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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받아들이다 - 제 10과 - 2019년 2월 3일 주일 - 장년성경연구 교사용 교재 - 창세기 37장 5 -11, 19 -27절

글쓴이 : 강호길 날짜 : 2019-01-28 (월) 06:26 조회 : 142

장년성경연구 교사 교안

2019년 2월 3 주일 용  


제 10과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받아들이다   



학습구절: 창세기 37장 5 -11, 19 -27절


성경진리: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의 악한 의도들을 극복(克服)하셔서, 그 같은 악한 영향력들을 그의 목적을 이루시는데 사용하실 수 있다.  


주요교리:  성경 (聖經)

성경은 하나님의 가르침과 지침을 담은 완벽한 보고이다.

성경의 저자는 하나님이시고, 그 목적은 구원이며, 그 내용은 어떤 오류도 없는 진리이다.              


암송구절:  창세기 37장 11절


그의 형들은 시기하되 그의 아버지는 그 말을 간직해 두었더라.    

“His brothers were jealous of him, but his father kept the matter in mind.”



시작하는 글:



제 2차 세계대전 이전에는, 각 가정이 일반적으로 석탄을 난방 연료로 사용했는데, 그것은 벽에 검은 얼룩을 남기는 부작용이 따랐다.  

노아 맥빅커 (Noah McVicker)라는 사람은 벽지에 묻은 검은 얼룩을 지우는 반죽으로 된 세제를 개발하여 그것을 사업으로 키웠다.  

제 2차 대전 후에는, 물로 닦아낼 수 있는 벽지가 등장하고 천연가스를 연료로 사용하게 됨에 따라 그 반죽 세제는 인기가 점점 떨어지고 종국에 가서는 쓸모가 없는 물건이 되어버렸다.

회사는 부도위기에 처하게 되었다.

노아의 조카인 “조 맥빅커”는 학교선생인 그의 누이가 이 세제 반죽을 그녀가 가르치는 교실에서 공작용으로 사용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맥빅커 가족은 그 세제반죽을 무해한 것으로 만들어 어린이들의 공작 및 장난감 용으로 판매하기 시작했는데, 그것이 바로 요즘 어린이들에게 큰 인기를 끌고 있는 플레이 도우 (Play-Doh)이다.


당신은 나쁜 상황에서 좋은 것이 나오는 것을 본 적이 있는가?



본문배경설명 


창세기 37장 1 -36절  


창세기 35장은 가나안 족속과 브리스 족속의 보복을 두려워하던 야곱이(34: 25 -31)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여 벧엘로 돌아온 것을 기록하였다(35: 1).  

야곱과 그의 가족은 그의 아버지 이삭의 죽음이 가까워 지던 시기에 남쪽으로 여정 길을 계속하여 헤브론으로 이주하였다.

아버지 이삭이 죽은 후, 야곱은 “그의 아버지가 거류하던 땅에 거주하였(다)” (37: 1).    

성경 본문은 “십칠 세의 소년”인 요셉을 소개하고 있는데, 야곱은 그 요셉을 다른 아들들보다 더 사랑하였다.

요셉은 아버지가 자기를 형들보다 더 사랑함으로 형들의 미움을 사게 되었다.   

요셉은 그의 형들과 함께 아버지의 양들을 쳤다.

그러나 그는 형들이 하는 일을 아버지에게 일러바침으로 그들을 화나게 만들었다.

요셉은 또한 아버지로부터 편애(偏愛)의 표인 “채색 옷”을 받아 입은 것과 그가 어느 날엔가는 온 가족을 다스리게 될 것을 암시하는 두 가지 꿈을 꾸고 그것을 형들에게 말해 준 것으로 인해 형들과의 관계는 더 멀어지고 더 악화되었다 (37: 2 ~ 11).

어느 날 야곱이 요셉을 세겜으로 보내어 그의 형들과 양 떼의 상황을 살펴오게 했을 때, 마침내 문제는 터지고 말았다.

요셉이 형들과 양떼가 있는 곳을 찾았을 때는, 그들이 양떼를 몰고 더 북쪽에 있는 도단으로 옮긴 뒤였다.

요셉이 오는 것을 보았을 때, 질투로 인한 형들의 분노는 끓어 올랐고, 그들은 서로 “꿈꾸는 자가 오는 도다”고 말하며, 동생을 죽이기를 꾀하였다.

그렇지만, 제일 맏형인 르우벤이 그같이 의논하는 것을 듣고 다른 형제들에게 요셉을 죽이지 말고 그를 광야 구덩이에 던져 넣고 “손을 그에게 대지 말라”고 하였다.

르우벤은 후에 요셉을 구출하여 집으로 돌려보낼 계획이었다 (37: 12 -22).

요셉이 형들에게로 오자, 그들은 요셉의 옷, 즉 그가 입은 채색 옷을 벗기고, 그를 들어서 구덩이에 던졌다.

그 구덩이는 비어 있었고, 그 안에는 물이 없었다 (37: 23 -24).

르우벤이 요셉을 구하는 일을 수행하기 전에, 다른 형제들은 한 떼의 이스마엘 상인들이 낙타에다 상품을 싣고 애굽으로 내려가는 것을 목격하게 되었다.

이에 유다가 나서서, “우리가 우리 동생을 죽이고 그의 피를 덮어둔들 무엇이 유익할까”라고 하면서, 그를 상인들에게 팔자고 하였다.

형제들은 유다의 말을 따르기로 하였고, 그들은 요셉을 구덩이에서 끌어내어 “은 이십”에 그를 팔았다.

르우벤은 그 같은 거래를 알지 못했던 것으로 보인다.

요셉의 형들은 요셉의 실종에 대한 핑계거리와 증거로, 그의 겉옷을 염소의 피에 적신 다음 그것을 아버지에게 갔다 주었다.

요셉이 “악한 짐승”에게 잡혀 먹힌 것으로 생각한 야곱은 비탄에 빠지고 말았다 (37: 25 -32).  

모든 자녀가 위로하였으나 야곱은 그 위로를 받아들이지 않고, 남은 생애 동안 아들을 위하여 슬퍼하겠다고 맹세하였다.

그 동안에, 미디안 상인들은 애굽에 도착하여 요셉을 “바로의 친위 대장인 보디발에게” 노예로 팔았다 (37: 33 -36).  



학습구절 연구 


네가 우리를 다스리겠느냐? (창세기 37장 5 -11절)


37장 5 -8절


  • 요셉이 꿈을 꾸고 자기 형들에게 말하매 그들이 그를 더욱 미워하였더라
  • 요셉이 그들에게 이르되 청하건대 내가 꾼 꿈을 들으시오
  • 우리가 밭에서 곡식 단을 묶더니 내 단은 일어서고 당신들의 단은 내 단을 둘러서서 절하더이다
  • 그의 형들이 그에게 이르되 네가 참으로 우리의 왕이 되겠느냐 참으로 우리를 다스리게 되겠느냐 하고 그의 꿈과 그의 말로 말미암아 그를 더욱 미워하더니


고대 중동에서, 사람들은 꿈이 미래를 보는 하나의 수단이 되고 있는 것으로 믿었다.

구약 시대 당시에, 하나님은 천사들을 보내서 혹은 선지자들을 통해서 말씀하셨지만, 꿈을 통해 자신을 계시하시고 자신의 뜻을 밝혀주기도 하셨다.   

요셉이 꾼 꿈이 바로 그 같은 경우가 되고 있다.

그 전에 하나님은 벧엘에서 요셉의 아버지인 야곱에게도 꿈을 통해 자신과 자신의 뜻을 계시해 주셨다 (창 28: 1- -22).

꿈은 예수님의 탄생 사건에서도 하나님의 계시의 한 형태로서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마 1: 20 -21; 2: 12, 13, 19 -23).

그러나, 오늘 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가장 일반적이고도 확실한 방법은 그의 기록된 말씀인 성경을 통해서이다.

성경은 진리의 말씀을 분변(分辨)하는 시금석(試金石)이 되고 있다.

그러므로, 하나님으로부터 계시를 받았다는 주장들은 성경의 렌즈에 비추어서 그것이 성경의 계시와 일치하고 있는지 아니면 모순되는지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이는 성경은 성령의 감동으로 기록된 것으로 하나님의 진리를 알 수 있고 확실하게 믿을 수 있는 유일한 출처가 되기 때문이다. 

또한 우리는 성경말씀을 읽고 그 말씀을 우리의 삶에 적용할 때, 그 말씀의 뜻을 바르게 깨달을 수 있도록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구해야 한다 (벧후 1: 20 -21).  

요셉은 자기가 꾼 꿈을 형들에게 말해 주었다.

아버지 이삭이 드러내놓고 요셉을 편애하고 있는 것으로 인해, 요셉을 질투하며 미워하고 있던 형들은 꿈 이야기를 듣고 요셉을 “더욱 미워하(게 되었다).”   

요셉은 형들에게 “청하건대 내가 꾼 꿈을 들으시오”라는 말로 꿈 이야기를 시작하였다.

그 같은 요셉의 말에서, 우리는 그가 자신이 꾼 꿈과 그것을 형들에게 전해주려는 마음으로 가득 차 있었던 것을 알 수 있다.

그는 지나치게 자신의 것에만 집착한 나머지, 형들의 감정이나 반응에 대해서는 전혀 생각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어쩌면, 요셉의 말은 그렇지 않아도 관계가 좋지 않았던 형들에게 자만이나 교만으로 비쳤을 수 있다.

신자들은 복음을 전할 때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들이 있는 것을 알고, 거부감이 생기지 않도록 지혜 있게 전해야 한다.

요셉이 꾼 꿈은 형들과 함께 밭에서 추수를 하는 장면이었는데, 그들은 “곡식 단을” 묶고 있었다.

그들은 먼저 잘 익은 알곡들이 달린 곡식 줄기들을 제일 밑바닥에서 낫으로 잘라낸 다음 그것들을 단으로 묶는 일을 하고 있었다.

그같이 묶인 단들은 타작마당으로 옮겨지기 까지 밭에 놓여 있었다.

그런데, 요셉은 자기가 꾼 꿈에 대해 말하기를, “내 단은 일어서고 당신들의 단은 내 단을 둘러서서 절하더이다”고 하였다.

내 단”이 요셉을 대표하고, “당신들의 단”은 형들을 대표하는 것으로 볼 때, 그 꿈의 뜻은 분명하다.

어느 날 요셉의 형들이 그에게 절을 할 것이라는 것이다.

요셉의 형들은 “네가 참으로 우리의 왕이 되겠느냐” “참으로 우리를 다스리게 되겠느냐”고 반문하면서 동생이 꾼 꿈에 대해 혐오감과 부정적인 반응을 나타냈다.

형들은 요셉의 꿈과 그의 말로 말미암아 “그를 더욱 미워하(게)” 되었다.

더욱 미워하게 되었다”는 말 뒤에는 요셉이 아버지의 편애로 인하여 형들의 미움을 받게 된 뜻이 들어있다.

본문은 요셉이 의도적으로 형들의 감정을 상하게 하거나 자신에 대해 자랑하려고 그같이 말했는지에 대해 언급하지 않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가지 분명한 것은 그는 형들이 꿈으로 인해 기분이 상할 수 있다는 것을 깊이 생각하지 않은 것이다.

하나님은 전에 아브라함의 후손들에게 가나안 땅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셨는데, 요셉의 꿈은 또한 그 약속이 성취되고 있는 과정을 보여주는 일이 되고 있다.

그 가족은 양떼를 치며 짐승 떼를 기르는 유목민이었다.

야곱은 땅을 샀고 곡식을 경작하고 있었다.

농업은 보다 영구적이고 안정된 삶을 의미했다.


37장 9 -11절


  • 요셉이 다시 꿈을 꾸고 그의 형들에게 말하여 이르되 내가 또 꿈을 꾼즉 해와 달과 열한 별이 내게 절하더이다 하니라
  • 그가 그의 꿈을 아버지와 형들에게 말하매 아버지가 그를 꾸짖고 그에게 이르되 네가 꾼 꿈이 무엇이냐 나와 네 어머니와 네 형들이 참으로 가서 땅에 엎드려 네게 절하겠느냐
  • 그의 형들은 시기하되 그의 아버지는 그 말을 간직해 두었더라


요셉은 다시 꿈을 꾸었는데, 첫 번째 때와 마찬가지로 형들에게 그것을 말해 주었다.

그는 형들에게 “내가 또 꿈을 꾼즉 해와 달과 열한 별이 내게 절 하더이다”고 하였다.

이 두 번째의 꿈은 첫 번째의 꿈의 예언을 확증해주는 기능을 하고 있다.

두 번째의 꿈의 내용은 첫 번째의 것과 크게 달랐지만, 그 뜻은 같은 것이 되고 있다.

요셉은 그의 가족을 다스릴 것이다.

두 번째의 꿈에는 중요한 추가 사항이 포함되고 있다.

첫 번째의 꿈은 단지 요셉의 형들에 대한 것이었는데 반해, 두 번째의 꿈은 “열 한 별”을 밝히고 있다.

별의 숫자는 요셉의 형제들을 나타내는 것이 분명하다.

여기서 그의 동생도 그에게 절을 한 것이 되고 있다.

더구나, 그의 두 번째 꿈에는 열 한별 외에 “해와 달”이 추가로 등장하였다.

이번에 요셉은 자기가 꾼 꿈을 아버지에게도 말해드렸는데, 그는 꿈의 뜻을 빨리 파악하였다.

하나님께서 “큰 광명체”, 즉 해를 만드셔서 낮을 주관하게 하셨기 때문에 (창 1: 16), 요셉의 꿈에 등장한 해는 야곱을 상징하였다.

달은 야곱의 아내를 상징하였다.

야곱은 그를 “네 어머니”로 불렀다.

그때 요셉의 어머니는 죽고 없었다.

그러면, 라헬의 여종이었던 빌하가 라헬이 죽은 후 그녀의 역할을 맡았었는가?

아니면, 레아가 야곱의 첫 번째 아내였기 때문에, 야곱은 레아를 “네 어머니”로 불렀는가?

어떤 대답이라도, 그것은 추측일 뿐이다.

그러나, 의미는 분명하다.

요셉이 야곱의 온 가족을 다스리게 될 것이다.

네가 꾼 꿈이 무엇이냐”는 야곱의 질문은 그가 이해하고 있는 꿈의 불합리성을 나타내주고 있다.

당시 엎드려 절하는 것은 왕족과 왕권을 인정하는 표시가 되었다.

하나님께서 야곱에게 그의 후손들이 모든 가나안을 소유 할 것이라고 약속하셨지만, 현재 그들은 왕을 갖기에는 너무나 미약하고 하찮은 수였다.

수년 후에, 그들이 애굽으로 이주했을 때, 그의 가족은 겨우 75명밖에 되지 않았다 (행 7: 14).

그것은 왕국을 형성하기엔 너무나 적은 수였다.

요셉과 그의 형들과의 관계는 한계점(限界點)에 이르렀었다.

그의 형들은 요셉을 [시기하였다]고 기록하고 있는데, 히브리어로 “시기하다”는 말은 피상적인 느낌이 아니라, 적대적이고 파괴적인 강한 감정을 나타내고 있다. 

야곱은 사려 깊은 반응을 나타냈다.

나와 네 어머니와 네 형들이 참으로 가서 땅에 엎드려 네게 절하겠느냐”는 야곱의 말은 전혀 농담으로 한말이 아니었다.

그가 먼저 요셉을 꾸짖은 것을 보아서도 알 수 있다.

다시 생각해 보고 나서, 이제 그는 그 꿈이 무시해 버릴 수 없는 것임을 깨달았다.

신자들은 다른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진리를 전할 때, 거부하는 사람들이 있는 것을 알고 지혜롭게 행해야 한다. 

받아들이는 사람들 조차도 처음에는 응답하는 것을 망설일 수 있다.

인간의 사고는 보통 한 사람이 가능하다고 생각하는 것에 국한되게 마련이다.

하나님께는 그 같은 제한이나 제약이 없으시다 (창 18: 14; 눅 1: 37).


왜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진리에 강경하게 반대한다고 생각하는가?

그 같은 반대에 직면할 때, 당신은 어떻게 대응하는가?


꿈이 어떻게 되는지를 볼 것이라 (창세기 37장 19 -24절)  


37장 19 -20절:


  • 서로 이르되 꿈 꾸는 자가 오는 도다
  • , 그를 죽여 한 구덩이에 던지고 우리가 말하기를 악한 짐승이 그를 잡아 먹었다 하자 그의 꿈이 어떻게 되는지를 우리가 볼 것이니라 하는 지라


야곱은 큰 무리의 양들을 소유하고 있어서 계속 새로운 목초지가 요구되었다.

그러므로, 그의 아들들은 가나안 전역을 돌아다니면서 양들을 먹였다.

이 경우에, 그들은 야곱이 사는 곳에서 북쪽으로 약 50 마일 떨어진 세겜지역으로 옮겨 갔다 (창 37: 12).

거기서 방목을 한 후에, 형제들은 다시 북쪽으로 15 마일 정도 떨어진 도단으로 옮겨갔다 (37 : 17).

아들들이 그같이 오랫동안 집을 떠나있게 되자, 야곱은 십대 아들인 요셉을 보내어 그의 형들과 양떼들이 잘들 있는지를 보고 돌아와 보고하게 하였다.

요셉은 사람들에게 물어서 형들이 있는 도단까지 찾아오게 되었다.

형들은 “채색 옷”을 입고 멀리서 오고 있는 요셉을 알아보았다.

그들은 “꿈꾸는 자가 오는 도다”고 하면서 요셉을 죽일 계획을 미리부터 세웠다.

그러므로, 형들이 요셉을 죽이려 한 것은 사전에 계획 된 것이었다.

먼저, 그들은 요셉을 죽여 한 구덩이에 던져 넣자고 하였다

그런 다음 아버지 한데는 “악한 짐승의 그를 잡아 먹었다 하자”고 하였다.  

구약 시대에는 가나안 지역에서 사자들과 곰들이 자주 나타났었다 (삼상 17 : 34 ~ 36 참조).

그들이 만들어낸 이야기는 그럴듯하게 들리는 것이었다.

창세기 37 장 20 절의 마지막 부분은 형들의 그 같은 계획에 대한 또 다른 동기를 보여주고 있다.

요셉의 꿈에 어떤 일이 생길 경우에 대비하여, 그들은 “그의 꿈이 어떻게 되는지를 볼 것이니라”는 말로 사전 조치를 취했던 것이다.

요셉이 죽은 시체로 구덩이 바닥에 누워 있으면, 그들을 다스릴 꿈은 수포로 돌아갈 것이다.


37장 21 -24절:


  • 르우벤이 듣고 요셉을 그들의 손에서 구원하려 하여 이르되 우리가 그의 ㄴ생명은 해치지 말자
  • 르우벤이 또 그들에게 이르되 피를 흘리지 말라 그를 광야 구덩이에 던지고 손을 그에게 대지 말라 하니 이는 그가 요셉을 그들이 손에서 구출하여 그의 아버지에게로 돌려보내려 함이었더라
  • 요셉이 형들에게 이르매 그의 형들이 요셉의 옷 곧 그가 입은 채색 옷을 벗기고
  • 그를 잡아 구덩이에 던지니 그 구덩이는 빈 것이라 그 속에 물이 없었더라


형제들의 단합(團合)과 결속(結束)에 제일 먼저 균열을 일으킨 것은 르우벤이었다.

그는 요셉의 생명을 구하려고 하였다.

그 이유는 알려지지 않고 있다.

어쩌면, 그는 “아버지의 첩 빌하와 동침(했던 잘못)”을 보상하기 위한 방법으로 그같이 했을 수 있다 (35: 22).

그는 아버지가 가장 사랑하는 아들을 구해줌으로 야곱의 호의를 회복시킬 수도 있었다,

그의 주장에서 암시되고 있듯이, 그는 폭력을 혐오(嫌惡)하였다.

그가 제안한 계획은 요셉이 탈수 또는 굶주림으로 인해 죽도록 내버려 두는 것이 암시되고 있다.

동기가 무엇이든 간에, 르우벤은 나중에 구덩이로 몰래 돌아와서 요셉을 구출하여 야곱에게 돌려 보낼 계획이었다.


신자들은 하나님께서 다른 사람들을 그의 일에 사용하실 때 질투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요셉이 형제들에게 이르자, 그들은 곧장 행동에 옮겼다.

그들은 요셉을 붙잡은 후, 아버지에게 증거물로 삼을 채색 옷을 강제로 벗겼다.

일단 요셉의 옷을 수중에 넣은 후, 형들은 “그를 잡아 구덩이에 던(져 넣었다).”

그 구덩이는 빈 곳으로 그 속에 물이 없었다.

그 구덩이는 속이 깊고 위에 작은 구멍이 나 있어서, 사다리를 사용하거나 밖에서 도와주지 않으면 나올 수 없는 곳이었다.

야곱의 아들들은 그들의 동생과 요셉이 하나님의 목적에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라는 하나님의 계시에 대해 질투하였다.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에 다양한 방법으로 반응한다.

신자들은 하나님께서 다른 사람들을 그의 일에 사용하실 때 질투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무엇이 유익한가? (창세기 37장 25 -27절)


37장 25절:


  • 그들이 앉아 음식을 먹다가 눈을 들어 본즉 한 무리의 이스마엘 사람들이 길르앗에서 오는데 그 낙타들에 향품과 유황과 몰약을 싣고 애굽으로 내려가는 지라


요셉을 죽이려는 형제들의 계획은 르우벤의 반대로 말미암아 일시적으로 좌절되었다.

그렇지만, 형들이 요셉을 붙잡아 구덩이에다 던져 넣었으므로, 그것은 아무 일이 없었던 것처럼 그냥 지나칠 수 없는 문제였다.

만일 그들이 요셉을 구덩이에서 꺼내준다면, 요셉은 그들이 자기한테 행한 일을 아버지에게 말할 것이 분명하였다.

그들은 앉아 음식을 먹으면서 다음 단계로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지를 생각하고 있었다.

형제들이 음식을 먹고 있을 때에, 매우 곤란한 문제에 대한 해결책이 제시되었다.

매우 중요한 통상로(通商路)가 도단지역을 통과하고 있었다.

그 도로는 요단 강 동쪽의 지역을 지중해 연안의 주요 도로와 연결시켜 주었다.

그들이 음식을 먹고 있을 때에, “한 무리의 이스마엘 사람들이 길르앗에서” 오고 있었다.

그들은 상인들로서, 그 낙타들에 “향품과 유향과 몰약을 싣고” 애굽으로 내려가는 중이었다. 

이들 상인들은 여기서 “이스마엘 사람들”로 불려지고 있는데 반해, 28절에서는 “미디안 사람(들)”로 불려지고 있다.

이들 두 그룹은 아브라함의 후손들로, 어머니가 하갈과 구드라로 서로 달랐다 (창 25: 2).

그들은 외모나 성격이 비슷하였다.


우리는 하나님의 계획들이, 그것을 좌절시키려는 사람들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궁극적으로 성취 되는 것으로 인해 감사 할 수 있다.


37장 26 -27절:


  • 유다가 자기 형제에게 이르되 우리가 우리 동생을 죽이고 그이 피를 덮어둔들 무엇이 유익할까
  • 자 그를 이스마엘 사람들에게 팔고 그에게 우리 손을 대지 말자 그는 우리의 동생이요 우리는 혈육이니라 하매 그의 형제들이 청종하였더라


상인들이 가까이 오자, “유다”가 자기 형제들에게 말하였다.

그는 “우리가 우리 동생을 죽이고 그의 피를 덮어둔들 무엇이 유익할까”라고 말하였다.  

유다는 레아에서 태어난 야곱의 네 번째 아들이었다.

유다는 “우리가 우리 동생을 죽이고 그의 피를 덮어둔들 무엇이 유익할까”라는 설득력 있는 질문으로 그들의 계획의 세 가지 결함(缺陷)을 지적하였다.

첫째, 그것은 형제들에게 아무 유익(有益), 혹은 이익이 되지 못했다.  

둘째로, 요셉은 그들의 “혈육”(血肉)이자 “동생”이었다.

셋째로, 그것은 하나님의 저주가 따르는 일이 되었다.

그의 피를 덮어둔들”이라는 말은 가인이 동생 아벨을 죽인 것으로, 또 다른 형제간의 살해 사건을 상기시켜 주는 일이 되었다(창 4: 8 -12).

그때, 하나님은 “네 아우의 핏 소리가 땅에서부터 내게 호소하느니라”고 정죄하셨다 (창 4: 10).  

따라서 유다는 자신들의 범죄를 하나님으로부터 숨길 수 없다는 것을 암시하였다.

궁극적으로, 하나님께서는 그 모든 것을 아시고 요셉을 죽인 것에 대한 죄를 처벌하실 것이다.

유다의 주장이 승리를 거두었다.

그들은 모두 동생을 이스마엘 상인들에게 팔기로 동의하였다.

상인들은 요셉을 애굽으로 끌고 갈 것이며, 그는 그곳에서 노예로 팔릴 것이다.

그러면 그는 그들의 눈에서 사라져  버릴 것이고, 꿈꾸는 자를 다시 보거나 듣지 않을 것이다.

그것은 또한 요셉을 죽인 죄책감이 없이도 없애 버릴 수 있는 방법이 되었다.

적어도 그들은 그렇게 생각하였다.

그런데, 실제로 그것은 하나님께서 그의 더 큰 목적을 위해 요셉을 구해 주신 일이 되었다..

요셉을 위한 하나님의 계획이 끝나지 않은 것은 시간이 밝혀줄 것이다.

하나님께서 요셉의 꿈으로 계시해 주신 모든 일은 그대로 일어날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계획들이, 그것을 방해하고 좌절시키려는 사람들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궁극적으로 성취되는 것으로 인해 감사할 수 있다.


말씀을 나의 상황에 적용하기:


●   신자들은 다른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진리를 전할 때, 거부하는 사람들이 있는 것을 알고 지혜롭게 행해야 한다.   

●   하나님께서 다른 사람들을 그의 사역에 사용하실 때 신자들은 이를 시기하거나 질투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   신자들은 하나님의 계획들이, 그것들을 방해하며 좌절시키려는 인간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궁극적으로 성취 되는 것으로 인해 감사할 수 있다.


이 과에서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에 대한 원칙들을 찾아보자.

당신은 그 원칙들을 가족들과의 관계, 친구들과 관계, 및 다른 신도들과의 관계에 어떻게 적용할 수 있는가 생각해 보자.


이번 주의 암송구절인 창세기 37장 11절을 묵상하면서, 요셉의 형들과 아버지인 야곱이 보인 반응이 어떻게 다른지를 깊이 생각해 보자.

하나님께서 사용하시고 있는 다른 사람들을 시기하거나 질투했던 때를 생각해보자.

장차 그 같은 일이 일어나지 않게 하기 위해, 어떤 조치를 취해야 하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