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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냄을 받다 - 제 5과 - 2019년 3월 31일 주일 - 장년성경연구 교사용 교재 - 마가복음 6장 7-13, 30-32절

글쓴이 : 강호길 날짜 : 2019-03-25 (월) 06:43 조회 : 104

장년성경연구 교사 교안

2019년 3월 31주일 용  


제 5과



보냄을 받다   



학습구절: 마가복음 6장 7 -13, 30 -32절  


성경진리:

 예수님은 그의 제자들에게 전도의 사명을 맡겨 보내신다.  


주요교리청지기 직

그리스도인들은 영적으로 온 세상에 빚진 자들이고, 복음을 받아서 전파하는 거룩한 복음의 수탁자(受託者)들이며, 소유물을 책임 있게 관리하는 청지기들이다.              


암송구절:  마가복음 6장 12절


제자들이 나가서 회개하라 전파하고   

“They went out and preached that people should repent.”      



시작하는 글:


당신은 아침에 일어 나서, 샤워를 하고, 아침을 먹고, 직장으로 향한다.

그리고, 하루의 일을 만족감에 차서 마치기를 바란다.

다른 사람에게 중요한 어떤 일을 하게 될 때, 당신은 그것이 단순한 일 자체가 아닌 것을 안다.

그것은 어떤 사람의 삶을 바꾸어주고 변화를 줄 수 있는 중요한 일이 될 수 있다.

이 땅에 계시는 동안, 예수님은 참으로 중요한 일을 위해 제자들을 준비시키셨다.

그것은 지금도 마찬가지이다.

주님의 사명을 수행할 때, 우리는 세상을 바꾸며 변화시키는 일을 하고 있다.


당신이 하는 일이 다른 사람에게- 어쩌면 결코 만날 수 없을지도 모르는 사람에게 – 중요한 영향과 변화를 끼칠 경우는 어떤가?

그 같은 사실이 당신이 하려는 일에 대해 어떤 영향을 주고 있는가?



본문배경설명   


마가복음 6장 1절부터 7장 23절까지


예수님과 그의 제자들은 계속하여 갈릴리의 여러 마을과 성읍들을 여행하였다.

그의 가르침을 듣고 싶어하며 그가 치유하는 것을 보고 싶어하는 많은 군중들은 계속 예수님을 따라 다녔지만, 예수님은 또한 믿지 않는 사람들과 적대하는 사람들을 마주치기도 하였다.

마가 복음의 이 부분에 기록된 사건들은 예수님이 겪으신 엇갈린 반응들을 부각시키고 있다. .

6장 1절부터 6절에서, 마가는 예수님과 그의 제자들이 예수님의 어린 시절 고향인 나사렛을 방문한 일을 기록하였다.

예수님은 그곳 회당에서 안식일에 가르치셨지만, 예배자들은 그에 대해 회의적이었고, 그가 행한 기적들에 대한 말을 믿지 않았다.

 그들의 불신앙 때문에, 예수님은 나사렛에서 “아무 권능도 행하실 수 없어 소수의 병자”만 고쳐 주셨다,

예수님의 나사렛 방문은 ‘고향에서 배척당한 일’로 평가되고 있다.

예수님은 거기서 “선지자가 자기 고향과 자기 친척과 자기 집 외에서는 존경을 받지 못함이 없느니라”는 명언을 남기셨다.

마가복음 6장 7절부터 13절까지는 제자들이 첫 번째로 예수님의 메시지를 전하며 사역한 일을 묘사하고 있다.

예수님은 그들에게 할 말과 할 일을 지시해 주셨다.  

그런 다음, 그는 제자들을 짝을 지어 내보내시면서 그의 이름과 그의 권세로 사역하게 하셨다.

복음을 전파하고, 악령을 내쫓고, 그리고 병자들에게 치유를 베풀 때, 그들은 예수님의 권능의 놀라운 결과를 경험하였다.

6장 14절부터 29절에서, 복음서 기자는 침례 요한이 헤롯 안디바의 손에 죽임을 당한 사건을 삽입(揷入)하였다.

6장 14절부터 29절까지에는 침례 요한이 헤롯 안디마에 의해 목 베임을 당해 죽은 사건이 삽입되어 있다.

마가는 1장 14절에서 “요한이 잡힌 후”라는 말로, 예수님이 공사역을 시작하셨을 때에 요한에 대해 이미 언급했었다.

그 사건이 6장에서 다시 자세하게 언급되고 있는 것은 헤롯 왕이 예수님에 대해 듣고 전에 이미 자기가 죽인 침례 요한이 다시 살아난 것으로 생각한 것과 관계되고 있다.

마가 복음 6 장 30 -43 절은 예수님께서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고 최소한 오천 명을 먹이신, 가장 유명한 기적들 중의 하나를 기록하고 있다.

예수님이 먹을 것을 가지고 기적을 행하신 사건은 하루 종일 가르치신 일이 그 배경을 이루고 있다.

기적적인 방법으로 군중들을 먹이신 후에,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바다 건너편 벳새다 마을로 돌아가는 배를 타도록 지시하셨다.

그는 군중들을 작별하신 후 기도하러 산으로 가셨다가 후에 제자들을 다시 만날 계획이었다.

제자들이 배를 타고 바다를 건너가고 있을 때, 강한 바람이 불어 배를 위협하였다.

그런데, 예수님이 바다 위로 걸어오셔서 제자들에게 “안심하라 내니 두려워하지 말라”고 하시고 배에 오르시니 바람이 잠잠해 졌다 (6: 45 -52).

제자들은 마음에 놀라움을 금치 못하였다.

그 같이 놀라운 일이 있은 후에, “게네사렛 땅”에 이르신 예수님은 온 지방으로 돌아 다니시면서 그에게로 나오는 병자들을 불쌍히 여기셔서 고쳐 주셨다 (6: 53 -56).

 7장 1 -23절는 점점 더 강해지고 있는 예수님에 대한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의 적대를 묘사하고 있다.

이들 집단들은 예수님과 그의 제자들이 오랫동안 지켜 온 종교적인 전통들을 무시하고 지키지 않는다고 비난하였다.

예수님은 그의 새로운 신앙 공동체는 외적인 전통과 규범 혹은 정결 의식등을 따르는 것이 아니라, 내적인 정결과 변화가 그 기초가 되고 있음을 가르치셨다.  



학습구절 연구


제자들에게 사명을 주어 보내신 예수님 [마가복음 6장 7절]


6장 7절


  • ●   열두 제자를 부르사 둘씩 둘씩 보내시며 더러운 귀신을 제어하는 권능을 주시고   


 예수님 주위에 모여드는 군중의 대부분은 호기심에 찬 사람들이거나 기적을 구하는 사람들이었다.

그러나 서기관이 바리새인들처럼 예수님께 적대적인 태도를 취하는 사람들도 있었는데 반해, 예수님으로부터 배우기 위한 목적으로 따라 다니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들은 제자들로 불려지고 있다.

제자"로 번역 된 용어는 본래 "학습자" 혹은 “배우는 자”를 의미한다.

마가는 예수님이 실명으로 다섯명을 제자로 부르신 것을 언급하였다.

그들은 시몬 베드로와 안드레 그리고 야고보와 요한, 및 레위 (마태)가 되고 있다.

예수님은 그같이 자기를 따라다니며 배우는 많은 사람들 중에서 “열둘을 세우(셔서)” 사도로 삼으셨다.

“사도”라는 말에는 “보냄을 받다” 혹은 “어떤 임무를 띠고 파송을 받다”라는 뜻이 담겨있는데, 그 같은 뜻의 헬라어에서 사도라는 용어가 파생되었다.  

마가는 예수님이 그같이 열둘을 불러 세우신 목적을 “이는 자기와 함께 있게 하시고 또 보내사 전도도 하며 귀신을 내쫓는 권능도 가지게 하려 하심이라”고 밝혔다  (3: 14 -15).


기독교가 신앙 공동체로 시작된 것은 매우 중요하고 의미 깊은 일이다.


기독교가 신앙 공동체로 시작된 것은 매우 중요하고 의미 깊은 일이다.

예수님에 대한 믿음은 개별적인 것이지만, 믿음 생활은 혼자서 단독으로 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반드시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 다른 제자들과의 관계나 신앙 공동체 안에서 삶으로 표현되게 마련이다.

예수님은 상당기간에 걸쳐 제자들과 함께 지내시면서 그들을 가르치시고, 그들이 예수님을 잘 알게 되고 그가 가르치며 치유하는 사역을 관찰했을 때, 그들을 “둘씩 둘씩” 짝을 지어 보내셨다.

우리는 예수님이 그의 제자들을 두 명씩 짝을 지어 보내신 이유를 적어도 두 가지를 둘 수 있다.

첫째로, 구약의 말씀과 당시의 관습에 따르면, 어떤 주장이 참 된지를 입증하려면 두 사람 혹은 세 사람의 증언이 요구되었다 (신 17: 6).

둘째로, 두 사람이 일을 함께 하면 두 사람이 따로 일한 것을 합친 것보다 더 큰 결과를 낼 수 있다 (전 4: 9-12).

우리는 예수님께서 그같이 하신 것을 동역(同役) 혹은 협동사역의 신앙 공동체를 건설하신 것으로 말할 수 있다.

사도 행전에 의하면, 기독교가 확장됨에 따라, 둘씩 짝지어 나가는 관습은 계속되었다.

바나바와 사울(바울) (행 13: 2), 바나바와 이 복음서의 저자인 마가 (15: 39), 그리고 바울과 실라의 경우가 그랬다(15: 40). 

두 사람이 함께 사역하는 것만이 유일한 사역방법이 되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매우 효과적 일이 되고 있다.

경우에 따라서는, 일대일 전도나 사역이 매우 효과적인 방법이 될 수 있다.

모든 신자들은 나가서 다른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을 가르치는 일을 위하여 부름을 받았다 (마 28: 19 -20).

제자들이 그 같은 사명을 띠고 나아갈 때의 또 다른 중요한 문제는 ‘권세’ 혹은 ‘권능’이 되고 있다.  

예수님은 그들에게 “더러운 귀신을 제어하는 권능을 주(셨다).”

그들은 자신의 힘이 아니라, 예수님의 권능을 받아가지고 나아갔던 것이다.

예수님은 부활하신 후 승천하시기 전에도 제자들에게 이점을 강조하셨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고 하셨다 (행 1: 8).   

우리가 나중에 보게 되는 것처럼, 예수님은 또한 하나님의 왕국에 관해 전파하고 가르치는 사역의 연장선인 다른 임무들로 맡겨서 보내셨다.

복음 전파자가 한 명 밖에 없었는데, 이제는 예수님 자신 외에 여섯 팀의 복음 전파자들이 생기게 되었다.

예수님은 지금도 계속해서 그의 제자들을 내보내셔서 그의 사역을 확장하시고 있다.


당신의 삶에서는 복음 전파사역을 위해 예수님의 보냄을 받았다는 사실이 어느 정도까지 반영되고 있는가?  

당신은 “예수님께서 모든 제자들이 그의 사역의 일원이 되기를 기대하신다”는 전제(前提)에 어느 정도로 동의하고 있는가? 


제자들을 준비시키신 예수님 [마가복음 6장 8 -11절]


6장 8 -9절


  • ●   명하시되 여행을 위하여 지팡이 외에는 양식이나 배낭이나 전대의 돈이나 아무 것도 가지지 말며
  • ●   신만 신고   옷도 입지 말라 하시고   


예수님은 제자들이 행해야 될 일에 대해 “명하(셨다).”

구체적이고도 자세한 내용은 열두 사도가 하나님께 전적으로 의존해야 됨을 강조해주고 있다.

또 다른 한 편으로는, 복음전파의 절박감과 긴급함으로 인해, 그들은 될 수 있는 한 간단하게 그리고 방해 받지 않고 여행을 하여야 했다.

그래서 예수님은 사도들에게 “여행을 위하여 지팡이 외에는 양식이나 배낭이나 전대의 돈이나 아무 것도 가지지 (라)”고 하셨다.

그런 다음 예수님은 사도들에게 “신만 신고 두 벌 옷도 입지 말라”고 지시하셨다.

마태복음에서는 “두 벌 옷이나 신이나 지팡이를 가지지 말라”는 말로 (마 10: 10), 여분의 것을 준비하지 말라는 뜻이 강조되고 있다.

예수님의 말씀이 어떻게 표현되었든지 간에, 예수님의 말씀에서 강조되고 있는 것은, 제자들이 하나님의 일을 수행할 때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필요 물을 다 공급해 주시는 것을 믿으라는 뜻이 되고 있다.

성경은 일반적으로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그 같은 방법의 생활을 요구하지 않는다.

성경은 결코 내핍 혹은 금욕적인 생활방식을 일반적인 것으로 권하고 있지 않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문제에 대해 몇 가지 점을 지적할 수 있다.


  • ●   기쁨의 좋은 소식을 최대한 효율적으로 전달하려는 당시의 상황과 열두 사도의 특별한 사명의 절박성으로 인해 예수님은 그 같이 과격한 방법을 요구하셨다.
  • ●   예수님은 그 상황을 열두 사도들에게 하나님을 전적으로 의존하는 방법을 가르치는 기회로 삼으셨다.
  • ●   주님은 지금도 여전히 일부 크리스천들에게 매우 검소한 삶을 살도록 부르실 수 있다. 수세기 동안에 걸쳐 많은 신자들은 주님을 위해 기꺼이 빈곤한 삶을 수용하였다. 사도 바울은 빌립보서 4장 12절에서 “풍부와 궁핍에도 처할 줄 아는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고 했을 때 놀라운 삶의 균형을 이루었다.  


사도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일은 그들의 편안과 안락보다 더 중요하였다.  


6장 10절


  • ●   또 이르시되 어디서든지 누구의 집에 들어가거든 그 곳을 떠나기까지 거기 유하라


이들 선교 여행팀들은 하나님께 의존해야 되었을 뿐 아니라, 그들은 또한 하나님께서 제공해 주시는 것에 만족해야 했다.

한 마을에 들어갈 때, 그들은 잠잘 곳과 먹을 음식을 제공할 집을 찾을 것을 기대해야 하였다.

그래서 예수님은 그 같은 뜻으로 제자들에게 “누구의 집에 들어가거든”이라고 하셨다.  

그러시면서 “그 곳을 떠나기까지 거기 유하라”고 하셨다.

그러니까, 그들은 다른 어떤 사람이 더 좋은 곳을 제공해 준다고 해서 그곳으로 옮기는 일을 하지 말아야 하였다.

그 지침을 따름으로, 짝이 된 사도들은 그들이 전하는 메시지에 불쾌감을 갖게 하는 일을 피할 수 있었다.

어느 누구도 그들이 차선책을 찾고 있다고 생각하거나 비난하러 들지 않을 것이다.

바꾸어 말하면, 복음을 전하는 일은 그들의 편안과 안락보다 더 중요하였다.

단순한 생활과 그 삶에 만족하는 문제는 오늘날도 중요한 일이 되고 있다.

삶의 부요를 추구하는 현대의 사역자들은 예수님이 여기에서 강조하는 원칙을 놓친 것 같이 보인다.

반면에, 예수님의 지침은 모든 사역과 선교 여건 속에서 적용되어야 한다는 암시는 없다.


6장 11절


  • ●   어느 곳에서든지 너희를 영접하지 아니하고 너희 말을 듣지도 아니하거든 거기서 나갈 때에 발 아래 먼지를 떨어버려 그들에게 증거를 삼으라 하시니


그 당시에 엄격한 유대인들은 이방인 지역으로 여행을 갔다가 집에 돌아오면, 그들은 부정을 제거하기 위해 이방인 땅에서 묻어 온 모든 먼지를 떨어버려 내야 하였다.

이것은 유대인과 이방인을 구별하며 분리시키는 일이 되었다.

예수님은 이 관습을 다른 방식으로 적용하셨다.

마을이나 성읍이 환영하지 않거나 말을 듣지 않을 때, 사도들은 “거기서 나갈 때에 발 아래 먼지를 떨어버려” 그들에게 “증거”를 삼아야 하였다.  

그것은 복음의 메시지를 거부 한 사람들에게 대한 경고가 되고 있다.


제자들에게 권능을 입혀주신 예수님 [마가복음 6장 12 -13절]


6장 12 -13절


  • ●   제자들이 나가서 회개하라 전파하고
  • ●   많은 귀신을 쫓아내며 많은 병자에게 기름을 발라 고치더라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하는 사역은 다방면으로 이루어져 오고 있다.

여섯 개의 선교 팀으로 구성된 사도들은 예수님의 지시에 따라 나가서 회개의 메시지를 전하였다.

기본적으로, 그들은 “때가 찼고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는 예수님의 사역을 확장시키고 있었다 (1: 15).

회개와 믿음은 같은 동전의 양면과 같다.

회개는 죄와 자기 의존에서 돌이키는 것이다.

믿는 것은 예수님께로 돌아와서 그를 따르는 것이다 (살전 1: 9 -10 참조).

신약성경의 어떤 부분에서는 회개라는 주제가 분명하게 언급되고 있지 않지만, 이 주제는 믿음이나 신앙 또는 신뢰가 논의 될 때마다 암시되고 있다.

여기서 마가는 진정한 회개와 믿음이 죄 사함을 얻게 한다고 직접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그는 침례 요한의 사역에 대해 설명할 때 “죄 사함을 받게 하는 회개의 침례를 전파하니”라는 말로 그 둘의 관계를 분명하게 밝혔다 (막 1: 4).

말씀의 사역은 언제나 복음의 필수적인 부분이 되어오고 있다.

죄를 회개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써 복음에 응답한 사람들만이 예수 그리스도가 시작하신 하나님의 왕국의 일원이 되고 있다.

제자들의 사역의 또 다른 면은 그들이 만나는 사람들의 육체적 필요를 돌보는 것이 되었다.

인간은 육체적인 면과 영적인 면으로 구성되어 있다.

따라서, 더러운 귀신에 들린 사람들의 영적 필요를 채워주기 위해, 그들 제자들은 “많은 귀신을 쫓아내(었다).”

다시, 그들은 사단의 일을 파괴시키는 일로 예수님의 사역을 확장하고 있었던 것이다.

제자들은 예수님의 권능을 힘입어 나아갔던 것이다.

사탄에 대한 영적 싸움은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 제자들에게 지속적인 책임이 되고 있다 (엡 6: 10-18).

더 나아가서, 제자들은 그들이 만나는 “병자”들을 도와주며 “고(쳐주었다).”

그것은 이제 그들이 자동적인 치유의 능력을 가지게 되었다는 말이 아니었다.

오히려, 그들은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권능을 입혀주심으로 하나님의 능력이 그들을 통해 흘러나왔기 때문에 고칠 수 있었다.

그들이 자신의 힘으로 치료하지 않았다는 것을 상징하기 위해, 제자들은 “많은 병자에게 기름을 발라 고(쳐 주었다).”

올리브 기름은 쉽게 구할 수 있는 흔한 것이지만, 아픈 사람이나 다른 어떤 이유로 인해 다른 사람에게 부었을 때, 그것은 하나님의 성령의 임재를 상징하는 일이 되었다 (왕상 1: 39 참조).

올리브 기름은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에 나오는 경우처럼 (눅 10: 34). 의학적인 목적으로 향유연고로 사용되었다.

그러나 여기서 제자들이 올리브 기름을 사용한 것은 상징적인 혹은 비유적인 성격의 것이 되고 있다.

이 관습은 초대 교회에서 전수되었다.

그래서 야고보 5장 13 -15절은 교회 지도자들에게 “주의 이름으로 기름을 바르며 그를 위하여 기도할지니라”는 말로 지침을 제시해 주고 있다.

마가 복음의 이 구절과 야고보서의 그 구절은 성경에서 이 관습을 언급하고 있는 유일한 사례가 되고 있다.


사도들의 보고를 듣고 안식을 주신 예수님 (마가복음 6장 30 -32절)  


6장 30절:


  • ●   사도들이 예수께 모여 자기들이 행한 것과 가르친 것을 낱낱이 고하니


마가 복음은 사도들이 갈릴리 전역을 다니면서 경험한 일들을 자세히 설명하지 않았다.

대신 마가는, 6: 14-29에서, 침례 요한이 헤롯 안디바의 손에 순교를 당한 일에 대한 설명을 삽입시켰다.

사도들이 예수님의 이름으로 복음을 전파하며 치유사역을 하기 시작하자, 예수님의 이름은 더 많이 알려지게 되었고, 전에 침례 요한을 죽인 헤롯 안디바는 예수님이 침례 요한이 죽은 자들 중에서 살아 돌아온 것으로 생각하였는데, 그것은 마가가 침례 요한의 순교에 대해 설명한 계기가 되었다.  

이 설명 후에, 마가는 사도들이 돌아와서 사역의 결과를 보고한 것을 기록하였다.

그들의 선교사역은 성공적이었고, 예수님의 주위에는 더 큰 무리가 계속 모여들었다 (6: 34).

우리는 열 두 명의 사도들이 얼마나 오랫동안 선교여행을 했는지 알 수 없다.

사도들이 예수께 모여”라는 말이 나타내고 있듯이, 그들은 돌아 올 때를 미리 정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들은 그같이 돌아와서 “자기들이 행한 것과 가르친 것을 낱낱이 고(하였다).”   

사역을 위해 파송을 받은 사람들이 돌아와서 보고하는 일은 항상 좋은 원칙이 되고 있으며, 초기 그리스도인들은 그같이 보고하는 일을 실행하였다 (행 14: 27).

그들이 한 일은 분명히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행하도록 명하신 것으로, 귀신들을 쫓아내고 병자들을 고쳐주는 일 등이었다.

그들이 자세하게 이야기했을 때, 흥분과 감격과 기쁨이 있었음이 틀림없다.

그들이 “가르친 것”은 확실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는 복음의 메시지였다.


6장 31 -32절:


  • ●   이르시되 너희는 따로 한적한 곳에 가서 잠깐 쉬어라 하시니 이는 오고 가는 사람이 많아 음식 먹을 겨를도 없음이라
  • ●   이에 배를 타고 타고 한적한 곳에 갈새  


예수님은 군중들뿐 아니라 자기에게 가장 가까운 제자들도 긍휼히 여기셨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그들에게 “너희는 따로 한적한 곳에 가서 잠깐 쉬어라”고 하셨다.

인간의 삶 속에서 쉬며 휴식을 취하는 시간은 필요하며 중요하다.

하나님께서는 7일 중에서 6일은 부지런히 그리고 열심히 일하고 하루는 쉬도록 계획하셨다 (출 20: 8 -11).

여기서 예수님은 그의 제자들에게 “가서 잠깐 쉬어라”고 하셨다.

하루 종일 사람들을 대하는 것은 스트레스를 받을 수 있다.

따라서, 예수님은 그의 제자들이 “한적인 곳에 가서” 쉬기를 원하였다.

복음서 기자는 군중들이 줄어들지 않고, 도리어 늘어나고 있는 상황을 설명해 줌으로 제자들에게 휴식이 필요한 것을 밝혀주었다.

먹을 겨를도 없(을 정도로)” 찾아오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것은 처음 있는 일이 아니었다 (3: 20).


예수님의 부르심을 받은 사역자들이 휴식을 취하며 새로운 힘을 얻는 것은 왜 중요한가? 정기적으로 휴식시간을 취하는 것이 당신의 일상 생활에서 얼마나 중요한 일이 되고 있는가?



말씀을 나의 상황에 적용하기:


  • ●   예수님은 그를 믿고 따르는 모든 신자들이 그의 사역에 참여하기를 기대하신다.  
  • ●   우리는 예수님께서 그의 사역을 하도록 부르시는 사역자들의 필요를 공급해 주시는 것을 믿을 수 있다.
  • ●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권능을 입혀주셔서 그의 이름으로 복음을 전파하며 행하게 하신다.  
  • ●   예수님은 그의 제자들을 부르셔서 사역을 하게 하실 뿐 아니라, 그들을 부르셔서 안식과 새로운 힘을 얻게도 하신다.


당신은 하나님 나라를 위해 지금 어떤 역할을 맡고 있는가?

하나님께서 당신을 새로운 영역으로 부르시고 계시면 이를 알려달라고 기도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