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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회하다 - 제 13과 - 2019년 2월 24일 주일 - 장년성경연구 교사용 교재 - 창세기 45장 1 -15절

글쓴이 : 강호길 날짜 : 2019-02-21 (목) 06:25 조회 : 46

장년성경연구 교사 교안

2019년 2월 24일 주일 용  


제 13과



재회하다     



학습구절: 창세기 45장 1 -15절


성경진리:

하나님께서는 다양한 상황을 통해 성도들이 화해를 이루게 해 주신다.  


주요교리:  아들 하나님  

예수님은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유일한 중재자로서, 완전한 하나님이시자 완전한 인간이 되시며, 그 분 안에서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화목이 이루어 진다 (갈 4: 4 -5).             


암송구절:  창세기 50장 20절


당신들은 나를 해하려 하였으나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사

오늘과 같이 많은 백성의 생명을 구원하게 하시려 하셨나니  

“You intended to harm me,

but God intended it to for good to accomplish what is now being done, the saving of many lives.”    



시작하는 글:


갈등이 생길 때, 그리스도인의 삶을 사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육신의 소욕은 보복적인 방법이나 힘의 대결로 문제를 해결하려고 든다.

베드로처럼, 우리는 내게 잘못한 사람을 몇 번이나 용서해 주어야 할까 생각할 때가 있다.

자비를 베풀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먼저, 안전지대에서 벗어나냐 한다.

용서의 길을 거부하는 사람들은 화해의 기쁨을 맛보지 못하며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보여 주신 은혜를 본으로 보이지 못한다.


깨어진 관계를 회복하는 일은 왜 어려운가?

깨어진 관계를 회복하려는 시도는 왜 노력할만한 가치가 있는가?



본문배경설명 


창세기 42장 1 절부터 50장 16절까지


순수한 역사적인 관점에서, 창세기 42장부터 50장까지는 생성과정(生成過程)의 이스라엘 백성이 어떻게 약속의 땅인 가나안을 떠나 애굽으로 들어가 400년간을 살게 되었는지를 밝혀주는 이야기로 끝맺고 있다.

다시 말하면, 창세기의 마지막 장들은 기본적(基本的)으로 출애굽기에 기록된 세계를 변화시키고, 그 운명을 결정시킨 사건들을 위한 역사적인 맥락을 설정하고 있다.

창세기 42장부터 50장까지는, 신학적인 면으로는, 여호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아브라함의 후손에게 하신 언약의 약속들을 어떻게 지키시고 보존하셨는지를 밝혀주고 있다.

인간의 약점들과 죄로 인하여 하나님의 언약의 약속들이 위태롭게 된 적도 있었지만, 하나님은 그의 주권과 신실하심으로 그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게 하셨다 (롬 8: 28),

요셉이 예언한 기근이 애굽 전역에 퍼졌다.

요셉의 계획은 애굽 사람들을 구출하는 일이 되었지만, 가나안과 애굽 밖의 다른 지역에 사는 사람들도 기근을 겪게 되었다.

요셉의 형제 중 열 명이 곡물을 사러 애굽으로 온 것은 그 같은 이유 때문이었다 (42: 1 -43: 34).

야곱의 아들은 곡물을 파는 곳에 나와있는 애굽의 관리가 그들의 동생인 요셉인 것을 알지 못하였다.

형들을 정탐꾼들로 심문한 후에, 요셉은 시므온을 볼모로 잡아서 감옥에 가두고 다른 아홉 형들은 곡식을 가지고 가나안에 있는 가족에게로 돌아가도록 허락하였다.

특별히, 그들은 다시 곡물을 사러 올 때에는 베냐민을 데려오는 조건부로 풀려나게 되었다.

라헬의 막내 아들인 베냐민은, 형인 요셉이 실종 된 후, 그를 대신해서 아버지의 특별한 사랑을 받게 되었다.

따라서, 야곱은 베냐민이 위험한 여정을 떠나는 것을 허용하지 않았다.

결국, 가족의 생명을 구하기 위해, 야곱은 베냐민이 가는 것에 동의할 수 밖에 없었다.

야곱은 “내가 자식을 잃게 되면 잃으리로다”는 각오로 베냐민이 형들을 따라 가게 하였다(43: 14).

형들이 베냐민을 데리고 두 번째로 애굽에 도착했을 때, 그들은 곡물을 사는 공공 장소가 아니라, 요셉의 집으로 인도되었다.

요셉은 시므온을 그들에게 이끌어 내고, 열 한 형제들을 나이 순서대로 앉힌 다음 준비한 음식을 접대하였다.

그들은 이상하게 여겼지만, 아무 말로 하지 못하였다.

요셉의 형제들은 요셉의 정체에 대해 전혀 알지 못하였다.

요셉은 또한 서로 떨어져 있는 동안에 그들이 어떻게 변했는지를 알지 못하였다.

그러므로, 요셉은 형들을 시험하기로 하였다 (44: 1 -33).

요셉은 형제들이 애굽을 떠나기 전에 그의 집 청지기를 시켜 베냐민의 자루에 자기가 쓰는 “은 잔”을 넣게 하였다.

그런 다음, 요셉은 청지기로 하여금 형제들이 멀리 가기 전에 그들을 붙잡은 후 컵을 훔쳤다고 고발하게 하였다.

그들은 은잔이 발견된 자루의 임자는 누구이건 처벌을 달게 받겠다고 하고, 청지기도 이에 동의하였다.

청지기가 베냐민의 자루에서 잃어버린 잔을 노출시켰을 때, 그의 열 형들은 “옷을 찢고 각기 짐을 나귀에 싣고” 성으로 돌아왔다.

그것은 극단적인 고통의 표시였다.

요셉이 그들에게 엄하게 추궁을 하자, 유다가 말을 하였다.

그는 베냐민이 애굽에서 노예로 잡혀있게 될 경우, 그들의 아버지가 겪게 될 슬픔을 설명하였다.

그리고 유다는 자신이 베냐민을 대신하겠다고 하였다.

베냐민이 아버지에게 돌아갈 수 있게만 된다면, 그는 기꺼이 베냐민 대신 노예가 되려고 하였다. 

베냐민이 역경에 처하게 되었을 때, 형들이 나타내고 있는 반응을 관찰함으로써, 요셉은 그들의 진정 성(眞情 性)을 평가할 수 있었다.

유다의 진정한 마음과 태도에 감동된 요셉은 자신의 정체를 밝혔다 (45: 1 -48).

요셉이 살아 있다는 것을 알게 된 후. 야곱과 그의 가족을 데리고 애굽으로 이주하였다 (46: 1 -27).

바로는 애굽에서 야곱의 도착을 환영하였다.

그의 가족은 고센 땅을 받아 거기에 정착하였다 (46: 28 -47: 12).

요셉은 애굽을 현명하게 통치했으며 바로의 부와 권력을 늘려주었다 (47: 13 ~ 31).

죽음의 때가 온 것을 예상한 야곱은 그의 아들들을 축복하였다 (48: 1 -49: 28).

야곱이 죽었을 때, 요셉은 가나안에 있는 가족 묘지에다 장사하였다 (49: 29 -50: 14).

아버지가 죽은 후에도, 요셉은 계속 형들을 잘 대해주었다.

요셉이 백십 세에 죽었을 때, 가족은 향 재료로 그의 몸을 방부처리를 하고 관에 넣었다.

그렇지만, 야곱의 자손들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이삭 그리고 야곱에게 약속하신 가나안 땅으로 돌아갈 때 요셉의 시체를 그곳으로 가지고 가서 묻기로 약속하였다 (50: 15 -26).



학습구절 연구 


정체를 드러내다 (창세기 45장 1 -4절)


45장 1 -3절


  • 요셉이 시종하는 자들 앞에서 그 정을 억제하지 못하여 소리 질러 모든 사람을 자기에게서 물러가라 하고 그 형제들에게 자기를 알리니 그 때에 그와 함께 한 다른 사람이 없었더라
  • 요셉이 큰 소리로 우니 애굽 사람에게 들리며 바로의 궁중에 들리더라
  • 요셉이 그 형들에게 이르니 나는 요셉이라 내 아버지께서 아직 살아 계시니이까 형들이 그 앞에서 놀라서 대답하지 못하더라


요셉은 한 통역자가 유다의 히브리어를 애굽 말로 통역할 때 열심히 듣고 있었다.

그는 총리의 신분을 나타내는 특별한 예복을 입고 있었다.

잠시 동안, 방안은 조용하였다.

아홉 명의 형제들은 겁에 질려 애굽 총독 앞에 엎드려 있었다.

유다만 서 있고 나머지 형제들은 엎드려서 유다의 제안에 대한 총리의 대답을 들으려고 기다리고 있었다.

유다는 총리가 막내 아우인 베냐민이 아버지에게 돌아가게 허용하면, 자기가 총리의 노예가 되겠다고 제안하였다.

그는 애굽의 총리에게 “이제 주의 종으로 그 아이를 대신하여 머물러 있어 내 주의 종이 되게 하시고 그 아이는 형들과 함께 올려 보내소서 그 아이가 나와 함께 가지 아니하면 내가 어찌 내 아버지에게로 올라갈 수 있으리이까 두렵건대 재 해가 내 아버지에게 미침을 보리이다”고 하였다 (44: 33 -34).

그 방 안에는 여러 명의 애굽 인들과 총리를 섬기는 신하들이 있었다.

애굽에서, 총리는 권세와 지위가 바로 왕 다음가는 제이인자였다.

베냐민의 운명은 그의 대답에 달려있었다.

그 다음에 일어난 일은 확실히 그들을 놀라게 하였다.

총리는 감정을 억제하지 못하여 큰소리로 방에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자기에게서 물러가라”고 하였다.  

총리인 요셉이 애굽어로 말했으므로, 형제들은 그가 하는 말의 뜻을 이해하지 못했지만, 큰 소리와 함께 사람들이 재빨리 방을 비우는 것을 보고 예사롭지 않은 일이 일어나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갑자기, 그들은 막강한 힘을 가진 애굽의 관리하고만 남아있게 되었다.

그 같은 갑작스런 변화는 그들의 불확실성과 두려움을 더 해주었다.

요셉이 다른 사람들을 방에서 내보낸 것은 “그 정을 억제하지” 못하였기 때문이었다.

그의 얼굴에서는 눈물이 흘러 내렸다.

그가 “큰 소리로” 울었기 때문에, 그가 우는 소리는 그가 내 보낸 애굽 사람들이 있는 옆 방에까지 들렸다. 

요셉은 당황해 하는 형제들에게 말하였다.

그런데 요셉은 이번에는 통역을 통하여 애굽어로 말하지 않고, 그들의 방언인 히브리어로 직접 말하였다.

그들을 더욱 놀라게 한 것은, “나는 요셉이라”는 그가 한 말이었다.

믿기 어려운 뜻 밖의 말 뒤에 “내 아버지께서 살아 계시니이까”라는 긴급한 질문이 이어졌다.

그렇지만, 그의 질문은 아무 대답도 얻지 못하였다.  

이는 “형들이 그 앞에서 (너무) 놀라서 대답하지 못하(였기)” 때문이었다.

대답 대신, 열 명의 형들은 22년 전에 자신들이 요셉에게 행한 일을 먼저 회상하였다.

그들은 애굽으로 가는 상인들에게 요셉을 노예로 팔았던 것이다.

여하튼, 설명 할 수 없는 어떤 상황에 의해, 애굽의 제 2 인자인 총리가 이제 자신들의 동생이라고 주장하고 있는 것이었다.

그것은 이해가 되지 않는 놀라운 상황이었다.

그가 진짜 요셉이라면, 그는 무서운 복수를 하려고 들 것이 확실하였다.


45장 4절


  • 요셉이 형들에게 이르되 내게로 가까이 오소서 그들이 가까이 가니 이르되 나는 당신들의 아우 요셉이니 당신들이 애굽에 판 자라 


요셉은 “내게로 가까이 오소서”라는 말로 형들에게 가까이 오라고 하였다.

히브리어 원문에서 그 명령은 복수 형태로, 요셉은 그의 형제들 모두가 자기 주위로 모이기를 바라는 뜻을 나타내고 있다.

화해의 첫 발을 제일 먼저 내디딘 것은 유다로, 그가 아버지를 위해 간청하기 위해 요셉에게로 가까이 갔을 때였다.

요셉은 다른 형제들에게 자기와 유다의 화해 자리에 합류하라고 요청함으로써 다음 단계를 촉진시켰다.

다른 형제들도 요셉의 요구에 응함으로 깨어진 관계를 해결하기 위한 단계로 더 가까이 나오게 되었다.

관계가 멀어졌던 형제들이 그같이 몸과 얼굴로 먼저 가까워 졌을 때, 친밀한 대화를 나눌 수 있는 마음이 생기게 되었다.

요셉은 “나는 당신들의 아우 요셉이니”라는 말로 자신의 정체를 재차 확인시켰다.

그는 덧붙여서 “당신들이 애굽에 판 자라”는 말로 과거에 일어났던 일을 자세하고도 분명하게 설명하였다.

불길한 그 말은 실제로 그가 주장하는 사람임을 확증해 주는 방법이 되었다.  

그것은 보복의 뜻으로 한 말이 아니다,

그것은 과거에 일어난 사건들에 대한 신학적인 설명의 서문이 되고 있다.

신자들은 관계가 깨어지거나 멀어진 사람들과 화해하기를 힘써야 한다.

화해가 항상 가능하지 않을 수도 있다.

진정한 화해가 일어나려면, 상처받은 당사자들 모두가 원해야 한다.

특별히 가까운 사람일 수록 화해하기가 더 힘들 수 있다.

그래서 잠언은 말씀하기를, “노엽게 한 형제와 화목하기가 견고한 성을 취하기보다 어려운즉 이러한 다툼은 산성 문빗장 같으니라”고 한다 (잠 18: 19).


화해의 과정을 시작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무엇인가?



하나님의 언약의 상속자들 (창세기 45장 5 -8절)  


45장 5 -6절: 


  • 당신들이 나를 이곳에 팔았다고 해서 근심하지 마소서 한탄하지 마소서 하나님이 생명을 구원하시려고 나를 당신들보다 먼저 보내셨나이다
  • 이 땅에 이 년 동안 흉년이 들었으나 아직 오 년은 밭갈이도 못하고 추수도 못할지라


죄는 항상 죄인에게 상처를 입힌다.

근심하다”로 번역된 히브리어 동사는 육체적인 고통이나 심적인 괴로움을 가리킬 수 있다.

여기서 그 용어는 형들이 이전에 요셉에게 행한 일로 인해 겪어오고 있던 정신적 및 영적 고통을 가리키고 있다.

그들은 또한 자신들이 행한 일에 대한 죄책감과 그에 따르는 결과들로 인해 자신들을 “한탄하(였다).”

어떤 면에서, 야곱의 열 아들은 지난 22년 동안 그들의 동생인 요셉보다 더 큰 고통을 겪었다.

매일 그들은 슬픔에 가득 찬 아버지의 얼굴을 보아야 했으며, 그때마다 그들은 자신들 때문에 그 같은 일이 생긴 것과 되돌이킬 수 없는 자신들의 과오를 자책하며 살았다.

요셉은 “하나님이 생명을 구원하시려고 나를 당신들보다 먼저 보내셨나이다”라고 하면서 자기가 애굽에 있는 것은 하나님의 계획임을 설명하였다.

5절부터 8절까지에서, 요셉은 세 번씩이나 하나님께서 자기를 애굽으로 보내셨다고 하였다.

요셉은 어렸을 때 그의 형제들이 그에게 절할 것이라는 꿈을 꾸었다 (37: 5 ~ 11).

그는 당시에 하나님의 목적에 대한 꿈의 역할을 이해하지 못했었다.

도리어, 그 꿈은 가족 내에서 논쟁과 갈등을 불러 일으킨 요인이 되었다.

이제 요셉의 형제들은 말 그대로 요셉에게 절을 하였고, 요셉은 그 꿈이 하나님께서 “생명을 구원하시(기 위한)” 사건들을 계획하시고 조율(調律)하시는 것을 나타내고 있는 것을 알았다.

요셉은 하나님의 계획을 이해함으로써 진정한 마음으로 형들을 용서할 수 있었다.

이 단원에서 요셉의 형들을 지칭하는 “당신들”이 한 일과 “하나님”께서 행하신 일은 뚜렷하게 대조되고 있다.

형들은 요셉을 애굽에 노예로 팔았지만, 하나님은 그를 그 지역의 제 이의 통치자로 높여주셨다.

형들은 악한 의도로 행했지만, 하나님은 선을 이루어 주셨다.

하나님은 종종 부패한 인간의 악의적인 행동을 사용하여 그의 선한 일을 이루신다.

하나님께서 인간의 악한 계획을 반전시키신 가장 극단적인 예는 예수님의 십자가의 처형이 되고 있다.

사단이 그리스도를 죽이려고 했던 바로 그 방법은 하나님께서 죄인들을 구원하시는 수단과 은혜가 되었던 것이다.

하나님의 주권은 어려운 때에 큰 도움과 위로의 원천이 될 수 있다 (롬 8: 28).

요셉은 하나님께서 자기를 애굽으로 보내신 목적을 설명하면서, 그 땅이 아직도 식량 부족의 초기 단계에 있음을 밝혔다.

아직 오 년은 밭갈이도 못하고 추수도 못할지니라”고 하였다.


45장 7 -8절: 


  • 하나님이 큰 구원으로 당신들의 생명을 보존하고 당신들의 후손을 세상에 두시려고 나를 당신들보다 먼저 보내셨나니
  • 그런즉 나를 이리로 보낸 이는 당신들이 아니요 하나님이시라 하나님이 나를 바로에게 아버지로 삼으시고 그 온 집의 주로 삼으시며 애굽 온 땅의 통치자로 삼으셨나이다


요셉은 그가 애굽에 오게 된 것은 하나님의 신성한 계획의 일부가 됨을 설명하였다. 요셉이 말한 7절의 ”보내다”는 동사는 5절의 것에 이어 두 번째로 나타나는 것으로, 그것은 하나님께서 어떤 한 사람에게 공적인 임무를 맡겨 보내시는 것을 묘사하고 있다. 그러므로, 요셉은 생명을 구원하는 임무를 띠고 하나님의 보내심을 받았던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요셉을 현재의 위치에 심으셔서 장기간의기근 동안에 애굽 사람들과 주변 사람들이살아남을 수 있도록 식량을 저장하게 하셨던 것이다.  “남은자”라는 말은 중요한 신학적인 용어로, 상속자 혹은 후손으로도 번역되고 있다.  그 것은 구약에서 반복적으로 나타나고 있는 용어로, 이스라엘의 역사에서 일어난 치명적인 사건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을 가리키고 있다.  ‘남은자들”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과 맺은 언약의 상속자들이다.    그들은 하나님의 축복을 이스라엘의 다음 세대와 다른 나라들에게 전하도록 살아남았다.  요셉이 여기서 한 말은 여호와께서 창세기 15: 13 -16에서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셨던 말씀을 상기시켜주는 내용이 되고 있다.  하나님은 야곱의 가족을 보존하시려고 요셉을 애굽으로 먼저 보내셨다.

이스라엘은, 여호와께서 그들에게 주겠다고 약속하신 땅에서 떠나, “사백년 동안” 애굽에서 고통을 겪으며 머물러야 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 백성은 “생명을 보존(할 것)”이며 하나님은 그들에게 가나안 땅을 주실 것이다.

큰 구원”이란 표현은 가나안 땅에서 목동이던 요셉이 애굽의 총리가 되기까지 겪은 엄청난 일련의 사건들을 묘사해 주는 말이다.

역설적이게도, 430년 후에 하나님은 똑같이 상상할 수 없는 일련의 사건들을 통하여 “요셉을 알지 못하는 새 왕(바로)”(출 1: 8)의 손에서 억압당하고 있는 야곱의 자손들을 해방시켜 주셨는데, 그 때 살인을 하고 도망쳤던 80세의 추방자가 돌아와 나무 지팡이를 가지고 애굽의 엄청난 권력을 무너뜨렸다.

그런즉”이라는 말은 8절과 그 앞의 두 구절을 연결시켜주는 접속사가 되고 있다.

앞의 두 구절은 요셉이 형제들에게 제시한 어떤 사실들을 기록하였다.

첫째, 기근은 막 시작된 것이므로 형편은 훨씬 더 악화 될 것이다 (6 절).

둘째, 하나님의 도움이 없이는 그의 형제들과 그들의 가족들은 생명을 보존하지 못할 것이 확실하다 (7절).

더 나아가서, 그들의 생명 이상의 것이 위험에 처해 있었다.

야곱의 가족이 전멸되는 것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이삭 그리고 야곱에게 하신 언약이 무효가 되는 것을 뜻하였다.

그의 독백에서, 요셉은 세 번씩이나 하나님께서 그를 애굽에 보내셨다고 주장하였다.

이 이야기의 중심은 요셉이 아니라, 하나님이 되고 있다.

하나님께서 요셉을 애굽으로 보내셨다.

하나님께서 그를 애굽의 제 이인자로 삼으셨다.

그래서 요셉은 형제들에게 “그런즉 나를 이리로 보낸 이는 당신들이 아니요 하나님이시라”고 고백하고 이어서 “하나님이 나를 바로에게 아버지로 삼으시고 그 온 집의 주로 삼으시며 애굽 온 땅의 통치자로 삼으셨나이다”고 하였다.  

“바로에게 아버지”라는 말은 당시 바로의 고위층 신하에 대한 명칭이었다.

“온 집의 주”라는 말과 “온 땅의 통치자”라는 말은 요셉의 통치권의 범위를 나타내 주고 있다.   


요셉은 자신의 삶에 일어난 사건들의 배후에는 하나님이 계시다는 사실을 네 번씩이나 언급하였다(5, 7, 8, 9절).

인생의 큰 그림을 보는 것은 한 사람이 과거의 상처와 불의를 처리하는 문제를 어떻게 도와 줄 수 있는가



가족의 재 결합 (창세기 45장 9 -13절) 


45장 9 -13절

  • 당신들은 속히 아버지께로 올라가서 아뢰기를 아버지의 아들 요셉의 말에 하나님이 나를 애굽 전국의 주로 세우셨으니 지체 말고 내게로 내려 오사
  • 아버지의 아들들과 아버지의 손자들과 아버지의 양과 소와 모든 소유가 고센 땅에 머물며 나와 가깝게 하소서
  • 흉년이 아직 다섯 해가 있으니 내가 거기서 아버지를 봉양하리이다 아버지와 아버지의 가족과 아버지께 속한 모든 사람에게 부족함이 없도록 하겠나이다 하더라고 하소서
  • 당신들의 눈과 내 아우 베냐민의 눈이 보는 바 당신들에게 이 말을 하는 것은 내 입이라
  • 당신들은 내가 입에서 누리는 영화와 당신들이 본 모든 것을 본 모든 것을 다 내 아버지께 아뢰고 속히 모시고 내려오소서 하며


요셉이 제일 먼저 생각한 것은 아버지에 대한 것이었다 (45: 3).

자기가 애굽에서 현재의 위치에 오르게 된 것은 다 하나님의 계획과 섭리임을 밝힌 후에, 요셉은 그의 아버지께로 관심을 돌렸다.

요셉은 그의 형제들에게 “속히 아버지께로 올라가서” 자기가 살아있는 것과 애굽에서 성공하였다는 기쁜 소식을 전하라고 하였다.

그뿐 아니라, 지체말고 아버지 야곱을 자기에게로 모시고 오라고 하였다.

야곱은 아버지를보기를 원했을뿐만 아니라, 아버지가 가족들과 함께 애굽에 정착하기를 원했다.

요셉은 또한 가족이 그같이 이주하는 것이 가족의 생존에 필수적인 것으로 보았다.

흉년이 아직 다섯 해”가 남았으니, 아버지가 가족들과 함께 “고센 땅”에 정착하면, ‘내가 거기서 아버지를 봉야하리이다”고 하였다.

그러면서, “아버지와 아버지의 가족과 아버지께 속한 모든 사람에게 부족함이 없도록 하겠(다)”는 말을 전하라고 하였다.

고센은 나일강 삼각주의 북동부 지역으로, 특히 애굽에서 비옥 한 땅이었다.

10절의 야곱의 아들들과 손자들에 대한 언급에서는 하나님의 신실하심이 암시되고 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그의 자손이 하늘의 별들과 같이 많아질 것이라고 약속하셨다 (창 15: 5).

아버지에게 전하는 요셉의 메시지는 45장 11저로 끝났다.

이 구절에서 요셉은 형들과 동생이 조금이라도 의심하지 않도록, 그들에게 말하고 있는 사람이 요셉인 것을 거듭 강조하였다.

그러면서, 요셉은 형들과 동생에게 “내가 애굽에서 누리는 영화와 당신들이 본 모든 것을 다 내 아버지께 아뢰(라)”고 하였다.

그러면서, 아버지를 “속히 모시고 내려 오소서”라고 부탁하였다.

구약에서 “영광”의 근본적인 의미는 가치를 부여하는 것이 되고 있다.

하나님의 영광은 그의 임재와 능력을 나타내는 것이 되고 있다.

인간의 영광은 종종 그 자신의 부와 권세 그리고 명예와 관계되고 있다.

여기서 영화 혹은 영광이라는 말은 다른 사람들로 하여금 요셉을 영예롭게 하는 것이다.

사랑하는 아들이 살아있고 애굽에서 출세하였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야곱은 자연히 요셉을 만나고 그와 재 결합하기를 원하였다.

모시고 내려 내려오소서”라는 말에는 야곱이 신체적으로 부자유스럽다는 뜻이 암시되고 있다.

나이 때문에, 야곱은 애굽까지 먼 길을 여행하는데 도움이 필요했을 것이 분명하였다. 

요셉은 가족이 도착하면 필요한 모든 것을 제공하려고 하였다.

요셉의 가족이 회복하게 된 성경의 기록은 강력하고도 놀라운 이야기가 되고 있다.

그러나, 약 이 천년 전에 더 큰 화해의 사건이 일어났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고, 장사되었다가, 삼일 만에 부활하셨을 때, 하나님은 세상을 자기와 화해시키는 일을 하셨던 것이다 (고후 5: 18 -19;).

오늘날 하나님은 신자들인 우리에게 이 놀라운 소식을 듣는 모든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화해의 메시지를 전하는 그의 대사가 되는 특권을 주셨다.


관계의 회복 (창세기 45장 14 -15절)  


45장 14 -15절:


자기 아우 베냐민의 목을 안고 우니 베냐민도 요셉의 목을 안고 우니라

요셉이 또 형들과 입맞추며 안고 우니 형들이 그제서야 요셉과 말하니라 


요셉이 동생인 베냐민의 목을 안고 우니, 베냐민도 형의 목을 얼싸안고 울었다.

같은 어머니의 형제로서, 요셉과 베냐민은 특별한 유대관계를 지니고 있었다.

우리는 두 형제의 정확한 나이 차이를 알지 못하지만, 요셉은 여러 해 동안 베냐민을 보고 싶어했으며, 베냐민도 마찬가지였을 것이 분명하다.

두 형제가 서로 목을 안고 울 때 그것은 감격과 기쁨의 눈물이었다.

요셉은 또한 형들과도 하나하나씩 입을 맞추고, 부둥켜 안고 울었다.

그것은 요셉이 나타낸 진정한 화해와 기쁨의 표가 되었다.

그러나, 열명의 형들이 울었다는 언급은 없다.

대신에, 본문은 “형들이 그제서야 요셉과 말하니라”고 기록하고 있다.

야곱이 죽은 이후의 그들의 행동을 보면 그들이 요셉을 아직 믿지 않고 있다는 것이 암시되고 있다 (창 50: 15 -18).

그들은 요셉이 자신의 높은 지위를 이용하여 그들에게 복수를 하지 않고 도리어 용서해 줄 수도 있다는 것을 믿으려 들지 않았다.

용서는 화해의 필수 요소이다.

용서는 상처를 받은 사람의 자비심에서 시작된다.

신자들은 용서의 마음과 열린 마음을 가져야 한다.

로마서 12장 18절과 히브리서 12장 14절과 같은 구절들은 우리들 믿는 자들에게 모든 사람들과 더불어 화목한 삶을 살라고 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를 회복시키는데 담당할 역할이 있다.


“용서 하겠지만 잊지는 않을 거야"라는 사고방식과 태도는 무엇이 잘못인가?  


말씀을 나의 상황에 적용하기:

  • ●  신자들은 관계가 나빠진 사람들과 화해하기를 힘써야 한다.  
  • ●  모든 상황에서 하나님의 목적을 찾을 때, 신자들은 과거의 상처와 부당함을 받아들일 수 있다.  
  • ●  하나님은 그의 백성들이 화해를 이루는데 필요한 것들을 제공해 주신다.
  • ●  용서는 상처를 받은 사람의 자비심에서 시작된다.  

당신이 화해해야 할 사람들은 누구인가?

어떻게 해야 화해를 할 수 있겠는가?  당신은 요셉의 삶으로부터 어떤 교훈을 행동으로 옮겨야 하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