것을 가지고 어떻게 하느냐는 총독이 결정할 문제였다.

 

요셉이 총독에게 예수님의 시체를 달라고 했을 때 그는 어떤 위험을 감수하였는가?

한 사람이 예수님을 위해 일어설 때, 직면하게 될 위험 요인들은 어떤 것들이 있는가?

 

15장 44 -45절


●    빌라도는 예수께서 벌써 죽었을까 하고 이상히 여겨 백부장을 불러 죽은 지가 오래냐 묻고
●    백부장에게 알아 본 후에 요셉에게 시체를 내주는지라 

 

십자가의 처형에 의한 죽음은 천천히 그리고 고통스럽게 다가 오도록 고안된 것으로, 처형을 받는 자들은 극도의 고갈과 질식에 의해 죽을 때까지 며칠 동안 십자가에 달려 있었다.

죄수를, 다리를 꺾는 방법 등으로, 빨리 죽게 하는 방법들도 있었다.

그러나, 예수님은 처형군인들이 그 같은 치명적인 방법을 사용하기 전에 이미 죽어 있었다.

그런데도, “그 중 한 군인이” 예수님이 죽으신 것을 확인할 목적으로 “창으로 옆구리를” 찔렀다 (요 19: 31 -34 참조).

빌라도 총독에게 요셉이 예수님의 시체를 요청한 것은 놀라운 일이 되었다.

그것은 예수님이 이미 죽으신 것을 암시하는 일이 되었기 때문이었다.

처형을 담당한 군인들이 아직 그 사실을 총독에게 보고하지 않은 것이 분명하였다.

어쨌든, 빌라도 총독은 요셉의 말만 들으려고 하지 않았다.

그는 처형을 책임지고 있던 백부장을 불러 예수님이 죽은 것을 확인하였다.

빌라도 총독은 백부장에게 알아 본 후에, 예수님의 시신을 요셉에게 내주어 매장하게 하였다.

 

15장 46 -47절


●    요셉이 세마포를 사서 예수를 내려다가 그것으로 싸서 바위 속에 판 무덤에 넣어 두고 돌을 굴려 무덤 문에 놓으며
●    막달라 마리아와 요세의 어머니 마리아가 예수 둔 곳을 보더라

 

요셉이 세마포를 사서”라는 말은 안식일이 임박하기는 했지만, 아직 공식적으로 시작되지는 않았던 것을 나타내주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은 매우 짧은 시간이었다.

요한복음 19장 39절은 산헤드린의 또 다른 회원으로 은밀히 그리스도를 따르는 자이던, 니고데모도 요셉을 도와 준 것을 밝히고 있다.

그는 약 75파운드쯤 되는 “몰약과 침향 섞은 것”을 가지고 왔다.

이 향료들은 썩은 냄새를 제거하기 위해 세마포로 시신에다 감싸기 위한 것이었다.

니고데모가 요셉이 예수님의 시체를 십자가에서 내리는 것을 도울 수 있는 시간에 도착했는지 여부는 확실하지 않다.

그렇지만, 니고데모는 그같이 한 것으로 보인다.

두 사람은 함께, 혹은 하인들의 도움을 받아, 예수님을 십자가에서 “내려다가” 요셉이 사온 세마포와 니고데모가 가져온 향료들을 가지고 그 시체를 쌌다.

요셉은 이미 예수님의 시신을 어디에다 매장할지를 결정해 놓고 있었다.

요셉은 “유대인의 장례 법대로 그 향품과 함께 세마포”로 싼 예수님의 시체를(요 19: 40) “바위 속에 판 무덤”에다 넣어두었다.

마태복음 27장 60절은 그같이 바위 속에 판 무덤이 요셉의 것으로 “새 무덤”이 되고 있음을 밝히고 있다.

다시 말하면, 그것은 “아직 사람을 장사한 일이 없는 새 무덤”이 되고 있다 (눅 23: 53; 요 19: 41).

또한 요한 복음 19 장 41 절은 장례식 장소가 십자가의 처형 장소에서 가깝고 동산 안에 있었던 것을 밝히고 있다.

동굴 무덤은 종종 시간이 지남에 따라 복합적인 매장 장소로 사용되었다.

그러므로, 그 무덤 입구는 “돌을 굴려”다 막아놓았다.

어떤 경우에는, 거대한 돌을 바퀴처럼 둥근 모양으로 조각해 내어, 그것을 굴려서 입구를 막아놓곤 하였다.

네 복음서 모두가 여러 명의 여자 추종자들이 예수님의 십자가 처형을 직접 목격하였다고 보고하고 있다 (마 27: 55 -56; 막 15: 40; 눅 23: 49; 요 19: 25 참조).

그뿐 아니라, 누가복음 23장 49절은 예수님이 죽은 후에 군중들이 흩어지기 시작한 후에도 이들 여인들은 그 자리에 남아있었던 것을 나타내고 있다.

적어도 이들 중 어떤 여인들은 요셉과 니고데모가 예수님의 시체를 십자가에서 내리러 올 떄 까지 그 자리에 남아있었다.

마가복음서는 막달라 마리아와 요세의 어머니 마리아가 예수님의 시체가 어디 묻혀있는지를 알 수 있도록 동산에 있는 무덤까지 그들을 따라갔다고 기록하고 있다.

막달라 마리아는 갈릴리의 서쪽 해안에 있던 막달라 마을 출신이었다.

예수님은 그 녀에게서 일곱 귀신을 쫓아내 주셨는데, 그것은 예수님께 헌신하게 만든 계기가 되었다 (막 16: 9; 눅 8: 2 참조).

두 번째 마리아는 마태복음 27장 56절에서 “야고보와 요셉의 어머니 마리아”로 밝혀지고 있고, 마가복음 15장 40절에서 “작은 야고보와 요세의 어머니 마리아”로 밝혀지고 있는 여인과 같다.

예수님의 죽음과 장례에 관한 이 모든 세부 사항들은 예수님이 육체의 죽음을 죽으셨다는 사실을 강조하고 있다.

 

슬픔에 잠긴 여인들 (가복음 16장 1 -4절]

 

16장 1 -3절


●    안식일이 지나매 막달라 마리아와 야고보의 어머니 마리아와 또 살로메가 가서 예수께 바르기 위하여 향품을 사다 두었다가
●    안식 후 첫날 매우 일찍이 해 돋을 때에 그 무덤으로 가며
●    서로 말하되 누가 우리를 위하여 무덤 문에서 돌을 굴려 주리요 하더니   

 

안식일은 토요일 일몰에 끝이 났다.

상점들은 그 후 몇 시간 동안 열렸을 가능성이 있다.

무덤을 찾아갔던 여인들은 요셉과 니고데모가 “유대인의 장례 법대로” 향품과 향유로 예수님의 시신을 준비한 것을 알지 못하였거나 만족해하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분명히 그들은 예수님의 부활을 예상하지 않았다.

실제로, 그들은 마지막 예의를 표하며 인사를 할 수 있는 기회를 찾고 있었다.

따라서, 그들 여인들은 예수님의 시신에 바르기 위하여 “향품을 사다 두었(었다).”

여인들이 그같이 하려는 목적은 유대인들이 하지 않는 ‘시체의 방부처리’를 하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부패하는 냄새를 없애고, 더 중요한 것으로는 자신들의 주님이셨던 예수 그리스도께 애정 어린 마지막 헌신을 나타내려는 것이었다.  

이 구절의 두 가지 면은 예수님에 대한 여인들의 헌신을 강조하고 있다.

첫째로, 그들은 “그 무덤” 즉 예수님이 묻힌 무덤으로 찾아갔다.

16장 1절은 그들을 예수님의 십자가의 처형을 직접 목격했던 막달라 마리아와 야고보와 요한의 어머니인 마리아와 살로메로 밝혔다.

그들 여인들은 빌라도 총독이 무덤 밖에다 주둔시켰던 “경비병”들에 대해서 잘 알고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 (마 27: 62 -66).

그러나 그것도 여인들이 무덤을 찾아가는 것을 막지 못했다.   

둘째로, 그 여인들은 “매우 일찍이 해 돋을 때에” 무덤으로 찾아왔다.

요한복음은 그것을 “아직 어두울 때”로 밝히고 있다 (요 20: 1).

어쩌면, 그 여인들은 어두울 때에 출발하여 해가 돋을 즈음에 무덤에 도착했을 수도 있다.

어쨌든, 그 여인들은 그날 다른 어떤 일보다 예수님께 마지막 헌신의 뜻을 표하려는 강한 결의에는 변함이 없었다.  

모든 복음서는 이 일이 “안식 후 첫날” 즉 일요일에 일어 났음을 강조하고 있다 (마 28:1; 막 16: 2; 눅 24: 1; 요 20: 1).

시간이 지남에 따라, 그리스도인들은 그리스도의 부활을 축하하고 기념하여 이 날을 “주의 날”로 정하여 지키기 시작하였다.  

똑 같은 이유로, 교회들은 토요일보다 일요일에 모여 예배를 드리기 시작하였다 (행 20: 7; 고전 16: 1 -2; 계 1: 10).

그들 여인들이 직면하게 될 가장 큰 장애물의 하나는 “무덤 문”을 막고 있던 큰 “”이었다.

그들은 무덤으로 가면서 서로 말하기를, “누가 우리를 위하여 무덤 문에서 돌을 굴려 주리요”라고 하였다.

그들 여인들은, 깊은 슬픔과 좌절감에 쌓여 있음도 불구하고, 자신들이 하려는 일을 계속 수행하겠다는 마음과 결의에는 변함이 없었다.

 

16장 4절


●    눈을 들어본즉 벌써 돌이 굴려져 있는데 그 돌이 심히 크더라

 

눈을 들어본즉”으로 번역된 말은 두 가지 측면에서 생각해 볼 수 있다.

한 가지는 여인들이 낮은 곳에서 높은 곳으로 올라가면서 눈을 들어 무덤을 바라본 것을 나타낼 수 있다.

반면에, 그것은 또한 그들의 깊은 슬픔과 좌절감을 강조한 말이 될 수도 있다.

그들은 깊은 슬픔과 좌절감에 빠져 땅을 보며 걸어가다가 무덤가까이 와서 눈을 들어 바라다 보았을 수 있다.

그들은 자신들이 본 것으로 인해 놀라움을 금치 못했을 것이 의심의 여지가 없다.

심히 큰 돌이 “굴려져” 있었다.

영광스러운 몸을 입으신 주님은 무덤 밖으로 나가시기 위해 입구를 막고 있던 돌을 옮기실 필요가 없었다.

그러나, 그 돌이 옮겨진 것은 예수님의 부활을 최초로 목격한 증인들로 하여금 무덤이 그들의 주님을 붙들어 놓을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기 시작하는데 도움이 되었다.

오늘날, 신자로서 우리는 사랑하는 사람들이 주님을 믿다가 죽을 때 여전히 슬픔의 고통을 느낀다.

그러나, 우리는 소망 없는 사람처럼 슬퍼하지 않는다.

우리는 다가올 세상에서 그들을 다시 볼 것이다 (살전 4: 13 -14).

 

부활하신 예수님 [마가복음 16장 5 -8절]

 

16장 5 -6절


●    무덤에 들어가서 흰 옷을 입은 한 청년이 우편에 앉은 것을 보고 놀라매
●    청년이 이르되 놀라지 말라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히신 나사렛 예수를 찾는 구나 그가 살아나셨고 여기 계시지 아니하니라 보라 그를 두었던 곳이니라  


마가 복음은 무덤을 지키던 경비병들에 대해 언급하지 않고 있다.

마태복음 28절 4절에 “지키던 자들이 그(천사)를 무서워하여 떨며 죽은 사람과 같이 되었더라”고 기록된 것을 보면, 경비병들은 두려움과 공포에 떨고 있었고, 여인들에게 아무 위협이 되지 않은 것이 분명하다.

걱정하며 염려하던 문제들이 예기치 않게 해결된 것을 보자(16: 3 -4), 여인들은 주저하지 않고 무덤의 입구를 지나 안으로 들어 갔다.

그들은 자신들이 행하려고 온 일을 하기를 기대하고 있었다.

여인들은 자신들이 행하려고 한 일, 즉 유대인의 장례 절차에 따라 마지막으로 예수님의 시신에다 준비해 가지고 온 향품과 향료를 발라 드리려고 하였다.

의심 할 여지없이, 그들은 시체가 없는 것을 재빨리 깨달았다.

대신에, 그들은 “흰 옷을 입은 한 청년이 우편에 앉은 것을 보고” 놀랐다.

청년”으로 번역된 헬라어는 일반적으로 사람이나 남자를 지칭하는 용어가 아니다.

대신에, 그 용어는 실체가 무엇이든 젊은 것을 강조하고 있다.

마태복음 28장 2 -5절은 그가 천사인 것을 밝히고 있으며, “그 형상이 번개 같고 그 옷은 눈 같이 희(다)”는 말로 이를 확증해 주고 있다.

여인들은 무덤 안에서 청년처럼 보이는 천사가 “우편에 앉은 것을 보고” 놀랐다.

놀랐다”로 번역된 헬라어는 놀라움과 두려움의 이중적인 면을 강조하고 있다.

마가는 “우편”이라는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 지를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았다.

그는 여인들이 무덤에 들어갔을 때 그들의 오른 쪽을 뜻했을 수 있다.

비유적으로, 그 문구는 영예 또는 권세의 자리를 나타낼 수도 있었다

두 가지 간단한 말로, 천사는 여인들의 주요 관심사에 대해 언급하였다.

첫째로, 그는 여인들에게 “놀라지 말라”고 하면서, 그들의 불안한 마음을 진정시켜주었다.

둘째로, 그는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히신 나사렛 예수를 찾는구나”라는 말로, 여인들이 무덤에 왜 왔는지를 알고 있음을 알려주었다.

그들은 슬픔에 차서 무덤을 찾아왔지만, 그들의 슬픔은 곧 기쁨으로 바뀔 것이다.

그가 살아나셨(다)”는 말은 부활절의 찬양이 되고 있다.

천사는 실종된 시체에 대해 말하지 않았다.

예수님은 죽음에서 부활하셨다!

여기 계시지 아니하니라”는 말은 너무 뻔한 말처럼 들릴지 모르지만, 예수님이 살아나신 사실을 여인들의 마음에 심어준 놀라운 일이 되었다.

이 놀라운 사실을 강조하기 위해, 천사는 여인들에게 “그를 두었던 곳”을 보라고 하였다.

그들은 예수님의 시체가 더 이상 무덤에 없다는 것을 직접 관찰 할 수 있었다.  

재판할 때에 여인의 증언을 인정하지 않을 정도로, 여성을 매우 낮게 평가하며 차별하는 사회에서, 하나님은 그들을 택하셔서 그의 아들의 부활을 목격하고 증거하는 최초의 증인으로 삼으셨다.   

 

16장 7절


●    가서 그의 제자들과 베드로에게 이르기를 예수께서 너희보다 먼저 갈릴리로 가시나니 전에 너희에게 말씀하신 대로 너희가 거기서 뵈오리라 하라 하는지라

 

천사는 여인들에게 새롭고도 영광스러운 사명을 주었다.

그들은 예수님의 시신에다 향품과 향유를 발라드리고 마지막 헌신의 뜻을 표하기 위해 슬픔에 차서 찾아왔었다.

그런데 이제 그들은 “가서 그의 제자들과 베드로에게” 예수님이 살아나셨다는 기쁜 소식을 전하라는 임무를 띠고 돌아가게 된 것이다.

마가가 베드로를 별도로 특별히 언급한 것은 그가 그의 복음서의 출처로 시몬 베드로에게 크게 의존하였다는 사실을 뒷받침해 주는 단서가 될 수 있다.

예수님은 전에 제자들에게 말씀하시기를, 부활 후에 그들을 갈릴리에서 만나실 것이라고 하셨다 (마 26: 32).

천사는 여인들에게 그 약속의 말씀을 제자들에게 상기시켜 주라고 명하였다.

그들은 곧 갈릴리에서 주님을 뵙게 될 것이다 (마 28: 16).

 

16장 8절


●    여자들이 몹시 놀라 떨며 나와 무덤에서 도망하고 무서워하여 아무에게 아무 말도 하지 못하더라

 

마가복음은 빈 무덤에 대한 반응으로, 여인들의 놀라움과 두려움을 강조하고 있다.

천사의 안심시키는 말과 예수님이 부활하셨다는 선언에도 불구하고, 여인들은 얼마 동안 “몹시 놀라 떨며” 어찌할 줄을 몰랐다.

그들은 무덤에서 도망하듯이 뛰쳐나왔다.

무서워하며 아무에게도 아무 말도 하지 못하더라”는 말은 그들이 돌아갈 때에 서로 말하지 않은 것을 뜻할 수 있다.   

우리는 마침내 여인들이, 특별히 막달라 마리아가, 부활하신 주님을 만난 것을 알고 있다 (마 28: 9, 요 20: 14-17 참조).

또한 그들은 후에 제자들에게 주님의 부활에 대한 이야기를 하였고 처음에 그들은 회의적인 반응을 보였다 (눅 24: 11 참조).

때가 되자, 부활하신 주님은 여러 번에 걸쳐 제자들에게 나타나셔서, 성령님의 오심과 교회 시대의 시작을 위해 그들을 준비시키셨다.

오늘 날 신자들인 우리는 최초의 제자들이 받은 것과 같은 것으로, 세상과 나누기 위한 좋은 소식을 가지고 있다.

우리는 또한 그리스도께서 초대 교회에 주신 것과 같은 지상명령을 가지고 있다 (마 28: 18 -20).

우리는 가서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 예수님이 영원히 살아 계시다는 기쁜 소식을 전해야 한다.

그는 죄와 죽음의 권세를 정복하시고, 죄를 회개하고 그를 주와 구세주로 믿는 모든 사람에게 영생을 주신다.

 

 

말씀을 나의 상황에 적용하기:


●    예수님은 육체의 죽음을 죽으셔서, 우리의 죄 값을 치러 주셨다.  
●    예수님은 제자들이 비탄에 빠져있을 때 소망을 주신다.    
●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는 다른 사람들에게 전할 기쁜 소식이 있다. 예수님은 죽음의 권세를 이기시고 살아나셨다.

 

당신과 당신의 성경 공부반원들이 예수님을 섬길 수 있는 방법들은 어떤 것들이 있는가?

당신은 어떻게 하면 아리마대 사람 요셉처럼 자신의 신앙을 담대하게 사람들에게 밝히는 모범을 따를 수 있는가?

 

당신은 지금 어떤 슬픔이나 두려움을 겪고 있는가?

예수님의 부활의 진리가 그 같은 일을 겪고 있는 당신에게 어떤 영향을 끼치고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