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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하시다 - 제 3과 - 2019년 3월 17일 주일 - 장년성경연구 교사용 교재 - 마가복음 3장 23 -35절

글쓴이 : 강호길 날짜 : 2019-03-13 (수) 13:22 조회 : 126

장년성경연구 교사 교안

2019년 3월 17주일 용  


제 3과



연합하시다  



학습구절: 마가복음 3장 23 -35절


성경진리:

예수님은 신자들을 부르셔서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표가 나타나게 하신다.    


주요교리교  회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신약 교회는 복음의 믿음과 교제의 언약으로 연합된, 침례 받은 신자들의 자율적이고도 지역적인 신앙공동체이다.           


암송구절:  마가복음 3장 35절


누구든지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자가 내 형제요 자매요 어머니이니라  

Whoever does God’s will is my brother and sister and mother.     



시작하는 글:


아기가 태어날 때마다 일어나는 일이 있다.

친구들이나 친척들은 갓 태어난 아기가 누구를 닮았는지, 엄마의 눈을 닮았는지 혹은 아빠의 턱을 닮았는지 결정하려고 한다.

자랑스러운 가족의 일원임을 보여주는 아기의 신체적 특징을 찾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 같은 원리는 영적인 가족에게도 적용되고 있다.

예수님은 하늘에 계신 아버지와의 관계를 보여주는 일들을 말씀하시고 행하셨다.

마찬가지로, 우리는 "영적 가족의 닮은 점들”을 나타내야 한다.


당신은 세상 가족을 닮고 있는 신체적 특징들로 어떤 것들을 들 수 있는가?  

당신이 그리스도와의 관계를 나타내려고 노력하고 있는 것들로서 어떤 것들이 있는가?



본문배경설명   


마가복음 3장 7 절부터 4장 34절까지


마가 복음서의 이 부분은 예수님의 권세를 거부하는 일반적인 주제를 전개하고 있다.

그 주제는 우리가 학습구절에서 예수님의 적대자들이 예수님을 사탄의 능력을 힘 입어 귀신을 쫓아낸다고 비난하며 공격한 것을 배울 때 분명하게 나타나고 있다.

아래의 목록은 금주의 핵심 구절인 마가복음 3: 7 ~ 4: 34의 주요제목들을 열거하고 있다.


  • ●  큰 무리에게 사역하시다 (3: 7 -12)
  • ●  열 두 제자를 세우시다 (3: 13 -19)
  • ●  갈리지 않은 집 (3: 20 -30)
  • ●  참된 관계 (3: 31 -35)
  • ●  씨 뿌리는 자의 비유 (4: 1 -9)
  • ●  예수님이 비유를 사용하신 이유 (4: 10 -12)
  • ●  씨 뿌리는 자의 비유에 대한 설명 (4: 13 -20)
  • ●  너희 빛을 비추라 (4: 21 -25)
  • ●  자라나는 씨의 비유 (4: 26 -29)
  • ●  겨자씨의 비유 (4: 30 -32)
  • ●  비유로 가르치신 예수님 (4: 33 -34)


우리는, 이번 주의 학습구절에서는 물론 위의 목록을 통해서도 똑같이, 마가가 예수님을 비유의 거장(巨匠)으로 소개하려고 힘쓴 것을 보게 된다.

우리는 비유가 무엇인지 그리고 예수님은 어떻게, 많은 사람들이 비유의 정의(定義)로 받아들이고 있는, “하늘의 의미를 지닌 땅의 이야기”에 뛰어나셨는지를 자세히 살펴보게 될 것이다.



학습구절 연구                                


분쟁하지 않는  [마가복음 3장 23 -30]


3장 23 – 26절


  • ●  예수께서 그들을 불러다가 비유로 말씀하시되 사탄이 어찌 사탄을 쫓아낼 수 있느냐
  • ●  또 만일 나라가 스스로 분쟁하면 그 나라가 설수 없고
  • ●  만일 집이 스스로 분쟁하면 그 집이 설 수 없고
  • ●  만일 사탄이 자기를 거슬러 일어나 분쟁하면 설 수 없고 망하느니라   


예수님이 갈릴리에서 가시는 곳마다 군중들은 열심히 그를 따랐다.

그는 병든 자들을 고치셨고, 악한 영들에 대한 그의 권세를 드러내셨으며, 열두 제자를 사도로 세우셨고, 그들을 보내어 복음을 전파하며 병을 고치고 그의 권능으로 귀신을 쫓아내게 하셨다 (막 3: 13-15).

동시에, 예루살렘의 종교 지도자들에 의한 예수님에 대한 적대는 그치지 않았다.

지난 주에 배웠듯이, 예수님께서 중풍병자에게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고 하시자, 그 자리에 있던 서기관들은 “오직 하나님 한 분 외에는 누가 능히 죄를 사하겠느냐”며 “신성모독”으로 예수님을 정죄하였다 (2: 6 -7).

그 후에, 예수님이 세리 및 죄인들과 함께 음식을 드셨을 때, 종교지도자들은 이를 비난하였다 (2: 16).

또한 예수님이 안식일에 손 마른 사람을 고쳐주셨을 때, 그들은 너무 화가 난 나머지 헤롯 당원들과 함께 예수님을 제거할 음모를 꾸미기 시작하였다 (3: 6).

예수님의 적대자들은 예수님이 병자들을 고치시고 귀신들린 사람들에게서 귀신들을 쫓아내시는 것을 어떤 방법으로든지 부인할 수 없었다.

결과적으로, 서기관들은 예수님이 귀신의 왕인 “바알세불”로 부터 힘을 얻어 귀신들을 쫓아낸다고 주장함으로, 예수님의 신용을 떨어뜨리려고 하였다 (막 3: 22 참조).

바알세불”이라는 이름은 처음에는 고대 가나안 신 (神)을 가리켰는데, 후에 블레셋의 도시인 “에그론의 신”을 가리키는 이름이 되었다 (왕하 1: 2 참조).

예수님 당시에, 바알세불은 유대인들이 악마인 사탄과 동일시했던 한 이름이었다.

그런데, 그들 서기관들은 예수님이 “바알세불이 (들렸다) 하며 또 귀신의 왕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낸다”고 하였다 (3: 22).

그러니까, 그들은 예수님이 귀신의 힘을 이용하여 귀신을 쫓아낸다고 비난했던 것이다.

예수님은 종종 사람들로 하여금 어떤 문제를 다른 관점에서 생각하게 하는 방법으로 질문법을 사용하셨다.

이 시점에서, 예수님의 적대자들은 예수님과 이야기를 하려고 하였으므로, 예수님은 그들을 불러다가 말씀하셨다.

마가는 예수님이 하신 말씀을 “비유의 말씀”으로 묘사하였다.

“비유”라는 말로 번역된 헬라어는 ‘파라볼레”로, 더 깊은 영적 진리를 전달해주는 단순한 이야기를 뜻하고 있다.

예수님은 사람들이 익히 잘 알고 이해하는 상황을 사용하여 영적인 진리나 상태를 설명하시는데 전문가였다.

본문 구절인 23절에서, 예수님은 “사탄이 어찌 사탄을 쫓아낼 수 있느냐”는 말로, 대답이 분명한 질문 형태의 비유를 제시하였다.  

예수님과 적대자들은 똑같이 사탄은 악한 존재이며, 그들의 행하는 일들은 항상 악하다는 것을 인정하였다.

예수님과 그의 적대자들은 똑같이 귀신을 쫓아내는 것은 좋은 일이며, 사타과 악령들에게 손상이 된다는 것을 인정하였다.

그렇다면, 그들 적대자들은 사단이 자신을 해치는 일을 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라는 사실에 동의해야 하지 않겠는가?

24절과 25절은 두 개의 짧은 비유를 담고 있다.

그들이 밝히고 있는 요점은 똑 같다.

그것들은 “만일 나라가 스스로 분쟁하면 그 나라가 설 수 없(다)”는 것과 “만일 집이 스스로 분쟁하면 그 집이 설 수 없”다)”는 말이 되고 있다.

유대인들은 솔로몬 왕이 죽은 후에 이스라엘 왕국이 분쟁으로 갈라진 나라의 역사를 잘 알고 있었다.

여로보암은 이스라엘 왕국을 분열시키는 데 성공했으며, 그 결과로 갈라진 두 왕국은 크게 약화되었다 (왕상 12 장).

예수님께서 “집이 스스로 분쟁하면”이라고 하셨을 때, 그는 남편과 아내가 분쟁을 일삼거나, 부모와 자녀가 세대간의 분열을 경험할 때 바로 설수 없는 것을 가리키셨을 수 있다.

예수님이 드신 두 가지 실례는 다 일반적으로 관찰되는 인간의 삶에 초점이 맞추어지고 있다.

예수님은 그의 두 비유로부터 논리적인 추론을 도출해 내셨다.

내적인 분열로 갈라진 나라나 가족이 설 수 없다면, 영적인 영역에서도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그래서 예수님은 말씀하시기를, “만일 사탄이 자기를 거슬러 일어나 분쟁하면 설 수 없고 망하느니라”고 하였다 (3: 26). 


3장 27절


  • ●  사람이 먼저 강한 자를 결박하지 않고는 그 강한 자의 집에 들어가 세간을 강탈하지 못하리니 결박한 후에야 그 집을 강탈하리라


예수님의 세 번째 비유는 내용이 약간 다르지만, 그 요점은 서로 관계되고 있다.

그는 그의 청취자들에게 먼저 강도가 들어와도 그를 충분히 이기고 소유물을 지킬 만큼 강한 주인이 있는 집을 상상해 보라고 하였다.

그같이 강한 주인이 집을 지키고 있다면, 그 집이 강도에게 강탈 당할 상황은 어떤 경우가 될 수 있을까?

예수님은 말씀하기를, 더 강한 자가 와서 강한 주인을 결박하지 않고는 “그 강한 자의 집에 들어가 세간을 강탈하지 못하리니”라고 하셨다.

결박한 후에야 그 집을 강탈하리라”고 하셨다.

이 비유에서 “강한 자”는 사탄을 대표한다.

강한 자를 결박할 수 있는 더 강한 사람은 예수님을 대표하고 있다.

그 강한 자의 집”은 사탄이 계속해서 악한 영향력을 행사해 오고 있는 인간의 영역인 세상이 되고 있다.

그러나, 이제, 귀신을 쫓아내는 그의 성공적인 사역을 통해, 예수님은 그가 사탄보다 훨씬 더 강하시다는 사실을 보여주시고 계셨던 것이다.

예수님은 그 강한 자, 즉 사탄의 집에 들아 가 귀신을 쫓아내심으로 그의 세간, 즉 사탄의 지배를 받고 있는 자들을 빼앗아 내셨던 것이다.


3장 28 -30절


  • ●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사람의 모든 죄와 모든 모독하는 일은 사하심을 얻되
  • ●  누구든지 성령을 모독하는 자는 영원히 사하심을 얻지 못하고 영원한 죄가 되느니라 하시니
  • ●  이는 그들이 말하기를 더러운 귀신이 들렸다 함이러라


본 학습구절인 28 ~ 30 절에서, 예수님은 주제를 바꾸셨다.

그는 바로 앞에서 사탄의 힘으로 귀신을 쫓아 내고 있다고 비난하는 것의 어리석음을 설명하셨다.

그는 이제 그 같은 비난을 한 사람들의 영적 상태를 다루셨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라는 서두(序頭)의 말은 예수님께서 하시려는 말의 심각성과 중대성을 나타내 주고 있다.  

예수님은 그의 엄숙한 선언을 먼저 모든 사람을 큰 희망으로 채워 줄 놀라운 약속의 말씀으로 시작하셨다.

그렇다, 모든 사람은 죄를 짓는다.

그렇다, 우리의 죄는 궁극적으로 하나님 자신에게 짓는 것이다.

그렇다, 하나님은 회개만 하면 “사람의 모든 죄”를 사해 주신다.

심지어 “모든 모독하는 일”을 하는 심각한 죄까지도 하나님의 “사함을 얻(을 것)”이다.

모독하는 일”로 표현된 신성모독은 하나님에 대한 ‘불경스러운’ 혹은 ‘모독적’인 말이 되고 있다.

그것은 “네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망령되게 부르지 말라 여호와는 그의 이름을 망령되게 부르는 자를 죄 없다 하지 아니하리라”는 말로 제 3계명에서 금지되었으며 (출 20: 7), 고대 이스라엘에서는 그 죄에 대한 형벌은 사형이었다 (레 24: 16).

그런데도, 예수님은 하나님께서 직접 그에게 범한 중 죄까지도 사해 주시기를 원하시고 계시다는 사실을 약속해 주셨다.

예수님은 그러한 죄들이 사함을 받으려면, 회개가 선행되어야 함을 전제로 하셨다.

성경 어디에도, 회개하지 않은 자 하나님의 죄 사람을 받았다는 어떤 암시도 없다.

그런데, 예수님은 계속해서 경고하시기를, “누구든지 성령을 모독하는 자는 영원히 사하심을 얻지 못하고 영원한 죄가 되느니라”고 하셨다.

바꾸어 말하면, “영원한 죄를 짓게 되는 일”은 한 사람이 “성령을 모독(할 때)”이다.

바로 이전에 일어난 사건에서, 우리는 예수님이 병자들을 고치시고 귀신들을 쫓아내셨을 때, 서기관들은 “귀신의 왕을 힘 입어 귀신을 쫓아낸다”고 하며, 예수님의 권세를 성령님에게 가 아니라, 귀신의 왕에게 돌린 것을 보게 된다 (3: 22).

하나님의 성령님이 실제로 행하신 것을 사단이 성취한다고 주장하는 자들은 영적으로 철저하게 파산하여 결코 회개하지 않을 것이다.

이 죄는 그들로 하여금 자신들의 죄를 위한 치료법을 받아 들일 수 없게 만들기 때문에 영원한 죄가 되고 있다.

종종 이 악은 “사함 받을 수 없는 죄”로 불려져 오고 있다.

성령을 모독하는 일은 개인이 더 이상 선과 악을, 옳은 것과 잘못된 것을 구별 할 수 없을 정도까지 하나님의 구속 활동을 계속적으로 부인하고 거절하는 것을 의미한다.

더러운 귀신이 들렸다 함이라”는 말에서는 반복적인 혹은 습관적인 행동이 암시되고 있다.

                                                                                                                                                                                                                                                                                                                                                                                                                                                                                                                                                                                                                                                                                                                                                                                                                                                                                                                                                                                                                                                                                                                                                                                                                                                                                                                                                                                                                                                                                                                                                                                                                                                                                                                                                                                                                                                                                                                                      가족에게 오해를 받으시다 (마가복음 3장 31 -32절)  


3장 31 -32절


  • ●  그 때에 예수의 어머니와 동생들이 와서 밖에 서서 사람을 보내어 예수를 부르니
  • ●  무리가 예수를 둘러 앉았다가 여짜오되 보소서 당신의 어머니와 동생들과 누이들이 밖에서 찾나이다


마가복음 3장 21절을 보면, 예수님의 가족들까지도 예수님이 “미쳤다”는 소문을 듣고 걱정하며 그를 데리러 왔던 것으로 기록하고 있다.

그 같은 사실에 비추어 볼 때, 예수님의 가족들은 예수님의 사명과 사역을 깊이 이해하지 못하고 예수님에 대해 걱정하며 염려했던 것을 알 수 있다.

어떤 이유였던 간에, 예수님의 “어머니와 동생들이” 예수님이 계신 곳에 찾아왔다.

그들은 밖에 서있는 동안 집 안에 계신 예수님께로 직접 나아갈 수 있도록 허락을 받을 것으로 생각했던 것이 확실하다.

우리는 그들이 누구에게 부탁하여 그들이 밖에서 기다리고 있으며 예수님과 말하고 싶다는 말을 전하게 했는지 알지 못한다.

어찌되었건, 그것은 예수님의 사역에 방해가 되는 일이 되었다.

무리가 예수님을 둘러 앉아 있다가 말하기를 “보소서 당신의 어머니와 동생들과 누이들이 밖에서 찾나이다”라고 하였다.

성경학자들은 예수님이 침례를 받으신 후에, 성경의 어느 곳에서도 요셉의 이름의 언급되고 있지 않은 것으로 인해 그는 이미 세상을 떠났던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

우리는 예수님의 동생들 중 몇 명이 그곳에 왔었는지를 알 수 없다.

그러나, 마가복음 6장 3절은 네 명의 이름을 밝히고 있는데, 그들은 “야고보”와 “요셉”과 “유다”와 “시몬”이 되고 있다.

형제 중 적어도 두 명은 나중에 신자가 되어, 야고보는 예루살렘 교회의 지도자가 되었을 뿐 아니라, 야고보서를 기록하였고, 유다는 유다서를 기록하여 신약 성경에 포함되었다 (행 1: 14 참조).


목적에 의해 연합된 가족 (마가복음 3장 33 -35절)  


3장 33 -35절:


  • ●  대답하시되 누가 내 어머니이며 동생들이냐 하시고
  • ●  둘러 앉은 자들을 보시며 이르시되 내 어머니와 내 동생들을 보라
  • ●  누구든지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자가 내 형제요 자매요 어머니이니라  


예수남은 종종 다른 사람들과의 대화를 더 잘하기 위해 질문법을 사용하셨다 (2: 9, 19, 25; 3: 4, 23).

누가 내 어머니이며 동생들이냐”는 본문의 질문은 사람들로 하여금 표면적인 것 이상의 것을 생각하게 하는데 목적이 있다.

그의 가족은, 겉으로 보기에는, 밖에 서 있는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생물학적인 관계의 가족이었다.

우리는 그들을 예수님의 친 가족이라고 부를 수 있다.

어느 정도 지금도 마찬가지이지만, 당시에는, 한 사람의 정체성을 밝히는데 혈연관계는 매우 중요한 요소가 되었다.

심지어 마태와 누가는 예수님의 정체성을 밝히기 위해 그의 족보를 기록하였다 (마 1: 1 -17; 눅 3: 23 -38).

많은 유대인들이 그들의 형통을 아브라함까지 추적해 올라가는 것을 자랑거리로 삼았다.

그런데, 침례 요한은 아브라함을 조상으로 가진 것이 영적으로는 아무 도움이 되지 않는 사실을 지적하였다 (마 3: 9).

예수님의 질문은 혈연적인 가족관계를 거부해 버리려는 의도가 아니었다.

예수님은 혈연관계의 중요성을 소홀이 하지 않으셨다.

그는 십자가 위에서 어머니 마리아의 생활을 위한 준비를 해주셨다 (요 19: 27).  

그러나, 예수님은 혈연관계보다 훨씬 더 중요한 관계가 있는 것을 지적하고 계셨던 것이다.

누가 내 어머니이며 동생들이냐”라는 예수님의 질문과 “누구든지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자가 내 형제요 자매요 어머니이니라”는 대답은 새로운 가족관계를 밝혀주며 정립시켜주는 말씀이 되고 있다.

오늘 날 우리는 ‘하나님의 가족’ 혹은 ‘그리스도 안에서의 형제 자매”라는 개념에 익숙해 있지만, 당시에 예수님의 가르침은 매우 급진적이고도 과격한 것이었다.

이는 그것이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제도에 대한 일반적인 이해를 뒤엎는 일이 되었기 때문이다.

성경은 몇 가지 은유를 사용하여 이 가르침의 실재를 묘사하고 있다.

죄를 회개하고 예수님을 믿는 믿음을 통해, 신자들은 다시 태어나 하나님의 가족이 된다 (요 3: 1-16).

이 과정에 대한 또 다른 은유는 입양 혹은 양자라는 개념을 사용하고 있다 (로마서 8: 15, 갈 4: 5, 엡 1: 5).

첫 번째 유추는 사람들이 세상의 전통이나 유산에 근거하여 하나님의 가족의 일원이 되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새 생명으로 태어나야 된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입양의 유추는 하나님께서 회개와 믿음으로 하나님께 나아 오는 모든 사람을 포함시키는 것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마가 복음의 첫 번째 독자들은 유대인이 아닌, 거의 이방인들이었다.

마가복음을 읽는 대부분의 현대 그리스도인들은 혈통적으로 아브라함의 후손이 아니다.

하나님과의 가족 관계를 맺는 분모가 유전학적인 문제가 아니라,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뜻을 따르며 행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아는 것은 우리들 모두에게 크게 고무적인 일이 되고 있다.



말씀을 나의 상황에 적용하기:

  • ●  신자들은 하나님의 권세와 능력을 자신 있게 확언해야 한다.  
  • ●  신자들은, 그들의 가장 가까운 사람들을 포함하여, 모든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 것을 이해할 것으로 기대하지 말아야 한다.  
  • ●  신자들은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것을 삶의 최우선 순위로 삼아야 한다.



하나님의 능력이 악의 세력을 이기는 것을 목격한 때를 설명해 보라.

그 경험은 오늘 날 당신이 하나님을 더 신뢰하도록 어떻게 격려해 주고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