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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세주로 오신 예수님 - 제 8과 - 2019년 4월 1`일 주일 - 장년성경연구 교사용 교재 - 마가복음 15장 27-39절

글쓴이 : 강호길 날짜 : 2019-04-15 (월) 05:17 조회 : 120

장년성경연구 교사 교안

2019년 4월 21일 용  


제 8과



구세주로 오신 예수님



학습구절: 마가복음 15장 27 -39절  


성경진리: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음은 우리의 죄로 인해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생긴 건널 수 없는 죽음의 강을 연결시켜주는 다리가 되고 있다.    


주요교리구 원

예수 그리스도를 자신의 구세주로 믿는 믿음이 없이는 구원을 받을 수 없다 (행 4: 12).



암송구절:  마가복음 15장 39절


예수를 향하여 섰던 백부장이 그렇게 숨지심을 보고 이르되

이 사람은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었도다 하더라    

“And when the centurion, who stood there in front of Jesus,

saw how he died, he said, ‘Surely this man was the Son of God.’”      



시작하는 글:


1940년 11월 7일에, 타코마 해협 다리 (the Tacoma Narrow Bridge)가 푸젯 사운드(Puget Sound)로 붕괴되었다.

그 다리는 푸젯 사운드 해협에서 부는 강한 바람으로 생긴 진동을 견디지 못하여 붕괴하고 말았다.

다리는 우리가 접근할 수 없는 곳에 접근할 수 있게 해 준다.

다리는 또한 한 지점에서 다른 지점으로 갈 수 있게 해 주는 수단과 방법 이상의 것이 되고 있다.

교량은 상거래와 관계를 조장해 주는 역할을 한다.

우리는 그 다리가 안전하다고 믿는다.

영적으로, 죽음에서 생명으로 건너가게 해 줄 수 있는 다리는 하나밖에 없다.

그 다리의  이름은 예수 그리스도이다.

그래서 베드로는 예수 그리스도를 다음과 같이 소개하였다:

다른 이로써는 구원을 받을 수 없나니 천하 사람 중에 구원을 받을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라” (행 4: 12).

그는 우리 죄를 대속하기 위해 죽으셨고 그 만이 우리의 구세주가 되신다.   


당신의 삶에서 중요한 다리는 어떤 것들이 있는가?

예수님은 어떻게 우리의 영적 삶의 신뢰할 수 있는 교량이 되고 있는가?



본문배경설명   


마가복음 14장 53절부터 15장 41절까지


하나님의 차원에서, 예수님의 십자가의 처형은 인간을 구원하시려는 하나님의 계획의 일부이다 (사도행전 2: 23 참조).

인간의 관점에서 볼 때,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신 일은 일세기 당시의 유대 종교 지도자들의 음모와 계획이 절정에 다다르게 된 일이었다 (마 26: 3 -4, 14 -16; 막 14: 1).

이 과의 학습구절의 바로 이전의 문맥은 예수님이 가룟 유다에게 배반을 당하신 일과 겟세마네 동산에서 종교지도자들이 보낸 관원들에게 붙잡히신 다음 그들에게 끌려가 공회 앞에서 불법적인 재판을 받으신 일을 주요내용으로 삼고 있다.

우리의 시간 계산 법에 따르면,  예수님이 붙잡히신 것은 금요일 매우 이른 새벽이 되고 있다.

그것은 예수님이 열두 제자들과 함께 유대인들이 매년 지키는 유월절 음식을 잡수시고 나서 오래 지나지 않은 시간이었다.

해가 질 때를 하루의 시작으로 삼는 유대인의 시간 계산법에 따르면, 예수님이 제자들과 함께 유월절 음식을 드신 다음, 겟세마네 동산으로 가셔서 기도하시다가 붙잡혀 유대 공회 앞에서 심문을 당하시고, 그 다음 빌라도 총독에게 보내어 재판을 받으시고,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고 무덤에 묻히기까지의 그 모든 사건들은 하루에 일어난 것이다. 

마가복음 14 53절부터 65절까지는 예수님이 “대제사장들과 장로들과 서기관들”로 불려지고 있는 공회(산헤드린) 앞에서 심문을 받으신 것을 기록하고 있다.

그들의 목적은 예수님을 죽일 구실과 증거를 찾는 것이었다.

유대 법에 의하면, 공회가 그같이 밤 중에 모여 심문하는 것은 그 자체가 불법이었다.

어찌되었건, “대제사장들과  공회가 예수를 죽이려고 그를  증거를 찾되 얻지 (못하였다.)”

이는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고 행하신 일에 대한 여러 증인들의 증언이 “서로 일치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그러자 대제사장이 한가운데서 일어나 “네가 찬송 받을 이의 아들 그리스도냐”는 질문으로 예수님으로 하여금 “내가 그니라”는 대답으로 맹세하게 하였다.

대제사장은 옷을 찢으며 예수님의 대답을 신성모독죄로 돌렸고, 공회는 모두 “예수를 사형에 해당하는 자로 정죄하(였다.)” 

그런 다음 그들은 예수님을 말로 혹은 신체적으로 학대하기 시작하였다.

마가복음 14 66부터 72절까지는 베드로가 예수님을 알지 못한다며 예수님을 부인한 이야기를 싣고 있다.

그는 예수님이 공회의 심문을 받고 있었던 곳인 대제사장의 집 뜰 안까지 따라 들어가서 있었다.

그곳에 있던 사람들이 베드로를 보고 예수님과 한패라고 하자, 예수님을 알지 못한다고 부인하였다.

심지어 세 번째에는, “저주하며 맹세하면서 까지 예수님을 알지 못한다고 하였다.

그러자 “닭이   번째 (었다.)

그러자, 베드로는 자기가 예수님께 한 말과 예수님이 자기에게 하셨던 말씀, 곧 “닭이   울기 전에 네가   나를 부인하리라 하심이 기억되어”(14: 29 31), 자책하며 슬프게 울었다.

마가복음 15 1절부터 20절까지는 로마제국의 권력자로, 유대 지역의 총독이었던 “본디오 빌라도” 앞에서 예수님이 재판을 받은 이야기이다.

그는 당시 사형 판결을 내리고 집행할 수 있는 법적인 권한을 가진 인물이었다.

빌라도는 처음에는 예수님이 “유대인의 왕”이라고 주장한다는 유대종교 지도자들의 고발을 그들의 종교적인 문제로 다루려고 하였다.

그러나 유대인 지도자들은 이를 정치적인 문제로 부각시켜, 예수님이 로마황제인 가이사의 경쟁자이자 위협적인 존재라고 주장하였다.

그들은 “무릇 자기를 왕이라 하는 자는 가이사를 반역하는 ”이라고 하면서 그를 놓아주면 “가이사의 충신이 아니니이다”고 빌라도 총독을 위협하였다 (요 19: 12).

더 나가서, 그들은 군중을 충동하고 선동하여 큰 소리로 예수님을 “십자가에  박게 ()”고 하였다.

빌라도는 예수님을 놓아주려고 시도하였으나, 할 수 없이 그는 예수님을 정치적 반역죄로 사형판결을 내리고 채찍질 한 후 십자가의 처형을 받게 넘겨주었다.

마가복음 15 21절부터 39절까지는 예수님이 십자가의 처형을 받으신 일과 숨을 거두신 일을 기록하고 있다.

이번 주 학과의 학습구절들은 이 단원에서 나온 것이 되고 있다.

본문 배경설명의 마지막 부분은 마가복음 15장 40절부터 47까지로, 금요일 해가 저물기 전에 예수님의 시체가 무덤에 묻힌 이야기가 되고 있다.

마가는 예수님의 처형과정을 모두 지켜본 여인들을 특별히 언급하였고, 부자로 예수님의 시체가 묻힐 무덤을 제공한 아리마대 사람  요셉에 대해 기록하였다.  



학습구절 연구


십자가에 못박히신 예수님 [마가복음 15장 27절]


15장 27절


  • ●   강도 둘을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으니 하나는 그의 우편에, 하나는 좌편에 있더라


십자가의 처형은 일찍이 고안된 가장 고통스럽고 잔인하며 수치스러운 처형 방법으로, 로마법은 로마 시민들에게는 그 처형을 금하였다.

십자가의 처형은 한 명의 지휘 장교 (백부장)와 네 명의 군인이 한 조가 되어 집행하였다.

십자가의 처형은 로마제국에 대한 반역과 다른 위협에 대해 경고하는 것을 주목적으로 삼았다.

십자가는 세로 대와 가로 대로 조립된 것으로, 가로 대는 세로 대의 위에 얹어놓거나 맨 윗부분에 매달아 놓았다.  

죄수의 손과 발은 십자가에 못 박거나 밧줄로 묶어 놓을 수 있었다.

처형 받는 죄수의 신체적 상태와 숨을 쉬기 위해 몸을 끌어올릴 수 있는 능력에 따라, 죄수는 2 ~ 3 일 동안 죽지 않고 살아있는 경우도 있었다.

역사적인 기록과 고고 학적 증거물들을 통해 십자가의 처형에 대한 세부 사항들이 많이 알려져 있다.

아마도 십자가 처형은 1 세기 당시에 잘 알려져 있었기 때문에, 또한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박혀 처형당하신 사실이 자세한 설명보다 더 중요한 것으로 보았기 때문에, 마가나 다른 복음서 저자들은 십자가 처형에 대한 세부사항들을 묘사하지 않았다.

그리고 물론 중요한 것은 예수님이 폭력적인 죽음을 당하신 의미이다.

강도 둘을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으니”라는 말은 그날에 이미 십자가의 처형 계획이 일정으로 잡혀 있었던 것을 암시하고 있다.

예수님은 단순히 “민란을 꾸미고 그 민란 중에 살인을 하고 체포된” “바라바”대신 십자가의 처형을 받으심으로, 무죄한 자가 죄인 대신에 죽는 일이 되었던 것이다.

강도 둘이 “하나는 (예수님의) 우편에,” “하나는 (예수님의) 우편에”서 십자가에 못박힌 것은, 역설적이게도, 야고보와 요한이 예수님의 오른 편과 왼편의 영광스러운 자리에 앉게 해 달라고 한 이기적인 요구를 회상하게 해 준다 (10: 37).

그 같은 영예의 자리에 앉는 것에는, 예수님이 암시하셨던 것처럼, 엄청난 고통이 수반될 수도 있다 (10: 38-40).

예수님은 죽음을 자취하셨는데, 그 죽음은 죄가 없으신 분이 죄인들을 위한 것이며, 그리고 그것은 궁극적으로는 우리를 위한 일이 되고 있다.

마가 복음의 일부 헬라어 사본들은 “그는 범법자들 가운데 한 사람으로 여김을 받았느니라”는 말로, 예수님께서 범죄자들 사이에서 죽으신 일이 성경말씀을 성취한 일이 되고 있는 것으로 28절에 포함시키고 있다.

우리는 그것을 두 가지 관점에서 볼 수 있다.

하나는, 그 성경말씀의 인용은 이사야 53장 12절이 되고 있다는 것이다.

예수님이 두 강도 사이에서 십자가의 처형을 받으신 것이 그 예언의 성취가 되고 있음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다른 하나로, 많은 성경학자들은 28절에 기록된 말씀은 누가복음 22장 37절에서 인용해 온 것으로 보고 있다.

그것은 예수님이 자기가 곧 범죄자로 붙잡히게 될 것에 대한 예언의 말씀을 자신이 인용한 것이 되고 있다.


당신은 예수님이 스스로 자원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신 일을 복음을 모르는 사람에게 어떻게 설명해 주겠는가?



조롱과 모욕을 당하신 예수님 [마가복음 15장 29 -32절]


15장 29 - 30절


  • ●   지나가는 자들은 자기 머리를 흔들며 예수를 모욕하여 이르되 아하 성전을 헐고 사흘에 짓는다는 자여
  • ●   네가 너를 구원하여 십자가에서 내려오라 하고


“지나가는 자들”로 표현된 사람들은 예루살렘의 주민들이었던 것이 분명하다.

그들 중의 일부는 빌라도에게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으라고 소리를 지르던 군중들 가운데 섞여 있었을 수도 있다 (15: 13 -14).

그들은 또한 예수님이 공회 앞에서 심문을 받으셨을 때 그에게 했던 거짓 증언에 대해서도 알고 있었던 것이 틀림없다 (14: 58).

그들은 자기 머리를 흔들며 십자가에 달려 있는 예수님을 조롱하며 모욕하여 이르기를, “아하 성전을 헐고 새로 짓는다는 자여 네가 너를 구원하여 십자가에서 내려 오라”고 하였다.

성전을 헐고 사흘에 짓는다”는 말은 예수님이 성전을 하나님의 예배장소로 만들기 위해 그것에 방해가 되는 것들을 제거하는 일을 하셨을 때 이를 못 마땅하게 여기며 그같이 할 수 있는 “표적”을 보이라고 하는 사람들에게 하신 것으로, 당시에는 이해할 수 없는 수수께기 같은 말이었다 (요 2: 13 -20).

그것은 예수님이 “성전된 자기 육체를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었다 (요 2: 21).

머리를 흔들며”라는 말은 당시 문화권에서 사람들이 강한 감정과 부정을 나타낼 때 사용한 방법이 되었다 (사 37: 22, 렘 18: 16 참조).

예수님이 나귀를 타고 예루살렘에 입성하셨을 때 군중들은 열광하여 앞서가고 뒤에서 따르면서 “호산나 다윗의 자손이여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 가장 높은 곳에서 호산나”하면서 열렬이 환호하였다 (마 21: 9).

호산나”라는 말은 아람어로, “지금 구원하소서”이다.

다윗의 자손”이라는 말과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라는 말은 메시야를 일컫는 말이다.

그런데 본문에서, “지나가는 자들”로 표현된 사람들은 그 말을 바로 예수님께 적용시켜, “네가 너를 구원하여 십자가에서 내려오라”말로 조롱하며 도전하고 있다.

분명히, 메시야는 그의 백성들을 로마의 압제로부터 구원 하실 수 있으시다.

그런데, 여기서 그는 로마제국에 의한 십자가의 형벌을 피할 수 없었던 것이다.

그것은 사람들에게 도저히 이해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십자가의 사건을 다음과 같이 고백하였다 (고전 1: 22 -24).

유대인은 표적을 구하고 헬라인은 지혜를 찾으나 우리는 십자가에 못박힌 그리스도를 전하니 유대인에게는 거리끼는 것이요 이방인에게는 미련한 것이로되 오직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십자가에 달리신)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니라.”

이제 우리는 예수님의 부활사건과 서신서의 가르침들을 통하여, 다른 사람들의 죄 값을 치르시기 위해 스스로 자원해서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내려” 오실 수도 없었거니와 내려 오시지 않으신 것을 이해하게 된다.

예수님은 칼을 가지고 그를 방어하고 보호하려는 제자에게, “네 칼을 도로 칼 집에 꽂으라 칼을 가진 자는 다 칼로 망하느니라”고 하시면서, “너는 내가 내 아버지께 구하여 지금 열두 군단 더 되는 천사를 보내게 할 수 없는 줄로 아느냐”고 하셨다.

그리고 “내가 만일 그같이 하면 이런 일이 있으리라 한 성경이 어떻게 이루어 지겠느냐”고 반문하셨다 (마 26: 52 -54).


15장 31 -32절


  • ●   그와 같이 대제사장들도 서기관들과 함께 희롱하며 서로 말하되 그가 남은 구원하였으되 자기는 구원할 수 없도다
  • ●   이스라엘 왕 그리스도가 지금 십자가에서 내려와 우리가 보고 믿게 할지어다 하며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자들도 예수를 욕하더라  


제사장들도 서기관들과 함께 군중들이 하는 것처럼 예수님을 조롱하며 희롱하였다.

그들은 오랫동안 예수님을 적대하며 그를 제거하려고 했다.

마침내 그들은 성공한 것같이 보였고 또 그렇게 생각하였다.

그들은 서로 말하기를, “그가 남은 구원하였으되 자기는 구원할 수 없도다”고 하였다.

그들은 적어도 예수님이 치유자(治癒者)로서 명성을 얻고 있는 사실을 인정하였다.

"구원하다”로 번역된 동사는 죄로부터 구원을 하다는 뜻이 될 뿐 아니라, 마가복음 5장 23절과 28절 그리고 6장 5절의 경우처럼 몸의 병을 고친다는 뜻으로 사용되기도 하였다.

그들 종교지도자들은 예수님께서 기적적인 방법으로 많은 사람들을 도와주신 것을 알고 있었다.

예수님은 기적적인 방법으로 병자들을 고쳐주셨을 뿐 아니라,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마리”를 가지고 “오천 명”을 먹이시기도 하고 (6: 30 -44), 죽은 사람을 살려주기도 하셨다 (막 5: 36 -43; 요 11: 43 -44).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사건들 중 어느 것도 유대종교 지도자들에게 예수님이 진정한 메시야가 되신다는 사실을 확신시켜 주지 못하였다.

도리어 그들 종교지도자들은 더 많은 기적과 이적을 요구하였다 (마 12: 38 -39).

이제 그들은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을 조롱하며 모욕하기를, “이스라엘 왕 그리스도가 지금 십자가에서 내려와 우리가 보고 믿게 할 지어다”고 하였다.

실제로, 그들은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내려오실 것을 기대하지 않았다.

그것은 단지 희롱과 조롱이었다.

그러나, 예수님은 십자가 위에서 상상할 수 없는 신체적 및 정서적 고통을 견디어 내셨다.

그는 우리의 죄를 대속하시기 위해 그같이 하셨다.

물론 예수님은 어느 때에든지 십자가에서 내려오실 수 있었다.

그러나 그는 이것이 죄인들에게 죄를 사함 받고 구원을 얻게 하려는 아버지의 계획임을 알고 있었다.

마가 복음은 예수님 옆에서 십자가에 처형 된 두 명의 범인도 조롱의 합창에 합류한 것을 기록하였다 (마 27: 44 참조).

그러나 감사하게도, 우리는 누가복음으로 부터 죄수 중의 한 명이 십자가 위에서의 예수님의 태도에 너무 깊이 감동한 나머지, 회개하였고 희롱하는 다른 범죄자를 책망했으며, 그의 왕국이 임할 때에 자기를 기억해 달라고 간청하였다.

예수님은 그 범죄자에게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고 하셨다 (눅 23: 39 -43).


목숨을 버리신 예수님 [마가복음 15장 33 -36절]


15장 33 - 34절


  • ●   제육시가 되매 온 땅에 어둠이 임하여 제구시 까지 계속하더니
  • ●   제구시에 예수께서 크게 소리 지르시되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하시니 번역하면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하는 뜻이라


1 세기 당시에 유대인들의 시간 계산법을 따르면, 하루는 저녁 해가 질 때부터 다음 날 저녁 해질 때까지가 되었다.

해가 질 때인 저녁 6시부터 아침 6시까지는 밤 12시간이 되고 아침 6시부터 저녁 6시까지는 낮 12시간이 되었다.

그러니까, “제육시가 되매 온 땅에 어둠이 임하여 제구시까지 계속하더니”라는 말은 낮 12시부터 오후 3시까지 세 시간 동안을 가리키는 말이 되고 있다.

그러니까, 대낮 12시부터 3시까지 세시간 동안 어둠이 온 땅을 덮었다는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그것을 일식으로 생긴 현상으로 설명하려고 하는데, 그것은 본문의 요점을 놓친 이유 때문이다.

본문에서 언급되고 있는 어둠은 제구시, 즉 오후 3시까지 계속되었는데 반해, 일식은 한 지역을 수분 동안만 덮게 마련이다.

성경에서 어두움은 종종 악을 상징하고 있다.

구약에서 어두움 혹은 흑암은 하나님의 심판의 서막이 되고 있기도 하다 (출 10: 21 -22; 암 8: 9 -10).  

예수님 자신도 하나님의 마지막 심판이 어두움과 함께 임할 것을 예언하셨다 (막 13: 24 -25).  

갑자기 어두움이 임한 것은 아들을 잔인하게 죽인 살인자들에 대한 하나님 아버지의 심판의 징표가 될 수도 있었다.

분명한 것은, 아무 죄가 없으신 메시야가, 죄인들이 그를 믿기만 하면 구원을 얻을 수 있도록, 십자가 위에서 우리 죄를 포함하여, 세상의 모든 죄를 짊어지신 것이다 (사 53: 6. 11 -12; 고후 5: 2; 벧전 2: 24).

빛이 없어지고 어두워진 것은 십자가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에 대한 자연의 반응으로, 하나님께서 행하신 일이었다.

마가복음은 예수님이 십자가 위에 달려 있는 동안 일어난 일을 모두 기록하지 않았다.

예수님이 십자가 위에서 소리를 내어 말씀하신 일곱 말씀 중에서, 마가는 한 가지만 기록하였는데, 그것은 시 22편의 시작 절을 인용한 것이다.

그 인용문은 예수님이 고통을 겪고 계실 때 그의 깊은 고뇌를 분명히 나타냈다.

그는 큰 “소리”로 “엘리 엘이 라마 사박다니”라고 하셨다.

일세기 당시에, 유대인들은 일반적으로 아람어를 구어체로 사용하였다.

아람어는 구약에서 사용 된 히브리어와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

 따라서, 마가는 예수님께서 크게 소리질러 하신 말씀을 먼저 아람어로 그대로 기록한 다음, 헬라어를 사용하는 독자들을 위해 헬라어로 번역하였다.

예수님께서 하신 아람 말은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라는 뜻이 되고 있다.

예수님은 진정으로 십자가 위에서 하나님 아버지께 버림을 받았다고 느끼셨을까?

예수님이 큰 소리로 그같이 말씀하신 것에 대한 한 가지 견해는 하나님의 어린 양인 예수님이 바로 그 순간에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에 이르기 까지 세상 모든 사람들의 무거운 죄의 짐을 지시고 견딜 수 없는 고통가운데 신음하고 계셨던 것을 강조하고 있다는 것이다.

다른 견해는 예수님께서 그같이 말씀하신 것은 시편 22 편 전체의 뜻을 나타내고 있다는 것이다.

그 시편은 큰 고난과 고통 그리고 외로움을 부르짖는 말로 시작하지만, 도움을 구하는 시편 기자의 기도에 하나님께서 응답해 주시는 말로 끝나고 있다.

십자가 위에서 하신 예수님의 마지막 말씀이 “아버지 내 영혼을 아버지의 손에 부탁하나이다”라고 한 것을 보면 (눅 23: 46), 예수님이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라고 부르짖은 말씀은 아버지한테 가까이 오셔서 그가 승리할 때까지 도와주시기를 간구하는 기도로 볼 수 있다.


15장 35 -36절:


  • ●   곁에 섰던 자 중 어떤 이들이 듣고 이르되 보라 엘리야를 부른다 하고
  • ●   한 사람이 달려가서 해면에 신 포도주를 적시어 갈대에 꿰서 마시게 하고 이르되 가만 두라 엘리야가 와서 그를 내려 주나 보자 하더라  


예수님이 심한 고통 가운데서 큰 소리로 "엘리”라고 외치신 말을 사람들이 “엘리야”를 보고 와서 도와달라고 청한 말로 오해할 수도 있었다는 것은 이해될 수 있는 일이다.

선지자 말라기는 엘리야가 다시 올 것이라고 예언을 한 적이 있는데 (말 3: 1; 4: 5), 예수님 자신도 그 예언에 대해 직접 언급하신 적이 있다  (마가 복음 9: 11 ~ 13).

그 예언에 담겨있는 뜻은 엘리야가 올 때 그가 할 일들 중의 하나는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을 돕는 일이 될 것이라는 것이다.

많은 유대인들은 메시야의 오심을 준비하기 위해 구약의 선지자인 엘리야가 올 것이라고 믿었다 (마가 복음 9: 11 ~ 12 참조).

실제로, 어떤 유대인들은 예수님을 엘리야가 온 것으로 생각하기까지 하였다 (8: 27 -28 참조).

마가복음의 저자인 마가는 예수님이 “내가 목마르다”고 하신 말을 기록하지 않았다 (요 19: 28).

마가의 이야기는 예수님의 갈증에 대한 응답으로 계속되고 있다.

한 사람이 달려가서 해면에 신 포도주를 적시어 갈대에 꿰서 마시게 하였다.

신 포도주”에 대한 한 견해는 고통을 덜어주기 위하여 포도주에다 진통제를 탄 것으로 보는 것이다.

그러나, 십자가 처형의 잔인한 목적은 고난을 극대화 하는 것이지, 덜어주는 것이 아니었다.

더구나, 마태복음 27장 34절은 예수님이 쓸개를 탄 포도주를 맛보신 후에 마시지 않으신 사실을 밝혀주고 있다.

예수님에게 신 포도주를 마시게 한 이름이 밝혀지지 않은 사람은 “목마르다”고하신 예수님의 말을 듣고 친절한 행위로 그같이 한 것으로 볼 수도 있지만, 그같이 마시게 하고 “가만 두라 엘리야가 와서 그를 내려 주나 보자”고 한 것을 보면, 그 모두가 희롱의 일환이 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승리하신 예수님 [마가복음 15장 37 -39절]


15장 37절:


  • ●   예수께서 큰 소리를 지르시고 숨지시니라


마가는 예수님이 숨을 거두시기 전의 마지막 순간에 “큰 소리를 지르시고 숨지시니라”고 기록하였다.

누가복음은 예수님이 “아버지여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하나이다”라고 말씀하신 후에 “숨지시니라”고 기록하고 있다 (눅 23: 46).

그같이 숨을 거두시자, 예수님은 죄인들을 위한 속죄의 사역을 완성하였다.

그는 이 땅에 오신 목적, 즉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을 도와주시고, 제자들을 부르셨고, 자신을 완전한 희생제물로 단번에 하나님께 드리는 일을 다 이루셨다 (요 19: 30).

그의 부활은 앞으로 가가 올 일이었지만, 우리의 죄를 대속하시기 위해 자신을 희생제물로 드리는 일은 완성되었다.


15장 38절:


  • ●   이에 성소 휘장이 위로부터 아래까지 찢어져 둘이 되니라


예수님의 죽음에 대해 마가가 유의(有意)한 두 번째의 증거는 “성소 휘장이 위로부터 아래까지 찢어져 둘이” 된 일이다.  

첫 번째의 증거는 낮 열두 시부터 오후 세시까지 “온 땅에 어둠이 임(한 일)”이 되고 있다 (15: 33).

그 일은 자연적인 사건으로 설명 될 수는 없다.

마가가 언급한 휘장은, 하나님이 계시는 곳을 상징하는 장소인, 지성소와 성소를 갈라놓는 성전 안에 있던 커튼으로, 매우 크고도 무거우며 아주 두꺼운 것이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돌아 가셨을 때, 바로 그 휘장이 “위로부터 아래까지 찢어져 둘이” 되었던 것이다.

그 같은 일은 인간의 힘으로는 도저히 일어날 수 없었다.

지성소와 성소를 갈라 놓고 있던 휘장이 위로부터 아래까지 갈라진 것은 하나님과 죄 많은 인간을 갈라놓고 있던 죄의 벽이 제거된 것을 나타냈다.

지성소에는 대제사장만이, 그것도 일년에 한 번만 들어갈 수 있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죽으심으로 하나님과 인간을 갈라놓는 죄의 벽이 그같이 제거되었으므로, 히브리서 10장 19절은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예수의 힘을 입어 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었느니라”고 한다.

예수님의 속죄의 죽음으로 인해 죄를 사함 받고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되는 길이 열렸다.


15장 39절:


  • ●   예수를 향하여 섰던 백부장이 그렇게 숨지심을 보고 이르되 이 사람은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었도다 하더라


십자가의 처형은 백부장의 지휘 아래 로마 군인들에 의해 집행되었다.  

용어에서 암시되고 있듯이, 백부장은 휘하에 백 명의 군인을 지휘하는 로마 군 장교였다.

그러나, 십자가의 처형에는 백 명의 군인들 모두가 동원된 것이 아니고, 소수의 병사들만 동원되었다.

십자가의 처형을 지휘하며 감독했던 백부장은 처형장소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을, 특별히 예수님에게 일어나고 있던 일들을, 다른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다.

그 모든 것을 지켜 본 백부장은 예수님이 숨을 거두시자, 놀라운 고백을 하였다.

이 사람은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었도다.”

백부장은 자기가 하고 있는 말의 뜻을 완전히 이해하지 못했을 수 있다.

그러나 마가는 그 말을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로 믿는 백부장의 신앙고백으로 받아들였다.  



말씀을 나의 상황에 적용하기:


  • ●   예수님은 스스로 자원하여 우리를 대신하여 죽으셨다.    
  •   ●   예수님은 자신의 정체성과 권세에 대한 종교지도자들의 비난과 도전을 무시하고 우리의 구원을 이루실 수 있었다.   
  • ●   예수님은 죄인들인 우리를 위해 죄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를 감수하셨다.
  • ●   예수님의 죽음은 그들 믿는 모든 성도들에게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있는 길을 열어준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음에는 응답이 요구되고 있다.

당신은 그의 십자가의 죽음으로 가능하게 된 죄 사함을 받아들였는가?

예수님을 구세주로 영접하였다면, 이번 주에 예수님에 관해 누구에게 말해 줄 수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