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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호하고 섬기라 - 제 8과 - 2019년 1월 20일 주일 - 장년성경연구 교사용 교재 - 창세기 1장 27절; 9장 1 -7절; 마태복음 5장 21 22절

글쓴이 : 강호길 날짜 : 2019-01-18 (금) 02:51 조회 : 119

장년성경연구 교사 지침

2019년 1월 20일 주일 용  


제 8과



 보호하고 섬기라    



학습구절: 창세기 1장 27절; 9장 1 -7절; 마태복음 5장 21 22절


성경진리:

하나님은 인간을 그의 형상대로 창조하시고, 인간의 생명에 신성한 가치를 부여해 주셨다.            


주요교리:  그리스도인과 사회 질서

그리스도인들은 말하지 못하는  태아들을 대신하여 말해야 하며, 인간의 모든 생명은 잉태 때부터 자연적인 사망에 이르기까지 신성하다는 사실을 주장해야 한다 (마 5: 13-16).   


암송구절:  창세기 1장 27절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So God created mankind in his own image,

in the image of God he created them; male and female he created them.”     



시작하는 글:



매해마다 남침례교단의 많은 교회들은1월 셋째 주일을 “인간생명 존엄주일”로 지킨다.

그래서 장년 주일학교도 인간생명이 왜 성스럽고도 귀중한지를 가르치는 성경말씀들을 본문으로 골라서 공부한다.

인간의 생명이 경시되고 있는 사회에 살고 있는 우리는 오늘의 학습을 통해 인간 생명에 대한 귀중한 교훈을 배울 수 있다.

이번 주의 학과는, 창세기와 마태 복음서에서 인간 생명의 존엄성과 관계 있는 구절들을 택하여, 인간 생명의 신성함과 그 신성한 생명을 보호하는 신자들의 역할과 책임을 살펴보게 된다.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되었기 때문에, 모든 사람은 연령이나 성별 혹은 인종이나 국적에 관계없이 귀중하다.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은 우리는 모든 사람이 귀중하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하며 모태에 있는 아기를 포함하여, 모든 인간의 생명을 보호해야 한다.

참으로,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았다는 사실은 특권 이상의 것으로, 그것은 책임이 따르는 일이다.

악한 세상에 사는 우리가 삶 속에서 그 이미지를 지키고 회복하며 또 다른 사람들이 그같이 하도록 돕는 일은 평생 동안의 과정으로 힘들고 어려운 일이 되고 있다.


생명은 어떻게 선물이 되고 있는가

생명은 어떻게 책임이 따르는 것이 되고 있는가?

인간의 생명을 귀중하게 만드는 것은 무엇인가?



본문배경설명 


창세기 1장 27절; 9장 1 -7절; 마태복음 5장 21 -22절


창세기 1장 1절부터 2장 4절까지는 하나님이 하늘과 땅과 그리고 땅에 있는 모든 생물체들을 창조하신 것을 기록하고 있다.   

하나님은 그 모든 것을 말씀으로 창조하셨다 (창 1: 6, 9, 11, 14, 20, 24).

그런 다음, 하나님은 최고의 작품(傑作品)인 인간(人間)을 창조하셨다.

그는 사람을 자기의 형상대로 창조하셨는데, 남자와 여자로 지으셨다 (1: 26-27).

하나님은 그들에게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서 그의 대리인으로서 땅의 모든 것을 다스리라고 하셨다 (1: 28).

창세기 1장 31절은 “하나님이 지으신 그 모든 것을 보시니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는 말로,  

하나님께서 지으신 모든 것에 대한 최종적인 평가를 담고 있다.  

창세기 3 장은 인간이 하나님께 불순종함으로 죄를 짓게 된 것과 하나님의 심판을 받게 된 것을 기록하고 있다.

죄는 곧 인간 본성의 모든 면을 타락시켰다.

아담은 그들의 불순종에 대해 이브를 비난했고, 이브는 뱀을 비난했다.

남자도 여자도 자기의 책임을 인정하자 않았다 (3: 12 -13)

하나님은 첫 인간을 그들의 죄에 대해 심판하시고 에덴 동산에서 그들을 추방하셨다 (3: 23-24).

그러나 인간을 심판하실 때마저도, 하나님은 언젠가는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 (뱀의 머리 )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고 계시하셨다 (3: 15).

많은 성경 학자들은 그 말씀이 예수 그리스도께서 구세주로 오심을 가리키는 첫 번째 성경의 예언이라고 해석한다.

창세기 6 장부터 8장까지는 인류가 너무도 죄가 많고 악하고 부패하였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온 세상을 홍수(洪水)로 심판하신 것을 기록하고 있다.

지구 전체에 미치는 엄청난 파멸과 파괴의 심판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노아와 그의 아내, 그들의 세 아들과 그들의 아내들, 그리고 암수 쌍으로 방주 안에 들어가 있던 모든 동물들을 살려주심으로 인간과 동물의 생명을 보존해 주셨다.

창세기 9장 1절부터 7절까지는 노아와 그의 가족들이 마침내 방주에서 나오게 되었을 때 하나님께서 노아와 언약을 맺으신 것을 밝혀주고 있다.

이 언약에는 {인간의 생명을 보호하라]는 하나님의 명령이 포함되어 있다 (9: 6).

마태복음 5장은 예수님의 산상 수훈의 일부로, 예수님은 거기서 그리스도인의 삶을 위한 실천 원리들을 요약하셨다.  

예수님의 가르침은 그의 동시대 사람들의 가르침과 근본적으로 달랐다.

그러므로, 어떤 사람들은 모세의 율법을 부인한다고 그를 비난하였다.

그는 율법의 모든 세부 사항을 정확하게 가르쳤다고 진술하시면서, 그 비난을 강력하게 부인하였다.

예수님은, 자신의 주장을 옹호하시기 위해, 십계명 중에서 여섯 번째와 일곱 번째 계명을 인용하여 설명하셨다.

그런 다음 예수님은 통제되지 않은 분노와 그릇된 태도가 여섯 번째 계명에서 금지하고 있는 살인의 요건이 되고 있음을 단호하게 주장하셨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제자들은 행동과 태도로 다른 사람들의 생명을 귀하게 여겨야 한다.



학습구절 연구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은 인간 (창세기 1장 27절)


1장 27절

  •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창세기 1장 1절부터 2장 3절까지는 창조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창조하다”라는 동사는 이 단원에서 여섯 번에 걸쳐 나타나고 있는데, 두 개는 이 단원의 시작과 마지막을 장식하고 있다 (1: 1; 2: 3).

히브리어로는 다섯 개의 동사 중에 세 개는 오늘의 본문 구절인 1장 27절에 나타나고 있다.

그 동사가 다른 곳에서 유일하게 나타나고 있는 것은 동물들의 생명이 시작되고 있는 것과 관계되고 있다 (창 1: 21).

구약에서 “창조하다”라는 히브리어 동사는 하나님을 주어로 삼아 ‘사용되고 있다.

하나님께서만 창조하실 수 있다.

세상의 모든 것들은 하나님의 은혜로 존재하게 되었으며, 하나님의 가장 위대한 창조는 생명이다.

하나님의 창조의 절정은 인간의 창조이다.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셨다).”

이 구절에서 “사람”으로 번역 된 히브리 단어는 문자 적으로 특정한 "그 사람"이 되고 있다.

다시 말해서, 그것은 사람을 가리키는 히브리어  “아담”에다 특정한 대상을 나타내는 정관사를 접두어로 붙인 형태가 되고 있다.

그 용어가 성경 번역가들에게 어려운 문제가 되고 있는 것은 그 용어의 융통성(融通性)이다.

히브리어로 “아담”이란 단어는 집합적으로 전체 “인류”를 가리킬 수 있고, 한 특정한 남자를 가리킬 수도 있으며, 혹은 “아담”이라는 개인적인 이름이 될 수도 있다.   

특정한 경우에 어떤 뜻의 명칭이 가장 적합한지는 문맥에 따라 결정되고 있다.

본문의 경우에, 가장 적합한 뜻은 집단적인 것으로 “모든 사람들” 혹은 “인류”를 가리키고 있다.  

성경이 모든 인류가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된 것으로 언급했을 때 그것은 무엇을 의미하고 있는가?

성경 학자들은 오랫동안 이 질문에 대해 토론 해 왔으며, 대다수의 학자들은 그 말이 의미하지 않는 것에 대해 동의하고 있다.

그것은 인간이 신이 아니며, 주권적이고 모든 면에서 무한하신 창조주와 동등한 신적 존재가 아니라는 것에는 동의하고 있다.

그 말이 의미하고 있는 것이 무엇이냐는 면에서, 성경학자들은, 비록 하나님은 모든 면에서 인간과 구별되며 초월적인 존재가 되심에도 불구하고, 일반적으로 하나님과 의미 있고 진실하게 관계를 맺을 수 있는 인간의 자질로, 최소한 다섯 가지를 들고 있다.

첫째, 인간은 논리적으로 생각할 수 있는 능력을 포함하여, 지력을 가지고 있다.

그같이 지력을 사용할 때에, 사람들은 그들 안에 있는 하나님의 형상을 반영하고 있다.

하나님은 무한한 우주를 창조하시고 통치하심으로 그의 무한한 지력을 나타내신다.

사람들이 의사를 소통하고, 협력하여 일을 하며, 문제를 해결하고, 어떤 일을 결정하며, 혹은 예술활동을 할 때, 그들은 그 같은 자질을 사용한다.

둘째, 인간은 감정의 산물이며 감정을 나타낸다.

우리는 기쁨과 슬픔 그리고 분노와 평안 같은 감정을 경험한다.

성경은 하나님도 감정을 경험 하신다는 것을 알려준다.

신랑이 신부를 기뻐함 같이, 하나님은 그의 백성을 기뻐하신다 (사 62: 5).

하나님은 인간의 죄악으로 인해 마음에 근심하신다 (창 6: 6).

하나님은 의로운 진노를 보이신다 (시 95: 11).

셋째, 인간은 선택을 할 수 있는 의지와 자유가 있다.

우리는 어떤 결정을 내릴 때, 두 가지 혹은 그 이상의 것들 중에서 선택할 수 있는 취사선택권이 있다.

우리는 무엇을 먹을지, 무엇을 마실지, 무엇을 입을지를 선택할 수 있다.

인간은 자기가 원하는 목적지에 도달하기 위해, 한 직업보다 다른 직업을 혹은 한 길보다 다른 길을 선택하거나 추구할 수 있다.

우리가 선택을 할 때, 우리는 하나님께서도 사용하시는 자질을 나타낸다.

창세기 1 장은 하나님께서 우주를 창조 할 때 많은 선택을 하신 것을 기록하고 있다.

아담과 이브가 하나님께 불순종한 것도 자유의지와 선택의 문제이다.

넷째, 인간은 땅을 정복하고 있다.

땅에 대한 인간의 통치권은 하나님의 주권의 파생물이다.

말하자면, 하나님은 인간에게 지구를 관리하는 중요한 책임을 맡겨주셨다.

우리는 이 책임을 가볍게 받아 들이지 말아야 하고, 겸손하게 하나님의 창조물의 충실한 청지기로서 섬겨야 한다.

다섯째, 인간은 영적인 존재이다.

성경은 “하나님은 영이시니”라고 말하며 (요 4: 24), 우리는 인간 본성에 영적인 차원을 가짐으로써 하나님의 형상에 참여하고 있다.

우리는 육체적인 존재인 것이 확실하지만, 우리들 각자는 영적인 차원도 갖고 있다.

각 개인의 육체적 죽음으로, 그 사람의 영적 존재가 끝나는 것은 아니다 (눅 16: 19 -31).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되는 것은 똑같이 놀라운 특권인 동시에 놀라운 책임이 되고 있다.

성경은 우리에게 모든 인간이 영원한 존재로 설계되었음을 가르쳐주고 있다.

그래서 인간은 하늘에서 하나님과 영원토록 살게 되거나, 하나님과 분리되어 지옥에서 영원히 사탄과 함께 고통을 받게 될 것이다 (히 9: 27).

성경은 하나님의 형상을 나타냄으로, 다른 사람들을 예수님께로 인도하는 증인이 되라고 한다 (고후 3: 18).

창세기 1 장 27 절은 더 나아가서 하나님께서 인간 속에 성별(性別)의 측면을 창조하신 사실을 확언하고 있다.

즉 하나님은 인간을 “남자와 여자”로 창조하셨다.

남자와 여자는 똑같이 창조된 질서의 일부로서 하나님의 형상을 지니고 있으며, 하나님의 창조물의 청지기로서 함께 하나님을 섬기고 있다.

사도 베드로는 나중에 아내를 남편과 함께 하나님께서 은혜로 주시는 영생의 공동 상속인으로 묘사하면서 이 진리를 강조하였다 (벧전 3: 7).

모든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되었기 때문에, 믿는 자들은 모든 사람의 가치를 인정해야 한다.

예수님 당시의 사람들은 종종 모든 사람들을 가치 있게 여기지 않았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어린 아이들이 예수님 가까이 오는 것을 오지 못하게 하였지만, 예수님은 어린 아이들의 가치와 중요함을 인정하셨다 (마 19: 13-14).

예수님은 또한 여자들의 가치와 중요함도 인정하셨는데, 1 세기 당시의 문화권에서 여자들은 그 가치와 중요성이 제대로 인정을 받지 못하고 있었다 (마 9: 22, 눅 8: 2 ~ 3).

예수님은 또한 당시 사회에서 세리처럼 멸시를 받고 있던 사람들까지도 귀하게 여기셨다 (눅 19: 9 -10).   

믿는 자들인 우리는, 예수님처럼, 모든 사람들을 귀하게 여겨야 한다.


인간의 생명을 보호하라 (창세기 9장 1 -7절)  


9장 1절:

  • 하나님이 노아와 그 아들들에게 복을 주시며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 하라 

홍수 심판이 있은 후, 하나님은 노아와 언약을 세우셨는데, 그 언약에는 인간을 죽이는 어떤 생명체에게 그 생명을 요구하게 함으로 인간의 생명을 보호하라는 명령이 포함되고 있다.

하나님은 언약을 노아와 그의 아들들을 축복하시는 것으로 시작 하셨다.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복을 받다”라는 말은 히브리어로는 의미가 다른 두 개의 단어가 번역된 결과가 될 수 있다.  

하나는 인간 선택의 결과가 되고 있다.

그것은 경건한 결정의 결과를 묘사하고 있다 (시 1: 1 -2).

시 1편 1절과 2절은 “복 있는 사람은 악인의 꾀를 따르지 아니하며 죄인들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않지 아니하고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도다”라고 말씀하고 있다.

또 다른 단어는 인간이 하는 일과는 관계 없이, 하나님께서 별개로 행해주시는 일이 되고 있다.

그것은 대개 하나님께서 한 개인에게 맡겨주신 일과 관계되고 있다.

여기서 사용되고 있는 히브리어 단어는 두 번째의 것으로, 그것은 하나님께서 노아의 가족이 그 맡은 바 거룩한 임무를 수행 할 수 있는 힘을 주신 것을 나타내주고 있다.

하나님은 노아 가족의 네 부부에게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는 말씀으로, 땅을 사람들로 다시 채우는 과업을 맡기셨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최초의 인간인 아담과 이브에게 주신 과업과 똑 같은 것이 되고 있다 (1: 28).


9장 2절:

  • 땅의 모든 짐승과 공중의 모든 새와 땅에 기는 모든 것과 바다의 모든 물고기가 너희를 두려워하며 너희를 무서워하리니 이것들은 너희의 손에 붙였음이니라

홍수 심판 이전에는 사람과 동물 사이의 관계가 어떤 것이었든 간에, 홍수 심판 이후부터는 동물들이 인간을 “두려워하며” 사람을 “무서워” 하게 되었다.  

동물들의 그 같은 두려움과 무서움은 동물들로부터 인간의 생명을 보호하는 역할을 할 것이다.

그러므로, 대부분의 동물들은, 체력적으로 인간보다 훨씬 월등하며 사나운 포식(捕食) 동물조차도, 본능적으로 사람들을 피하여 도망친다,

하나님은 홍수 심판 이전의 인간에게는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고 하셨는데 반해, 홍수의 심판에서 살아남은 노아의 가족들에게는 다른 모든 생명체들을 “너희의 손에 붙였음이니라”고 하셨다.

본질적으로, 이제 인간은 다른 모든 생명체들의 생사화복을 주장하는 힘을 갖게 되었다.

이 말은 사람과 동물의 관계에서 가장 급격한 변화의 기초를 이루는 일이 되었다.  


9장 3 -4절:

  • 모든 산 동물은 너희의 먹을 것이 될지라 채소 같이 내가 이것을 다 너희에게 주노라
  • 그러나 고기를 그 생명 되는 피째 먹지 말 것이니라

홍수 심판이 있기 이전에는, 사람들은 과일과 식물을 먹는 채식주의자였던 것같이 보인다 (창 1: 29 ~ 30).

하나님은 홍수 심판이전에는 고기를 먹는 것을 확실하게 금지하지 않으셨다.

도리어, 하나님은 단순히 “온 지면의 씨 맺는 모든 채소와 씨 가진 열매 맺는 모든 모든 나물”를 음식물로 준다고 하셨다 (창 1: 29 -30).

인간의 식단에 고기를 포함 시킨 것은 홍수 심판 전후를 가르는 경계선의 표가 되고 있다.

이제 노아와 그의 후손들은 이전의 채식음식 말고도 동물의 고기도 먹을 수 있게 되었지만, “그 생명 되는 피째 먹지 말(아야)” 하였다.

후에 모세 율법은 이 명령에 대한 더 자세한 설명을 제공하고 있다.

육체의 생명은 피에 있기 때문이다 (례 17: 11).

따라서 사람들은 피를 경외감을 가지고 대해야 하였다.

레위기 17장 11절은 “생명이 피에” 있을 뿐 아니라, “피가 죄를 속하느니라”고 하였는데, 후에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흘리신 피는 우리의 죄값을 치르어 주었고,  구원을 얻게 해 주었다 (롬 3: 25; 히 9: 12).


9장 5 -6절:

  • 내가 반드시 너희의 피 곧 너희의 생명의 피를 찾으리니 짐승이면 그 짐승에게서, 사람이나 사람의 형제면 그에게서 그의 생명을 찾으리라
  • 다른 사람의 피를 흘리면 그 사람의 피도 흘릴 것이니 이는 하나님이 자기 형상대로 사람을 지으셨음이니라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았다는 사실은 인간의 생명이 귀중하고 그 생명은 보호를 받아야 한다는 당위성(當爲性)을 뒷받침해 주는 원리가 되고 있다.

9장 6절은 “다른 사람의 피를 흘리면 그 사람의 피도 흘릴 것이니 이는 하나님이 자기 형상대로 사람을 지으셨음이니라”라는 말로 그 같은 당위성을 밝혀주고 있다.

아담과 하와의 타락과 모든 사람이 각각 지은 죄로 인해 하나님의 형상이 손상되었더라도, 그 형상은 그대로 남아 있으며, 하나님 보시기에 여전히 귀중하고 값진 것이 되고 있다.

노아와의 언약은 인간 생명의 귀중성과 중요성을 강조해 주고 있다.

하나님은 그의 백성들에게 인간의 생명을 보호하고, 자신을 위해 말할 수 없는 사람들을 옹호하는 사람들이 될 것을 요구하신다.

그같이 귀중한 생명을 죽이면, 즉 그 사람의 피를 흘리게 하면, 하나님은 말씀하시기를 그에게서 그 “생명의 피를 찾으(시겠다)”고 하였다.

여기서 그 말은 한 사람의 죽음에 대한 공의를 면밀하게 구한다는 뜻이 되고 있다.

그것은 또한 하나님께서 인간 생명을 취한 사람들에게 책임을 물으실 것이라는 사실을 강조하고 있다.

생명을 신성하고도 귀중하게 여기는 문제는 살인에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낙태와 안락사 같은 다른 영역에도 적용되고 있다.

기독교 역사를 통해, 그리스도인들은 사형제도에 대해 의견(意見)을 달리해 오고 있다.

어떤 그리스도인들은 극악무도한 범죄자를 사형에 처하는 정부의 권한을 지지하기 위한 성경적 근거로 창세기 9 장 1 절부터 7 절까지의 말씀을 인용하고 있다.

반면에 다른 그리스도인들은 사형제도의 잠재적인 악용으로 인해 유보적인 태도를 취하고 있다.

그들은 도리어 하나님의 은혜를 강조한다.


9장 7절:

  • 너희는 생육하고 번성하며 땅에 가득하여 그 중에서 번성하라 하셨더라

7 절에 있는 하나님의 명령은 1 절에 있는 것과 같은 내용이 되고 있다.

생육하고 번성하(라)”라는 첫 명령은 두 구절이 모두 똑같다.

그 다음의 말들은 서로 다르지만, 본질적으로 동일한 명령을 표현하고 있다.

1절은 생존자들에게 “땅에 충만하(라)”고 지시하고 있다.

7절은 그 명령을 어떻게 성취하는지를 밝혀주고 있다.

노아의 자손들은 “땅으로 펴져 나아가  그 중에서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여야 하였다.

그들은 이주해 나가는 곳마다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을 가득 채워야 하였다.


행동과 태도로 보호한다 (마태복음 5장 21 -22절)


5장 21 -22절:

  • 옛 사람에게 말한바 살인하지 말라 누구든지 살인하면 심판을 받게 되리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형제에게 노하는 심판을 받게 되고 형제를 대하여 라가라 하는 자는 공회에 잡혀가게 되고 미련한 자라 하는 자는 지옥 불에 들어가게 되리라

“옛 사람”이란 말은 유대인의 이전 세대를 가리키고 있다.

구체적으로 말해서, 예수님은 출애굽의 세대와 시내 산에서 생겼던 일을 언급하셨다.

그들은 모세를 통하여 하나님으로부터 십계명을 받았다.

“너희가 들었으나”라는 말은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있는 세대를 가리키고 있다.

그 두 세대 사이에는, 여러 세대들이 전 세대로부터 배운 율법을 다음 세대에게 가르쳐 주었다 (신 5: 1 -21).

특별히 예수님은 “살인하지 말라”는 여섯 번째의 계명을 예로 드셨다.

“살인하다”라는 말은 히브리어 명령의 정확한 번역이 되고 있다.

그러나, 구약의 율법 조항에 따르면, 그 계명은 다음과 같은 경우에는 적용되지 않고 있다.

음식으로 삼기 위해 짐승을 죽였을 때, 전쟁에서 적군을 죽였을 때, 자기 방어나 우발적인 과실치사의 경우에는 적용되지 않았다.

심판을 받게 되리라”는 말은, 유죄 판결을 받을 경우, 형벌이 죽음이 되고 있는 재판을 가리키고 있다.

바리새인들은 제 육 계명을 어긴 모든 형벌을 실제의 살인 행위에만 적용시켰다.


다른 사람들을 자만과 편견으로 색칠하여 판단하는 것은 그들에게 화를 내는 것보다 더 위험하다.


예수님은 계명의 의도가 살인행위보다 더 중요함을 주장하셨다.

예수님은 모든 살인을 금하실 목적으로 동사를 바꾸어 적용의 범위를 넓히지 않으셨다.

오히려, 그는 살인을 초래케 하며 그 요인이 되고 있는 태도의 문제를 언급하셨다.

그것들은 행위는 물론 감정과 말을 포함하고 있다.

예수님은 살인의 요인으로, ‘형제에게 노하는 것,’ ‘형제를 모욕하는 것,’ 그리고 ‘다른 사람을 바보라고 부르는 것’의 세 가지를 구체적인 예로 드셨다.

첫째로, 예수님은 “형제에게 노하는 자마다 심판을 받게 되고”라는 말씀으로, 다른 사람에게 노하는 문제에 대해 말씀하셨다.

신약 성경의 많은 고대 사본에는 ‘노하다’는 말 앞에 “까닭 없이”라는 말이 삽입되고 있다.

제일 좋은 사본에 그 문구가 빠졌다 할지라도, 그 뜻은 분명하게 암시되고 있다.

모든 분노가 죄가 되는 것은 아니다.

예수님 자신도 노하신 때가 있었다 (막 3: 5).

다른 곳에서, 신약성경은 화를 내더라도 화를 품지 말라고 경고하고 있다 (엡 4: 26).

그러므로, 노하는 것이 죄가 되는 것은 그 원인과 기간이 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다음으로, 예수님은 “형제를 대하여 라가라하는 자는 공회에 잡히게 되고”라는 말로, 언약 공동체의 다른 구성원을 모욕하는 것에 대해 언급하셨다.

예수님이 사용하신 “라가”라는 아람어는 ‘모욕적인 욕설’이 되고 있다.

그것은 어떤 사람을 ‘얼간이’라고 부르는 것과 같다.

셋째로예수님은 또한 형제에게 “미련한 놈이라 하는 자는 지옥 불에 들어가게 되리라”는 말씀으로 모욕적인 말에 대해 경고하셨다.

다른 사람들을 자만과 편견으로 색칠하여 판단하며 평가하는 그 같은 말들은 살인의 행위 만큼 위험하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다.

자만심은, 그것이 인종이나 사회적인 지위, 혹은 지적인 능력이나 인간적인 다른 어떤 소유물에 기초되고 있던지 간에, 모든 사람들이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되었다는 근본 원리를 부정하고 있다.


신자들은 모든 사람을 가치 있게 대함으로 그들을 귀하게 여기고 있다는 사실을 나타내야 한다.

세 가지 죄에 대한 결과는 점차적으로 악화되고 있는 것으로 표현되고 있다.

첫 번째는 단순히 “심판을 받게 되(는 것)”으로 표현되고 있다.

둘째 번의 결과는 최고 법정인 “공회에 잡혀가게 되(는 것)”으로 표현되고 있다.

세 번째의 결과는 “지옥 불에 들어가게 되(는 것)”으로 표현되고 있다.

성경학자들은 예수님이 그 주제를 강조하시기 위해 히브리시의 동의어 평행 법을 사용하신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

그러므로, 그들 세 가지는 모두 본질적으로 같은 의미를 가지고 있다.

그것들은 모두 영원한 심판의 위험성을 가리키고 있다.

예수님은 믿는 자들이 율법이 금지하는 것을 할 뿐 아니라, 그것을 넘어서 다른 사람들의 삶을 소중하게 여기는 행동과 태도를 보여주기를 기대하셨다.

신자들은 행동과 태도로 모든 사람들에게 존경심을 보임으로 그들 모두가 소중함을 나타내야 한다.


말씀을 나의 상황에 적용하기:


●  신자들은 모든 사람이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된 귀중한 존재인 것을 인정해야 한다.

●  신자들은 인간의 생명을 보호해야 하며, 특별히 자신을 위해 말할 수 없는 사람들의 권리를 옹호(擁護)해 주어야 한다.

●  신자들은 행동과 태도로 모든 사람에게 존경심을 보임으로 그들 모두가 소중함을 나타내야 한다.



이웃 사람들과 직장 동료들의 이름을 열거하도록 하라.

당신이 그같이 열거한 사람들을 귀중하게 여기고 있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당신이 이번 주간 동안에 그들을 위해 할 수 있는 구체적인 방법들은 어떤 것이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