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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의 포용성 - 제 6과 - 2019년 4월 7일 주일 - 장년성경연구 교사용 교재 - 마가복음 7장 25-37절

글쓴이 : 강호길 날짜 : 2019-04-04 (목) 03:12 조회 : 123

장년성경연구 교사 교안

2019년 4월 7일 용  


제 6과



복음의 포용성 (包容性)



학습구절: 마가복음 7장 25 -37절  


성경진리:

 예수님은 인간의 모든 장벽을 허시고 모든 사람에게 하나님의 사랑을 베풀어 주신다.


주요교리기독교와 사회질서

모든 그리스도인은 산업과 정부와 사회의 모든 분야가 전체적으로 의(義)와 진리(眞理)와 형제 사랑의 원칙에 따라 시행되도록 힘써야 한다 (요 15 : 12).


암송구절:  마가복음 7장 37절


사람들이 심히 놀라 이르되 그가 모든 것을 잘 하였도다

못 듣는 사람도 듣게 하고 말 못하는 사람도 말하게 한다 하니라   

“ People were overwhelmed with amazement.

‘He has done everything well,’ they said. ‘He even makes the deaf hear and the mute speak.’”      



시작하는 글:


진정으로 포용(包容)하기란 쉽지 않다.

우리는 경험이나 배경 혹은 열정이 비슷한 사람들과 어울리는 경향이 있다.

인종이나 종교가 다른 사람들에게 진정한 관심을 보이는 것은 힘든 일이다.

문화나 관습이 다른 사람들끼리 함께 어울리는 일도 어렵다.

정신적 혹은 육체적 장애가 있는 사람들은 무시를 당하기 쉽다.


당신과 매우 다른 사람들을 포용하는 문제에 대해 생각할 때, 당신의 마음에 어떤 반응이나 감정이 생기는가?  하나님의 사랑을 나타내기 위하여 그 같은 장벽들을 극복하는 일은 당신에게 얼마나 중요한가?



본문배경설명   


마가복음 7장 24절부터 8장 26절까지


예수님은 우리 인간들이 서로 구별하며 살기 위해 쉽게 세우는 일반적인 장벽들을 뛰어넘는 것이 어떤 것이며 무엇인지를 실례로 보여주셨다.

마가복음에 대한 지금까지의 학습은 예수님께서 행하신 기적에 초점이 맞추어졌다.

대표적인 것을 예로 들면, 예수님은 한 중풍병자를 고쳐 주셨고 (2과) 회당장의 딸인 죽은 소녀를 살려주셨다 (4과).

금주의 학과에서, 우리는 예수님께서 행하신 두 가지의 놀라운 일을 살펴보게 될 것이다.

그들 각각은 예수님께서 모든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사랑을 보여주시기 위해, 그들의 인종적인 혹은 사회적인 장벽을 뛰어 넘어 그리고 일상적인 길을 벗어나, 어떻게 행하셨는지를 보여준다.

금주의 학습구절은 예수님께서 새로운 신앙 공동체를 세우시고 모으시는 것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마가 복음의 일부분이 되고 있다 (6: 1 - 8: 26).

예수님께서 오천 명을 먹이신 유명한 기적의 사건 (6: 30 -44)은,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시기 약 일년 전인 유월절에 일어났다 (요 6: 4 참조).

그때는 봄철로,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히시기 약 1 년 전이었다.

그러므로, 우리가 이번 주에 학습하고 있는 사건들이 일어난 때는, 예수님께서 갈릴리 전역에서 수 개월 동안, 어쩌면 1년 이상, 사역하고 있던 경우가 되고 있다.

우리는 또한 예수님이 열두 제자를 부르셔서 사도로 세우시고 그들을 둘씩 짝을 지어 갈릴리 전역으로 보내신 일을 기억하고 있다 (5과).

아래의 목록은 이번 주에 학습할 중요한 성경말씀을 요약한 것이다.


  •   한 이방인 어머니의 믿음 (7: 24 -30):


예수님은 그의 제자들에게 그의 새로운 믿음의 공동체는 이방인들에게 열려있을 뿐 아니라, 그들을 포용할 것을 보여주셨다.


  •   예수님은 모든 일을 잘 하신다 (7: 31 -37):


예수님이 하시는 일은 너무나 놀라워서 아무도 그에 대해 잠잠할 수 없었다. 사람들은 “그가 모든 것을 잘 하였도다”고 하면서 감탄하였다.


사천 명을 먹이시다 (8: 1 - 10):

예수님의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큰 무리”를 축복하시도록 자신들에게 있는 자원을 주님께 드렸을 때 그것을 가지고 예수님이 큰 무리를 먹이신 두 번째의 놀라운 실례를 보게 된다.


  •   바리새인들과 헤롯의 누룩 (8: 11 -21):

예수님에 대한 거짓 가르침과 잘못된 기대는 예수님의 메시지를 위협하는 위험한 것이다. 그것들은, 누룩과 같이, 급속히 퍼질 수 있다.


  •   맹인을 고치시다 (8: 22 -26):

예수님께서 육체적으로 눈이 먼 사람에게 시력을 주신 것은 죄로 인해 영적으로 눈이 먼 사람들에게 어떻게 영적 시력을 주시는지를 보여주는 실례가 되고 있다,


지금까지 우리는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기 때문에 오직 그 분만이 하실 수 있는 일을 행하신 것을 보았다.

예수님은 죄를 사해주셨다. 우리는 그 같은 일을 할 수 없다.

예수님은 기적적인 방법으로 병자들을 고쳐주셨다.  우리는 그같이 할 수 없다.

예수님은 회당장의 죽은 딸을 살려주셨다.  우리는 그렇게 할 수 없다.   

이번 주 공과에서, 우리는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보여주신 사역의 본에 초점을 맞추어 공부하게 된다.

예수님은 장애로 인해 사회에서 소외 계층에 속해 있는 사람을 자신의 사역에 포함시키셨다.

우리도 그같이 할 수 있다.

예수님은 당시에 넘기 힘들었던 성별 혹은 인종적인 높은 장벽을 넘어서 한 여인에게 하나님의 사랑을 베풀어주셨다.

우리도 그같이 할 수 있다.



학습구절 연구


비천한 사람들을 포용하신 예수님 [마가복음 7장 25 -30절]


7장 25 -26절


  • ●  이에 더러운 귀신 들린 어린 딸을 둔 한 여자가 예수의 소문을 듣고 곧 와서 그 발 아래에 엎드리니   
  • ●  그 여자는 헬라인이요 수로보니게 족속이라 자기 딸에게서 귀신 쫓아내 주시기를 간구하거늘


마가복음 7장 1 ~23절은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 예수님의 가르침에 적대하고 나선 또 다른 사례를 기록하고 있다.

주님은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이 성경의 가르침보다 장로들의 전통을 더 중요하게 여기는 것을 지적하셨다.

예수님과 종교적 반대자들 사이의 적개심이 너무나 강했기 때문에, 예수님과 제자들은 그들 종교지도자들이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지역에서 떠나 “두로 지방”으로 가셨다 (7: 24).  

두로는 갈릴리 바다에서 북서쪽으로 약 35 마일 떨어져있던, 지중해 연안의 이방인 도시였다.  

그곳은 지리적으로는 베니게 지역에 속해 있었는데, 당시에는 시리아 지방의 일부로서 로마인들에 의해 통치되었다.

예수님께서는 그 곳에서 조용하게 지내기를 원하셨지만, 사람들의 눈에 뜨이지 않고 지낼 수 없으셨다.

치유자로 명성이 난 분이 그 지역에 도착했던 것이다

어쩌면, 이전에 예수님을 본적이 있던 그곳 주민들이 예수님을 알아보고 그 소식을 퍼뜨렸을 수 있다.

따라서, 예수님이 그 지역에 계시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마자, 사람들이 그를 찾은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24절은 두로 지방에 오신 예수님이 “한 집에 들어가서 아무도 모르게 하시려 하나 숨길 수 없었더라”고 기록하고 있다.

그런 다음 마가는 “이에 더러운 귀신 들린 어린 딸을 둔 한 여자가 예수의 소문을 듣고 곧 와서 그 발 아래에 엎드리니”라고 하였다.

당시에 성별(性別)이 장애가 되었다면, 인종(人種)도 사람들을 구별하고 차별하는 장애가 되었다.

예수님을 찾아온 여인은 유대인이 아니라, 이방인이었다.

유대인들을 이방인들을 가까이 하지 않고 그들을 멀리 하였으며, 부정한 사람들로 취급하였다.

유대인들은 이방인들을 “죄인”으로 불렀고, 무슨 수를 써서라도 피하려고 하였다.

그러므로, 이방인들은 유대인들에게 경멸의 대상이 되었다.

마가는 그 여인을 “헬라인이요 수로보니게 족속이라”고 밝혔다.

헬라인”이라는 말은 인종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언어를 가리키는 것으로 보인다.

더욱이, 이 여인에게는 “귀신 들린 어린 딸”이 있었다.

그러므로, 어떤 면에서 이 여인은 인간 취급을 받지 못하는 기피의 대상이 되었다.

그 여인은 여자라는 장벽과 이방인이라는 장벽에도 불구하고, 용기를 내어 예수님에게로 나아와 “자기 딸에게서 귀신 쫓아내 주시기를 간구하(였다).


7장 27 -28절


  • ●  예수께서 이르시되 자녀로 먼저 배불리 먹게 할지니 자녀의 떡을 취하여 개들에게 던짐이 마땅치 아니하니라
  • ●  여자가 대답하여 이르되 주여 옳소이다마는 상아래 개들로 아이들이 먹던 부스러기를 먹나이다


예수님은 그 여인에게 대답하시기를, “자녀로 먼저 배불리 먹게 할지니 자녀의 떡을 취하여 개들에게 던짐이 마땅치 아니하니라”고 하셨다.

언뜻 보면, 절박한 심정의 이 어머니에게 하신 예수님을 대답은 좋게 생각하면 상관 않겠다는 뜻처럼 보이고 나쁘게 보면 불쾌하게 생각되는 것이 되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여기서 몇 가지 요인을 생각할 필요가 있다.

첫째로, 예수님은, 특정한 행동 과정이 적절한 것인지를 묻는 의도가 담긴 것으로, 당시 잘 알려졌던 속담을 인용 하셨을 수 있다.

둘째로, 그 말에서는 세 가지가 대조되고 있다.

1) “떡”은 예수님의 메시지와 사역을 나타내고 있다.

2) “자녀”는 하나님의 언약의 백성인 유대백성을 나타내고 있다.

3) “”는 이방인들을 가리키는 말이 되고 있다.

예수님께서 밝히시고 계신 요점은 그의 지상 사역 동안에 유대인들이 이방인들보다 우선시되고 있는 것이었다.

셋째로, 예수님은 “먼저”라는 말을 쓰셨는데, 그것은 그 여인에게 이방인들도 예수님의 사역을 받을 수 있는 길이 있다는 소망을 갖게 해 주었다.

마지막으로, 29절과 30절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에 비추어 볼 때, 우리는 예수님이 그 여인의 믿음을 시험하려는 의도로 그같이 말씀하신 것으로 결론지을 수 있다.

예수님은 실제로 그같이 하셨다.

그렇지 않고서야, 어떻게 그 여인은 예수님에 대한 믿음을 나타낼 수 있었을까?

그 여인의 대답은 그녀가 겸손하게 자신의 위치를 이방인으로 인정하는 것을 보여 주고 있다.

그 여인은 예수님의 말씀에 대답하기를, “주여 옳소이다 마는 상 아래 개들도 아이들이 먹던 부스러기를 먹나이다”라고 하였다.

그녀는 유대인들에게 우선권이 있음을 인정하였다.

그렇지만, 그 여인은 이방인들이 꼭 제외되어야 할 필요가 없음을 주장하였다.

그들은 예수님의 사역을 통해 제공되고 있는 넘치는 은혜를 받기를 희망할 수 있었다.

그 여인은 예수님이 사용하신 속담을 취하여 그것을 선한 결과로 바꾸었던 것이다.

사도 바울은 그같이 하는 것을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고 하였다 (롬 8: 28).

비록 남은 음식이 “부스러기”일 지라도, 그것들은 ‘이방 개’로서 그녀가 필요한 것을 채워줄 수 있을 것이다.

마가의 이야기에서, 그 여인의 믿음은 암시적인 것이 되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그 여인의 대답은 믿음의 마음에서 나온 것을 알아야 한다.

다른 한편, 같은 사건을 기록하고 있는 마태복음의 이야기에서는 그 여인의 믿음이 구체적인 것이 되고 있다.  

예수님은 그 여인에게 “여자여 네 믿음이 크도다 네 소원대로 되리라”고 하셨다 (마 15: 28).


7장 29 -30절:


  • ●  예수께서 이르시되 이 말을 하였으니 돌아가라 귀신이 네 딸에게서 나갔느니라 하시매
  • ●  여자가 집에 돌아가 본즉 아이가 침상에 누웠고 귀신이 나갔더라  


예수님은 “이 말을 하였으니”라는 말씀으로 그 여인을 칭찬하셨다.

그 여인의 겸손함과 정직함 그리고 용기는 예수님께서 일찍이 이스라엘에서 찾아보기 힘든 믿음을 나타내는 것이었다.

그리고 말씀하시기를, “돌아가라 귀신이 네 딸에게서 나갔느니라”고 하셨다.

예수님은 명령으로 그 여인의 딸에게서 귀신을 쫓아내셨던 것이다.

이는 예수님을 통해 일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어떤 악령의 힘보다 항상 강했기 때문이었다.


소외되고 버림받은 사람들을 포용하신 예수님  [마가복음 7장 31 -35절]


7장 31절:


  • ●  예수께서 다시 두로 지방에서 나와 시돈을 지나고 데가볼리 지방을 통과하여 갈릴리 호수에 이르니


예수님은 지중해 연안을 따라 북쪽으로 여행을 계속하셨다.

그는 “두로 지방”을 떠나 북쪽으로 약 25마일 정도 떨어진 “시돈”까지 가셨다.

현재는 레바논의 영토로 되어 있는 두로와 시돈은 구약시대 당시에는 베니게 도시들로 알려졌었고 그들의 부에 대한 자랑과 교만으로 인해 선지자 에스겔을 통해 하나님의 정죄를 받았다.

예수님은 누가복음 10장 14절에서 두 도시에 대해 언급하셨다.

예수님은 시돈에 오래 머물지 않으신 것으로 보인다.

갈릴리 지역으로 다시 돌아가실 때, 그는 직접 가시지 않고 “갈릴리 호수” 주위의 인근 지역을 들러서 가는 길을 택하셨다.

그같이 하여 생긴 것이 “데가볼리 지방을 통과” 하게 된 일이 되고 있다.

헬라어로 “열 개의 도시”라는 뜻인 “데가볼리”는 일반적으로 갈릴리 바다의 북동쪽과 동쪽에 위치한 열 개의 그리스–로마식 도시 그룹이었다.

예수님은 이전에 적어도 그 인근 지역에 들리신 적이 있었고, 그때 무덤 사이에 거처하던 “더러운 귀신 들린 사람”을 고쳐주셨다 (막 5: 1 -20).

누가는 그같이 고침을 받은 사람이 예수님이 자기에게 행하신 일을 “데가볼리”에 전파하므로 예수님이 그곳에 널리 알려지게 된 일을 기록하였다 (5: 20).


7장 32 -35절: 


  • ●  사람들이 귀먹고 말 더듬는 자를 데리고 나아와 안수하여 주시기를 간구하거늘
  • ●  예수께서 그 사람을 따로 데리고 무리를 떠나사 손가락을 그의 양 귀에 넣고 침을 뱉어 그의 혀에 손을 대시며
  • ●  하늘을 우러러 탄식하시며 그에게 이르시되 에바다 하시니 이는 열리라는 뜻이라
  • ●  그의 귀가 열리고 혀가 맺힌 것이 곧 풀려 말이 분명하여졌더라


중풍병자에게 그를 예수님께로 데려온 친구들이 있었던 것처럼 (2: 1-12), 여기에 나오는 사람도 그 같았다.

마가는 그를 “귀 먹고 말 더듬는 자”로 묘사하였다.

그의 말 더듬은 그의 청각 장애의 결과였을 가능성이 크다.

자신의 말을 듣지 못할 때 말을 분명하게 하기가 싶지 않다.

육체적인 면에서 불행했던 이 사람은 귀머거리로 있는 동안 사람들에게 많은 조롱을 받아왔을 것으로 보인다.

우리들 모두는 사람들이 장애자들을, 직접적으로 혹은 간접적으로, 차별할 수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더욱이, 이 일은 데가볼리 지방에서 일어났기 때문에, 마가는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았지만, 귀 먹고 말 더듬는 그 사람은 이방인이었음이 분명해 보인다.

그런데, 그 사람의 친구들은 그들 데리고 “예수께 나아와 안수하여 주시기를 간구”하였다.

언어 장애 때문에, 그는 자신을 위해 도와 달라는 간청을 예수님께 직접 할 수 없었다.

예수님은 즉시 그 사람을 고쳐주실 수 있었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 사람을 따로 데리고 무리를 떠나” 가셨다.

예수님은 그 사람의 문제가 되고 있는 청각과 시각을 사용하여 그 사람을 도와주셨다.

첫째로, 예수님은 “손가락을 그의 양 귀에 넣(으셨다).

그것은 그 사람에 대한 예수님의 관심을 나타내는 일이 되었을 뿐 아니라, 귀 먹은 그의 문제 혹은 필요와 예수님의 행하심 사이의 직접적인 연관성을 확립시켜 주는 일이 되었다.

그 다음으로, 예수님은 적어도 오늘 날 우리에게는 이상하게 보이는 일을 행하였는데, 그것은 “침을 뱉어 그의 혀에 손을 대(신 일)”이다.

그 것에 담겨있는 뜻은, 어떤 의미에서, 예수님이 분명하게 말할 수 있는 자신의 능력을 그 사람에게 옮겨주는 일이 될 수 있다.

다시, 예수님은 그 사람의 문제 혹은 필요 (분명하게 말하는 것)와 자신의 행함을 연결시키고 계셨던 것이다.

다음으로, 예수님은 그 사람이 보고 이해할 수 있는 일을 하셨다:

그는 “하늘을 우러러” 보셨다.

예수님께서 보여주신 것은 치유할 수 있는 하나님의 능력을 간구하신 것이었다.

다음으로, 예수님은 “탄식하시(었다).”

그것은 예수님이 귀 먹고 말 더듬는 사람의 아픔과 고통을 함께 하는 표현이 되었다.

그런 다음, 예수님은 “에바다”라고 명령하셨다.  

마가는 헬라어를 사용하는 독자들을 위해 히브리어 (아람어)로 하신 예수님의 명령을 “열리라는 뜻이라”는 말로 번역하였다.

곧, 그 사람은 완전히 치유되었다.

먼저, 그의 “귀가 열(렸는데), 그 말은 그가 정상적으로 들을 수 있게 된 것을 뜻하고 있다.

다음으로, “혀가 맺힌 것이 곧 풀려 말이 분명하여 졌(다).”

이제 그는 정상적으로 분명하게 말하기 시작한 것이다.

예수님을 통해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으로, 그의 청력과 언어는 정상이 되었던 것이다.  

헬라인 혹은 이방인으로 보이는 그 사람은 알지 못했을 수 있지만, 그에게 일어난 일은 장차 오실 메시야에 대한 이사야 선지자의 예언이 성취된 일이 되었다.

이사야 선지자는 “그 때에 맹인의 눈이 밝을 것이며 못 듣는 사람의 귀가 열릴 것이며” “말 모사는 자의 혀는 노래하리니”리고 예언하였다 (사 35: 5 -6).


신체 장애가 있는 사람들을 포용하신 예수님의 모범은 21세기를 살고 있는 우리들에게 어떻게 적용되고 있는가? 

당신이나 당신의 성경공부 반이 관심을 가지고 연락을 취하며 포용해야 될 소외된 사람들은 누구인가?


7장 36 -37절:


  • ●  예수께서 그들에게 경고하사 아무에게도 이르지 말라 하시되 경고하실수록 그들이 더욱 널리 전파하니
  • ●  사람들이 심히 놀라 이르되 그가 모든 것을 잘하였도다 못 듣는 사람도 듣게 하고 말 못하는 사람도 말하게 한다 하니라


그런 다음 예수님은 그 사람과 그를 데려온 친구들과 이 놀라운 치유를 목격 한 다른 사람들에게 말씀하셨다.

예수님은 그들에게 경고하시기를 “아무에게도 이르지 말라”고 하셨다.

예수님께서 병자를 고치신 후에 사람들에게 말하지 말라고 요구하신 것은 마가 복음에서 처음이 아니었다.

다음의 경우들을 생각해 보자.

1. 나병환자를 고치신 후에, 예수님은 그 사람에게 아무에게 아무 말도 하지 말라고 하셨다.  그러나 그는 그 일을 “많이 전파하여 널리 퍼지게” 하였다.

2.  회당장 야이로의 딸을 살려주신 후에, 예수님은 그것을 목격한 사람들에게 “이 일을 아무도 알지 못하게 하라”고 경계하셨다 (5: 43).

3).  소경에게 시력을 회복시켜 주신 후에, 예수님은 그 사람에게 “마을에는 들어가지 말라”고 하셨다 (8: 26).


반대되는 한 사례는 예수님께서 거라사인의 지방에 가셔서 많은 귀신에 들린 사람을 고쳐주셨을 때, 예수님은 그에게 집으로 돌아가 “주께서 네게 어떻게 큰 일”을 행하셨는지를 가족에게 알리라고 하셨다.

그는 가서 예수님께서 자기에게 어떻게 큰 일을 행하셨는지를 데가볼리 지방에 전파하였다 (5: 19 -20).

성경학자들은 예수님이 그같이 말하지 말라고 하신 이유는 사람들이 그의 사명이나 그의 메시지를 알지 못하기를 원해서가 아니라고 결론짓고 있다.

예수님은 자신이 단순한 기적을 행하는 자로 알려지는 것을 피하려고 그같이 하신 것으로 보고 있다.

그같이 하는 것은 도리어 사람들에게 그의 사명과 메시지를 잘못 인식시키는 일이 되었다.

이 세상에 처음 오셨을 때에, 그는 하나님의 고난 받는 종이셨고, 그의 주 목적은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는 것)”이었다 (10: 45).  


예수님은 지금도 사람들을 구원하고 변화시키는 일을 하고 계신다. 그는 지금도 모든 일을 좋게 잘 하고 계신다.


놀라운 것은, 마가복음의 다른 곳의 경우처럼, 예수님께서 사람들에게 그가 행하신 기적을 말하지 말라고 명령하면 할 수록, 그들은 더 열심히 그것을 알린 사실이다.

사람들이 그들이 겪은 특별한 일에 대해 잠잠하고 있는 것이 도리어 놀라운 일이 될 것이다.

본문에서 사람들은 “심히 놀라” 서로 말하기를 “그가 모든 일을 잘 하였도다”고 하였다.

그들이 한 말은 두 가지 구약성경의 말씀을 상기시켜 준다.

첫째로, “그가 모든 일을 잘 하였도다”라는 말은 “하나님이 지으신 그 모든 것을 보시니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는 창세기 1장 31절을 생각나게 한다.

귀먹고 말 더듬는 사람은, 예수님의 치유로 인해, 그의 창조 된 목적이 회복되었던 것이다.

예수님은 지금도 사람들을 구원하고 변화시키는 일을 하고 계신다. 그는 지금도 모든 일을 좋게 잘 하고 계신다.


예수님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아무 가치나 쓸모 없는 존재로 여기거나 기피하는 사람들에게 특별한 사랑과 긍휼을 나타내 보여주시고 베풀어주셨다.


둘째로, 사람들이 “못 듣는 사람도 듣게 하고 말 못하는 사람도 말하게 한다”고 한 말은 이사야 35장 5 -6절을 생각나게 한다.

영광스러운 메시야의 시대가 오면, 이사야 35장에 예언된 말씀대로, 모든 것이 창조의 목적대로 회복될 것이다.


오늘 날 믿는 자들이 예수님께서 베풀어주시는 사랑을 받고 행하시는 놀라운 일을 경험할 때, 그것을 다른 사람들에게 이야기해 주는 것이 얼마나 중요하다고 생각하는가?



말씀을 나의 상황에 적용하기:


  • ●  예수님의 본을 따라, 우리는 긍휼한 마음과 하나님의 사랑을 인종 및 종교적 장벽을 넘어 베풀어야 한다.   
  • ●  예수님의 본을 따라, 우리의 긍휼한 마음과 하나님의 사랑은 갖가지 사회적 장벽들을 넘어서 까지 미치고, 육체적 장애를 가진 사람들을 받아드려야 한다.
  • ●  예수님께서 행하신 사랑의 일들은 너무나 놀라워서, 우리는 그것들을 우리 자신의 일로만 간직해 둘 수 없다.   


그룹으로, 당신의 지역 사회에서 소외 되고 기피의 대상이 되고 있는 사람들이 누구인지를 이야기해 보라. 그리고 어떤 방법으로 그들을 섬길 수 있는지를 생각해 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