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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복시키시다 - 제 4과 - 2019년 3월 24일 주일 - 장년성경연구 교사용 교재 - 마가복음 5장 21 -24, 35 -43절

글쓴이 : 강호길 날짜 : 2019-03-20 (수) 01:45 조회 : 110

장년성경연구 교사 교안

2019년 3월 24주일 용  


제 4과



회복시키시다  



학습구절: 마가복음 5장 21 -24, 35 -43절  


성경진리:

예수님의 기적들은 그에게 만물을, 심지어 죽음까지도 다스릴 힘이 있음을 상기시켜준다.


주요교리아들 하나님  

예수 그리스도는 완전한 하나님이시자 완전한 인간이시며, 그 분 안에서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화해가 이루어진다.             


암송구절:  마가복음 5장 36절


예수께서 그 하는 말을 곁에서 들으시고 회당장에게 이르시되

두려워하지 말고 믿기만 하라 하시고   

Overhearing what they said, Jesus told him,

“Don’t be afraid; just believe.”      



시작하는 글:


무엇이 사람을 위대하게 만드는가?

우리는 어떤 사람의 기술을 생각할 수도 있다.

우리는 또한 정치가나 목회자 혹은 교사의 영향력 같은, 좋은 영향력을 생각할 수 있다.

믿을 수 없고 신뢰할 수 없는 세상에 살면서, 위대함의 특징과 표로 정직과 성실 및 인격을 드는 것은 어떤가?

어쩌면, 위대함이란 어떤 사람이 행사하는 힘, 즉 그가 얼마나 많은 것을 성취하였느냐 혹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거느리고 있느냐를 가리킬 수도 있다.


당신은 오늘 잘 알려진 인물들 중 어떤 사람이 위대하다고 생각하는가?

진정한 위대함의 표는 무엇인가?



본문배경설명   


마가복음 4장 35절부터 5장 43절까지


마가는 예수님의 생애와 사역에 대한 이야기를 그의 뛰어나심과 위대하심을 나타내는 방법으로 하였다.

마가는 그것을 여러 가지 방법으로 하였다.

예를 들어, 마가는 예수님이 위대한 교사로서 뛰어나셨다고 기록하였다 (1: 22, 4: 1-2).

그는 또한 예수님께서 행하신 여러 가지 기적적인 치유들과 이적들과 귀신을 쫓아내신 일들을 기록(記錄)함으로 만물을 지배하시는 그의 능력과 권세를 보여주었다.

1 ~ 5 장에 나오는 다음의 기적의 이야기들은 예수님의 도움이 필요했던 다양한 상황들을 보여주고 있다.

이것들은 부정할 수 없는 예수님의 위대하심과 그의 권세를 보여준다.


몸의 질병을 고쳐주신 일들:

  • ●  열병을 앓고 있는 시몬 베드로의 장모를 고쳐주심 (1: 29 -31)
  • ●  나병환자를 고쳐주심 (1: 40 -45)
  • ●  친구들이 지붕 위에서 내려 보낸 중풍 병자를 고쳐주심 (2 : 1 -12)
  • ●  손 마른 사람을 고쳐주심 (3: 1 -6).
  • ●  회당장 야이로의 딸을 살려주심 (5: 21 -24, 35 -43)
  • ●  혈루증을 앓는 여인이 고침을 받음 (5: 25 -34)


자연의 기적들:

갈릴리 바다의 바람과 바다를 잔잔하게 하시다 (4: 35 -42)


악귀를 쫓아내신 일들:

가버나움 회당에서 귀신들린 사람을 고쳐주심 (1: 21 -28)

거라사인의 지방에서 귀신 들린 사람을 고쳐주심 (5: 1 -20)

금주에 배우게 될 학습구절이 담겨있는 직접적인 맥락, 즉 본문배경은 4장 35절부터 5장 43절이 되고 있다.

연속적으로, 마가는 예수님께서 만물에 대한 그의 권세를 보여 주신 네 가지 특별한 상황을 묘사하였다:


1) 예수님은 오랫동안 어부로 생활한 제자들까지도 놀라움을 금치 못한 나머지, “그가 누구이기에 바람과 바다도 순종하는가”라고 서로 물을 정도로, 사나운 바다의 폭풍우를 잠잠케 하셨다. (4: 41).

2) 예수님이 한 사람에게서 귀신들을 쫓아내시자, 그 모든 일을 목격한 사람들은 너무나 놀란 나머지 예수님께 “그 지방에서 떠나시기를 간구하(였다)” (5: 17).

3) 열두 해를 혈루증 병을 앓던 여인이 그의 옷에 손만 대어도 고침을 받을 줄로 믿고 예수님의 옷을 만졌을 때, 예수님은 그 여인을 고쳐주셨다 (5: 29).

4) 예수님은 죽은 열두 살 소녀를 살려내셨고, 이를 목격한 사람들은 놀라움을 금치 못하였다 (5: 42).



학습구절 연구                                


기꺼이 도와주시기를 원하시다 [마가복음 5장 21 -24]


5장 21절


  • ●  예수께서 배를 타시고 다시 맞은편으로 건너가시니 큰 무리가 그에게로 모이거늘 이에 바닷가에 계시더니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함께 갈릴리 바다의 동쪽으로부터 배를 타고 돌아오셨을 때, 큰 무리가 그들을 맞았다.

맞은편”이란 말은 갈릴리 바다의 서쪽 혹은 북쪽 해안지역을 가리키는 말로, 예수님이 사역본거지로 삼으셨던 가버나움을 지칭하는 것으로 보인다.

예수님과 제자들이 배에서 내리자마자, “큰 무리가 그에게로” 모여들었고 예수님은 “바닷가에” 계셨다.

마가는 예수님의 초기 갈릴리 사역에 대해 “큰 무리”가 따르거나 모여들었다는 사실로 그 같은 특징을 여러 번에 걸쳐 강조하였다 (2: 2, 13; 3: 7 -8, 20, 32; 4: 1 참조).


5장 22 -23절


  • ●  회당장 중의 하나인 야이로라 하는 이가 와서 예수를 보고 발 아래 엎드리어
  • ●  간곡히 구하여 이르되 내 어린 딸이 죽게 되었사오니 오셔서 그 위에 손을 얹으사 그로 구원을 받아 살게 하소서 하거늘  


큰 무리의 사람들 중에는 “회당장 중의 하나인 야이로라” 하는 사람이 있었다.

기원후 1세기에 유대교 회당은, 특별히 예루살렘의 외부지역에서, 유대인들의 공동체 생활의 중심이었다.

한 지역의 회당은 최소한 10 명의 유대인 성인 남자만 있으면 설립 될 수 있었다.

희생제물들은 예루살렘에 있는 성전에서만 드려졌고, 안식일의 예배와 종교적인 가르침은 회당에서 행해졌다.

회당의 주요 지도자는 회당장으로, 회당을 관리하며 모임을 조직하고 인도하는 책임을 맡았다.

갈릴리 지역의 회당장들 중의 한 사람이었던 “야이로”는 그 지역에서 존경을 받고 영향력 있는 사람이었을 것으로 보인다.

야이로가 예수님을 찾아온 일은 몇 가지 측면에서 살펴볼 필요가 있다.

첫째로, 예수님에 대한 바리새인들과 헤롯당원들에 의한 강한 적대의 기류가 점점 더 강해지고 있었다는 사실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3: 6).

예수님이 안식일에 회당에서 손 마른 사람을 고치신 일이 있은 후, 예수님에 대한 그들의 계획은 치명적인 방향을 택하였다 (3: 1-6).  

우리는 야이로 회당장이 바리새인들의 음모에 대해 알고 있었는지, 만일 그가 알고 있었다면, 그들의 계획에 동조했는지 아니면 반대했는지의 여부를 알지 못한다.

우리가 아는 것은 당시 야이로의 주요 관심사는 죽게 된 딸이 고침을 받는 것이었다.

둘째로, 우리는 야이로가 분명한 의도와 목적을 가지고 예수님을 찾아나선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는 죽게 된 딸 옆에서 걱정하며 지키고 있다가 예수님을 찾으러 왔던 것이 분명하다.

그는 호기심에서 혹은 해변가로 모이는 군중들을 우연히 따라갔다가 예수님을 만난 것이 아니었다.

그는 예수님의 도움을 구하려는 분명한 목적을 갖고 찾아 나왔던 것이다.

셋째로, 야이로 회당장은 담대하고도 의도적으로 뿐 아니라 겸손한 자세로 예수님께로 나아갔다.

그는 “예수(님)을 보고 발 아래 엎드(렸다)”.

야이로는 회당장으로 그 지역의 유대인 공동체내에서 지위와 명성을 가진 사람이었다.

그러나, 그의 지위와 명성은 그의 딸을 치유해 줄 수 없었다.

그러므로, 이 필사적인 아버지는 예수님께로 와서 그 앞에 무릎을 끓고 도와달라고 간청했던 것이다.

간곡히 구하여 이르되”라는 말은 “끈질기게 강청하기를”이라는 뜻으로 번역될 수도 있다.

확실히, 그 말은 그의 절박한 필요는 물론 신실함을 나타내주고 있다.

그의 애타하는 마음은 아끼고 사랑하는 딸이 죽어가는 부모만이 느낄 수 있는 것이었다.

그는 딸을 살리기 위해는 무엇이든지 하려고 하였다.

그 딸은 “열두 살 된 외딸”로 (눅 8: 42), 유일한 아이였던 것으로 보인다.

야이로에게 그 딸은 세상과도 바꿀 수 없는 귀중한 존재였다.

당시의 상황에서 야이로 회당장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딸이 고침을 받아 사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는 예수님께 “내 어린 딸이 죽게 되었사오니 오셔서 그 위에 손을 얹으사 그로 구원을 받아 살게 하소서”라고 간청하였다.

구원을 받아”로 번역된 헬라어는 “고침을 받아”라는 뜻으로도 번역될 수 있다.


5장 24절


  • ●  이에 그와 함께 가실새 큰 무리가 따라가며 에워싸 밀더라


주저하지 않고, 예수님은 그와 함께 가시기 시작하셨다.

그것은 예수님이 믿음으로 자기에게 나아오는 사람들에게 어떻게 반응하시는지를 보여주는 하나의 좋은 실례(實例)이다.

이 구절에서 예수님에 대한 믿음이 직접적으로 언급되고 있지 않더라도, 야이로가 예수님을 찾아와서 행한 일과 간청한 말은 예수님에 대한 그의 믿음을 보여주는 일이 되고 있다.

더욱이 예수님이 회당장에게 “두려워하지 말고 믿기만 하라”고 하신 말씀도 그 같은 사실을 확증해 주고 있다.

마가는 “큰 무리가 따라가며”라는 말로, 21절에 이어 “큰 무리”가 따른 것을 언급하였는데, 이번에는 “에워싸 밀더라”는 말로 군중들이 예수님을 에워싸고 밀었던 점을 특별히 부각시켰다.

그것은 예수님이 혈루증을 앓는 여인을 고쳐주신 이야기로 바뀌는 전환점이 되고 있다.

그 여인은 12 년 동안 만성 출혈 질환에 시달려 왔지만, 치유를 받을 방법이 없었다.

5장 26절은 그 여인의 상태를 “많은 의사에게 많은 괴로움을 받았고 가진 것도 다 허비하였으되 아무 효험이 없고 도리어 더 중하였던 차에”라는 말로 묘사하였다.

그 여인에게는 도움을 청할 사람이 아무도 없었으며, 그녀는 야이로처럼 예수님을 찾아 나섰다.

그녀에게는 “내가 그(예수님)의 옷에만 손을 대어도 구원을 받으리라”는 믿음이 있었다 (5: 28).  

그리고 예수님의 능력은 너무 커서 그녀가 예수님의 옷에 손을 대었을 때 혈루 근원이 마르고 병이 치유되는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그것은 예수님 자신도 치유의 능력이 자신에게서 나가는 것을 모르신 것같이 보이는 드문 일이 되었다.

예수님은 “딸아 네 믿음이 너를 구원(낫게)하였으니 평안히 가라”는 말씀으로, 그 여인의 믿음과 자신의 치료의 능력 사이의 관계를 확언하셨다 (5: 34).


당신은 아직도 예수님께서 믿음으로 그에게 나오는 모든 사람들을 기꺼이 도와 주시기를 원하시고 계시다고 믿는가?

당신 자신의 삶 속에서 예수님의 도움이 필요했을 때 그가 오셔서 도움을 베풀어 주셨던 실례(實例)를 들어보라.

                                                                                                                                                                                                                                                                                                                                                                                                                                                                                                                                                                                                                                                                                                                                                                                                                                                                                                                                                                                                                                                                                                                                                                                                                                                                                                                                                                                                                                                                                                                                                                                                                                                                                                                                                                                                                                                                                                좌절하거나 단념하지 않으시다 [마가복음 5장 35 -40절]


5장 35 -36절


  • ●  아직 예수께서 말씀하실 때에 회당장의 집에서 사람들이 와서 회당장에게 이르되 당신의 딸이 죽었나이다 어찌하여 선생을 더 괴롭게 하나이까
  • ●  예수께서 그 하는 말을 곁에서 들으시고 회당장에게 이르시되 두려워하지 말고 믿기만 하라 하시고


우리는 예수님이 혈루증으로 앓던 여인을 고쳐주신 일로 생긴 중단이 얼마나 지속되었는지를 알지 못한다 (5: 25 ~ 34).

우리가 단지 상상할 수 있는 것은 군중들로 인해 방해를 받고 지연되었을 아니라, 또 혈루증 환자의 예기치 않은 일로 인하여 중단되는 사태까지 생기는 바람에 야이로가 크게 좌절감을 느꼈을 것이라는 사실이다.

그러는 중에, 야이로는 가장 충격적인 일을 겪게 되었다.

예수님께서 그 여인에게 계속 말씀하시고 있는 동안에, 회당장의 집으로부터 소식이 왔다.

그 소식은 “당신의 딸이 죽었나이다”라는 엄청나게 충격적인 것이었다.

그 같은 소식을 가지고 온 사람들은 야이로에게 예수님을 더 이상 괴롭히지 말라고 하였다.

그가 해야 할 일은 집으로 가서 장례준비를 하는 것이었다.

우리가 의문을 가지게 되는 것은 야이로의 좌절감이 분노로 바뀌지 않았는가 이다.

어째서 그 여인은 고침을 받았는데, 예수님께서 고쳐주시려고 한 자기의 딸은 고침을 받지 못하였는가?

예수님은 그가 하시려는 일을 알고 계셨다.

예수님은 또한 야이로가 충격을 받아 두려움에 차 있는 것을 아셨다.

곁에서 하는 말을 들으시고, 예수님은 회당장에게 먼저 “두려워하지 말(라)”고 하셨다. 

그러신 다음, 예수님은 “믿기만 하라”고 도전하셨다.

그 말에서는 몇 가지 사실이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다.

첫째로, 그 말의 동사 형태는 “계속 믿으라”는 뜻으로 번역될 수 있다.

예수님은 여이로에게 지속적인 믿음, 즉 무슨 일이 일어나든지 관계없는 믿음을 가지라고 요구하셨던 것이다.

둘째로, 야이로는 한 여인이 치유를 받는 것을 목격했으며 예수님이 그녀의 믿음을 치유의 방편으로 칭찬하시는 것을 들었다 (5: 34).

믿음은 야이로에게 두드러진 한 증거로 나타나야 되었다.

예수님의 말씀에서 강조되고 있는 것은 1) 믿음의 중요함과 2)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의 예수님의 능력이 되고 있다.


5장 37 -38절


  • ●  베드로와 야고보와 야고보의 형제 요한 외에 아무도 따라옴을 허락하지 아니하시고
  • ●  회당장의 집에 함께 가사 떠드는 것과 사람들이 심히 통곡함을 보시고

군중이 야이로의 집에 도착하기 전에, 예수님은 그들이 따라오는 것을 멈추셨다.

그리고 예수님은 그와 함께 야이로의 집으로 갈 사람들을 제한하셨다.

그는 “야이로”와 그의 제자들 중 세 명으로, “베드로와 야고보와 야고보의 형제 요한”만 그와 함께 가도록 허락하셨다.

베드로와 야고보 그리고 요한은 이번 경우 외에도, 다른 두 번에 걸쳐 예수님의 사역의 중요한 사건을 직접 목격하는 특권을 가졌다.   

그들은 이 사건을 직접 목격했기 때문에, 예수님의 부활 사건 이전에도 죽음에 대한 예수님의 권세에 대해 증거 할 수 있었다.

그들은 변화 산에서 예수님이 변형되시는 사건을 목격했기 때문에,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 아들을 확증 해 주신 것을 증거할 수 있었다 (막 9: 2).

그들은 겟세마네 동산에서 예수님이 고뇌에 차서 기도하시는 것을 들었기 때문에, 그를 위한 아버지의 계획인 고난의 잔을 받으실 때 예수님이 겪으신 극심한 고난에 대해 간증 할 수 있었다.

회당장의 집에 들어가셨을 때, 예수님은 사람들이 떠들며 “울며 심히 통곡(하고 있는 것)”을 보셨다.

슬픔을 나타내는 방법은 문화권마다 서로 다르다.

가까운 친지나 가족들은 물론 크게 슬퍼하며 통곡하였겠지만, 당시 유대 문화권에서는 슬픔을 나타내기 위해 직업적으로 통곡해 주는 사람들도 있었다.

마태복음 9: 23의 “피리 부는 자들과 떠드는 무리”는 그 같은 사람들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인다.

어떤 경우가 되었건, 죽은 사람을, 그것도 어린 나이에 죽은 사랑하는 아이에 대해 슬퍼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5장 39 -40절


  • ●  들어가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어찌하여 떠들며 우느냐 이 아이가 죽은 것이 아니라 잔다 하시니
  • ●  그들이 비웃더라 예수께서 그들을 다 내보내신 후에 아이의 부모와 또 자기와 함께 한 자들을 데리시고 아이 있는 곳에 들어가사


예수님은 그를 따라온 세 제자들과 함께 집 안으로 들어가셨다.

아마도, 야이로가 먼저 들어가며 예수님을 인도했던 것으로 보인다.

예수님은 울며 통곡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너희가 어찌하여 떠들며 우느냐”고 반문하셨다.

그 질문은 당시의 상황에서 놀라운 일이자 믿을 수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 질문은 그럴 필요가 없다는 뜻을 나타내고 있다.

예수님께서 그 다음으로 하신 말씀은 슬퍼하는 사람들에게 더욱 충격적이고 놀라운 것이었다.

그는 말씀하기를 “이 아이가 죽은 것이 아니라 잔다”고 하였다.

잔다”는 말은 종종 성경에서 죽음을 가리키는 은유 혹은 비유로 사용되었다.

예수님은 나중에 나사로가 죽었을 때, “우리 친구 나사로가 잠들었도다”는 말로 이 비유적 표현을 사용하셨다 (여 11: 11 -14).

예수님이 그 소녀를 보러 들어가기 전에 하신 말씀은 그 아이가 다시 살아나게 될 것을 보여주도록 의도된 것이었다.

예수님의 말씀을 들은 사람들은 믿음을 보이는 대신에 예수님을 비웃었다.

그것은 불신앙의 표현이었다.

예수께서 그들을 다 내보내신 후에”라는 말은 예수님이 그의 권세로 그같이 불신앙을 나타낸 사람들을 다 집 밖으로 내보낸 것을 가리키고 있다.

예수님은 일반적으로 믿지 않는 사람들 앞에서 기적을 행하지 않으셨다  (마 13: 58).

그러므로, 예수님은 “아이의 부모와 또 자기와 함께 한 자들을 데리시고 아이 있는 곳에 들어가(셨다).”

아이의 어머니는 그곳에서 딸이 죽은 것을 본 것이 확실하다.

그리고 남편에게 사람들을 보내어 딸이 죽은 것을 알렸던 것으로 보인다.


당신은“두려워하지 말고 믿기만 하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당신의 현재 삶의 상황에 어떻게 적용 할 수 있는가?

당신은 예수님께서 불신앙을 보시면 방해나 제한을 받으신다고 생각하는가?  



살려 줄 수 있으시다 (마가복음 5장 41 -43절)  


5장 41 -42절: 


  • ●  그 아이의 손을 잡고 이르시되 달리다굼 하시니 번역하면 곧 내가 네게 말하노니 소녀야 일어나라 하심이라
  • ●  소녀가 곧 일어나 걸으니 나이가 열두 살이라 사람들이 곧 크게 놀라고 놀라거늘


처음에 야이로는 예수님에게 자기 어린 딸이 죽게 되었으니 와서 그 위에 손을 얹고 고쳐서 살게 해 달라고 간청했었다.

예수님은 이제 그 집에 오셔서 그 딸을 살려주려고 하셨을 때, “그 아이의 손을 잡(으셨다).”

그런 다음, 그 소녀에게 “달리다굼”이라고 말씀하셨다.

예수님은, 그의 친구로 이미 죽은 나사로의 경우에는, “큰 소리로 나사로야 나오라”고 하셨는데 반해, 이 경우에는 조용한 음성으로 말씀하신 것이 분명해 보인다.

달리다굼”이란 말은 아람어로, 구약 성경의 히브리어와 유사한 것으로, 예수님이 일반 대화로 사용하신 언어였다.

마가 복음의 첫 번째 독자들과 청중들은 헬라어를 더 익히 알고 있었기 때문에, 마가는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을 번역하여 포함시켰다.

그 번역은 “내가 네게 말하노니 소녀야 일어나라”이다.

여기서 아람어를 그대로 사용한 것은 사건의 목격자가 기억하고 있던 것을 가리키고 있으며, 그 목격자는 바로 베드였던 것으로 보인다. 

우리는 예수님의 말씀의 세 가지 요소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첫째, 예수님은 회당장의 딸의 이름을 듣지 못하였으므로, 그를 “소녀”로 부르셨다.

둘째, 부드럽게 말씀하셨지만, 예수님의 말은 강한 지시와 명령이 되었다.

생명과 죽음을 지배하는 권세를 가지신 분이 말씀하고 있었던 것이다.

셋째, 나중에 죽은 나사로를 살려내신 것처럼, 예수님은 그 소녀를 육체적인 죽음의 영역에서 생명의 영역으로 회복시켜 주셨던 것이다.

이미 마가 복음은 모든 종류의 질병과 악령에 대한 예수님의 권세를 기록했다.

예수님은 또한 죄 사함의 권세를 나타내셨다.

여기서 예수님이 말씀하시자 마자, “소녀가 곧 일어나서 걸(었다).”

그 소녀는 죽음에서 생명으로 완전히 회복되었던 것이다.

물론, 이 소녀가 경험한 것은 결코 다시 죽지 않는 영생으로의 부활이 아니었다.

부활은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사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신 일이다 (고전 15: 20). 

소녀가 곧 일어나서 걸어 다니자, 이를 본 부모와 세 제자는 “곧 크게 놀라고” 그 놀라움을 금하지 못하였다.  


5장 43절: 


  • ●  예수께서 이 일을 아무도 알지 못하게 하라고 그들을 많이 경계하시고 이에 소녀에게 먹을 것을 주라 하시니라


예수님은 아직 자신이 신적 권세와 능력을 행하는 것을 본 사람들이 다른 사람들에게 말해주는 것에 대해 준비가 되어 있지 않으셨다.

그래서 그는 “이 일을 아무도 알지 못하게 하라”고 경계하셨다.

다시 말하면, 그들이 목격한 일을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지 말라는 뜻이 되고 있다.

신학자들은 예수님의 사역의 그 같은 면을 “메시야의 비밀”로 부르고 있다.

다시 말하면, 예수님은 메시야로서의 자신의 사명을 그가 택한 때와 방법으로 나타내기를 원하셨다.

그런 다음 “소녀에게 먹을 것을 주라”고 부모에게 명하셨다.  



말씀을 나의 상황에 적용하기:


  • ●  우리는 예수님께서 그를 찾는 사람들을 도와주시기를 기뻐하시는 것을 알기 때문에, 확신을 갖고 그에게로 나아갈 수 있다.
  • ●  예수님은 어떤 불신앙에 의해서도 제약이나 방해를 받지 않으신다.
  • ●  예수님은 그의 피조물에 생명을 회복시켜 주실 수 있다.



당신이 도움을 얻기 위해 예수님께 나아가는 것을 방해하는 것들은 무엇인가?

예수님께 더 자주 나아가기 위해서 변화되어야 할 것은 무엇인가?


당신은 삶의 어떤 영역에서 의심을 하고 있는가?

그 영역에서 확신을 달라고 하나님께 기도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