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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해하다 - 제 7과 - 2019년 1월 13일 주일 - 장년성경연구 교사용 교재 - 창세기 33장 1 -15절

글쓴이 : 강호길 날짜 : 2019-01-09 (수) 12:28 조회 : 178

장년성경연구 교사 지침

2019년 1월 13일 주일 용  


제 7과



화해하다    



학습구절: 창세기 33장 1 -15절


성경진리:

화해의 관계를 이루는 것은 하나님의 축복이며, 가장 큰 축복은 한나님과의 회복된 관계이다.           


주요교리:  평화와 전쟁

하나님의 의(義)의 원칙에 기초하여 모든 사람과 화목하기를 힘쓰는 것은 그리스도인의 의무(義務)이자 책임(責任)이다 (롬 12: 18 -19).  


암송구절:  창세기 33장 11절

하나님이 내게 은혜를 베푸셨고 내 소유도 족하오니 청하건대

내가 형님께 드리는 예물을 받으소서 하고 그에게 강권하매 받으니라.   

“Please accept the present that was brought to you,

for God has been generous to me and I have all I need.

And because Jacob insisted, Esau accepted it.”      



시작하는 글:


화해에 대해 말하기는 쉽지만, 화해를 하기는 쉽지 않다.

어떤 사람들은, 자존심 때문에 혹은 정면 대결이나 거절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나빠진 관계를 화해하려고 하지 않고, 한 때 가깝고 좋았던 관계가 시들어 버리거나 사멸하도록 내버려 두는 선택을 한다.

그들은 화해를 함으로 얻을 수 있는 이득보다는 화해를 하려다가 겪게 될지 모르는 손실에다 초점을 맞추고 있다.

화해에는 위험 요인이 따를 수도 있지만, 화해를 하면 관계의 회복과 상처의 치유, 용서와 새로워진 사랑 등 여러 가지 유익과 축복이 따른다.


깨어진 관계를 회복하는데 방해가 되는 장애물들은 무엇인가?

다른 사람들과 화해하는 일은 한 사람이 영적으로 성장하도록 어떻게 도와줄 수 있는가?



본문배경설명 


창세기 33장 1절부터 20절까지


창세기 33장은 야곱과 에서가 20년 만에 극적으로 만나는 결정적인 장면을 제시하고 있다.

이전의 만남은 강한 경쟁심으로 인해 서로 경계하며, 또 속이고 속는 관계로 인해 상처를 입고 복수심에 불탔는데 반해, 이것은 예상하지 못한 화해의 특징이 나타나는 것이 되고 있다.

이 만남의 이야기는 크게 세 부분으로 나뉘어 지고 있다.

첫 번째 부분은 사이가 나빴을 뿐 아니라, 20 년 동안 서로 떨어져 있던 두 형제가 만나는 극적인 순간을 묘사하고 있다(창 33: 1-4).

두 번째 부분은 그 때 두 형제가 나눈 대화를 기록하고 있다 (창 33: 5 -15).

세 번째 부분은 두 형제가 각기 나중에 정착 한 지리적 위치를 알려주고 있다 (창 33: 16 -20).     

야곱은 처음 에서를 만날 때 최악의 상황을 생각하고 그에 따라 계획을 세웠다.

야곱은 먼 곳에서 많은 수의 사람들이 빠르게 접근해오는 것을 보았다.

그는 최종적인 조정을 하였다 33: 1 -3).

야곱은 즉시 자녀들을 각기 그들의 어머니와 함께 팀으로 만들어, 네 개의 팀이 되게 하였다.

그런 다음 그는 자기가 덜 사랑하는 순서대로, 두 여종과 그들의 아이들은 맨 앞에서 가게 하고, 다음에는 “레아와 그의 자식들”은 가운데 세우고, 가장 많이 사랑하는 “라헬과 요셉”은 맨 나중에 두었다 (33: 1 -2).

그런데, 야곱은 이번에는 자신이 가족 대열의 맨 앞에 서서 나아갔다.

그는 형 앞에 가까이 이르자, 일곱 번이나 땅에 엎드려 절을 하였다(33: 3).

놀랍게도, 야곱과 에서의 만남은 폭력이나 싸움으로 번진 것이 아니라, 화해의 만남이 되었던 것이다.  

에서는 달려와서 야곱을 껴안고 입맞추며 환영하였다 (창 33: 4).

두 형제는 감격한 나머지 함께 울었다.


야곱과 에서의 대화는 두 가지 주제(主題)로 나누어 지고 있다.  

첫 번째 주제는 야곱이 집을 떠나서 하란에 있던 20년 동안에 일어난 변화에 대한 것이 되고 있다 (창 33: 5 -11).

첫 번째 주제도 마찬가지로 두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먼저, 야곱은 형 에서에게 가족을 소개하였다.

그런 다음, 그는 에서를 설득하여 선물을 받아들이게 하였다.

두 번째 주제는 에서와 재회한 후에 야곱과 그의 가족이 택한 여정 길과 방향에 대한 것이 되고 있다 (창 33: 12-15 절).

얍복 나루에서 하나님을 만나서 변화되고 축복을 받은 일은 야곱으로 하여금 하나님에 대한 강한 믿음과 담대함을 얻게 하였다.  

하나님과의 새로운 관계로 인하여 그는 에서를 덜 두려워하게 되었다.

하나님께서 자기를 지켜주시며 보호해 주신다는 확신을 가질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는 에서에게 그가 집을 떠나 있는 이십 년 동안에 하나님께서 축복해 주신 것을 담대하게 간증할 수 있었다.

선물의 가치와 그의 가족과 짐승 떼의 크기는 그 증거가 되었다.

야곱은 세일까지 가는 여정을 호위해 주겠다는 형의 제의를 정중하게 거절하였다.

대신, 가나안으로 이주하여 ‘세겜”에 정착하였다.



학습구절 연구 


교만과 자만심을 버린 야곱과 에서 (창세기 33장 1 - 4절)

  • 형 에서가 다가오는 것을 보았을 때, 야곱은 겸손한 마음과 자세로 그를 만날 준비를 하였다.
  • 두 사람의 거리가 가까워 졌을 때, 에서는 달려와서 야곱을 포옹하며 환영의 표를 나타냈다.

33장 1 - 2절

  • 야곱이 눈을 들어 보니 에서가 사백 명의 장정을 거느리고 오고 있는지라 그의 자식들을 나누어 레아와 라헬과 두 여종에게 맡기고
  • 여종들과 그들의 자식들은 앞에 두고 레아와 그의 자식들은 다음에 두고   


야곱이 고개를 들어보니, “에서가 사백 명의 장정을 거느리고” 오는 것이 보였다.

마침내 진실이 밝혀지는 순간이 다가오고 있었던 것이다.

우리는 야곱과 그의 가족이 그때 하루의 여정길을 이미 시작했었는지 아니면 장막에 그대로 머물러 있었는지 알지 못한다.

어찌되었던지 간에, 야곱은 형과의 만남이 피할 수 없는 일인 것을 알았다.

이전에 이미 “(에서가) 사백 명을 거느리고 주인을 만나려고 오더이다”라고 한 종들의 보고를 듣고 있기는 했지만 (창 32: 6), 실제로 에서가 그같이 엄청난 수의 장정을 이끌고 자기 가족을 향하여 오고 있는 것을 직접 보는 것은 큰 불안을 갖게 하였다.  

종들을 통해 그 같은 보고를 듣기만 했을 때도, 야곱은 “심히 두렵고 답답하여” 하나님을 붙들고 간절히 기도했었다 (창 32: 7 -12).

에서는 관계를 회복하기 위해 오고 있는가, 아니면 동생 야곱을 죽이겠다는 오랫동안의 원한을 풀려고 오고 있는가 (27: 41)?

이 시점에서 야곱이 유일하게 바라며 믿을 수 있는 것은 그가 “에서의 손에서” 구해달라고 간절히 간구한 기도를 하나님께서 들어주시는 것이었다 (창 32: 11).

에서가 자기를 만나러 오고 있다는 말을 들었을 때, 야곱은 그의 가족을 두 때로 나누어 서로 멀리 떨어져 있게 하였다.  

이는 에서가 밤중에 한 떼를 공격하면, 다른 한 떼는 피할 수 있게 하려는 생각 때문이었다 (창 32: 7 -8).

야곱은 에서가 나타나기 전날 밤에 두 떼를 재결합 시킨 것이 분명하다.

그러나 형 에서가 다가오고 있는 것을 보았을 때, 야곱은 가족을 다시 조직하여 “자식들”과 그들을 낳은 네 명의 여인들을 각각 합하여 네 그룹으로 만들었다.

야곱은 먼저 첫 번째 그룹과 두 번째 그룹인 “여종들과 그들의 자식들”을 제일 앞에다 두었다.

따라서 제일 앞에 선 두 그룹 중에 하나는 라헬의 여종인 “빌하”와 그녀의 두 아들이 (과 납달리었고 (30: 6 -8), 다른 하나는 레아의 여종인 “실바”와 그녀의 두 아들(과 아셀)이었다 (30: 10 -13).

그 다음으로 세 번째의 그룹에는 “레아”와 그녀의 여섯 명의 아들과 딸이 (르우벤, 시므온, 레위, 유다, 잇사갈, 스불론, 디나) 포함되었다 (29: 31 -36; 30: 16 -20; 30: 20).

마지막 네 번째 그룹으로 야곱은 “라헬”과 그 녀의 아들인 ‘요셉’을 두었다. 

라헬의 두 번째 아들이자 야곱의 열두 번째의 아들인 “베냐민”은 아직 태어나지 않았었다.

후에 라헬은 베냐민을 해산하다가 산고로 죽었다 (35: 16 -19).

성서 학자들은 어머니들과 자식들을 그 같은 순서로 배치한 야곱의 논리적 근거에 대해 토론해오고 있다.

가장 설득력 있는 한 가지 해석은 에서가 야곱의 가족을 공격할 경우에 대비하여 야곱이 생존선호도에 기초하여 그같이 배치한 것으로 보는 것이다.

말하자면, 야곱은 자기가 가장 사랑하는 라헬과 요셉을 가장 안전한 위치에다 둔 것으로 보는 것이다.  


33장 3 -4절

  • 자기는 그들 앞에서 나아가되 몸을 일곱 번 땅에 굽히며 그의 형 에서에게 가까이 가니
  • 에서가 달려와서 그를 맞이하여 안고 목을 어긋 맞추어 그와 입맞추고 서로 우니라


야곱은 가족들 앞에 서서 에서를 맞으러 나아갔다.  

그것은 야곱이 하나님께 대한 강한 믿음과 신뢰심 뿐 아니라, 용기를 나타내는 일이 되었다.

그는 또한 형에게로 다가 가면서 “일곱 번 땅에” 엎드려 절을 함으로 겸손을 나타냈다.


겸손은 항상 갈등이나 충돌을 해소 할 때, 최선의 방법이 되고 있다 


야곱은 이전에 이미 화평의 선물로 수 많은 짐승들을 에서에게 보냈었다 (32: 14 -15).

다른 한 개인에게, 특별히 통치자나 고위 관리에게, 경의를 표하기 위하여 절하는 일은 고대 근동 문화권에서 행해지던 관습이었다.

야곱은 20 년 전에 속인 형 앞에서 자신을 낮추고 있는 것을 나타내고 있었던 것이다.

야곱이 “그의 형 에서에게 가까이 가면서” 일곱 번이나 계속  “땅에 굽히며” 절을 한 것은 그가 변화된 사람이 된 것을 보여준 일이 되었다.  

그는 더 이상 교만하고 잔꾀를 굴리는 권모술수자가 아니었다.

이제 그는 하나님을 만나 “이스라엘”로 변화되었고, 그의 삶과 장래는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었다.

사이가 틀어졌던 동생의 귀향(歸鄕)에 대한 형의 반응은 전적으로 뜻밖의 것이었다.

그는, 예수님의 탕자의 비유에 나오는 아버지처럼, 야곱을 향하여 “달려(왔다).”

그는 야곱을 끓어 안고 그의 볼에다 입을 맞추었다.

당시에 사람들이 볼에다 입을 맞추는 것은, 오늘 날 사람들이 서로 만나면 악수를 하는 것처럼, 보통 관습적인 인사방법이었다.

그러나 여기에서 그것이 더 큰 의미를 지니고 있는 것이, 그것은 형제의 사랑에 대한 분명한 표현이 되었기 때문이었다. 

그것은 또한 예서도 화해를 열망하고 있었던 것을 나타내주고 있다.

그 순간에 두 형제 사이의 적의와 원한은 눈 녹듯이 녹아져 버렸다.

그들은 서로 붙들고 울었다.

에서도 자신이 어떤 변화를 경험한 것이 분명하다.

성경은 그 같은 변화가 언제, 어떻게 일어났는지를 알려주지 않지만, 그 같은 변화가 없이는 그같이 놀라운 행동이 가능하지 않기 때문이다.

성경은 언제, 어떻게 나타나는지를 알려주지는 않지만 놀라운 행동이 없이는 가능하지 않습니다.

야곱의 잘못은 용서되고 잊혀졌던 것이다.

에서의 눈에 보인 것은 단지 그의 사랑하는 동생이었다.

그는 월등한 군사력을 가지고 있었지만, 회개하는 동생에게 그것을 사용하기를 거절하였다.

겸손한 마음과 태도로 다른 사람들을 대할 때, 그것은 변화의 증거가 될 수 있다.

이 학습단원은 우리에게 깨어진 관계를 회복시키는데 대한 몇 가지 핵심 진리를 상기시켜준다.

첫째로, 용서와 화해를 구하거나 베푸는 일에는 용기와 겸손과 하나님에 대한 신뢰가 필요하다.

둘째로, 손상된 관계에 있는 한 사람이 화해를 추구하는 첫 단계를 밟을 때, 그 사람은 다른 사람도 그 관계를 회복하기를 갈망하고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셋째, 손상된 관계를 고치려는 노력이 성공하면 양측의 억눌렸던 감정이 해소될 수 있다.

 야곱은 에서와의 만남에 대해 많이 염려하며 걱정을 했지만, 에서의 따뜻한 환영과 포용은 안도감을 주었고 눈물까지 흘리게 되었다.


진실되게 행한 야곱과 에서 (창세기 33장 5 -11절)  

  • 야곱은 하나님께서 자기에게 주신 재물을 대표하는 선물을 에서에게 주었다.
  • 에서는 처음에는 선물을 거절하였지만, 야곱이 설득하자 그의 선물을 받아들였다.

33장 5절: 

  • 에서가 눈을 들어 여인들과 자식들을 보고 묻되 너와 함께 한 이들은 누구냐 야곱이 이르되 하나님이 주의 종에게 은혜로 주신 자식들이니이다

이 시점까지, 에서의 관심은 온통 야곱에게 집중되어 있었다.

서로 포옹했던 것이 풀리자, 에서는 야곱과 함께 있는 여인들과 아이들에게 관심을 돌렸다.

그래서 에서는 “너와 함께 한 이들은 누구냐”고 물었다.

에서의 그 같은 질문은 야곱으로 하여금 에서에게 하나님의 은혜에 대해 말해 줄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었다.

20년 전에 야곱이 가나안 땅을 떠났을 때, 그는 혼자 몸이었고 두려움에 가득 차 있었다.

이제 그는 대 가족과 하인들, 그리고 큰 무리의 양들과 염소들과 소들을 이끌고 돌아오고 있었다.

우리는 “하나님이 주의 종에게 은혜로 주신 자식들이니이다”라고 한 야곱의 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야곱은 자식들을 하나님께서 주신 선물로 보았던 것이다.

장차 세월이 흐르면, 바로 그 아이들과 그들의 후손들은 야곱에게 많은 기쁨과 또한 심적 고통의 때를 안겨 줄 것이다.

마찬가지로, 오늘 날에도 자녀를 양육하는 일은 똑같이 기쁨과 슬픔을 동반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모로서 우리는 자식들이 하나님의 선물이라는 사실을 결코 잊지 말아야 한다 (시 127: 3).

성경은 부모들에게 자녀들을 사랑하고, 하나님의 길로 훈련하며, 그들을 그리스도께로 인도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신 6: 6 -7; 엡 6: 4).

야곱은 자신을 “주의 종,” 다시 말해서 ‘에서의 종’으로 부름으로 계속 존경심을 나타냈다.

”이라는 히브리 용어의 기본적인 의미는 "노예"이다.

그 말은 또한 왕의 신하를 지칭할 수도 있다.

여기에서 그 말은 후자의 의미를 가지고 있으며, 일곱 번 땅에 굽히며 절하는 것과 동등한 구두 표현이 되고 있다.


33장 6 -7절:

  • 그 때에 여종들이 그의 자식들과 더불어 나아와 절하고
  • 레아도 그의 자식들과 더불어 나아와 절하고 그 후에 요셉이 라헬과 더불어 나아와 절하니


네 그룹으로 나뉘어진 야곱의 가족은 행렬을 지어 야곱과 에서게로 걸어 나왔다.  

제일 먼저, 두 “여종들”(첩들)과 “그의 자식들”이 걸어 나와 에서에게 절을 하였다.

다음으로, 레아와 그녀의 일곱 자녀들이 걸어 나와 에서에게 공손하게 절을 하였다.

그 후에 “요셉이 라헬과 더불어 나아와 절하(였다).”

본문은 그들이 몇 번이나 절을 했는지를 밝히지를 않고 있다.

이는 복종과 충성심을 나타내는 것으로 충분했기 때문이다.

여기서 라헬의 아들 요셉의 이름만이 언급되고 있다.

그 이유는 두 가지로 밝힐 수 있다.

첫째로, 그것은 아버지의 눈에 요셉이 가장 총애를 받고 있는 것을 나타내 주고 있다.  

둘째로, 그것은 또한 요셉이 곧 가족의 역사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될 것을 암시해 주고 있다.  


33장 8 -9절:

  • 에서가 또 이르되 내가 만난 바 이 모든 떼는 무슨 까닭이냐 야곱이 이르되 내 주께 은혜를 입으려 함이니이다
  • 에서가 이르되 내 동생아 내게 있는 것이 족하니 네 소유는 네게 두라

야곱과 화해를 하고 그의 가족을 만난 다음, 에서는 확인할 목적으로 “내가 만난 이 모든 떼는 무슨 까닭이냐”고 물었다.

에서와 만나기 이전에 야곱은 “세일 땅 에돔 들”에 있는 형 에서에게 종들을 보내어 그를 만나서 자기가 오고 있는 것을 알리고 그에게 “은혜를 받기를 원(한다)”는 뜻을 전하라고 하였다 (32: 4 -5).

또한 에서가 이미 “사백 명을 거느리고 주인(야곱)을 만나려고 오더이다”라는 말을 전했을 때, 야곱은 짐승 떼를 나눈 다음 종들에게 지시하기를, 형 에서를 만나서 무엇이냐고 묻거든 “주의 종 야곱의 것이요 자기 주 에서에게 보내는 예물”이라고 말하라고 하였다 (32: 17 -20).

어쩌면, 야곱의 종들은 결코 에서에게 그 메시지를 전달할 기회를 얻지 못했을 수 있다.

아니면, 에서는 야곱 자신에게서 직접 들음으로 그 선물의 진의를 확인하기를 원했을 수 있다.

경우가 어떻든 간에, 야곱은 “내 주께 은혜를 입으려 함이니이다”라는 말로 에서에게 그 짐승들은 손상된 관계를 치유하는데 도움이 되도록 계획된 선물임을 확신시켜 주었다.

그 말은, 실제로, 야곱이 20 년 전에 형 에서에게 잘못한 것과 그리고 에서의 용서를 받을 자격이 없는 것을 인정하는 뜻이 되었다.

 또한, 진정한 화해는 돈이나 가축으로는 구매할 수 없다.

야곱이 필요로 했던 것과 그가 찾은 것은 “은혜”였다.

야곱이 필요했고 갈망했던 은혜는 하나님과 화목하게 될 때 우리 자신의 은혜의 필요성을 예시(豫示)해 주었다.

우리는 모두 죄 때문에 하나님과 멀리 떨어져 있었다 (사 59: 2). 

회개하지 않은 죄인 들로서, 우리는 하나님과 원수 지간이었다.

그러나 놀라운 복음의 이야기는 우리의 많은 죄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 하신다는 것이다.

하나님은 그 같은 우리에게 먼저 은혜를 베풀어 주셔서 예수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세상에 보내주셨다.

그 같은 하나님의 사랑은 사도 바울로 하여금 다음과 같이 기록하게 하였다: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엡 2: 8).

에서는 “내 동생아 내게 있는 것이 족하니 네 소유는 네게 두라”고 하며 선물을 받지 않으려고 하였다.

에서가 선물을 거절한 것은 자존심이나 고마움을 몰라서가 아니었다.

오히려 “내게 있는 것이 족하니”라는 에서의 말은 그도 지난 20 년 동안에 재물이 많이 늘어난 것을 보여주는 것처럼 보인다.

그렇더라도, 20년 전에 그들 형제가 장자 권을 놓고 속이며 싸워서 원수가 되었던 일과 이제 선물을 놓고 형제가 나눈 대화와 취한 태도를 비교하면, 그들에게 얼마나 큰 변화가 생겼는지를 알 수 있다.


33장 10 -11절:

  • 야곱이 이르되 그렇지 아니하니이다 내가 형님의 눈 앞에서 은혜를 입었사오면 청하건대 내 손에서 이 예물을 받으소서 내가 형님의 얼굴을 뵈온즉 하나님의 얼굴을 본 것 같사오며 형님도 나를 기뻐하심이니이다
  • 하나님이 내게 은혜를 베푸셨고 내 소유도 족하오니 청하건대 내가 형님에게 드리는 예물을 받으소서 하고 강권하매 받으니라


에서가 선물을 받으려고 하지 않자, 야곱은 “그렇지 아니하니이다”라고 하면서, “내가 형님의 눈 앞에서 은혜를 입었사오면 청하건대 내 손에서 이 예물을 받으소서”라면서 강권하였다.

그러면서, 야곱은 형님이 자기를 기뻐하며 너그럽게 대해 주니 “하나님의 얼굴을 본 것” 같다고 하였다.

야곱이 한 말의 뜻은 자기가 주는 예물을 물건 자체 보다는, 자기의 감사와 사랑의 표로, 그리고 자기를 받아주는 뜻으로 받아 달라는 것이었다.

야곱은 특별히 에서가 자기에게 “은혜”를 베풀어 준 것을 강조하였다.

야곱이 자기의 예물을 받아달라고 거듭 강권하자, 에서는 그 예물을 받았다.


차이(差異)를 인정한 야곱과 에서 (창세기 33장 12 -15절)

  • 에서가 여행길을 도와주겠다고 제안했으나, 야곱은 이를 정중하게 사양하였다.
  • 두 형제는 하나님께서 그들 각자에게 은혜를 베풀어주시는 것을 알고, 선한 뜻으로 각기 자기 길을 가기로 하였다.
  • 야곱과 에서의 관계는 사이가 좋은 것이 특징이 되고 있다. 

33장 12절:

  • 에서가 이르되 우리가 떠나자 내가 너와 동행하리라

에서는 야곱에게 “우리가 떠나자 내가 너와 동행하리라”고 하였다.

그 말에서는 에서가 야곱의 가족이 자기와 함께 세일까지 갈 것으로 생각하고 그곳에서 함께 정착하기를 바라는 뜻과 계획이 나타나고 있다.

내가 너와 동행하리라”는 말은 야곱의 가족들보다 앞서가면서 길을 인도하며 보호해 주겠다는 뜻을 담고 있다.

그럴 경우, 그들이 지나가야 될 지역은 위험한 길이었다.

아르논 강의 남쪽 지역은 외지고 적대적인 곳이었다.

그러므로, 자칫하면, 야곱의 가족은 그 지역의 나쁜 주민들에게 구미가 당기는 목표와 손 쉬운 표적이 될 수 있었다.  

그러므로, 에서는 야곱에게 “너와 동행하리라”고 하였다.

다시 말해서, 에서는 야곱에게 그의 여정 길을 호위하여 가족과 양 떼를 보호해 주겠다고 제안했던 것이다.


33장 13 -14절:

  • 야곱이 그에게 이르되 내 주도 아시거니와 자식들은 연약하고 내게 있는 양 떼와 소가 새끼를 데리고 있은즉 하루만 지나치게 몰면 모든 떼가 죽으리니
  • 청하건대 내 주는 종보다 앞서 가소서 나는 앞에 가는 가축과 자식들의 걸음대로 천천히 인도하여 세일로 가서 내 주께 나아가리이다

이 구절에 나오는 야곱의 말은 에서의 기분을 상하게 하지 않게 그의 제안을 거절 할 수 있는 방법을 찾고 있음을 나타내고 있다.

어쩌면, 야곱은 에서와 화해를 했을지라도 아직 그들의 관계에 어떤 긴장감이나 불안감을 느꼈을 수 있다.

사실, 때때로 깨진 관계를 치유하기 위해서는 신뢰를 회복 할 시간이 필요하다.

물론 관계가 치유되게 하는 노력은 여전히 중요하다.

먼저, 야곱은 “자식들이 연약하고” 양떼와 소들이 “새끼를 데리고” 있는 사실을 들어 호소하였다.

그 같은 이유들로 인해, 야곱의 가족은 에서의 부하들보다 느린 속도로 갈 수 밖에 없었다.

그러면서, 야곱은 “하루만 지나치게 몰면,” 모든 떼가 죽을지도 모른다고 하였다.

에서의 계획을 기분 나쁘지 않게 거절하려는 노력을 계속하면서, 야곱은 에서에게 “내 주는 종보다 앞서 가소서”라고 말하였다.

그러면서, 그는 말하기를, “저는 앞에 가는 이 가축 떼와 아이들을 이끌고, 그들의 걸음에 맞추어 천천히 세일로 가서, 형님께 나가겠습니다”라고 하였다(표준 새번역 33: 14).

세일로 (가겠다)”고한 야곱의 말은 성서해석자들에게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야곱은 진정으로 에서를 따라 세일까지 가려고 했었는가, 아니면 그 말은 단지 기분상하지 않게 형의 권고를 거절하는 방법을 찾는 노력의 일환이었는가?

어떤 경우였던 간에, 성경본문은 33장 16 -18절에서 에서와 그의 부하들이 세일을 향해 남쪽으로 떠나자 마자, 야곱은 그의 가족을 데리고 북쪽으로 수 마일 가량 떨어진 “숙곳”으로 가서 얼마 동안 지내다가 후에 서쪽에 있는 요단 강을 건너가 “가나안 땅 세겜 성읍에 이르러 그 성읍 앞에 장막을” 쳤다고 밝히고 있다 (창 33: 17 -18).


33장 15절:

  • 에서가 이르되 내가 내 종 몇 사람을 네게 머물게 하리라 야곱이 이르되 어찌하여 그리하리이까 나로 내 주께 은혜를 얻게 하소서

에서는 종들을 데리고 세일을 향하여 떠나기 전에, “내가 내 종 몇 사람을 네게 머물게 하리라”는 말로 야곱과 그의 가족을 도와주겠다고 제의하였다.

에서는 야곱이 도움을 받기를 주저하고 있는 것을 알았지만, 어떻게 해서든지 동생을 도와주려고 했던 것으로 보인다.

야곱은 “어찌하여 그리하리이까 나로 내 주께 은혜를 얻게 하소서””라고 하면서 정중하게 사양하였다.

두 형제는 좋은 관계로 자기 길을 가는 것에 동의하였다.

형 에서가 하인들을 데리고 세일로 돌아간 후, 야곱은 “숙곳”에 일시적으로 정착하여 거기에다 집을 짓고 가축들을 위하여 우릿간을 지었다 (창 33: 17).

그렇지만, 그곳은 요단강 동쪽으로, 하나님께서 야곱의 자손들에게 주시겠다고 약속하신 약속의 땅 밖이었다.

그러므로, 그는 결국 요단강을 건너가 “가나안 땅 세겜 성읍”에 이르러 그곳 사람으로부터 땅을 사서 그곳에다 장막을 치고 정착하였다 (33: 19).

에서와 야곱은 서로 먼 곳에 떨어져 있었기 때문에 예전처럼 싸우는 일을 반복하지 않아도 되었다.

우리는 현명한 보호 장치를 만들어 놓음으로 미래의 갈등을 최소화 시킬 수 있다.


20년 동안 관계를 끊고 적대관계로 살았던 야곱과 에서는 화해를 하였고 관계를 회복하였다.

야곱이 에서와 화해를 하고 관계를 회복한 이야기는 화해에 대한 몇 가지 중요한 교훈을 위한 배경을 이루고 있다.

첫째로, 화해는 추구할 가치가 있다.

하란을 떠나 약속의 땅으로 돌아올 때, 야곱은 20 년 전에 단절되었던 형과의 관계를 회복하기 위해 형 에서를 찾았다.

야곱은 그의 형 에서도 자기처럼 화해하기를 원하고 있는 것을 발견하였다.

하나님의 은혜가 치유시킬 수 있었다.

둘째로, 화해를 이루려는 일에는 위험을 감수하는 일과 겸손을 나타내야 하는 일이 따른다.

야곱은 에서가 4 백 명을 데리고 자기를 만나러 오고 있다고 말을 들었을 때 두려워하였다.

야곱은 형에게 화평의 선물을 제안하였다.

더구나, 그는 형에게 일곱 번이나 땅에 엎드려 절을 하면서 정중하게 다가갔으며, 경손하고도 존경스럽게 말하였다.

셋째로, 화해의 관계가 완전히 이루어 지기까지는 시간이 걸릴 수 있다.

에서와 야곱은, 비록 그들 사이에 약간의 긴장이 남아있었을 수 있었을 수 있을지라도, 상당히 빨리 화해한 것처럼 보였다.

오늘 날도 마찬가지로, 깨어진 관계가 완전히 치유되는 과정은 수개월 또는 수 년이 걸릴 수도 있다.

그런 일이 생길 때, 하나님께서는 그가 원하시는 결과가 생길 때까지 그의 은혜로 함께 해 주시고 계시다는 것을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넷째로, 하나님은 궁극적인 화해를 이루어 주셨다.

하나님은 십자가 위에서 죽으신 예수님의 화목제물을 통해 이 화해를 죄인들에게 제공하신다 (고후 5: 18-19).

다섯째로, 하나님은 우리들에게 서로 화해할 준비를 하고 있으라고 하신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우리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은 우리가 따라야 할 궁극적인 모범이 되며,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우리에 대한 하나님의 화해의 사랑을 경험할 때 생기는 감사의 마음은 우리가 잘못 행한 사람들이나 우리에게 잘못 행한 사람들에게 손을 내밀게 하는 동기가 되어야 한다.


말씀을 나의 상황에 적용하기:


  다른 사람들을 겸손하게 대할 때, 그것은 진정한 변화의 표가 된다.    

  참된 화해는 양 당사자가 진정한 회복 의지를 보여줄 때에 만 발생할 수 있다.  

  현명한 보호 장치를 만들면 미래의 갈등을 최소화 할 수 있다.


당신은 어떻게 삶 속에서 겸손한 마음과 태도를 키울 수 있는가?

당신의 삶 속에서 겸손을 키우는데 필요한 방법들과 조치들을 취하도록 도와달라고 하나님께 기도하라.


당신의 인간관계에서 고쳐야 할 필요가 있는 것들은 어떤 것들이 있는가?

그 관계들을 어떻게 회복시킬 수 있는가? 그같이 하기 위해서 어떤 행동을 취해야 하는가?